771 수중 훈련
지오드 지협에서 도르와인 섬으로 통하는 길은 약간 가파른 오르막길이었지만, 쿠에 세 마리가 끄는 힘은 10마력에 해당하는 수준.
지협을 빠져나온 일행은 유르파의 강력한 요청에 모여들어 그녀의 의견을 들었다.
=이슬이 아가씨 수중 공포증을 없애야겠어. 배를 타고 멀리 나가야 하는데 바다에 겁을 먹으면 안 되잖니.=
“수중 공포증입니까.”
몰드레테 해협을 건널 때 그녀가 보여준 모습을 기억하고 있던 환인은 이실리테를 돌아보았다.
눈에 띌 정도로 안색이 나쁘다.
=나도 율이 언니 뜻에 찬성. 은근히 물속에서 싸워야 할 일이 많으니까 이 기회에 수중 전투술도 배워보자.=
=안느 언니님은 수중 전투 익숙하세요?=
=익숙하지. 교단 정식 전투술 과목에 수중 전투가 있기도 하고 자유 성직자가 되려면 전투 과목 성적은 올A로 이수해야 하거든. 그러는 너는?=
=저야 전직 암살자니까요. 수중 지중 산중 전투술은 진작에 숙달했어요.=
=지중까지……? 하긴 넌 카락스의 차기 송곳니였으니. 그럼 벨은 어때?=
아영과 숙덕숙덕하던 안느의 질문이 날아들자 백려강은 배시시 웃으며 대답했다.
=조인족은 물이랑 안 친하지만…… 전 물이 친숙하게 느껴졌어요. 아드네빌라 님의 용인체라서 그런가 봐요.=
=물도 다룰 수 있고 신비궁은 바다에서도 위력이 안 떨어진다고 하니까 괜찮겠네. 이모렐은 바다에 들어갈 일이 없을 테고 유르파 언니는 애초에 싸워야 하는 상황이 있어선 안 되고…….=
혼잣말하던 아영이 슬그머니 이실리테를 돌아본다.
=…….=
딱딱하게 굳은 표정은 정신적인 여유가 없음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얼마나 딱딱한지 얼굴이 나무토막처럼 느껴질 지경이다.
환인도 그걸 보았기에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훈련은 그날 밤부터 시작되었다.
도르와인 섬의 지협 마을에 들르지 않고 지나친 일행은 해안을 따라 북상했다.
그리고 해가 저물 무렵, 방랑자의 안식처를 설치하고 옷을 갈아입은 뒤 모래사장으로 이동했다.
모래사장, 사빈은 작은 절벽 아래에 조그맣게 형성되어있었는데 수심도 좀 깊은데다 주변도 암초투성이라 물살이 빠르다.
상급 수중 전투 훈련에 적합한 환경이지만, 지금은 이실리테의 수중 공포증부터 없애는 게 먼저.
하이웨이스트 숏팬츠에 탱크탑을 입은 안느가 발가락 사이로 파고드는 모래의 감촉을 느끼다 뒤를 돌아본다.
=아영아. 철영수는 왜 안 와?=
=지오드 님을 본 후유증인지 앓아누웠더라고요. 불러도 정신을 못 차려서 흙집에 처박아놓고 왔어요.=
=걔들도 약한 위상류가 있고 도령 아신위랑 신언도 제법 겪었을 텐데 그 정도로 앓아눕냐.=
=오빠는 휘광을 일부러 약하게 뿌리시니까요.=
자홍접을 입은 채로 모래사장에 내려온 아영은 빨간 머리띠와 자주색 반투명 비단 두루마기, 갓신을 벗어 한쪽에 곱게 개어둔다.
자홍접 자체가 비키니와 닮아있다 보니 바닷가에 있어도 어색하지 않다.
어깨 장식과 목의 칼라 타입 목걸이까지 떼어낸 아영은 저 멀리 숏팬츠와 오프숄더 코르셋 블라우스를 입고 굳어있는 이실리테를 보며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이실리테 언니 괜찮을까요? 수중 공포증은 단번에 해소하기 어려울 텐데.=
=옆에 도령이 있잖아. 도령을 향한 사랑의 힘으로 어떻게든 하지 않을까?=
=음…… 인정!=
오빠를 향한 언니의 마음은 일편단심 민들레 수준이니까.
그때 귀여운 원피스 수영복을 입은 백려강이 노른과 함께 바람을 타고 절벽을 내려왔다.
늘씬한 다리로 모래사장을 걷다 발가락이 간지러워진 백려강이 종종걸음으로 아영에게 다가가 묻는다.
=아직 훈련 시작 안 했지?=
=오늘은 전투 훈련보다 이실리테 언니 적응 훈련부터 할 거 같아.=
=아, 적응.=
백려강의 시선이 어느새 어두워져 가는 바다로 시선을 주었다.
수평선에 흐릿한 모양의 붉은 달이 천천히 떠오르고 있다. 잠시 후면 밤이 찾아오겠지.
수중에 적응부터 하는 거라면 밤은 힘들지 않을까?
백려강이 바닷물에 발을 담그며 호기심을 담아 그쪽을 보고 있을 때, 파도가 밀려오는 백사장 가장자리에서 이실리테의 수중 적응 훈련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었다.
비키니 타입의 하얀 수영복에 마찬가지로 하얀 파레오를 허리에 두른 유르파가 표정이 굳은 이실리테에게 설명한다.
=이슬이 아가씨가 바다에 두려움을 품은 건 경험이 없기 때문이야. 무지가 불러일으키는 두려움과 공포는 굉장히 강력하거든.=
=……하지만 저는 호수에 빠진 적도 있고 수영도 그럭저럭하는데요…….=
무의식의 두려움 탓에 바다를 호수처럼 격하시키는 걸 유르파는 알아차렸지만, 지적하지 않고 설명을 이어간다.
=응, 아가씬 산란못 미궁에서도 잘 싸웠고 호수에 떨어져도 당황하지 않았어. 그런 호수 속에서 싸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무렇지 않지? 그건 왜 그럴까?=
유르파의 질문에 잠시 생각하던 이실리테가 대답했다.
=숨 막혀 죽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니까요. 호수의 깊이도 대강이나마 알고 있고, 주변에도 뭐가 있는지 알아서라고 생각해요.=
=맞아. 뭐가 나올지, 무엇이 있을지, 수심이 어느 정도인지 알고 있으니까, 어떤 상황이 펼쳐져도 대응할 자신이 있으니까 안 무서운 거야.=
=아…….=
=아까 이슬이 아가씬 무의식중에 바다를 호수와 비교했는데, 그게 맞아. 바다도 호수랑 별로 다를 게 없어.=
호수보다 좀 더 깊고 좀 더 넓을 뿐, 호수처럼 마수나 괴수, 괴물 등이 사는 곳이다.
감히 상대 못할 강적이 무서운 것은 육지도 마찬가지.
촤아악— 철썩—
파도가 밀려와 종아리와 무릎을 때리니 유르파가 앉으라며 손짓한다.
이실리테가 다소곳이 앉자 유르파도 그녀의 앞에 앉아 목에 건 자그마한 아공간 주머니에서 노트를 꺼내 그녀에게 그림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하늘, 땅, 바다에서 살아가는 생물의 특징과 그로 인해 발달한 신체 구조를 설명하기 위한 자료다.
예를 들어 새들이 어떻게 하늘을 날아다니는지 깃털의 구조와 뼈의 차이점을 설명하고 중력에 따른 영향을 설명해준다.
바다에 사는 생물은 어떻게 물 속에서 숨을 쉬는지, 아가미 호흡과 부력과 중력의 상관 관계를 설명해주며 물 속이 커다란 덩치를 유지하기 쉽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렇게 설명을 끝낸 유르파가 이야기를 잇는다.
=마물이나 마수, 이형종도 기존의 생물이 변태해서 나타나는 거기 때문에 이런 생물군의 체계에서 벗어나지 않아. 9급 마수는 하늘 생물이든 땅 생물이든 바다 생물이든, 9급이라서 무서운 거지 바다 생물이라서 따로 더 무섭다거나 그런 건 아니잖니?=
=하지만 사람은 바다에서 숨을 못 쉬잖아요. 언니의 비술을 받고 바다 깊은 곳에서 싸우다 비술이 풀리거나 하면…….=
호흡은 생명 유지의 가장 기초적이면서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중요한 것이다.
그걸 봉인 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은 생각을 할 수 있는 고등 지성체라면 누구나 공감하겠지.
그에 대한 우려는 파도가 이실리테와 유르파의 가슴을 건드리며 젖가슴이 출렁이는 것을 구경하던 환인이 간단하게 이해시켰다.
“그건 홈 어드밴티지 같은 거다. 적진에서 싸우는 것이니 적에게 유리한 것이 당연하지. 그런 사태를 생각하며 대응과 대비를 해두고 전투를 이어가는 것이 프로의 자세고.”
=아.=
전투에 빗대어 간단히 납득시키는 환인의 말솜씨에 유르파는 속으로 감탄하면서 말했다.
=아가씨 말대로 비술은 강력한 공격에 깨어지거나 풀릴 수도 있어. 하지만 물속에서 숨을 쉴 수 있게 해주는 건 비술뿐만이 아니란다?=
=다른 것도 있나요?=
=이건 인어의 호흡이라 부르는 환약이야. 먹으면 신체를 일시적으로 변화시켜 20분 정도 물속에서 호흡할 수 있게 해줘. 하지만 호흡기가 물 밖으로 나온 순간 효과가 즉시 종료되기 때문에 사용법에 주의해야 해.=
진주처럼 생긴 동그란 환약을 본 이실리테의 얼굴에 더는 긴장감이 드러나 있지 않았다.
20분이면 어지간한 전투는 모두 끝내고 정리까지 마칠 시간.
이실리테가 한결 부드럽게 풀린 표정으로 인어의 호흡을 살펴보는 모습에 유르파가 빙그레 웃으며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
=그럼 이제 실전으로 들어가 볼까?=
=네? 실전이라니…… 방금 이걸로 끝난 게 아니었어요?=
=그럴 리가 있니. 심해의 공포를 한 번 느껴봐야 나중에 당황하지 않지~.=
아공간 주머니에서 스틱 완드를 꺼내는 유르파의 모습에 이실리테의 얼굴이 다시 굳어졌다.
환연에게 부탁해 제법 수심이 깊은 앞바다로 나온 환인은 물 정령이 만든 발판 위에 서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보름달이 뜨긴 했지만 달이 붉어서일까. 달빛이 그다지 밝지 않아 사위가 온통 새카맣다.
그러면서 귀에는 파도 소리가 울려 퍼지고 짙은 바닷냄새가 코를 찌르니, 바다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적지 않게 긴장할 상황.
=유, 유리 언니. 여긴…….=
=자~ 이슬이 아가씨, 저항하지 말고 비술을 받아들이렴. 참고로 조금 많이 무서울 거야. 하지만 현실은 그보다 덜하다는 걸 기억해두렴. 현실에서 심해로 내려갈 땐 옆에 동료도 있고 자기도 있을 거니까.=
=주인님…….=
조금씩 어깨를 떠는 이실리테의 연약한 모습에 환인은 부드럽게 웃으며 수영복 차림인 그녀를 품에 안아주고 입맞춤해주었다.
혀가 살짝 교차하는 딮키스를 1분정도 해주자 떨림이 확연하게 가라앉는다.
그 모습에 환인이 고개를 끄덕였고, 유르파는 이실리테에게 환영의 비술을 걸었다.
환인에게는 주변 풍경이 전혀 변하지 않았지만, 환영에 걸린 이실리테의 눈에는 조금 어둡지만 청명하던 하늘에 갑작스레 먹구름이 끼더니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쏴아아아—…… 우르릉— 콰광!!
가까운 장소에서 시퍼런 뇌전이 치며 천둥까지 울려 퍼진다.
도무지 환영 같지 않은 실감에 흠칫 놀랐던 이실리테는 어느샌가 환인과 환연, 유르파가 사라졌다는 걸 눈치챘다.
폭풍우가 다가오는 것처럼 심하게 요동치는 밤바다 한복판에 자기 혼자뿐.
=……!=
꾸르르르— 쿠우우웅—……
심장의 공포심을 자극하는 소리가 발밑…… 바다 깊은 곳에서 들려온다.
그 소리에 젖가슴이 살짝 떨릴 정도로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쏟아지는 차가운 비가 살갗을, 머리를 두드리는 가운데 강한 바람까지 불어와 체온을 앗아간다.
이게 환영……이라고? 도저히 그렇게 안 느껴지는데…….
순간 발밑을 받쳐주던 물의 판이 사라지며 바다에 풍덩 빠졌다.
뼛속까지 시린 바다의 차가움이 몸을 뒤덮는 순간 목구멍으로 심장이 튀어나올 뻔했다.
거기에 정체불명의 소리가 발밑에서 올라와 심장을 두드리니 이실리테는 정신을 차리기 어려웠다.
입안으로, 콧속으로 들어오는 바닷물의 감촉과 냄새가 정체불명의 소리와 함께 이성을 빠르게 마모시켜나간다.
쑤욱—
=……!?=
몸이 심해로 끌려가는 것처럼 갑자기 물 속으로 끌어당겨진 것은 그 순간이었다.
귀에 물이 들어차며 자신의 심장 두근거리는 소리 외에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위를 올려다봐도 빛은 보이지 않고 발밑은 시커먼 무저갱이 아가리를 쫙 벌린 것처럼 어둡다.
허우적거리며 수면으로 부상하려 하지만 몸은 계속해서 아래로 끌어당겨질 뿐.
다중 검기를 펼치려 해봐도 무언가에 막힌 것처럼 능력이 발현되지 않는다.
이실리테는 모르고 있었지만, 그녀가 무의식중에 날뛰는 것을 경계해 환인이 봉인 마도구를 그녀의 팔목에 채웠기 때문.
두려움과 공포가 심장을 옥죄이는 느낌에 그녀의 호흡이 가빠질 무렵 이실리테는 발아래의 어둠 속에 무언가 흐릿하고 거대한 것이 움직이는 걸 느꼈다.
‘끄흡!’
모습도 잘 안 보이는 괴물이 발밑에서 움직이는 듯한 상상에 심장이 아프게 뛰며 눈앞이 흐려진다.
필사적으로 팔다리를 움직이지만 그럼에도 몸은 조금도 떠오르지 않고 계속해서 가라앉는다.
뿌연 회색이던 주변이 점차 까매지며 끝이 없는 어둠 속 괴물의 아가리로 내려가는 공포.
미칠 것 같은 심해 공포증에 이실리테가 눈을 까뒤집기 직전, 무언가에 안긴 것처럼 등 쪽이 따스해지더니 그 따스함이 몸 전체로 퍼져나갔다.
공포에 마비되었던 이성이 차츰차츰 깨어나고, 금방이라도 발밑에서 솟아오를 것 같은 심해의 괴물 형상도 사라져간다.
주변은 무엇하나 분간되지 않을 만큼 여전히 어둡지만, 어쩐지 두려움은 아까보다 덜하다.
아니, 소중한 무언가가 같이 하고 있다는 감각에 오히려 마음이 따스해지며 차갑고 뼈 시리던 어둠이 지금은 포근하고 따스한 이불 속의 어둠처럼 가깝게 느껴졌다.
‘주인님…….’
익숙한 주인님의 체온.
이실리테는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자신의 배를 감은 팔의 체온을 느끼며 계속해서 심해로 가라앉는 자신의 상황을 인지한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모래사장 같은 잘고 부드러운 것이 발가락 사이에 스며들어오는 것을 느낀 순간, 이실리테는 조용히 눈을 떴다.
주변 상황이 눈에 들어온다.
물속에 빠지기 전과 다를 바 없이 청명한 밤하늘과 조용히 철썩이는 검은 바다.
=……주인님.=
자신은 주저앉아있었고 사랑해마지않는 주인님이 뒤에서 자신을 끌어안고 있었다.
“내면의 심해는 잘 구경하고 왔나.”
그의 다정한 속삭임에 이실리테는 귀까지 빨개질 정도로 얼굴을 붉히고는 몸을 돌려 젖가슴이 납작해질 만큼 환인의 품에 안겨들었다.
환영 속 상황이 얼마나 부자연스러웠는지 인식한 것이다.
물속인 데도 숨을 쉴 수 있었고 주변을 훤히 볼 수 있었던데다 팔다리를 아무리 휘저어도 계속 가라앉기만 하다니.
심해의 공포는 충분히 맛보았다. 마치 악몽을 꾼 것처럼 등 어림에 식은땀이 가득하다. 하지만 이제는 무섭지 않다.
그런 심해의 공포를 이겨낼 방법을 깨달았기 때문.
=…네. 이제는 괜찮아요.=
「그래?」
대답을 들은 환연이 짓궂게 웃으며 발밑의 판을 빼버리자 셋은 사이좋게 물에 빠져버렸다.
첨벙이면서 물에 빠져든 이실리테는 환영이 얼마나 부자연스러우면서도 사실적이었는지 깨달았다.
물에 빠질 때의 감각이 환영에서 느꼈던 감각과 거의 일치했던 것.
이 때문에 처음 느꼈던 두려움과 공포가 떠올라 흠칫했지만 그건 아주 잠깐이었다.
평범하게 헤엄치며 물에 떠 있는 그녀의 모습에 환연이 헤에, 뜻 모를 감탄사를 흘린다.
「진짜 괜찮아졌나 보네.」
=응. 주인님의 따뜻한 체온을 생각하니까 다 괜찮아졌어.=
=그거 이슬이 아가씨다운 이야기인걸?=
「그러게. 누가 환인 빠순이 아니랄까봐.」
유르파와 환연의 놀림에도 이실리테는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환인을 돌아보며 예쁘게 미소 지었다.
두 김씨가 정신을 차린 다음날부터는 본격적인 수중 전투 훈련에 들어갔다.
가장 먼저 물살에 순응하는 법과 물살을 거스르는 법을 배웠고 물속에서 빠르게 움직이는 법과 헤엄치는 법, 수면 위치를 구분하는 법을 배웠으며 수중 호흡 비술이 없을 때 숨을 오래 참는 법과 물속으로 들어가기 전 폐와 혈액에 산소를 담는 법까지 배웠다.
수영복 같은 것은 입지 않고 평소 전투 의복 차림 그대로 안느와 아영의 수중 전투술을 배워나가니 가장 먼저 습득한 것은 당연 환인이었고 그다음이 백청룡의 용인체를 지닌 백려강, 그리고 이실리테였다.
김철수와 김영수는…….
=훈련하고 대련 때도 느꼈지만 쟤들은 몸치야.=
=뭐 일반인으로 보자면 그럭저럭 괜찮은데, 전투를 직업으로 삼기에는 좀 많이 부족하죠.=
유르파와 아영의 대화에 널브러져 죽을 듯이 헐떡이던 둘이 작게 항변한다.
“흐억, 헥. 그……래도 성술사인 아영이 누님보단, 우리가 낫죠!”
“맞아맞아. 후아아.”
=…….=
아영의 얼굴에 가소롭다는 표정이 지나가자 그걸 본 두 김씨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저 표정을 봤더니 뭔가, 실수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꺼냈던 말을 번복하지 않는다.
근접 직업자로 뛰어난 신체가 특징인 전사나 투사, 근접 전투에 특화된 단병기의 엽사들이 아니라면 자신도 그럭저럭 통하는 실력을 지녔다고 자신하는 중이다.
몰드레테에서부터 이실리테와 안느에게 단련 받은 것도 그런 자신감을 부채질하는 상황.
철영수가 수중 전투 훈련에 참여했기에 자홍접이 아니라 평범한 셔츠에 반바지를 입고 있던 아영이 손가락을 까닥까닥했다.
=야, 덤벼. 너희가 얼마나 우물 안 개구리인지 가르쳐줄게.=
“네? 에이~ 저희가 어떻게 형수님을 때려요.”
“그냥 아영 누님이 더 강한 거로 해요.”
김철수, 김영수가 피식 웃으며 손사래를 치자 백려강이 도축 당하기 직전의 닭을 보는 것처럼 둘을 향해 안쓰러운 시선을 보냈다.
=철수, 영수. 아영은 전직 카락스의 암살자 차기 두령이었어. 나도 근접 전투는 아영에게 한 입 거리도 안 되는걸?=
“……?”
“……??”
성술사인 아영이 누님이 용인인 백려강 누님보다 강하다고?
백려강 누님이 용인체여서 활뿐만 아니라 근거리 전투도 엄청나게 잘한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물론 안느 누님이나 이실리테 누님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자신들보다 1~2수는 더 강한 고수라는 걸 인정하는 거다.
이실리테와 안느가 바빠서 대련을 못 해주면 백려강이 대신 대련해준 덕분인데, 자신들이 동시에 덤벼도 줄창 얻어터지기만 하는 백려강 누님보다 단순한 성술사인 아영이 누님이 더 강하다고?
=……선 채로 죽을래, 앉은 채로 죽을래.=
살기 어린 아영의 미소에 김철수와 김영수는 억울함에 눈물을 찔끔 흘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그러면 그렇다고 진작에 말씀하셨어야죠!”
“맞아! 이때까지 평범한 7급 성술사처럼 행동하셨으면서!”
둘의 항의에 이마에 핏대를 세운 아영이 늑대처럼 포효하며 날아들었다.
=상대의 힘을 가늠하는 것도 실력이야, 이 새끼들아!!=
“으가아악!?”
“끄아아악!”
해변에서 제법 멀리 떨어진 바다에서 환인과 수중 전투 실습을 벌이던 이실리테와 안느는 저 멀리서 아영에게 걷어차이고 짓밟히고 던져져 백사장에 나뒹구는 둘을 보곤 눈을 끔뻑였다.
아영이한테 뭐라고 했길래 쟤가 저렇게 화가 났지?
아니, 그런 것보다. 안느는 자신처럼 수면에 떠서 숨을 고르는 이실리테에게 각오가 서린 얼굴로 말했다.
=이슬아, 오늘이 진짜 도령한테 한 방 먹일 마지막 기회야.=
=응.=
고작 사흘이 지났을 뿐인데 주인님의 수중 전투술은 안느와 아영을 훌쩍 뛰어넘었다.
전생에 해린족이 아니었을까 싶을 만큼 물의 흐름을 자유자재로 읽고 영혼술과 개량형 패널로 수류를 만들어 움직이는데 그 숙련도가 정말 감탄밖에 나오지 않는 수준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다중 검기를 발판 삼아 가속하면 그럭저럭 쫓아갈 수 있었는데 오늘은 그랬다간 개량형 방벽 패널로 반격이 들어온다.
내일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 그러니 주인님에게 공격을 한 번이라도 맞추려면 오늘이 마지노선.
개량형 패널을 발판 삼아 수면 위에 선 환인이 숙덕거리는 두 여자에게 물었다.
“준비됐나.”
=응. 오늘은 반드시 한 대 때리고 말 거니까! 각오해!=
주먹을 불끈 쥐며 의욕을 불태우는 여자친구들의 모습에 환인이 작게 웃으며 그 의욕에 동조해주었다.
“좋다. 오늘 훈련에서 한 대라도 날 때리면 오늘 밤 해달라는 거 다 해주지.”
해달라는 거.
전부……?
=…….=
=…….=
두 여자의 눈에서 불길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바다에서 불이 붙어보았자 꺼지기만 할 뿐.
1시간 뒤, 이실리테와 안느는 기진맥진한 채 환인에게 팔이 잡혀 백사장으로 질질 끌려가며 속으로 후회했다.
그리모암의 강력 효과는 끄고 붙었어야 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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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환연: 넌 수중 전투 훈련 안 해?
노른: 난 물 싫어..... 그러는 넌 왜 안해?
환연: 너 바보야? 내가 누구랑 합체했는지 잊었어?
노른: ......
[작품 설정]
유르파의 환상 비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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