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궁기담-770화 (770/813)

770 지오드 지협

황색의 빛에 적중당하기 전, 환인은 수 겹의 방어를 지나치듯 통과하고 차원벽까지 말 그대로 투과하는 모습에 몇 가지 가설과 이유, 증거를 즉시 떠올렸다.

하지만 확신을 하기에는 40% 부족한 상황.

황색 빛에 적중당하기 직전 위상역쇄류를 펼쳤으나 위상역쇄류마저도 뚫리는 장면에 40% 중 25%가 충족되어 그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리고 시야가 하얗게 물드는 동시에 몸을 휘감는 기이하면서도 익숙한 느낌.

‘이건?’

긴장하면서 광명창의 코어를 쥐는 동시에 터덩, 철퍼덕— 풀썩- 무언가 무거운게 땅에 안착하는 소리와 사람이 쓰러지는 소리가 그의 귀를 찔렀다.

환인은 빛에 시력이 잠시 봉쇄된 상태에서 노른이 주저앉는 느낌에 훌쩍 뛰어올라 개량형 방벽 패널을 소환해 받치고 선다.

기감으로 주변을 빠르게 훑었지만 용암이라던가 유사, 늪 같은 위험 지역은 아니다.

직후 빠르게 정상이 된 시력으로 환인은 여자친구들을 먼저 살폈다.

마차 지붕과 마부석 여기저기에 기절한 것처럼 쓰러진 여자친구들, 그리고 고삐에 메인 채 기절한 것처럼 축 늘어진 쿠에들과…… 축축하고 조금 어두컴컴한 지하공동.

그녀들이 기절한 이유는 지금 벌어진 현상이 평범한 공간 이동이 아니라 차원 이동처럼 신체가 한 번 흩어졌다가 재결합되는 방식이어서 그럴 것이다.

‘이런 걸 펼칠 수 있는 이유는 그 황색 구체도 신력으로 형성된 거여서 그렇겠지.’

신력을 막을 수 있는 것은 같은 신력뿐이란 걸 알아차린 환인이 몇 가지 가설을 떠올리며 신식 영혼의 눈으로 거대한 공동을 둘러본다.

적은…… 없군. 함정도 안 보이고 위상력이 비정상적으로 맺힌 곳도 없다.

무엇보다, 은은하게 느껴지는 신력의 흔적들.

고개를 든 환인의 시야에 높이가 400m 정도 되는 듯한 천장이 들어왔다.

저렇게 높은 공동의 천장이 보일 정도라면 어딘가 빛이 흘러들어온다는 이야기. 하지만 주위를 둘러봐도 광원은 보이지 않는다.

똑—…… 또독—…….

공동의 천장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 외에는 다른 소리도 없고 인기척도 없다.

=으, 음…….=

「아이고오…….」

그러는 동안 여자들이 차례차례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이모렐과 노른이 부스스 일어나며 머리가 빙글빙글 돈다는 듯이 몸을 흔들거린다.

거의 동시에 백려강과 이실리테, 안느도 정신을 차리고는 골치가 아픈 것처럼 이마를 감싸 쥔 채 한숨을 내쉬었다.

=아…… 방금, 그건 뭐였지…….=

=끄으응. 꼭 차원 이동한 것처럼 정신이 없네.=

강화 패널을 밟고 서서 주위를 경계하고 있자니 이실리테와 안느가 몸을 일으켰다가 이내 주위를 확인하곤 얼굴을 굳혔다.

=뭐야. 여긴 어디지? 아까 그 빛은 공간 전이 함정이었나?=

=……안느, 이거.=

=뭐야. 금화가 왜 여기에…… 어라 이건?=

이실리테가 약간 고인 물속에 떨어진 금화 한 닢을 집어 들자 안느의 표정이 해괴해진다.

그녀의 손에 들린 금화는 메리아놀 내에서만 유통되는 국가 지정 화폐였던 것.

이게 여기 있다는 말은, 땅의 사도가 재물 수레를 불러들이는 거에 자신들이 휩쓸렸단 이야기……?

“이실리테, 안느. 아직 일어나지 못한 일행을 깨워라.”

=어? 으응. 야, 철영수. 일어나.=

=아영. 아영, 정신 차려.=

그녀들이 일행을 깨우기 시작하자 이모렐도 쿠에들에게 다가가 쓰다듬고 뺨을 두드려 정신을 차릴 수 있도록 돕는다.

환인도 기절한 유르파를 안아 흔들어 깨우는 한편 그녀의 가슴골 사이에 파묻힌 채 기절해있는 환연을 뽑아냈다.

“환연.”

「윽, 아이고 죽겠다. 머리야…….」

“환연. 여기가 어딘지 정령으로 확인할 수 있겠나.”

「응……? 여긴 또 어디지……. 잠깐 기다려.」

정신을 집중해 정령을 익숙하게 부리는 걸 보면 이곳이 다른 차원이라거나 한 것은 아닌듯하다.

이실리테가 발견한 것을 보면 지오드와 관련된 장소인 것은 맞는 듯한데.

환연이 주변을 탐색하는 동안 환인에게 다가간 여자들은 그가 멀쩡하다는 걸 확인하고 질문했다.

=도령. 황색 빛 그거, 술법 비술 성술에 영혼술하고 철수의 차원벽까지 전부 뚫고 들어오던데 뭔지 짐작 가는 거 있어?=

마지막에는 유르파와 아영을 보며 물었지만, 둘도 짐작 가는 게 없긴 마찬가지였다.

거의 모든 부류의 기술과 능력으로 펼친, 니오네브레스의 방어 기술을 총망라한 것이나 다름없었는데 그게 전부 꿰뚫리다니.

“신력이어서 그럴 거다.”

=신력……?=

=아, 신력.=

신수, 그것도 용龍급은 되어야 쓸 수 있는 힘.

아득히 오랜 시간 동안 선력을 쌓아 높은 급에 이른 신수들이 쓰는 힘, 혹은 아신에 다다른 사람이 쓰는 힘이란 이야기에 여자들이 수긍한다.

유르파가 호기심이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자기, 그러면 신력은 같은 신력으로 밖에 막지 못한다는 이야기니?=

“그런 것 같습니다. 게다가 황색 구체가 쏜 빛으로 일어난 전이는 평범한 공간 이동이 아니라 차원 이동과 흡사하더군요.”

=아, 그래서 골치가 지끈거렸구나. 하긴.=

유르파는 죽을 듯이 골골거리는 김철수와 김영수를 힐끔 돌아보곤 입을 다물었다.

심핵력을 에너지원으로 일시적이고 제한과 제약이 있긴 해도 차원 이동을 할 수 있다. 그런 심핵력이 신력으로 변화했으니 신력도 차원 이동을 일으킬 수 있는게 당연하지.

백려강은 신비궁을 쥐고 공동을 한차례 둘러보며 말했다.

=그렇다는 것은, 땅의 신수 지오드님이 저희를 여기로 부르신 걸까요?=

=…….=

=…….=

여자들은 다시 조금 어두컴컴한 대공동을 살폈다.

거무튀튀한 벽 곳곳에 조금씩 빛나는 광물이 눈에 띈다. 저렇게 눈에 확 띌 정도의 광물 원석이라면 못해도 주먹만 한 크기일 텐데 그런 게 거의 대공동 전체를 뒤덮은 상태.

확실히 땅의 신수가 살만한 곳이긴 하지만…….

문득 어느 돌멩이에 시선이 간 이실리테는 허리를 굽혀 돌멩이를 주워들었다가 깜짝 놀랐다.

=유리 언니. 이거 사파이어 원석 아니에요?=

=응? ……진짜네? 이거 어디서 났니?=

=발치에 굴러다니던데요…….=

이실리테의 이야기에 발밑을 본 여자들은 곧 이것저것 줍기 시작한다.

그리고 모인 것은 다이아몬드, 철, 구리, 은, 오팔, 자수정, 에메랄드 등 엄지손가락 한마디에서부터 큰 건 주먹만 한 온갖 광석들이었다.

개중에는 위상력에 감응하는 희귀 귀금속도 있었다.

환인은 여자친구들이 원광을 들고 유르파를 쳐다보는 모습에 나지막이 말했다.

“다 내려놓고 아무것도 챙기지 마라.”

아주 잠깐 욕심에 물들었던 여자들이었지만, 그의 이야기에 퍼뜩 정신을 차리고 모두 땅에 내려놓는다.

지오드 협곡을 지나가다 사라졌다는 40%. 그들도 이렇게 들어왔다가 귀중한 광물에 흘려서 목숨을 잃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김철수와 김영수도 주먹만 한 금광석에 헤벌쭉하다가 슬그머니 내려고 아무것도 안 했다는 것처럼 딴청을 피운다.

그때 정령으로 탐색을 끝마친 환연이 작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환인. 지금 여긴 지오드 협곡에서 지하 1km 정도 위치야. 저기 뒤쪽이랑 저 앞에 길이 있는데 뒤쪽은 막다른 길이고 저 앞쪽은…… 정령들이 안 가려고 해서 너머에 뭐가 있는지 모르겠어.」

“있다면 신수 지오드뿐이겠지. 유르파, 공간 도약으로 여기서 빠져나갈 수 있겠습니까.”

=으음. 안될 것 같아. 위상력에 간섭하는 에너지 때문에…… 신력이 아닐까 싶은데 그것 때문에 위상력의 수치 변동이 안정권을 벗어나 있어. 변동에 예민한 공간 도약 술법은 위험해.=

“김영수. 너는 어떻지.”

여기서 공동 천장까지 대략 400m. 지상까지는 1km라고 했으니 사이에 600m 정도 되는 지층이 가로막고 있다.

지난 훈련 동안 공간 지각 범위가 늘어난 김영수라면 한 번에 빠져나갈 수 있을 터. 할 수 있다면 그의 공간 도약으로 탈출하면 된다.

눈을 감고 배운 대로 정신을 집중하던 김영수는 곤란한 얼굴로 뒤통수를 긁적였다.

“공간 이동은 할 수 있는데 공간 지각 범위가 팍 깎였어요. 200m도 못 건너갈 거 같은데요.”

「참고로 상급 땅 정령도 여기서 힘을 안 쓰려해서 천장을 뚫거나 계단을 만들어 지상으로 올라가는 일은 못 해.」

김철수도 차원벽을 펼칠 수는 있는데 제어가 평소보다 더 어려워서 땅속에 차원벽을 형성하기 힘들다고 한다.

“…….”

지오드와 조우할 가능성은 생각해두었었다. 조우 방식에 따라 전투가 발생할지도 모른다고 염두에 두기도 했다.

그 바람에 신력을 자각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전투의 가능성은 가장 낮았다. 재물만 받고 보내준다는 것은 비교적 온화하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거기다 상대는 신수.

‘무단 침입에 분노하지 않기만을 바랄 수 밖에.’

아니라면 전투뿐인데……. 환인은 나름의 각오와 긴장감을 다지며 선두에서 환연이 가리켰던 전방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천장까지 높이만 400m에 달하는 대공동은 폭도 그 정도 수준이었기에 환연이 가리킨 통로 쪽에 도착하는 것은 금방이었다.

=…저기에 뭐가 있길래 저렇게 환하게 빛나는 걸까요……?=

그리고 드러난 광경에 백려강이 멍하니 중얼거린다.

코너처럼 형성된 벽을 돌아가자 표현 그대로 거대한 터널의 형상이 나타났고, 대공동의 광원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이해가 가는 황금색 광량이 통로의 저 끝을 가득 채우고 있었던 것이다.

동굴 안에서 바깥을 볼 때처럼 눈부신 자연광이 아니다. 눈에 아무런 부담을 주지 않는 부드러운 금빛.

그러면서도 건너편을 보여주지 않겠다는 것처럼 짙기 그지없는 광량.

그 빛에 감탄하는 백려강을 향해 아영이 짓궂게 핀잔을 준다.

=벨 너도 참 어지간하네. 저런 신성한 금빛을 내뿜는 존재라면 당연히 신수일 거고 여긴 지오드 협곡 지하잖아. 지오드 신수님인게 당연하지.=

=앗, 그렇겠네.=

신수가 저 앞에 있다는 사실이 일행에게 긴장감을 주입한다.

그런 긴장감 속에서 비행기 활주로로 써도 남을 것 같은 통로를 이동하고 있으니 옆으로 집채만한 바위가 지나갔다.

동굴 전체를 보자면 자갈이나 다를 바 없는 크기지만 실제 크기는 그야말로 집채만 한 수준.

김철수가 대자연의 신비를 목격한 것처럼 눈을 크게 뜬 채 중얼거렸다.

“진짜 개 크다……. 정신 나갈 것 같네.”

“점심 나가서 먹는다고?”

근본없는 개소리에 퍽, 김영수를 한 번 걷어찬 김철수는 침을 꼴깍 삼키며 다시 통로 전체를 눈에 담았다.

천장에서 뻗어 나온 거대한 나무줄기, 그걸 타고 흘러내리는 물방울이 마차만 한 바위 근처에 떨어지며 웅덩이를 만든다.

크고 작은 나무가 자라고 있는데 멀리서 봤을 땐 그냥 평범한 갈대 같은 풀이라 생각했는데 가까이서 보니 이층집 크기는 되는 나무다.

웅덩이도 실제는 좀 큰 연못 수준.

판타지 영화나 만화, 소설, 애니를 좋아하는 김철수에게 이런 광경은 말 그대로 꿈이자 낭만 그 자체.

저 황금빛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생각하면 심장이 두근거릴 만큼 설렌다.

그런 자신만큼은 아니지만, 누님들도 다들 분위기에 압도당한 것처럼 입을 다물고 침을 꼴깍 삼키는 중인데 환인 형님은…….

‘저렇게 침착해야 누님 같은 분들을 포용하시는 거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신비한 장소를 걸어가는데, 그냥 눈으로 보면 몇백 미터 안될 것 같은 통로지만 직접 움직여보니 보기보다 굉장히 멀다.

거의 10km를 움직이고나서야 황금빛에 다다를 수 있었는데 김철수는 점점 강해지는 정체불명의 존재감에 다른 생각이 들지 않을 지경이었고 여자들도 말문을 닫았다.

이 너머에 땅의 신수가 있겠지.

그 신수의 성격은 어떨까. 아드네빌라는 난폭한 면이 없지 않아서 광룡, 마룡이란 호칭까지 얻을 정도인데.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황금빛에 들어선 일행은 빛 속을 얼마간 걷다가 눈앞이 갑자기 확 트이며 상상을 초월하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어마어마한, 정말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여자다.

키가 30m에 달하던 거인족 주술사보다도 몇십 배나 더 큰, 찬란한 황금의 빛을 몸에 두른 채 좀 전의 대공동만큼이나 거대한 공동의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있는 여성.

황금처럼 빛나는 머리카락에 저건 뿔……? 서클릿……? 아무튼 대칭이나 균형 같은 것은 하나도 신경 쓰지 않은 듯한 쓸 것이 여성의 품위를 더욱 올려주는 중이다.

하얀 드레스 아래로 다리가 뻗어나 와 있지만, 무릎 밑으로는 땅에 파묻혀있는데, 그런 그녀의 주변으로 산만한 보물의 산이 그녀의 신비함을 더욱 드높인다.

무릎 위에 다소곳이 손을 포갠 채 보물의 산에 앉아 눈을 감고 있던 여성은 일행의 등장에 눈을 조용히 떴다.

황수정처럼 빛나는 눈동자가 살짝 내려오며 감정을 담지 않고 일행을 주시한다.

《…….》

그 시선에 환인을 제외한 일행은 숨도 멈추고 움츠러들었다.

아무리 봐도 아드네빌라보다, 대성녀보다 더 윗줄인듯한 존재감.

만약 환인의 아신위에 어느 정도 적응하지 않았다면 대번에 정신을 잃고 쓰러졌겠지.

환인은 잠시 여성과 시선을 나누다 위력과 영향력은 최대한 줄인 신언으로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이 땅의 주인이신 지오드 님이십니까.』

《……그렇습니다. 저의 거처까지 찾아온 당신은 누구십니까.》

목소리에 적의는 없다. 하지만 환인은 긴장을 풀지 않고 차분히 대답했다.

『길을 지나다 황색 구체의 빛에 끌려온 영도의 영혼사, 환인이라고 합니다. 이곳을 나갈 방도를 찾지 못하여 부득이 당신의 명상을 방해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이야기에 지오드는 환인을 유심히 바라보다 살짝 상체를 그쪽으로 숙였다.

얼핏 보면 루비 같기도 한 짙은 황수정 색의 눈동자가 흥미를 띈 채 반짝이며 환인을 담는다.

《당신에게서 저를 넘어서는 신력과 신위가 느껴집니다. 당신이라면 이곳을 나가시는 것은 어렵지 않으실 터인데 어찌하여 저에게 물으시나요.》

『나가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저는 아직 미숙하여 반드시 주인에게 폐를 끼치게 될 것 같아 그렇습니다.』

《확실히…… 아신위를 목전에 둔 사람을 보는 것은 참 오랜만이군요.》

다시 등을 대공동의 벽에 기댄 지오드는 눈을 감고 작은 미소를 얼굴에 띄웠다.

《당신은 어찌하여 심산유곡에서 심신을 갈고닦지 않으십니까. 그러시다가 주인께서 관심을 거두어가실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자애신께서 부디 관심을 거두어주시길 바랄 정도입니다.』

《……훗. 후후후. 후후후후후.》

후후 웃을 때마다 3층 저택 수준의 훌륭한 유방이 출렁 출렁이며 여자들의 시선까지 빼앗는다.

잠시간 웃음을 흘리던 지오드가 살짝 기분 좋은 기색으로 작은 입술을 열었다.

《세상 모든 생명이 주인님의 관심을 갈구하거늘, 당신은 참으로 별난 사람이군요.》

『차원 방랑자여서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환인의 대답에 지오드는 다시 눈을 뜨고 환인을 바라본다. 그 눈에 환인의 황금빛과는 다른 느낌의 빛이 일렁이더니 놀람이 묻어났다.

《………정말 놀랐습니다. 운명이 그 정도로 꼬여도 아신의 위에 오를 수 있는 거군요.》

『…….』

《신위에 이른 차원 방랑자라니…… 처음 보았습니다.》

지오드는 그 후 관심이 식지 않는 듯한 모습으로 환인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몇 가지 던졌다.

개인사에 관한 질문은 없고 니오네브레스에 넘어오게 된 계기, 니오네브레스에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 어떠한 발자취를 남겼는지.

환인은 슬쩍슬쩍 지오드의 레어 주변을 둘러보며 담담하니 짧게 요약해서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지오드는 좋은 청자의 자세로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했다.

《그래서 당신은 아드네빌라와 패시지를 찾아가는 중이었군요.》

『그렇습니다. 혹시, 지오드 님은 아드네빌라의 위치를 알고 계십니까? 신수 분들은 다른 신수의 기척을 잘 느낀다고 하시던데 말입니다.』

《알고야 있지요. 위에서 저리도 탁한 비를 뿌리고 있는데, 모를 수가 없습니다.》

탁한 비라……. 영성이 꺾여 신수에서 격하 당할 수 있는 상황이란 건가.

『제가 들려드린 이야기가 마음에 드셨다면 우리 일행을 지상으로 돌려보내 주시고, 아드네빌라의 위치도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환인의 부탁에 지오드는 살짝 자세를 고쳐 앉으며 물었다.

《아드네빌라를 찾아 어쩌실 것인지 이유를 물어보아도 될까요.》

『신세 진 것도 있고 그녀에게 조금이지만 마음의 부채도 있어 그녀를 구해보려 합니다.』

《…….》

지오드는 다시 눈을 감고 침묵을 유지하다가 손을 들어 가슴골에 집어넣는다.

잠시 후 빠져나온 그녀의 손가락 끝에는 동그란 토파즈 브로치 같은 것이 붙어있었다.

환인의 키를 훌쩍 뛰어넘는 그것은 지오드의 손끝에서 떨어져나와 둥실하고 환인을 향하는데, 그와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크기가 줄어들더니 종래에는 커프스만큼이나 작아졌다.

《아드네빌라는 메리아놀의 주도에서 동쪽 해상 200km에 있습니다. 그것을 가져가시면 아드네빌라가 정신을 차리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것뿐만이 아닌 것 같습니다만.』

《후후…. 도움을 드리는데 자그마한 대가라고 여겨준다면 고맙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신수들의 관음 성향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환인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곤 천릉의 소매 단추를 떼낸 뒤 지오드가 준 토파즈 버튼을 달았다.

《그러면, 당신이 가는 길에 대지의 주인께서 가호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잘 가십시오.》

아주 담백하게 작별을 고하는 지오드. 그녀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주변 풍경이 일그러지더니 모자이크처럼 변해간다.

그런 모자이크화가 정점에 달했을 때 다시 모자이크화가 다시 풀리더니 풍경이 제 모습을 되찾았을 때 일행은 도르와인 섬과 가까운 지오드 지협에 서 있었다.

“……흐억?”

“헥.”

=오, 나왔다.=

후아아, 휴우……. 후에엑.

각자의 한숨 소리가 이리저리 터져 나오더니 안느가 손수건으로 이마에 흐른 땀을 닦으며 살았다는 듯이 한숨을 쉬었다.

=와, 갈무리하지 않은 진짜 신수의 기운은 이 정도였구나. 아드네빌라 님은 우릴 봐주셨던 건가…….=

=안느 언니님, 지오드 님 주변에 해골이랑 뼈다귀 보셨어요…?=

=어. 나도 봤어. 지오드 님이 죽인 건가 싶어서 엄청나게 긴장하고 있었는데.=

=그 사람들이 실종됐다는 40%겠죠? 지오드 님 첫인상은 엄청 온화한 대지의 어머니 같은 느낌인데 무섭네요.=

“지오드가 그들을 죽인게 아니라 그들은 자살한 거겠지.”

환인의 이야기에 각자 식은땀이며 진땀을 닦던 일행이 그를 돌아본다.

=주인님. 그건 무슨 뜻인가요?=

“아드네빌라 정도 되는 신수의 주변에는 위광이 전개되어있다. 일반인은 그녀와 마주하는 것만으로 온몸의 구멍이란 구멍에서 피를 뿜으며 죽게 된다. 너희들이라서 식은땀과 진땀 조금 흘리는 정도로 끝난 거지.”

=그 사람들은 그런줄도 모르고 지오드 님에게 다가갔다가 죽었다는 거네…….=

“내가 아신위의 휘광을 억누르지 않고 전개하면 비슷한 일이 벌어지겠지.”

여자들은 그의 이야기에 침을 꼴깍 삼켰다.

신수나 아신위의 휘광으로도 그런 일이 벌어지는데 만약 지상에 신님이 강림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생각만 해도 두려워서 몸이 떨린다.

안느는 푸르르, 한차례 몸을 떨고는 노른의 등에 탄 그에게 말했다.

=도령. 일단 출발할게.=

“그래.”

땀으로 목욕한 듯한 김철수와 김영수가 후다닥 마차 지붕에 오르고, 다리가 후들거려 도저히 누굴 태울 상태가 아닌 실루의 모습에 이실리테도 아영을 밀어내고 마부석에 자리 잡는다.

환인이 다른 곳을 보는 사이 손수건으로 가슴골에 찬 땀을 닦아낸 이실리테가 환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중얼거렸다.

=아드네빌라 님의 위치를 알게 됐지만, 육지에서 200km 떨어진 해상이라니…….=

=으음. 조금 안 좋은 예감이 드는걸.=

=예? 무슨 예감인데요?=

마부석 쪽창을 열고 얼굴을 내민 아영을 힐끔 본 안느는 뺨을 긁적이면서 대답했다.

=도령이 아니라 우리 쪽 이야긴데…….=

그가 아드네빌라를 찾으러 가면 결명자가 그 틈에 자신들을 노릴 것 같다는 예감.

저놈들이 바보도 아니고 도령에게 자신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다 알고 있을 것이다.

=멍청한 놈들은 우리 중 하나라도 잡으면 도령을 협박해서 승기를 잡을 거라고 생각할 거 같단 말이야. 실상은 지옥으로 가는 특급 열차인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때를 노릴 거 같아.=

=그런 거면 우리도 도령 따라가면 되는 거잖아?=

아영을 밀어내고 자릴 바꾼 유르파가 대꾸하자 마차를 출발시킨 이실리테가 조금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본다.

=배를 띄워서요?=

=응. 괜찮은 배 한 척 구해서 이것저것 방호 술법이랑 부여 비술을 걸어놓으면 돼. 환연이 있으니 바닷속 습격도 문제없고 이슬이 아가씨 다중 검기도 각종 공기 저항에 큰 내성을 지녔으니까 수중 전투도…….=

말하던 유르파는 수중 전투라는 단어에 이실리테의 안색이 핼쑥해지는 걸 보고 입을 다물었다.

그러고 보니 이슬이 아가씨는 바다에 약했었지……?

뜻밖의 귀여운 모습에 피식 웃은 유르파는 그녀의 수중 공포증부터 해결해야겠다며 속으로 적응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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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마망 주머니 헤으응

[작품 설정]

지오드 지협 지하

마망

헤으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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