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궁기담-768화 (768/813)

768 지오드 지협으로 가는 길

동남아시아 아열대쯤의 기후인 메리아놀 본섬은 크게 네 개로 나눈다.

가장 서쪽이자 남부인 메이신 섬.

메이신과 이어지는 본섬 네 개 중 가장 작은 바라스티어 섬.

네 개 섬 중 가장 크고 평야와 밀림이 섬을 세로로 반반씩 나누는 도르와인 섬.

남쪽에 주도 패시지가 있고 대호수가 곳곳에 박혀있는 데다 밀림이 섬의 2/3를 뒤덮은 글론드 섬.

사실 전부 연결되어있어 섬이라 하기에는 안 맞지만, 연결부위가 전부 지협이라 그냥 구분 짓기 편하게 섬이라 칭한다고.

본섬 중 가장 살기 좋은 곳을 꼽으라면 역시 메이신 섬이다.

밀림이라 하기 부족한 숲이 엘위드리스 아래쪽에 조금 위치해있을 뿐, 섬 대부분이 평야여서 농업이 유리하며 유일하다 할 수 있는 수림에서는 희귀하고 귀중한 약초, 약재가 다수 산출된다.

기후도 적도에서 좀 내려온 위치기에 아열대에서 살짝 빗겨난 느낌이다.

그런 메이신 섬의 동쪽에는 메이신 섬과 도르와인 섬을 잇는 바라스티어 섬이 있는데 섬 대부분이 밀림으로 뒤덮여있는데다 도시가 없고 마을, 촌락이 많다.

그리고 바라스티어 섬에서 도르와인 섬으로 넘어가는 지협에 그것이 있다.

메리아놀에 유일하게 위치가 알려진 땅의 신수, 지오드.

환인 일행은 지오드가 있다는 지협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하여 오늘, 사이네 양은 트라프로넨 영성과 함께 영도로 출발하였소.]

“트라프로넨 영성께서 직접 오셨었습니까?”

[영혼 기사들을 이끌고 공간이동술법진에서 나타나셨을 때는 본인도 놀랐소. 영도의 영성은 영도 밖으로 나서지 않는다고 들었으니까.]

영도에 거인들과 기플라족이 합류했고 환인의 육합등약을 받은 처녀들도 많아져 전력이 늘어났기 때문인가.

거인은 말 그대로 거대한 힘을 지녔고 기플라족의 손재주와 솜씨는 장인 종족이라 불리는 프라우드족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태생이 생산 종족이라 제작은 물론 생산 쪽에서도 뛰어난 자질이 있다.

그런 거인이 수십 명에 기플라족도 200여 명인데다 거대한 8급 진수의 부산물로 무기와 방어구까지 갖췄으니…….

잠깐 생각하던 환인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사태가 마무리 지어지고 이엘카타가 돌아가는 그 날까지 집사장의 의견에 잘 따르시기를 바랍니다.”

[성제의 뜻을 충실히 이행하겠소. 본인은 나가족의 공습을 저지해야 하니 이만.]

통신 연결을 끊은 환인은 비치 체어 같은 의자의 등받이에 기대며 삽시간에 어두워진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바다가 붙어있지만 항로 무역은 하지 않는 엘위드리스. 그런 엘위드리스의 가장 큰 적은 메이신 북부 해안에 광범위한 구역을 차지한 나가족이다.

엘위드리스의 미궁이 주변의 땅을 비옥하게 만드는데 그게 바다에도 적용이 되어 나가족이 매년, 아니 매달 침략해오는 게 행사라고.

침략도 소규모가 아니라서 한 번 들이닥치면 수백 마리씩 찾아와 행패를 부린다.

내전 중에 프슈드 백작이 죽었다면 엘위드리스는 나가족을 막지 못하고 그대로 무너졌겠지.

통신 수정구를 아스펜드에 수납한 환인은 통신하느라 식어버린 커피를 들어 특유의 향과 맛을 느끼며 프슈드 백작을 생각했다.

‘신비궁을 넘겼지만 순간 전투력은 여전한가 보군.’

신비궁神秘弓은 당연히 백려강의 것이 되었다.

벼락활 유리텔의 최대 단점은 제 위력을 내려 하면 우렛소리가 따라붙는단 점이다.

귀청을 울리는 날카로운 소리는 어그로를 끌기 좋다. 조용한 전투와 기습을 점한 우위는 당연히 물 건너가고 연사라도 할라치면 전투의 소음이 파묻힐 정도.

위력을 줄이면 천둥음이 나지 않지만 그리하면 신체 강화이 아닌 3급 이형종도 단번에 죽이지 못한다.

그런 벼락활을 내려놓고 신비궁을 들자 백려강의 전투 수행 능력이 단숨에 세 배 가까이 뛰어올랐다.

그 증거로 메이신 섬을 나와 바라스티어 섬에 들어온 뒤 벌어진 전투는 백려강이 모두 해결했다.

환연이 적의 출현을 알리면 신비궁의 시야 확대 기능으로 적을 포착, 수 킬로미터 밖에서 저격해 모조리 침묵시켜버리는 것.

물론 부작용도 하나 있었다.

=벨, 벨벨벨. 위상석 가진 건 가까이 불러들여서 잡으면 안 돼? 뛰어가서 갈무리하고 돌아오는 거 너무 귀찮아!=

=오라버니, 그렇게 해도 괜찮을까요?=

“그래.”

몇백 미터도 아니고 수 킬로미터를 달려가 위상석을 품고 있는 괴물이나 마수, 마물의 배를 가르고 다시 수 킬로미터를 달려와야 했던 것이 부작용이라면 부작용이다.

……아무튼, 단점이라곤 없는 신비궁을 백려강이 쓰기 시작하며 그녀가 그전에 쓰던 벼락활은 자연스럽게 이모렐에게 넘어갔다.

이모렐도 정찰대 엽사 직업자 출신. 쓸 무기가 없어 이실리테가 사용하던 레드릭 얼터를 넘겨받았지만 그녀는 대검보다 활이 더 적성에 맞았다.

그런 벼락활을 이모렐이 쓰게 되자 효과는 백려강이 쓸 때보다 좋았다.

백려강이 쓸 땐 단점밖에 되지 않던 소음이 비행 능력을 기본으로 갖춘 이모렐이 사용하자 오히려 어그로 분산 기능이 되었던 거다.

어그로가 쏠려도 위험한 건 없었다. 이모렐의 신체는 중핵용 천인체이다보니 어지간한 공격은 씹어먹을 정도로 튼튼했기 때문.

그리고 이모렐이 쓰던 레드릭 얼터는 다시 이실리테에게 돌아갔다.

장비의 재분배가 이루어지자 모두가 만족했다.

새 활을 얻게 된 백려강과 이모렐은 무기를 무척 소중하게 여기며 손질했고 이실리테도 자신에게 다시 돌아온 레드릭 얼터를 재조정해서 사용하게 되었다.

슁— 우우웅— 쉭!

환인은 날카로운 파공음을 내며 시뻘건 기사검을 휘두르는 이실리테에게 눈길을 주었다.

얼마간 검을 휘둘러보던 이실리테가 만족한 표정으로 검을 내리자 멀찍이서 시연을 구경하던 유르파가 묻는다.

=어떠니?=

=무척 마음에 들어요. 크기만 줄이고 무게는 그대로 놔둔 게 위력을 더 올려주는 것 같아서 흡족해요.=

2.3m짜리 넓적한 모양의 중철 대검으로 시작한 그녀의 무기는 해골 외눈 거인 중핵을 해치우며 레드릭이라는 마도기로 변화했다.

이후 헬루멘에서 프라우드족 장인의 손길에 검극으로 갈수록 폭이 좁아지는 형태의 레드릭 얼터가 되었다.

그리고 현재, 레드릭 얼터는 이실리테가 쓰던 길이 1.7m의 기사검 사이즈로 크기가 줄었다.

유르파가 무기에 축소화 비술을 임시로 걸어준 것이다.

=잘됐네. 그럼 그 크기로 고정할게?=

=영구 고정이죠? 레드릭 얼터에 문제는 없을까요?=

=걸려있는 두 가지 기능이 단순한 거라서 축소화랑 마찰을 빚지 않는 것도 있고, 질 좋은 통짜 철을 두드려서 만든 대검이라 부여 난이도는 매우 쉬움이야……. 자, 됐어.=

검에다 시약 가루를 뿌리며 몇 마디의 주문을 외우더니 끝났다고 말하는 유르파.

=벌써요?=

=살아있는 생물도 아니고 대상 물품도 튼튼하고, 이미 분석까지 마쳤으니 오래 걸릴 이유가 없어.=

놀라서 자그맣게 눈을 몇 번 깜빡인 이실리테는 레드릭 얼터를 들어 검에 위상력을 살짝 흘려 넣어보았다.

검날이 붉게 달아오르며 옅은 아지랑이가 검날을 휘감는다.

위상력 주입이 매끄럽다. 기꺼워진 이실리테는 본격적으로 레드릭 얼터에 위상력을 한껏 밀어넣기 시작했다.

그러자 레드릭 얼터에 부여된 숨겨진 기능, 화염이 확 일어나며 기사검 사이즈의 검날을 감은 채 뜨겁게 타오른다.

그 상태로 검을 휘두르기 시작하니 어두컴컴해진 사위에 시뻘건 불길이 화룡처럼 일렁이며 주위를 밝혀나갔다.

후우웅— 화아아악—! 후와아악—!!

여신처럼 아름다운 호박색 머리카락의 미녀가 불타오르는 기사검을 들고 추는 화염의 검무.

삐~ 삐삣~! 삐잇!

종족적으로 불과 친한데다 이제 노른의 아성체 때와 체급이 비슷해진 실루가 그 광경에 홀려서는 날개를 파닥이며 좋아하니 실루를 따라 다가왔던 안느가 아쉽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에잉. 실루는 이슬이를 주인으로 점찍겠네.=

=안느 언니님. 그럼 젤프리는 언니님이 타시는 게 어떠세요? 언니는 키가 크니까 큰 젤프리가 더 타기 편하실 텐데.=

=흐음~? 그러면 쿠핀이 삐지지 않으려나?=

=이미 공동체잖아요. 밀짚 쿠에들은 주인 의식이 크게 강하지 않아서 상관 안 할 거예요. 토라져도 노른이 한마디 해주면 수긍할 거고요.=

아영의 이야기에 안느는 =그런가……?= 하다가 아영과 함께 쿠에들을 매어놓은 임시 흙 축사로 걸어갔다.

「야~ 철영수. 집 지어놨어.」

“오, 감사함다!”

“감사쓰!”

이모렐이 설치한 방랑자의 안식처에 마차의 짐을 옮기던 김철수와 김영수는 환연의 부름에 얼른 나머지 짐도 옮겨놓고 자신들의 짐가방을 챙겨 흙집……이라고 해도 황토방처럼 깔끔한 건축물로 넘어갔다.

남자는 환인뿐이던 일행에 합류한 두 명은 환인 일행의 이동과 노숙 방식에 처음에는 굉장히 놀라고 감탄했지만, 감탄은 잠시 뿐이었다.

거실, 주방, 화장실, 목욕탕과 방 3개의 30~40평 남짓한 방랑자의 안식처는 현재 일행에 둘이 추가되어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다.

하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일행의 여자는 전원 환인의 하렘 구성원.

여자들보다 김철수와 김영수가 안식처에서 지내는 것에 더 큰 난색을 드러냈다.

실수든 뭐든 형님으로 모시는 환인의 여자들, 그러니까 형수님들의 피부나 좀 그렇고 그런 소리를 조금이라도 접하고 싶지 않다는 게, 아니 싫다는 게 둘의 솔직한 마음이었던 것이다.

‘차라리 밖에서 이슬 맞으면서 자고 말지.’

‘실수로라도 누님들의 가벼운 옷차림을 봤다간…… 죽을지도 몰라.’

김철수와 김영수는 솔직한 마음을 드러내며 자신들은 마차 지붕에서라도 자겠다고 했는데 그건 환연이 나서는 것으로 간단히 해결했다.

중급 땅 정령을 부려서 쿠에 축사 옆에 사각형 흙집을 뚝딱하고 만들어준 것.

방 두 개, 화장실 두 개, 목욕탕 하나인 15평 남짓한 작은 집은 둘에게 하룻밤 지내기에 충분하다 못해 넘치는 수준이었다.

흙집이라지만 바닥을 물걸레질해도 진흙이 묻어나지 않을 정도로 단단하게 다져진 내부는 말 그대로 황토 찜질방 같았기 때문이다.

거기다 험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이상한 냄새를 풍기는 외노자들과 부대껴 컨테이너 쪽방에서 지내본 적도 있던 둘에게 환연이 만들어준 흙집은 절로 엄지가 세워질 정도로 훌륭한 ‘집’이다.

여기에 끼니마다 5성급 호텔 주방장처럼 엄청난 요리실력을 지닌 이실리테의 식사가 나오고 자신들의 능력을 봐주고 키워주는 데다 싸우는 법도 알려주고 있으니, 불만 같은 건 가질 수가 없다.

유일한 아쉬움이던 윤락도 다음 도시부터는 환인 형님의 허락을 받아서 방문할 수 있으니……!

=철영수! 훈련하게 튀어나와!=

“지금 갑니다!”

“예압!”

자기 짐을 방에 내려놓던 둘은 밖에서 들려온 안느의 외침에 유르파가 만들어준 강화 목검을 들고 후다닥 밖으로 뛰어나갔다.

땀을 쫙 빼는 훈련 뒤에는 엄청나게 맛있는 저녁 식사가 기다리고 있다.

김철수와 김영수는 패시지에서 환락 생활을 하던 때보다 오히려 지금이 더 충실한 것처럼 느껴져 마음에서 우러나는 웃음을 지었다.

바라스티어 섬 중앙을 뒤덮은 밀림을 피해 남쪽 해안선을 따라 이동하던 일행은 습격한다면 이곳보다 좋은 곳은 없을듯한 수십 킬로미터 영역의 갈대밭도 아무 일 없이 지나갔다.

젤프리를 타고 언덕 아래 저 지평선까지, 광활하게 펼쳐진 녹색 갈대밭을 돌아보던 안느가 중얼거린다.

=흐음. 적어도 한 번은 습격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상하네.=

=정말 옹호파랑 제거파가 서로 견제하고 있어서 그런 거 아님까?=

=그렇게 견제한다고 못 움직일 정도였으면 쟤들이나 사이네를 보내지도 못했을 거 같지 않아?=

안느가 마차 지붕에 앉아있는 김철수, 김영수를 가리키자 아영도 고개를 주억였다.

=그것도 그렇긴 한데요.=

둘은 노른을 타고 앞서가는 환인을 쫓아가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곳에서 패시지까지 갈 길을 재촉하면 2주 정도밖에 안 걸린다. 놈들로서는 턱 밑에 단검이 들이밀어진 기분일 텐데 미적거릴 여유가 있나?

=음, 모르겠다.”

안느는 생각하길 포기하고 다시 기감을 넓게 퍼트리며 주위를 경계하기 시작했다.

도령이 저렇게 신경 안 쓰는 것을 보면 큰 문제는 아니라는 뜻이겠지. 그러면 나는 주위를 경계하며 그를 지킬 뿐.

하지만 머릿속 한구석에는 걱정이 눌어붙은 때처럼 들러붙어 있었다.

주도에 있을 엘레델 오빠, 그리고 벌써 2년 가까이 연락이 없는 친구이자 언니인 르아웬.

둘은 무사할까.

아영에게 물어보거나 부탁하면 금방 알아봐 줄 테지만, 그런 것에 하얀 늑대들의 힘을 쓰는 건 하고 싶지 않다.

자신의 부탁이 어떤 나비효과를 불러일으킬지도 모르는 일이고 말이다.

드넓게 펼쳐진 갈대밭을 지난 일행은 다음 날, 제법 큰 규모의 해안 마을에 들어섰다.

바라스티어 섬에서 신수의 이름이 붙어있는 지협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마을로, 지협을 넘어가기 위해 상단이며 사람들이 일정 수 이상 모일 때까지 머무르는 장소다.

그렇게 많은 사람과 짐이 머물러야 하다 보니 지협地峽 마을은 자연스럽게 크기가 커지고 숙박업이 발달하게 되었다.

어제부터 실루를 타고 이동하던 이실리테는 광장을 에워싸듯 세워진 큼직큼직한 여관 건물들을 돌아보다가 마차 창문을 통통 두드려 안느를 불러서 물었다.

=안느, 왜 다들 이 마을에서 모여 기다리는지 알아?=

=음……. 바칠 재물의 부담을 줄이기 위한 일종의 의례라고 보면 돼.=

=부담이라니, 지협을 통과하는데 그렇게 많은 재물을 내야 하는 거니?=

안느의 옆에서 머리만 빼꼼 내민 유르파는 큰 건물이 그림자를 드리워 기묘한 분위기가 형성된 광장을 둘러보다가 머리를 쏙 집어넣는다.

=유례가 어디서 시작됐는지는 몰라. 그래도 큰 수레 하나 분량의 재물을 내놓고 가는 게 어느새 의례가 되었는데, 단독으로 그만한 재물을 내는 건 어려우니까 십시일반으로 모아서 제물로 바치고 함께 넘어가는 거야. 응, 저기 있네.=

그녀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은 광장의 중앙, 제단처럼 조금 높게 솟은 장소였다.

그런 제단에는 금색인지 황토색인지 모를 커다란 금속 수레가 올려져 있었고 갖가지 재물이 수레의 2/3정도를 채운 상태다.

은화가 가장 많고 그다음으로 군데군데 금화가 보이며 고급스러운 무기나 방어구, 장신구나 잘 포장된 예술품 등이 그런 동전 사이에 파묻혀 있다.

재물 수레를 지키던 마을의 경비병들 중 한 명이 환인 일행을 발견하고 접근했다.

=여러분들은 도르와인 섬으로 갈 예정인 분들이십니까?=

=그런데요?=

1급 전사 직업자인 경비병은 마부석에 앉아있는 4급의 성술사와 회색, 갈색, 밀짚색 쿠에에 어쩐지 화려하게 느껴지는 일행의 면면을 보곤 조금 주눅이 든 모습으로 말했다.

=그러면 재물 수레에 소지금의 1할을 넣어주시거나, 아니면 소유하신 값어치가 뛰어난 예물을 넣어주시기 바랍니다.=

=그거 강제예요?=

쿠에의 고삐를 잡고 있던 아영이 후드를 벗으며 묻자 남자 플뢰 경비병은 살짝 눈을 크게 떴다가 얼굴을 조금 붉히면서 대답했다.

=재물을 바치고 안전히 넘어가려는 분들은 다들 통행세 의미로 내십니다.=

=안내면 그 행렬에 못 따라가는 거고?=

=그렇죠…….=

=그렇다는데 오빠, 어떻게 하실 거예요?=

“의무와 강제가 아니라면 응할 필요는 없겠지. 우리는 따로 넘어가겠습니다.”

환인의 대답에 경비병은 마차 위에 앉아있는 사람들, 마차 옆에서 쿠에를 타고 이동중인 사람, 그리고 아영의 얼굴을 힐끔 보고는 다시 생각해보라며 입을 열었다.

=돈이 아깝고 기다리는 것이 싫어 단독으로 넘어가는 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중 4할은 지협에서 행방불명됩니다. 재물을 바치고 넘어가는 사람 중에서는 단 한 명도 실종되지 않고요. 그게 수백 년째 이어지고 있어 하나의 규칙처럼 된 겁니다.=

=괴물이나 마물도 나오지 않는 지협에서 행방불명이라고요?=

=예. 마을에서도 유명한 모험가와 탐험가들을 고용해서 실종 이유를 찾아보려 했지만 정말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져서 이유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애초에 신수님의 영역이기도 해서 정밀한 탐색은 불가능하기도 했고요.=

그러니 위험한 길은 고르지 말고 안전하게 재물을 낸 뒤 기다리다가 사람들과 함께 넘어가는 것이 좋지 않겠냐고 묻는 경비병이다.

환인은 경비병의 이야기에 거짓이 없으며 아영에게 반해서 진실로 걱정하고 있다는 걸 눈치채고는 잠시 고민했다.

자신과 인연이 있는 두 신수, 아드네빌라와 닌실은 다른 신수의 영역을 지난다면 그 영역의 주인이 틀림없이 자신에게 관심을 내비칠 거라고 했었다.

천원의 흔적, 그리고 두 신수의 냄새가 짙게 묻어있기 때문이라고.

그땐 아신위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상태였는데 지금은 정식 아신위를 코앞에 둔 상황.

신수가 더 관심을 보이면 보였지 아닐 거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내가 사람들과 함께 지나간다면…….’

생각하던 환인은 작게 고개를 젓고 대답했다.

“걱정해주어서 고맙습니다만, 우리는 이대로 지협을 넘겠습니다.”

=그렇습니까……. 여러분이 무사히 지오드 지협을 건너시길 땅신님께 기도드리겠습니다.=

제단으로 돌아가는 경비병을 잠시 바라보던 아영은 마차를 출발시키며 환인에게 물었다.

=신수님이 4할이나 되는 사람을 납치한 걸까요? 4할 중에서 나중에 다시 나타난 사람은 없으려나.=

=앗. 실루, 그쪽으로 가면 안 돼.=

삐이?

=마을에서 안 머물 거니까, 계속 마차를 따라가.=

삣!

실루의 교육을 위해 실루를 타고 이것저것 가르치는 이실리테를 잠깐 바라본 환인은 앞으로 시선을 돌리며 대답했다.

“있었다면 어떤 식으로든 소문이 퍼져나갔겠지. 그랬다면 지금처럼 바칠 재물을 십시일반으로 모으기 위해 대기하지 않았을 테고.”

광장을 둘러싸듯 높은 건물의 여관들을 둘러본 환인은 왜 이런 기이한 느낌의 광장이 탄생했는지, 사방에서 쏟아지는 시선에서 알게 되었다.

‘도둑이 재물을 훔쳐 가지 못하도록 감시하는 생체 CCTV가 목적이겠지.’

=4할이면 적은 게 아닌데…….=

“어차피 갈 길을 재촉해야 하는 마당에 오래 머무를 수는 없다. 제법 빨리 마차를 몰았지만 오는 길에 맞은 편에서 오는 상단이나 행렬, 앞서가는 행렬을 한 번도 보지 못한 걸 생각해봐라.”

엘위드리스에서 이 마을까지 족히 8일에 가깝게 이동했지만 맞은편에서 오는 사람은 단 한 명도 보지 못했다.

바라스티어 섬 북부에도 마을이나 촌락이 있으니 그쪽으로 다 갔을 수 있다. 그러나 엘위드리스나 몰드레테로 가는 행렬은 거리 문제 때문에라도 남쪽 해안선을 따라 움직인다.

그랬는데 8일 동안 단 한 차례도 상인이나 상단 행렬을 만나지 못했다.

재물을 담는 수레가 가득 차는데 최소 8일 이상, 재수 없으면 기약 없이 대기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게다가…… 기분 탓일 수 있지만 나로 인해 지오드라는 신수가 등장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된다.”

=이러든 저러든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려면 따로 움직여야 한다는 거네요.=

“그래. 그리고 사람들과 함께 이동하는 것보다 우리만 움직이는게 더 편하지.”

=그건 맞아요.=

마을 동문을 빠져나오며 대답한 아영은 콩닥거리려는 마음을 가라앉혔다.

신수님이라…… 아드네빌라님 다음으로 새로운 신수님을 볼 수 있는 걸까? 나도 영도의 대성녀님을 보고 싶은데……. 앞으로 볼 기회는 없겠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쿠에들에게 속도를 내라며 고삐를 살짝 치는 아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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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대충 배고프다는 푸념)

(대충 치킨 먹고 싶은데 시골이라서 배달 안되는 게 괴롭다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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