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궁기담-767화 (767/813)

767 수목 도시 엘위드리스

그녀들의 농담을 들으며 뒤가 켕기거나 양심의 가책을 받을만한 일은 하지 않았다고 환인은 생각했다.

하지만 사회 통념적으로 그녀들은 여자친구이고, 자신이 다른 여자들과 잠자리를 한 걸 속상해할 수는 있다.

그러니 여자친구들이 사이네를 두고 짓궂은 농담을 해도 자신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다.

그녀들의 놀림이 더 심해지기 전에 환인은 말을 돌렸다.

“아무튼, 유르파는 사이네를 조사해주십시오. 김철수와 김영수에게 했던 것처럼 몸의 이상과 시술 유무의 확인 정도면 되겠습니다.”

=그럴게. 사이네? 아줌마랑 같이 잠깐 옆방으로 갈까?=

=네에…….=

그리고 영도에 통신을 넣어 술식연구기관장이자 영성인 아야빗=우마크레와 대화를 나누었다.

[영기가 영성만큼이나 가득한 유일 직업자라니, 그거 놀랍네요. 꼭 한번 보고 싶어요.]

“직업의 잠재력을 생각하면 거인 주술사 그녀만큼이나 큰 힘을 발휘하겠지요. 유르파가 지금 조사하고 있으니 몸에 이상이 없는지 확인하고 영도로 보내겠습니다. 그러니 그녀를 데려갈 사람들을 보내주십시오. 더불어 회의를 통해 그녀의 처우를 정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성제님의 제안이니 문제없이 통과될 것이에요. 성격도 유약하다고 하였으니까…… 성제님의 은혜를 입은 아르핀과 이아라 두 아이에게 맡기면 지내는 것도 문제가 될 것이 없겠군요.]

말하는 투를 보면 어째 사이네를 자신의 또 다른 몸종 비슷하게 보는 뉘앙스인데…….

아무래도 좋은 일이라 환인은 대충 흘려 넘겼다. 대신 영도에 있는 자신의 저택 두 곳을 관리해주는 남매의 언급에 예의상 물어본다.

“아르핀과 이아라는 잘 지내고 있습니까.”

[으응? 려강 기사에게……. 아니, 아니에요. 두 아이는 물론 잘 지내고 있어요. 워낙 똘똘하고 착해서 요즘은 타 영성들의 손자·손녀 느낌이네요. 잘 먹고 잘 지내서 자라기도 많이 자랐고요.]

“다행이군요. 아무튼, 사이네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술식연구기관장으로서도 관심이 많이 가는 아이니까 잘 보살피겠어요. 인원을 보내는데 2~3일 정도 걸릴 거예요.]

“알겠습니다.”

통신을 종료한 환인은 잠시 그대로 앉아있다가 백려강을 불렀다.

=오라버니, 부르셨어요?=

“아야빗 영성이 하는 말을 들어보니 네가 아르핀과 이아라를 챙겨주고 있는 것 같더군.”

아야빗 영성이 보여주었던 의문, 그건 백려강이 아르핀과 이아라를 관심 가지고 지켜보고 있었다는 것에서 나온 의문이었을 것이다.

‘려강 기사가 그 아이들을 돌보고 있는데, 성제인 당신 명령이 아니었나요?’

……하는 의문.

확인해보니 사실이었다.

=네에. 불쌍한 아이들이기도 하고… 가끔 통신 수정 연락으로 잘 지내고 있는지 정도만 물어보고 있었어요.=

“잘했다. 내가 나서는 걸 보여주는 것보다 네가 그렇게 챙겨주는 쪽이 둘의 미래를 위해서도 낫겠지.”

영도에서는 문제 같은 게 없을 거다.

아야빗 영성의 반응을 보면 영혼사들은 그런 둘을 기특하게 여기는 듯하고, 영도에 들어갈 수 있는 이들은 영혼사들이나 그들을 보필할 인격적으로 완성된 사람들 뿐이니까.

하지만 아랫도시 아드지에서는 아니다.

갖은 사람들이 모여드니 성제가 직접 둘을 보살핀다 하면 덜 성숙한 자들의 불편함과 시기심, 혹은 지나친 관심이 쏠릴 수 있다.

단적으로 그 아이들이 고아가 된 이유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심각하면 해코지도 당할 수 있으니 성제의 저택 관리인이자 성제의 영혼 기사가 약간 관심을 주는 아이들…… 정도가 포지션 면에서 가장 나은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신경 쓰기엔 귀찮음이 적지 않아 영도의 기관을 믿고 자신은 아예 관심을 끊는 걸 선택했는데 설마 백려강이 아이들에게 관심을 보내고 있었을 줄이야.

환인은 백려강의 정수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주며 조금 더 물어보았다.

“혹시 그 둘 말고 또 챙겨주는 아이가 있나.”

=치령 언니의 아이들 소식도 조금씩 듣고 있어요. 기플라족 아이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가던가……. 혹시 상황이 안 좋다거나 오라버니께 해가 될 소식이 전해지면 알려드리려구요…….=

뜻밖의 이름이 튀어나와 환인은 잠깐 멈칫했다.

“……백치령은 건강한가.”

=아이들도 무척이나요.=

“그래…….”

환인은 더 입을 열지 않았고 백려강도 더는 말하지 않고 작게 웃음 짓다가 이실리테에게 돌아갔다.

단정한 걸음걸이로 주방에 들어가는 백려강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소파로 걸어가 앉는다.

아이들인가…….

반로환동 하기 전에도 이엘카타의 아이라던가 그녀의 임신 모습에 적잖은 동요를 느꼈었다.

그랬는데 반로환동하며 감정의 변화가 극명해진 지금은 어떨까.

적어도 아이들을 보면 지금처럼 평정이나 평온은 유지하기 어렵겠지.

“…….”

환인은 소파에 앉은 채로 창밖을 향해 시선을 주며 작은 상념을 이어갔다.

사이네의 조사는 꼬박 한나절이 걸렸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차분히,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사이네의 몸을 조사했기 때문인데.

=사이네의 몸에 몇 가지 시술이 들어간 것을 발견했어.=

“어떤 것들입니까.”

=일단 피하조직에 문신이 들어가서 사이네의 위치 좌표가 패시지로 전송되는 거랑…… 사이네가 아이를 가질 수 없도록 난소를 제거당한 거 하고,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도록 몸이 위상력을 받아들이기 어렵게 방해하는 염파를 뿌리는 엠블럼 삽입 시술 정도. 철수랑 영수나 심판국 요원의 몸에 박힌 것만큼 심각한 건 없어.=

“난소 제거 시술은 회복으로 치유할 수 없었습니까.”

=피하조직 문신하고 방해 염파 엠블럼을 제거하면서 아영이한테 회복을 부탁해봤는데 제거된 지 너무 오래됐나 봐. 재생이 안 됐어. 게다가 난소를 제거당하면서 호르몬 불균형이라도 왔는지 사이네의 성기가 12살이 아니라 6살 정도의 기능 밖에 못 해.=

미성숙해서 아이를 낳는건커녕 정상적인 섹스도 불가능하다는 이야기.

아영이 말을 보탠다.

=회복되려면 오빠의 육합등약에 기대던가 모든 몸의 이상 상태를 되돌린다는 전설의 신약을 얻는 수뿐이에요.=

“어쩔 수 없군.”

어쩔 수 없다. 그게 사이네의 운명이라 여겨야지.

하지만 아영은 다르게 해석했는지 개구쟁이처럼 히히 웃으며 그의 가슴을 콕콕 찔렀다.

=사이네를 품에 안으시게요?=

“…….”

=어, 어쩔 수 없이 안아야겠다고…… 죄, 죄송합니당!=

환인의 못마땅한 시선에 아영이 어색하게 웃다가 방 밖으로 도망간다.

그걸 조금 뚱한 얼굴로 바라보던 환인은 금방 표정을 담담하게 만들며 유르파에게 지시했다.

“조사 결과는 문서로 만들어주십시오. 영도에서 사람이 도착하면 사이네와 함께 보내겠습니다.”

=응. 영도에서 사람 보낸대?=

“보내달라고 했습니다. 이름리아도 심판국 요원 셋을 나름의 방식으로 심문해 패시지의 정보를 뽑아내고 있습니다. 그 정보에 사이네의 일까지 같이 보내면 영도가 결명자의 만행을 알리는 데 조금은 도움이 되겠지요.”

이름리아가 어제 포획한 심판국 요원을 심문하고 있다는 이야기에 유르파는 살짝 몸을 떨었다.

그가 아니었다면 멸재가 되었을 혼재가 직접 심문한다니…….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죽어서 신님의 정원에 들어갈 수 없다는 이야기와 같잖아.

자신이 작성한 보고서를 읽는 환인의 곁에서 작게 한숨을 쉬던 유르파는 불시에 날아든 환인의 질문에 응? 하고 그를 돌아보았다.

“여기, 방해 염파 엠블럼을 제거했더니 능력이 활성화되었다고 적어놨군요. 어떤 식으로 활성화가 된 겁니까.”

=아, 그거. 엠블럼을 제거하자마자 엘위드리스의 상징수를 보더니 나무가 아직 죽지 않았다고 하더라구.=

“불에 탄 지 1년이 넘어가는 상황인데 아직 살아있다면…….”

환인은 잠시 유르파와 시선을 나누다가 방에 있는 사이네를 찾아갔다.

넓은 곳은 진정이 되지 않는다기에 하인이나 하녀들이 쓰는 작은 방을 내어주었는데, 작은 침대에서 편히 누워있던 사이네가 환인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황급히 몸을 일으킨다.

“이야기를 들었다. 상징수가 죽지 않았다는걸 느꼈다고.”

=네, 네. 생명력이 느껴져요…….=

“죽어가는 생명력이 아니고, 살아있는 생명력인가.”

대답 없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사이네의 모습은 작은 동물 그 자체.

잠시 수염이 나지 않는 턱을 쓸어내리며 사이네를 바라보다가 질문했다.

“상징수에서 새로운 나무의 싹을 틔울 수 있겠나.”

=그, 그건 모르겠어요…….=

“그런가. 식물의 기운을 북돋아 생명력이 넘치게 하면 조직이 활성화되어 안될 것도 없을듯한데.”

=생… 생명력을 북돋는 건 할 수 있는데…… 한 번 해볼까요?=

“시도해서 나쁠 것은 없겠지.”

소녀를 데리고 프슈드 백작을 찾아가 이야기를 전해주자 무뚝뚝하던 그의 표정이 이때까지 보았던 여느 때보다 밝아졌다.

=불타 쓰러져 모든걸 포기하고 있었거늘……! 사이네 양, 무슨 일이 일어나도 사이네 양을 탓하지 않고 겸허히 받아들이겠소. 부디 거수목을 봐주길 부탁드리오.=

=네, 네에!=

환인은 지체하지 않고 사이네와 유르파, 프슈드 백작과 함께 불타 울퉁불퉁해진 거대한 거수목의 몸체로 올라갔다.

그랬는데 사이네는 일단 올라오긴 했지만 어디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모습이다.

잠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불타 쓰러졌다고 해도 탄화된 표면을 살짝 털어내면 뾰족하거나 날카로운 부분이 드러난다.

넘어지기라도 했다간 크게 다칠 환경.

가녀리다는 말도 튼튼하게 여겨질 정도로 마른 사이네가 발을 잘못 디뎌 휘청이는 모습에 소녀를 품에 안아 올렸다.

“기운을 북돋아 준다면 기운이 가장 강하게 느껴지는 곳이 좋겠지. 생명력이 느껴진다고 했었나, 어디에서 생명력이 가장 강하게 느껴지지.”

남자의 품에 안겨본 적이 없던 사이네는 환인의 행동에 적잖이 부끄러워졌지만, 자그마한 손가락질로 어느 한 지점을 가리킨다.

=저, 저곳에서 생명력이 가장…… 강하게 느껴져요…….=

사이네가 가리킨 곳으로 자릴 옮겨 내려준 환인은 그녀가 조심조심 쪼그려 앉는 것을 보고 손을 뻗어 등을 받쳐주었다.

그러자 한결 자세가 편해진 사이네가 물방울이 떨어져 생긴 듯한 탄 자국 쪽에 양손을 모아 감싸더니 눈을 감고 힘을 쓰기 시작한다.

‘이건…….’

소녀의 등에 손을 대고 있어서일까. 그녀의 자그마한 몸뚱이 안에서 벌어지는 기운의 흐름이 노골적으로 느껴졌다.

그런데 그 기운의 유동이 심핵력을 다룰 때와 비슷한 감각이다.

이건 단순한 우연일까, 아니면…….

3분 정도 기운을 움직이던 사이네는 잔뜩 지친 얼굴로 손을 뗐고, 놀랍게도 그녀가 손을 치운 장소에는 묘목을 새싹 수준으로 줄인듯한 작은 나무줄기가 자라나 있었다.

=이, 이건……!=

온통 까맣게 탄 곳에서 홀로 선 생명의 증거에 프슈드 백작이 감격한 얼굴로 탄성을 질렀다.

뾰족한 부분이 무릎을 찌를 텐데도 망설임 없이 털썩, 무릎 꿇은 프슈드 백작은 새끼손가락 한마디만 한 작은 묘목을 한참 살피다가 사이네의 손을 잡고 고마움을 피력한다.

=고맙소, 사이네 양! 정말 고맙소!=

=아, 아아아, 아니에요……!=

백작의 가감 없는 감사 인사에 놀라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면서도 자신이 한 게 믿기지 않는지 계속해서 작은 묘목을 바라보는 사이네.

환인도 작은 묘목을 바라보다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명백하게 지친 소녀를 방에 데려다주고 프슈드 백작을 다시 찾아간 환인은 사이네의 안전을 요구했다.

“영도에서 그녀를 데려갈 사람을 보냈습니다. 도착에 이틀에서 사흘 정도 걸린다고 하니 그때까지 사이네를 보호하십시오.”

=그러겠소. 상징수를 되살려준 은인이니 탈 없이 무사히 영도에 도착할 수 있도록 조력을 아끼지 않겠소이다.=

“예. 시간도 남으니 그녀의 능력을 쌓을 겸, 하루에 한 번씩 묘목의 생명력을 북돋아 주면 상징수의 복구에도 도움이 되겠지요.”

고작 이틀만에 일등 보좌관 겸 영주성의 총집사장이 된 아쥬나=레이에게 상징수 묘목의 보호 시설 제작을 부탁하던 프슈드 백작이 눈을 조금 크게 뜨며 그를 돌아보았다.

=그래도 괜찮겠소?=

“힘이란 자주 쓸수록 단련되고 성장하는 법이지 않습니까. 상징수 정도로 크고 생명력이 강한 나무라면 그녀에게도 제법 좋은 경험이 될 겁니다.”

=그리해준다면 고맙기 이를 데 없지만…….=

말하던 프슈드 백작은 한 가지 사실을 깨닫고 환인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성제는 이제 도시를 떠날 생각이시군.=

“이 이상 머무를 이유가 없으니까요.”

=음……, 알겠소. 맡겨주시기 바라오.=

이러면 이제 엘위드리스에서 할 일은 다 했나.

이엘카타가 이곳으로 돌아올 때쯤이면 묘목도 확실히 자라났을 것이니 그녀가 크게 슬퍼하는 일은 없겠지.

뜻밖의 사건에 이틀 정도 더 머물렀지만, 그리 손해인 시간은 아니었다.

사이네라는 유일 직업자를 얻어 영도의 전력에 편입시켰고 적옥도 세 개가 더 추가되었다.

이뿐만 아니라 이틀 사이 어떻게 된 일인지 메리아놀 주도 패시지에 혼란이 점차 번져가고 있었다.

혼란이 번질수록 첩자 단속도 조금씩 허술해져 덕분에 하얀 늑대들이 점점 중요 기관에 침투하며 중요 정보를 손에 많이 넣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패시지가 분열되고 있다고.”

[네, 성제님.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는데 한쪽은 현 국왕, 타르반시올 톨마이어 투르시온을 필두로 한 성제님 옹호파, 그리고 볼레보스 텔미어 투르시온을 중심으로 모인 성제님 제거파입니다.]

“…….”

사이네에게서 얻었던 시설 정보와 김철수, 김영수가 외출하며 보았던 몇몇 특징을 주도 패시지의 지도에 대입하여 역산한 결과 차원 방랑자 관리국의 위치를 특징지을 수 있었다.

아영의 이야기에 따르면 관리국 위치는 이때까지 철저하게 비밀에 붙어져있다고 했다.

주도 전체에 감시의 눈길이 삼엄하기도 했고 패시지의 첩자 대응이 철통같아 도무지 그 꼬리도 밟을 수 없었다고.

그랬는데 이번에 김철수와 김영수의 유출로 위기감이 들었는지 관리국이 위치를 옮기려 하다가 틈을 보였고, 환인의 정보 제공으로 관리국을 추적하던 하얀 늑대들이 그 틈을 파고들어 잠입에 성공한 것.

그리고 지금 엘미느가 올리는 보고는 그런 관리국에서 나온 이야기였다.

패시지 주력 의견의 분열. 그 말은 결명자의 영향력이 반으로 줄었다는 것과 다를바 없다.

이 때문에 출처가 확실한 소스나 다름없는데 여자들은 좀처럼 그 이야기에 믿음을 보이지 못했다.

=투르시온이라면 결명자에 가장 많이 오염된 것으로 보이는 왕가잖니. 아니, 결명자 그 자체라고 해야 하나?=

=그러니까요. 그런 곳의 의견이 둘로 나뉜다고요? 거기다 톨마이어라면 현 국왕이기도 하지만 안느 언니 전 약혼자였댔잖아요. 성격 아주 더럽다면서요?=

=함정 같아요, 주인님.=

「나도 함정 같아 보여. 안느 오빠라는 엘레델이 차라리 옹호파의 구심점이면 믿겠는데 톨마이어라는 인간이? 흐음.」

여자들이 이야기를 주고받던 중, 계속 입을 다물고 있던 안느가 엘미느에게 물었다.

=엘미느 씨. 사이네의 정보는 어떻게 됐어?=

[시설의 위치는 파악했지만 삼엄하기가 관리국의 몇 배나 되어서 좀처럼 접근하지 못하고 있어요. 정보를 얻으려면 시간이 더 필요해요. 왜 그러시나요?]

=혹시 사이네가 톨마이어의 딸이 아닐까 싶어서.=

[딸을 희생물 삼아 보낸 것을 두고 반발하고 있는 게 아닐까 의심이 든다는 말씀이시군요.]

=어…… 그거 꽤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 같은데요?=

=하지만 현 국왕의 사생아를 그렇게 미사일처럼 쏠 수 있는 거니? 있다고 해도 임기가 끝난 뒤에나 쓸 거 같은데…….=

환인은 살짝 손을 들어 여자친구들의 대화를 끊고 엘미느에게 당부했다.

“협의회는 아직 하얀 늑대들의 존재도 모를 테고 저와 하얀 늑대의 관계성도 알지 못할 테지만, 첩자가 내부에서 활동 중인 것은 파악했을 겁니다. 첩자를 색출해내려는 함정일 수도 있으니 한동안 정보 수집은 자제하고 상황 파악에만 주력하십시오.”

[네, 성제님.]

“정보가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크게 상관없습니다. 그 점에 주의하시고, 통신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넷.]

엘미느의 통신을 끊은 환인은 자신을 제거한다느니 어쩐다느니 하는 이야기에 조금 과열되어가는 여자친구들을 향해 평온의 파동을 쏘았다.

“옹호파든 제거파든 신경 쓸 것 없다. 솔직히 말하면 정보도 이제 큰 의미 없어. 이쪽은 힘으로 패시지와 부딪치겠다고 결정을 내렸으니까.”

이름리아를 얻으며 적옥을 다수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계약을 맺은 영혼의 구슬은 쓰고 다시 회수되지만, 계약을 맺지 않은 영혼 구슬은 일회용.

혼재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경계하니 만나기도 어렵고 만난다고 해서 계약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구슬 하나로는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은데, 운이 좋은 것인지 이름리아는 혼재를 양산할 수 있다.

거기에 영혼 구슬 보유량은 자신도 정확한 수를 모를 만큼 막대한 상황이다.

막말로 전견시에 나왔던 적흑령주를 난사할 수도 있으니 더는 무력적인 측면에서 밀리지 않는다.

“그러니 지금 우리가 할 일은 두 가지뿐이다.”

하나는 아드네빌라를 찾아 정신을 차리게 만드는 것.

다른 하나는 김철수와 김영수를 보내 타비아누스=아눌란=투르시온, 차원 방랑자 관리국 국장을 납치하는 것.

김철수와 김영수를 최면 걸고 조작하려 한 것에 투르시온 가문의 일원인 것을 보면 결명자이거나 결명자와 밀접하게 연결된 인사일 가능성이 크다.

그 여자를 납치해서 죽인 다음 영혼에서 정보를 직접 추출하고, 그 정보와 하얀 늑대들이 내부 정탐 활동으로 얻은 정보를 4대 교단에 뿌려 감찰을 진행하게 하는 한편 여휘를 깨운 뒤 모든 전말을 책임지게 하는 것.

물론 그사이 결명자는 찾는 족족 죽인다.

=으음…….=

=웅…….=

확실히 간단명료한 계획이긴 한데…… 이래도 괜찮나 싶은 생각이 여자들의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플라비우스족의 주도인 팔라툼에서 미궁 역류가 일어났고 영성경이 출현한데다 신의 눈까지 드러나는 등 난리가 벌어졌다.

사비족의 주도인 헤뷜트는 지금도 현재 진행형으로 피투성이 내전이 이어지고 있다.

도시가 엉망진창이 되었거나 되어가는 중이지만 이건 환인이 주도적으로 벌인 일이라곤 보기 어렵다.

그러나 앞으로 패시지에서 벌일 일은 환인이 주도적으로 일으킬 일이다. 그가 악적이나 마왕으로 손가락질받는 일은 가급적 피하고 싶은데…….

엘미느의 보고서를 보며 생각에 잠긴 그의 뒷모습을 이미 결심을 내린 걸로밖에 안 보인다.

여자들이 작게 한숨을 내쉰다.

=자긴 지구로 돌아갈 거리서, 패시지의 원수를 정리한 뒤의 일은 생각 안 하는 것 같지 않니?=

「내가 봐도 그래. 그라파든이 질러버리라고 하니까 진짜 뒷일 생각 안 하고 질러버린 뒤에 훌훌 털고 떠날 생각 뿐인 거 같아.」

=한 나라를 상대로 질러버린다니…… 멋져…….=

=끄응…….=

환인은 뒤에서 들려오는 여자친구들의 숙덕거림에 피식 웃고는 몸을 돌려 손뼉을 짝짝 치며 소리쳤다.

“자, 복잡한 일은 그만 신경 쓰고 출발 준비해라. 이모렐, 가서 마차와 쿠에들을 데려와라. 노른은 김철수와 김영수를 부르고. 다들 움직여.”

=네, 성제님.=

「알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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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슬슬 끝이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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