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궁기담-765화 (765/813)

765 수목 도시 엘위드리스

아영에게 지시했던 엘위드리스 괴뢰 정부 인사는 하루 만에 준비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아영에게 지시한 뒤 31시간, 본거지인 영도 아랫도시에서 출발한 게 아니라 벨티칼의 주도 헤뷜트에 파견되어있던 이들이 업무를 인계한 다음 공간이동술법진을 타고 곧장 엘위드리스 시로 이동해 온 것.

=벨티칼 주도 헤뷜트와 구주의 독니 정보 공작을 담당한 백색 단원, 아쥬나 레이입니다.=

=같은 업무를 담당한 백색 단원, 신사이즈 룰입니다.=

=백색의 보좌 임무를 맡은 회색 단원, 로하이스입니다.=

=같은 임무를 담당한 회색 단원, 에트라 넷입니다.=

옅은 금발의 플뢰족 여성 아쥬나는 4급 녹술사, 같은 종족인 남자 신사이즈는 무직자, 같은 남자인 로하이스는 2급 전사, 같은 종족의 여자인 에트라는 1급 청술사.

네 명이 차례대로 한쪽 무릎을 꿇으며 인사하니 아영이 여비서처럼 패션 안경을 살짝 추어올리며 말한다.

=네 사람은 헤뷜트에서 구주의 독니와 헤뷜트의 기관을 대상으로 정보 수집 및 기밀문서 습득과 교란, 비밀 파괴 공작을 시행하던 단원들임다.=

“…….”

황금빛을 흘리는 신식 영혼의 눈으로 네 명을 분석하고 있으니 아영이 설명을 계속 이어간다.

=넷 다 정보 담당인 두뇌 소속으로 특히 쥬나는 카락스의 암살자 시절에도 정보 처리 업무가 뛰어나서 엘미 언니의 신임을 듬뿍 받은 인재예요. 언니의 직속 후임이라 할 수 있죠.=

엘미느. 현 하얀 늑대들의 우두머리인 그녀는 이전 카락스의 암살자 시절 은퇴한 암살자의 원탁 소속으로 열두 이빨 중 두 번째, 카락스의 눈과 귀를 담당했었다.

꽤 머리가 잘 돌아가고 눈치가 빨라 그녀를 우두머리로 삼았었는데 그녀의 직속 후임에 그녀와 아영이 신뢰한다면 저 여자의 능력도 믿을만하겠지.

환인은 자신의 아신위 휘광에 위압 당해 긴장한 그들을 하나하나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아영과 엘미느가 믿고 신뢰한다면 저 역시 믿을 수 있겠지요. 여러분들이 지금부터 맡게 될 일은 하얀 늑대들이 그저 그런 정보 집단으로 남느냐, 아니면 영도의 중요한 동반자로서 위치를 확립하느냐가 좌우될 만큼 중요한 것입니다.”

=……!=

=……!=

“현 영주 프슈드 오울 엘위드리스는 영지를 다스리는 감각이 없진 않지만 우유부단합니다. 그로 인하여 심각한 판단의 실수를 저질러 영지가 반쯤 몰락한 상황이지요.”

외부의 정치정보 공작에 취약한 상태이며 귀족 대다수가 쓸려나간 상황이라 인력의 공백 또한 크다.

현재 수석 집사이자 방계 혈족인 미리아 이오 엘위드리스가 그를 보좌해 영지의 업무 전반을 처리하고 있지만, 수십 명이 하던 일을 고작 두어 명이 모두 커버하기란 불가능.

“행정별 하급 직원들은 제법 남아있지만 근 1년 가까이 영지 핵심 업무를 제외한 태반이 정지되어있어 업무와 연계를 되살리는 것부터가 문제입니다. 업무를 정상 궤도에 올리는 것뿐만 아니라 엘위드리스 시의 정무를 장악하는 동시에 외부 세력의 개입과 정탐까지 막아내야 하니 그 임무가 막중하다 할 수 있겠습니다.”

자신의 브리핑에 꼴깍, 하고 침을 삼키는 네 명을 둘러본 환인은 아쥬나=레이에게 물었다.

“이런 상황에 아영과 엘미느는 여러분을 추천하여 이 자리에 서게 하였습니다. 여러분들은 제 기대에 부응할 수 있겠습니까?”

이 질문에 아쥬나=레이는 여러모로 자신이 운명의 갈림길에 섰음을 알아차렸다.

말 그대로 업무 폭탄이다. 앞으로 1년은 하루에 2시간도 채 못 자며 일에 몰두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기껍다. 기꺼워 온몸에 소름이 돋을 지경이다.

헤뷜트에서 했던 교란 임무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중요한 일을 맡기다니, 이것은 자기 능력을 입증할 둘도 없는 기회가 아닌가.

이 일을 완벽히 해낸다면 엘위드리스는 하얀 늑대들의 두 번째 교두보가 될 것이며 영도의 제2 도시가 되겠지.

그리고 자신은 그런 제2 도시의 첫 번째 이빨이 될 것이다.

아쥬나=레이는 바짝 선 젖꼭지가 브래지어를 스치는 것을 느끼며 한쪽 무릎을 꿇은채로 고개를 푹 숙이며 맹세했다.

=성제님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하여 이 임무, 목숨 걸고 완수해 보이겠습니다.=

그녀의 맹세에 동료이자 직속 부하들도 무릎을 꿇고 똑같이 맹세한다.

==아쥬나 레이 백색 단원을 보조하여 성제님께서 내리신 임무, 반드시 완수하겠습니다.==

환인은 그들의 맹세에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머리에 손을 올리고 평온의 파동을 세례처럼 한 번씩 내려주었다.

한순간 바짝 움츠러들었다가 온천에 들어간 것처럼 쫘악 이완되는 육체들.

“기대하겠습니다.”

“충성과 의리가 높고 그에 걸맞은 향상심과 출세욕도 있더군.”

=쥬나가 좀 그런 면이 있어요. 카락스의 귀에 있을 적부터 엘미 언니를 이기려고 엄청나게 노력했었거든요.=

하지만 실력은 있어도 경험이 부족했다.

그녀를 이기려 무던히도 애쓰던 중 카락스의 암살자가 통째로 직군이 전환되고 내부까지 개편되어 하얀 늑대들이 되자 조금 방황했었다고.

=하지만 부평초 같은 신세에서 벗어난 걸 알게 된 뒤에는 더 열심히 노력하고 있대요. 헤뷜트에 파견된 것도 그 노력이 높게 평가되었다고 엘미 언니가 보낸 보고서를 봤어요.=

“그래.”

향상심과 출세욕은 성격과 대조해서 적당히 자극하고 보상해주면 이용하기 편한 기질 중 하나다.

향상심을 칭찬해주고 출세욕을 채워주면 아쥬나 레이는 죽을 때까지 하얀 늑대들과 영도에 충성을 다 하겠지.

환인의 작은 고갯짓에 내심 만족의 미소를 띠던 아영이 물었다.

=오빠, 이엘카타 씨는 언제쯤 오는 거예요?=

“패시지 일을 다 해결한 뒤가 되겠지. 못해도…… 반년 안에 마무리될 거라 본다.”

=반년이면 얼마 안 남았네. 열심히 해야겠다. 참참, 프라버하고 헬루멘의 소식 들으셨어요?=

“어떤 소식 말이지.”

=오빠가 헬루멘에 농법서를 전달했잖아요. 프라버에는 어업 육성 계획표를 좀 더 보강해줬고요. 그 결과가 나왔는데 헬루멘의 작물 소출이 예년 평균의 8배나 늘어났다고 해요. 프라버 어군도 완성되어서 각종 해산물이 주기적으로 공급되고 있고요.=

두 곳의 영지에 금화가 쌓이는 소리가 날 정도라던가.

특히 헬루멘은 산더미처럼 쌓인 곡식에 당황하다 주변에 판로를 넓히는 한편 곡식의 질적 향상을 위해 전문 연구실마저 설립했다고.

‘예상 이상으로 효과가 좋은데…….’

일부러 과한 증가폭이 나오지 않도록 적절히 정보를 조절해서 보냈는데 역시 비전문가여서 그럴까, 조절에 실수한 듯하다.

많아봤자 4배 정도일 거라 예상했는데 8배라니.

=먹을게 풍족해져서 벌써부터 인구가 늘어날 조짐이 보인다던데 정말 대단하네요. 오빠가 괜히 농법서가 유출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하셨는지 이해될 거 같아요.=

“흠…….”

=그런데 첩자가 농업을 보고 흉내 내면 주위에 금방 퍼지는 거 아닐까 모르겠어요.=

“훔쳐내기도 어렵고 훔쳐내더라도 도입하는 것에도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법이지.”

=으음, 그런가?=

이야기를 듣기만 하던 환연이 끼어들었다.

「네 말처럼 기술 도입과 적용이 쉽다면 맛있는 음식점의 주변 음식점들도 전부 뛰어난 맛과 품질의 음식을 만들어내야지. 그런데 현실은 어때?」

=현실은 안 그렇지…….=

「게으르고 변화를 싫어하는 인간에게는 아무리 뛰어나고 훌륭한 기술이 주어져도 못 써먹어.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일 뿐이야.」

게다가 지식이 뒷받침되지 않은 기술은 사용자를 이해시키지 못한다.

대표적으로 모종의 심는 방법과 모종을 만드는 이유가 있다.

왜 모내기할 모종을 먼저 만들지? 왜 모내기 전에 땅을 고르게 파고 물을 대놓는 거지? 왜 심을 때 일정 간격으로 거리를 둬서 심는 거지?

현대인이라면 기초 지식, 영양분 공급과 생육의 안정화, 땅의 토질 개선과 영양소 분배 등을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과학이 전혀 발달하지 않은 니오네브레스 주민이라면?

이해되지 않아 무슨 사이한 짓인가 의심을 품는 게 먼저. 뒤에는 ‘이렇게 했다가 오히려 소출이 떨어지면 어쩌지?’ 하고 의심하게 될 것이다.

이전에 하던 대로만 하면 기본은 보장하는데 의심암귀에 빠져 괜히 신기술을 도입하려다 망쳐서 이전만도 못하면 어쩌냐는 거지.

그러니 명확한 기술이 적힌 농법서만 주의해서 관리하면 기술 유출은 거의 없을 것이다.

물론 평생 비밀이 유지되지는 않을 거다.

어느 한 분야에 뛰어난 사람이 나타나면 그 주변도 자연스레 해당 분야의 지식 평균이 오르는 법이니까.

그러나 그리되기까지는 수십 년에서 수백 년의 시간이 걸릴 것이고, 선두 주자는 블루오션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도 할 것이니 무능하고 멍청한 영주가 판을 엎지 않는 한 헬루멘과 프라버는 해당 분야에서 선두를 오래도록 달릴 것이다.

그보다…….

‘식량은 청결과 함께 인구 폭발을 위한 양대 조건 중 하나……. 과연 이 일이 니오네브레스에 얼마만 한 변화를 가져다줄지 궁금하군.’

환인의 눈빛이 변하는 것을 본 환연과 아영은 으레 나쁜 짓을 꾸밀 때 보이는 그의 표정에 ‘또 저러네’하면서 숙덕거렸다.

아쥬나=레이 외 세 명을 프슈드 백작에게 소개해주고 그와 검소한 점심을 먹은 뒤 귀빈실로 돌아온 환인은 거실을 채운 긴장감을 느낄 수 있었다.

두 김씨와 약간 굳은 분위기의 여자들이 환인이 돌아온 것을 보자마자 입을 연다.

=자기, 들어야 할 일이 있어.=

“무슨 일입니까.”

=철수하고 영수가 외출했다가 가져온 정보인데…… 얘들아?=

“예, 옙. 그러니까요…….”

소파에 앉아 철수의 이야기를 듣던 환인은 눈썹을 살짝 찡그리며 되물었다.

“관리국에서 본 것 같다고.”

“옙. 전 사람 얼굴 기억하는데 자신 있는데 이상하게 어디서 봤는지 잘 기억이 안 나요.”

“위상류가 인식 저해를 뚫어보긴 했지만 완벽하게 들여다보지 못해 기억이 애매하게 남았나 보군. 환연, 수상한 자가 감시 범위 안에 들어오는 것은 못 봤나.”

「눈에 띄는 이상한 인간은 없었는데……. 야, 그 인간 어떻게 생겼어? 그림으로 그려봐.」

환인처럼 미간을 찌푸린 환연의 요구에 김철수는 당황하다가 펜을 들어서 노트에 인상착의를 성심성의껏 그렸다.

그런데 그 그림이…….

=…….=

=…….=

「…….」

환연과 여자들이 짠하다는 시선으로 김철수를 바라보자 김철수가 빨개진 얼굴로 항변한다.

“저, 저는 그림을 배운적은커녕 붓도 들어본 적이 없다고요!”

=응, 뭐 사람의 특징은 확실히 있으니까 아주 못 그린 건 아니야. 하지만 이걸로 그 잠입한 사람을 찾는 건 어렵겠는걸.=

「이걸로 인간 찾으면 내가 그 인간한테 정령력으로 샤워시켜준다.」

환연의 비웃음에 김철수가 뚱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심혈을 기울여서 그린 건데…….

내가 봐도 좀 엉망진창이긴 하네.

“김철수, 이리 와라. 몽타주를 그려보지.”

“엇, 형님 저도 공간 지각으로 그 여자를 봤어요!”

“그러면 너도 와라.”

보다못한 환인이 둘을 불러다 특징을 물어가며 노트에 새 몽타주를 그리기 시작했다.

눈동자, 눈썹, 코, 입, 옷의 형태.

둘의 이야기에 조각 맞추듯 사람의 형태를 그려 나가고 대강 색까지 칠한 뒤 보여주자 김영수가 눈을 휘둥그레 뜨고 탄성을 질렀다.

“맞아요! 이 사람이었어요!”

“우와……. 환인 형님 혹시 미대생이셨어요?”

「환인도 그림 배운 적 없거든?」

“그러시다는데 넌 뭐냐”

“뭐 임마. 너라고 다를 거 같냐?”

“너만큼은 아닐 듯.”

또 아웅다웅하는 둘을 두고 그림을 잠시 들여다보던 환인은 환연에게 그린 몽타주를 넘겨주며 말했다.

“환연, 정령으로 이자를 찾아봐라. 네 정령 감시가 포착하지 못한 것을 보면 고위의 인식 저해가 걸려있을 수 있으니 그점에 유의해서.”

「응.」

그림을 들여다본 환연이 종이를 돌려주고 눈을 감자 환인은 다시 몽타주를 들여다보다 김철수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자가 혼자 길을 걷고 있었다고.”

“예. 영수하고 잡화점에서 책을 사다가 우연히 봤는데 보자마자 관리국에서 본 여자라는 게 생각났었어요. 그래서 이놈이랑 주변을 좀 더 살피다가 돌아와서 유르파 누님께 말씀드렸던 거예요.”

관리국과 관련된 여자가 혼자 거리를 걸은 이유는 무엇일까.

목적이 있어서? 아니면 이제 막 도시에 도착해 접선 장소로 이동하려고?

잠깐 생각하던 환인은 긴장한 채인 둘을 칭찬했다.

“잘했다. 이자가 어떤 자이든 붙잡아서 정보를 캐내면 여길 찾아온 이유 정도는 알아낼 수 있겠지.”

환인의 칭찬에 김철수가 김영수에게 자신의 활약을 봤냐며 으스대고 뻐긴다. 그러자 눈꼴시다며 표정을 찡그리는 김영수.

그런 둘에게 위기가 찾아들었다.

=그런데 잡화점에서 책을 사셨다구요? 어떤 책인지 저도 보여주시면 안될까요?=

백려강이 잡화점에서 산 책이라는 것에 관심을 내비친 것이다.

여자에게 보여줄 수 없는 물건이기에 둘은 안색이 창백해져 저도 모르게 허둥거렸다.

그런 모습에 안느가 눈을 가늘게 뜨며 묻는다.

=뭐야. 왜 당황해?=

“예?! 아뇨, 이상한 짓은 안 했어요! 진짜로요!”

=안 했는데 왜 그래? 뭔가 이상한데…….=

“……!”

=그 책이란 거 이리 내놔봐.=

“윽, 헉. 아니, 저기 안느 누님 그게요……!”

“저, 저는 사자고 한 적 없어요. 저놈이 혼자 산 거예요!”

김영수가 재빨리 손절치고 물러서자 브루투스에게 등을 찔린 카이사르처럼 김철수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그 모습에 안느가 눈을 살벌하게 치켜뜨며 으르렁거렸다.

=맞고 내놓을래 그냥 내놓을래.=

“……!”

사면초가. 일이 이렇게 되자 환인의 시선까지 둘에게 향한다.

김철수는 벼랑 끝에 내몰린 심정으로 눈을 질끈 감았다.

서, 설마 야한 책을 샀다고 형님이 화내시진 않겠지…….

김철수는 우거지상을 쓰면서 아공간 주머니에 넣어놓은 춘화집을 꺼내 덜덜 떨리는 손으로 안느에게 내밀었다.

=……춘화집?=

=…….=

=…….=

벌거벗은 플뢰 여자의 그림과 난잡한 그림이 그려진 손가락 한 마디 두께의 책자에 안느가 미묘한 표정을 짓고 여자들은 애써 웃음을 참으면서 고개를 돌린다.

안느가 팔랑팔랑 춘화집을 넘겨보는 행동에 김철수는 쥐구멍이 있다면 들어가고 싶을 정도로 괴로웠다.

‘갤에서 고로시 당할 때도 이렇게 수치심이 들지 않았는데……!’

옆에서 그걸 본 환인은 작게 쓴웃음을 지으며 그녀의 손에서 책을 빼앗아 김철수에게 말없이 돌려주었다.

여기서 끝났으면 그나마 다행이었을 텐데, 일부 사람은 당황하거나 수치심이 머리끝까지 차오르면 스스로 자폭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김철수가 그런 타입이었다.

“형님! 이건 이상한 생각으로 산게 아니라요! 그러니까……!”

너무 참기 힘들었다며 손장난이라도 할 생각에 춘화집을 샀다는, 굳이 말 하지 않아도 되는 것까지 폭로하는 김철수.

김영수는 ‘난 못보겠다’며 두 손으로 눈을 가려버리고 안느는 이제 불쌍한 무언가를 보는 눈으로 김철수를 쳐다보았다.

자살골을 뻥뻥 차대는 김철수를 묵묵히 바라만보던 환인은 조용히, 그가 충격받지 않게끔 입을 열었다.

“너희들도 성인이다. 앞으로의 계획에 문제가 생길 정도로 빠지거나 패턴화되어 적에게 행적이 노출될 정도로 움직이는 정도만 아니라면, 창관을 가는 것 정도는 상관없다.”

“……?!”

“……!!”

“물론 범죄에 가까운 행동을 하는 것은 안 된다. 어디까지나 합법적으로 쌍방 합의하에 해야겠지.”

환인의 허락에 김철수와 김영수는 잠깐 어리둥절해하다가 소리 없이 조용히 주먹을 꾹 쥐었다.

설마 환인이 허락할 줄은 몰랐기에 놀람과 기쁨이 두 배.

이제 사창가에 갈 수 있어……! 침묵으로 함성을 내지르는 둘의 모습에 안느가 피식 웃으면서 희망의 싹을 싹둑 잘라버렸다.

=안됐지만 플뢰 종족 특화 도시나 마을에는 창관이나 창녀가 없어. 있어봤자 바에서 마담이랑 대화를 나누다가 개인적으로 교분을 가지는 정도? 그러니까 포기해.=

“…….”

“…….”

천국으로 올라갔다가 지옥으로 떨어진 사람의 표정이 저러할까.

여자들은 두 김씨의 급격한 표정 변화에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환인. 찾았어.」

환연이 몽타주 속의 인간을 찾는 데는 10분이 걸렸다.

최상급 땅 정령의 탐색 능력은 한반도의 몇 배나 되는 산악 지역에서 한 사람을 찾는 데 고작 몇 분을 쓰는 정도다.

상급이라곤 해도 도시 하나 범위, 그것도 타겟의 몽타주까지 있는데 10분이나 걸렸다는 것은…….

「환인 네 말대로 고도의 인식 저해가 걸려있더라. 머무르는 방에도 탐지를 방해하는 마도기가 있고. 아무리 찾아도 안보이길래 반대로 탐지 안 되는 곳을 위주로 찾았더니 발견했어.」

“다녀오지. 이실리테만 따라와라.”

그리모암의 강력을 발동, 창문에서 몸을 날려 환연이 가리키는 곳을 향해 빠르게 이동하자 인적이 드문 거리 뒤편으로 진입한다.

플뢰족의 비교적 선한 특성 때문인지 슬럼화는 없고 범죄자들이 모여들어 만드는 뒷골목 조직도 다른 도시에 비하면 소규모 양아치 수준.

그러나 거리 뒤편은 뒤편이라 사는 게 팍팍한 사람들의 거리라는 느낌이다.

눈도 없고 사람들이 주변에 신경 쓰지 않으니 몸을 숨기기에 최적의 장소겠지.

그저 조금 어두컴컴하고 인적이 드물 뿐인 거리를 환연의 인도에 따라 걷고 있자니 장사가 잘 안될 것 같은 작은 2층 여관 건물이 나타났다.

“건물 주변을 포위해라.”

영령군을 불러내어 여관 주위를 포위하고 기감을 위상력의 유동에 집중하며 여관으로 들어가자 뜨개질하고 있던 플뢰족 소녀가 일어나다가 화들짝 놀란다.

=서, 서, 성제님……!?=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이실리테는 입구를 지켜라.”

=네, 주인님.=

광명창을 빼들고 곧장 2층으로 올라가니 2층의 가장 안쪽 방에서 부산스러운 기척이 느껴졌다. 이어서 들려오는 자그마한 소녀 느낌의 비명.

「뭔가를 바닥에 던지려 하기에 움직임을 막았어.」

“긴급 탈출 마도구겠지.”

성큼성큼 걸어가 방문을 강하게 걷어차자 쾅, 소리와 함께 자물쇠가 뜯어지며 물의 정령에게 사지가 결박당한 하늘색 머리카락의 소녀가 겁에 질린 표정을 짓는다.

장신구도 없고 눈 밑은 부어있으며 무언가에 위축된 것처럼 소심해 보이는 얼굴.

옅은 아우라는 희귀 직업자를 가리키는 듯, 그의 기억 속에 없는 형태였기에 환인은 곧장 그녀에게 다가가 팔뚝에 위상력 봉인 마도구를 채웠다.

그리고 신식 영혼의 눈으로 소녀의 차림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살펴본 뒤 그녀가 몸에 걸치고 있던 로브를 잡아 찢었다.

=꺄악……!=

미성숙한 가슴과 덜자란 골반이 투박한 속옷과 함께 드러나며 소녀의 몸이 공포에 움츠러든다.

흡사 작은 새가 파르르 떠는 모습이지만, 환인은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 속옷마저 찢어버린 뒤 소녀의 알몸 이곳저곳을 섬세함 없이 뒤졌다.

=에우웁……!=

입안에까지 손가락을 넣어 살피는데 손가락을 문다거나 저항하는 기색 없이 덜덜 떨기만 할 뿐.

「외모만큼이나 심약하네.」

“자해는 불가능하겠지.”

「응. 몸 안에 숨겨놓은 도구 같은 것도 안 보여. 그런데 하는 꼴을 보면 칼을 줘도 반항도 못할거 같…… 어? 밖에서 누가 달려온다.」

“호위인가.”

이런 여자가 혼자 있는 게 이상하다 했다.

창문을 열고 뛰어내리자 좁은 길 저편에서 눈에 안 띄는 색의 후드 망토를 뒤집어쓴 셋이 달려오다 말고 멈칫했다.

이윽고 도주하기 위해 몸을 돌렸지만 이미 늦었다.

호위 대상인듯한 이 여자애를 두고 셋 다 자릴 비운 것도, 이상함을 눈치채고 돌아오는 것도, 도망칠 때를 깨닫는 순간도.

“여러모로 늦군.”

알몸의 영령군 스물이 주변을 포위하자 세 후드 망토의 괴한들이 무언가를 결심한 듯, 동시에 환인을 향해 몸을 던졌다.

괴한들의 체내 위상력이 틱— 틱- 틱- 시계 초침이 움직이듯 거슬리게 움직인다.

환인은 그 유동의 시작점을 꿰뚫어 보고 광명창을 발동, 여자를 이실리테에게 집어던지면서 그리모암의 강력 효과와 위상역쇄류를 끌어올려 대지를 박차고 뛰어나갔다.

쿠—우—웅——

일순 풍경이 늘어지는 듯한 잔상 속에서 세 괴한이 늘어진 풍경과 함께 다가온다.

그리고 곁을 스치는 순간, 환인은 광명창을 휘둘러 세 괴한의 명치를 찌르고 회수, 지나쳐 맞은편 골목길의 벽 근처에 멈추어 섰다.

쿠화화화확—!

눈 깜짝할 사이, 100밀리초도 안되는 시간에 100m를 돌파한 환인의 이동 궤적을 따라 먼지가 뒤늦게 푸확하고 치솟고, 세 괴한은 트럭에 충돌한 것처럼 튕겨 나가며 벽을 들이받거나 충돌해서 쓰러진다.

그야말로 일섬一閃에 추풍낙엽처럼 나가떨어지는 모습.

명치를 살짝 찔렀을 뿐, 목숨을 빼앗지 않은 환인은 영령군에게 명령을 내렸다.

“소지품을 전부 빼앗고 무력화시켜라.”

「예, 성제님.」

「옛!!」

쫘아악— 찌익, 찌이익—

영령군이 세 괴한의 옷을 찢고 소지품을 터는 것을 뒤로하고 이실리테에게 잡혀 겁먹은 얼굴로 덜덜 떠는 소녀에게 다가갔다.

호박색 눈과 마주하자 동공이 한껏 축소되며 더욱 더 떨기 시작한다.

그런 소녀의 눈동자를 마주한 환인이 살기를 드러내며 말했다.

“관리국이 이곳엘 찾아온 이유는 잘 짐작 가지 않지만, 대놓고 자폭하려는 놈들의 꼴을 보면 좋은 의도로 온 것은 아니겠지.”

=…….=

“잠시 후에 심문을 시작할 텐데 곱게 죽기 싫다면 입을 다물고 있어도 된다. 아니.”

한 말을 철회한 환인은 쪼르륵— 샛노란 물줄기를 사타구니 사이에서 흘리는 소녀에게 살기가 깃든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부디 입을 다물고 있어 주길 바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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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주인공은 허락했지만 글쟁이는 허락하지 않는다......

[작품 설정]

김철수 작 몽타주

데뎃

환인 작 몽타주

테에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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