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궁기담-764화 (764/813)

764 수목 도시 엘위드리스

혼재가 된 엘위드리스의 공녀 이름리아.

그녀의 제어에 관해서는 문제가 없다. 신언을 곁들여 강제력을 발동하면 혼재화가 심각해지는 와중에도 진정시키고 혼재화 상태를 안정시킬 수 있다는 걸 알았으니까.

하지만 그녀의 존재를 다루는 데에는 여러모로 이득과 불이익이 공존한다.

가장 노골적이고 적나라한 두 가지를 꼽자면 하나는 혼재를 혐오 및 두려워하는 감정에서 오는 인식이다.

혼재를 계약해서 다닌다. 이것은 니오네브레스 시민들이 보기에 방사성 폐기물, 그것도 고준위로 원전의 핵연료 폐기물 같은 것을 갖고 다니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성제님은 괜찮으시겠지만 우리는!?’

이런 생각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물론 환인에게는 그런 고준위 폐기물의 정화 능력까지 있다.

더욱이 환인은 성제, 나아가 영혼사 계통의 아신. 이는 소문으로도 퍼지고 있어 ‘성제님이면 혼재도 다루실 수 있으시겠지…….’ 같은 식으로 생각의 변화가 이루어질 수도 있다.

위가 일반 시민들의 생각이라면 아래는 귀족, 호족, 족장 같은 사회 고위층의 생각이다.

‘혼재로 뭘 하려고 데리고 다니는 거지? 설마, 알아서 머리를 낮추라는 경고인가?’

수틀리면 혼재로 쓸어버리겠다는 위협으로 느낄 수 있다. 죄 없는 사람들이라 해도 꺼림칙함을 느낄 테고 말 못할 죄가 있다면 환인의 접근을 매우 경계할 것이다.

“오히려 좋은데.”

경계한다면 쓸데없이 접근하는 일은 없을 테니 이동이 무척 편해질 것이다.

그러나 세계의 귀족은 권력 그 자체. 환인의 평가가 떨어진다면 그들은 영도와 다른 영혼사들도 위협으로 느낄 가능성이 있다.

어떻게 할까. 이름리아를 동행시키며 얻을 유, 무형적 이득과 손해를 따져보던 환인.

“…….”

고민했지만 결정은 빨랐다.

환인은 다음날부터 이름리아를 대동해 엘위드리스 시를 돌아다녔다.

=헉! 호, 호호호혼재!?=

=히익! 혼…… 어, 어어? 이름리아 님……?=

=잠깐, 이름리아 님이 혼재가 되셨어…….=

=……그런데 옆에 계신 저분은? 누구시지?=

=성제님 아니실까?=

=성제? 그가 왜…….=

날아오는 반응에 우호는 없었다.

지배 계층에서 벌어지는 음험한 흉계, 음모는 하위 계층에 알려지지 않고 귀족들이 퍼트리는 유언비어와 날조에 휘말리기 쉽다.

이호경식의 고사성어처럼 ‘엘위드리스에서 벌어진 내전의 원흉은 성제다’는 협의회의 이간질에 엘위드리스의 시민들은 성제를 나쁜 사람으로 보는 것이다.

만약 환인이 메리아놀의 악행을 폭로하고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성제의 선행과 성불행 소문이 상충하지 않았다면 반응은 지금처럼 꺼림칙이 아니라 혐오가 되었을 터.

“…….”

하지만 환인은 군중의 숙덕거림을 개 짖는 소리로 치부하며 무시로 일관, 도시를 돌아다니면서 떠돌아다니는 영혼을 하나둘씩 모아나갔다.

시민들은 그 모습에 혼란스러워졌다.

=어…… 성제가 지금 성불야행 하시는…… 건가?=

=왜? 우리 도시를 지워버리려고 한 거 아니었어?=

=…그런 거면 왜 이름리아 공녀님을 곁에 두신 거야?=

환인의 대규모 성불행이 시작되자 소문을 들은 엘위드리스의 시민들이 하나둘씩 모이며 혼란이 가중된다.

성제는 악당이다.

성제님도 영혼사다. 그럴 리 없다.

우리가 뜬소문에 속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진짜 나쁜 놈은…… 패시지의 왕가인가?

그런 혼란은 환인이 한나절 동안 쉬지 않고 도시를 거의 다 둘러보아 천수백 명의 영혼을 한데 모았을 즈음 깨끗하게 가라앉았다.

거의 최고치에 다다른 영혼술의 제어 능력으로 구식 평온의 파동을 몸에서 안개처럼 흩뿌리며 돌아다니니, 평온의 파동에 정신의 평온과 안정을 얻은 사람들이 이성적으로 판단을 내리기 시작하였기 때문.

=성제님은 누구의 부탁도, 대가도 받지 않고 영혼들의 안식을 위해 성불행하는 분이야.=

=맞아. 그런 분이 우리 엘위드리스를 이유 없이 단죄하실 리 없어.=

=그럼 나쁜 건 귀족인가?=

=우리를 위해서 매달 출정 나가시고 수많은 마물을 해치우는 영주님이 나쁘실 리가…….=

=……원로, 원로들 때문이야.=

=뭐?=

=성에서 일하다가 죽은 동생에게 들었었어. 원로원의 탐욕이 너무 더러워서 일하기 힘들다고!=

=맞아……. 내 여동생의 주점에 원로가 방문한 적 있었는데 향응을 요구했던 적도 있었어!=

=내 가게에서는 멋대로 물품을 가져가 놓고 대금도 치르지 않았었다고!=

군중이 정답에 근접한 답을 내놓았을 즈음, 핏빛 아우라를 극도로 낮추고 환인의 곁을 따르던 이름리아는 그런 군중을 향해 정답이라는 신호를 주었다.

「그뿐만이 아니랍니다. 엘위드리스의 진정한 적은 패시지에 숨어있는 변절자들……. 그들은 우리의 아름다운 도시가 몰락하길 바라며 흉계를 펼쳐 이간질을 유도했어요.」

나쁜 것은 패시지의 숨겨진 암약 집단, 결명자와 우리를 배신한 장로 그리고 휘하의 예언자들이다. 자신도 그들에게 살해당하였지만 성제님께 구원받았다.

=……!!=

=……!=

「그러니 여러분들도 널리 퍼트려주세요. 메리아놀의 주도, 패시지에는 결명자라 불리우는 타락의 종자들이 메리아놀을 무너트리려 한다고요. 여러분들의 도시도 안전하지 않다고 말이에요!」

이야기가 전해지자 군중은 분노했다.

상징수의 소멸로 발생한 진득한 상실감과 의욕 저하마저 송두리째 날려버리는 분노.

우오오오오오—!!!

이름리아의 이야기에 분노의 함성을 지르는 군중들.

저것은 가스라이팅일까 선동일까 폭로일까.

‘자신의 목적을 위하여 그들을 이용하지만, 따진다면 폭로겠지.’

혼재에 대한 거부감마저 잊고 이름리아에게 다가서는 군중을 뒤로한 환인은 도시의 모든 영혼을 엘위드리스 중앙 수목 광장에 모아놓고 영기의 파동을 널리 뿌렸다.

「……라사, 라사……!」

=에밀!=

「팔다인, 어디있어요……? 저에요, 니아나…….」

=니아나! 여기요! 그대의 팔다인이 여기있소!!=

일반인들에게도 보이게 된 영혼들이 가족을, 연인을 찾아가고 연인과 가족들도 영혼을 찾아가며 성불 전 마지막 상봉의 시간이 이어진다.

죽음과 삶이 갈라놓을 이별에 앞서 마지막 교감을 나누는 사람들.

“…….”

불타 부러진 상징수의 가장자리에서 빛의 정령들이 곳곳을 밝히는 한밤중의 수목 광장을 내려다보던 환인은 옆에 선 프슈드 백작을 보지 않고 입을 열었다.

“앞으로의 상황이 어떻게 진행될지 대충 이해 갈 겁니다.”

=…패시지는 성제와 손잡은 엘위드리스를 탐탁지 않게 여기겠지. 약속하였던 부흥 지원은 대놓고 거두지 않을 테지만, 알게 모르게 차별이 가해질 것은 막지 못할 것이오. 엘위드리스는 어찌 되든 강제로 중립의 길을 걷게 될 거로 생각하오.=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정리할 수 있는 만큼은 정리할 것이지만, 이후의 행보는 아무래도 정치 수 싸움이 될 겁니다. 프슈드 백작, 그때 당신의 역할은 정예 병력을 키워내고 이엘카타의 뒤에서 그녀를 무한히 지지하는 것입니다.”

정치와 영지 경영에는 조언도, 참견도 하지 말고 병사나 육성하며 묵묵히 이엘카타를 지지하기만 해라.

그의 100년 영주의 삶을 전면 부정하는 말이었지만, 프슈드 백작은 담담히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성제, 이것을 받아주시오.=

왼팔에 부착되어있던 소형 석궁을 떼어내 환인에게 넘겨주는 프슈드 백작.

=본인이 오랫동안 고이 간직해온 유물 활, 신비궁 적루요.=

적루敵累. 적을 묶는다는 이름의 활은 얼핏보면 리스트 크로스보우wrist crossbow처럼 생겼다.

그러나 위상력을 주입하자 광명창처럼 옅은 빛과 함께 어퍼링이 활짝 펼쳐지며 스태빌라이저가 생겨나고 활대 또한 리커브 보우처럼 크게 확장된다.

물리 법칙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부피의 증대지만 환인은 상관하지 않고 신비궁을 살폈다.

옅은 빛이 문자처럼 새겨져 무늬같이도 보이는 활의 자태는 그야말로 유물의 신비 그 자체.

프슈드 백작과 싸우는 것도 염두에 두었었기에 신비궁에 대해서 알아보기도 한 환인이었는데, 실제로 본 신비궁은 신비스러운 매력이 가득한 활이었다.

벼락활 유리텔도 유물이지만 같은 유물이라 해도 급의 차이가 있는 법.

벼락활이 하급 유물이라면 신비궁은 활로 한정했을 때 이보다 더 뛰어난 유물이 없다고 할만한 기능을 가졌다.

일단 기본적인 화살의 사거리가 수십 배나 늘어난다. 위상력으로 화살을 생성할 수 있으며 착탄시의 형태도 정할 수 있다.

활시위를 당기면 소유자의 뜻에 따라 독수리의 눈이 발동되어 매우 멀리까지 볼 수 있게 되고, 활시위 조율 상태는 소유자의 의사에 따라 장력을 높이거나 낮출 수 있다.

위력은 위상력의 주입량, 실체가 되는 활의 유무에 따라 10km 바깥의 5m 두께 철판도 두부처럼 꿰뚫어버리거나 폭탄처럼 주위를 날려버리는 수준.

뿐만 아니라 대기에서 위상력을 흡수해 소유자의 위상력을 천천히 회복시켜주며 이렇게 흡수한 위상력 일부는 활로 돌려 스스로 최상의 상태를 유지하는 명실상부 특급 유물이다.

7급 직업자인 프슈드가 홀로 8급 마수를 토벌할 수 있었던 이유에 신비궁 적루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호사가들이 공공연히 말할 정도다.

“이걸 양도해도 괜찮겠습니까.”

=어느 정도 약화는 피할 수 없겠지만, 본인은 신비궁이 없더라도 신비궁사요. 이전에 쓰던 마궁도 있으니 신비궁은 성제가 가져가 주시오.=

어딘가 모르게 홀가분해 보이는 프슈드 백작의 이야기에 환인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신비궁을 챙겼다.

이건 백려강에게 주면 되겠군.

시선을 수목 광장으로 내린 환인은 슬슬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며 양손에 심핵력과 영기를 끌어올리며 여러 개의 잿빛 영혼 구슬을 손안에 응축시켰다.

그의 손바닥 안에서 자애신의 포옹 같은 안락한 빛이 흘러나오며 어둠을 물리기 시작하니, 광장에서 마지막 해후를 이어가던 시민들은 상징수의 위에서 피어오르는 빛의 윤무에 이제 가족과 헤어질 때임을 직감했다.

—————…….

순간 조용히 치솟아올라 하늘을 꿰뚫는 거대한 빛의 기둥.

옅은 떨림과 함께 도시 전체로 퍼져나가는 빛 속에서 영혼들이 하나둘씩 하늘과 이어진 빛의 길을 올라간다.

도시 어디에서도 볼 수 있는 혼령주의 기둥과 그런 기둥 속에서 승천하는 가족의 영혼들.

사람들은 슬픔을 보듬어주는 듯한 빛 속에서 빛기둥이 사그라들 때까지 조용히, 하염없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대규모 성불행이 펼쳐진 다음 날. 도시는 언제 무기력증 속에 파묻혀있었느냐는 듯이 활기차게 변했다.

시민들은 쓰러진 상징수를 차마 철거할 수 없어 1년 넘게 미적거린 것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열심히 피해 지역을 복구해나갔다.

완전히 타버린 것은 긁어내 땅과 섞고 남은 부위는 상태에 따라 분류해서 잘라 목재로 재활용하기 위해 모은다.

성 밖에 천막을 쳐놓고 무기력하게 지내던 시민들도 들어와 도시 구획 정비에 손을 거들고, 그동안 축소하거나 열지 않았던 시장을 대대적으로 열어 물물교환하는가 하면 거의 손 놓았던 논과 밭을 가꾼다.

정신 집중 훈련이 끝나고 쉬는 시간, 김철수와 김영수는 영주성의 햇볕이 따스하게 드는 정원에 드러누워 일광욕하며 중얼거렸다.

“흐아—…… 어제 빛기둥은 진짜 쩔어줬었지…….”

“진짜로……. 완전 아늑했었는데…….”

“…….”

“…….”

혼령주가 주던 아늑함과 따스함을 되새김질하는 소처럼 떠올리던 둘은 자연스러운 연상 작용으로 여자들의 알몸이 주는 따스함과 아늑함을 떠올렸다.

니오네브레스로 넘어온 뒤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매일 여자를 안던 둘이었다. 거의 10일 가까이 여자를 안지 못했더니 슬슬 사리가 생길 것 같다고 느끼는 중이다.

그동안은 최대한 눈치껏, 입 다물고 환인 형님이 요구한 능력향상 훈련에 몰두하고 있었는데…….

어제 펼쳐진 혼령주에 꽉꽉 억눌러놨던 성욕이 그만 새어 나오고 말았다.

이심동체나 다름없던 두 남자는 슬그머니 몸을 일으켜 의미심장한 시선을 교환한다.

“……거리에 놀러 갈까? 아, 물론 환인 형님한테 허락받고.”

“뭐라고 허락받게. 빠구리 못 떠서 막 간질 발작 날 거 같다고?”

김영수의 노골적인 투덜거림에 화들짝 놀란 김철수가 그 주둥이를 틀어막고 욕한다.

“시발 미쳤어?! 애미 없는 티 내지 말고 뒤지려면 혼자 뒤져 새끼야!”

“엑퉷퉷! 우웩! 씨발 개새끼야! 너 손 언제 씻었어!?”

“아니 쫌 아가리 싸물고 들어봐 병신아! 누님들 귀가 얼마나 밝은데 환인 형님한테 사창가 가고 싶다고 말해봐라. 무슨 일이 일어날 거 같냐?”

“……다른 누님들은 몰라도 안느 누님은 우리 머리통을 드럼 삼아 메이스로 두들기시겠지.”

“알면서 그딴 소릴 해?”

“아니 시발아. 반어법 몰라? 그게 되겠냐고 물은 거잖아!”

“시발 그럼 그렇다고 먼저 말하든가!”

투덕거리며 주먹질까지 하던 둘은 이윽고 이게 무슨 병신 짓인가 현타가 와서 풀썩, 잔디밭에 주저앉았다.

현타는 현타고 성욕은 성욕이다.

철수는 포기하지 못하고 끙끙 앓다가 의견을 꺼냈다.

“이런저런 잡스러운 비문 같은 거 붙일 필요 없이 그냥, 형님한테 이렇게만 말하자는 거야.”

어제 따뜻한 빛 속에 있었더니 외로움이 너무 커진다고, 잠깐만 거리에 놀러 갔다 오면 안 되겠냐고.

“……말썽 안 피우고 조용히 다녀만 오겠다고?”

“그래 그거!”

“음…….”

김영수는 철수의 제안에 얼굴을 찡그리며 생각에 잠겼다.

김철수와 김영수가 이러는 이유는 그들의 본능 레벨 때문이었다.

둘은 환인의 여자들에게 무의식의 본능 레벨에서 성적인 대상화를 절대 하지 않고 있었다.

성욕 몬스터나 다름없는 둘이지만, 그런 짓을 조금이라도 한다면 황천행 TGV 열차 탑승권을 끊는 거나 다름없음을 무의식의 영역에서 이해하고 있었던 것.

하지만 인간계를 넘어 천상계 여신급인 여자들을 보며 아무 생각을 하지 않기란 하늘의 별 따기나 다름없다.

그 모순되는 사고 + 흘러넘치는 남성 호르몬 탓에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

성욕이 강하긴 해도 아주 멍텅구리가 아닌 김영수는 의구심 가득한 얼굴로 김철수에게 물었다.

“그게 될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개뻘짓에다 누님들한테 점수 크게 잃을 각인데……. 이실리테 누님은 화나면 밥도 안 주실 거 같음.”

“……어. 그건 안 되는데.”

이실리테의 요리 솜씨는 현대인인 둘의 입맛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현 상황에 불만을 0.000001%도 품지 않는 이유 중 하나가 이실리테의 요리라는 자각이 있을 만큼.

잠깐 고민하던 둘은 머리며 목을 벅벅 긁다가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애미 우리 주제에 여자는 무슨……. 걍 포기해. 형님이 라드세아로 보내주실 때까지 도 닦는다고 생각하지 뭐.”

“쩝. 야, 그건 됐고 옷이나 사러 가자. 나 속옷 떨어질 때 됐음. 돈 가져왔지?”

“어. 나가서 예쁜 여자들 구경하고 나중에 딸딸이나 치든가 해야지…….”

돈은 부족하지 않다. 유르파 누님에게 자신들의 능력 특이점이나 능력을 사용할 때의 상태, 현상 같은 걸 설명해주면서 받은 용돈이 제법 되니까.

외출 허락을 받으러 귀빈실로 돌아간 둘은 환인이 자릴 비운 걸 보곤 방에 남아 마도구를 제작하던 유르파에게 대신 허락을 받았다.

=상점가에 다녀오려고? 용돈은 필요 없니?=

“앗, 넵. 누님께서 주신 용돈이 많이 있어서요.”

=그래도 그건 얼마 안 되잖아. 남자 둘이 여행하는 데 필요한 것도 좀 되구. 여길 떠나면 당분간 도시에 들를 것 같지 않으니까 필요한 거 다 사 오렴. 이것도 가져가고.=

“어, 이건…….”

=아공간 주머니야. 크기는 이 방의 1/4 정도에 무게 감소는 50% 정도니까 쓸 만할 거야.=

“……감사함돠!”

“감사합니다, 누님!”

아공간 주머니 두 개와 용돈 2금화씩을 받은 둘은 허릴 꾸벅 숙이고 성을 나오면서 중얼거렸다.

“유르파 누님 같은 분이 어머니라면 나 진짜 효자 될 자신 있는데.”

알콜 중독자 아버지에 자식을 공기 취급하며 때리고 굶기기 일쑤던 어머니를 둔 김철수가 중얼거리자 김영수도 자신을 버리고 간 매춘부 엄마를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유르파 누님이 아니라 다른 누님 중 어느 분도 우리들 애미보다 백배 천배 나을 듯.”

“시발. 그년들이랑 비교하는 것 자체가 실례 아니냐.”

“큭큭큭.”

낄낄거리며 상점가에 도착한 둘은 이것저것 필요한 물건들을 사고 간식도 사 먹으며 시간을 보냈다.

아르바이트하며 타지 생활을 여러 번 해본 덕에 여행에 뭐가 있으면 편하다는 걸 잘 아는 둘이다.

남자답게 흥정 같은 건 없이 순식간에 쇼핑을 끝낸 둘은 야자로 만든 음료 같은 걸 마시며 길을 오가는 예쁜 플뢰 여자들을 구경하고 몸매를 몰래 품평하면서 시시덕거렸다.

“오 시발, 춘화다.”

“쩐다! 동인지 야망가 퀄리티잖아?!”

그러다 들른 잡화점에서 19금 살색 서적을 발견한 둘은 보물섬을 발견한 기분에 연신 시발 거리면서 잡화점에 쌓여있는 책을 뒤지기 시작했다.

또 다른 춘화집이 있을까 해서.

그러다 고개를 든 김철수가 바깥을 본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

남들보다 유달리 사람 얼굴을 잘 기억하는 김철수는 익숙한 얼굴에 표정을 굳혔다가 춘화집을 보며 불알을 주물럭거리는 영수의 뒤통수를 퍽퍽 때렸다.

“야, 야.”

“아 시발. 머리 때리지 마라……. 왜? 뭔데?”

짜증 내려던 김영수는 심각한 그의 표정에 의문을 드러냈고, 그에게 어깨를 잡혀 창가로 끌려갔다.

김철수는 저쪽으로 걸어가는 여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여자 공간 지각으로 살펴봐. 관리국에서 본 년 같아서 그래.”

“……어, 이시발. 나도 본 거 같은데. 저거 어디서 봤더라?”

“시발, 진짜 어디서 봤지? 지나가면서 얼핏 봤었나?”

머릴 쥐어짜 보지만 기억나는 게 없다.

주저앉아서 창가에 얼굴만 살짝 내민 철수는 길을 오가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유심히 살펴봤다.

더는 본 얼굴이 지나가는 일은 없다.

옆에 똑같이 앉은 김영수는 김철수가 하는 행동을 바라보다 옆구리를 퍽퍽 때리며 말했다.

“야. 그냥 돌아가서 형님한테 말하자. 관리국에 있던 년이 괜히 여길 온 건 아닐 거 아냐.”

“어어. 돌아가…… 잠깐! 이건 사고!”

재빨리 잡화점 주인에게 달려가 춘화집 한 권을 제 돈 주고 사는 김철수였다.

눈치 빠른 잡화점 주인에게 1.3배는 바가지를 썼지만, 김철수와 김영수는 조금도 눈치채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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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대충 늦어서 죄송합니다 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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