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궁기담-763화 (763/813)

763 수목 도시 엘위드리스

엘위드리스 영주가 돌아온 것은 청령이 된 기사들의 정보 수집이 끝난 뒤의 밤늦은 시각이었다.

웅성웅성—……

쿠에~……

%@^#&……

소파에 앉아 정신 집중, 요즘 들어 영혼술의 향상 목적보단 복잡한 시국 정황의 정립 및 재확인, 수집한 정보의 정리 작업용으로 바뀐 명상을 이어가던 환인은 바깥의 소란에 눈을 뜨고 창가에 섰다.

영주성의 도개교를 넘어오는 일단의 기승騎乘 무리와 그런 그들을 맞이하는 성의 하녀, 하인들.

쿠에에 타고 있던 기사들이 내리고 하녀들이 푸르륵거리며 손질을 요구하는 쿠에들을 하나하나 데리고 사라진다.

이어 하인들이 기사들의 장비 탈착을 돕는데 기사들의 장비는 하나같이 푸른 액체에 젖어있거나 부서지고 찢어진, 격한 전투의 흔적이 역력했다.

그런 수십 명의 기사들 속에 유달리 깔끔하고 단정한 제복 차림의 남자가 있었다.

흔한 직업자들의 아우라와 달리 유난히 눈에 띄는 강렬한 아지랑이의 아우라.

빛내림을 형상화해 제작한 듯한 활을 팔에 찬, 정오의 작열하는 모래사막에서나 볼 수 있을법한 아우라의 금발 금안 남자는 미리아 수석 집사에게 활을 넘기다 고개를 들었다.

수려한 플뢰의 외모는 어디 가고 비쩍 마른 남자의 시선이 창가에 서 있던 환인과 마주친다.

‘저 남자가 엘위드리스 영주군.’

군살이 없다는 수준을 넘어 거식증 환자처럼 말랐지만, 눈빛만은 형형하다.

잠시 환인과 시선을 교환하던 엘위드리스 영주는 미리아가 입을 열자 고개를 돌리더니 먼저 성안으로 들어갔다.

「아까 그 남자가 엘위드리스 영주 맞지?」

그의 어깨에서 같은 것을 본 환연의 질문에 여자들이 환인을 돌아본다.

하지만 환인은 대답하지 않고 엘위드리스 기사 영혼들이 가져온 정보를 조합하는 데 정신을 집중했다.

무시가 아니라 환연이 말 한 것을 놓칠 정도로 생각에 집중하고 있었던 것.

“……이실리테, 안느. 영주와 면회가 이루어질 테니 준비해라.”

=네, 주인님.=

=응.=

여자친구들이 옷차림을 정돈하고 있을 때 환인도 벗어두었던 천릉의 제복과 코트를 걸치고 창밖의 푸른 보름달을 구경하며 기다렸다.

예법을 생각하면 내일 오전 중에 면회가 이루어질 테지만, 엘위드리스 영주의 몰골과 눈빛을 보면 그런 예법을 따를 것 같지 않다.

그렇게 생각하며 광명창의 코어를 열 번 정도 회전시켰을 때.

똑똑똑.

노크 소리가 거실에 조용히 울려 퍼졌다.

이모렐이 조용히 문을 열자 앞에 선 미리아 수석 집사가 긴장한 모습으로 허릴 숙인다.

=성제님. 늦은 시간에 방문을 용서하십시오. 엘위드리스의 주인이신 프슈드 오울 엘위드리스 백작 각하께서 방금 복귀하시었습니다.=

“이른 복귀군요.”

대답하는 환인의 표정과 대답이 나쁘지 않아서일까. 미리아 수석 집사가 조심스레 본론을 꺼냈다.

=귀빈께서 방문하시었다는 연락에 일정을 앞당겨 급히 돌아오셨습니다. 영주님께서는 지금 대담을 가지길 희망하십니다만, 혹 성제님께서 원치 않으신다면 내일로 미루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도 괜찮습니다.”

환인이 걸음을 옮기자 이실리테와 안느가 뒤를 따른다. 호위의 동행에 미리아 수석 집사는 잠깐 입술을 달싹였지만, 별말 없이 그를 영주 집무실로 안내했다.

엘위드리스 영주의 집무실은 특별하거나 특출난 곳 없이 귀족 영주의 집무실이면 으레 상상하는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책상 뒤 벽은 전면 통유리로 엘위드리스 시를 내려다볼 수 있게 되어있었다.

좌우 벽은 책이 가득한 책장으로 채워졌고 천장에는 커다란 마도구 샹들리에가 은은한 빛을 뿌려 방을 밝힌다.

바닥에는 복잡한 무늬의 양탄자가 깔려있으며 영주의 책상은 그런 집무실 한가운데 있었다.

전체적인 배색은 짙은 떡갈나무 색으로 약간 메마르고 중후한 느낌.

환인이 호위인 영혼 기사 둘과 함께 집무실에 들어서자 어둠에 잠겨있는 도시를 내려다보는 영주의 뒷모습을 볼 수 있었다.

=환인 성제 예하께서 도착하셨습니다.=

환인과 함께 입실한 미리아 수석 집사의 조용한 목소리에 풍성하지만 푸석한 긴 금발을 짧게 묶은 남자가 몸을 돌렸다.

=성제님을 모셔 오느라 수고했네. 자넨 그만 가서 쉬게.=

겉모습은 해골처럼 비쩍 마르고 안색도 거무죽죽하지만, 목소리는 또렷하고 정정하다.

=…….=

미리아 수석 집사는 그런 영주를 향해 수많은 감정이 깃든 얼굴로 입술을 달싹이다가…… 조용히 고개를 젓는 영주의 모습에 하얀 장갑이 뿌득, 소리가 날 정도로 주먹을 움켜쥐고 허리를 깊게 숙였다.

=이쪽에 앉아주시오.=

수석 집사가 뒷걸음으로 집무실을 나가자 엘위드리스의 영주, 프슈드=오울=엘위드리스가 무표정으로 환인에게 집무실 한켠의 소파에 안내했다.

환인과 영주가 마주 앉고 이실리테와 안느는 환인의 뒤에 선다.

이어 하녀가 카트를 밀고 들어와 기호품인 차를 내려 영주와 성제의 앞에 한 잔씩 놓고 나가자 그때까지 침묵을 유지하던 프슈드 백작이 조용히 말했다.

=접대가 소홀함을 이해해주시오. 가문 내 여유 자금을 모두 도시 재건에 쏟아붓고 있는 터라 대접해드릴 것이 없소.=

곁들이는 디저트도 없이 달랑 차 한 잔. 그것도 보관한 지 오래된 듯 산화하여 아주 희미한 탄내가 나는 차다.

딱히 까탈스럽지 않은 환인은 그런 차를 들며 대답했다.

“영주성의 하인, 하녀들의 저녁 식사가 검은 빵 한 덩이에 고기가 조금 든 수프인 것에서 짐작했습니다.”

=…….=

잠시 멈칫했던 프슈드 백작은 말없이 조용히 차를 비워나갔다.

마치 마지막, 최후의 한 잔이라는 듯이 향과 맛을 음미하면서.

그리고 비워진 찻잔을 소리 없이 내려놓은 백작은 각오한 것처럼 눈을 감고 말했다.

=본인의 각오는 끝났소. 이 목 하나로 성제의 분노가 모두 가라앉을 거라 생각하진 않소. 그러나 모쪼록 자비를 베풀어 죄 없는 엘위드리스의 시민들, 가문의 방계와 기사, 병사들만큼은 살려주시길 부탁드리오.=

환인은 죽음을 각오한 영주를 무심히 바라보다 다리를 꼬고 팔걸이에 팔꿈치를 대고 세우며 건방짐이 드러나는 자세로 말했다.

“프슈드 백작은 무능한 영주의 표본 같은 인물이군요.”

=…….=

“영주로서 해선 안 될 선택지만 반복하고, 신상필벌이 명확해야 할 때 에둘러 덮어 두어 큰 논란을 만들고, 그런 주제에 눈치도 없어 재난을 불러들이지요. 그렇다고 좋은 아버지였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니, 결과가 가문의 몰락입니다.”

손가락을 꼽으며 하나하나 꼬집는 행동에 프슈드 백작의 얼굴이 희미한 고통의 흔적을 띈다.

“싸우는 것만은 잘해서 어떻게 시민들과 기사들의 존경을 샀지만 그 외에는 형편없으니 실질적으로 엘위드리스가 이 꼴이 된 것에는 당신의 책임이 9할 이상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고작 죽음으로 책임을 지고 신의 정원으로 도망칠 생각이나 하다니. 한심합니다.”

=…할…… 말이 없소.=

힘겹게 대답하는 프슈드 백작에게 환인의 질문이 하나 더 날아들었다.

“알고 계셨습니까? 당신이 보낸 사과문은 저에게 단 한 통도 전달되지 않았습니다.”

=……!?=

“당신의 곁에 붙어있는 첩자들이 빼돌린 겁니다. 그런 것도 모르고 영주가 나서지 않아도 될 토벌에 나서며 주변 관리를 소홀히 하니……. 대체 당신은 영주입니까 전사입니까? 영주라는 직위에 자각이 있긴 한 겁니까?”

자신이 쓴 편지가 전부 빼돌려졌단 것을 정말 몰랐는지 프슈드 백작의 얼굴이 확연한 고통으로 일그러진다.

“바보 같은 것도 정도가 있는 법인데, 알아보고 있자니 정도를 넘어 제 손을 쓰자니 손이 더러워질까 손 쓰기 싫어질 정도였습니다.”

딱, 환인이 손가락을 한 번 튕기자 이름리아가 스르륵, 유령처럼 환인의 곁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선명한 혼재의 모습에 눈을 부릅뜬 프슈드 백작이 벌떡 일어난다.

=이름리아!=

「성제님. 아버님은 바보가 아니세요. 겁쟁이일 뿐.」

그런 백작의 외침을 깔끔하게 무시한 이름리아가 광기로 굳어버린 반쪽 얼굴을 손으로 가리며 그나마 멀쩡한 반쪽 얼굴로 차가운 비난을 퍼부었다.

「사랑하는 여인이 살해당했지만 원로들의 담합과 저항이 무서워 엄벌을 내리지도 못했죠. 그 사이에서 난 딸이 천한 잡종이라며 쫓겨나던 중에도 마수 토벌을 나가버리고, 내전이 벌어질 거란 것을 알았음에도 결단을 내리지 못해 사태를 최악으로 떠밀었어요.」

그나마 다행인 것은 가족과 그를 보필하던 부관, 그를 따르던 귀족 가문과 일가가 씨몰살을 당하고 내전이 격화되자 원흉인 원로들을 참살한 걸까.

그마저도 주변의 중요한 사람들이 모두 다 죽고 나서야 등 떠밀리듯 움직였으니, 기사들이 모아온 정보를 토대로 자초지종을 알게 된 이름리아가 프슈드 백작을 향해 치를 떨게 된 것도 이상하지 않다.

딸의 충격적인 모습과 혹평에 굳어버린 프슈드 백작은 환인의 이야기가 시작되자 그에게서 고개를 돌리지 못했다.

“이곳까지 오면서 이상하다고 생각한 적은 몇 번이나 있었습니다. 백작 가문이라 해도 역사가 메리아놀과 함께할 정도로 오래된 명문가인데, 예지를 혈계 능력으로 지닌 가문인데 일련의 반응은 멍청하다고 해야 할지…….”

마치 머리가 없는 도마뱀처럼 사지와 꼬리가 제멋대로 움직이는 느낌이었다.

손발이 엉망진창으로 움직이는데 몸이 따라가는 형상이라고 할까.

“머리는 없고 한쪽 손발은 원로파, 다른 쪽 손발은 공녀파, 몸은 엘위드리스 가문. 주체가 없으니 사지가 제멋대로 활동하며 사방을 찔러 적을 만듭니다. 거기에 자극받은 협의회가 엘위드리스를 제거할 생각을 품는 게 당연합니다.”

예지의 유용함, 그리고 독점으로 엘위드리스 가문은 오래전부터 적이 많았다.

이러한 이유가 뒤섞여 협의회는 휘하 세력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는 프슈드 백작 치세에 엘위드리스의 힘을 깎아내야겠다고 작심했다.

최초의 발단은 이엘카타가 영혼사로 각성한 것이었다.

원로파는 이엘카타의 복귀를 주장했지만, 프슈드 백작은 고민하며 시간을 끌었고 그사이 이엘카타는 영도의 영혼 기사들과 조우해 영도로 떠나버렸다.

분쟁의 불씨는 그때 태어났다.

그리고 자그마한 불씨가 본격적으로 타오르기 시작한 것은 이엘카타가 전견시로 미래를 보았을 때였다.

주도의 보석궁에 머무르던 엘위드리스 가문 소속 예지관을 불러들인 것이 계기가 되어 그 내용이 협의회에도 알려졌는데, 프슈드 백작의 무능은 이때도 발휘되었다.

개인적으로 보좌관에게 명령해 이엘카타의 신변을 조사하라 했는데 거기서 이엘카타가 혈계술을 각성하였고 전견시를 본 당사자라는 게 원로파에게도 알려진 것이다.

실수라면 실수고 협의회의 조작이라면 조작이겠지만, 커다란 불화를 일으킬 수도 있는 정보의 간수를 소홀히 한 것은 빼도 박도 못하는 백작의 무능.

가주와 원로 사이에 불거진 불화(이엘카타 모녀)를 파악한 협의회는 비밀리에 원로들을 자극해 성제 암살 사건을 추진시키는 한편 공녀파와 원로파 양쪽을 이간질해 내전을 조장했다.

뇌관이 격발한 것은 프슈드 백작이 넘쳐나는 나가족을 토벌하기 위해 도시를 비웠을 때 벌어졌다.

협의회의 이간질로 영주에 대한 불신, 이엘카타 모녀를 죽이고 쫓아냈다는 죄가 있으니 불신과 불안이 최고조에 달했던 원로파는 공녀파의 압박이 기폭제가 되어 자기 보호를 위해 병력을 소집했다.

그 틈에 섞여 있던 협의회의 끄나풀은 사고인 척 일부러 공녀 측 인사를 대놓고 살해해버렸고, 그렇지 않아도 긴장감이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공녀파는 준비된 기사를 일으켜 원로파를 제압, 제거하려 했지만…….

「귀족 거리의 공녀파 저택이 폭발에 삼켜지기 시작했어요. 사람들은 당황하고 분노하였고, 혼란의 틈새에서 저는 원로파로 변장한 끄나풀에게 희롱당하다 살해되었어요. 마지막 숨을 뱉기 전 제 망막에 맺힌 것은 불타오르는 상징수였죠. 그때부터 비탈길을 굴러내려 가는 수레처럼 광기가 멈추지 않게 됐을 거예요. 이쪽은 공녀가 살해당하였고 저쪽은 공녀를 살해하였다는 누명을 썼으니까요.」

이름리아의 손이 보기 좋게 부푼 젖가슴의 골짜기 위쪽, 피에 젖은 부분을 벌리자 속살이 갈라지며 날붙이에 찔린 흔적의 심장이 드러났다.

=…….=

프슈드 백작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을 때 환인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당신이 어떻게든 사태를 무마시키려 열심히 움직였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과를 내지 못한 노력은 의미마저 빛바래기 마련입니다.”

환인이 손가락을 한 번 더 튕기자 집무실 문이 벌컥 열리며 환인이 거둔 엘위드리스 기사 영혼들이 몇 명을 끌고 들어왔다.

엉망진창으로 얻어터졌지만 아영의 성술에 얼굴만 누군지 간신히 알아볼 정도로 치료된 남녀 넷.

“협의회와 주도의 숨겨진 비밀 집단이 당신에게 붙여놓은 첩자입니다. 다 아는 얼굴이지요?”

=요……한, 아밀라! 슬레트! 빈시아! 너희가 어떻게……!=

가뜩이나 해골 같던 프슈드 백작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주먹을 떨었다.

그 모습을 이름리아는 광기가 차오르는 얼굴로 비웃는다.

「영주로서 열심히 노력한 결과가 이 모양 이 꼴이에요. 아버님, 기분이 어떠신가요? 간살당한 딸이 혼재가 되어 저주불에 타오르는 꼴을 보신 기분, 어떠하신지 모쪼록 들려주지 않으시겠어요?」

=…….=

고개를 푹 숙인 채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는 프슈드 백작을 무표정으로 응시하던 환인이 가볍게 손을 젓자 악마처럼 얼굴을 일그러트리던 이름리아가 원래의 반듯한 표정으로 돌아가 스윽 뒤로 물러섰다.

영주가 탁해진 목소리로 묻는다.

=……성제께서는 본인에게 무엇을 바라시오? 무엇을 바라시기에 내막을 전부 알려주시는 거요?=

“흠…… 충격이 그리 크지 않으시군요. 이미 알고 있거나 짐작하고 있었던 모양인데…… 협의회와 이미 접촉을 하셨나 봅니다. 내전이 본격적으로 벌어지기 전……? 그 정도였나 보군요. 아, 지금 도시에 밀려들고 있는 자재와 물자가 당신의 선택의 결과물입니까.”

「…….」

핏빛으로 물든 이름리아의 섬뜩한 시선이 프슈드 백작에게 향한다.

“대충 짐작은 가지만, 협의회와 맺은 밀약이 무엇인지 말씀해주시겠습니까?”

프슈드 백작은 모든 걸 포기한 것처럼 입을 열었다.

=……성제의 암살에 대한 책임을 가문에 묻는 대신…… 이엘, 을 다음 대의 가주로 올리는 것이었소. 오르기 전… 최대한 도시를 재건하고 인재를 뽑아둘 것도…….=

“뽑은 인재는 협의회나 결명자의 간첩, 첩자들 투 성이었을 테니 결국 협의회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난 거군요. 엘위드리스 가문을 주도 협의회에 바친 기분이 어떻습니까.”

=……크윽.=

신음하는 프슈드 백작을 보며 피식 웃은 환인이 손짓하자 기사 영혼들이 끌고온 남녀 플뢰 넷의 목을 쳤다.

터더덩- 머리가 바닥에 떨어져 데굴데굴 구르고 잘린 단면에서 뜨거운 피가 푸확, 뿜어져나왔다가 졸졸 흘러내리기 시작한다.

“프슈드 백작.”

=…….=

크나큰 정신적 충격으로 생기가 급격히 빠져나갔는지 프슈드 백작은 지친 기색으로 대답도 하지않았다.

보통 사람은 저런 몰골로 크나큰 정신적 충격을 받는다면 쇼크사도 할 수 있다.

하지만 7급 직업자의 정신력과 생명력은 이 정도로 무너지지 않는다.

환인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입을 열었다.

“엘위드리스 가문을 미래로 이어갈 수 있는 길은 하나뿐입니다.”

=…….=

“내일모레 즈음 일단의 인물들이 올 겁니다. 제가 거둔 정보 집단의 인물들인데 그들을 곁에 두고 중용하십시오. 가문이 최대한 정상을 되찾을 수 있도록 조력을 아끼지 않을 겁니다.”

=……성제도 엘위드리스 가문이 필요한 거요?=

피폐해진 얼굴로 묻는 엘위드리스 영주에게 피식, 웃음을 지은 환인은 다리를 꼰 자세 그대로 프슈드 백작을 오만하게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당신의 가문 따위에는 관심 없습니다. 아니, 저는 이 세계 자체에 관심이 없습니다.』

=……!!=

꽈악, 그의 두 주먹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보며 환인이 다시금 웃음을 짓는다.

전견시에 나온 자신이 말한 네 문장. 그중 하나를 듣고 격정을 가라앉히려 애쓰는 프슈드 백작에게 말했다.

“아무튼, 그들을 곁에 세워두고 그들이 말하는 걸 귀담아들으십시오. 그렇게 가문과 영지를 정리하며 기다리다 보면 메리아놀이라는 국가에 변화의 바람이 불 겁니다.”

=…….=

“그 뒤에는 이엘카타가 돌아올 테니, 돌아온 이엘카타에게 영주의 지위를 이양한 다음 단순한 마물 사냥꾼으로 그녀의 지시에 따르기만 하면 됩니다. 생각할 필요 없이, 판단을 내릴 필요도 없이 그저 골렘처럼 시키는 것만 하는 거죠. 물론 당신에게 죽음은 허락하지 않겠습니다. 늙어 수명이 다해 죽을 때까지 이엘카타의 사냥꾼으로 살아야 합니다. 쉽지 않습니까?”

5분 동안 수십 번의 표정 변화를 보여주던 프슈드 백작은 피폐하고 후회로 가득 찬 얼굴을 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환인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으며 대답했다.

=지시에…… 따르겠습니다…….=

환인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자 그의 옆에서 전부 지켜보며 표독한 표정을 짓던 이름리아는 삽시간에 다정한 표정으로 환인의 어깨를 톡, 톡, 건드렸다.

「성제님. 저 영혼들을 제 마음대로 해도 될까요?」

무엇을 하려고? 환인이 약간의 궁금증을 담아 허락하자 이름리아가 유령처럼 떠서 방금 죽임당해 영혼으로 빠져나온 영혼 넷에게 다가간다.

그리고.

「k̸̢̹͇̟̗̙͈̝͙͉̬͕͈̲̫̽͑̌̊͊̿͑͌̃͐͠k̷̢̜̮̬̰̲̳͓̋̀͋̇͐͜͠ŷ̸̨͍̘̲̝̮̳̠͕̩͙̃̈́̓̑̉̇̕͜a̵̛͉͐͐̂ȁ̵̡̼̱̖̱͇͍͙̦̄̐̎͛͌͂̆̆̂͆͛̀̕͝ȁ̴̢̩̠̬̰̥̼͈̭͓̮̜̽͋͛̎̃̕a̴͎͕͈͍̲̗̣̪̪͉̖̼̺̒̈́̆͑̓̽̊͑̌̈́̈́̏̚͠ȁ̸̮̻̥͍̣͍a̶̢̗̥͙̟̹̮̝͕̦͈̣̳͚̍́͗̾̃̓͝a̷͖̰̘̩͍̞͍̺͙̹̰̮̯͇̖̚—̷̨͌̔̆̃̈̏̿̅—̷̛̹̟̐̑̒̾̎̂͝!̶̹͈̓̐̋͌́̑̆̽̎̉͂!̵̞͎̻͍̀͑̍͛͐̀̒̾͗͠!̷̛͉̖̮̣͍̜̪͖̖͔̳̣̲͇̲̿́͐̆͆̓̑!̶̡̛̝̈́̒́̾͒̈́̓̑͆̋ͅ」

아직 정신이 멍한 네 영혼을 향해 영혼의 절규를 내질렀다.

시뻘건 혼재의 빛이 밴시의 숨결처럼 영혼 넷을 휘감자 그 영혼 넷도 절규를 내지르며 삽시간에 타락, 이름리아보단 덜하지만 핏빛에 물들어 흐느적거린다.

그것이 못내 마음에 드는 듯, 마녀처럼 입가를 가리고 요사하게 웃던 이름리아가 환인에게 물었다.

「후후후. 성제님, 저 외에도 적옥이 필요하셨죠? 저자들도 복수에 써주시면 감사할 거예요.」

=…….=

=……!=

경각심이 든 이실리테와 안느가 슬쩍 무기에 손을 가져가니 그런 그녀들에게 이름리아가 교태를 부리듯 사악한 악마처럼 웃는다.

「걱정하지 마셔요, 성제님의 부인분들. 성제님의 허락 없이는 아이들을 절대! 늘리지 않을 테니까요. 저는 그저 배신한 돼지들과 협잡에 손을 거든 자들의 목숨만…… 후후후후…….」

환인은 그런 이름리아를 보며 밴시 퀸을 떠올리다 넷의 영혼은 계약하지 않고 단순 구슬로 변화시켰다.

‘그래도 적옥은 적옥이군.’

시험 삼아 하나를 구슬 상태에서 풀어준 다음 신식 평온의 파동을 국소적으로 펼친다.

「아, 아아. 아아…….」

그러자 망가진 보이스 레코더처럼 지지직, 잡음과 비슷한 신음을 내더니 그대로 희미한 빛무리로 변해 성불해버렸다.

이정도라면 도시 전체가 혼재로 물들더라도 신식 혼령주 한 번이면 전부 정화될 것이다.

환인은 무표정으로 나머지 구슬 셋을 갈무리하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제법 괜찮은 적옥 생산기를 얻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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