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궁기담-760화 (760/813)

760 엘위드리스로 가는 길

환인 일행이 배를 타고 몰드레테 해협을 건너고 있을 그 무렵.

엘위드리스 출신의 예언자들은 공황과 광란에 빠져 정신 착란을 일으키고 있었다.

타비아누스 아눌란 투르시온, 차원 방랑자 관리국의 국장이자 또다른 이면의 신분을 지닌 그녀는 붓으로 그린 듯한 은녹색 눈썹을 희미하게 찌푸리며 보고서를 가져온 비서관에게 물었다.

=19명 전원이 정신 이상을 일으켰다고요? 세계 종말의 예지라도 본 건가요.=

=그렇다고 보기에 불가사의한 점이 많습니다. 그만한 규모의 예지라면 일상생활 도중 각성 상태에 돌입한다는 이전 기록이 있으니까요. 그런데 19명 전원이 광란과 발광을 일으켰지만, 시각이 제각기입니다.=

=우리 측 예언자들은 어떻죠?=

=보석궁의 예지관들은 전원 무사합니다.=

=엘위드리스 측 예언자들 뿐인가요…….=

타비아누스는 미간의 주름을 신경 쓰며 보고서의 나머지를 빠르게 읽는다.

보고서에는 호위로 투입되어있던 자들에 의해 광란을 제압당한 시기, 정신 착란을 일으켜 의료원으로 호송한 시기 등이 적혀있는데 비서관의 말대로 각자 시각이 다 달랐다.

그러나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으니.

=7시간 전을 기점으로 각자 잠자리에 든 다음 벌어졌군요.=

=예. 간신히 대화가 가능한 예언자를 통해 예지를 들었는데, ‘황금빛이 쏟아져 자신을 영혼째로 녹이는 광경이었다’는 답을 받았습니다. 수사관의 조사에 따르면 뇌가 수면을 위해 긴장이 이완된 순간 어떤 초월자의 살의가 뇌를 직격, 정신이 버티지 못한 것이라 보고 있습니다.=

=……어떤, 초월자인가요.=

질문하는 타비아누스도, 질문을 받은 비서관도 동일한 한 명의 이름과 얼굴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열셋이나 되는 상급 심판관을 잃은 일과 한발 늦은 연락으로 인해 특별히 공을 들인 대對 아신 공격용 투뢰投雷까지 상실한 것으로 두통이 도지고 있는데 이번에는 예언자들까지…….

뽀각

책임 운운하며 상급자들에게 갈굼 받은 기억을 떠올린 타비아누스의 손아귀에서 펜 마도구가 파열음을 내며 부러진다.

이번 상급 심판관들의 사망은 전적으로 심판관들의 돌발행동 때문이었다.

심판관들에게 주어진 임무는 관찰과 감시였다.

두 실험체의 시술은 애초에 특급 기밀이라 외부에 알릴 수도, 공론화할 수도 없는 부류였기에 그 둘이 얼마나 암시대로 움직여 주술구를 발동시킬지, 만약을 대비하여 관찰 겸 감시로 심판관들을 보내놓았던 것인데……

=…….=

하지만 실험체가 돌발행동을 벌이자 심판관들이 직업윤리를 일으켜 둘을 막으려 들었고 전투가 발생, 몰드레테에서 파괴 행위를 벌였고 결과적으로 성제의 개입 빌미를 주게 되었다.

뿌려놓은 눈을 통해 실험체 둘은 멀쩡히 살아있다는 정보가 들어오고 있다.

주술구가 제거되었고 암시도 풀렸으며 이쪽의 정보까지 일부 노출되었다고 봐야 한다.

처음부터 결명회決明會에 대해서는 조금도 노출하지 않았고 실험체들은 계집들 살결에 파묻혀 멍청하게 지내도록 손을 써놨지만, 성제의 그 지력을 생각한다면 제법 많은 걸 알아냈을 게 틀림없다.

여기에 예언자들까지…….

손짓해 비서관을 내보낸 타비아누스는 지끈거리는 두통을 참기 힘들어 얼굴을 감싸 쥐고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답답하네요…….=

지금 패시지의 상황은 극히 좋지 않다.

성제의 노림수가 얼마나 이루어졌는지 알 수 없지만, 타 교단의 방해 탓에 결명회의 활동이 극도로 위축되었고 회會의 활동을 위한 ‘소재’와 재료 수급에도 차질을 빚고 있다.

타국에서 ‘소재’의 발견도 부쩍 어려워졌으며 어떻게 발견하더라도 이미 해당 국가 기관에서 확보한 상태이기 일쑤.

‘소재’의 인도를 요구하여도 성제의 폭로 탓에 1년 전까지만 해도 순순히 ‘소재’를 넘겨주던 국가들이 이제는 콧방귀만 끼고 있다.

‘소재’도 그렇지만 소재의 각성 실험을 위한 재료 또한 공급받지 못한 지 오래되었다.

극히 예민한 재료의 성질 탓에 반년 넘게 비가 내리고 있어 물의 기운이 압도적으로 치솟은 현재 공수 자체가 불가능하다.

위상력의 유동에도 민감하게 변질해버려 공간 이동도 쓰지 못하는 상황. 실험이 중단된 지 이미 3개월째다.

‘이러한데도 그 노인들은 결과물을 내놓으라 재촉하기만 하죠. 어찌나 탐욕이 가득한지, 흉물스럽기 그지없어요.’

속으로 누군가를 잘근잘근 씹던 타비아누스는 스트레스로 인한 금단 증상이 서서히 밀려오는 걸 느꼈다.

차분히 있지 못하고 검은색 스타킹에 감싸인 다리를 떨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전면 통유리 근처를 서성인다.

흰색 블라우스에 검은색 스판 미니스커트, 검은색 스타킹의 플뢰답지 않은 육감적인 몸매가 안절부절못하니 그것만으로도 뭍 남성의 가슴에 불을 지필 정도.

=한 개비만…….=

타비아누스는 결국 참지 못하고 궐련상자에 손을 뻗었다.

특수 약재 처리한 진갈색의 궐련에 이윽고 불이 붙어 음울한 흰색 연기가 피어오르니 두통과 스트레스로 약하게 주름져있던 그녀의 이마가 깨끗하게 펴진다.

타비아누스는 하나에 10금화를 호가하는 궐련을 아껴 피우며 몽롱해지는 머릿속을 일깨우면서 생각했다.

‘성제의 아우라가 황금빛이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졌어요. 예언자들이 예지했다는 황금빛이 정말 성제의 빛이라면…….’

예언자들이 본 것은 자기 파멸의 미래다.

엘위드리스 예언자들이 보았다는 전견시에 대한 것은 그녀도 알고 있다. 그리고 일부가 빗겨나 실현된 예언이란 것도.

전견시는 정체불명의 흑색 기둥에 엘위드리스가 완전히 소멸하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하지만 현실은 프슈드=오울=엘위드리스의 피나는 노력에 도시의 상징수象徵樹가 불타 쓰러지고 대다수 귀족, 기사와 일부의 시민이 죽는 것으로 끝맺었다.

그 후로 아무 반응이 없다가 오늘 갑자기 예지의 반동이 돌아오다니, 이제까지 무시로 일관하던 성제가 예언자들을 처분하기로 마음먹었다는 걸까.

하지만 왜 하필 지금이지?

=……제 알 바는 아니죠.=

정신 착란과 광증은 섬세하고 예민한 정신력을 요구하는 예언자들에게 극독.

그것들은 실용 가치를 잃어버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딴 쓰레기들보다 실험체 2기를 상실한 지금 집중해야 하는 것은…….

‘성제가 가졌다는 증거물이에요.’

그가 활동을 개시한 것은 약 5년 전으로 파악되었다.

5년전이면 한창 코인토스 정책을 시행중이던 시기. 만약 그가 정말 코인토스로 차원을 건넜다면, 그 코인의 확보에 온 힘을 기울여야 한다.

상급 심판관 열셋을 한순간에 쓸어버릴 정도의 무력은 패시지 최고 무력 집단인 하얀 나뭇잎 전사단과 맞먹는 수준이다.

성제까지 나선다면 거기에 흑색 나뭇잎 법제단까지 전부 동원해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도시의 모든 전력과 초월 정령 계약자인 왕족까지 동원해야 승률을 9할에 맞출 수 있다고 할까.

더해서 무엇을 더 숨기고 있는지 알 수 없으니 정면으로 맞붙는다면 이쪽의 압도적인 손해다.

그러니 그런 일이 벌어지기 전, 성제의 코인 넘버링만 알아내면 아무런 피해 없이 그 골칫덩어리를 이 세계에서 추방해버릴 수 있다.

궐련이 타들어 갈수록 타비아누스의 눈빛이 점차 음울한 빛을 띠기 시작했다.

배가 남 몰드레테를 출항하고 1시간, 환인은 잠시 생각하다가 일등항해사로 배를 움직이는 해달 귀의 여자 수병에게 물었다.

“북 몰드레테가 아닌 다른 곳에 정박해줄 수 있습니까.”

일본의 세일러 수영복 같은 해병복 차림의 수병은 조타를 잡고 풍향과 조수를 읽으며 항해하다 환인의 요청에 잠시 눈을 끔뻑였다.

왜 다른 곳에 정박해달라는 걸까. 보통 이런 요구는 불법 체류자나 범죄자들이 하는 요청인데…….

성제가 범죄자일 리 없고 불법 체류자는 더더욱 아닐 테고, 성제가 배를 망가트리거나 몸을 요구하더라도 요청을 전부 들어주라 차석 집사가 명령했으니…….

=가능합니다!=

“그렇다면 이 해역을 벗어나 동쪽으로, 갈 수 있는 곳까지 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옛!=

힘차게 대답하는 수병을 두고 점차 작아져 가는 남 몰드레테의 항구를 응시한다.

북 몰드레테에는 모르긴 몰라도 패시지에서 보내놓은 끄나풀과 비둘기들이 잔뜩일 것이다.

딱히 이쪽의 동향과 동태가 전달되어도 상관은 없지만, 속 편히 정보를 줄 생각은 없다.

저쪽이 당황해서 동분서주할수록 빈틈이 드러날 테고 하얀 늑대들은 그런 빈틈을 더욱 쉽게 파고들 기회를 얻을 수도 있을 테니까.

‘남은 시간은 한 달인가.’

지하율이 말한 거대 골렘의 완성까지 앞으로 한 달가량.

……아무리 생각해봐도 일정이 좀 더 밀릴 것 같다.

몰드레테에서 패시지까지 거리는 콜라이도에서 몰드레테까지의 약 2배 거리.

콜라이도와 몰드레테 사이는 비교적 평탄한 황야-평야였다. 하지만 패시지는 남국의 나라처럼 곳곳에 밀림이 형성되어있다 들었다.

또 패시지를 향해 직진하는 것이 아니라 엘위드리스에 들러 예언자들의 정보를 얻을 예정이고, 신수가 자리 잡고 있다는 곳을 지날 계획이다.

콜라이도에서 몰드레테까지 마차를 타고 20일 넘게 걸린 것을 생각하면 여기서 패시지까지 1달은 가볍게 넘어갈 수 있다.

‘이번에 알아낸 것도 전해줄 겸 이야기해두는 것이 좋겠지.’

갑판으로 내려와 선실로 향하던 환인은 이실리테가 실루와 갑판 가운데, 마스트 근처에 앉아있는 걸 볼 수 있었다.

둘 다 표정도 좋지 않고 기운도 없는 모습.

실루는 화염 속성이니 그렇다고 해도 이실리테가 저런 모습을 보여줄 줄은 몰랐다.

몇 번은 호수 근처에서 싸우기도 했고 한 번은 빠지기도 했었는데 그땐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왜 저렇게 삐걱거리는 걸까.

=주인님.=

“괜찮으니 쉬고 있어라.”

=죄송해요…….=

삐이…….

목을 움츠린 실루와 기운 없어 보이는 이실리테의 머리를 쓰다듬어준 환인은 김철수, 김영수에게 무언가 이야기해주는 안느를 지나 선실로 들어갔다.

“…….”

선실 문이 닫힐 때까지 환인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김철수가 안느에게 재차 확인 삼아 묻는다.

“환인 형님이, 5년째 여행하고 있으시다고요……?”

=응. 한곳에서 가장 오래 머물렀던 게 한 달 정도였나? 그것도 이런저런 일 하고 일정 때문에 머물렀던 거지, 대부분은 이동에 소비했어.=

“…….”

“…….”

김철수와 김영수는 할 말을 잃었다.

둘은 방학 기간이 긴 대학 특성상 여름, 겨울 방학 때마다 꽤 먼 곳까지 페이가 쎈 알바를 찾아 돌아다닌 경험이 있다.

고속도로 보수 공사라던가 철도 시설 관리도 해봤고 한 달가량 어선도 타본 적 있었다.

거의 방학 기간 꽉 채워서 1~2달. 기간 한정으로 돌아다니는 것도 힘들었는데 5년 동안 대륙 반대편에서 반대편으로, 평범한 여행길도 아니고 괴물이 득실거리고 신분제가 판을 치는 곳을 가로질러 패시지로 가는 중이라니?

“그…… 패시지에 소환한 놈을 족치러 가시는 거겠지?”

“그게 아니면 설명이 안 되지 않냐.”

둘은 자연스럽게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진지하게 생각했다.

‘형님한테 진짜 깝치면 안 되겠다…….’

‘찍혔다간 진짜 죽어도 편히 못 죽을 거야.’

형님이 협박……은 아니고, 경고했었다. 배신했다간 끔찍한 꼴을 보게 될 거라고.

그땐 막연히 무섭다고만 생각했지 잘 실감이 안 났는데, 복수를 위해 5년 동안 대륙을 횡단하고 있단 이야기를 들으니까 진짜 까불면 안 되겠단 생각이 샘솟는다.

지금 상황만 보면 자신을 강제 소환한 복수를 위해서 국가 하나의 수도에, 인구 수백만의 도시에 테러를 가하려고 하지 않는가.

보통 사람의 어지간한 복수심은 1년을 채 유지하기 힘들다.

아무리 원한에 불탄다고 해도 사람은 적응의 동물. 분노에 익숙해지는 데다 분노와 복수심을 유지하는 데는 어마어마한 정신력이 소모되기 때문이다.

처음 1~2달 정도는 상시 분노 상태겠지.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분노는 가라앉고 일상이 돌아온다.

그리고 일상이 돌아오기 어려울 정도의 분노라면 사람이 피폐해지거나 미치기 마련이다.

그런데 환인 형님은 미치거나 피폐하다기보단…….

‘오히려 즐기는 자 모드 아닌가?’

능력을 키우고 아름다운 여친들을 모으고 장비를 갖추고 명성을 올리고.

5년 동안이나 즐기는 자 모드로 수백만 명을 휘말리게 하는 복수를 진행한다고?

김철수가 소름 돋는다는 듯이 부르르 떨며 김영수에게 동의를 구한다.

“타비아누스 국장 그년 진짜 제대로 좆됐네.”

“레알. 나도 꽤 화났는데 형님의 분노를 보니까 그냥…… 분노는 사라지고 불쌍하단 생각 밖에 안 들어.”

=자, 잡담은 그만. 정신 집중 다시 시작해. 이번에는 10분 유지야.=

“옛!”

“예! ……저, 그런데 환인 형님은 정신 집중을 몇 분이나 하세요?”

=도령? 내가 알기로 하루종일도 해. 이런저런 머리 쓸 일이 많아서 좀처럼 그리 못하지만.=

“우워. 온종일!”

“대박…….”

머리를 텅 비우고 무심無心을 하루종일 할 수 있다니, 자신들은 5분만 지나도 잡생각이 마구 떠오르는데.

=눈 감아, 눈.=

따닥!

“윽!”

“악!”

정수리에서 짜릿하게 올라오는 고통을 느끼며 퍼뜩 눈을 감은 두 사람은 능력을 키우기 위한 기초 수련, 패시지에서는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던 정신 집중 단련을 안느의 감독 아래 시작했다.

12시간을 항해한 일행은 당초 예정보다 더 먼 거리를 이동해 메리아놀 본섬을 구성하는 네 곳 대륙 중 하나, 남부의 메이신 도착했다.

바람과 조류, 거기에 바람 정령의 도움으로 12시간 동안 거의 400km가량을 이동한 것.

메이신 중남부 해안은 바다에서 밀려오는 강한 파도 탓에 날카롭고 울퉁불퉁한 암초들이 많아 소형선인 코그라고 해도 정박시킬 장소가 마땅치 않았다.

그러나 환인 일행은 큰 어려움 없이 수면을 달리거나 뛰거나 날아서 땅에 내려섰다.

김영수도 거의 3일 만에 공간 이동을 펼쳐보곤 깜짝 놀라 눈을 휘둥그레 떴다.

“오오. 진짜 능력이 좀 더 쓰기 쉬워졌어!”

“진짜? 어느정도로?”

“공간 이동을 펼쳐도 아무렇지 않은데? 감지 범위도 조금 더 늘었어. 개쩔어.”

그전에는 공간 도약을 펼치기 위해서 상시 긴장하고 있어야 했고 여러 번 공간 이동을 쓰면 가슴이 뻐근해지면서 답답했었다.

그랬는데 지금은 몸 상태만 봐서는 100km를 쉴 새 없이 공간 이동으로 넘어갈 수 있을듯한 기분이다.

“대박! 내 능력은 어느 정도로 성장했지?

연신 대박거리는 둘과 여자친구들을 불러 모은 환인은 노을이 지는 하늘을 잠깐 올려다본 뒤 말했다.

“앞으로 한동안은 이동시간을 늘린다. 아침 일찍 일어나 이동하고 안식처를 설치해 쉬는 것도 3시간 정도 미루도록 하지.”

=추적자를 피하려고?=

“추적자는 와주면 고맙지. 목적은 지하율과 일정을 맞추기 위해서다.”

지하율의 작업 진행 현황은 그의 예상 이상으로 순조로웠다.

이미 거대 골렘은 완성했고 마력 회로만 손보고 있는데, 손보지 않더라도 지금 당장 구동하는 데는 무리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거다.

“이쪽 사정을 이야기 하자 지하율은 마력 회로 보강 작업과 외부 장갑 추가 작업을 진행하기로 했다. 우리는 앞으로 50일 안에 패시지에 도착하는 걸 목표로, 엘위드리스에 도착하면 김철수와 김영수의 쿠에를 구한 뒤 마차는 집어넣고 쿠에로만 이동한다.”

=응.=

=네.=

이후 여자들이 한창 출발 준비를 위해 마차에 짐을 싣고 쿠에를 연결하고 있을 때, 환연이 그의 목깃을 잡아당기며 불렀다.

「환인, 바다 쪽에 이쪽을 노려보는 놈들이 있어. 인간은 아니고…… 저게 나가족인가?」

그쪽을 돌아보니 과연, 몰드레테 해협보다 좀 더 짙은 사파이어색 바다에 녹색의 머리가 둥둥 떠 있는 게 시야에 들어온다.

손바닥만 한 비늘에 뒤덮인 뱀과 흡사한 형태의 머리.

완전한 뱀의 형태가 있는가 하면 사람의 이목구비를 어느 정도 갖춘 놈도 있고 뱀과 사람을 섞은 듯한 머리도 눈에 들어온다.

그 숫자는 대략 스물.

환인과 환연이 바다를 보는 모습에 다가왔던 안느가 그걸 보고 눈썹을 한껏 찡그렸다.

=……세상에, 나겔하고 나르가하고 나쿠스가 다 섞여 있잖아. 저게 무슨 일이야.=

“나가족도 분류가 나뉘나.”

=응. 대가리 형태에 따라 나누는데 사람이랑 비슷한 게 나쿠스, 사비족이랑 비슷한 도마뱀 대가리는 나르가, 뱀을 닮은 건 나겔이야. 암컷은 나기하고 메두사가 있는데 그것들은 거의 둥지를 지켜서 볼 일 없어.=

“평소 셋은 사이가 별로 안 좋나 보군.”

=어어. 서로 영역이 다른데다 영역 다툼까지 하는데…….=

비늘 색이 녹색인걸 보면 바닷속 미궁 역류로 발생한 이형종은 아닌가.

환인이 개량형 방벽 패널을 불러내려 할 때 안느가 그의 손을 잡았다.

=저놈들, 싸우기 시작하면 이상한 냄새를 붙이는데 놈들의 동족이 그 냄새를 쫓아서 수백 킬로미터까지 따라오기도 해. 엄청 성가신 놈들이니까 덤비는게 아니면 무시하는 게 좋아.=

“……습성이 제법 지능화했나 보군.”

=응. 소통을 비명 같은 소리로 하는데 그 소리가 물을 타고 수 킬로미터 바깥까지 퍼져나가거든. 그걸로 원수를 판별하고 추적하고 그래.=

그 때문에 전투가 벌어지면 저놈들이 소속된 둥지의 모든 전투원이 전멸할 때까지 계속해서 밀려온다고 보아야한다며 말한다.

환연이 별거 아니란 얼굴로 말했다.

「내가 상급 물 정령으로 다 쓸어버려도 되는데?」

=저놈들도 물에 대한 친화력이 높아. 네가 물 정령을 부르는 순간 바로 워크라이를 부를걸? 그때부터 수십 마리일지 수백 마리일지 모르는 나가족이 몰려드는 거야. 나겔, 나르가, 나쿠스 셋이 뭉쳤으니 수천 마리일 수도 있고.=

이야기만 들어서는 성가시기 짝이 없는 놈들이다.

=주인님. 출발 준비 끝났어요.=

이실리테의 이야기에 환인은 이쪽을 묵묵히 바라보기만 하는 나가들에게서 등을 돌렸다.

“덤벼들지 않는다면 성가신 것들과 싸울 이유는 없지. 마차에 올라라. 출발한다.”

노른의 등에 오르고 여자친구들도 마차에 올라 마차를 출발시키자 나가족들도 하나둘 물속으로 모습을 감추기 시작했다.

무슨 의도로 찾아온 걸까. 여기가 저 나가족들의 영역이라도 되는건가.

노른에게 날아오르라고 한 뒤 하늘에서 내려다보니 자신들을 이곳까지 옮겨다 준 배가 바람을 타고 빠르게 나아가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그런 배의 뒤를 쫓는 나가족 무리도.

「환인! 저 배 쫒기고 있어!」

“…….”

「영역을 침범당해서 찾아왔나보네. 환인, 어떻게 해? 정령 불러다가 도와줄까?」

“아니.”

영주의 배라서 특수한 기능이 있는 건지 아니면 바람을 잘 받은 건지 열심히 나아가는데 그 속도가 올 때의 2배에 달한다.

‘코그의 정원은 10명 남짓이니.’

수병 셋에 자신과 여자친구들, 이모렐과 김씨 형제까지만 해도 10명이 훌쩍 넘어간다.

거기에 몸무게가 사람의 2배는 가볍게 넘어가는 쿠에 세 마리, 젤프리는 3배가 넘고 실루도 1인분 정도는 된다. 마지막으로 식량과 짐까지.

과적 상태였으니 속도를 낼 수가 없었던 거겠지. 그리고 지금은 세 명에 짐도 거의 없으니 최고 속도를 내는 걸테고.

「오~ 배가 제법 빠르네.」

속도를 보면 25노트, 초속 12m는 된다. 항해술 또한 제법인 듯했고 근해의 해도가 일등항해사의 머릿속에 있는 듯하니 나가족 정도는 무사히 따돌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환인은 신경 끄고 본격적으로 달리기 시작하는 마차를 따라갔다.

그리고 이틀 뒤.

광활하다 할 수 있는 평원을 쉴새없이 가로질러 북상한 일행은 높고 두꺼운 성벽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흠…….”

시선을 들자 불타버려 중간이 뚝 부러져나간 63빌딩 사이즈의 나무 둥치가 가장 먼저 시야에 들어온다.

원래대로라면 높이만 300m에 가까울 것으로 짐작되는 나무둥치는 숯처럼 새카맣게 타있었다.

대화재의 흔적인지 성벽은 원래 색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검댕이가 묻은 채 비바람을 맞았는지 잔뜩 더러워져 있고 성벽 바깥 곳곳에는 난민촌 같은 것이 형성된 상태다.

도로를 따라 많은 물자가 오가는 중이지만 숨길 수 없는 음울함이 도시 전체에서 느껴지고 있었다.

대재해로 망해가는 도시.

그게 엘위드리스 시를 본 환인의 감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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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하지 않으려는 발악의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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