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9 해협 도시 몰드레테
패시지 공략은 이렇게 진행한다 치고, 문제는 아직 더 남았다.
엘위드리스는 귀족 태반이 사망하거나 패시지의 투르시온 왕가에 접붙어 현재 가주인 프슈드=오울, 자신에게 우호적이라는 자만 남아 근근이 연명 중이라 들었다.
현재 엘위드리스의 상태를 묘사하라면 삽질로 제 팔다리를 잘라 먹은 병신이라 할 수 있다.
복수 대상이 사라져 껍데기나 다름없어 환인은 엘위드리스에게 사과를 받아낼 생각은 하지 않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관심이 없어 무시하는 중이다. 실제 분노는 투르시온이 손에 넣었다는 예언자들에게 풀 생각이니까.
그랬는데…….
=도령……. 가야가 실종됐대. 배후에 엘위드리스 예언자들이 있다는 거 같아…….=
=엘미느 언니가 보고를 올렸슴다. 가야 시라넬 척후 조장이 며칠 전부터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고요.=
가야=시라넬. 거인숲 미궁에서 만난 안느의 친구이자 환인이 가느다란 인연을 빌미로 끄나풀처럼 메리아놀에 심어놓은 협의회 산하 척후기관의 인사.
패시지에서 활동하며 비밀리에, 조심스럽게 정보를 수집하던 그녀가 실종되었다.
조심하고 몸을 사리라 했는데도 말을 듣지 않고 하얀 늑대들 조직원과 연계해 푸른 나뭇잎의 탑을 조사하다 며칠 전 골목길에서 실종되었다는 이야기다.
나름 귀족 가문의 영애인데 뒤를 밟혀 제거당한 건가.
=…….=
무표정을 연기하지만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듯한 안느의 얼굴을 보자 기분이 급격하게 다운된다.
우울한 쪽으로 다운이 아니라 살의, 살기가 들끓는 쪽의 다운이다.
그녀의 손을 잡아당겨 허벅지 위에 앉힌 환인은 그녀의 은을 실처럼 뽑아낸 듯한 이름다운 은발을 쓰다듬어주며 말없이 다독였다.
“일정을 바꿔 엘위드리스를 방문해야겠다.”
조용히 중얼거리자 과일화채를 딸기 – 복숭아 – 망고 – 수박 순으로 집어 먹던 환연이 시선을 보내며 묻는다.
「예언자 정보를 얻어내려고?」
“그렇지 않아도 이쪽을 염탐할 게 뻔한 엘위드리스 출신 예언자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었다. 하지만…….”
아신의 혼은 미래에도 영향을 끼치는지 아니면 이 세계의 신학자들이 그토록 주장하는 ‘섭리’가 보호하는지.
예언, 예지, 예감, 예시, 그 어떤 미래를 보는 힘도 자신을 들여다볼 수 없다.
이건 자신과 밀접한 관계를 맺은 사람들에게도 적용된다.
[이엘의 도움을 받아 예언의 원리를 어느 정도 밝혀낼 수 있었소. 이유인즉, 아신인 성제 그대는 물론 그대의 행동 양식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인물은 세계의 섭리가 보호한다 할 수 있소. 그대는 물론 그대의 행동 방침에 관여할 수 있는 자 또한 미래에 장막이 드리워지는 것이지.]
자신의 미래를 볼 수 없다. 여자친구들 또한 자신에게 중요하기에 미래를 들여다보지 못한다.
자신의 아이를 낳은 시하, 백치령, 이엘카타의 미래는 물론 그 아이들의 미래도 보지 못한다.
신수인 대성녀는 신神의 짐승이기에 당연히 못 보고 샤스라는 옅은 장막 너머를 들여다보는 것처럼 희미하게만 볼 수 있다.
하지만 가야=시라넬은 아니다. 자신에게 중요하지 않은 여자여서 예언자들이 그녀를 해칠 수 있었다는 이야기.
여기서 의문은 미래의 베일이 연쇄가 작용하지 않는가였다.
안느의 친구인 가야를 해치면 안느가 당연히 슬퍼할 것이다. 안느가 슬퍼하면 환인이 덩달아 분노해 움직인다.
즉, 가야=시라넬이 제거당하면 연쇄 반응으로 환인도 움직이게 된다는 이야기다.
‘아니면 부주의로 행적이 노출되어 제거당했거나.’
어쨌든. 자신과 여자친구들의 미래를 못 보기에 엘위드리스 예언자들의 처리는 후순위로 밀어놨는데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아영. 엘미느에게 엘위드리스 출신 예언자들 위치를 조사하라고 지시를 내려라. 그리고 땅신 교단의 르아웬 아기오시스 추기경의 근황도 근시일내에 보고 올리라 하고.”
=옙.=
더불어 엘위드리스에 방문해서 프슈드 오울이라는 자에게 예언자들의 정보를 캐낸다.
다른 문제는 땅신 교단이다.
현재 땅신, 짐승신, 바다신, 하늘신의 사대 교단이 메리아놀에게 빨리 국정을 개방하라 전방위로 압박을 주고 있지만, 메리아놀의 국교인 땅신 교단만큼은 그 행적을 믿을 수 없다.
플뢰는 마냥 고고한 생물이 아니다. 배신과 변절도 가능함을 알게 되었고 땅신 교단은 메리아놀의 국교.
결명자가 땅신 교단 내부에 침투하였을 가능성도 있으니 그녀의 스탠스가 어떠한지 지금 시점에 재확인이 필요하다.
특히 안느의 친구이자 의자매라 할 수 있는 르아웬=아기오시스는 땅신 교단의 추기경. 그쪽과 연락이 닿지 않은 지 상당한 시일이 흘렀다.
‘날 메리아놀로 불러들이려 한 전적이 있으니까.’
의심하고자하면 그녀 또한 결명자의 일원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그 외 사소한 문제라면 패시지로 가는 길목에 땅의 신수가 한 마리 있다는 것과, 메리아놀 본섬에 들어섰으니 패시지가 암살자를 계속 보내올 수 있다는 것 정도.
후자는 아신위에 다다르며 혼옥의 보유로 발생할 문제가 해결되었으니 청령의 확보 수단으로 삼으면 된다.
하지만 전자는…….
“환연. 내게 아직도 신수의 냄새가 나나.”
「릴이 그러는데 아주 풀풀 난대. 다른 신수 근처를 지나가면 백 퍼센트 눈치챌 거라는데?」
자신의 몸에 묻어있는 두 신수의 흔적이 다른 신수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거라는 것.
“신수라 부르는 것을 보면 악성향은 없을 텐데……. 지나가도 괜찮겠지.”
사악을 멀리해야 할 신수다. 신수라고 불린다는 것 자체가 성향이 선善에 가깝다는 뜻이니까.
그 대화에 안느가 환인의 무릎 위에서 작은 목소리로 말한다.
=그곳의 신수는 지오드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어. 나도 그곳을 지나면서 공물을 바치는 걸 봤는데…… 쉬쉬하고 있는지 많이 알려지진 않았지만, 상단이나 사람들이 오고 가다가 공격받았단 이야기는 듣지 못했어. 오히려 그 근방에는 괴물이나 마수, 마인들이 출현하지 않아서 안전하다고 해.=
이 때문에 그 근방에서는 꼭 하루 휴식하고 지나간다고.
……이쪽은 사례가 없어 판단을 내리기 어렵다. 가면서 확인하는 수밖에.
심판관의 공격이 있고 하루가 지났다.
영주성은 자신의 영지를 공격한 자들이 주도 패시지의 정의 심판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지 반쯤 패닉에 빠져 이때까지 침묵을 고수하고 있다.
환연이 감시하며 전달해주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잠도 안 자고 가신들과 골머리를 싸매고 있다고.
‘나와 친분을 맺자니 패시지가 신경 쓰이겠지. 그렇다고 패시지의 뜻을 따르자니 내가 두려울 테고.’
결국 영주의 선택은 중립을 표방하는 것인 셈.
그리고 땅신 교단의 몰드레테 지부 교구장이 성제를 찾아 아신위 휘광을 영접하곤 감격했다는 후문이 퍼졌다.
멀쩡한 모습으로 법복을 입고 호텔을 찾았던 교구장이 눈물범벅으로 호텔을 나서는 것을 여러 사람이 목격한 것이다.
이러한 소문과 더불어 성제의 영혼 기사가 도시를 파괴하고 사람들을 해치던 심판관을 제거한 것, 그리고 성제의 명령에 따라 신속히 부상자의 회복과 파괴 지역을 정리한 것이 알려지며 여론이 더더욱 성제에게 호의적으로 변했다.
=진짜 패시지의 높은 분들이 성제님한테 나쁜짓 한 게 아닐까?=
=내 말이……. 그렇지 않고서야 성제님 같은 분이 분노해서 패시지를 찾아가고 있지 않을 거 아냐.=
=바다도 노해서 패시지에 반년째 비를 뿌리고 있다고 하니…….=
메리아놀과 패시지의 악행(으로 포장된 소문)은 하얀 늑대들의 공작과 대성녀의 조력으로 이미 전 대륙에 퍼진 상황.
진위를 알기 어렵고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들에게 높은 분들의 다툼은 먼 나라 이야기였다.
그랬는데 직접 성제를 가까이서 보고 겪은 이들이 소문을 퍼트리니 그 소문을 점차 사실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이다.
=콜라이도에서도 성제님이 마왕을 퇴치하고 도시를 정화했다며.=
=어어, 나도 들었어. 마왕의 앞잡이들이 수십명이나 죽었다지.=
=진짜 왕족이라는 것들은 뭘 하고 있나 몰라.=
=야, 목소리 낮춰…! 우리 다 죽일 셈이야……?!=
더욱이 콜라이도에서 마왕이 될 뻔한 자를 처단한 것과 도시 전체를 정화했다는 소식까지 전해지니 시민들은 패시지에 잘못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더욱 강하게 하는 중이다.
그 결과는 호텔 주변에 모여든 수많은 인파였다.
성제를 한 번만이라도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싶은 사람들.
=다녀왔습니다.=
=다녀왔어요….=
아영과 백려강이 객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습에 창가에 서 있던 환인이 그녀들을 향해 몸을 돌렸다.
“표정이 안 좋은 걸 보면 배는 구하지 못했나 보군.”
=뒷골목 조직한테 접촉해서 귀족들의 배도 알아봤는데 진짜 없대요. 근안 유람용 소형 돛단배가 아닌 배는 거의 다 차출되었더라고요. 차출 안 된 배도 지금 외부 항행 중이라 없어서 못 한 거지 회항하면 바로 차출될 거라던데요.=
=유일하게 접안된 항해용 선박이 한 척 있는데 그건…….=
백려강의 서론에 환인이 간단히 답했다.
“땅신 교단의 교단선이겠지.”
=오빠, 교단선에 태워달라고 하면 안 돼요? 알아보니까 하루에 한 번씩 배가 오간다고 하던데.=
“전에도 말했다시피 어느 교단 한 곳에 신세를 지는 것은 형편상 곤란하다.”
편애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하면 패시지가 본격적으로 군을 움직이지 못하도록 막는 역할 비슷한 것을 수행 중인 교단들에 박탈감을 심어줄 수 있으니까.
그러면 진짜 방법이 없다. 배를 직접 만들던가, 아니면 노른이나 환연의 도움을 받아 건너가는 수밖에.
신분이 밝혀졌으니 항만 관리사무소로 가서 승선을 알아본다면 허둥지둥 자리를 마련해주겠지만, 안전을 생각하면 그런 불특정 다수가 타는 배를 이용할 수는 없다.
아무리 환연의 정령 감시가 있다고 해도 바다 한복판에서 자살폭탄 공격 가능성을 0%에 가깝게 만들 수는 있어도 0으로 만들 수는 없다.
막말로 일반인을 세뇌해 모종의 수단을 동원해 터트리면 손쓸 방법이 없지 않은가. 탑승자 전원을 신식 영혼의 눈으로 볼 수도 없고.
모두에게 축소화를 걸고 노른을 타서 넘어가는 방법도, 환연이 최상급 물 정령에게 도움을 요청해 물을 경질화시켜 건너가는 방법도 일장일단이 있다 보니 생각이 많아진다.
‘이 의심병은 좀처럼 낫지 않는군.’
행동 하나하나에 벌어질 수 있는 가지의 수를 의심하니 좀처럼 선택지를 고를 수 없다.
‘역시 영주성에 쳐들어가서 배 한 척을 내놓으라고 윽박지르는 수뿐인가…….’
=이모. 유리 언니랑 안느 언니는 어디 갔어?=
=옆방에서 방랑자의 뇌관 제거 시술을 진행 중입니다.=
=벌써? 어제 조사하니 마니 하더니 바로 해버리네. 나도 가봐야겠다. 벨 넌 안 가?=
=난 오라버니 옆에 있을래.=
=그럼 그래.=
잠깐 거실을 둘러본 백려강이 환인에게 커피를 마실지 묻고는 차를 타러 간다.
환인이 전형적인 항구 도시 풍경 속 바닷바람에 조금씩 부식되어가고 있는 크고 웅장한 영주성을 노려보며 취사선택을 하고 있는 그때, 환연이 그의 옷깃을 잡아당기며 불렀다.
「환인. 영주성에서 나온 인간이 이쪽으로 오는 중이야.」
“…제발 떠나가달라고 말을 꺼내는 건 이틀 정도 뒤에나 나올 거라 생각했는데.”
그런 생각도 하고 있었어? 환인의 혼잣말에 환연과 황당해하고 커피를 날라오던 백려강도 당황한 표정을 짓는다.
백려강이 타온 진한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잠시 기다리자 똑똑, 듣기만 해도 긴장이 느껴지는 노크 소리가 객실에 울려 퍼졌다.
이모렐이 문을 열자 몽골리안 햄스터를 닮은 인서족이 진땀을 흘리는듯한 모습으로 서 있다가 황급히 쓰고 있던 중절모를 벗으며 허리를 숙인다.
=우드마 리헬 몰드레테 영주님의 차석 집사, 지벌입니다. 성제 예하께 영주님의 전언을 드리기 위해 이렇게 찾,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저 안색과 반응을 보면 찾아온 이유는 역시 자신의 짐작대로겠지.
이모렐에게 말해 거실의 소파로 불러들인 환인은 맞은편에 앉는 것을 부득이 사양하며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는 지벌에게 물었다.
“차석 집사께서 저를 찾은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군요. 딱히 도시에서 문제를 일으킨 적은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문, 문제라니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원칙대로라면 영주께서 성제 예하께 초청장을 드려 성으로 모셔야 하나…….=
영주는 잠복 기간이 긴 풍토병에 걸려 극심한 고열과 두통에 시달리다 어제 사제의 치유를 받고 요양 중이어서 차마 만날 수 없었고, 차선으로 자신을 맞이하여야 할 영주의 친인척인 수석 집사장은 중요한 거래 문제로 북 몰드레테에 가 있어…….
“영주님의 홀대는 딱히 불쾌하게 생각하지 않으니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래서 찾아오신 이유가 무엇인지 말씀해주시겠습니까.”
풍토병은 무슨. 길어지는 변명을 중간에 자른 환인이 재차 본론을 요구하자 갈색의 폭신해 보이는 모피가 푹 젖을 만큼 진땀을 흘리던 지벌이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영주님은 성제 예하께서 해협을 건널 방안을 고심하고 계실 것이라 하셨습니다. 하여 영주님이 소유하신 쾌속선을 성제 예하께 제공하여드리고자 하신다는 말씀이셨습니다!=
“그러니 배를 받고 얼른 도시를 나가 달라는 부탁이군요.”
=……옛?! 아, 아아아아닙니다!=
=영역 내에서도 아니고 버젓이 도시에서 정의 심판관 열셋을 죽인 제가 계속 도시에 머무르면 입장이 매우 곤란하시겠지요.”
=……! ……!!=
연이어지는 삐딱한 발언에 지벌의 안색이 하얗게 질려간다.
환인은 그런 지벌을 바라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사색이 되어 벌벌 떠는 지벌의 손을 잡아 일으켜 세웠다.
이 정도로 하면 영주에게 이야기가 전해지겠지.
“그렇지 않아도 배를 구하지 못해 곤란해하던 차였습니다. 영주께서 제공한 배는 감사히 쓰겠다고 전해주십시오.”
=예, 예!=
“이모렐. 지벌 씨를 따라가 배의 위치를 알아보고 오도록.”
=예, 성제님.=
거의 도망치듯이 돌아가는 지벌을 따라 이모렐이 나가고, 쿠션 뒤에 숨어있던 환연이 나와 그를 지그시 바라보다 묻는다.
「이럴 줄 알고 있었어?」
“영주 처지에서는 날 빨리 내보내고 싶겠지. 또 언제 자신의 도시에서 전투가 벌어질지 모르니까.”
그 한계점이 이틀 뒤라고 생각했는데 설마 오늘 찾아올 줄이야.
환인은 창밖으로 이모렐과 마차를 타고 황급히 떠나는 차석 집사를 바라보다 작게 중얼거렸다.
“패시지에서 척살 부대라도 출동했다는 소식을 들은 반응일지도 모르겠어.”
「배 타고 가는 중간에 마주칠 걸 걱정하는 거라면 바닷속은 내가 확실하게 경계할게. 환인은 하늘 쪽만 신경 써.」
“……그러지. 이번에는 영령군을 써봐야겠군.”
영주가 제공한 배는 필요 운항 인원이 3명밖에 되지 않는, 코그cog와 흡사한 소형 배였다.
일반적인 코그 선은 소형 군함 같은 것으로 활용되며 승선자 숫자를 늘리기 위해 선박 선후미에 망루 같은 것을 설치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영주가 제공한 배는 소형이라 해도 특제품인지 쪽빛 바다에 어울리는 푸른색도 그렇고 몇 번 타지 않았는지 선저에 따개비 등도 없고 깔끔하다.
더욱이 망루 대신 선실을 만들어놓고 선창도 제법 넓혀 20명 정도는 10일 가량 항해할 수 있는 사양.
배에 짐과 쿠에들을 싣던 안느가 표정이 좋지 않은 이실리테를 보곤 그녀의 엉덩이를 쿡 찌른다.
=표정이 안 좋네. 배를 타는 건 처음이야?=
=…….=
=진짜 처음인가 보네. 영주가 쓰던 배라잖아. 침몰할 걱정은 안 해도 될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
=걱정 안해…….=
안 한다는 말을 믿기에는 침몰이라는 말을 들은 이실리테의 하얀 얼굴이 핼쑥하다.
그사이 환인은 유르파와 함께 배의 구석구석을 살피고 출항을 위해 하나뿐인 마스트를 점검하는 해병들을 살피고 있었다
=곳곳에 강화와 내마모성 비술이 부여되어 있어서 내구도 튼튼해. 5급 술법에 직격당해도 한 번은 버티겠네.=
“해병들에게도 모종의 손길이 가해지진 않았군요.”
=응. 배에도 위상력이 특이하게 맺혀있는 곳은 없어. 영주는 정말 우릴 빨리 보내고 싶었나 봐.=
“우리가 오래 머무를수록 영주는 막대한 부담을 느낄테니까요. 그보다 김철수와 김영수의 뇌관 제거는 잘 되었습니까.”
환인의 눈길이 짐을 다 나르고 배를 신기한 듯 둘러보는 둘에게 향했다.
수술이 끝난 지 4시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활달하게 돌아다니는 걸 보면 심장 근처의 뇌관 제거 수술을 받은 사람이라곤 보이지 않는다.
=물론. 상처가 아물고 위상력의 순환이 안정될 때까지 능력을 쓰는 건 금물이지만, 아영이의 치유까지 받았으니까 금방 힘을 쓸 수 있게 될 거야.=
유르파가 건네주는 검붉은 단검처럼 생긴 뇌관, 5cm정도 밖에 안되는 것을 받아든 환인은 신식 영혼의 눈으로 뇌관을 유심히 살폈다.
신식 영혼의 눈에 익숙해지며 점차 쓸 수 있는 시간과 볼 수 있는 것, 분석할 수 있는 것이 다양해지고 있는데 역시 이렇게 보니 탄왕의 저주 트리거와 흡사한 점이 많다.
관리국이 관리하는 차원 방랑자 중에 강혁준의 직업과 비슷한 것을 얻었던 사람이 있기라도 한걸까.
뇌관을 아스펜드에 챙기고 쪽빛 바다에 하얀 파도가 밀려오는 것을 바라보고 있으니 해달 귀와 꼬리를 한 루크랑 여자 해병이 다가와 긴장한 모습으로 경례를 올린다.
=성제님. 출항 준비가 끝났습니다.=
고개를 돌려 조금 핼쑥한 얼굴의 이실리테를 바라보자 모든 짐과 인원의 탑승이 끝났다고 확인해준다.
“그러면 바로 출발합시다.”
=알겠습니다! 출항한다! 닻을 올려라!!=
회색 머리 여자 해병의 고함에 카랑카랑 쇠사슬 닻이 올라오는 소리가 나면서 하나뿐인 마스트의 돛이 내려와 활짝 펴지고, 이내 바람을 받으며 배가 출렁하고 나아가기 시작했다.
영주의 배라는 게 알려졌는지 나가거나 들어오는 배들이 슬금슬금 길을 비켜준다.
그런 거대한 상업용 선박 사이를 나아가며 파도에 흔들리고 있자니 이실리테가 저도 모르게 안느의 한쪽 팔을 잡았다.
=어휴, 뭐가 그렇게 겁나? 만약 배가 침몰해도 넌 다중 검기로 달릴 수 있잖아. 침몰해도 나나 아영이가 문제지 너희는 다 자력 탈출 수단이 있으면서…….=
“예?! 잠깐만요. 안느 누님, 배가 침몰해요?!”
“나, 나 수영 못하는데!”
=……너희는 또 왜 그래? 배 안 침몰해!=
고개를 든 환인의 눈에 녹색 바람 정령들이 깔깔 웃으며 돛 주변을 날아다니는 게 들어온다.
돛이 하나뿐이니 빠른 속도는 나지 않겠지만, 환연이 불러들인 바람의 정령이 열심히 바람을 불어댈 테니 100km 정도 폭의 해협은 대여섯 시간이면 통과하겠지.
대기 오염이라곤 전혀 없어 맑고 푸른 수평선으로 환인의 시선이 다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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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차석집사: 나한테 왜 이러는거야 ㅠㅠㅠㅠ
역시 스토리가 진행될수록 생각해야할게 많아져서 연성 속도가 줄어드네용...
이러는 와중에 머릿속에는 차기작 소재가 끼어들고 있어서 난장판이고 좆기는 앵앵거리면서 도발하고 있고 ㅋㅋㅋ
대환장 파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