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7 해협 도시 몰드레테
김철수와 김영수가 착용한 위상력 봉인구는 정확히 말해서 위상력의 봉인구가 아니다.
몸 안의 기맥 흐름을 차단해 위상력을 비롯한 정령력, 영기(영력), 주술력, 심핵력을 비롯한 능력 자체를 쓰지 못하게 만드는 것으로 위상력이 아닌 특수 봉인 마도구라 부르는 게 옳다.
하지만 제작자인 유르파는 굳이 위상력 봉인구라는 이름을 고집했다.
=그래도 위상력 봉인구라고 하는 게 좋겠어.=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직업자의 능력뿐만 아니라 모든 능력을 봉인하는 마도구라 하면 위기감과 긴장감을 느낄 인물이 하나둘이 아닐 테니까요.”
그녀가 이러한 유물급 봉인구를 만들어내게 된 과정에는 환인의 지대한 도움이 있었다.
지금에 와서 환인이 다룰 수 있는 니오네브레스의 에너지는 위상력, 영기, 심핵력 세 가지이며 영혼술과 강제력 덕분에 정령력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일가견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에너지들은 하나같이 심장이나 상, 중, 하단전(가칭)에 맺혀있고 전신의 혈맥을 따라 순환한다는 사실을 5년에 걸친 수행 끝에 확신하게 되었다.
그러한 확신의 결과물을 유르파에게 이야기해주며 특별한 봉인구를 만들 수 있겠냐 물었더니 이것저것 조물딱거리다가 특수 봉인 마도구를 만들어낸 것이다.
혈맥 곳곳에 위상력도 아닌 모종의 인위적인 기운을 쐐기처럼 박아넣어 순환을 방해해 능력을 못 쓰게 만드는 원리.
환인이 겪은 시련에서 이로운 점은 모두 제거하고 해로운 점만 부각한 기능이다.
능력이 강할수록 특수 봉인 마도구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이 상태에서 벗어나려면 봉인 마도구를 벗거나 환인처럼 막대한 제어 능력으로 그러한 쐐기를 강제로 해제하는 방법뿐.
실제로 환인은 30초에 걸쳐 봉인 마도구를 무력화시켰지만 그 외 여자들, 제작자인 유르파와 초월 정령 합체를 이룬 환연마저도 봉인 상태를 자력으로 탈출하지 못했다.
환인은 야전 병원이 된 곳에서 팔짱을 낀 채 심상치 않은 기운을 풀풀 풍기며 그런 봉인 마도구를 장착한 김철수와 김영수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
하프 플뢰 변장을 해제하고 원래 모습으로 아신의 휘광을 드러내 불편한 기색을 풍기는 환인.
그러한 존재감에 성격 괄괄한 선원들조차 순한 고양이가 되어 안느와 아영, 땅신 교단의 성직자들 지시에 고분고분 따랐다.
그 덕에 메리아놀의 정의 심판관이 저지른 행패로 발생한 부상자의 치료는 빠르게 진행될 수 있었고 파괴가 발생한 지역의 수습도 남 몰드레테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신속하게 정리되어가는 중이다.
애초에 파괴 지역이 넓지 않았으며 5~6급 직업자들의 과도한 화력 투사로 부상자는 별로 없고 대부분이 사망자였기 때문.
환인이 불편해하는 것은 시민들의 참혹한 시체가 야전 병원 한쪽에 옮겨지는 광경 때문이 아니었다.
김철수와 김영수, 한국인이라면 익숙할 수밖에 없는 이름을 가진 두 남자 때문이다.
보고 있자니 불쾌한 무엇인가가 자꾸만 심기를 건드리는 느낌.
「환인. 저 두 인간이 마음에 안 들어? 아까부터 계속 노려보고 있네.」
자신의 왼쪽 어깨에 앉아있는 환연의 이야기에 팔짱을 푼 환인은 허리에 손을 올리며 눈썹을 찡그렸다.
“마음에 든다고 할 수는 없지. 생각이 덜 여물어 욕망대로 움직였지만, 눈치가 빨라 이쪽에 붙으려 한 사람들이니까. 그건 그렇다 치고 내가 신경 쓰는 것은 무언가가 거슬려서다.”
「흐음……. 차분히 되짚어보면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긴 해.」
아까 싸울 때 보니 차원과 공간이라는 희귀한 능력을 쓰던데, 저 둘의 성격이야 어쨌든 리스크를 감수해서라도 수용할만한 능력이니 데리고 있을 수 있다고 본다.
저것들의 습성을 잘 파악한 지휘부가 감시자를 붙여놓은 것도 이해가 간다.
그런 감시자의 존재를 눈치챈데다 성제의 강함까지 알게 된 저 두 인간이 가망 없다고 여겨 목숨을 걸고 투신해온 것도, 이곳에서 전투가 벌어진 것도 이해된다.
「하지만 공간 이동이라는 도주에 특화된 능력을 가지고 있잖아. 감시자라고 보낸 것들이 5~6급 직업자긴 해도 작정하고 도망치면 못 잡을 텐데…… 뭔가 대비가 맞는 거 같으면서도 허술하지?」
“그래. 국가 지도부라고 다 똑똑한 놈들만 있는 건 아니라는 걸 알고 있는데…… 그런데도 마음에 걸리는군.”
지하율의 일을 기점으로 패시지 내부에 무언가 변화가 있었던 것은 틀림없다. 그러니 암살 교육도 받지 않은 차원 방랑자를 이쪽의 능력을 잘 알면서도 육탄 돌격시키는 것처럼 보낸…….
“…….”
그 순간 환인의 머릿속으로 콜라이도에서 경험한 기억이 파바박 떠오르며 둥실둥실 떠다니던 기억 조각들이 하나로 짜 맞춰졌다.
가능성은?
9할 이상, 최소 80%다.
차원 방랑자를 편리한 소모품 정도로 여기고 있다면, 지하율을 그렇게 폐기하려 한 놈들이라면 그 방식을 쓰지 않을 이유가 없다.
아영의 지시에 피투성이인 사람을 잡고 있거나 부상자를 옮기는 등, 이런 험한 광경은 처음인지 조금 창백한 얼굴로 땀을 뻘뻘 흘리는 김철수와 김영수를 신식 영혼의 눈으로 더욱더 강하게 응시한다.
‘……역시.’
성큼성큼 다가간 환인은 둘의 어깨를 잡아 사람이 없는 곳으로 밀었다.
“엇?”
“어어.”
갑작스러운 환인의 행동에 김철수와 김영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그의 손길에 떠밀린다.
뭐라고 하기에 표정이 너무 무섭다. 작게라도 항의했다간 그 심판관들처럼 모가지를 날려버릴 것 같은 표정이라 할까.
그 서슬 퍼런 기세에 부상자를 거의 다 치료한 안느와 아영이 다가오고 질서를 유도하던 이실리테와 백려강, 약병을 들고 돌아다니던 유르파와 노른도 무슨 일인가 하고 환인의 곁으로 모여들었다.
“저, 저기…….”
김철수는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패시지에서 국장만큼 아름다운 여자는 이 세상에 더 없을 거라 생각했었는데 이게 뭔가. 국장을 흔녀로 만들어버리는…… 진짜 무서울 정도로 예쁜 여자들이 쳐다보고 있으니 현대에서 인싸들 틈에 실수로 끼었을 때처럼 쭈구리가 되는 기분이다.
더해서 성제의 죽일듯한 시선까지.
사람 몇 명 담가본 조폭들 눈빛은 남다른 데가 있다던데 이게 그런 건가? 게다가 눈에서 흐르는 저 황금빛은…….
뭐라도 말이라도 해주면 좋을 텐데 아무 말도 없이 1분 정도 침묵이 지속되자 김철수는 바늘방석에 앉은 것처럼 도무지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저어…… 형님, 저희가 뭔가 잘못한 게 있나요……?”
형님? 안느가 무슨 소릴 하냐는 것처럼 한쪽 눈썹을 찌푸리자 김철수가 흠칫하고 손사래를 친다.
“저, 저희는 여기서 보낸 2년까지 해도 스물두 살이에요! 그, 그런데 환인 형님은 서른이 넘으셨으니까……!”
“조용히.”
나지막한 한 마디에 김철수는 입을 딱 다물었고 김영수도 뭐라 말하려다가 눈치껏 입을 다문다.
그렇게 둘을 조용히 시킨 환인은 여자친구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지금 바로 도시를 빠져나간다.”
=……돌아가서 짐 챙겨?=
“아니. 다시 돌아올 거다.”
이어서 개중 똘똘한 아르겐테아 정찰병 셋을 영령화시켜 호텔로 돌려보낸다. 혹시 영주성이나 교단에서 사람이 왔을 때 전언을 받기 위해서다.
이후 미이라처럼 꽁꽁 싸매진 습격자들의 시체에서 영혼이 이제야 빠져나오는 것을 확인, 열셋의 푸른 영혼을 전부 영혼 구슬로 만들어 회수한 뒤 이모렐에게 지시를 내린다.
“이모렐은 저 둘을 들쳐메고 따라와라. 노른.”
「응.」
눈치껏 신수 형태로 변한 노른의 등에 올라타서 날아오르자 이모렐은 어어, 당황하는 김철수와 김영수를 쌀 포대처럼 어깨에 들쳐메고 노른의 뒤를 쫓았다.
몰드레테에서 몇 킬로미터 떨어진 언덕으로 날아온 환인은 다리가 풀린 듯이 주저앉아버린 김철수와 김영수에게 물었다.
“지금부터 묻는 말에 솔직하게 대답하기를 바랍니다. 좀 전처럼 뭣도 모르고 왔다는 식으로 적당히 얼버무려서 속이려 들면 속이려 든 만큼의 대가를 치르게 될테니까요.”
그, 그그그걸 어떻게?!
놀라서 딸꾹질하는 김철수에게 환인의 질문이 쏟아졌다.
지시를 내린 게 누구냐. 국장은 누구지. 조직명과 조직 구성은? 너희 능력을 말해라. 차원 방랑자 관리국의 위치는? 각성한 차원 방랑자 숫자는 몇인가. 차원 방랑자는 몇 명이나 있지? 인종은? 성별은?
몰아치는 질문의 폭풍과 압박에 김철수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머리에 든 것을 전부 다 쏟아냈다.
정보 제공을 인위적으로 조절해 자신의 안위를 챙긴다거나 거짓말로 상황을 모면하려 한다거나 하는 생각은 정말 조금도 하지 못했다.
같은 한국인이 맞는지, 니오네브레스 원주민이 아닐까 싶을 만큼 살기와 기세를 능수능란하게 조절하니 정신 줄을 붙들기도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 그래도 사람은 한 번도 죽이지 않았어요! 진짜예요!”
김철수의 고성에 그가 제공한 정보를 바탕으로 자신의 추측 진위를 파악하고 있던 환인은 무표정으로 김철수와 김영수를 바라보았다.
아직 뭣도 모르는 어린애가 잘못을 저질렀다가 훈계하는 부모님에게 반항하는 듯한 모습.
자존심과 무지와 양심의 가책으로 자기가 저지른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모습에 환인은 담담히 입을 열었다.
“차원 유리 능력으로 다차원에 날려버린다는 것과 공간 이동 능력으로 음식에 독을 섞는 것 자체가 살인과 같은 행위다. 너희는 전기의자 스위치를 누르고 교수대 발판 버튼을 누르는 것은 그 과정과 이유야 어쨌든 살인이 아니라고 주장할 건가.”
“…….”
“…….”
“이런 야만의 세계이니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건 어쩔 수 없다. 죽이지 않으면 이쪽이 죽게 되는 일도 허다하니까. 그렇다고 해도 너희가 사람이라면, 정상인이라면 최소한 자기 행동을 인지하고 인정하는 모습은 보여야지.”
환인의 담담한 지적에 김철수와 김영수는 고개를 푹 숙였다.
“너희 둘이 이 세계에서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나는 모른다. 고리타분하게 설교할 생각도 없다. 나 역시 지구로 귀환하기 위해 적지 않은 피를 손에 묻혀왔기에 뭐라고 할 자격은 없으니까. 내가 너희에게 요구하는 것은 하나뿐이다.”
귀환……? 그, 그게 진짜로 가능한 건가? 망상이 아니라?
김철수는 속에 든 의문을 일단 접어두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게 뭔데요…?”
“배신하지 마라. 당사자에게 들킨 이상 엄연한 암살 미수지만, 시행에 옮기지는 않았으니 한 번은 넘어가 줄 거다. 하지만 배신은 이야기가 달라.”
웅—
광명창을 발동시켜 빛의 창에 영기와 심핵력을 담아 창섬을 뿌리자 수백 미터 건너편의 언덕이 가로로 쫙 갈라지며 쿠구궁, 구구구구— 굉음과 함께 쏟아진다.
“……!!”
“……?!”
그 광경에 흠칫한 김철수와 김영수는 눈 한번 깜빡였을 뿐인데 수십 명의 영혼에게 둘러싸인 것을 깨닫고는 벌벌 떨기 시작했다.
니오네브레스에서 생활한 지 고작 2년째라지만, 직업의 힘을 키우기 위해 미궁을 여러 번 돌아다녀 본 둘에게 상대의 강약을 가늠할 정도의 눈은 있다.
그런 둘의 눈에 기묘한 연기를 흘리며 둥둥 떠다니는 수십 명의 영령군은 말 그대로 군대.
“배신, 배신 안하겠습니다!”
“절대로요!”
심판관 열댓 명보다 눈앞의 영혼 몇 명이 더 무섭다는 걸 눈치챈 김철수와 김영수가 다급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본론으로 넘어갈까.”
보, 본론? 지금까지 서론이었다는 거야?
어리둥절해하는 둘에게 폭탄 발언이 떨어졌다.
“지금 너희 둘의 상태를 요약하면 인간 폭탄이라 할 수 있다.”
“……예?”
“어, 네?”
“살펴보니 너희 몸에 모종의 시술이 진행된 게 보인다. 특정 조건을 만족하면 그 시술이 발동, 너희 둘의 능력을 폭주시켜 터트리는 식이겠지.”
김철수의 능력이 폭주하면 주변 차원이 깨지고 망가지며 주변이 통째로 소실될 거다.
김영수의 능력이 폭주하면 공간 자체가 일그러지며 그 범위에 있던 생물이나 물질은 탈출할 수 없는 공간의 틈에 빠져버리겠지.
“아공간 주머니의 원리는 너희도 알고 있겠지.”
“구, 국장이 우리를…… 미사일맨으로 썼다고?”
충격받은 것처럼 눈동자가 흔들리는 둘에게 환인의 담담한 목소리가 이어진다.
“이제 20대 초반. 강한 힘을 가졌지만 메리아놀을 향한 애국심은 없다. 도덕성도 그다지 좋다고 볼 수 없지. 그렇지만 가진 힘이 까다롭고 골치 아파서 제어하기 쉽지 않아. 그런 너희 둘을 바로 곁에 감시자도 붙이지 않고 암살하기 위해 보냈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지 않나. 너희가 언제, 어떻게 배신할지 알고.”
“하, 하지만 국장은 약속했는데…… 우리 안전을 보장하겠다고……. 플뢰잖아요! 거짓말 못하는!”
“그 약속, 강제력을 띈 계약서에 명시하고 서명했었나. 안 했겠지. 이제 대학생이라면 계약서는 몇 번 듣기만 했지 본 적도 없을 테니까. 또한 말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천차만별로 해석할 수 있다. 암살 전까지 안전을 보장하겠다는 말은 어떻지? 죽이기 전까지는 안전을 보장하겠다는 말은?”
“…….”
“국장이라는 여자는 이번 기회에 너희 둘을 쓰고 버릴 생각이었을 거다. 너희 둘이 나와 붙었을 때 원격으로 기폭 시켜 근방을 송두리째 날려버릴 생각으로 말이다.”
그 증거로 이모렐이 발견했던 매듭 암호 내용을 말해주자 김철수가 일그러진 얼굴로 의문을 표시한다.
“그럼, 그럼 심판자들하고 메리아놀 국정 요원으로 감시시켜놨던 건 무슨 뜻이에요? 터트릴 거면 감시를 둘 필요가 없잖아요! 심판자들이 우릴 죽이려 들 이유도 없고요!”
“일말은 기대하고 있었다는 뜻이겠지. 시키는 대로 임무를 완수하고 돌아오면 쓸만한 말로 보였을테니까.”
결명자 집단은 알려지기로 최소 수백 년간 차원 방랑자를 해부하고 분석하며 처분해왔다. 그간 쌓인 기술력이라면 이런 애들 같은 둘 정도야 간단히 세뇌할 수 있겠지.
실제로 김철수와 김영수는 반쯤 최면 상태로 차원 방랑자 관리국의 미션을 수행해왔던 것 같고.
어른에게 속아 보증을 섰다가 빚이 수십억 생긴 것 같은 몰골로 주저앉은 둘을 복잡한 눈으로 바라보던 유르파가 환인에게 물었다.
=자기, 정말 인간 폭탄이니?=
“강혁준이 넘겨준 탄왕의 저주 원리와 흡사한 면이 많습니다. 탄왕의 저주는 영혼에 미치는 저주였지만 관리국의 시술은 육체에 끼치는 시술이라는 차이가 있습니다만.”
=으음.=
“말이 200년이지 그건 지하율의 시간을 기준으로 한 겁니다. 니오네브레스 역사를 생각해보면 차원 방랑자 발생은 수천 년 전부터라 보아도 무방하겠지요. 차원 방랑자는 각성만 하면 희귀직업을 가지게 되니 그간 쌓인 직업 정보는 막대한 수준이 아닐까 합니다.”
그런 정보로 기술과 시술을 만들어내는 건 어렵지 않을 것이다.
「환인, 저 둘이 인간 폭탄이면 빨리 차원의 틈새에 담가버리거나 멀리 버리고 오는 게 좋지 않아?」
움찔 흠칫
환인은 이쪽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며 움찔거리는 둘에게 들으란 듯이 말했다.
“예상 밖으로 저 둘이 착용한 봉인 마도구가 그 시술도 봉인한 상태다. 마도구를 벗지만 않으면 그 시술이 발동할 일은 없겠지. 자살할 생각이 아니고서야 봉인 마도구를 벗으려 들지 않을 테고.”
「그사이에 시술을 제거할 방법을 찾으면 되는 거구나.」
“그래.”
짧게 대답한 환인은 이제 대놓고 이쪽을 바라보는 김철수와 김영수에게 말했다.
“메리아놀 차원 방랑자 관리국은 너희의 생존을 파악한 순간 죽이려 들 거다. 라드세아, 히스론드, 벨티칼도 너희를 지켜줄 이유가 없다. 그건 영도도 마찬가지지. 이해했나. 지금 너희가 믿고 따를 수 있는 사람은 우리뿐, 너희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도 우리뿐이다.”
끄덕끄덕끄덕!
『협박이 되겠지만, 나는 꽤 뒤끝이 강한 사람이다. 영령군 전원 날 죽이려 한 인간들로 구성되어있을 정도로.』
뇌를 뒤흔드는 그의 목소리에 김철수와 김영수의 눈동자가 지진 난 것처럼 흔들렸다.
배신했다간 죽어서도 노예처럼 부리다 결국 혼까지 소멸시켜주겠다는 말 아닌가.
그 짧고 굵은 임팩트에 김철수와 김영수는 입도 벙긋하지 못하고 몸을 떨었다.
유르파가 김철수와 김영수의 혈맥 상태를 살피는 사이, 환인은 메리아놀 정의 심판관 영혼 열셋을 불러내 계약을 진행하는 한편 그들이 하달받은 지시사항을 하나하나 확인했다.
마지막 열세 번째 인간과 계약을 끝마치고 구슬로 만들어 수납하자 옆에서 지켜보던 환연이 둥둥 떠다니는 채로 다리를 꼬며 말한다.
「저 철수라는 인간이 한 말 하고 환인이 추측한 내용이랑 거의 차이가 없네.」
“그 인간들의 오판이라면 김철수가 헛다리를 거하게 짚은 게 제법 정확했던데다 저리 빨리 배신할 줄 몰랐던 거겠지.”
=……국장도 결명자 소속일까?=
안느가 조금 흐려진 얼굴로 묻자 환인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타비아누스 아눌란 투르시온, 투르시온 방계 왕가 혈족이니 100%라고 본다.”
=결국 투르시온 왕가가 메리아놀의 핵심을 해 처먹고 있는 셈이네요.=
타르반시올 톨마이어 투르시온은 현 메리아놀 협의회를 이끄는 국왕이며 차원 방랑자 관리국의 국장은 타르반시올의 재종형제이고 푸른 나뭇잎의 탑주 반려도 투르시온 가문의 인간.
이 세 가지만 봐도 투르시온이 메리아놀을 얼마나 장악했는지 짐작이 간다.
오죽하면 전대 국왕인 안느의 부친이 임기보다 일찍 왕좌에서 내려와 도망치듯 유람을 떠났겠는가.
아영의 신랄한 이야기에 안느가 입을 다물고 침울해졌을 때였다.
“으아악! 혀, 형님! 살려주세요! 저 누님이 우리 죽이려고 해요!!”
“으허허헝!”
그때 김철수와 김영수가 혼이 달아난 모습으로 달려와 환인의 다리에 매달려 울부짖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돌아보니 유르파가 생글생글 웃으며 메스보다 날카롭게 빛나는 단검을 들고 다가오는 중이다.
그녀가 태연스레 말한다.
=얘들도 참~. 누가 보면 죽인다는 줄 알겠네. 살짝 피부 거죽만 째서 혈맥 단전의 상태를 보는 거뿐이니까.=
“으히익?! 이, 이런 들판에서 배를 째면 합병증 같은 걸로 죽는다니까요!!”
“환인 형님 살려주세요! 엄빠한테 맹세코 진짜 죽으라는 거 빼고 다 할게요 진짜아!”
필사적인 절규에 환인이 부드럽게 웃으며 달랬다.
“걱정하지 마라. 아영은 7급 성술사고 안느도 7급 정령 기사지만 그전에는 투사와 성술사의 혼합직이었다. 유르파도 7급에 이르는 비술사이자 약제사이니 합병증에 걸려도 죽을 만큼 아플 뿐이지 죽지는 않게 해줄 거다.”
같은 남자도 반할 것 같은 잘생김에 잠깐 멍해졌던 둘은 이윽고 영령화한 영령들에게 팔다리를 자지러지는 비명을 지르며 끌려간다.
그 장면을 조금 얼떨떨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백려강이 환인에게 속삭여 물었다.
=오, 오라버니. 저래도 괜찮은 거예요……?=
“고통과 폭력이 수반된 교육은 사람을 고분고분하게 만들지. 당근도 채찍이 있어야 유의미한 법이다.”
환인의 지론에 여자들은 ‘그건 그래.’하고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끄아아악!?”, “아아아아악!!” 죽는다고 비명을 지르는 김철수와 김영수를 구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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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겠당... 뭐가 벌써 모기가 나오지 ㅠㅠ
글쟁이에게 끔찍한 시간이 다가오고 있읍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