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궁기담-754화 (754/813)

754 몰드레테로 가는 길

* * * *

메리아놀, 주도 패시지의 어딘가.

순백에 화려하고 장엄한 회랑을 고급스러운 옷차림의 두 남자가 찡그린 얼굴로 걸어가고 있었다.

못마땅한 감정이 표정에 그대로 드러나는 얼굴.

두 남자 중 검은색 바탕에 금실과 은실로 자수가 놓인 의복의 남자가 투덜거린다.

“하…… 이씨. 그 새끼는 이세계에 왔으면 치트 인생이나 즐기지 좆 빤다고 지랄이야, 지랄은!”

“그러게 말이오. 어딜 가든 조금만 힘을 쓰면 여자들이 헬렐레하면서 넘어오는 세상인데 무어가 그리 마음에 안 든다고.”

자주색 망토 차림의 남자는 특별히 맞춘 안경을 중지로 추슬러 올리며 맞장구쳤다.

몇 번을 생각해봐도 이해가 안 간다.

이 세계에의 여자는 원래 세계의 여자들보다 몇 배는 더 아름답다. 이 세계의 추녀가 원래 세계의 공대 미녀보다 예쁠 정도.

남자도, 여자도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미모가 상향평준화 되어있다.

물론 이 세계 여자들도 상대의 얼굴을 본다. 하지만 얼굴보다 능력을 더 중요시하는 풍조가 널리 퍼져있다.

인간 가치의 우선순위가 능력 > 성격 > 신분 > 재산 > 외모 정도로 외모는 사람을 볼 때의 조건 중 하위권에 자리매김한다.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다.

‘괴물이 있고 여러 종족이 부대끼면서 살아가는 세상이니까.’

미추 여부는 종족마다 다를 것이다. 그러다 보니 상대적으로 외모보다 능력이 중요시된 거겠지.

이 때문에 차원 방랑자는 남자든 여자든 이성에게 호감을 사기 쉽다.

각성하면 희귀 직업을 얻기 쉬워지고 각성하지 못하더라도 한국으로 치자면 중졸, 초졸이 가득한 세계에서 대졸자 정도의 지식과 지성을 드러내니까.

지구에서보다 인기가 몇 배는 많아지는 거다.

우르릉—……….

“…….”

“…….”

멀리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뇌성에 두 남자는 회랑의 거대한 창문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저 먼 수평선 근처를 가득 메운 채 비를 뿌리고 뇌성을 일으키는 먹구름.

메리아놀을 둘러싼 저 먹구름은 6개월째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인근의 토지는 다 쓸려나가 바다가 들이치며 패시지는 육지와 고립되었고, 설상가상 마물로 분류되는 나가족이 바다에서 출몰하며 호시탐탐 도시 밖 논밭이나 과수원, 목장 등을 노린다.

지구였다면 도시가 말라비틀어져 고사했을 상황이지만 이곳 니오네브레스는 마법과 괴물이 살아 숨 쉬는 판타지.

마법으로 물을 밀어내는 성질의 다리 구조물을 세워 군을 상시 주둔시키고 상단의 이동과 물자의 수송을 장려하고 있어 아직 생명줄이 막히지는 않았다.

하지만 슬슬 한계에 다다르고 있는듯하다. 그게 아니라면 차원 방랑자 관리국의 국장이 자신들을 호출해서 그런 말을 할 리 없지.

조금 전, 국장과 면담에서 들은 이야기가 둘의 머릿속에서 재생되었다.

=……두 분을 모신 것은, 현 시국이 어떠한지 알려드리기 위해서예요.”

원목 가구가 채워진 고풍스러운 국장실, 고귀한 분위기를 풍기는 은발의 여자 플뢰 국장이 하는 말에 검은색 제복 차림의 김영수가 얼굴을 찌푸렸다.

자신들은 차원 방랑자들 중에서도 제법 뛰어난 직업을 각성해 반쯤 집단의 발언을 대변하는 위치다.

사실 각성 차원 방랑자가 몇 안 되기도 하고 여러 국가에서 소환된 인간들이 모여 집단을 형성하기 어려운데다 자신들이 딱 붙어 다니니 발언력이 강해진 거지만 아무튼.

“상황이 그렇게 나쁩니까?”

휘이잉— 열린 창문 밖에서 불어온 바람이 세 명의 머리카락을 헝클인다.

약한 초록빛을 띤 은발을 쓸어 넘긴 국장은 너무 가냘퍼 보호해주고만 싶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남쪽 대교에서 물자가 계속해서 들어오고 있지만 그것도 이제 한계에 다다르고 있어요. 패시지의 시민은 200만 명, 이들이 하루에 소모하는 식량만 해도 어마어마한 수준인데 외부에서 들어오는 것은 입에 겨우 풀칠할 양이니까요……. 차원 방랑자 여러분의 편의를 위해 지급되던 예산도 조만간 삭감되고 여러분께 배정된 지원 역할의 직원들도 다른 부서로 돌려야…….=

“그건 안되오!”

“예?! 잠깐만요! 줬다가 뺏는 건 아니죠!”

김영수뿐만 아니라 뿔테 안경에 자주색 망토를 두른 김철수도 항의한다.

성 처리 담당을 가져가 버리면 자신들은 어쩌란 건가! 이제야 좀 말을 듣기 시작해서 재미있어지려는 상황인데!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여러분들은 메리아놀의 보배이시니까요. 하지만…… 성제라는 사람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고통받고 있답니다. 솔선수범해서라도 절약해야 할 상황이라서…….=

정말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눈을 내리깐 그 모습은 흡사 비련의 여인 그 자체.

달빛을 조각한 듯한 미녀의 얼굴이 흐려지자 검은 뿔테 안경에 자주색 망토를 걸친 남자, 김철수가 주먹을 꾹 쥐고 묻는다.

“이해가 되지 않소. 그자는 온갖 곳에서 패악질을 부리고 있다고 하지 않았소? 타국의 귀족마저도 그자에게 살해당한 판국에 어찌하여 각국 정부가 힘을 합쳐 그를 단죄하지 않는 거요?”

불의에 분노하는 자신에게 도취한 듯한 과장된 발언과 몸짓.

도수가 높아 작아 보이는 눈에 광대뼈가 툭 튀어나온 얼굴로 그러니 광대보다 우습기 그지없지만, 국장은 티끌만큼도 그런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처연한 모습으로 대답했다.

=김철수 씨와 김영수 씨도 아시겠지만, 국가 사정이라는 것은…… 누가 정의롭냐가 아니라 누구에게 명분이 많은가로 돌아가기 마련이니까요…….=

김영수와 김철수는 그 모습에 순간 홀렸다가 주먹을 불끈 쥐며 말했다.

“그 성제라는 놈을 어떻게만 하면 다 해결되는 거죠?”

“우리도 귀가 있소. 성제가 어떤 놈인지는 듣고 있지. 그런 악당이라면 우리가 직접 손을 써서 해결하면 될 일 아니겠소!”

=…….=

국장은 가냘픈 외모처럼 우물쭈물하면서 그들을 살짝, 올려다본다.

한국의 여배우들마저 꼴뚜기로 만들어버릴 만큼 아름다운 외모, 거기다 남자의 보호 욕구를 있는 대로 자극하는 시선의 각도와 표정, 그리고 은근슬쩍 드러나는 가슴골.

김철수와 김영수가 코르셋 같은 바지 덕분에 강조된 가슴, 그로 인해 부각되는 가슴골을 보곤 콧구멍을 벌름거린다.

=말이 그렇다는 거지, 그를 공격하는 것도 힘들어요. 그의 주위에는 엄청난 미녀인 7급과 6급의 희귀 직업자가 늘 지키고 있고 그의 신분도 영도를 대표하는 성제예요. 그를 우리가 공격했다는 게 알려지면 이번에야말로…….=

“걱정하지 마시오. 공간의 지배자인 이 친구와 저, 차원의 유리자가 있다면 그런 직업자 따위는 문제도 아니오!”

“어쨌든 소문 안 나게 그놈만 죽이면 그만이란 거잖아요?”

=아뇨! 그를 절대 죽여서는 안 됩니다. 두 분의 공간 조작 능력과 차원 유리 능력이면 충분하겠지만, 그는 현재 8급을 넘어서는 영혼사 직업으로 정보국은 추측 중이에요. 만약 그가 살해당한다면 즉각 영식이 대륙 규모로 벌어져 세상 절반이 죽음의 땅으로 변할 게 틀림없어요.=

세상이 죽음의 땅으로 변한다는 이야기에 순간 흠칫한 두 사람이었지만, 이윽고 별거 아니란 것처럼 과장되게 으스댄다.

“뭐 그렇다고 해도 어렵지 않네요. 제가 공간 이동으로 그 새끼 근처로 가면 철수가…….”

“김영수. 내 이름은 아스트롤라보스라고 몇 번이나 말했을 텐데.”

“……아스트롤라보스가 차원 유리로 다차원에 빠트리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두 분께 그런 행위를…….=

“걱정 마시오. 우리도 그만한 각오가 있으니! 그, 대신이라고 할지…….”

김철수가 슬그머니 눈치를 보자 국장이 해맑게 웃으며 대답했다.

=차원 관리국과 메리아놀 상층부는 두 분의 노고에 합당한 보상을 드릴 거예요. 국장의 이름으로 약속드리겠어요!=

회상을 끝낸 김영수가 조금 우울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야, 철수. 우리 이용당하는 거지?”

“이몸의 이름은 아스…….”

“아 씨발 좀! 씨발아 여기 너랑 나 뿐이잖아! 그 좆같은 컨셉은 우리 둘만 있을 땐 그만 들이밀어!”

“…쯧. 이용당하는 거면 뭐? 넌 지금 생활 포기할 수 있어? 한국에서는 눈도 마주치지 못할 만큼 예쁜 여자애들이 후까시까지 해주고 간 쓸개 다 줄 것처럼 헤롱거리는데다 돈에 집에 명예에 전부 다 있는데. 이것들 전부 놓을 수 있냐고.”

“…….”

“뭐 어찌어찌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쳐. 이 능력으로 우리가 거기서 할 수 있는 게 뭐야? 너는 점프라는 영화처럼 공간 이동으로 은행 털고 온 세계 돌아다니면서 유유자적 살 수 있겠네. 그럼 나는?”

“새꺄. 내가 공간 이동으로 돈 훔쳐오면 넌 그 능력으로 차원 결계 쳐서 우리 아지트 만들어야지. 그리고 여자애들 사서 놀아도 되고.”

“응~ 그래봤자 엘프 미만 잡이죠? 꼴뚜기죠? 무쌩겨써~.”

“씨발 오징어무침이 친구라고 할 만큼 무쌩긴건 우리 아니냐.”

“아니 근데 그 새끼 존나 괘씸하네. 엄청나게 아름다운 여자를 호위로 부려? 국장이 엄청나게 예쁘다고 할 정도면 대체 얼마나 예쁘단 거야?”

“마도관리국에 미아사 알지? 그년한테 국장이 별것 없는 얼굴을 꾸밀 시간에 좀 더 자기 계발하라고 다그쳤다잖아.”

“헐. 내가 이때까지 본 여자 중에서 국장보다 예쁘다고 생각한 유일한 여잔데 이 시발거.”

“진짜 시발이네. 그 성제라는 새끼도 직업으로 꼬신 거 아냐?”

“어, 듣기로 제법 잘생겼다고 하던 거 같은데…….”

“……제발 꼬추 삼센티.”

“제꼬삼.”

힉힉 웃으며 시답잖은 농담을 주고받는 두 사람이 아무런 인장도 찍히지 않은 서류 한 다발, 누군가의 정보와 이동 경로가 나와 있는 서류를 건네받은 것은 몇 시간 뒤였다.

* * * *

중간에 도시 하나를 거쳐 5일 만에 몰드레테, 메리아놀 본섬으로 넘어가는 항구 도시에 도착한 일행은 통행세를 내고 바닷바람이 가득 불어오는 도시로 들어갔다.

두껍고 긴 성문을 통과해 대로에 진입하자 바닷사람과 루크랑, 플뢰, 프라우드, 플라비우스, 사비 그 외 다양한 종족으로 북적이는 도시가 한눈에 들어온다.

도시가 내리막 언덕에 형성되어있다 보니 풍광은 정말 속된 말로 끝내준다고 할 정도.

해협의 바다는 에메랄드빛 보석처럼 반짝이고 그 위를 하얀 포말과 함께 나아가는 범선과 갤리선은 장난감처럼 작게 보인다.

마차 안에서 익숙한 느낌의 항구 도시를 바라보며 감회 서린 표정을 짓던 백려강은 주위의 마차를 구경하다 작게 중얼거렸다.

=도시랑 마을을 몇 개나 지날 동안 아무 사건이 안 일어난 건 처음 같아요…….=

=유명 인사들이 괜히 정체를 감추고 다니는 게 아니니까.=

대수롭지 않게 대답한 안느는 앞뒤 좌우로 이동하는 상단 마차와 수레, 짐말 등을 바라보다 고개를 갸웃했다.

뭔가 유동량이 저번에 왔을 때보다 몇 배는 더 늘어난 거 같은데…… 패시지는 본섬 북단에 있어서 여기가 이렇게 번잡할 이유는 없지 않나?

이유가 뭘까 생각하던 안느는 마차에 들어와 있는 환인의 부름에 그쪽을 돌아보았다.

“북 몰드레테로 넘어가는 간단하고 빠른 방법은 뭐가 있지.”

=하루에도 몇 번씩 오가는 배가 있으니까 그거 타고 그냥 넘어가면 돼.=

“대기 없이 바로 승선할 수 있는 건가.”

=음……. 내가 여기 처음 왔을 땐 대기 같은 건 없었는데 지금 보니까 유통하고 통행이 몇 배나 늘어났어. 예약이 들어차서 기다려야 할지도 모르겠네. 한 번 알아봐야겠는데?=

=해양 마수의 습격은 없니?=

=전혀 없다고는 못하겠지만 해양 마수는 강할수록 덩치가 어마어마하게 커지거든. 여기 해협 수심은 비교적 얕아서 강한 놈들은 못 들어오고 약한 놈들은 해군이 오가면서 해협 정리하니까 괜찮을 거야.=

=그 정도면 벨 아가씨 선에서 정리되겠네.=

유르파가 시야 확대 비술이 걸린 안경을 벗으며 웃자 아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더라도 환연이 물 정령을 부리면 그냥 수장시켜버릴 수 있겠죠.=

똑똑—

마부석과 연결된 쪽창에서 노크가 나더니 이실리테의 목소리가 흘러들어온다.

=주인님. 왼쪽으로 상업 거리가 보이는데 그쪽으로 갈까요?=

“그래. 적당히 숙박할만한 여관이나 호텔을 찾아봐라.”

=네.=

조금 늦은 오후다. 머물 곳을 정하고 선박 일정을 알아보면 되겠지.

호텔 객실을 빌린 여자들은 이곳에서 오래 머물지 않을 거고, 본섬으로 넘어간 뒤에는 엘위드리스를 들르지 않고 통과할 거란 환인의 이야기에 각자 볼일을 보러 흩어졌다.

유르파는 안느와 아영하고 그동안 만들어둔 마도구, 마도기를 팔러.

이실리테는 백려강, 노른과 함께 시장에서 싱싱한 수산물을 사러.

환인은 합체로 몸을 키운 환연, 마도구로 단쌍익 플라비우스족처럼 바뀐 이모렐과 여객선을 알아보기 위해 항만으로 향했다.

「환인. 저거 사줘.」

서울의 번화가처럼 빼곡한 사람들 사이를 걷고 있으니 백려강의 옷을 빌려 예쁘게 차려입은 환연이 환인에게 팔짱을 끼며 길거리 음식을 가리켰다.

내장을 제거한 생오징어를 간장 발라가며 달군 돌에 굽는 요리다.

위생 면에서 문제가 없어 보여 20개를 사서 =감사함돠 손님~!!= 환연과 이모렐에게 하나씩 나눠주고 아스펜드에 전부 집어넣는다.

그렇게 각자 통오징어 간장구이를 들고 걸으니 환연의 요구가 이어졌다.

볶은 면요리, 닭꼬치, 순대 비슷한 요리, 떡꼬지, 각종 튀김에 구운 과일이나 꿀 같은걸 뿌린 빵들.

이것저것 다른 여자친구들에게 나눠줄 것까지 사서 담고 있자니 그 양이 두 끼 식사해도 될 양이다.

평소보다 부쩍 많이 먹는 모습에 아직 통오징어 간장구이도 다 먹지 못한 환인이 물었다.

“릴라이스가 먹자고 하는 건가.”

「응. 보이는 거 다 먹자고 하네.」

아무래도 릴라이스에게 몸을 바꿔주지 않은 대가로 보인다.

문제 될 것은 없다. 릴라이스와 합체한 환연은 더 이상 육체에 연연하지 않는 반정령 상태가 되었다. 과식한다고 배가 터지거나 하는 일은 없으니까.

그녀가 요구하는 것을 사서 이모렐에게도 건네주며 걷고 있자니 환연이 조금씩 음식을 나눠 환인에게도 먹여준다.

「아~ 해봐.」

“…….”

왠지 길거리 데이트 같은 느낌인데…… 이건 환연의 요구인가.

먹음직스럽게 구워 각종 해산물 소스를 끼얹은 문어 풀빵 하나를 받아먹던 환인은 이모렐이 바나나에 초콜릿을 코팅한 음식을 먹다 말고 어느 한 곳을 빤히 바라보는 걸 알게 되었다.

시선이 마주치자 이모렐이 요청한다.

=환인 님. 조용한 곳에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

잠깐 주위를 둘러본 환인은 오래된 찻집처럼 정갈해 보이는 곳으로 들어갔다.

마침 이모렐과 환연은 두 손 가득 먹을 것을 든 상태.

환인은 다가온 종업원에게 쓴맛이 나는 차 석 잔을 주문하고 본격적으로 음식을 섭취하는 환연을 돌아보았다.

「바람으로 방음막을 쳤어. 이야기해도 돼.」

“그래. 이모렐, 무슨 일이지.”

=성제님. 저는 엘위드리스의 숨겨진 비밀 정찰대 소속이었습니다. 정찰대 의무 교육에는 다양한 암구어, 암호 해석 교육이 있는데…….=

길을 걷다 무척 오래된 고어 암호 방식이 특정 법칙으로 길가에 주르륵 매여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어떻게 알았어? 눈에 띄는 특이 사항은 안보였는데.」

=천의 매듭 방식과 색의 나열, 높낮이 방식으로 암호를 전달하는 방식입니다. 읽는 방향도 지정되어있는데 매듭 암호를 쓴 자는 구어 사용 금지를 몰랐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내용은?”

=성제님을 노리는 암살자가 곧 몰드레테에 도착할 예정. 암살자가 도시에 도착하면 발견 즉시 멀리서 지켜보며 경과를 보고하라. 이상입니다.=

“패시지에서 드디어 움직였나 보군.”

「잠깐. 환인을 지켜보면서 경과를 보고하라는 게 아니라 암살자를 지켜보란 이야기야?」

=그렇습니다.=

「흠……. 암살자하고 자기들하고 연관이 없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선가?」

“평범한 암살자일 리 없겠지. 과정을 기록해 차후에 이용할 생각이라고 보는 게 합당할 거다.”

환인의 이야기에 웨지 감자처럼 구운 감자튀김을 먹던 환연이 물었다.

「무슨 능력인지, 어떤 놈인지, 어떻게 생겼는지 암호에는 안 나와 있어?」

=매듭 암호는 묘사를 붙이거나 긴 의미를 전달하기 어렵습니다. 방금 발견한 매듭도 직역하면 ‘암살자 곧 도착. 귀빈 마중. 관찰 후 경과 보고.’가 됩니다.=

「확실히 어렵겠네. 종족이나 머리카락 색을 암호로 조합하려면 수천 가지가 늘어날 테니까. 매듭을 그렇게 복잡하게 묶으면 대번에 눈에 띌 테고. 그런데…….」

딸기에 꿀을 잔뜩 바른 것을 콕콕 집어먹던 환연이 나무 포크를 들어 환인을 가리킨다.

「환인은 지금 유르파의 마도구로 모습을 완전히 바꿨잖아. 쟤를 지금 성제라고 알아볼 수 있어?」

이모렐은 갈색 머리카락에 갈색 눈동자의 하프 플뢰 모습을 한 환인을 잠시 바라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유르파 님의 마도구는 은폐 성능까지 갖추어 전문 탐지 도구가 아니라면 알아보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해도 조심하는 게 좋겠지. 환연, 좀 피곤하겠지만 동향이 특이한 사람까지 낱낱이 살펴다오.”

「응. 사 온거 다 먹었으니 가자. 릴이 더 먹자고 재촉하고 있어.」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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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플래그 꽂는 백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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