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3 몰드레테로 가는 길
=드디어 노른이도 하렘에 편입됐네.=
「편입이라기보단 드디어 본처 등장이란 느낌 아냐?」
=하긴. 노른이는 이실리테 언니보다 더 빨리 오빠랑 만났으니까요. 그땐 사람이 아니라 새끼 녹색 쿠에였지만.=
=노른은 비상일 때부터 주인님 사랑이 남달랐어. 그것 때문에 몇 번은 싸웠을 정도니까.=
=호엑?! 언니가 노른하고 싸우셨다고요?=
=잘 때도 쉴 때도 밥 먹을 때도 주인님과 너무 붙어있으려고 해서…… 그땐 말 못하는 짐승인데다 크기도 커서 사람 집하고 쿠에 축사하고 분리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
=뭐, 그때 노른은 말 그대로 쿠에였으니까 사람의 사랑하고는 다른 의미에서 사랑이었겠지. 신수가 되고 인간화할 수 있게 된 이후에도 한동안은 사랑보다 좋아한다는 느낌으로 도령이랑 붙어 다녔으니까.=
=사실 시간 문제긴 했어~. 노른이도 여자애가 됐고 겉모습이 어리긴 하지만 성체잖니.=
여자들은 환인과 노른이 이어진 것에 별로 놀라워하지 않았다.
노른의 환인 독점욕은 아성체일 때부터 유달랐다.
반쯤 엄마처럼 여기는 쿠르티마저도 환인을 등에 못 태우게 한다. 환인이 마차 같은 무생물이 아니라 다른 탈것 생물을 탔다간 난리가 날 정도.
환인을 태울 수 있는 건 오직 나 혼자. 이걸 지금까지 힘과 억지로 관철해온 거다.
그런 노른이 여자 사람의 모습을 가지게 되었고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게 되었으니 그와 살을 섞는 건 높은데서 낮은 곳으로 물이 흐르는 것처럼 지극히 당연한 일.
마차를 타고 메리아놀 본섬으로 넘어가기 위한 최후의 관문, 몰드레테 해협을 향해 동쪽으로 이동하며 이야기를 주고받던 여자들이 하늘을 올려다본다.
선명한 푸른 하늘에 녹색의 멋진 날개를 활짝 피고 활강하듯 날고 있는 노른의 신수 모습은 창공의 주인처럼 우아하기 그지없다.
마차 지붕에서 콜라이도에서 구한 땅신 교단 성술 사례 모범집을 읽던 아영이 책을 덮으며 언니들에게 묻는다.
=음, 그러고 보면 노른이도 이제 육합등약 효과를 받겠네요?=
……그러네? 여자들은 다시 하늘을 비행 중인 노른을 올려다보았다.
「같은 신수인 대성녀는 신력이랑 도력이 늘고 신체 안정성이 늘어났다던데 노른은 어떨까.」
=도령의 육합등약은 사람에 따라 효과가 천차만별이잖아. 대성녀님하고 비슷한 일이 일어날 거란 장담은 어렵지 않아?=
유르파가 수첩을 꺼내 팔랑팔랑 넘기며 눈썹을 살짝 찡그린다.
=음, 지금까지 기록으로 가장 큰 변화를 겪은 사람은 샤스라 영성이야. 상위 종족이 되면서 외형이 확 바뀌었고 능력의 상승도 이뤘으니까. 그다음이 종족이 변하며 체질도 변한 나고 그다음이 안느 아가씨랑 아영이네.=
=나나 이슬이처럼 희귀 직업으로 재각성은 사례로 들기 어려우려나…….=
=아무래도? 직업적인 자질은 보통 알 수 없으니까. 반대로 거의 효과를 못본 사례는 조금 젊어지고 피부가 깨끗해져서 예뻐진 정도야. 영성님들의 자녀들, 자손들 경우.=
그때까지 말없이 조용히 앉아있던 백려강이 살짝 손을 들었다.
=노른이 더 예뻐진다는 건 몸도 커진다는 거겠죠…? 그러면 노른이 오라버니의 예쁨을 가장 많이 받을 거 같아요.=
=왜? 도령한테서 뭐 들은 거 있어?=
=그게…….=
며칠 전 노른이 환인과 잠자리를 가진 다음에 히히 웃으며 해준 이야기를 하자 여자들이 으음, 생각에 잠겨 든다.
먹어도 물리지 않는 기분 좋은 속살? 그게 무슨 느낌이지?
=오라버니가 그러셨대요. 노른하고 함께 여행한 게 아니었다면 서큐버스라고 착각했을 거라고…….=
=서큐버스면 그거지? 도령네 세계에 있다는 악마.=
여자들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이 주제로 인해 잠자리에서의 걱정과 우려가 여자들의 머릿속을 채우기 시작한다.
혹시 자신과 잠자리가 만족스럽지 않으면 어쩌지? 지금까지 오빠/도령/오라버니가 기분 좋은 척한 거라면?
마부석에서 마차를 몰던 이실리테가 말한다.
=주인님이 그런 말씀을 하신 적 있어. 우리 몸은 너무 자극이 심해서 감정보다 몸이 더 빨리 반응한다고.=
=어, 이슬이 너한테도 그랬어? 나한테도 그런 적 있는데.=
=너한테는 뭐라셨는데?=
=도령이 원기 방출을 자꾸 쓰길래 왜 쓰는 거냐고 물으니까 우리 성감을 끌어올리는 데 쓴다고 그랬어. 원기 방출을 받으면 우리가 좀 더 느끼기 쉬워진다고. 그러더니 내 구멍이 너무 좁고 넣은 채로 가만히 있어도 막 움직여서 금방 쌀 거 같다면서 같이 가기 위해서라고 했거든.=
그리 말한 안느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면서 중얼거린다.
=그땐 그냥 쪼여서 좋다는 뜻으로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뭔 쓸데없는 고민을 해. 그래서 환인이 너희가 싫다고 한 적 있어?」
=그치만 혹시라도 싫어하면 어쩌나 걱정이 드는 건 당연한 거 아냐?=
이모렐의 수박만 한 젖가슴에 누워있던 환연이 한숨을 푹 내쉬며 ‘이 어린 것들.’이란 시선을 보낸다.
「환인 성격에 불만이나 불편한 걸 퍽이나 참겠다. 그 성격이면 요구 사항이 있을 때 바로바로 말을 할 게 틀림없잖아. 그리고 자극이 강한 걸 싫어할 사람은 없어. 오히려 밋밋한 게 더 문제지.」
=연이 말이 맞아~. 만약 자기의 여자가 하나둘이면 그건 큰 문제겠지. 하지만 우리는 일곱이잖니?=
돌아가면서 다양한 맛을 즐길 수 있으니 자극이 강한 것은 별 문제가 안 된다.
=정히 보지가 자극이 너무 강하면 방식을 바꿔서 입이나 손으로 해줘도 되고 겨드랑이나 보짓살로 해주는 방법도 있어. 자극이 강하면 다른 방식으로 충분히 만족을 얻은 다음 보지로 마무리해주면 돼~.=
=겨, 겨드랑이?=
안느가 뜨악한 표정을 지을 때 아영은 오히려 눈을 반짝이면서 손을 번쩍 든다.
=유르파 언니! 보짓살로 한다는 건 무슨 뜻이에요? 가르침을 요구합니다!=
=그러니까…… 아영아, 누워서 팔을 내밀어볼래?=
말보단 행동으로, 아영이를 눕히고 그녀의 가느다란 팔뚝을 사타구니에 끼운 유르파는 허리를 앞뒤로 스무스하게 흔들며 환인이 보았다면 ‘스마타군.’했을 동작을 선보인다.
=우오……. 유르파 언니 너무 야함쓰.=
로브를 입은 상태라고 해도 밑에서 올려다보는 H~I컵의 위용과 밀려들어가 드러난 그녀의 육덕진 허리와 허벅지의 윤곽에 있지도 않는 자지가 설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킥킥. 이것 말고도 여자 몸은 되게 부드러운 곳이 많거든? 오일을 발라서 부드러운 몸 곳곳을 살살 문질러만 줘도 남자들은 자극을 강하게 느껴. 그러니까…….=
계속해서 이어지는 유르파의 섹스 테크닉 강의.
비상을 타고 하늘을 날며 주위를 살피던 환인은 마차 지붕에서 벌어지는 광경에 눈을 가늘게 떴다.
“…….”
아영을 눕혀놓고 유르파가 그 위에 올라타서…… 지금 허리를 흔드는 건가? 옷을 입고 있는 걸 보면 레즈 플레이는 아닌 거 같은데.
뭐, 다들 눈을 반짝이는 걸 보면 야한 이야기라도 하는 거겠지.
고개를 든 환인은 왼쪽으로 저 멀리 보이는 수평선에 눈빛을 가라앉혔다.
현재 높이는 대충 500m가량. 수평선이 저리 보인다면 대강 80km 너머라는 이야기다.
슬슬 해협에 가까워지고 있다. 앞으로 대충 7~8일 뒷면 메리아놀 본섬의 관문이라는 몰드레테에 도달하게 될 거다.
콜라이도 연합 도시를 빠져나온 뒤 최대한 속도를 올린다고 6일 동안 마을, 촌락을 들르지 않고 계속 이동만 하는 중이다.
마차를 이용 중이라 쿠에를 타고 이동하는 것보다 피로는 덜하지만, 속도는 2/5정도로 줄어든 탓에 시간이 조금 밀리는 상황.
이는 환인이 일부러 노린 것이다.
메리아놀에서 습격자를 보냈다면 싸우기 편한 장소에서 맞이하려고 말이다.
그러니까 습격자를 보냈다면 지금쯤 마주치고도 남았을 시간인데…….
‘메리아놀 주도의 상황이 생각 이상으로 혼잡스럽나.’
그렇다면 한결 편히 메리아놀을 가로지를 수 있을 거 같은데.
패시지가 조용하다면 남은 문제는 가는 길목의 엘위드리스 가문.
콜라이도에서 수집한 엘위드리스 시의 상황은 최악의 상태라는 말로도 부족했다.
영주는 살아있지만 휘하 가신의 8할이 증발했고 병력도 허리가 꺾였다고 할 만큼 질이 낮아져 도시 미궁을 제어하는데 거의 전력을 쏟고 있다고.
병력의 질이 낮으니 치안의 하락은 당연히 따라붙고, 도시 분위기가 흉흉하니 상단도 문을 닫거나 잘 찾아오지 않게 되어 생필품까지 부족 현상을 일으키고 있다.
시민들이 하나둘 도시를 떠나기 시작해 지금에는 인구도 반토막 난 상태라던가.
이런 상태라면 엘위드리스도 신경 쓸 필요가 없을 거다. 본섬에 들어선 이후 마을이나 촌락 위주로 조용히 움직인다면 쓸데없는 시선은 안 모일 터.
뒤쪽을 걱정할 필요도 없다.
헤뷜트는 현재 절찬리에 내전 중이다.
대족장, 여기에 만엽과 청이 기관을 이끌고 주술사단과 다투며 상위 부족에게 피의 정화를 진행 중인데, 이게 모두 구주의 독니 때문에 벌어진 사태다.
어떻게 된 일이냐면, 콜라이도를 나설 때쯤 하얀 늑대들을 통해 긴급 보고가 올라왔었다.
구주의 두령과 조언자가 끝끝내 생존한 령주 중 넷과 한데서 격돌, 구주의 독니 자체가 풍비박산 났다는 연락이다.
령주와 핵심 전력은 그 전투에서 전부 사망했고, 구주는 격전 속에서 사비족의 진정한 용린족, 반인반용으로 각성했지만 전투에서 입은 큰 상처와 독을 치유하지 못해 결국 사망하고 말았다.
문제는 그 격전이 벌어진 장소가 헤뷜트의 중앙 수로 광장이었다는 것.
시종일 령주 넷에게 밀리던 구주가 돌연 어마어마한 흑빛과 함께 흑룡인黑龍人으로 각성, 광전사처럼 네 명의 령주와 심복들을 삽시간에 쳐 죽이는 게 수만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일어났다.
당연히 그 여파는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벨티칼에서는 샤스라의 반인반룡 상태를 가짜, 영도의 기만이라고 호도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어있다.
그런 소문의 가운데에는 도시의 특정 상급 부족 연합이 있는데 그런 그들을 지지하던 여론 층이 구주의 흑룡인 각성을 두고 해명을 요구했다.
이게 어떻게 된 거냐. 진상을 밝히라는 목소리를 높인 거다.
그에 대한 부족 연합의 대응은 힘을 동원해 천것들이라고 찍어누른 것이었다.
당연히 여론은 매우 좋지 않았다. 지금까지 믿고 있던 사람들에게 뺨을 맞은 셈인데 기분이 좋을 리가.
끓는 물에 기름을 부은 것 정도는 아니지만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정도는 되었는데, 구주의 사망 이후 미친 것인지 구주의 조언자, 쿠클린이 구주의 독니 내부 특급 기밀부터 하급 기밀까지 수많은 부족장의 심장에 칼침을 놓을 수 있는 정보를 싹 뿌려버렸다.
‘다 같이 죽자는 자폭이었지.’
그중에는 만엽과 청도 피바람을 일으킬 수밖에 없던 내용이 있었다.
일부 상급 부족 연합에서 대족장을 암살하고 일가를 묻어버린 뒤 쿠데타를 일으켜 현 카스트 제도라 할 수 있는 행정을 무너트리려는 작당이 있었던 거다.
쿠클린이 뿌린 기밀 정보에 각 부족의 사이는 극도로 험악해졌다.
이전까지 동맹이던 사이가 하루아침에 적대적으로 돌변했고 사이가 험악하던 부족은 그야말로 같은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철천지원수 사이가 되었다.
부족에 속하지 않은 자유민들의 분위기 또한 흉흉해졌다. 용린족에 대해 해명하랬다가 뺨을 처맞았는데 거기다 고춧가루와 소금을 문지른 셈.
분위기가 극도로 험악해지는 가운데 쿠클린은 다시 도시 중앙 수로 광장에 나타나 여러개의 폭탄을 터트렸다.
자신은 주술사제 후보자 출신이었으며 구주의 독니 대수령의 조언자 역할이었다.
현재 주도를 뒤덮은 소문은 전부 구주의 독니 내부에 기록된 사실이며, 주술사제는 다름 아닌 영도의 고술기古術記를 훔쳐 나온 영혼사가 세운 영도의 아류 단체다.
이것만해도 헤뷜트가 몇 달은 시끄러울 폭탄이었는데 그보다 더한 폭탄도 있었다.
그런 주술사제가 모인 집단이 힘을 합쳐 대사주大蛇主, 바다신의 사도를 천천히 저주해 힘을 깎고 있다는 발언.
감히 신의 사도를 저주하고 있다는 폭탄 발언에 대중이 얼어붙었을 때, 쿠클린은 십수만 명이 보는 앞에서 자신의 목줄을 가르고 배를 갈라 심장과 내장을 바다신에게 바치며 헤뷜트에 저주를 내렸다.
《기만과 모략으로 백성을 굽어살피지 않는 비대한 욕망의 덩어리들이여! 무지하고 멍청하여 하루살이처럼 살아가는 헤뷜트의 백성들이여!! 무식과 무지와 욕망으로 가득찬 벨티칼에 바다신 아민=라의 저주가 있으리라!!!!》
……바다신의 이름을 입에 담으며 내린 폭로와 저주가 있고 난 뒤.
만엽과 청은 비밀리에 준비하던 병력을 총동원, 주술사제단을 습격하려 했지만 내부의 배신자로 인해 정보가 유출되어 주술사제단 또한 휘하 부족 전사단을 동원해 맞섰고 이에 자극받은 상위 부족들도 자신의 영역으로 돌아가 인근 부족과 전쟁을…….
“후우.”
「응?」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벨티칼은 절찬 내전 중. 히스론드는 아직 어린 쌍둥이 왕 때문에 국가의 기능이 미흡한 상태다
라드세아도 내부 불순물을 찾아내려다 분위기가 험악한 상황이고 메리아놀은 아드네빌라로 인해 주도 인근이 수몰되고 있다.
메리아놀은 결명자라는 비밀 결사 집단이 차원 방랑자를 인위적으로 소환해대며 온갖 실험 중이고.
그나마 각 신의 교단이 제 기능을 하고 있지만 그런 교단들도 메리아놀은 현재 신을 모독하고 있다며 결백하다면 국경을 열어 신단 조사를 받아들이라 압박 중이다.
니오네브레스 전체가 말 그대로 폭탄 심지가 된 느낌인데 그건 오랜만에 통신이 연결된 지하율도 같은 생각이었다.
[아저씨 미쳤어? 무슨 폭탄을 사방팔방 뿌리고 다녀!]
“내가 뿌린 게 아니다. 저들이 스스로 기폭하고 있는 거지.”
[아니…… 진짜, 하…….]
“그런 것보다 초대형 골렘 준비는 끝나가나.”
[……유르파 씨가 준 공간 전이 구슬 덕분에 50일 정도면 패시지 상공에 전이 포탈까지 구현할 수 있을 거 같아.]
“그래. 이쪽도 아신위를 목전에 두고 잠시 멈춘 상태다. 능력의 성장도 크게 이뤘으니 주도 정도는 밀어버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 중이야.”
[아저씨 대단한 건 나도 아니까 좀 폭탄 적당히 뿌리고 빨리 메리아놀로 가. 이러다가 아저씨가 돌아가기 전에 다섯 신이 문명을 초기화시키겠어.]
“……초기화?”
[니오네브레스 대륙 행성은 지구만큼이나 오래됐어. 이곳 인류는 신들이 창조한 피조물이고. 세월이 어마무시하게 흘렀는데 그런 것치고 문명이 중세를 기준으로 현대 문물이 약간 첨가된 게 이상하다고 생각 안 해봤어?]
“…….”
[하긴 했나 보네. 아무튼 이 이상 세계 오염도가 높아져 자정이 불가능해 보이면 신들이 다시 리셋 버튼을 누를 수 있으니까 좀 분탕도 적당히 해.]
“……노력해보지. 다시 연락하마.”
신의 손에 의해 문명이 초기화될 수 있다는 이야기는 여자친구들에게 하지 않았다. 그녀들에게 괜한 걱정을 씌워 속을 쓰리게 할 생각은 없으니까.
「환인. 길 저 멀리서 사람들이 와.」
“슬슬 다음 도시가 나올 때군. 내려가자.”
「응.」
땅으로 내려와 마차를 세운 환인은 여자친구들에게 개량형 아우라 은폐 목걸이와 인식 저해 후드 망토를 쓰라 하고 마부석에 올라탔다.
개량된 은폐 마도구는 위상력의 발산 조절 기능을 첨가해 아우라를 아예 없애버리는 게 아니라 희미하게 만든다.
등급을 속이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희귀 직업자의 아우라는 숨기지 못한다. 이실리테와 안느는 그대로 아우라 은폐 마도구를, 유르파와 아영은 아우라 조절 마도구를 착용해 1~2급 정도로 줄였다.
마부석에는 이실리테와 환인, 지붕에는 안느와 백려강. 그 외 나머지는 마차 안.
젤프리의 깃털 색도 밀짚색으로 바꾼 환인은 일행의 변장을 확인하고 다시 마차를 출발시켰다.
그리고 환인의 예상대로 길을 갈수록 통행량이 조금씩 늘기 시작해 도시와 도시, 도시와 마을을 오가는 여행객들과 상단, 모험가, 용병들이 자주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한가롭게 걸어가는 사람들, 바삐 오가는 상단들, 완전 무장한 채 다음 돈벌이를 위해 이동하는 용병대, 용병단들.
푸른 하늘을 머리에 이고 푸른 초원을 이동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평화롭기 그지없는 일상이라 세상 난리는 다 거짓말 같다.
하지만 세상의 혼란은 천천히 일반인들에게도 퍼지고 있었다.
그건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진 야영지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어두워진 밤, 모닥불을 크게 피운 주변으로 사람들이 모여 주변 소식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이보게들, 지금 시레세아로 가시는 길인가?=
=그렇습니다. 이블팩션과 마주한 도시라면 돈이 될만한 일이 많을 거 같아서요.=
=으음. 노파심에 하는 말이지만, 시레세아나 콜라이도에 가는 건 그다지 추천하지 않네.=
=……어째서입니까?=
=콜라이도에서 세상을 위험에 빠트렸던 악랄한 마왕을 성제님이 단죄하셨다는 소문이 파다해. 그 과정에 연루된 귀족들과 의원들도 휘말려 수십 명이 죽었고…… 아무튼 분위기가 아주 흉흉해.=
=마왕과 연루된 범죄 귀족을 시레세아 영주가 내놓지 않으니 분노한 성제님이 성벽을 다 부숴버렸다는 이야기도 있어. 영주 귀족이 무릎을 꿇었다는 말도.=
=아, 그 이야기는 저도 들었습니다. 흙벽을 세우고 성벽을 쌓기 위해서 올해 세금이 엄청나게 올랐다고요. 성제님한테 받은 스트레스를 시민들한테 푼다고 말이 많던데요=
“…….”
=어……. 이거 참, 본토도 위험해 보여서 빠져나오는 길인데 여기도 난리군요.=
=으음? 자네들은 본토에서 오시는 길인가? 그곳 분위기는 지금 어떻나?=
=말도 마십쇼. 지금 패시지 주변은 비에 다 쓸려내려 섬이 됐어요. 비가 엄청나게 쏟아지니 주변도 물난리가 난데다 땅에도 습기가 엄청나 바다에서 나가와 마물들도 몰려오고 있고…….=
=패시지는 완전히 고립된 상태에요.=
=저희는 운 좋게 봉쇄되기 전에 빠져나왔는데 본섬 북부 각 도시에 사대 교단이 자리 잡고 오가는 사람들의 신분을 까다롭게 검문한다고 하더군요. 신원이 불분명하면 그대로 끌려간다고 합니다.=
=어휴……. 세상이 어찌 되려고 이러는지 모르겠네요. 벨티칼도 지금 내전이 터져서 매일 부족 간에 전쟁이 일어난다고 하던데…….=
=벨티칼이 유독 심할 뿐이지 히스론드하고 라드세아도 비슷하다더라.=
=영도는 태초의 거인들이 자리 잡아서 무척 안전하다고 하던데 차라리 그쪽으로 가볼까 싶습니다.=
=그래? 성제님이 분노하신 탓에 영도도 분위기가 험하다고 들었는데 헛소문이었나.=
=기플라라는 겁 많은 희귀 종족이 정착했다고 하잖습니까. 그만큼 안전하다는 뜻이겠죠.=
=이럴 때면 꼭 이블팩션이 미쳐 날뛰던데…… 휴우.=
=그러게 말입니다. 서민들만 살기 어려운 세상이 되어가니 원.=
대륙을 떠돌아다니는 용병대와 상단이 공공연히 이런 말을 할 정도라면 다른 곳 분위기는 말해 뭘 할까 수준일 것이다.
이실리테가 불에 두툼한 고기 꼬치를 굽는 걸 지켜보며 이야기를 듣던 환인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영구 귀환 준비도 미룰 수 없겠군.’
미궁을 돌파해서 심핵을 부수고 힘을 흡수해야 지구로 영구 귀환할 수 있다.
저등급은 돌파해도 의미가 없을 테니 최소 4급 이상을 돌파해야 하는데 그만한 미궁은 세상에 그리 많지 않다.
환인은 하얀 늑대들에게 요구할 내용을 적어가며 이실리테가 구워주는 두툼한 꼬치 구이로 배를 채워나갔다.
=============================
※ 조아라에 게시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에 의거 보호받고 있습니다 ※
※ 저작권자의 승인 없이 작품의 일부, 또는 전부를 복제, 전송, 배포 및 기타의 방법으로 이용할 경우,손해배상 청구를 포함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됩니다. (5년 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
[작품후기]
드디어 4개 국가 중 마지막, 메리아놀입니다!
연재 1년 10개월 만이네요!
암컷천마 님 후원 감사합니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