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궁기담-750화 (750/813)

750 콜라이도 연합도시

이후 공개 재판은 매우 순조롭게 흘러갔다.

막시아의 시체는 광장의 중앙 분수대 근처에 세워진 5m 장대에 목이 매달렸다.

그 모습이 자못 참혹해 심약한 사람은 제대로 마주 볼 수조차 없을 정도.

사지는 잘려 뿌리만 남았고 배는 남산만큼 불러있었으며 얼굴과 몸에는 코와 입으로 역류한 돼지 정액이 코팅되다시피 뒤덮여있다.

엉덩이 구멍에서는 설사하는 것처럼 내장을 가득 채운 돼지 정액이 푸드득 소리를 내며 때때로 흘러내린다.

그 옆의 남소테 자작 시체도 성별만 달랐고 팔다리가 멀쩡하다 뿐이지 몰골은 똑같다.

그런 두 시체의 몰골에 겁먹은 뒷골목 조직들이 순순히 재판을 받는 것이다.

물론 사형을 선고받은 직업자 깡패들이 날뛰기도 했지만…….

쩌억—

두 명이 이실리테의 다중 검기에 저항도 못하고 세로로 쪼개져 죽자 그 뒤로는 모든 걸 체념하고 순순히 기병들의 지시에 따랐다.

=도령. 막시아의 영혼은 따로 제약 안 해? 강제로 계약을 맺어서 잘못을 뉘우치게 한다던가 아니면…… 벌을 줘서 소멸시킨다던가.=

단상에서 그 모든 광경을 지켜보던 환인은 안느의 질문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개인적인 원한 관계가 있다면 영혼까지 사로잡아 가축처럼 다뤘겠지. 그러나 저것들은 강혁준과 관련된 인간이다.

좀 귀찮긴 했지만 영혼까지 소멸시켜야 할 만큼 화가 났는가 하면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거다.

그렇다고 2~3급 정도밖에 안 되는 저런 걸 거두고 싶지도 않고.

시체에서 빠져나와 울부짖는 막시아, 남소테의 영혼을 응시하던 환인은 콜라이도의 의원들이 얼어붙어서는 이쪽으로 귀를 기울이는 걸 느꼈다.

잠깐 생각하다가 안느의 질문에 대답했다.

“저자들로 인해 니오네브레스의 수많은 생명이 빛을 잃을 뻔했다. 그러고도 잘못을 뉘우치지 않으니, 내가 내리는 처벌은 육신의 굴레에 관한 것 뿐이다. 영혼에 대한 처우는 자애신께서 내리시겠지.”

=어…… 처벌이라면, 어떤 거?=

“신의 고귀하고 신성한 뜻을 한낱 인간인 내가 어찌 알겠나. 다만 짐작해보자면…… 벌레나 가축으로 환생시키든가 아니면 윤회의 굴레를 벗겨내어 완전한 소멸을 내리시든가 하지 않을까.”

막시아와 남소테의 영혼을 시작으로 처형당한 깡패 패거리들의 영혼도 빠져나와 울부짖다 하늘로 승천한다.

그런 빛무리의 승천을 줄곧 바라보던 환인은 옆에서 풀썩하고 주저앉는 강혁준을 돌아보았다.

밀랍처럼 허옇게 변한 입술과 피부, 흐려지고 탁해진 눈동자, 식은땀인지 진땀인지 모를 땀이 송골송골 맺힌 얼굴.

영혼의 눈이 아니라 그냥 보아도 생명의 불꽃이 사그라들기 직전인 걸 알 수 있을 정도다.

비록 다른 사람의 손을 빌리긴 했지만 윤미래의 복수를 성공적으로 이뤘다.

지금까지는 복수심이 그의 생명을 억지로 붙들고 있었지만, 그 복수심이 해결되자 생명의 빛이 급격하게 꺼져가는 것.

“강혁준 씨.”

목조차 가눌 힘이 없는지 이모렐의 팔에 기댄 강혁준이 죽어가는 목소리로 띄엄띄엄 말한다.

“죄……송……. 저……도, 벌을…… 받아……야…… 하, 는…데…….”

“……당신은 아내가 죽고 5년간 살아서 지옥을 맛보았습니다. 이제는 부모님도 다시 뵙지 못하고, 타향만리에서 이렇게 죽음을 맞이하게 되어 고향 땅에 묻히지도 못하게 됐으니…… 벌은 충분히 되었습니다.”

환인의 이야기에 땀이 흘러내려 맺혔는지 아니면 눈물이 흘러나온 건지, 그의 뺨을 타고 물방울이 또르르 흘러내린다.

흐려진 그의 눈동자가 먼 곳을 응시한다.

탁해져 흐릿해진 눈으로 누굴 보고 있는 걸까.

먼 곳을 응시하던 강혁준의 눈동자가 차츰차츰 풀려가고 목소리도 점점 작아진다.

“미…래야, 미안……. 엄마…… 아빠…… 미……안……….”

“…….”

이윽고 축 처지는 그의 머리.

이모렐의 팔에서 흘러내리려는 그를 받쳐준 환인은 조심스럽게 바닥에 눕혀주었다.

마지막 가는 길에 후회만 가득하였으나, 눈을 감고 영면에 든 것을 보면 마냥 괴롭기만 한 끝은 아니었던 거겠지.

환인은 숨이 끊어진 강혁준을 잠시 바라보다 어느새 조용해진 광장과 자신을 바라보는 의원들을 바라보다 조용히 입을 뗐다.

“그가 이블팩션을 사주하여 인명피해를 낸 것은 용서받기 어려운 범죄행위입니다. 그 피해의 희생자 가족과 지인분들은 이 모습이 죽음으로 처벌을 피해 도피한 것으로 보이기도 하겠지요.”

=…….=

=…….=

“하지만 강혁준과 윤미래 부부는 저쪽 세계에서 행복하게 살다 아이를 보고 평범하게 늙어가야했을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부부는 강제로 다른 세계에 끌려왔고, 갖은 고생과 죽을 고비를 넘어가며 겨우 안정적인 삶을 가졌지만…….”

범죄자들의 범죄행위에 전혀 다른 세상에서 사랑하는 아내도, 가족과 다시 만날 기회도, 수명도 잃고 서른을 갓 넘긴 나이에 죽음을 맞이했다.

이역만리라는 말도 통하지 않을 만큼 물리적으로는 절대 산출해낼 수 없는 먼 곳에서, 아무런 연고가 없는 장소에서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한 강혁준.

“가족들이 지켜보는 곳에서 맞이한 죽음도 아니고 이런 황량하고 살벌한 장소에서 맞이한 그의 죽음은…… 시간이 흐르면 모두의 기억에서 잊혀질 것입니다. 그를 기억해줄 사람도, 그의 이름 세 글자를 이어갈 후손도, 그 어떤 연고도 없는 이 죽음이 그에게 내려진 가장 큰 처벌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

=…….=

군중들은 환인의 심금을 울리는 절절한 이야기에 납득하고 수긍한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성제님 말씀이 난 이해가 돼. 막말로 벨티칼에 느닷없이 끌려가서 못된 놈들 손에 우롱당하다가 죽어도 억울함이 사무쳤을 텐데…….=

=내가 저런 일을 겪으면 혼재가 될 자신 있다.=

=어휴…….=

=뭐…… 진짜 나쁜 놈들은 저렇게 뒈졌으니까.=

마음이 약하거나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은 강혁준의 죽음이 얼마나 쓸쓸하고 괴로운 것인지 공감하며 눈물을 찍어내기도 한다.

그때 환인은 자신의 시체에서 빠져나온 강혁준의 영혼이 슬픈 웃음을 지으며 손을 내미는 걸 보고 있었다.

악수하자는 듯한 그 손을 잡자 영혼 감응 능력이 발동하며 찌릿- 몇 가지 기억이 그의 머릿속으로 흘러들어온다.

이름 없는 희귀 직업과 정신 술사의 능력을 무던히도 개발하려 애쓰던 강혁준의 기억.

정신술에 대한 이해와 이름 없는 희귀 직업의 지식이 그의 영혼술 지식과 결합해 몇 가지 능력으로 승화한다.

‘……몇 가지는 함부로 못 쓰겠군.’

환인은 작게 고개를 가로젓고는 빛무리로 변해 승천하는 강혁준을 바라보다 유르파의 로브 코트 아래에 숨어있는 환연을 불렀다.

“강혁준의 시신을 태울 수 있겠나.”

「화장하려고?」

“그래. 그라면 이 땅에 묻히기보단 바람 따라 세상을 떠돌아다니는 쪽을 좋아할 거 같다.”

「알았어.」

이윽고 환연이 불러낸 상급 불의 정령과 바람의 정령이 강혁준의 시체를 불과 수 분 만에 태워버리고는 바람을 일으켜 그의 육신을 하늘로 떠나보낸다.

약간의 먹구름이 끼며 빛내림 현상이 일어나는 하늘, 그리고 그런 하늘로 날아오르는 작고 희미한 연기 무리.

환인은 연기 같은 잿가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하늘을 바라보다 시장과 아란=에로프 의원에게 뒤처리를 맡기고 호텔로 돌아갔다.

강혁준 사건은 그렇게 마무리 되었다.

콜라이도와 마주하고 있던 이블팩션 마을은 환인의 손에 소멸했다는 것이 널리 알려졌고, 시의회는 뒤늦게 몰려든 군중의 격렬한 항의를 받으며 이번 사태에 조금이라도 연관이 있는 의원의 처우에 고심했다.

아란=에로프 상원의원이자 시의회 의장은 의원직과 의장직을 모두 내려놓았고 5년 전 조사의 미흡을 이유로 기병대장이자 상원의원인 무로스도 양쪽 지위를 내려놓았다.

그 외 뒷골목 조직에게 뇌물과 향응을 받아 챙긴 것이 적발된 의원들도 다수 옷을 벗게 되었다.

이 악물고 외면하면서 직업자 호위로 지위를 보전하려 하기에는 마녀재판을 벌일듯한 군중도 꺼림칙했고 사건이 종결되었음에도 이틀째 도시에 머무르는 환인이 무서워서 버틸 수 없었다.

이런 이유로 연일 소란이 벌어지는 도시 분위기 속에서 환인은 사비를 일부 털어 강혁준의 테러 주도로 사망한 유가족에게 위로금을 전달했다.

명확한 조사 결과 이블팩션에게 사망한 사람은 5년간 총 백여 명.

상류층 인사는 없고 대부분 중산층. 일부는 하층 계급이었기에 1인당 10금화씩 받을 수 있게 조치한 것이다.

물론 10금화 전부 환인의 주머니에서 나오지 않았다.

10금화 중 1금화는 환인이 사비로, 나머지 9금화는 환인이 시의회를 협박하여 보상금 명목으로 뜯어내 9금화를 더한 것.

그러고도 상원의원과 하원의원들이 십시일반 재물을 모아 환인에게 감사와 사례비 명목으로 2000금화 상당의 금은보화를 바쳤다.

「100금화 내고 1900금화를 더하다니 이게 돈 놓고 돈 먹기인가? 아니, 돈이 복사가 되는 거라고 봐야겠네.」

성배처럼 보석이 장식된 황금잔에 누운 환연이 자기 덩치만 한 크기의 보석 목걸이를 들어 보이며 하는 이야기에 여자들이 쓴웃음을 짓는다.

=그나저나 자기, 굳이 자기가 직접 지갑을 열어서 보상금을 지급해야 했니? 마지막 재판장 분위기를 보면 강혁준을 미워하거나 원망하는 사람은 아예 안 보이는 거 같았는데.=

그도 그럴 것이, 어마어마한 사형과 처벌 퍼레이드에 다들 혼이 쏙 빠져있었다.

거기다 강혁준이 죽는 것을 직접 두 눈으로 보았고 환인이 설득력 강한 목소리로 그를 대변한데다 관련된 의원들도 파직당했기에 사람들은 불만을 품으려 해도 불가능했을 거다.

굳이 보상금을 지급하지 않았어도 피해자 유가족들은 납득했을 텐데…….

“그대로 끝냈다면 차원 방랑자들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은 나빠졌을 겁니다. 이해하고 수긍하는 것과 좋게 보는 것은 다른 이야기니까요.”

=음, 하긴 그래요. 도시의 중산층이라 해도 10금화를 모으려면 거의 반평생을 안 쓰고 모아야 할 돈인데 그걸 보상금으로 떡하니 받으면 주변에서 말은 안 해도 속으로 엄청 부러워할 테죠. 나중에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면 돈 욕심에 혹한 사람들이 혹시? 하면서 보상을 바라고 도움을 줄 수도 있는 일이고요.=

아영이 중얼거리며 고개를 끄덕이자 안느가 그 내용에 살짝 눈썹을 찡그린다.

=야, 그렇게 생각하는 건 너무 삭막하잖아. 그런 것보다 제대로 된 보상을 지급하면 불안은 완전히 가라앉을 테니까 이후에 차원 방랑자가 흘러들어와도 편견이나 선입견을 품고 안 보게 되는 쪽이라고 생각하는 게 좋지 않아?=

=그 쪽도 좋지만…… 오빠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절반 정도 된다.”

=절반……이요?=

=반이 그거라면 나머지 반은 뭔데?=

여자친구들의 궁금해하는 시선에 환인은 강혁준에게 넘겨받은 기억을 떠올렸다.

그가 암야의 탄왕과 비슷한 능력, 그리고 정신 술사의 능력을 다루며 개화하려 애쓰던 때의 기억.

“그가 건네 준 것은 기억 같은 게 아니라…… 그래, 직업의 정수였다. 뜻밖의 선물을 받았으니 마무리까지는 해주겠다고 생각한 거 뿐이다.”

「직업의 정수라니……. 그럼 탄왕의 능력하고 정신 술사의 능력도 쓸 수 있게 됐다는 말이야?」

눈을 크게 뜬 환연의 질문은 얼토당토않은 것이었지만 여자들은 섣불리 부정하지 못했다.

그가 이때까지 보여주었던 얼토당토않은 일이 하나둘인가.

“아니. 내가 가진 영혼술에 탄왕의 능력과 비슷한 방식을 구현할 수 있게 된 거다. 정신 술사의 능력 구조를 알게 되어 정신 공격에 완벽한 내성을 가지게 되었고 그러한 정신 방벽을 걸어줄 수 있게 되었지.”

=비슷한…… 방식?=

“그래. 전염이다.”

=……잠깐잠깐. 그럼 흑령주 그걸 터트린다 했을 때, 흑령주를 감염시켜서 피해자를 촉매로 다른 곳에도 흑령주를 터트릴 수 있다는 거야……?=

“강혁준처럼 원격 시한폭탄 감염 같은 건 아니고 연쇄 폭발을 일으키는 식인데 청령주에도 적용할 수 있다. 100명이 모여있는 곳에 터트리면 100번의 폭발이 중첩되겠지.”

안느의 가설에 보충 설명을 해주자 여자들의 얼굴에 황당함이 번져간다.

신식 청령주도 아니고 강화 청령주가 1만 이블팩션 군단, 비록 노예 계급이 8천이라지만 그걸 싹 날려버릴 정도였잖아.

그게 해당 지역에 수백, 수천 번 터진다고?

=미쳤는데……?=

자기도 모르게 비속어를 중얼거리다가 합, 하고 입을 가리는 안느였지만 환인도 비슷하게 생각했기에 고개를 끄덕여 긍정을 표시했다.

“그래. 하지만 흑령주는 함부로 써선 안 될 특징을 가지고 있기도 하고, 신식 청령주는 물론이고 강화 청령주도 전염 특성을 부여해 수천 번의 반복 폭발을 한 지점에 일으켰다간 어떤 특이점이 발생할지 모른다. 함부로 쓸 게 못 돼.”

=안 쓴다고는 안 하시네. 역시 오빠 클라쓰는 장난 아니네요☆=

“…….”

환인은 요즘 부쩍 현대의 시대 불분명한 드립을 해대는 아영을 물끄러미 바라보바다가 작게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을 이었다.

“중요한 건 따로 있다.”

「중요한 게 또 더 있어?」

“나는 영혼사다. 강혁준의 희귀 능력을 접하고 그의 영혼을 성불시켜서인지 영혼술이 한 단계 더 성장한 것 같은데 그게…….”

환인은 말을 하며 청옥을 전부 꺼내 영혼 상태로 만들고 영기의 파동을 펼쳐 가시화까지 해둔다.

이모렐을 제외한 아르겐테아 정찰대 5명, 카락스의 특급 암살자 다섯 명, 나사라트의 일월급 암살자 네 명, 그리고 자신에게 어처구니없는 제안을 하러 왔다가 죽임당한 메리아놀 진상규명위원회 산하 조사대의 일곱 명.

총 21명의 푸른색 남녀 영혼이 알몸으로 환인의 앞에 늘어선다.

여자들은 뭘 하려고 계약한 청색 영혼들을 불러냈나 눈을 끔뻑이다가 이어진 현상에 눈을 부릅뜨고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어, 어……?」

「몸이, 몸이 생겼어……?」

「이럴수가…….」

반투명한 푸른색 영혼 상태가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처럼, 누가 봐도 육체가 생긴 모습이다.

이실리테와 안느가 굳은 얼굴로 다가가 비교적 얼굴을 익힌 아르겐테아 정찰대의 여자 한 명을 붙잡고 몸 이곳저곳을 만져보았다.

=……이거 진짜 육체야.=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야, 이거 한 번 들어볼래?=

「네? 네.」

안느는 여자 영혼이 성벽의 방패를 수월하게 드는 걸 보고 얼이 빠졌다.

이전에도 그는 원기를 주입해 영혼을 실체화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실체화로 발휘할 수 있는 물리력은 식기용으로 쓰는 나이프를 겨우 들 수 있는 수준.

그런데 지금의 실체화는 생전의 육체 능력을 가볍게 발휘하는 상태다.

=……너 살아있을 때 투사 직업이었지?=

「네…….」

=방패 이리 주고, 이건 네가 들고. 자, 날 공격해봐.=

아르겐테아 정찰대 여자 영혼은 알몸이었지만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안느에게 건네받은 예식용 워해머를 쥐고 자세를 잡더니 그녀를 향해 쇄도해 들어갔다.

이어진 짧은 대련.

정찰대 여자 영혼은 생전 4급 전사였고 안느는 7급 정령 기사다.

당연히 안느의 압승으로 끝났지만, 그 이후 벌어진 검증 과정에서 여자들은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자기한테 직업자 사병이 생겼네.=

=그것도 죽지 않는 불사의 사병이고요.=

이실리테의 다중 검기에 허리가 양분되어도 조금 ‘아야’하고 말 뿐, 멀쩡히 몸을 합치더니 계속해서 싸운다.

목이 잘려 머리가 떨어져도, 사지가 토막 나고 해머에 머리가 터져도 시간은 조금 걸리지만 멀쩡히 몸을 이어 붙이고 새로 만들어내 달려든다.

실제로 검증을 위해 이실리테와 안느가 각각 1:21로 실체화한 붙었는데, 처음에는 당연히 이실리테와 안느가 일방적으로 학살…… 아니, 청령들을 파괴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자신들이 불사신에 무적이라는 걸 알게 된 청령들은 조직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고, 이실리테와 안느도 그때부터 상대하는 데 애를 먹기 시작했다.

환인의 수제자이자 그를 지키는 두 자루의 검인 그녀들이 애를 먹을 정도다.

어지간한 직업자는 마주한 순간 난도질당해버리겠지.

호텔 지하 훈련장.

한 차례 실전 같은 전투를 끝마치고 이실리테와 교대한 안느가 땀을 닦으며 환인에게 말했다.

=와, 이거 단체전 수행 제대로네.=

“마음에 드는 건가.”

=응. 일부는 6급이고 5~4급 직업자들이 조직적으로 목숨을 도외시하며 덤비니까 실전 경험이 쑥쑥 쌓이는 느낌이야. 쟤들도 우리하고 상대하며 실력을 쌓고 있으니까…… 이대로만 가면 8급 직업자나 승급 직업자도 앗 하는 순간 죽을 걸?=

게다가 영혼들은 생전 직업 능력을 전부 사용할 수 있는데 기가 막히게도 아우라는 안 보인다.

상대가 어떤 직업을 가졌는지 아우라를 통해 쓰는 무기와 공격방식을 유추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이야기.

현재 청령의 실체화 시간은 한 번에 2시간 정도. 1명을 실체화하는데 심핵력 0.5%와 영기 2%가 든다.

이론상 50명까지 실체화할 수 있지만 영기가 너무 바닥까지 내려가면 몸 상태가 극히 나빠지니 40명 정도가 한계라고 봐야 할 것이다.

=저런 분이 40명이나 모이면 진짜 군대라고 해야겠어요….=

백려강의 소감에 고개를 끄덕이던 안느는 동족 남자가 꼬추를 덜렁거리며, 5살이던 그의 고추보다도 작은 걸 드러내고 싸우는 모습에 눈썹을 찡그렸다.

=그런데 뭣 좀 입히거나 해야 하지 않을까? 젖가슴이랑 꼬추를 덜렁거리면서 싸우는 게 좀…….=

“오히려 좋지 않을까. 정신이 단단하지 못한 자들은 저 모습에 동요해서 약점과 빈틈을 드러낼 테니 말이다.”

그의 소견에 옆에서 구경하던 아영과 유르파가 속닥인다.

=역시…… 오빠가 감정을 배우면서 더 사악해진 거 같죠? 막시아를 죽인 방식이나 영령군을 쓰는 방식이나.=

=사악하다니, 그건 어감이 나쁘니까 사람의 약점을 더 잘 찌르게 됐다고 하자?=

“……2시간 유지밖에 안 되고 소환할 때마다 옷이며 속옷을 입히려면 시간이 많이 들지 않습니까. 그리고 영령군의 전투법을 보십시오. 이건 효율의 문제입니다.”

이실리테의 다중 검기 네 자루가 종횡무진 날아다니며 영령군英靈軍(가칭)을 썰어버리고 있다.

그녀의 검도 쉬지 않고 서늘한 금속의 빛을 뿌리며 21명의 영령군을 토막 내고 있지만, 영령군도 아랑곳하지 않고 몸을 이어 붙이면서 이실리테를 몰아붙이는 중이다.

“저런 전투 방식에 옷이나 갑옷은 거치적거리기만 하겠지요. 아무리 소모품이라지만 일회용품에 큰돈을 들일 생각은 없…….”

그때 여자 영령군의 큼지막한 한쪽 젖가슴이 슝 날아와 환인의 손에 철썩하고 달라붙는다.

「죄송합니다!」

뒤늦게 날아와 자신의 젖가슴을 붙이고 다시 날아가는 여자 영령군.

피와 살점만 묻어나지 않는다 뿐이지 촉감은 실제 가슴과 똑같았다.

“…….”

안느를 비롯한 여자들의 묘한 시선이 환인에게 향한다.

환인은 그런 의미심장한 표정에 담긴 뜻을 읽고 조금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뭔가 불쾌한 눈빛인데.”

=여자 영령군만 모은 주지육림을 조금이라도 생각해봤다. 맞으면 예, 틀리면 아니오…… 꺙!=

음흉하게 웃으며 어이없는 질문을 던지는 아영에게 응징의 딱밤을 먹인 환인은 눈썹을 살짝 찡그리면서 눈앞에 벌어지는 대련을 지켜본다.

아니, 아무리 생각해봐도 저런 전투법에 어울리는 옷은 없다.

무기는 공격력을 가장 쉽고 간단하게 올려주니 소모품으로 쓰더라도 보충해주겠지만, 몸을 가릴 뿐인 의복이나 갑옷은 진짜 의미가 없지 않나.

’영체를 변화시킬 방법을 찾아볼까.’

다른 영혼들은 죽은 직후에는 알몸이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정신이 깨어나면 죽기 직전의 의복을 차려입는다.

그걸 보면 계약을 맺은 청령도 외형을 변화시킬 수 있을 텐데…….

지금까지는 정보 수집용으로 쓰거나 영혼술 혹은 혼령주의 재료로만 가끔 쓸 뿐이라 신경 안 썼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바뀌었으니 그 방법을 찾아보아야겠다.

겸사겸사 영령군의 영체를 강화할 방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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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환인 아직 다 안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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