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궁기담-743화 (743/813)

743 콜라이도 연합도시

* * * *

웅성웅성

콜라이도의 쟁쟁한 의원 가문 중에서도 정점을 달리는 에로프 가家. 그곳의 현 당주이자 상원 의원인 아란의 긴급 소집에 상, 하원 의원들이 허겁지겁 의회당으로 쉼 없이 들어온다.

직업자인 의원은 자신의 힘으로, 무직자인 의원은 호위인 직업자의 도움으로.

바람에 엉망이 된 머리카락을 정돈하며 들어온 의원들은 자신의 의석에 착석하여 동료 의원들과 숙덕거렸다.

=전 의원 긴급 소집은 10년 만에 처음이지 않아?=

=정확히는 11년이지.=

=아무튼, 무슨 일로 소집을 내리신 건지 짐작 가는 게 있어?=

=……도시 서쪽에 치솟아 오른 빛기둥 때문이 당연한 게 아니겠나.=

두 의원의 시선이 남서쪽으로 난 창문으로 향한다.

직사각형으로 길쭉한 유리창을 가득 채우는 거대하고 신성한 빛기둥은 치솟은지 10분이 다 되어가지만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불경하다거나 위협적이지 않고 오히려 신께서 보듬어주시는 게 아닐까 싶은 거룩한 빛의 기둥에 두 의원이 시선을 빼앗긴 사이, 의회당 빈자리가 속속들이 채워져 소집 선언 10분이 되기도 전에 의원 중 9할이 출석을 마친다.

=시장님께서 입장하십니다!=

현대의 의회장과 비슷하게 꾸며진 드넓은 홀에서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곱게 늙은 외모의 플뢰족 노파가 지팡이를 짚으며 의회당에 입장했다.

원래의 색을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인 백발을 단정하게 올려묶고 어깨를 가리는 녹색의 숄을 걸친 노인이 들어서자 입석해있던 의원들이 전부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용한 의회당을 가로질러 의장석의 왼편, 시장석에 올라간 시장은 약간 깐깐한 표정을 드러내며 한 단 높은 의장석의 아란=에로프를 올려다보며 묻는다.

=아란 에로프 의장. 이 노구보다 늦게 도착한 이는 없을 터이니 긴급 의회를 시작하도록 하죠.=

=예, 룩셈드 시장님.=

아란=에로프의 시선이 비어있는 무로스 상원의원의 빈 자리로 잠깐 향했다가 다시 입을 여는 시장에게 돌아간다.

=이 자리에 한가로운 사람들은 없어요. 다들 바쁜 생계를 팽개치고 소집에 응한 만큼 마땅한 이유가 있어야 할 것이에요.=

=물론입니다.=

물론이라는 대답에 한차례 큰 웅성거림이 대강당보다 넓은 홀을 울린다.

땅땅.

아란=에로프가 의장봉을 두 차례 두드리자 즉시 소음이 사라지고, 시선이 자신에게 집중된 것을 본 아란이 무거운 안색으로 입을 열었다.

=콜라이도는 지금 유례없는 위기에 봉착하였습니다. 현재 서쪽 창문 너머로 보이는 저 빛의 기둥은 혼령주로, 어제 영도에서 찾아온 환인 성제께서 직접 펼친 정화의 이적입니다.=

성제?

환인 성제라면 패시지와 대립각을 세운 그…….

그가 왜 이곳에……?

혼령주라면 영성이 최소 셋 이상은 모여야 펼칠 수 있다는 고도의 영혼술이 아닌가.

그걸 성제가 혼자 펼쳤다는 건 조금 놀랍긴 하지만 들려오는 소문에 의하면 이상하지는 않다. 하지만 그걸 왜 여기서?

의문이 가득한 의원들의 시선에 아란=에로프가 여전히 굳은 얼굴을 풀지 못한 채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여러분들은 5년 전부터 이블팩션이 음험한 습격을 해오고 있단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실 겁니다. 그 이유에 5년 전 도시를 떠난 강혁준 차원 방랑자가 있음이 현실로 다가왔습니다.=

=그런 판단을 내리시게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원의원 한 명의 질문에 아란=에로프는 시의회 대표라는 신분으로 오늘 오전과 오후, 성제와 나눈 이야기에 그가 보여준 행동을 언급했다.

=환인 성제가 보여주었던 강혁준 부부에 관한 관심, 이후 1차 성불행을 하신 뒤 보여주신 강한 불쾌감, 이어 도시의 연혁과 지난 5년간 이블팩션의 공습에 사망한 시민들의 정보 확인, 이후 도시 한편에서 치솟은 혼령주까지. 이 일련의 행동은 현재 도시에 크나큰 시련이 닥쳐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유례없는 위기라고 하기에 모자란 점이 느껴집니다만.=

손을 든 다른 하원의원의 발언에 아란=에로프는 근심이 가득 드러나는 얼굴로 그들의 경악에 방점을 찍었다.

=환인 성제께서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콜라이도가 소멸할 수도 있는 이유는 이 장소에서 여러분께 직접 말씀하시겠다고 말입니다.=

=……!?=

=……!=

=무엇보다, 명백히 아신위에 오른 환인 성제께서는 강혁준 차원 방랑자 부부에게 일어난 비극이 우리, 시의회와 관련되어있지 않은가 하는 의심의 눈길을 보내고 계십니다.=

=……헉?!=

=그, 그것은……!=

=그들 부부에게 일어난 일은 전부 우연의 일치라고 밝혀지지 않았습니까?!=

오십이 넘는 다양한 종족의 의원들에게서 아우성에 가까운 소음이 터져 나온다.

아란=에로프는 의장봉을 재차 땅땅 두드려 그들의 목소리를 막았다.

=맞습니다. 당시 유수한 정령사와 함께 4차에 걸친 조사를 진행하였습니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놓친 부분이 있다면? ……미처 눈치채지 못한 부분이 존재하고, 그 부분을 환인 성제께서 손에 넣으셨다면?=

=…….=

=…….=

=…….=

의원들의 시선이 누구 할 것 없이 서쪽 창문으로 향한다.

옅은 기파와 함께 빛을 계속 뿌리는 거대한 빛기둥. 지평선에서도 볼 수 있을법한 거룩한 신성의 기둥에 의원들의 머릿속에 위기감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그…… 친분이 있는 사비족 상인에게서 들은 이야기인데…….=

창밖을 바라보던 의원들의 시선이 상업협동조합의 조합장이자 상원의원인 천산갑 인간의 루크랑족에게 돌아갔다.

=벨티칼 주도 헤뷜트에서도 지금 피바람이 불고 있다고 합니다. 고명한 주술사제 가문 하나가 성제에게 크나큰 모욕을 가해 멸문당했고 사대 기관 또한 내부 개편에 들어가고 있는데 그 이유가, 성제의 대정령이…… 도시의 물 정령을 모두 물러나게 해서라고…….=

……도시의 물 정령을 전부 물러나게 했다고? 그럼 그 땅에는 더 물이 정화가 안 된다는 이야긴데 그게 가능한 일이야?

아니…… 가능하니까 4대 교단이 전부 성제를 대신해 패시지를 압박하고 있는 거겠지…….

뜻밖의 암울한 소문에 의회당의 분위기가 물먹은 솜처럼 축 처진다.

아란=에로프는 괜한 말로 분위기를 박살 낸 상원의원을 째려보곤 크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니까! 환인 성제께서 의회당에 도착하기 전 무언가, 속에 담고 있는 정보나 사실…… 의혹이라도 좋으니 있다면 말씀해주십시오. 지금은 개인의 보신 문제가 아닌, 도시의 명망 문제입니다. 이 자리에서 나온 이야기는 에로프 가문의 이름에 맹세코…….=

『맹세코, 무얼 하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콰앙—!

영혼을 바짝 죄는 듯한 목소리와 함께 의회당의 커다란 문이 굉음을 내며 활짝 열리고, 수십 겹의 황금빛 오로라를 몸에 걸친 온통 검은색의 남자가 성큼성큼 의회당 안으로 걸어들어온다.

그러자 강렬한 존재감이 의회당의 홀hall이 비좁게 느껴질 정도로 가득 차오르기 시작했다.

=…딸꾹.=

신검의 예기처럼 번뜩이는 남자의 황금빛 시선에 아란=에로프는 딸꾹질을 삼켰다.

* * * *

정체불명의 남자가 무례하게 석문을 열어젖히며 들어왔지만, 의회당을 채운 의원들은 입도 뻥긋하지 못했다.

머리가 뛰어나 조합의 임원 자리를 차지하여 하원의원의 한 자리를 차지한 남자도.

무식하지만 손재주와 기술이 남달라 하원의원의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던 여자도.

무력이 뛰어나거나 술력이 뛰어난 의원도, 지식이 풍부하거나 눈썰미가 예리한 의원도.

누구도 남자의 무례한 행동을 지적하지 못했다.

의회당 안에 있는 사람 중 저 사내가 현재 니오네브레스에서 가장 유명한 1인, 성제라는 사실을 모르는 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몰랐다 하더라도 대놓고 드러내는 아신위의 존재감에 신언으로 입도 뻥긋 못했겠지만 말이다.

대부분의 의원이 ‘성제…… 맞지? 뭔가 무진장 화난 거 같은데?’ 같은 생각을 하며 움츠러들지만, 연륜이 가득한 시장은 성제의 심기를 짚어내곤 살짝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화난 사람은 무엇에 화났는지만 알아내면 달래고 진정시키기 어렵지 않다.

하지만 귀찮음에 짜증이 가득 찬 사람, 그것도 냉철하기 그지없다는 평가를 받는 사람은 어떻게 달래야 할까.

시장은 의장석의 아란을 힐끔 돌아보았다.

딸꾹. ……히끅. 흡끅.

딸꾹질이 멈추지 않아 얼굴이 빨개진 아란의 모습에 작게 한숨을 내쉰 시장은 그녀를 대신해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히 허리를 숙였다.

=콜라이도의 보잘것없는 시장이 영도의 찬란하고 고귀한 등불을 뵙습니다.=

뚜벅거리며 괄호처럼 만들어진 상원의원석 사이, 증인석 같은 곳으로 걸어간 환인은 늙은 시장의 정중한 인사에 묵례로 답하곤 50명 남짓한 의원들의 얼굴을 쭉 훑었다.

‘……6명.’

=허어, 여섯이나.=

한발 늦게 환인의 뒤를 따라 들어온 무로스 기병대장은 한숨 같은 한탄을 중얼거리며 상원의원석의 자기 자리로 가 앉는다.

그곳으로 짧게 시선을 주었던 환인은 다시 날카로운 시선, 자신에게 귀찮음을 더욱 끼얹으려는 아란을 노려보며 말했다.

“아란 에로프 상원의원께서는 아무래도 제게 숨기는 것이 있으신가 봅니다.”

=그렇, 끅! 아아니, 그렇지 않습니히끅! 읍…….=

“그렇다면 어째서 의원분들을 시급히 모으고 제가 없는 곳에서 작당을 모의하려 하신 겁니까.”

=오해입니다! 작당을 모의하려 한 것이 아니라, 성제께서 번거롭지 않으시도록 미리딸꾹! …….=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려버린 아란의 모래색 피부가 벌겋게 달아오른다.

“제가 도착하기 전, 자세한 내막을 어떻게든 파악하여 사태가 커지지 않도록 손을 써 피해 규모를 줄이려 한 의도가 정말 새 모이만큼도 없었다고 하실 수 있습니까?”

=…죄, 죄송합니다. 조금은 있었습니다…… 딸꾹!=

“그에 관한 대화는 나중에 다시 하도록 하고, 시장께 몇 가지 여쭙겠습니다.”

=물론입니다. 아는 것을 성실히 답변드릴 것이니 의문점이나 궁금한 것이 있다면 얼마든지 물어봐 주십시오.=

하얗게 센 흰머리의 시장에게 환인은 무뚝뚝한 어조로 대꾸했다.

“대충 답해주셔도 괜찮고 숨기는 게 있으시다면 숨기셔도 상관하지 않겠습니다. ……시장께서는 강혁준 부부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늙은 시장은 연륜에서 오는 동물적인 감각으로 저 질문에 어떤 대답을 하느냐에 따라 도시의 명운이 갈린다는 것을 깨달았다.

대충 대답해도 된다. 숨기는 게 있으면 말 안 해도 괜찮다.

‘대신 나중에 알아낸 것과 차이가 있다면 그 대가는 너희가 전부 지게 될 거다.’

대가는 도시의 소멸.

죽을 날이 머지않아 아신위의 존재감에도 비교적 태연하게 있었지만, 이것에는 철혈이라 불렸던 시장도 식은땀을 한 방울 흘릴 수밖에 없었다.

그가 궁금해하는 것은 들어와 꺼낸 이야기에 이미 파악한 상태.

시장은 한숨쉬듯 내뱉는 숨결로 말을 시작했다.

=……제가 개인적으로 수집한 정보에 따르면, 강혁준 차원 방랑자의 아내가 죽게 된 계기에는 귀족이 틀림없이 얽혀있다고 봅니다. 물론 콜라이도의 귀족은 아닙니다. 아니, 콜라이도의 귀족도 한발 걸치고 있다고 보아야겠군요.=

“누구입니까.”

=음…… 이곳에서 동쪽으로 140마일 떨어진 곳의 시레세아라는 도시 귀족입니다. 네 꼬리 여우족의 루크랑으로 하급 자작이며, 지식에 대한 욕심이 하늘을 찌른다는 평가를 가지고 있지요.=

140마일, 대충 224km다. 그때 대강당의 계단식 하원의원석에 앉아있던 사막 플뢰 남자 하나가 앉은 채로 항변한다.

=시, 시장님! 타 도시의 귀족을 음해하는 것은 자칫 도시와 도시 간의 분쟁을 일으킬 수……!=

=참고로 지금 떠드는 놈이 그 자작과 20년 전부터 제법 친분을 나누는 놈입니다.=

환인의 황금빛 홍채가 사람들 사이에 숨은 것처럼 앉아있는 남자에게 향했다.

가감 없는 아신위의 시선에 하원의원이 =컥!= 자기 목을 움켜쥐며 숨 막힌 비명을 토해내자 누구도 밖으로 못 나가게 의회당의 하나뿐인 출입구를 막고 선 이실리테와 안느. 그중 이실리테가 소리 없이 움직였다.

한걸음에 목을 움켜쥔 사막 플뢰족에게 도착해 그자의 멱살을 잡고 환인의 앞으로 소리 없이 뛰어내리는 이실리테.

=으컥!?=

거의 집어던져지다시피 나동그라진 무직자 남자가 하얘진 얼굴로 버둥거리며 환인에게서 멀어진다.

스아아아앙—…….

어느새 환인의 손에 쥐어진 광명창이 그 빛의 날을 드러내며 주저앉은 플뢰족 남자의 면상에 들이밀어졌다.

“당신에게는 선택지가 둘 있습니다. 하나는 살아서 알고 있는 것을 이실직고하는 것. 다른 하나는 죽어서 귀곡성으로 진실된 대답을 하는 것입니다.”

=이, 이, 이건 있어서는 안 될 일이오! 일어나서도 안 되는 일이고! 메리아놀의 귀족을 이렇, 이렇게 억압하고 핍박하는 것이, 얼마만 한, 얼마만 한 파장을 불러일으킬지 아시는 겁니까!?=

하원의원의 발악에 환인은 살짝 황당하다는 표정을 드러내며 물었다.

“당신은 메리아놀과 전면전을 각오하고 들어온 제 앞에서 귀족의 권위를 들먹이는군요. 두 번째 선택지를 고르신 걸로 보아도 되겠습니까.”

하원의원의 얼굴에 멍청한 표정이 들어찬다.

환인이 말없이 광명창을 들어 내려칠 자세를 하자 =히이익!= 남자가 자지러지는 비명을 지르며 두 손을 확확 저었다.

=아닙, 아닙니다! 전부 사실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악!!=

이어진 남자의 고백은 흔한 귀족의 추악한 욕심이 덕지덕지 묻은, 너절하기 그지없는 이야기 그 자체였다.

윤미래의 동화 창작 능력에 반한 동쪽의 도시 귀족이 그녀에게 첩이 될 것을 권유했지만 소꿉친구에서 아내가 된 윤미래는 여러 번에 걸쳐 거절.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죽여버리는 것이 성미였던 도시 귀족은 윤미래를 살해하기에 이른다.

지식을 탐하는 성정답게 계획은 꽤 치밀해서 심증만 아주 조금 남겼을 뿐, 철저하게 자신의 흔적을 지워 윤미래를 죽이고 강혁준과 콜라이도의 뒷골목 조직 사이에 싸움을 붙였다고.

=이, 이건 저도 술김에 우연히, 단편만 들었기에 지, 진실인지 꾸며낸 일인지도 모릅니다! 지, 진짜입니다!=

플뢰족의 선천능력인 진실의 주시자로 눈이 푸르게 번쩍이던 사막 플뢰족 몇몇 의원들이 수치스러운 동족을 본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러든 말든 환인은 머릿속으로 이것저것 셈을 해보고는 미간을 좁힌 채 작게 한숨을 내쉬며 광명창을 거두어들였다.

그리고 ‘살았다!’며 표정이 밝아지는 하원의원의 옆머리를 짜증 가득한 얼굴로 걷어차버렸다.

뻐억!

깨끗하게 들어간 미들킥에 날라가 상원의원의 책상이 움푹 들어갈 정도로 머리를 들이박고는 대가리가 깨진 채 거품을 문 하원의원.

=도시의 수치 같은 놈.=

무로스 기병대장은 눈썹을 역팔자로 세운 채 주머니에서 포승줄을 꺼내 혼절한 의원을 포박한다.

탁탁, 바지를 턴 환인은 냉담해진 표정으로 시장과 아란=에로프를 바라보며 비난했다.

“강혁준은 여러분이 짐작하신 대로 이블팩션에 투신했을 겁니다. 그리고 암야의 탄왕이라는 희귀 직업자가 되어 콜라이도는 물론 니오네브레스 전체를 멸하기 위해 움직이는 중입니다.”

=뭐?=

=허……?=

“지금부터 지목하는 분들은 앞으로 나와주시기를 바랍니다. 거기 중간 줄의 왼쪽에서 네 번째. 밑줄의 오른쪽에서 두 번째, 일곱 번째, 그쪽의 윗줄 왼쪽에서 여섯 번째…….”

환인에게 지목당한 하원의원들이 굳은 얼굴로 주춤주춤 일어나 앞으로 나온다.

그들의 공통사항이라면 짙고 옅음의 차이는 있지만 피부가 자주색을 띤다는 것.

“당신들이 암야의 탄왕이 펼친 저주, 영혼 오염 폭탄에 감염된 사람입니다.”

=……?!=

=……!!=

경악하는 동시에 믿기 어려워하는 의원들의 반응에 환인은 이미 짐작했다는 듯이 구식 평온의 파동에 영기를 섞어 한차례 발사한다.

=……히이익!?=

=헉…. 저, 저게 뭐야?=

=영, 혼? 그런데 저 상처는……!=

영기의 파동에 열하나나 되는 끔찍하고 참혹한 모습의 영혼이 가시화하자 아신위에 위압 당한 자들이지만 곳곳에서 비명이 터져나온다.

환인은 자신이 강제력으로 데려온 영혼들을 뒤에 세워놓고 입을 열었다.

“얼마 전 상급 영혼사 한 분이 도시에 오셔서 도시 전체를 돌아다니며 성불행 하셨다 들었습니다. 여러분들이 보시기에 그분은 불성실한 성불행을 진행하신 분이셨습니까?”

=…….=

=……!=

이어 환인이 알아낸 것을 천천히 설명해나갔다.

3400년 전 암야의 탄왕이 나타나게 된 계기, 그 능력, 특징, 범위와 여파까지.

털썩털썩. 영혼 오염 폭탄에 감염된 하원의원들이 망연자실한 얼굴로 주저앉으니 다른 의원들이 신음을 흘리며 멀어지려는 것처럼 상체를 세우거나 꺼림칙해 한다.

하지만 환인이 신식 평온의 파동을 펼치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피부색이 천천히 원래대로 돌아가는 것에 눈을 부릅떴다.

당사자들은 당연히 치료되어가는 모습에 희열을 띄었고.

=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영혼사님!=

=멍청아……! 이분은 성제님이시라고……!=

=헉!=

환인은 죽었다가 살아난 것처럼 기뻐하는 그들에게 차가운 시선을 보내 자리에 돌아가게 한 뒤 말을 이었다.

“강혁준의 행동 목적은 명백합니다. 증오와 원한을 곱씹으며 여러분들, 나아가 이 도시 시민들을 지상에서 지워버리는 것이겠지요.”

=…….=

=…….=

복잡해지는 의원들의 표정에 환인이 시니컬하게 웃으며 물었다.

“도시의 시민 한 명 제대로 지키지 못해, 그 한 명의 억울함을 풀어주지 못하고 도리어 범죄자, 정신 나간 자 취급하며 몰아세우다가 안식처가 되어야 할 집까지 태워 먹어 이 사달을 만드신 기분이 어떻습니까.”

환인의 멸시에 의원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들지 못한다.

시장은 후우, 남은 수명이 절반은 깎여나간 것처럼 초췌해진 얼굴로 말했다.

=그저…… 부끄럽고 수치스러울 따름이오. 조금만 더 신경을 썼더라면, 그를 다독였더라면 호미로 막을 수 있었던 일을…….=

환인은 진심으로 후회하는 시장과 에로프 상원의원을 잠시 바라보다가 요구했다.

“그 말씀이 진심인지 한 번 지켜보겠습니다. 암흑의 숲에 있을 강혁준과 오염된 이블팩션은 제가 해결해보겠습니다. 시레세아의 도시 귀족이라는 자는 여러분들이 해결하십시오. 그리고.”

아스펜드에서 기억석을 소환해낸 환인은 그것을 증인석의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기, 기억석? 그것은…….=

“오늘 일이 널리 퍼진다면 기억석에 담긴 기억을 노린 자들이 니오네브레스에 분란을 일으키겠지요.”

=네? 그, …악!=

콰창— 소리를 내며 환인의 주먹에 기억석이 깨어져 나가자 아란=에로프와 여러 의원이 비명을 지른다.

이블팩션에게서 도시를 지킬 최후의 보루가!

몇몇 의원들이 벌떡벌떡 일어나고 아란=에로프의 안색도 파리해졌을 때 상업협동조합의 천산갑 루크랑이 환인을 향해 의구심을 드러냈다.

=부쉈다 하고 성제가 뒤로 빼돌린 것은…… 크읍!=

그러나 환인을 의심하는 행위에 격노한 이실리테가 살기를 폭사했고, 그 살기에 고스란히 노출된 상원의원은 말을 끝맺지도 못하고 가슴을 움켜쥔채 파랗게 질린다.

환인은 그런 상원의원을 경멸하는 표정으로 응시하며 말했다.

“제게는 기억석 안에 든 총화기 설계를 ‘그까짓 것’으로 취급할 정보가 있습니다. 이런 제가 고작 총화기 정보에 욕심을 내겠습니까?”

=…….=

“에로프 상원의원, 방금 제 말에 거짓이 느껴졌는지 대답해주십시오.”

아란=에로프가 침울한 얼굴로 고개를 젓자 홀에 숨소리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적막에 휩싸였다.

발리스타와 리피트 헤비 보우건이라는 것도 그들에게는 신문물이나 다름없었다.

그걸 만들어낸 요한 건스미스가 재현하길 두려워한 총이라는 무기, 그걸 그까짓 것으로 칭할 정도의 정보라니……?

“이러니까 제가 부순 겁니다. 자신의 판단 기준을 타인에게 들이밀며 의심하고 또 의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성제인 절 향해서도 이따위 더럽기 짝이 없는 의심을 하는데 다른 신분이 낮거나 힘이 없는 사람이라면 어땠겠습니까.”

매몰찬 비난에 얼굴이 빨개진 의원이 수없이 나타난다. 비난의 직격을 받은 천산갑 루크랑은 그야말로 토마토처럼 빨개진 상태.

=하, 하지만 그 기억석은 도시를 지킬 최후의 보루였습니다……!=

어느 하원의원의 발언은 환인이 지체없이 찍어눌렀다.

“기반도 모르며 근본도 알 수 없는 다른 차원의 기술에 의존해야만 이블팩션을 이길 수 있다면, 인근 도시와 조력 및 협조를 하지못해 이블팩션을 막아내지 못한다면 차라리 도시를 포기하는게 맞습니다.”

그의 일침에 의원들은 꿀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었다.

다물 수 밖에 없다. 저런 지식을 가진 사람에게는 그 어떤 논리를 걸어도 논파당할테니까.

환인은 그런 그들을 한심하다는 듯이 돌아보았다.

“요한 건스미스가 이 도시에 어떤 업적을 남겼는지 저는 잘 모릅니다. 하지만 한가지 최악의 실수를 꼽으라면 총화기의 도면과 기억을 남긴 점을 꼽겠습니다.”

=그…건 어, 어째서입니까……?=

연속된 정신적 충격으로 거의 그로기 상태까지 몰린 아란=에로프의 질문에 환인은 그녀를 차분히 응시하다 대답했다.

“총화기는 니오네브레스 문명을 다른 의미로 파괴할 기술이니까요. 만약 제가 신이라면 그러한 행위를 가만히 두고 보지 않을 겁니다.”

아신위인 그가 말하니 다른 자들이 말하는 것과 차원이 다른 현실감으로 다가온다.

시장이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 말씀은?=

“홍수든 지진이든 괴수의 대범람이든 하늘의 분노든, 문명을 지워버리겠지요. 아니면 문명이 성립되지 못할 만큼 인류의 숫자를 줄여버리던가.”

얼음장처럼 차가운 그의 이야기에 한동안 그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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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늦어서 죄송합니다아아앙!!!

오늘은 이상하게 키보드가 손에 안잡혀서ㅠㅠ

플롯이랑 구성은 다 짜여져있는데 흑흑

누가 대신 3편만 써줬으면 좋겠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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