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2 콜라이도 연합도시
반로환동 하기 전 환인의 목소리는 중저음의 듣기 좋은 남성적인 목소리였다.
하지만 반로환동 해 어린아이 모습에서 14~16살 사이 청소년까지 자란 현재는 변성기가 오지 않은 소년처럼 부드러우면서도 훈훈한 그것으로 변했다.
듣는 사람 열 명 중 일고여덟은 좋다고 느낄법한 목소리.
“아란 에로프 의원님.”
=네, 네.=
그런 목소리였지만 아란=에로프는 환인의 부름에 긴장감이 삽시간에 치솟으며 신경이 바짝 조여들었다.
목소리에 깃든 은은한 분노가 휘광과 더불어 살갗을 찌릿찌릿하게 만들 정도로 쏟아졌기 때문이다.
그나마 환인이 일부러 기세를 낮추는 중이어서 그렇지, 아니었다면 무직자인 아란이나 도시 역사기록 담당자는 온몸이 굳어 제대로 대답도 못 했을 것이다.
왜 이렇게 화가 나신 거지? 듣기로 거리에서 성불행을 진행하셨다는데, 설마 몇 개월 사이 악령이나 혼재 예비령이라도 발생했다는 건가?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던 아란은 환인의 이야기가 시작되자마자 귀를 기울여 집중했다.
“오늘 아침, 제가 의원님의 말씀에 토를 달지 않고 넘어간 것은 의원님께서 진실만을 말씀하셨다는 걸 알고 있기에 그리하였던 겁니다.”
=예. 맹세코 제가 아는 사실만을 알려드렸습니다.=
앞으로 땋아 내린 긴 모래색 머리카락이 찰랑일 정도로 고개를 끄덕이는 아란. 그녀의 대답에 환인은 잠시 뜸을 들였다가 조용히 질문을 던졌다.
“고의로 누락시킨 정보는 없다는 말씀입니까. 예를 들자면 도시의 권력자가 윤미래의 창작 활동을 못마땅하게 본 나머지 손을 썼다던가, 차원 방랑자의 지식을 탐내다 일이 어긋나 이 사달이 벌어졌다던가.”
고의로 누락……?
……!!
벌떡!
=저, 절대 아닙니다! 강혁준과 윤미래…… 아, 아니! 윤미래의 작품인 어린이 전래동화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지식을 못마땅하게 여기거나 탐한 나머지 차원 방랑자를 박해하고 착취하는 일이 아니냐는 환인의 질문에 아란은 사색이 되어 자기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필사적으로 해명했다.
지금 성제가 주도를 찾아가는 이유가 무엇인가.
자신을 강제 소환한 것에 더불어 차원 방랑자들을 이용하고 살해한 일로 격노해서이지 않나.
자칫 잘못했다간 콜라이도가 주도 예행연습 장소로 활용될지도 모른다.
=……교훈과 감동을 한데 모은 걸작이며 사상의 부조리와 현 체제의 비판 따윈 한 점도 없는 작품이었습니다! 게다가 그녀의 작품은 여전히 도시에 유통 중이며 그것은 상회를 통해 인근 도시와 마을에도 퍼졌습니다! 정말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저도 잠시 쉬는 사이에 그녀의 동화책을 보았으니까요.”
수영장 좌우에 늘어선 바자르에는 서점도 있었고, 눈에 잘 띄는 곳에 배치된 현대 감각의 표지와 내용에 이끌린 환인도 윤미래의 동화책을 보았다.
하지만 동화책이라는 게 그렇듯이 색안경을 끼고 보면 트집 잡을 곳은 얼마든지 있는 법이다.
콩쥐팥쥐도 여권신장을 목표로 하는 집단이 보면 입에 게거품을 물것이고 인어공주, 피노키오 같은 해외 동화도 인종차별주의자가 본다면…… 하여튼.
환인은 황금빛 광채가 흘러내리는 눈으로 필사적인 아란=에로프를 바라보다 그 옆에 꽁꽁 얼어있는 도시 역사 기록담당자로 시선을 돌렸다.
=……!=
눈만 마주쳤는데 불쌍할 정도로 바짝 얼어버리는 단쌍익의 플라비우스족에게 묻는다.
“권한도 없는 외부인인데 이렇게 오라 가라 해서 미안합니다.”
=아, 아닙니닷!!=
“제가 이렇게 나서는 것은 이 도시를 위한 일이기도 하니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기록담당관께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지난 11년간 있었던 이블팩션의 습격 그리고 피해 현황을 적어달라는 것입니다.”
노트와 펜을 꺼내 살짝살짝 떠는 담당관에게 쥐여주자 고개를 팍 숙이고 코가 노트에 닿을 정도로 파바바박 적어나간다.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 아영에게 눈짓해 담당관을 지켜보라고 한 환인은 아란=에로프에게 손짓해 응접실 밖으로 나왔다.
아란과 함께 객실의 발코니로 나가자 이실리테와 안느가 조용히 뒤따른다.
“…….”
환인은 불어오는 조금 메마른 바람에 앞머리를 쓸어 넘기며 중세 유럽과 중동권을 섞은 듯한 드넓은 도시를 잠시 응시했다.
시력을 돋궜기에 도시 군데군데, 자신이 아직 가지 않은 거리에 참혹한 영혼의 모습이 하나둘 눈에 들어온다.
=저…… 성제님, 성불행 도중 무언가 문제를 보셨…습니까?=
“예. 방치한다면 콜라이도만이 아닌 니오네브레스의 인류 전체가 몰락할지도 모르는 문제입니다.”
=……!!!=
뜨악한 표정을 지은 아란은 팔을 따라 오르는 소름을 문지르며 혼란스러운 머리를 억지로 굴렸다.
방치하면 니오네브레스가 망할지도 모르는 문제라니, 그게 우리 도시에……? 어, 어떤 일이기에?
“에로프 의원님. 도시 시의회 구조가 어떻게 되는지 알려주시겠습니까.”
=어, 우선 시장이 존재합니다. 이 도시는 작은 패시지라고 할 만큼 특정 귀족의 영지가 아닌, 다수의 종족이 모여 살아가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이 시장은 시민들이 여러 후보를 내세우면 네 명에서 다섯 명 사이의 상원 의원이 그 후보를 간추려 세 명을 뽑고, 그렇게 나온 후보를 다시 시민들이 뽑는 형식입니다. 그런 시장을 필두로…….=
상원 의원은 시장, 상원의원, 하원의원, 시민들이 모여 만든 조건을 통과한 가문과 조합에서 한 명씩 배출한다.
총원은 들쭉날쭉해 가장 작을 때는 세 명이었고 가장 많을 때는 일곱 명이라고.
하원의원도 마찬가지로 40명에서 80명까지 들쭉날쭉한 편이다.
환인은 이 듣지도 보지도 못한 잡스러운 시스템에 한숨을 흘렸다.
겉으로 보면 국민주권주의가 조금 도입된 공화정 시스템이지만, 잘 보면 권력자가 적절한 횡포를 휘두르기 딱 좋은 요소가 군데군데 들어가 있다.
거기에 상원 의원은 말이 의원議員이지 연임도 제멋대로고 세습까지 일어난다.
일례로 눈앞의 아란=에로프 상원의원도 이미 세 번을 연임하고 있는 데다 막시아=에로프가 그녀의 의원직을 세습하기 위해 기병대에서 근무 중.
“강혁준 부부의 도착 전후로 교체된 시의원 소속이 있습니까.”
=어, 없습니다.=
“…….”
그 뒤로 질문은 나오지 않았고 아란=에로프의 머릿속에는 점점 과격한 상상이 펼쳐지며 그녀의 피가 바짝바짝 마르는 시간이 이어졌다.
잠시 후 기록담당관이 다 적었다는 이야기에 응접실로 돌아간 환인은 A4 종이 석 장 분량의 연표를 지그시 들여다보았다.
이전에도 이블팩션이 주기적으로 습격해왔지만, 강혁준이 모습을 감춘 뒤부터는 아예 기간을 정해놓은 것처럼 줄기차게 공격을 해오고 있었다.
윤미래의 사망 시기, 그리고 강혁준의 실종 시기까지 기록된 연표를 바라보다 기록관리관을 보며 묻는다.
“주민의 사망 연도와 일시를 기록한 것도 있습니까.”
=예, 옙. 그 양이 적지 않아서 확인하려면 기록물을 반출하여야 하는데… 그 과정이 복잡해서…….=
“가시죠.”
망설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응접실을 나가자 놀란 기록담당관과 아란=에로프도 허둥지둥 뒤따른다.
역사기록부서는 시청 내에 있지만, 기록물은 그 방대함으로 인해 다른 장소에서 보관하고 있었기에 어제의 습격에도 자료는 무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담당관과 함께 기록실을 방문한 환인은 성불시킨 영혼들의 이름을 거론하며 사망일시를 확인해나갔다.
=유르마 아퀼레나……. 여, 여기 있습니다.=
“…….”
기록관이 가져다주는 책자에서 자신이 언급한 시민의 사망 이유와 일시를 확인하던 환인.
자신이 성불시킨 37명이 전부 5년 전부터 이틀 전까지 분포가 집중되어있는 걸 확인하고는 미간을 재차 찡그렸다.
기록실 밖 복도에서 웅성거리는 소리, 안으로 들어와 아란과 속닥이며 이야기를 나누는 하원 의원의 말소리, 삐걱, 뚜벅저벅거리는 발자국 소리까지.
탁—
하드커버의 책을 소리 나게 덮자 거짓말같이 모든 소음이 사라졌다.
창밖에서 쏟아지는 빛살 속으로 먼지가 둥둥 떠다니는 낡은 기록실에 숨 막히는 정적이 이어진다.
너무나 고요해 끼이이잉— 이명까지 들리는 침묵.
환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아란=에로프가 침을 꼴깍 삼켰다. 공간을 일그러트리는 듯한 그의 휘광에서 심기가 나쁘다는 느낌이 노골적으로 전해져와서다.
하지만 이대로 입을 다물고 있자니 침묵에 숨이 막혀 죽을 것 같다. 조심스레 입을 연다.
=서, 성제님……?=
“에로프 상원의원님. 시장님과 다른 의원님들을 만나야겠습니다.”
=엇, 아. 저.=
“콜라이도가 소멸할 수도 있는 이유는 거기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예? 앗 예. 하지만 모으는데 시간이 조금…….=
“그사이 저는 도시를 돌아다니며 성불행을 진행할 테니 최대한 빨리 부탁드리겠습니다.”
찌잉— 영도의 대성녀와 연결되어있는 수정구의 신호음에 환인은 =시장님은 그곳에 계실 테고…… 다른 의원들은…….= 다른 자들을 어떻게 모을지 고민하는 아란을 두고 이실리테, 안느, 노른과 함께 기록실을 나왔다.
문이 열리자 복도에 모여있던 수십 명이 우르르 좌우 벽에 찰싹 붙어 길을 내준다.
일부 두려움과 일부 호기심을 보내는 시선을 헤치며 밖으로 나온 환인은 주변에 사람이 없음을 확인하고 수정구에 위상력을 밀어넣었다.
기묘한 연결음과 동시에 통신 수정구 속에서 대성녀의 심각한 표정이 떠오른다.
[성제. ……밖이시군. 통신할 수 있으시겠소?]
“예. 간단히라면.”
[성제가 알려주고 곧장 영도의 기록실에서 오래된 것부터 조사해보았었소. 그리고 자애신님의 가호가 있어서인지 금방 찾아낼 수 있었지.]
“과거에도 이러한 사례가 있었나 보군요.”
[그렇소. 암야의 탄왕이란 자가 펼친 능력이 성제가 이야기해준 것과 똑같았소. 그 시기를 특정한 덕분에 술식연구기관에서 해당 시대에 존재했던 잊혀진 영혼술도 찾아내었는데…….]
암야의 왕이라는 직업자가 나타난 것은 3400년 전. 그인지 그녀인지 모를 직업자는 세상을 불태울 것처럼 분노 중이었다고 기록에 나와 있었다.
그의 능력은 영혼 오염 폭탄.
산 사람을 잔혹하게 살해한 뒤 고통을 재료로 영혼을 오염시켜 영혼도, 악령도 아닌 존재로 만들어버린 다음 혼재와 비슷한 영혼 오염 폭탄으로 전환시키는 능력이라고.
[영혼 오염 폭탄 숙성에는 피해자의 고통이 얼마만 하였는지에 따라 기간이 짧아지는 데 문제는 폭탄이 폭발할 경우요. 폭발의 범위 또한 숙성 기간에 따라 크게 차이 나며 폭발에 한 번이라도 휩싸인 혼을 가진 자는…….]
살아있는 전염병 폭탄이 된다.
“…….”
[영혼이 폭발에 휩쓸리면 그 즉시 전염병 영혼 폭탄으로 변해 폭발하오. 산 자가 폭발에 휩쓸리면 육신은 멀쩡하지만 혼이 오염되어버리오. 그리고 죽어 영혼이 되면 수분 이내에 점화, 폭발을 일으키는데…… 산 자는 폭발에 휩쓸린 횟수만큼 죽었을 때 폭발 범위가 제곱으로 증가한다 적혀있었소.]
“……그 폭발 범위와 숙성 기간의 최소와 최대는 어떻습니까.”
[고통의 정도를 상중하로 나누어 생전 육신의 손상이 전체의 5할을 넘으면 중, 그 아래는 하, 그 이상은 상으로 나누어 손상 정도가 중일 경우 폭발에는 2년에서 5년정도 걸린다고 되어있었소. 범위는 중일 경우 반경 500m에 달한다고 기록되어있더군.]
“제곱으로 증가한다면 도시 하나가 휩쓸릴 경우 대륙 전체가 폭발의 반경에 들어간다는 계산이 나오는군요.”
뒤에서 듣고 있던 이실리테와 안느의 표정이 딱딱해진다.
[다행인 것은 혼령주가 있다면 영혼 오염 폭탄을 해제할 수 있다는 점이오. 산 자와 죽은 자 양쪽 모두. 영혼사에게 그러한 영혼 폭탄은 소용이 없다는 점도 다행이라 할 수 있겠지.]
“폭발의 형태는 어떻습니까.”
폭발의 형태를 물어보자 흑자색의 작은 버섯모양의 구름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물리력은 조금도 동반하지 않은 폭발이라고.
[특징도 알아보기 쉬워 대처 방법만 인지한다면 방비는 어렵지 않소.]
“특징도 있습니까?”
[음. 영혼 폭탄에 오염된 사람은 피부가 흑자색으로 변한다는 특징…….]
이야기를 듣자마자 환인은 기병대의 군영이 있던 곳으로 짐작되는 방향을 향해 몸을 날리며 신언을 외쳤다.
『환연!! 당장 이리로 와라!!』
우르르릉—!!!
환인의 진심을 가득 담은 신언이 터지며 콜라이도를 뒤덮자 멀찍이서 성제를 구경하던 시민들이 신위의 기운에 정신을 잃고 풀썩풀썩 쓰러진다.
다그닥거리며 도로를 이동하던 말과 공룡, 낙타 같은 탈것들도 게거품을 물고 픽픽 쓰러지고 하늘을 날아가던 홍학 떼 같은 새들도 추락한다.
이실리테와 안느도 한순간 무릎이 풀렸다가 스프링처럼 튀어 나가며 환인의 뒤를 쫓았다.
「왜, 뭐야? 무슨 일인데?」
그의 바로 옆에 세피아색 공간 일그러짐 현상이 발생하다 환연이 놀란 얼굴로 툭 튀어나와 묻는다.
환인은 자신의 신언 때문에 금이 간 통신 수정구를 보곤 아스펜드에 집어넣으며 말했다.
“어제 잡았던 섀도어 여자, 지금 어디 있지?”
「지금 가고 있는 쪽 기병대 병영 지하 감옥에 있어. 왜??」
환연에게 대성녀가 해줬던 이야기를 짧게 요약해 알려주자 그녀의 단정한 얼굴에 황당함이 번져간다.
「뭐야, 네다섯씩 보낸 이유가 가서 죽은 뒤에 폭탄이 되어 터지라는 거였어? 완전 미친 새끼네.」
“강혁준도 자기 능력을 전부 알지 못한 걸 수도 있고 어쩌면 능력을 이블팩션에게 다 알려주지 않은 걸지도 모른다.”
자신만 봐도 능력을 알아내는데 제법 신경을 쏟지 않았던가. 이것저것 시행착오도 거친 뒤에야 능력을 정립한 걸 본다면 강혁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니면 이블팩션 종족에게 살해당할까 봐 강혁준이 자세한 걸 알리지 않았을 수도 있고.
“환연, 도시 중서부의 중심이 이쯤인가.”
「맞아.」
그리모암의 강력 효과를 발동시켜 달려가던 환인은 그녀의 확답을 받고 잠시 멈추며 말했다.
“신식 혼령주를 쓴다.”
신식 혼령주의 범위는 대략 반경 1km 정도. 넓다면 넓지만 도시 전체를 커버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란다.
일단 투숙 중인 호텔을 범위 안으로 해서 정령 구슬을 꺼내 응축, 심핵력을 밀어 넣어 혼령주를 터트렸다.
두쿠우우우우웅——…….
낮고 묵직한 진동음과 함께 빛기둥이 하늘을 찌른다. 이어 확대하듯 범위를 넓혀가며 도시를 뒤덮어가는 하얀 빛기둥.
“노른, 신수로 변신해라.”
「응.」
노른을 타고 하늘로 날아올라 신식 혼령주 범위를 싹 훑으니 영혼 오염 폭탄으로 판단되는 영혼들이 일제히 빛무리가 되어 성불하는 게 곳곳에서 눈에 띈다.
신식 혼령주 범위 안의 혼은 혼령주의 범위 심도深度와 관계없이 전부 성불 중.
일반인은 혼령주의 최심부에 가까울수록 픽픽 쓰러져 헬렐레하고 있지만, 환인은 신경 쓰지 않고 군영 위치만 확인한 뒤 다시 내려와 여자친구들과 기병대 군영으로 뛰었다.
=멈춰라! 여긴 함부로 접근해서는 안 되는…… 히익?!=
기숙사에 훈련장을 몇 개나 붙여놓은 군영 입구, 위병인 듯 성가시게 굴려는 병사에게 기세를 쏘아 입을 다물게 한 환인은 즉시 자동 통행증을 요구했다.
“성제 환인입니다. 막시아 에로프 제3 기병조장의 호출을 요구합니다.”
=막, 막시아님 말씀이십니까……?=
하지만 그럴 필요는 없었다.
콜라이도 연합도시 중서부에서 치솟은 빛기둥에 군영에서 기병들이 무기를 움켜쥐고 우르르 쏟아져나오고 있었기 때문.
한 손에는 창을, 다른 손에는 발키리 헬름을 들고 병력의 틈에 섞여 있던 막시아=에로프는 환인을 발견하자마자 온몸에 소름이 돋는걸 느끼며 미친 듯이 달려가 갓 직업자로 각성한 신입을 밀쳤다.
=서서, 성제님, 군영에는 무슨 일로 오, 오셨습니까!?=
“에로프 경. 어제 사로잡은 섀도어족을 확인해야겠습니다.”
=우, 우선 기병대장님께…….=
『시급한 문제입니다.』
나지막한 신언이 퍼져나가자 가까이서 당황한 표정을 짓던 여병사가 덜컥, 고개를 뒤로 꺾으며 풀썩 쓰러지고 막시아도 영혼이 정수리로 사출되는 감각에 한순간 눈앞이 아찔해지면서 휘청였다.
군영에서 쏟아져나오던 수십의 기병도 신언이 나옴과 동시에 놀란 햄스터처럼 굳은 상태.
“콜라이도의 안녕을 위해서니 한시라도 빨리 그 이블팩션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주십시오. 한 가지 확인만 하면 됩니다. 그 뒤에 기병대장께 직접 양해를 구하겠습니다.”
=…큿, 옙!=
으득, 혀를 씹어 그 고통으로 정신을 차린 막시아는 즉시 몸을 돌려 막사로 달려가며 근처 조원을 향해 기병대장에게 성제가 도착했음을 알리라 전달한다.
그리고 막시아를 따라 지하 감옥으로 내려간 환인은 지하 감옥 중에서도 가장 안쪽의 경계가 삼엄한 곳에서 발가벗겨진 상태 그대로 온갖 구속구에 구속되어 벽에 걸린 섀도어 여자를 보게 되었다.
“…….”
흑자색은 보통 가지와 비슷한 색으로 여겨진다. 자색을 띈 검은색이 흑자색이다. 하지만 섀도어족은 처음 보았을 때 회자색灰紫色으로 회색 베이스에 자색을 띠고 있었다.
그랬는데 여전히 기절한 상태인 섀도어족의 피부색은…….
=회색……? 회색 맞지? 환연아, 빛 정령 좀 불러봐.=
안느가 환인의 등에 매달린 환연에게 말하자 구석의 횃불에서 불 정령과 어울리던 하급 빛정령이 섀도어 여자에게 가까이 다가가 밝기를 키운다.
그러자 섀도어 여자의 주위가 환해지며 자색이 완전히 빠진 잿빛의 피부가 드러났다.
=엇? 피, 피부색이……?=
무슨 일인가 싶던 막시아도 섀도어를 보곤 이게 무슨 변화인가 하고 당황한다.
자색이 뺘졌다는 것은 평온의 파동으로도 영혼 오염 폭탄을 해제할 수 있다는 건가.
그렇다면 섀도어족이 영혼 오염 폭탄에 걸린 상태라는 건 확실하단 말이다.
표정이 더욱 굳어진 환인이 막시아를 돌아보았다.
“막시아 경. 근래에 피부색이 자색으로 변한 기사나 병사들이 있습니까.”
=어……. 눈에 띌 정도는 아닌데 약간 자주색을 띠는 놈들, 병사들이 하나둘씩 늘고 있습니다.=
“그들을 전부 모아주십시오. 이건 영혼사로써 하는 부탁이자 지시입니다.”
환인의 지시에 막시아가 무척이나 곤란하고 난감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으…… 성제님의 말씀이시니 당연히 들어드리고 싶습니다만, 특정 병사를 집합시키기 위해서는 그게… 합당한 명령권자의 명령이 있어야…….=
이것은 절대 자신의 뜻이 아님을 어필하는 그녀의 뒤에서 걸걸한 남자의 목소리가 좁은 지하감옥 통로를 진동시켰다.
=막스 이 멍청한 녀석아. 성제가 허튼 소리를 하겠느냐. 당장 가서 병사들을 전부 집합시켜라. 발이 빠른 놈들 추려서 타 병영에도 즉시 집합하라 전달하고.=
=헙, 옜!!=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본 막시아는 차돌 바위처럼 단단해 보이는 프라우드족에게 척, 경례를 올리고 황급히 지하 감옥을 빠져나갔다.
그런 그녀를 한심스레 바라보던 프라우드 남자, 머리가 허옇게 센 기병대장은 굳은 얼굴로 환인을 돌아보며 말했다.
=내 살아생전 혼령주를 두 번이나 볼 줄은 몰랐군. 그것도 전설로 향하는 성제의 혼령주를 말이오.=
“기병대장이시군요. 이렇게 무례하게 밀고 들어온 점을 사과드리겠습니다.”
=성제가 그렇게 행동하는 데는 마땅한 이유가 있을 거로 믿소. 본인은 콜라이도의 군병력을 책임지는 상원 의원이자 기병대장, 무로스라고 부르시오.=
환인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자 무로스 기병대장이 덥수룩한 흰 수염을 벅벅 긁어내리며 물었다.
=그래서, 갑자기 달려와 저 타락한 년을 보신 이유가 무엇인지 알려주시겠소? 성제의 행동을 보아하니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닌듯한데 말이오.=
신식 영혼의 눈으로 무로스의 맑고 깨끗한 영혼을 들여다보던 환인은 짤막하게 대답했다.
“영도의 오래된 기록에는 영혼 오염 폭탄이라는 항목이 있습니다. 세상을 한번 뒤집어엎으려 했던 암야의 탄왕이라는 자의 고유 능력이라 하더군요.”
=…….=
“영혼 오염 폭탄은 일종의 전염 폭탄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한 번 제대로 발동하면 이만한 도시가 소멸하는 데는 하루도 걸리지 않고, 도시의 마지막 희생자가 걸리면 인근 도시에까지 전염성이 닿을 정도의 전파력을 지닌 끔찍한 능력입니다. 감염자의 특징은 자주색이 깃든 피부라고 합니다.”
=……저 타락의 망종이 영혼 오염 폭탄에 감염되어있었다는 말씀이시군. 하지만 저건 잿빛인데.=
“어제 저 이블팩션의 신병을 인도하기 전 평온의 파동을 쏘았는데 아무래도 그때 해제된 것 같습니다.”
연유를 들은 무로스가 끄응, 골치 아프다는 표정으로 턱수염을 다시 쓸어내린다.
그때 다다다닷, 계단을 빠르게 내려오는 소리가 나더니 단정한 비서 차림의 플뢰족 여성이 내려와 무로스에게 귓속말한다.
=아란 에로프 상원의원께서 전의원 긴급 소집을 발동하였습니다. 하던 모든 일을 중단하고 10분내에 의회소로 모이시라는 전갈입니다. 미참여자는 이후 이유를 확인하여 타당하지 않으면 강도 높은 벌점이 가해질 것이라 하셨습니다.=
=……이것도 그대가?=
대답 없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자 한숨을 푹 내쉰 무로스가 몸을 돌리며 말했다.
=뭔가 더럽게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질 거 같군, 그래.=
“이미 벌어졌습니다.”
뒤따르는 환인의 정정에 무로스가 끄응, 앓는 소리를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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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미국의 sf 전문 출판사가 갑자기 신작 모집 샷따를 내렸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당
무슨일인가 했더니 AI 생성 작품으로 막 작품 제출해서 막았다고 하더라고용.
두 달 전만 해도 한 달에 20~50편 남짓하던 작품 제출이 두 달 사이 500편이 넘게 ㅋㅋㅋㅋㅋ
일러에 이어 소설도 AI 긴빠이가 시작되는건가...!
...했지만 아무리 AI가 우수하다해도 변태 글쟁이의 심연은 따라하지 못하겠죠?
그러니까 심연을 글쟁이 특색으로 삼겠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당
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