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궁기담-740화 (740/813)

740 콜라이도 연합도시

차원 방랑자 남자의 기억이 담긴 기억석. 그리고 그것을 상원의원인 아린=에로프가 먼저 꺼냈다는 상황.

이것에 담긴 기초적인 내막을 짚어내지 못할 환인이 아니다.

하지만 환인은 속단하지 않고 일부러 눈을 차갑게 빛내며 아린=에로프에게 물었다.

“아린 에로프 상원의원께서는 제가 어떤 이유로 패시지를 향해 가고 있는지 아실 테지요.”

=예.=

“그런 제 앞에서 차원 방랑자의 기억이 담긴 기억석의 이야기를 꺼내시는군요.”

사막 플뢰족 특유의 창백한 느낌이 드는 그녀의 이마에서 진땀이 한 방울 흘러내린다.

환인의 기운이 더더욱 강해졌기 때문이다.

그의 몸 주변을 감싼 공간 왜곡장과 같은 희미한 빛의 휘광이 더욱 진해졌지만, 성제가 진심으로 화를 내고 있지 않으며 진상을 얼른 밝히라는 무언의 시위라는 걸 연륜으로 알아차린 아린이 재빨리 말을 이었다.

=에로프 가문의 명예와 땅신님의 성스러운 가호에 맹세코, 콜라이도는 차원 방랑자들에게 그 어떤 박해도 가하지 않았습니다. 처벌과 체벌이 있었다면 도시의 율법과 규율에 어긋난 행위를 하였을 때 가해진 것뿐. 현재 패시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건과는 약간의 연관성이 없다고 장담해 드립니다.=

……라고 신의 존재에 대고 맹세까지 했지만 성제의 기세는 줄어들지 않았다.

오히려 황금빛이 조금 스며든 듯한 그의 검은 눈동자에서 대놓고 황금의 광채가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

=……!!=

당연히 영혼을 짓누르는듯한 존재감은 폭증. 영혼이 찌릿찌릿한 듯한 존재감에 아린은 혀끝이 마비되는 기분이었지만,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려 성제가 어떤 답을 듣길 바라는지 생각해냈다.

=그……러니까, 이것은 콜라이도의 상부가 짐작하는 사건의 진행 개요입니다만…….=

그렇게 운을 뗀 아린의 입에서 흘러나온 이야기는 환인이 어제 내놓았던 추리와 통하는 데가 많은 것이었다.

=이번 습격에 강탈당한 기억석에는 수백 년 전의 차원 방랑자, 요한 건스미스의 기억 일체가 담겨있는 지식함입니다. 그 내용은 니오네브레스에 퍼졌다간 크나큰 문제가 될 여러 병기의 제작 방식……이라 생각합니다.=

건스미스, 직역하면 총기 제작자.

실제 존재하는 성이기도 하고 니오네브레스로 넘어와 자신이 지은 이름일 수도 있다. 그저 성만 건스미스일수도 있고, 실제 직업이 총기와 관련된 사람일 수 있다.

그러나 아린의 이야기에 따르면 직업과 성이 일치한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요한 건스미스는 평범하게 니오네브레스에서의 삶에 적응하고 가진 손재주와 대장장이 일의 재능으로 무사 평탄하게 살다 수명이 다해 죽었다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런 그가 기억을 남긴 이유는 애향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블팩션과 계속된 전쟁으로 도시를 향한 걱정이 컸었다는 이야기군요.”

=예. 말년의 요한 건스미스는 시도때도없이 공격해오는 이블팩션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렇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우연히 구한 기억석을 사용, 모두가 보는 앞에서 기억을 기억석에 옮긴 뒤 평온한 임종을 맞이하였다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 기록에 조작이 가해졌을 가능성은 없습니까.”

환인의 차가운 질문에 아린은 고급스러운 로브 드레스가 출렁일 정도로 움찔, 어깨를 떨었다가 빠르게 답했다.

=예를 들자면 당대의 의원들이 요한 건스미스에게 압력을 가해 지식의 이전을 강요하지 않았는가 하는 말씀이시지요? 저는 당시에 태어난 사람이 아니라 확신할 수는 없지만, 요한 건스미스는 놀라울 정도로 프라우드족과 닮아 강직한 성품이었다고 합니다. 도시의 대장장이 길드에 기록된 여러 수기에도 나와 있는 내용입니다.=

당대의 대장장이 조합장이자 상원의원 중 한 명과 막역지우였다.

또한 그가 만들어낸 병기의 도움으로 이블팩션의 공습을 여러 차례 성공적으로 막아낸 업적은 그야말로 영웅 수준.

그만한 업적을 이루고 확고한 위치에 올라선 그에게 난폭한 행동을 할 사람은 없으며, 설령 있었다고 해도 기억석의 사용방식을 생각한다면 강압에 의한 기억 전송은 의미가 없다.

“병기?”

=예. 이동식 옥시벨레스와 헤비 리피트 보우건이라는 병기입니다.=

“…….”

옥시벨레스oxybeles, 발리스타의 원형이 되는 가스트라페테스Gastraphetes에서 한 발 더 나아간 고정형 포대라고 할 수 있다.

판타지에서 아슬아슬하게 허용되는 병기 수준이다.

거기서 조금만 더 나아간다면 말 그대로 화승총이나 활강식 머스킷이 튀어나올 것이다.

건스미스라는 성에 그러한 무기를 생각해보면 기억석에 들어있는 병기의 설계도는 현대의 화기에 버금가는 것이 틀림없겠지.

=이야기를 계속하겠습니다. 기억석에 옮길 수 있는 기억은 시술자가 정할 수 있으며 옮겨진 기억 또한 본인이 아니면 전 세계에서 손에 꼽을 만큼 적은 숫자인 정신술사만이 확인할 수 있는데…….=

당대에 알려진 정신술사는 모두 주도에 거주하며 왕실의 비호를 받는 인물들.

그들을 초대하기도 어렵거니와 정신술사와 접촉해 기억석의 내용을 확인한다면 정신술사에게 그러한 지식이 전파된다.

기밀성을 생각하면 말 그대로 콜라이도, 나아가 니오네브레스 인류가 이블팩션에게 위협당하는 상황에서 만들어 쓰라는 의도.

즉 강요에 의한 기억 전송 자체가 오류투성이라는 말이다.

“…….”

환인이 지목한 것은 기억석의 조작이 아닌 요한 건스미스에 관한 기록의 조작이었지만, 조작이든 아니든 딱히 의미가 없어 보여 굳이 정정을 요구하지 않았다.

으흠, 작게 헛기침하는 아린의 모습에 환인은 아영에게 손짓해 차를 가져오라고 지시한다.

잠시 후 나온 냉차로 목을 축인 아린=에로프의 표정이 좀 더 굳어지며 이야기가 본론으로 들어갔다.

=문제는 그의 사후 97년 뒤, 인근에 나타난 두 명의 차원 방랑자에게서 시작되었습니다.=

강혁준, 윤미래.

도시의 동쪽 황야를 배회하던 그 남녀는 부부였는데, 우연히 콜라이도 연합도시로 오던 상단에게 발견되어 겨우 목숨을 부지한 경우였다.

발견되었을 때도 마물에게 쫓기고 있었다고 하니 천만다행이…….

“요한 스미스 씨의 사후 97년이라면 지금으로부터 몇 년 전입니까.”

=예? 아, 12년인가…….=

=11년입니다, 숙모님.=

=예, 11년 전입니다.=

막시아에게 정정 받은 아린이 이야기를 계속해나간다.

그건 적응, 다툼, 분쟁, 사고, 사건, 증오, 원한, 복수의 나열이었다.

부부는 차원 방랑자 보호법에 따라 보호되었고, 일정 기간의 적응 과정을 거쳐 도시의 지원과 사람들의 협조에 힘입어 순탄하게 도시에 스며들었다.

전부 요한 스미스라는 전대 차원 방랑자로 인해 만들어진 도시의 법률 덕분이었다.

요한 스미스는 자신의 이후에도 자신과 같은 방랑자가 찾아올 거라 생각하고 그에 관한 지원 절차 등을 만들어놓았던 것이다.

부부는 초반에 조금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그건 말 그대로 잠깐이었다.

두 사람은 도시에서도 제법 뛰어난 지식과 사고관으로 갖은 일을 하며 돈을 벌어 도시 내에서 입지를 쌓아나갔다.

단칸방에서 작은 주택, 작은 주택에서 정원이 딸린 2층 주택, 2층 주택에서 작지만 어엿한 저택으로 차츰차츰 이사하며 살림도 좋아졌고, 도시 커뮤니티에 가입해 나름대로 자신의 역할을 찾아 어느새 어엿한 도시 구성원이 된 것이다.

=강혁준은 고국에서 샐러리맨 영업 사원……? 이라는 직업이었다 했습니다. 윤미래는 동화 작가였는데, 남자보다 여자 쪽이 대중적으로 더 큰 명성을 얻게 되었습니다. 윤미래가 만든 동화라는 것이 도시에 큰 유행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랬는데…….=

어느 날 윤미래가 집에서 잔인하게 피살된 채 발견되었다.

집은 작다지만 갖은 마도구까지 마련된 저택, 고용인까지 있었는데 윤미래의 죽음이 발견된 것은 살해되고 6시간이나 지난 뒤의 일이었다.

=치안대는 정령을 불러내 윤미래의 죽음을 조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살인범은 그녀의 재산을 노린 빈민가의 서인족 남자로 지목되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도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살인범으로 지목된 서인족, 루크랑 시궁쥐 종족의 남자가 가슴에 구멍이 난 채 죽어있는 것이 빈민가의 골목길에서 발견된 거다.

“…….”

=치안대는 사건을 여기서 종료하려 했습니다. 당시 드러난 정황은 재산을 노린 명백한 범죄였으며 처벌을 받아야 할 범죄자는 사망함으로써 더 이상 사건을 수사할 이유가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그 서인족 남자가 소속된 패거리를 붙잡아 조사하긴 했지만, 조사 결과 서인족 남자의 단독 범행이라고 알려져 패거리는 모두 풀려났다.

강혁준은 당연히 분노해서 항의했다. 직업자도 아닌 조직의 피라미가 독단으로 갖은 마도구로 지켜지고 있는 저택에 침입해 그런 범죄를 저지를 리 없다는 게 이유였다.

하지만 정령을 통한 조사에서도 특이사항은 없었고, 플뢰족의 선천 능력인 진실의 주시자로 패거리들을 심문해도 그 사건의 연관성은 없었기에 사건은 그대로 종결되었다고.

=으음……. 그 뒤에 강혁준이라는 차원 방랑자는 진상을 파헤치기 위해서 6년 동안 열심히 일하면서 모은 재산을 털어가며 동분서주했고, 빈민가를 들쑤시는 행위에 뒷골목 조직들의 미운털이 박혀서 공격받다가 도시에서 모습을 감추었다……는 거네.=

아린=에로프와 막시아=에로프가 환인의 마이 페이스 & 포커페이스에 휘말려 별 소득 없이 정보만 토해놓고 돌아간 뒤.

아영의 이야기를 전해 들은 유르파가 요약하고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부터 이블팩션의 습격은 점점 음침하고 비열해졌고, 어제 시청에서 강탈당한 것이 그 요한 스미스라는 사람의 기억석인 거에서 원흉을 그 강혁준이라 꼽은 거예요.=

내막을 알게 된 여자들은 각자 찌푸리거나 찡그린 얼굴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내의 사망에 얽힌 미심쩍은 일을 파헤치다 빈민가 조직들의 공격을 받게 되었다는 것도 미심쩍고, 윤미래가 갑자기 그렇게 사망했다는 것도 의혹이 많다.

환인이 이리저리 질문을 던져본 결과 돈은 윤미래가 더 많이 벌었지만, 사회의 인맥은 남편인 강혁준이 뛰어났다는 평가를 알게 되었다.

차원 방랑자라는 입장과 현대에서 보고들은 이야기에 경험과 지식, 그리고 영업 사원으로서 다진 화술로 도시의 준 귀족 및 귀족 급과도 금방 친분을 다진 인물이라는 게 아린=에로프의 평가였으니까.

유르파가 팔짱을 껴 부푼 유방을 강조하고 검은색 스타킹에 감싸인 늘씬한 다리를 꼬며 말한다.

=뭔가 미묘하게 의심스러운 곳이 많이 보이긴 해.=

=어떤 점이?=

안느가 관심을 보이자 아영이 유르파를 대신해 손을 꼽으며 이야기해주었다.

=그 강혁준이란 인간은 준 귀족하고 귀족한테 선을 댔다는 이야기잖아요. 6년 만에 저택을 마도구로 도배할 정도로 돈도 많이 벌었고요. 그 정도면 뒷골목 조직들은 먼저 손을 안 대요. 귀족과 연관되면 대개 안 좋은 꼴, 못 볼 꼴로 끝난다는 걸 잘 알거든요.=

=아영이 말이 맞아. 해도 은근히 빨대를 꽂고 피를 빨아먹듯이 접근하지, 그렇게 졸개를 보내서 살해하는 짓거리는 아무리 멍청해도 안 해. 실제로 강혁준의 부탁에 귀족들이 사병을 보내서 뒷골목을 몇 차례 들쑤셨다잖니?=

=으음~.=

=음…….=

각자 나름대로 그 살인 사건에 어떤 내막이 있을지 고민해보지만, 떠오르는 게 없다.

여자들의 시선이 소파에 앉아 눈을 감고 있는 환인에게 향한다.

이 사건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의 이야기를 듣고 싶은데, 상원의원을 돌려보낸 뒤부터 쭉 저러고 있다.

=!=

좋은 생각에 발딱 일어난 아영은 잠시 자기 가슴을 만져보다가 울상을 짓고는 재빨리 이실리테의 팔에 팔짱을 꼈다.

=이실리테 언니. 언니도 오빠의 생각을 듣고 싶으신 거죠?=

=…응? 조금은…….=

=그럼 조금만 도와주세요!=

도와달라니, 뭘? 하고 생각했지만 =알았어.= 대답한 이실리테는 그녀의 손에 이끌려 환인의 곁에 선다.

=에잇☆=

=……!?=

그리고 그녀에게 등이 떠밀려 환인을 덮치듯이 넘어졌다.

물론 재빨리 등받이 쪽으로 팔을 뻗어 온몸으로 그를 덮치는 일은 막았지만, 중력에 의해 그녀의 풍만한 I컵의 젖가슴이 푸릉거리며 그의 얼굴을 퍽퍽 때린 상황.

=……!!=

후다닥, 빨개진 얼굴로 가슴을 가리며 환인에게서 떨어진 이실리테는 곧장 아영에게 응징을 가했다.

=너어는 무슨 짓을 하는 거야!=

=흐에에! 도아즌다그 해짜나혀어~!=

=……! ……!!=

말을 잇지 못하고 볼살이 두 배 가까이 늘어날 정도로 그녀의 양 뺨을 잡아당기던 이실리테는 뒤에서 들려온 작은 웃음소리에 약간 못마땅한 표정으로 아영의 볼살을 놓아주었다.

다행히 주인님이 기분 나빠하지 않으셔서 망정이지……!

“큭큭. 설마 젖따귀를 맞아볼 줄이야.”

=주, 주인님…….=

빨개진 얼굴로 울상을 짓는 이실리테에게 다시 웃음 지어주었던 환인은 여자친구들을 향해 손가락 두 개를 펼쳐 보였다.

“아린 에로프의 이야기에 따르면 이블팩션의 습격에 딱히 대상이 지정되어있지 않다. 따지자면 콜라이도 전체겠지. 그걸 봤을 때, 두 가지를 예시로 들 수 있다.”

=두 가지나?=

“하나는 강혁준이 콜라이도의 어떤 고위 신분과 술을 마시든 무얼 하든, 실수로 고위 귀족의 취미를 자극하는 모종의 지식을 흘린 것이다.”

귀족은 그 지식의 편린에 스며들어있는 가능성을 읽곤 강혁준에게 같이 하자는 권유를 했지만, 니오네브레스에서 반십년을 지낸 강혁준도 대충 알게 되었을 거다.

현대의 지식을 함부로 풀었다간 메리아놀의 집행부대에게 강제로 패시지에 끌려가 격리될지도 모른다는 것.

“건스미스라는 전대 차원 방랑자의 이름과 그가 개발해낸 발리스타의 병기를 보았을 테니 체감은 절절했겠지. 함부로 지식을 퍼트렸다간 잡혀간다는 두려움 말이다.”

=으와아. 그래서 귀족의 권유를 거절한 거야? 그거…… 강도를 가장한 암살자를 만나도 이상하지 않네.=

안느가 질렸다는 표정을 짓고 백려강도 작게 찡그린 얼굴로 팔뚝을 연신 쓸어내린다.

아버지인 백중강의 앞에서 아버지가 내민 제안을 거절한다고 생각했더니 소름이 돋아난 것.

“요한 스미스는 대장장이 조합의 마스터와 호형호제할 정도의 배경이 있었지만, 강혁준에게는 그런 게 없었을 거다. 그 결과 우리가 아는 지금 상황이 만들어진 거라고 본다.”

=……다른 하나는 무엇인가요?=

이실리테의 궁금증에 소파에서 일어난 환인이 창밖으로 보이는 아름다운 도시를 눈에 담으며 대답했다.

“이쪽은 무난한 예측이다. 그런 귀족의 개입 없이 조직의 피라미가 정말로 우발적인 살인 사건을 일으켰고, 미혹에 휩싸인 강혁준이 말썽을 연달아 일으키다 반쯤 미쳐버린 것.”

뒷골목 조직이니 저택에 불 지르는 것 정도야 간단했을 거다.

아내인 윤미래의 사망 이후 피폐해져 재산을 정보 수집에 반쯤 미친 것처럼 탕진하고 있었다고 했으니 실행도 어렵지 않았겠지.

재산도, 아내도, 지위도 전부 잃어버리고 조직에게 보복당해 크게 다친 강혁준은 노골적인 분노와 증오에 휩싸여 이블팩션에 투신, 콜라이도 연합도시에 복수하기 위하여 온갖 지식을 끄집어내 그들을 강화하고 있다는 것.

이야기를 조용히 듣고 있던 환연이 묻는다.

「그래서 기억석은 어쩔 거야? 바람 정령으로 지켜보고 있는데, 기병들에 병사들 수백 명이 동원되어서 섀도어 여자를 사로잡은 근처를 이 잡듯이 뒤지고 있어.」

“내가 본 것 같다는 말을 해줬기 때문이겠지.”

환인은 기억석을 꺼내 살펴보며 평소와 다름없는 태도로 대답했다.

“나중에 막시아 에로프를 불러 그냥 찾았다고 전하면 된다.”

「하긴. 의심스러워도 상원의원따리가 아신 성제님한테 뭐 어쩌겠어. 언제 말 할 건데?」

“환연, 정령을 보내서 불길이 치솟은 시청을 시작으로 그 섀도어 여자가 날아온 방향 전체를 정령으로 한 번 훑어라. 병사나 기병들이 볼 수 있을 정도로 대충 1시간 정도면 되겠지.”

그 뒤에 막시아를 불러서 기억석을 찾았다고 하면 그들은 알아서 해석할 것이다.

아, 신경 쓰였던 성제께서 정령을 부려 기억석을 찾으셨구나!

「플뢰족이니까 정령을 볼 수 있는 애들도 있을 거고 그러면 ‘찾았다’는 말도 거짓말한 게 아니게 될 테니까……. 잔머리 대박이네 진짜.」

“간단한 끼워맞추기일 뿐이지. 그리고 찾았다는 것도 딱히 거짓말은 아니다. 옷가지 틈에서 ‘찾은 것’은 맞으니까.”

=…….=

=…….=

안느와 아영은 그의 이야기에서 단 하나의 거짓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에 오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를 보고 있노라면 자신들 선천 능력의 진위 판별 여부에 진한 의심이 피어오르는 것이다.

“아무튼, 강혁준이라는 사람은 니오네브레스의 인간들에게 실망해 이블팩션과 작당했고 기억석의 존재를 알게 되어 그걸 강탈한 뒤 무기를 생산해내려 한다는 것이 지금 상황의 요점이다.”

=정신술사도 확보했을까요?=

“편의주의적으로 생각한다면 그자가 정신술사로 각성했을 가능성도 있고, 이블팩션의 직업 체계는 아는게 없으니 정신술사와 흡사한 능력을 가진 인물이 있어도 이상하지 않지.”

=으음.=

=도령, 기억석을 콜라이도 시의회에 돌려줄 거야?=

“아니. 모두가 보는 앞에서 파기할 거다. 내가 얽힌 일에서 니오네브레스의 무력 균형을 망칠 일이 발생하는 것은 원치 않으니까.”

한다면 아예 니오네브레스가 망할 정도의 지식을 풀어버려야지, 원한으로 인해 문명 수준이 찔끔찔끔 오르는 꼴은 그저 불쾌하기만 하다.

스으으…….

“……?”

환인은 말을 끝낸 순간 저 위, 높은 곳에서 무언가가 지켜보는 듯한 느낌에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보이는 것은 호화로운 석재를 사용한 반듯한 피라미드형 천장뿐.

드라우닐, 아니면 천원의 신적인 존재인가.

“……하찮아.”

=응? 도령 뭐라고 했어?=

환인의 이야기에 나름 감동하고 있던 여자들이 그를 돌아본다.

“아무래도 난 이래저래 관음 성벽을 가진 자들에게 매혹적인 존재 같단 생각이 들어서.”

=아하하…….=

아드네빌라나 릴라이스의 일을 말하는 건가? 여자들은 어색하게 웃다가 한결 개운한 표정을 지었다.

기억석을 어떻게 할까 조금 걱정이었는데 이빨조차 들어가지 않을 확고함으로 부순다고 하다니. 걱정이 싹 사라지는 기분이다.

=있지, 도령. 이제부터 뭐 할 거야?=

“이제 여기 온 목적대로 좀 쉬어야지. 오후까지는 시간이 날 거다.”

아란 에로프를 봤더니 패시지의 상황도 조금은 짐작되기도 하고, 기억석 파괴 퍼포먼스는 빨라도 내일쯤 할 것 같으니까.

그의 이야기에 안느가 반색하며 그의 왼쪽에서 팔짱을 꼈다.

=그럼 호텔에 붙어있는 상점가 가보지 않을래? 노른이 어제 나가서 놀다가 이야기해주던데 초상화 그려주는 점포가 있대.=

“초상화 점포인가.”

=응. 호텔 상점가는 타국으로 넘어가거나 본국으로 돌아가는 귀족 귀빈들을 상대로 장사하는 거라서 볼만한 게 많다더라.=

“그렇군. 그러면 다 함께 보러 갈까.”

여자친구들의 사진도 좋지만, 화가의 예술색이 입혀진 그림 또한 풍류다.

그녀들의 초상화를 훗날 집에 장식한다고 생각하니 썩 마음에 든다.

환인이 웃으며 밖으로 걸음을 옮기자 여자들도 반색하며 그의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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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릉(철썩) 푸르릉(찰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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