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궁기담-739화 (739/813)

739 콜라이도 연합도시

여자친구들과 함께 올라온 5층 객실은 이를테면 펜트하우스식 스위트룸이었다.

방은 총 5개였는데 그중 3개는 전면 유리창으로 이뤄진 현대식 고급 호텔 느낌이었고 나머지 둘은 각각 나무와 돌로 내벽이 꾸며진 무언가의 컨셉 룸.

아마도 사비족과 플뢰족을 위한 실내라고 생각되는데 아무튼.

대리석과 화강암 등으로 잘 만들어진 객실을 한 차례 둘러본 환인은 여자친구들이 짐을 다 정리하고 나오는 것을 보며 그녀들을 불렀다.

그리고 섀도어족을 보며 느낀 점을 이야기해주었다.

=그 섀도어족이 도령의 말에 반응했다는 거랑 양동작전을 펼쳤다는 것만으로 거기까지 추리해내는 건 조금 넘겨짚는 게 아닐까…… 아! 도령 말을 의심한다는 건 아냐. 누구 하나는 의문점을 말해야 할 거 같아서 하는 거니까.=

안느가 말하다 오해하지말라며 작게 손사래를 친다.

=나도 안느 아가씨랑 비슷한 생각이야. 현대에서 이거저거 본 덕분이지만, 자기는 현대에서도 머리가 뛰어난 사람이었단 걸 알게 됐거든. 그렇게 머리가 좋은 사람은 몇 없기 마련인데…….=

같은 한글과 한국어를 쓰는 데다 ‘군사 지식’을 지닌 머리가 뛰어난 한국인이 이블팩션에게 가세해 그들의 전력을 늘려주고 있을 가능성이 얼마나 되겠는가.

안느와 유르파의 반문에 환인은 아령을 꺼내서 부족한 근력 단련을 시작하며 대답했다.

“니오네브레스에서 전쟁은 이블팩션이나 몇몇 도시 간의 마찰을 제외하면 거의 없는 편이지만, 지구에는 세계 대전이라 부를 정도의 초월적인 전쟁만 두 번이 일어났고 불과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수많은 나라가 태어나고 사라지길 반복해온 역사가 있습니다.”

니오네브레스에서 병사, 군대는 특수 직종이자 권위 계층에 속한다. 그러한 병사라고 해도 실제는 마을이나 촌락의 자경단이나 비슷한 수준이고, 전략과 전술을 배우는 건 준 귀족 계층이라 할 수 있는 기사들부터.

“하지만 지구는 다릅니다. 다른 나라에 관해서는 관심이 없어 모르지만, 적어도 한국은 징병제를 유지하며 대다수 남자는 젊을 때 군에 입대해 1년 6개월간 군사훈련을 받습니다. 그리고 그때 기초 전술과 훈련 등을 배웁니다.”

=헉, 진짜? 도령도 배웠어?=

“그래. 전술 훈련이라 해도 고차원적인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단순 무식 돌격밖에 모르는 자들에게는 컬쳐 쇼크에 가까운 요긴한 지식이겠지.”

환인의 이야기를 듣던 유르파가 별안간 짝! 손뼉을 치며 소리친다.

=아! 지식! 생각났다. 자기, 아까 주운 그 광석은 기억석이라고 하는 거야.=

“기억 같은 걸 보관하는 물건입니까.”

=맞아. 쓰기도 복잡하고 비싸기도 하고 기억석 자체가 희귀해서 고가인데다 쓴 본인 밖에 못써. 그 때문에 시장에서 거의 사장된 물건인 걸로 알아.=

=기억석? 그건 나도 아는데 갑자기 기억석 이야기는 뭐야?=

환인이 광석을 챙기는 걸 못 본 안느가 눈을 끔뻑이기에 환인은 아스펜드에서 보석처럼 커팅된 푸른 광석을 꺼내 보였다.

그걸 본 안느가 환인에게 묻는다.

=섀도어족이 이걸 갖고 있었다는 이야기는 여기 시청에서 이걸 탈취했다는 이야기야?=

“…….”

기억석을 잠시 바라보던 환인은 탁자 위에 그걸 올려놓고 아까 했던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일단 아까 하던 이야기를 계속하지. 이블팩션에 있다는 차원 방랑자가 한국인일 가능성을 점치는 이유는 그래서다. 섀도어족 여자가 내 말에 반응을 보였던 것, 근래에 들어 이블팩션의 전략 전술이 일취월장한 것, 막시아의 반응이 의미심장했던 것.”

=오빠가 그 섀도어 여자를 회복시키란 것도 그래서였어요? 이블팩션 쪽에 있는 뭔가랑 괜한 마찰을 빚지 않으려고?=

“임시변통도 안될 테지만 하지 않는 것보단 나을 테니까. 그리고…….”

탁자의 쿠션 위에 모로 누워 나른하게 있는 환연에게 시선을 주자 그녀는 손을 들어 살랑살랑 흔든다.

「시청에 불이 꽤 크게 나서 건물이 폭삭 주저앉은 상태야. 불은 꺼졌고 병사들과 시민들이 잔해를 치우고 있긴 하지만, 당장은 뭐가 사라졌는지 알기 어려워. 책임자로 보이는 인간도 딱히 말은 안 꺼내고 굳은 얼굴로 어서 잔해를 치우라고 독촉만 하고 있고.」

“그래. 이게 섀도어족의 소지품인지 아니면 시청에서 훔쳐 나왔는지 그게 중요하다.”

안느는 조심스럽게 천에 감싸여져 있는 기억석을 들어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유르파에게 물었다.

=언니, 이 안에 내용물을 알아볼 방법 없을까?=

=있긴 하지만 아쉽게도 난 못해. 기억석은 사람의 머리랑 비슷해서, 이 속에 든 걸 알아내려면 당사자나 정신술사의 힘이 필요하거든.=

=엥. 정신술사면 희귀 직업자잖아.=

=그러니까. 기밀용으로 쓸만해서 여기다 기억을 담고 기억 조작으로 해당 기억을 잊어버리는 방식이 한때 쓰이긴 했지만, 기억 조작의 후유증이 알려지면서…….=

여자친구들의 대화를 들으며 환인은 가라앉은 눈빛으로 기억석을 응시했다.

‘차라리 못 본 척 내버려 둘 걸 그랬나.’

지금이라도 환연에게 시켜 그 근방에 버리고 오는 게 좋을까.

만약 이 기억석을 목적으로 섀도어족이 공격해왔다면 일이 매우 복잡하고 더러워진다.

환인이 생각하는 가장 심각한 예측은, 이 기억석이 이블팩션에 가담해있는 차원 방랑자의 것일 경우다.

콜라이도는 군사 지식을 가진 어떤 차원 방랑자를 착취했고, 차원 방랑자는 그런 콜라이도를 탈출해 우연찮게 이블팩션에 투신하게 된다.

차원 방랑자는 당연히 복수심에 불타 콜라이도를 뒤집으려 하고, 겸사겸사 기억석을 되찾으려 한다.

왜? 기억석에 담긴 정보를 되찾기 위해서.

사람의 기억력은 불완전하며 열화하기 마련이지만 기억석은 그런 기억을 오랫동안 온전히 보관해둔다. 그리고 차원 방랑자는 이 시대에서 오파츠라 불릴법한 지식을 보유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정신술사……라는 희귀 직업자가 기억석의 기억을 뽑아낼 수 있으니 콜라이도의 고위층은 차원 방랑자의 지식을 기억석에 담아두어 나중에 천천히 뽑아낼 생각을 했겠지.

“……만약 이블팩션에 가담한 차원 방랑자가 군사 관련 직업을 가진 자라면, 이 안에 든 것은 내 노트북과 비슷할 만큼 위험한 지식일 거다.”

=예를 들면?=

안느의 질문에 환인은 여자친구들이 다 둘러본 기억석을 다시 아스펜드에 수납하며 대꾸했다.

“화기를 만드는 법이라던가.”

=……총 같은 거 말이구나. 그게 가능해?=

“세상은 넓고 취미는 다양하다. 현대의 총기를 단순 지식만으로 재현하는 건 어렵겠지만, 구식 총기류라면 몇 가지 주의사항만 염두에 둔다면 만들기 어렵지 않은 편이야.”

물론 환인의 노트북에는 그러한 현대 화기를 제작하는 방법도 있고 제작을 위한 공구의 제작, 기계설비의 제작법도 있다.

현대에서 여러 영화와 드라마를 보며 총기의 무서움을 잘 알게 된 여자들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그런 표정 변화에 환인은 작게 웃음 지었다.

“만에 하나의 가능성일 뿐이니 너무 신경 쓰지 마라.”

=가능성일 뿐이라고 해도 그런 위험한 게 니오네브레스에 퍼져나간다고 생각하면 가만히 있기 어려워…….=

총이 만들어져도 자신들은 걱정 없다. 이실리테나 자신은 기관총이 발사되어도 피하거나 막거나 쳐낼 수 있고, 맨몸에 맞더라도 위상력을 집중하면 튕겨낼 수도 있으니까.

백려강은 맞아도 별 탈 없이 회복할 만큼 신체 능력이 뛰어나고 아영도 성투술과 성술이 있다. 유르파도 술법으로 위상력이 깃들지 않은 탄도체는 비껴나게 할 수 있고.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안된다. 총을 막거나 피할 본격적인 능력을 갖추는 건 3~4급 직업자 정도.

그 말은 총을 든 여섯 살짜리가 직업자로 각성한 1~3급 모험가를 일방적으로 살해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

=…….=

=…….=

그러한 상황을 상상하자 여자들은 알게 모르게 메리아놀이 차원 방랑자를 한곳에 모아두는 이유를 심정적으로 조금이나마 동의하게 되었다.

이실리테가 약간 굳은 얼굴로 환인에게 말했다.

=주인님. 그렇다면 이건 그 차원 방랑자한테 별로 중요하지 않은 물건이 아닌가요? 그만한 지식이라면 시간이 흘러도 잊기 힘들 테고… 잊더라도 기억을 더듬어서 만들어낼 수 있을 거라 생각이 드는데요.=

도적으로 있을 때 부하가 몇 가지 단서만으로 달구지를 만들어내던 걸 떠올린 이실리테의 질문에 환인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 차원 방랑자한테는 쓸모없겠지.”

=……?=

=이슬이 아가씨, 아까 내가 말했던 거…….=

=……아. 정신술사.=

“차원 방랑자가 총기를 이미 만들었고 실전 투입만을 기다리는 상황이라면, 자신의 기억이 담긴 기억석을 회수하려는 게 당연한 행동이다.”

니오네브레스에서 이질적인 물건을 만들어냈다면 당연히 차원 방랑자를 의심할 거다. 그럼 자연스럽게 기억석에 이목이 쏠리겠지.

여자들은 그제야 환인이 어째서 가장 성가신 추측이라 했는지 이해했다.

=오라버니의 추측이 사실이라면 기억석이 저희 손에 있다는 것이 알려졌을 때 콜라이도 시의회랑 이블팩션 전부 우리를 쫓겠네요.=

섀도어족은 아영에게 폭행당하느라 자신이 기억석을 챙긴 것을 못 보았다. 그 뒤에는 평온의 파동에 기절했고.

하지만 조금이라도 머릴 쓸 줄 안다면 기억석을 가져간 유력한 용의자를 자신으로 삼기 어렵지 않겠지.

=으~ 자기, 미안해! 내가 조금 더 일찍 기억해냈어야 했는데…….=

“아닙니다. 그때 기억석이란 걸 알았어도 챙겼을 테니까요.”

「환인. 그럼 어쩔 거야? 그 섀도어족 여자가 고문당하기 시작하면 기억석의 소유 여부가 알려지면서 빠르든 늦든 너한테 의심이 몰릴 거잖아. 죽여?」

태연하게 살인을 입에 담는 모습에 잠시 그녀를 바라보던 환인은 턱을 쓸어내리며 생각에 잠겼다.

이쪽이 기억석을 챙겼다는게 알려져도 콜라이도는 어쩌지 못한다. 이쪽이 차원 방랑자라는 것은 이 위험한 지식을 대신 파기하겠다고 나서도 되는 명분이 되어주니까.

게다가 자신은 성제고 아신위를 눈앞에 둔 상태, 제정신이라면 어쩌지 못할…….

“…….”

……시비를 건다 해도 날려버릴 무력이 있으니까.

「아. 그 여자 마력 차단 감옥에 갇혔네. 상급 땅 정령한테 말하면 묻어버릴 수는 있지만 암살은 못 하겠다.」

=그럼 내가 갈까? 유르파 언니가 마도구 두 개 정도만 만들어주면 할 수 있어.=

아영이 자리에서 일어나 암살자의 차가운 눈빛을 드러내며 손가락 관절을 꺾자 그녀의 뒷목을 잡고 소파에 다시 앉힌 환인은 여자들에게 정신을 차리라는 듯이 말을 꺼냈다.

“놔둬라. 지금까지 나눈 대화는 어디까지나 가정이다.”

「네 가정이 빗나가는 경우는 거의 못 봤는데? 섀도어족이 그 희귀하고 드물고 비싸다는 기억석을 막 들고 다닐 이유도 없을 거고. 거의 사실에 근접한 추리 아냐?」

“그렇다고 해도 그 여자를 죽였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여파를 생각하면 손은 쓰고 싶지 않다.”

=여파라면 어떤 여파인가요?=

환인은 자신에게 묻는 이실리테의 이름답고 어여쁜 얼굴을 잠시 바라보다가 점점 어두워지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나라면 내 여자가 누군가에게 살해당했을 때 세상을 무너트려서라도 원수에게 보복할 거다. 혼도 남기지 않고 소멸시켜버리겠지.”

이런 사고방식이 평범하지 않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니오네브레스인과 다른 사고방식을 지녔을 차원 방랑자라면, 자신보단 덜하겠지만 그래도 여자친구를 죽인 놈을 지옥 끝까지 쫓아가서라도 복수하겠다는 생각은 품을 거다.

그리고 차원 방랑자는 각성할 경우 강력한 희귀 직업을 얻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지하율을 통해 알려졌다.

“괜한 적을 만들어 골치 아픈 일이 발생하는 일은 피하고 싶다.”

=그래서 그 섀도어년의 팔다리를 재생시키라고 한 거였구나. 혹시 모르니까…….=

「우리 때문에 그 여자가 잡힌 건 팩트잖아. 원수로 보기 충분한 이유라고 생각하는데?」

“그렇게 나온다면 그땐 죽여야겠지.”

그의 차가운 대꾸에 환연은 헹, 하고 콧방귀를 꼈다. 또 먼 길을 돌아가네. 그런 의미가 담겨있는 한숨이다.

환인은 그녀의 그런 행동에 피식 웃으며 작은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자신도 알고 있다. 그 여자를 살려두는 건 언 발에 오줌 누는 격 밖에 안된다고.

하지만 이블팩션이 동료를 구출하러 올 수도 있는 일이고 시의회가 그 섀도어 여자를 바로 사형시키지는 않기도 할 것이고……. 하여튼 아직 행동할 때는 아니라고 본다.

다음날 아침.

=오라버니. 씻을 물 가져왔어요….=

“……오늘은 네가 당번인가. 얼음장처럼 차갑게 해주겠나. 정신을 좀 차려야겠군.”

백려강의 모닝콜에 일어난 환인은 머리를 싸매고 잠시 한숨 쉬다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차가운 물에 얼굴을 씻었다.

간만의 고급 침실이어서일까. 여자친구들이 하나같이 발정 나 달려드는 통에 거의 밤을 새웠더니 조금 머리가 멍하다. 그 때문에 조금 늦게 일어나서 아침 훈련도 걸렀고…….

마음 같아서는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싶지만, 조금 있으면 아침 식사 시간이다. 대충 얼굴을 씻는 것으로 끝내자 백려강이 우물쭈물하다가 기어가는 목소리로 사과했다.

=죄송해요…….=

“이해한다. 2주 가까이 제대로 잠자리를 못 했으니 성욕이 쌓일 대로 쌓였겠지. 특히 넌 오럴까지 해줬었고.”

=~~.=

그의 노골적인 이야기에 백려강은 토마토처럼 새빨개진 얼굴로 두 뺨을 감싸 쥐고 몸을 배배 꼬았다.

어젯밤에 거의 정신을 놓고 그를 덮치듯이 올라타 헐떡인 여자가 그녀였기 때문이다.

똑똑.

노크가 먼저 들리더니 문이 열리며 확실히 윤기가 흐르는 안느의 머리가 빼꼼 들이밀어진다.

=도령, 막시아 에로프가 손님을 모셔 왔어. 콜라이도 시의회 상원의원이래. 어제 섀도어족을 넘겨준 일에 감사 인사를 하기 위해서라는데?=

“……아침 일찍이도 찾아오는군.”

상원의원이 직접 납셨다는 것은 그냥 감사 인사를 하고 돌아가겠다는 이야기는 아닐 테지.

환인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그자들을 응접실로 보내놓으라고 한 뒤 백려강을 돌아보았다.

눈치 빠르게 천릉과 코트를 가져와 옷시중을 들 준비를 한 백려강. 그녀에게 고개를 끄덕인 환인은 먼저 몸을 씻겨달라고 부탁했다.

‘식사 후에 목욕으로 머릿속을 개운하게 하고 싶었는데. 어쩔 수 없지.’

외뿔을 빛내며 물을 조작해 자신을 씻겨준 백려강에게 고마움의 볼 키스를 해준 환인은 찝찝한 상쾌함을 느끼며 천릉과 유물을 차려입고 광명창의 코어를 쥔 채 뚜벅뚜벅, 응접실로 향했다.

벌컥—

문이 열리는 소리에 5평 남짓한 응접실에 앉지도 않고 서 있던 두 여자는 문 쪽을 돌아보았다가 흠칫했다.

저, 저건 뭐지……?

문을 열고 들어온 흑발에 품위 넘치는 코트 제복 차림의 남자는 성제가 맞다. 소문으로 듣던 것보다 좀 젊어…… 어려 보이는데 그건 문제 안 된다.

그녀의 시선을 온통 사로잡는 것은 그의 몸 주변을 일렁이는 기이한 현상.

창가의 빨간 소파 근처로 걸어가는 그의 모습을 두 여자는 잠시 눈을 크게 뜬 채 바라보다 눈을 한 번 끔뻑였다.

저건 대체 뭘까. 아우라는 확실히 아니다. 성제의 아우라는 세상을 황금빛? 세피아 색으로 물들이는 거라고 하였으니까.

아우라를 껐다 켰다 할 수 있다고도 들었지만, 저런 공간을 왜곡하는 듯한 현상은 들은 바가……. 혹시 저것이 아신위의 후광?

성제가 들어온 순간부터 영혼을 짓누르는듯한 위압감과 존재감에 침을 꼴깍 삼킨 아린=에로프, 콜라이도 연합도시에서 여섯뿐인 상원의원은 조심스레 한쪽 무릎을 꿇었다.

막시아=에로프도 멍하니 정신을 놓고 환인을 바라보다가 황급히 무릎을 꿇는다.

=결례를 무릅쓰고 이른 아침에 찾아와 사죄의 말씀을 드립니다. 저는 콜라이도 연합도시 시의회 소속 상원의원, 아린 에로프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성제 예하.=

원래 주도의 협의회에서 내려받은 후작이란 작위가 있지만 일부러 빼고 소개한다.

그 소개를 들은 환인은 일견 건방지게 보일 수도 있는, 한 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은 채 무표정으로 광명창을 만지작거리다 몇 초 후 답을 받았다.

“공사가 다망하실듯하여 느긋이 오실 거로 생각하였는데, 이건 미처 생각을 못 해 대접이 소홀하였습니다. 미안합니다.”

=아닙니다. 이 시각에 연락도 없이 찾아뵌 저희가 죄송할 따름입니다. 모쪼록 결례를 용서해주시길…….=

“콜라이도의 의원께서 이렇게 찾아오실 정도이니 그저 인사를 위해 찾아오신 것만은 아니겠지요. 그만 일어나셔서 자리에 앉아주십시오.”

두 여자가 조심스레 일어나 의자에 앉는 것을 보고 환인도 안느가 가져다주는 빨간 의자에 앉으며 아린=에로프 시의원에게 물었다.

“그래서, 상원의원께서 직접 찾아오신 이유가 무엇인지 들려주시겠습니까.”

인사치레는 생략하고 본론으로 들어가는 환인의 화법에 막시아와 같은 사막 플뢰족인 아린은 살짝 식은땀을 흘리며 고개를 숙였다.

=먼저 도시를 습격하고 도망치던 악당을 생포하여주신 데 콜라이도 시민과 시의회를 대표해 감사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성제 예하께서 손을 써주지 않으셨다면 저희는 습격자를 모두 놓쳤을 것입니다.=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입니다.”

그럼 남쪽으로 내려간 자들을 전부 놓쳤다는 건가. 근방에는 황야뿐이라 몸을 숨길 곳도 마땅치 않았을 텐데 잘도 놓쳤군.

환인은 무어라 한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괜히 찔린 아린=에로프는 변명처럼 이야기를 주워 담는다.

=저희에게는 불행이었지만, 간악한 놈들은 불어온 돌풍 속에서 비가시화의 주술로 몸을 숨기는 바람에 그만……. 긴급히 추격을 지시하느라 준비가 미비하였습니다.=

“에로프 경에게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블팩션답지 않은 기만전술을 쓰기 시작하였다고요.”

순간 아린의 사나운 시선이 옆자리의 막시아에게 향했다. 네 녀석은 성제 앞에서 뭘 떠드는 거냐, 고.

=……알고 있으면서 대비를 제대로 해놓지 않아 이런 피해를 낸 것이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후회는 언제 해도 늦지 않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제부터라도 방비를 제대로 갖춘다면 어제의 일도 무의미한 피해는 아니겠지요.”

=예, 말씀대로입니다. 그리고…….=

잠시 말을 고른 아린은 얼굴 옆으로 흘러내리는 모래색 머리카락을 뾰족한 귀 뒤로 쓸어 넘기며 그의 심기가 상하지 않도록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냈다.

=기병대가 도착하였을 때 섀도어는 이미 성제님께 제압당한 상태였다 들었습니다. 혹시…… 섀도어족에게서 푸른색의 다듬어진 광석 같은 것을 발견하진 못하였습니까? 주먹 절반만 한 크기에 금속과 석재를 반씩 섞은 듯한 광택이 특징적인 광석입니다.=

“음, 그 이블팩션 여자를 쓰러트릴 때 얼핏 반짝이는 무언가를 본 것 같았습니다만……. 그게 무엇이길래 상원의원께서 직접 찾아오신 겁니까?”

그의 천연덕스러운 대꾸에 아린은 조금의 의심도 하지 못하고 숨김없이 이야기를 내놓았다.

=기억석, 차원 방랑자로 짐작되는 남자의 기억이 담긴 물건입니다.=

환인의 눈썹이 미미하게 찡그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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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system: 심각한 귀찮음이 감지되었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 1. 알게 뭐냐. 필요한 정보만 수집하고 떠난다.

[▣] 2. 뭔가 좀 신경쓰이는데 조금만 알아볼까?

[▣] 3. 호텔도 고급스럽고 피곤하니 적당히 쉬다 떠나자.

[▣] 4. 귀찮은 일이 따라붙지 않게 정리하고 떠나자. ((new!))

[작품 설정]

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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