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궁기담-738화 (738/813)

738 콜라이도 연합도시

=~~~! ……!!=

이실리테의 검기에 의해 사지가 절단되어 피를 사방으로 뿌리면서도 비명은 지르지 않는 이블팩션 쪽 인간.

‘처음 보는 아우라군.’

농도는 족히 6급에 이르지만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아우라의 형태다.

흘리는 피도 푸르거나 검지 않고 평범하게 붉은색. 사대 종족과 대척한다고 해서 종 자체가 다를지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그런 쪽은 아닌듯하다.

가까이 다가간 환인은 괴한의 복면을 벗기려다 슬쩍 고개를 옆으로 젖혔다. 그와 동시에 퓻— 자그마한 파공성이 일며 바늘처럼 작고 가느다란 것이 그의 머리 옆으로 스쳐 지나갔다.

=주인님?! 이게!=

괴한의 입 부근 복면에서 구멍이 난 것을 본 이실리테가 격노해 괴한의 주둥이를 구두 굽으로 으적, 짓밟아 뭉개버린다.

=~~!!? ~~!!=

그 발길질에 하관이 곤죽으로 변해 살점과 끈적한 핏물, 뼈조각을 토해내며 또다시 펄떡이는 괴한.

고통에 발버둥 치면서도 신음 하나 흘리지 않는 모습에 환인이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이런 상황에 대해서 훈련을 받은 것처럼 보이지 않는가.

영도의 역사서에 이블팩션은 문명이나 문화가 없는 야만족이라고 적혀있던데 그것도 편견을 바탕으로 작성된 내용이었나.

섀도어족이 자기 몸에서 흘러나온 피 웅덩이 위를 뒹구니 옷이 피에 젖어가며 여자 특유의 굴곡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때 아영이 시뻘게진 얼굴로 환인의 앞을 막아섰다.

=오빠, 잠시만요!=

설마 암습을 시도할 줄은 몰랐기에, 그리고 암습을 미리 막아내지 못했기에 드러나는 수치심과 노여움.

아영은 으득— 이를 갈면서 괴한의 옷과 두건을 잡아 쫙쫙 찢어버렸다.

거무튀튀한 무복이 찢어지며 투박하고 거친 가슴 천도 뜯기니 괴한은 삽시간에 알몸이 되었다.

약간 자색이 감도는 회색 피부의 알몸 곳곳에 새겨진 글과 그림 문신이 눈에 띈다. 그리고 탁한 회색 머리카락과 피처럼 붉은 눈동자, 기다란 뾰족귀.

코 아래로 분쇄골절을 당한 것처럼 하관이 뭉개져 피거품과 뼛조각이 쏟아지고 있지만, 안느와 아영은 조금도 신경쓰지 않고 험악한 표정을 지었다.

=역시 섀도어였네. 더러운 타락자 같으니!=

퍽!

케흑!

아영의 발길질이 옆구리에 꽂히자 몸을 꺾으며 걸쭉한 피거품과 이빨 조각을 토해내는 여자지만, 두려움은 일말도 없이 오직 원독만 드러내며 환인 일행을 노려본다.

하지만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일까 낯빛이 점차 창백해져가고 있다.

“아영. 일단 치료해라. 이러다 실혈사하겠군.”

=옛.=

=……!=

환인은 찰나지만 자신에게 향하는 괴한의 시선에서 원독이 아닌 당황이 스쳐 지나가는 것을 포착했다.

“……?”

의아함에 괴한을 쳐다보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살기등등한 기세를 쏘아내는 섀도어족 여자.

하지만 환인은 기감으로 그 살기가 좀 전에 비해 확연히 감소한 것을 알 수 있었다.

‘내가 한 말을 들은 직후에 반응이 바뀌었는데…….’

수년간 니오네브레스를 활보하면서 환인은 라드세아의 루크랑어를 원주민 수준으로 익혔다.

물론 평소에는 한글을 쓰지만, 사람이 많은 곳이나 신분 지위가 높은 사람이 모이는 장소에서는 루크랑어로만 이야기한다.

방금은 한글로 이야기했는데 그걸 들은 섀도어 여자가 저런 반응을 보였다는 것은…….

‘한글을 알고 있다는 이야기.’

=얌전히 있어! 아 진짜!=

퍼벅, 우득! 쾅!

치유를 거부하다 아영에게 구타당하며 치유되어가는 섀도어 여자를 잠시 바라보던 환인은 탐탁지 않은 얼굴로 여자를 노려보는 안느와 유르파에게 물었다.

“안느, 유르파. 이블팩션은 정말로 문화가 없는 야만 종족인가.”

=응? 어, 도령이 말하는 문화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가에 따라 다르겠지만 전혀 없지는 않을 거야. 특히 섀도어는 우리 플뢰족에게서 떨어져 나가 타락한 자들이라서…….=

“너희와 비슷한 문화가 있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군.”

=그렇지. 그것도 엄청 오래전의 일이라서 원 형태는 거의 다 사라졌겠지만 말이야.=

=자기가 말하는 야만인은 아마 오흄이나 호브, 우르거 같은 것들일 거야. 섀도어, 헬플럼, 바르둘처럼 4대 종족 대척점에 있는 것들은 지능이 높아서 나름대로 모여 문화를 이룩했을걸? 그것들이 이블팩션 상위 종족이라고 불리기도 하고. 그런데 갑자기 그건 왜 물어보는 거니?=

“조금 신경 쓰이는 게 있어서 말입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아닌 것 같으니 그건 나중에 이야기하도록 하죠.”

뭐, 이상한 건 아니다.

자신만 봐도 이블팩션 접경지에 가까운 수해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이블팩션의 권역에 떨어진 차원 방랑자, 한국인이 없을 거라 생각하는 게 오히려 말이 안 된다.

소소한 문제라면 이블 가고일을 타고 도시를 습격할 정도의 인물이 한글을 알고 있다는 걸까.

‘제법 똑똑한 사람이 이블팩션 내에서 나름대로 지위를 확립한 거겠지.’

환인은 넝마가 되어 흩어진 섀도어 여자의 찢어진 옷가지를 천칭으로 이리저리 헤집으며 생각을 이어 나갔다.

문제는 지금이다.

명백히 소수 정예로 콜라이도를 공격했다는 것은 특정 인물의 암살이나 특정한 물품의 강탈 정도밖에 이유가 생각나지 않는다.

목적이 뭘까. 암살? 아니면 강탈? 그것도 아니라면 둘 다?

그러다가 보석처럼 이리저리 커팅 된 푸른색의 광물이 핏물 속에 잠겨있는 것을 발견했다.

아까 아영이 옷을 찢을 때 얼핏 빛나는 것을 본 거 같다고 생각했는데 잘못 본 게 아니었다.

“……환연, 저것의 동료들은 어디까지 갔지.”

「이쪽 상황은 알아차리지 못했는지 계속 멀어지고 있어.」

옷가지로 조심스럽게 그것을 집어 영혼의 눈으로 확인해본다.

‘이건…… 마도기나 마도구는 아니군.’

유르파가 마도구를 수없이 제작하며 마도구의 특징을 어느 정도 알 수 있게 되었다. 이를테면 위상력을 이용해서 물품에 건물을 올리듯 위상력을 쌓아 올리는 것이다.

유물은 그런 마도구와는 질적으로 달라 물품 전체가 위상력이 아닌 기운으로 가득 차 있다.

심핵력이 특별한 필터를 거쳐 물품에 스며들어 완성되는 것이 유물……이라고 환인은 판단 중이다.

그런데 지금 집어 든 이것은 마도구도, 유물도 아니다.

“유르파, 이게 뭐라고 생각합니까.”

=으응? 뭔가 특이한 힘이 느껴지는…… 어, 이거랑 비슷한 걸 언제 본 적이 있었는데 언제였지……?=

꽤 오래전의 일인지 유르파가 기억을 더듬기 시작했을 때 환연이 그의 옷깃을 잡아당기며 불렀다.

「환인, 도시에서 달려 나온 자들이 좀 있으면 도착해.」

“…….”

빠르군. 저 여자를 취조할 시간도 없다니.

이거, 생각보다 더 귀찮은 일에 휩쓸리겠는데.

계속 발버둥치는 저 섀도어 여자가 다른 차원 방랑자와 단순히 접점만 있을 가능성도 있지만, 예감이 경고하는 귀찮음의 레벨은 그런 수준을 아득히 넘어서고 있다.

두두두두…….

쿠에 여러 마리가 질주하는 소리에 환인의 두뇌가 맹렬히 회전한다.

그리고 몇 가지 예상을 바탕으로 그에 따른 계획을 짜고서는 꾹— 옷감 채로 정체불명의 광석을 쥐고서 아스펜드에 수납한 뒤 그대로 신식 평온의 파동을 펑, 터트렸다.

황금빛의 물결 같은 파문이 넓게 퍼져나가며 섀도어 여자의 머리가 덜컥 뒤로 꺾이더니 눈알이 눈꺼풀 위로 사라진다.

“아영, 그것의 팔다리까지 재생시켜놔라. 빨리.”

=어, 옛!=

“환연. 어떤가, 정령으로 대지의 기억을 읽을 수 있나.”

「…땅 정령 애들이 방금 파동에 죄다 도망가서 기억이 싹 날아가 버렸어.」

“그래. 유르파, 방금은 아무것도 못 본 겁니다. 저 도시의 귀족이든 이블팩션의 인물이든 뭔가 본 적 있느냐 물어보면 대답 말고 유야무야 제게 떠넘기십시오.”

=으응? 아, 알았어.=

여자들은 갑작스러운 환인의 행동에 의문을 품긴 했지만, 그가 저렇게 행동한다는 것 자체가 뭔가 일이 일어날 조짐이라는 걸 알기에 일단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 도시에서 이블팩션 습격자를 추격하기 위해 뛰쳐나온 쿠에 기병들이 도착했다.

=시, 실례하겠습니다. 혹… 혹시 영도의 대 순례자, 성제님……이십니까?=

쿠에 기병들은 목숨을 걸고서라도 습격자를 쫓으란 상부의 지시에 마음을 단단히 먹고 추격에 나섰다.

근래에 들어 이블팩션의 공격은 무척이나 음습하고 노골적으로 변해가는 중이다.

아니, 원래부터가 비열하고 음습하기 짝이 없는 놈들이라 콜라이도 황야와 인접한 암흑의 숲에서 살아가는 놈들답게 습격이나 기습이 주된 공격방식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정면 공격이라는 틀은 다르지 않았다.

암살이랍시고 들이닥쳐서는 하는 짓이 =지금부터 네놈을 죽이겠다!=는 것처럼 정면에서 달려드는 게 이블팩션의 방식이었던 거다.

하지만 최근 5~6년 사이 이블팩션의 공격은 점진적으로 바뀌어와 지금에 이르러서는 양동작전에 기만전술까지 펼치는 중이다. 그에 따라 암살다운 암살을 펼치게 된 것도 당연한 일.

이번 습격도 양동작전이 펼쳐져 다수의 중상급 마물이 시 외곽을 공격하는 사이 섀도어 암살자들이 시청에 잠입하여 고급 핵심 인력 여럿이 사망했다.

도시의 상층부는 누군가가 암흑 숲의 이블팩션들에게 전술 이론을 사사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었지만, 그게 누군지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하지만 성제로 인해 메리아놀이 극심한 혼란에 빠져들고 니오네브레스 대륙 전체가 관련된 사건으로 홍역을 앓는 지금, 상층부 대다수에 군부 출신은 어째서 이블팩션이 이렇게 바뀌었는지 어렴풋이 눈치를 채고 있었다.

‘차원 방랑자야.’

‘나라에서 차원 방랑자를 강제로 소환하다가 사달을 낸 거겠지.’

‘이블팩션의 수중에 군사 지식을 가진 차원 방랑자가 흘러 들어간 게 틀림없어.’

도시의 기사급 전력인 쿠에 기병들 또한 그 사실을 알음알음 들어 알게 되었는데, 지금 그들의 눈앞에는 눈도 마주치기 어려울 정도의 존재감을 지닌 성제가 냉기를 풀풀 풍기고 있었다.

당연히 긴장할 수밖에 없다. 그들은 차원 방랑자들이 하나의 국가 아래 뭉친 일족이라고 인식하고 있었으니까.

“그렇습니다. 여러분들은 콜라이도의 기사들입니까.”

=예, 예. 거기……. 성제님께서 포획하신 이블팩션 종자들의 추격 임무를 맡은 콜라이도 연합도시 제1 기병단 3조장, 막시아 에로프입니다.=

모래와 같은 머리색에 약간 노란 빛이 감도는 피부의 여자 플뢰가 발키리 헬름 비슷한 기병 투구를 벗어 옆구리에 끼고 척, 경례를 올린다.

그리고 금방 주눅 들고 위축된 모습으로 입을 열었다.

=저, 저기. 저희 도시는 패시지의 왕가나 비밀 결사 집단과 아무런 관련이 없고 시민들이 뽑은 청렴한 시의원들이 다스리는 도시입니다.=

“……?”

=그, 사막 플뢰족과 사막 프라우드족 위주로 이뤄진 도시라서, 다른 종족들도 많이 살고 있어서…… 그러니까, 도시를 쓰, 쓸어버리시는 일은…….=

환인은 여기사의 이야기에 눈썹을 찌푸리며 인상을 썼다.

눈앞의 여자 플뢰가 가진 자신의 이미지가 어떻게 이뤄졌는지 눈치챘기 때문이었다.

진상이야 어쨌든 널리 퍼지는 건 이런 식으로 왜곡되어 자극적으로 변해버린 악성 루머지.

“에로프 경. 맹세컨데 스프라울드에서 저와 제 영혼 기사들의 손에 삶의 마침표를 찍은 사람은 0명입니다.”

=……예?=

“그리고 죽은 자들도 플뢰족의 선천 능력 앞에 정당한 재판을 치러 위중한 죄를 저지른 범죄자에 한하였으며, 그마저도 경중에 따라 처벌을 달리하였지 무차별적으로 죄 없는 사람을 살해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고 단언하겠습니다.”

=………시, 실례했습니닷! 죄송합니닷!! 그, 그런 뜻이 아니었습니닷!!=

자기 말이 어떻게 해석되었는지 한발 늦게 알아차린 막시아는 창백해진 얼굴로 허리를 꾸벅꾸벅 숙여댔다.

좋은 식은 아닐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설마 연쇄 무차별 살인마로 알려지고 있다니. 그리고 그걸 믿는다니, 저들은 영혼사를 뭐라고 생각하는 걸까.

“아무튼……. 이 이블팩션 종족을 추격하기 위해 오셨다고 하셨습니까.”

=그렇습니닷!!=

“알겠습니다. 신병을 넘겨드리겠습니다.”

취조라고 해봤자 앞으로 할 일과 연관도 없는 차원 방랑자의 이야기만 들을 뿐이다. 아쉬울 건 없기에 순순히 그들에게 섀도어 여자를 인계한다.

=가, 감사합니다…….=

흠칫흠칫 움찔움찔. 환인의 눈치를 보며 가까이 다가와 기절해 널브러진 섀도어 여자의 몸과 구멍을 수색하고 포박한 뒤 꽁꽁 묶는 기병들.

다른 기병은 죽어 추락한 이블 가고일의 사체를 회수하고 또 다른 기병은 아영이 찢어발긴 섀도어족의 의복과 피를 머금은 흙 등을 주머니에 따로 챙긴다.

그렇게 정리를 끝낸 막시아는 후우, 작게 심호흡하고 환인에게 다가가 입을 열었다.

=협… 협조에 감사드립니다. 성제님이 아니셨다면 아마도 이놈의 추격은 높은 확률로 실패했겠지요. 돌아가서 시의회에 보고를 올리면…… 성제님께 포상과 보상이 나갈 텐데 어떻게 조치하면 될까요……?=

“하루 이틀 정도 콜라이도에 머무를 생각입니다. 머무를만한 숙박소가 있다면 알려주시겠습니까?”

=예?! 아, 아닙니다! 도시에 가시면 귀빈들을 맞이하기 위한 저택이 마련되어있으니 그곳에……!=

“제가 콜라이도에 큰 도움을 드리기 위해 방문한 것도 아닌데 콜라이도 시민 여러분들의 혈세가 녹아있는 시설을 영혼사된 입장에서 어찌 함부로 이용할 수 있겠습니까.”

아니 성제 신분이면 충분히 이용하고도 남는데…….

막시아는 안달 난 강아지처럼 끙끙거렸다.

성제의 뜻에 따르자니 돌아가서 기병대장에게 ‘성제가 왔는데 그딴 곳을 안내해?! 정신이 있어 없어!’하고 쪼인트 까일 게 분명하고, 그렇다고 성제의 뜻을 꺾자니 눈만 마주쳐도 오금이 떨려 지릴 것만 같은데 뜻을? 꺾어?

……아니, 생각해보면 차라리 대장한테 정강이 몇 번 까이는 게 속 편할 거 같다. 그리고 대장도 이 상황을 알면 어쩔 수 없다고 알아줄 테지!

=그, 그러시다면 제가 호텔에 안내해드리겠습니다.=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환인이 노른의 등에 올라타자 여자들과 기병들도 각자 탈것에 탑승해 도시를 향해 출발한다.

그 틈에 안느는 환인의 눈빛 신호를 받고 막시아=에로프에게 다가가 특유의 친화력을 발휘, 도시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보를 캐내기 시작했다.

=이블팩션이 그렇게 지능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단 말이야?=

=예. 그 때문에 도시의 방위 체계가 좀 더 체계적이고 견고해지고는 있지만, 아무래도 희생과 피해가 발생하기 마련이라 좋기만 한 일은 아닙니다.=

순식간에 경계심이 해제되어 나불나불 알고 있는 것을 전부 이야기하는 막시아.

=고생이 많네.=

=이블팩션 접경지를 가까이 둔 도시의 숙명 같은 거죠. 그리고 저희가 하지 않으면 누가 하겠습니까.=

=크, 기사의 교감인걸. 그런데 이번 같은 습격이 종종 일어나나 봐? 막 도착했는데 도시에 불길이 치솟고 폭발이 일어나는 걸 보고 깜짝 놀랐어.=

=그게…… 오늘처럼 본격적인 건 저도 처음입니다. 오늘을 기점으로 사태가 급변하는 건 아닐까 우려도 들고요…….=

=확실히 도시 기간 시설이 핀포인트로 습격받으면 위기감이 엄습하겠네……. 시청이면 엄청 중요한 서류나 그런 것도 많을 텐데.=

=그래서 성제님과 안느 경께서 생포하신 저 섀도어족 놈이 사태 전환에 큰 도움이 될 거라 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단 한 번도 이블팩션 고위 종족을 생포한 적이 없었거든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정보를 캐내…… 음.=

=괜찮아. 우리 성제님은 깨어있는 분이니까.=

=그, 그렇습니까?=

=응. 그래서 저놈들이 왜 시청을 공격한 건지 짐작이 가? 영도도 북방의 이블팩션 접경지가 붙어있다 보니 좀, 콜라이도의 일이 남일 같지 않게 느껴져서 알아두고 싶은데.=

=아…… 확실히 영도의 위치도 콜라이도와 흡사하죠. 하지만…….=

막시아는 뒤에서 굉장이 우아한 녹색 쿠에를 타고 따라오는 환인을 힐끔거렸다.

차원 방랑자인 성제. 그리고 그런 성제의 호위인 영혼 기사.

영혼 기사의 앞에서 차원 방랑자가 이번 일의 원흉 같다는 이야기를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막시아는 그저 멋쩍게 웃음만 흘릴 뿐이다.

=저희도 그게 의문입니다.=

“…….”

환인은 귀를 기울여 막시아의 이야기를 듣고 있지만, 딱히 정보가 될만한 것은 없었다.

사막 플뢰족도 플뢰족이라 거짓말 같은 건 못하고, 막시아의 태도에는 딱히 이쪽을 속이겠단 의도도 안 느껴진다.

다만 자신을 의식하는 꼴이 현재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에 차원 방랑자와 관련이 있다는 의혹은 있는듯해 보인다.

그뿐이다. 추가 지시 사항도 없이 말 그대로 섀도어족을 추격하란 명령에 단순히 뛰쳐나오기만 한 기병인지 섀도어족 여자의 소지품에 관심도 내비치지 않고 있다.

환인은 자신이 확보한 광석이 시청에서 나온 것일 수 있단 가설을 유지하며 묵묵히 막시아의 뒤를 따랐다.

=이곳입니다. 여기가 콜라이도에서 가장 크고 좋은 호텔이에요. 이보게, 안에 지배인은 있는가? ……있다고? 그럼 빨리 불러오게. 엄청난 귀인께서 오셨으니까.=

깔끔하고 단정한 아랍 쪽 도시 느낌의 콜라이도를 가로질러 도착한 호텔은 5층 높이에 사막풍으로 모래색 외벽이 특징적인 고급 호텔이었다.

아랍 에미리트에 있다고 해도 순순히 받아들일 것 같은 외형인데다 뒤쪽에는 푸르게 반짝이는 넓은 수영장까지 있다.

그뿐만 아니라 수영장 좌우에는 크고 작은 고급 노포가 있었는데 곳곳에 팜 트리 비슷한 나무가 심어져 산뜻하면서도 뜨거운 남국 도시 느낌이 물씬 난다.

야트막한 담장 너머로 보이는 황야의 풍경이 이러한 호텔 시설과 어우러지니 호화스러운 고급 호텔이란 느낌이 더욱 강조되는 듯하다.

=우와, 이건 관광 도시로 알려진 프라버보다 더 굉장한데…….=

=이런 고급 시설이면 유지비도 만만치 않을 텐데 어떻게 유지하는 거지? 여기까지 관광객이 오는 거야?=

=예. 각국의 귀족과 호족 분들은 이곳에서 공간이동술법진으로 떠나시거나 찾아오시는 중계소니까요. 요 몇 년 이블팩션의 난동 때문에 손님의 숫자가 조금 줄긴 했지만…….=

현 공간이동술법은 단번에 대륙 반대편으로 날아가지 못한다.

안전을 위해서라도 서너 번에 나눠서 이동하는데, 일반인 같은 경우에는 한 번 공간이동을 하면 사나흘 정도는 휴식을 취해야 하기에 그때 귀족들이 이 호텔을 이용한다고.

=주인님, 체크인 끝마쳤어요.=

도시의 제1 기병대 3조장이라는 신분은 환인의 생각 이상이었다.

그녀가 찾아와 지배인을 호출하자마자 미소녀라고밖에 안 보이는 프라우드족 여지배인이 달려 나와 환인 일행을 맞이했던 것.

여지배인과 함께 들어갔던 이실리테가 돌아온 것을 보고 환인은 막시아 에로프와 악수를 나누었다.

“여기까지 안내해주어서 고맙습니다. 이틀 정도 머무르다 떠날 예정이니 그사이 용무가 생기면 호텔에 전언을 남겨주시길.”

=예, 옛!=

돌아선 환인의 귀로 막시아가 여지배인과 작은 목소리로 나누는 대화가 들려온다.

=이봐, 성제님 일행이시라고. 알지? 숙박비는 도시 시의회로 돌려놔….=

=막시아님, 영혼 기사님께서 바로 숙박 대금을 지불하셨어요…….=

=…앗, 아니. 그걸 받으면 어떻게 해……!=

=안 받으면 체크인을 안 하려 하시는데 어떻게 해요……!=

=멍청하긴…! 영혼사 우대 정책이 있지 않나! 어떻게든 둘러댔어야지…!=

=말씀드렸지만……!=

저쪽은 신경 끄고 호화스러운 호텔 로비를 쓱 둘러보는 환인.

잠시 휴식 중인지 라운지 같은 곳에 앉은 귀족, 호족으로 보이는 인물들이 호기심에 환인 일행을 바라보다 그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린다.

어엇?!

와아…!?

밖에서 약간의 소란과 아우성이 들리더니 인간화한 노른이 후드로브를 뒤집어쓰며 도도도 달려와 환인의 허리에 매달렸다.

「환인. 오늘은 여기서 쉬는 거야?」

“그래.”

「와~. 나 여기 구경해도 돼?」

지금까지 들른 시설 중에서 한 손에 꼽을 수 있는 고급 시설이 신기했는지 노른이 호텔 내부를 둘러보며 환인을 조른다.

“노른, 일행이 아닌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는 어떻게 행동해야 한다고 했지?”

「민폐 끼치면 안된다고 했어.」

“그래. 저쪽이 먼저 무례를 저지르지 않는 한 얌전히 구경만 해라. 이모렐, 노른과 함께 있도록.”

=예. 성제님.=

환인은 호기심을 드러내는 노른에게 이모렐을 붙여놓고 여자들과 함께 기계식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 객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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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system: 심각한 귀찮음이 감지되었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 1. 알게 뭐냐. 필요한 정보만 수집하고 떠난다.

[□] 2. 뭔가 좀 신경쓰이는데 조금만 알아볼까?

[□] 3. 호텔도 고급스럽고 피곤하니 적당히 쉬다 떠나자.

[작품 설정]

니오네브레스 특급 관광 호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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