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6 메리아놀로 가는 길
[……아영?]
=응, 엘미 언니 hi~.=
[하이……? 그건 무슨 뜻인가요? 그보다 우리 강아지, 건강한 것을 보니 한결 마음이 놓이네요.]
=그냥 안녕 인사야. 킥킥, 많이 걱정했어?=
[성제님과 그분의 영혼 기사니까 제 걱정은 쓸모없겠지만, 그래도 계속해서 들려오는 소문과 지시가 흉흉한 것들 투성이었잖아요.]
갑자기 나타났다 싶더니 스프라울드의 영주 귀족이 자살당하고 귀족 수십 명이 죽고 추방당했다는 소문이 퍼졌다.
이후 메리아놀 조사대가 성제님과 마주쳐 박살이 난 뒤 삼국 조사대에 사로잡혔다거나, 성제님이 아신에 도달하여 드디어 메리아놀로 진군한다거나…….
그전에는 성제 일행이 메리아놀 특수작전 집단에 습격당하여 4개월간 소식이 끊기었고, 그자들과 벌인 전투의 흔적까지 발견되었다고 하지 않았는가.
성제를 둘러싼 폭풍은 날로 커져만 가고 있다.
현재 라드세아, 히스론드에서는 메리아놀의 비밀결사 문제가 불거지며 칼바람이 휘몰아쳐 고관대작들의 대규모 숙청이 벌어지는 중이고, 벨티칼도 구주의 독니 암살 집단이 내부 혈쟁血爭에 돌입하며 그와 연관된 부족의 족장, 전사장, 술사장들의 목이 무더기로 썰리고 있다.
암살 집단과 얽혔는지 아닌지 진위는 상관없다. 그간의 항쟁, 정쟁으로 원한 관계에 있는 자들이 상대방을 중상모략하여 목을 떨구거나 중상모략했다는 것이 발각되어 같이 목이 달아나는 상황.
라드세아, 히스론드, 벨티칼 삼국을 다 합하여 현재 죽은 귀족, 호족의 숫자만 네자릿수를 돌파하였다. 니오네브레스 역사상 최단 시간에 가장 많은 귀족이 사망한 시대로 기록될 판이다.
이러한 상황에 연락은 지시가 하달될 때를 제외하면 거의 없으니, 엘미느의 유일한 걱정이라면 손녀 같은 아영의 안위뿐이었다.
하얀 늑대들은 이제 완전히 자리 잡아 영도의 정보 수집 단체이자 대성녀님의 좋은 수족으로써 자리매김했다. 머저리 같은 짓만 저지르지 않는다면 가족들의 앞날은 이제 창창대로.
하지만 성제님의 노예로 끌려간 아영은…….
=엘미 언니도 참. 나도 오빠의 여자인걸? 하렘의 일원이란 말이야. 걱정이 과해.=
[하지만…….]
=나, 오빠의 한 그루 수목이 됐으니까. 이러면 걱정이 덜하려나?=
[……!]
성제님을 위해 수목화를 이뤘다고? 하지만 그분의 옆에는 안실라 왕녀가 있는데…….
아니, 강아지의 말대로 과한 걱정이다. 엘미느는 보던 서류를 내려놓고 마음을 정리하며 작게 미소 지었다.
[알았어요. 그래서, 성제님의 작은 나무가 이 시간에 어쩐 일로 연락을 다 했나요? 주위를 보면 홀로 떨어져나와 있는 듯한데요.]
=며칠 전에 보냈던 지령 말이야. 어디까지 진행됐어?=
며칠 전의 지령. 구주의 독니를 지켜보다 내부 혈쟁이 끝나면 생존한 양쪽 모두 처분하라는 지시를 떠올린 엘미느의 표정이 삽시간에 정보단체 수장의 그것으로 바뀐다.
감정을 배제한 기계 같은 냉혹한 눈빛으로 특급 송곳니 하나와 현지 파견 둘을 붙여 현재 헤뷜트로 파견했으며, 그러한 인선을 채택한 이유와 예측 소요 시간, 구주와 조언자의 행동 원리 등을 분석하여 어떠한 식으로 일이 진행될지를 보고 형식으로 짧게 언급하는 엘미느.
잠시 머릿속으로 현재 상황을 재차 검산해본 아영은 엘미느에게 추가 지시 사항을 하달했다.
=정교 기관 수석 교위 적굉의 부족 가문에 대한 윤리 검증이 필요해.=
[……지정은?]
=카락스 기관윤리 선정 기준으로 B- 일 경우 정화. C-이하일경우 말살.=
정화와 말살抹殺. 정화는 가문의 권력을 잡은 핵심 인사에 대한 암살, 말살은 단어 그대로 가문 자체를 아직 어린아이를 제외한 전부 지워버리는 지령이다.
[성제님의 뜻은 아닌듯한데. 이유는?]
어제, 라펩에 있었던 일을 간략히 추려 전해주자 엘미느의 단아한 이목구비에 짧은 경련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 사람들은 미친 건가요? 천통언도 아닌 신언을 직접 듣고도…….]
=아무튼…… 오빠는 윤리 사상이 중립이야. 이 때문에 정말 가는 곳에서마다 말썽에 휘말려.=
만약 오빠의 힘이나 지력 둘 중 하나만이라도 기준 이하였다면 폭주한 오빠에 의해 니오네브레스 문명이 파괴당했거나 오빠가 살해당했을 것이다.
차라리 권력이나 무력을 대놓고 휘두르면 강자생존 정신이 투철한 니오네브레스 문화 특성상, 권력자들은 오빠 앞에서 넙죽 엎드려 기었을 텐데 오빠는 권력 따위 애초에 생각하질 않으니…….
이 때문에 중간중간 불온의 씨앗을 남기는 경우가 있었다.
이번도 마찬가지다. 만엽과 청 최고 전사 둘에게 헤뷜트 상층부의 문제를 맡겼다 해도 적굉의 부족 그 자체가 문제를 일으킬 여지가 크다.
오빠야 이제 능력이 되니까 나중에 적굉 가문의 문제가 불거지더라도 밟아버리면 그만이라 생각하겠지만.
=불거지기 전에 짓밟아 없애버리는 게 편하잖아.=
[성제님의 지력은 범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으니까요. 그런 싹은 불안으로 여기지도 않아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아무튼, 지령 접수했어요. 적굉의 부족…… 야한 이네요. 구주의 독니 건과 함께 빠르게 진행하도록 할게요.]
=응. 이후는 보고 절차에 따라줘. 통신 종료할게.=
[통신 종료.]
뚝—
짧은 통신을 끝마치고 후유, 작게 한숨을 내쉰 아영은 수정구를 챙기면서 으음, 침음성을 흘렸다.
나중에 오빠가 알면 내가 멋대로 움직였다고 화내시려나……? 오빠한테 미움받을 각오 하고 움직이는 거긴 하지만, 그래도 오빠가 실망하면 마음이 아플 거 같은데.
한 번 상상 해봤더니 실제로 마음이 바늘에 콕콕 찔리는 것처럼 아프다.
‘오빠한테는 최대한 비밀로 해야겠다.’
비밀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에 살짝 시무룩해져서 몸을 돌렸던 아영은 코앞에 환연이 있는 걸 보고 화들짝 놀라 후다닥 물러선다.
=어! 너, 너 거기서 뭐해?=
「하얀 늑대들한테 암살 지령 내린 거지?」
비밀은 무슨. 1분도 지나지 않아 들키게 생겼다. 의미심장한 환연의 표정에 아영은 다급한 표정을 지으며 팔을 허우적거렸다.
=오, 오빠한테는 비밀로 해줘! 그리고 무작정 죽이라곤 하지 않았으니까! 검토해보고 행적이 나쁜 놈들이라면 암살하라고 한 거니까……!=
「뭐라 하는 거 아니니까 진정해.」
=……응?=
「안느나 백려강이라면 모르겠지만 나는 네 행동에 찬성이야. 틀림없이 말이 나올 후환을 일부러 남겨놓을 이유가 없잖아?」
예상외로 우호적인 반응에 아영은 잠깐 눈을 끔뻑였다. 진짠가? 하지만 환연의 절반은 정령인데? 정령이 나쁜 짓은…….
아영이 의심 반, 의아함 반인 얼굴로 어정거리자 환연도 자신이 했던 일을 들려주었다.
흐라스린드에서 중국인 차원 방랑자를 만났던 일, 살려주었지만 환인을 향해 저주를 퍼부으며 원독을 곱씹던 여자를 그 몰래 생매장해버렸던 것.
=…….=
「환인은 가끔 보면 견실하지 못할 때가 있어. 생각할 거리가 많으니까 어쩔 수 없긴 한데…….」
=……맞아. 솔직히 구주하고 조언자를 그때 살려서 보낸 것도 난 이해가 잘 안됐어. 그냥 그때 죽인 뒤에 하얀 늑대를 동원해서 핵심 령주만 암살했어도 구주의 독니는 세력이 급격히 줄었을 텐데 말이야.=
뭐, 영혼사시니까 전면적으로 굽히고 들어오는 것들을 비록 암살자에 악당이라 해도 죽이지 않는 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잣대의 가장 큰 수혜자가 바로 자신이니까.
그래서 오빠가 안 하시는 거, 못하시는 걸 자신이 대신해 이렇게 뒤에서 움직이려 한 거였는데 설마 환연도 자신과 같은 생각이었다니.
왠지 든든한 동료가 생긴 기분이다.
「앞으로 환인의 발목을 잡거나 발을 걸 거 같은 놈들은…….」
=응. 싹 다 조사하고 기록해서 조금 일찍 신님의 정원으로 올려보내 주자.=
아영은 환연과 뜻이 통하는 시선을 나누다 서로 손을 내밀어 잡았다.
그 후 환연과 잠깐 이야기를 나누고 환인이 있는 곳으로 돌아간 아영은 뜻밖의 상황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언니들에게 포위당해 당황한 기색을 드러내고 있는 오빠의 귀여운 모습.
=벨. 무슨 일이야?=
=응? 아…… 그게, 이야기 도중에 오빠 정액에서 석청처럼 달콤한 맛이 났다고 말했었는데 그 때문에…….=
그녀의 이야기에 여자들이 지대한 관심을 드러내며 환인에게 무언의 부탁을 강요 중이라는 이야기였다.
아영도 눈을 크게 뜨고 되묻는다.
=단맛이 났다니? 오빠 정액에서? 진짜루?=
=응. 바로 어제 일이었는걸.=
착각할 수도 없고 착각할 일도 아니라는 이야기에 아영은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되물었다.
=미인계를 쓰는 언니들이나 정액 중독에 걸린 언니한테도 정액에서 단맛이 난다는 이야기는 못 들었는데…….=
=언니들도 그래서 확인해보자고 하시더니 저러고 계셔…….=
「그거 맞아. 어쩐지 어제 환인한테 박힌 뒤에 입 안에서 단내가 느껴진다 했더니. 그래서였구나.」
=…….=
환연의 체험담까지 나왔다. 그렇다면……!
아영도 눈을 반짝 빛내며 망설이지 않고 언니들의 사이에 끼어들었다.
마지막으로 오빠한테 안겼던 게 족히 일주일 전이다. 이번에도 점잔 뺐다간 오빠의 육체가 다 자라는 7~8일 뒤까지 참아야 할지도 모르는데 그건 안돼.
라펩을 나온 뒤 환인은 일체의 사비족 마을에 들르지 않고 곧장 메리아놀을 향해 이동했다.
마을이나 도시에 들러봤자 인종 차별 때문에 귀찮고 짜증 나는 일만 겪을 텐데, 그럴 바에는 차라리 어떤 마을에도 들르지 않고 곧장 메리아놀의 권역으로 넘어가자는 이야기가 나온 것.
지도는 스프라울드에서 디전=펠드릭스가 넘겨주었던 전 영주의 비자금 및 보물 주머니에 니오네브레스 전역 지도가 들어있어 길을 찾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영도나 하얀 늑대들을 통해 대륙 전도를 확보할 수 있으니 사소하다면 사소한 문제.
여행 경험과 지식이 많은 안느와 유르파가 세계 지도를 내려놓고 살펴본다.
=음~. 소소하게 마을이나 도시 부분이 조금 다른데 대체로 지형 같은 건 맞아.=
“그런가. 여기가 메리아놀의 주도 패시지라고…….”
환인의 시선이 닿는 곳은 초승달처럼 완만하게 휘어진 커다란 섬과 수많은 작은 섬으로 이루어진 군도 국가, 메리아놀이었다.
그리고 그런 메리아놀의 수도 패시지.
패시지의 주변은 가뜩이나 거대한 호수와 바다가 인접한 해양 도시였는데 이런 곳이니까 아드네빌라가 수개월째 비를 뿌리는 게 가능한 거였단 생각이 절로 드는 지형이었다.
“…….”
아드네빌라가 어디쯤 있을지 감도 안 잡히는데. 일단 북쪽이나 서쪽 호수에는 없을 것 같고, 있다면 바다 쪽인가.
환인이 지도를 살펴보는 사이, 아영은 하얀 늑대들의 엘미느에게 보고를 받고 있었다.
[적굉의 부족 가문인 야한은 몇이나 되는 주술사제를 배출한 명문 부족이었어요. 그리고 보편적으로 발언력과 권력이 쌓일수록 인간은 썩어가기 마련이죠.]
=몇 급으로 나왔었어?=
[E+급이었어요. 동족 식인 풍습까지 있던데 아기 생산 공장까지 만들어놓았었어요.]
=말살 등급이네. 진척은?=
[구주의 독니 여섯 번째 령주가 그곳의 족장과 관계가 있어 구주의 독니 내분을 이용해 쓸어버렸어요. 생존자는 0명이에요.]
=후환 없이 뒷정리 끝마쳤어?=
[네. 구주의 독니가 뿌린 사골산에 역병독으로 향후 100년은 풀 한 포기 자라지 않을 거예요.]
믿음직스러운 대답에 아영은 생긋 웃으며 고생했다고 언니를 치하했다.
구주의 독니 내분도 거의 다 끝나가고 있다. 여덟 령주 중 생존한 령주는 고작 셋. 정황을 본다면 며칠 안으로 구주와 조언자가 남은 령주와 충돌하겠지.
충돌한 뒤에는 어느 쪽이 살아남든 승자 집단 또한 지워질 것이고, 구골동은 폐쇄되어 구주의 독니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될 것이다.
‘만엽과 청도 대족장을 설득하는 데 성공해 최고 전사 및 상급 전사 내부 개혁에 들어갔고…….’
벨티칼이 내부의 머저리들로 인해 바깥에 신경 쓸 겨를이 없는 것처럼, 라드세아와 히스론드도 숙청의 바람이 너무 강해 일부에서 무장봉기가 일어날 조짐이 있어 삼국 연합 조사대는 거의 힘을 잃은 상황이었다.
교대하듯 두각을 드러낸 것이 짐승, 바다, 땅, 하늘의 사대 신 교단 연합.
이들은 국가적인 이득 따윈 도외시하고 메리아놀의 비밀결사인 결명자 집단을 찾아내는 데 주력하고 있어 메리아놀도 그들의 이해못할 집단 행동을 견제하느라 이쪽에 신경을 못 쓰는 상태다.
오빠의 의도대로 세계가 발칵……까진 아니지만 오히려 지도층에서는 발칵보다 더 심각할 만큼 뒤집힌 상황.
시민 계급의 여론도 ‘메리아놀 죽일 놈들’로 기울어져 있어 오빠의 활동에 방해가 될 요소는 최대한 가라앉아있으니 상황은 더할 나위 없다.
=흐흥~.=
통신을 끝마치고 오빠한테 보고하기 위해 돌아가던 아영은 언니들이 모여 속닥속닥 이야기를 나누는 걸 보고 끼어들었다.
=라펩을 나온 지 오늘로 6일째니까…… 도령 신체 나이가 14살인가?=
=13살~14살 사이일걸. 5살은 반로환동하신 뒤에 키를 보고 주인님이 대강 내놓으신 나이니까.=
=인족 13~14살 평균 키는 오빠 노트북에서 155cm 정도라고 봤는데요. 근데 지금 오빠 키는 170넘지 않았어요?=
「172cm야. 그리고 그건 말 그대로 평균이잖아. 작은 애는 평균보다 훨씬 작을 테고 큰 애는 평균보다 훨씬 클 테고.」
라펩을 나온 뒤 매일 포영과를 먹은 덕분에 벨티칼의 무덥고 후덥지근한 밀림 지역을 벗어났을 때, 환인은 거의 성인에 가까울 정도로 자라나 있었다.
현재 그의 키는 172cm, 반로환동하기 전에 비해 13cm 작은 정도.
작다지만 성인 표준 체형이었기에 그때까지 입지 못하고 있던 천릉과 그리모암의 강력을 다시 착용했고 광명창 또한 다루기 시작해 이전의 전투력을 거의 되찾은 상태였다.
=키는 큰데 얼굴은 아직 앳된 티가 남아서 완전 미소년……. 진짜 제 취향이에요. 쭉 지금 모습으로 남아 있어 줬으면할 정도…… 으헤헤♡=
푼수처럼 헤실헤실 웃는 아영의 이야기에 다른 여자들도 크고 작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공감했다.
안느의 취향은 남성적인 매력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남자다.
그러니까 반로환동 전의 환인이 스트라이크 존인데 지금도 제법 괜찮다고 생각하는 중이고, 유르파도 생각이 짧은 어린애보다 생각이 깊은 성숙한 성인남자가 좋았기에 외모도 그에 따라가 약간 중년틱이 취향이었지만…….
“음…….”
살짝 미간을 찡그린 채 지도를 내려다보는 환인의 옆모습을 보면 뒤늦게 아이돌에 입덕한 아줌마처럼 심장이 콩닥콩닥 뛴다.
=오라버니는 포영과를 더 드실 생각이 없으신 거 같았어….=
=어? 정말? 어떻게 알았어?=
백려강의 이야기에 아영이 급격한 관심을 드러내자 백려강은 그의 옆모습을 훔쳐보며 어제 우연히 들은 혼잣말을 해주었다.
=창술 훈련은 오랜만이라고 하시면서, 기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나이대니까 이쯤에 포영과 복용은 멈추는 게 좋지 않을까 하시는 걸 들었거든.=
=확실히 무술 실력은 청소년기에 들어서면서 부쩍 늘어나는 편이니…….=
=맞아. 교단 투사나 전사들도 저 나이때부터 무술 훈련을 시작하니까.=
이번에는 여자들의 시선이 전부 그에게 향했다.
지난 일주일 동안 하루에 두 번씩 신언을 쓰고 있는 그다.
처음에는 서너 글자의 1~2 마디가 한계로 보였는데 날이 갈수록 말하는 단어, 어절이 많아지더니 오늘 아침에는 평범한 문장을 말하고도 멀쩡했다.
이게 뜻하는 건 그의 육체가 신언을 자유롭게 다룰 수 있을 정도로 그릇이 거의 다 완성되었다는 것.
그걸 증명하듯 어두운 곳에서 그를 보면 아우라와는 다른 희미한 후광이 보인다.
여자들은 으음~ 고민하다가 우르르 그에게 몰려갔다. 이렇게 모여서 숙덕거리기보단 차라리 그에게 직접 물어보는 게 낫겠다 싶었던 것이다.
묻기 부담도 없는 게 백려강이 어제 혼잣말을 들은 대로라면 그도 포영과 섭취 중단을 염두에 두고 있단 이야기니, 지금 던질 질문이 엉뚱한 오해를 살 일도 없다는 게 되니까.
=도령. 이제 포영과 더 안 먹을 거야?=
“음?”
=어제 우연히 혼잣말 하는 거 들었거든. 아직 13살? 14살? 그 정도인데 멈출 건가 싶어서.=
혹시 우연히 엿듣게 된 백려강이 곤란해질까 자기가 들은 것처럼 질문을 던지는 안느에게 환인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제 멈출 생각이다.”
=와, 진짜요?!=
티 나게 좋아하는 아영을 잠시 멀뚱거리며 쳐다본 환인은 여자친구들을 눈에 담으며 다 눈치챘다는 것처럼 피식 웃었다.
“왜 좋아하는지 대충 이해가 가지만, 그런 이유가 아니다.”
속내를 들켜 얼굴이 빨개진 아영의 모습에 킥킥 웃던 안느가 물어본다.
=그럼 왜? 도령이 말했던 나이는 두어 번 더 먹어야 하는 거 아냐?=
“그래. 하지만 예상보다 신체가 신언에 적응하는 게 빠르다.”
「그게 문제가 돼?」
펼쳐놓은 간이 테이블의 지도 위에 내려선 환연의 질문에 환인은 맑고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며 대답했다.
“아신의 능력을 짐작해볼 만한 수단은 현재로서는 신언 뿐이다. 그 점을 추정해 신언이 완벽해지면 몸이 온전한 아신체가 되겠지. 내 영혼은 이미 아신의 격에 도달하였다고 했으니 그때가 되면 완전한 아신의 위치에 오르게 될 텐데 왠지…… 그때가 되면 자애신이 접촉해올 것 같단 생각이 들어서다.”
그리되면 자신은 진정한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될 것이다.
“신의 뜻에 따라 오르빈치와 천원을 잇는 통로를 관리하게 되던가, 아니면 신의 뜻을 거슬러 강제 추방되던가, 그것도 아니면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평범하게 살아가던가.”
=…….=
=…….=
“드라우닐은 내게 나의 뜻을 직접 신에게 말하라고 했었지. 하지만 돌아오고 벌써 3주를 넘어 한 달이 다 되어가는 중이지만 신의 의지는 오지 않고 있어.”
이게 뜻하는 바는 명확하다.
=그게…… 자기가 진정한 아신이 되는 순간 그분께서 뜻을 비치실 거라는 이야기네.=
“예. 그래서 신언을 어느 정도 자유자재로 쓸 수 있게 된 지금 포영과 섭취를 중단하려고 한 겁니다. 몸도 예상 밖으로 훌쩍 자랐으니까요.”
이전보다 13cm 정도 작다지만, 이실리테와 비슷한 키라는 점만 빼면 그리 체감은 나지 않는다.
즉, 온전한 아신까지 앞으로 약 1~2년.
“그때까지 메리아놀을 정리하고 심핵력을 확보해 지구로 귀환할 겁니다.”
환인은 용의 꼬리가 되느니 차라리 뱀의 머리로 남길 선택할 사람이다. 더군다나 아신이 된다면 평범한 인사들은 오지도 못하는 오르빈치에서 살아가게 될지도 모른다.
그럼 여자친구들과 헤어져야 한다는 이야긴데…….
가뜩이나 니오네브레스의 인식이 안 좋은데 여자친구들과 떨어져 이 세계에 영원히 남게 될지도 모르는 길 따위, 선택할 리가 없는 것.
여자들은 생각지도 못했던 이유에 잡생각이 깡그리 날아갔다.
=그, 그러고 보니 아신이 지상에 남아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어. 율이 언니나 너희들은 들어본 적 있어?=
=아니……. 아신에 관한 이야기는 나도 자기랑 같이 다니며 알게 되었을 정도니까…….=
=오빠가 아신이 되어서 신님의 부름을 받게 되면, 그럼 헤어져야 한다는…… 이야기에요?=
그와 헤어져야 할 수도 있다니, 그런 건…….
환인은 여자친구들의 동요를 보며 짝, 손뼉을 쳤다.
『정신 차려라.』
=……!=
=……!=
“너희를 두고 나 혼자 어디론가 갈 일은 없다. 그리고 만에 하나 그런 일이 벌어질 것을 염려해 너희들에게 신언으로 신력을 뿌리고 있는 거니까.”
=아…….=
여자들은 그의 위로에 애써 정신을 차렸다.
그는 어마어마한 자질로 순식간에 아신위에 도달하였지만, 자신들은 어떨지 모른다. 그도 그럴게 현재 교단의 교황과 추기경들 중 누구도 아신에 도달하지 못했지 않은가.
교황도 도달하지 못한 경지에 아무리 환인의 조력이 있다 해도 자신들이 도달할 수 있을지는…….
하지만 자신들을 두고 어디론가 가버리지 않는다는 그의 약속이 있다.
이런 일에 허튼 말을 하지 않는 그의 성격이라면.
그제야 정신을 차린 여자친구들의 모습에 환인은 피식 웃으며 지도를 접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시 출발하지.”
이제 밀림을 빠져나와 초원이 펼쳐졌으니 속도를 좀 더 올릴 수 있을 거다.
메리아놀의 권역은 밀림에서 빠져나온 거대한 강의 너머라 하니 하루라도 빨리 메리아놀로 넘어갈 수 있도록 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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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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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설정]
니오네브레스 세계지도
4년에 걸친 이동 경로!
마지막 목적지 위치
주도 패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