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궁기담-726화 (726/813)

726 소도시 라펩

=도령 우리 왔어~.=

=다녀왔습니다!=

=다녀오셨어요?=

=으아~ 더워. 여긴 왜 이렇게 더운지 몰라. 벨, 바람으로 땀 좀 식혀줘~.=

=네에. 그리고 여기 시원한 물이에요. 아영, 너도 받아.=

=감사.=

조사대인지 산책 나온 기사들인지 알 수 없는 플뢰들의 복귀 이후, 환인 일행은 빠르게 이동해 소도시 라펩에 들어섰다.

도시에 들어가는 것 자체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라펩도 헤뷜트와 마찬가지로 성벽 같은 것이 아예 없었고, 출입에 딱히 제약이 있다거나 통행자들의 신분 확인 같은 제도적 절차가 아예 없었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그 이후에 발생했다.

첫 번째로 사비족의 침식 문화.

사비족의 특징을 꼽자면 양서류와 파충류의 중간 즈음으로 분류할 수 있단 점이다.

약간의 항온 기능이 있지만 본질에서는 변온 동물이며, 고온 다습한 환경에 적합한 신체로 진화하였기에 물과 친숙하다.

그런 그들의 신체에 최적화된 숙소는 한증막처럼 높은 습도를 유지하는 장소. 도시에 존재하는 고급 숙박 시설은 전부 습식 형태를 띠고 있다.

이 때문에 환인 일행은 일부러 도시 외곽의 다소 허름한 주택 하나를 빌려 지하 습식 침소는 사용하지 않고 지상층만 쓰는 것으로 해결을 보았다.

여기에 사소한 문제가 더 있었으니, 사비족의 건축 문화는 3층 이상의 고층 건물이 극히 드물다는 게 있다.

생활상의 이유가 큰데 여하튼 서민의 집은 지상 1층에 지하 1층, 다소 재산에 여유가 있는 중산층은 지상 1층에 지하 2층을 쓰며 돈이 많은 자들은 지하 3층까지 내려가기도 하며 지상도 2층으로 올리기도 한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지상층에는 녹슬거나 곰팡이가 슬면 안 되는 물건을 보관하는 일종의 창고 역할로 쓰고 실 생활은 축축하고 따스한 지하에서 한다는 것.

이 때문에 환인 일행은 웃돈을 줘서 타 도시로 치자면 단층 주택에 2층 창고 건물이 붙은 셈인 2층 주택을 빌리게 되었다.

침寢은 그렇게 해결을 보았다고 해도 식食 문화가 그들의 발목을 또 잡는다.

사비족은 그 신체적 특징 탓에 뜨거운 음식은 잘 먹지 못한다. 대부분 쥐같이 작은 동물을 키워 생식하며 곤충을 생으로 먹기도 한다.

요리를 하더라도 찌거나 삶은 뒤 식혀 먹는 단순한 방식만 쓰기에 조미료를 구하는 것도 어렵다.

생식에는 과일도 포함되기에 라펩의 외곽에는 논밭과 과수원이 제법 있었고, 사비족의 도시 특성상 생산되는 과실과 채소의 품질 또한 매우 뛰어났지만 환인 일행은 손에 넣을 수 없었다.

이유는 좀 더 심각한 두 번째 문제로, 사비족의 타종족 배척 성향이다.

환인 일행의 정체가 라펩에 들어섰을 때 피트 기관이 발달한 도시 병사에게 밝혀졌기에 절대다수가 일행에게 먹을 것을 팔려 하지 않은 것이다.

파는 것도 이실리테의 눈에는 음식 쓰레기나 다름없는 품질의 물건들이었고 말이다.

아무튼, 다른 종족이 사비족을 먼저 배척하기 시작해서 사비족도 상호 확증으로 배척하기 시작하였는지 아니면 사비족이 먼저 타종족을 얕보고 깔봐서 지금과 같은 관계가 되었는지 환인은 모른다. 알고 싶지도 않고.

여자친구들의 복귀 소리에 2층에서 내려온 환인은 석조 의자에 앉아 백려강이 불어주는 바람을 맞으며 땀을 식히는 안느에게 물었다.

“성과는 있었나.”

=없어~~. 우리 소문이 도시에 완전히 쫙 퍼져서 아무도 협조를 안 해줘.=

=우리 때문인지 다른 후드 로브 쓴 사비족도 도시 안에서는 후드를 벗고 다녀요. 가는 곳마다 눈치를 주더라고요. 후드 벗으라고.=

=어떤 가게는 우리한테 가게 들어오지 말라고 막 쌀도 던지더라니까?=

=아아……. 언니랑 아영은 괜찮으세요?=

생쌀에 맞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백려강이 당황해서 둘을 살핀다.

=7급한테 진짜 시비 걸려고 아프게 던지겠어? 기분 나쁘다고 뿌리는 거지. 그것도 엄~청 용감한 거지만.=

=안느 언니님도 참. 그런 놈들은 용감한 게 아니라 교활하고 약삭빠른 거죠. 자길 죽이면 도시 전체를 적으로 돌리니까 손 못 댈 거라는 계산에 저지르는 거라고요.=

자신이나 여자친구를 향한 적의는 칼같이 반응하지만, 종족 차별 같은 범주가 약간 다른 문제에 관해서는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넘어가는 환인에게 사비족의 차별 따윈 별것 아니다.

그가 신경 쓰는 것은 배척 성향 때문에 라펩에 도착한 지 이틀이 넘었는데도 나이를 품은 열매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는 데 애를 먹고 있다는 것이다.

나이를 품은 열매가 라펩의 지하 미궁에서 산출된다는 건 지하율에게 들었다. 지하 미궁의 위치도 환연의 정령 탐색으로 도착한 그 날 찾아냈다.

하지만 미궁 수문장은 자신들을 이방인, 이종족이라며 대놓고 차별해 입장조차 시켜주지 않았다.

애초에 라펩의 미궁은 도시의 주인인 부족장의 것이기에 아무나 들어가지 못하지만 어쨌든.

차선책으로 시장 탐문을 통해 나이를 품은 열매를 사들이려 했지만, 위의 차별 배척 성향 탓에 누구도 환인 일행을 상대해주지 않았다.

이 부분에서 환인은 심기가 좀 상했지만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라.’는 부모님의 가르침에 따라 하는 수 없이 도시의 지배자인 부족 가문을 방문하여 사정을 설명하려 했으나…….

=꺼져라! 더럽고 불결한 민둥 피부가 감히 어디에 발을 내딛으려는 거냐!!=

도시 순찰 병사들에게 이런 소리를 들으며 쫓겨나 상위 계층 거리에 들어갈 수조차 없었다.

성제의 신분을 드러내봤자 도움도 되지 않고 고등급 직업자라는 역량도 종족 차별의 벽을 넘을 수는 없는 상황.

이 때문에 안느와 아영, 이실리테와 유르파가 짝을 맺어 돌아다니며 어떻게든 열매에 관한 정보를 수집 중이지만 오늘까지 성과는 없었다.

=도령은 어떻게 됐어? 샤스라 님이 도와주실 수 있으시대?=

“아니. 샤스라 영성의 고향은 벨티칼 남동부의 삼림쪽인데다 지금 주요 이슈가 되고 있는 용린족의 당사자여서, 고향의 인맥도 활용하기 어려운 상태라 하시더군.”

애초에 사비족은 영혼사보다 주술사제를 더 높게 친다. 그러한 마당에 샤스라는 용린족 이슈의 장본인.

더욱이 그녀가 이끄는 부족은 영도 인근에 다 모여있어 고향에서의 발언력이 대폭 낮아져 있다고.

이야기를 들은 아영이 보랏빛의 머리카락 끝을 매만지며 미간을 살짝 든다.

=끄응. 그럼 어쩌죠? 남은 수단은 바다신님의 교단뿐이잖아요.=

“음…….”

땅신, 바다신, 하늘신, 짐승신의 네 교단이 힘을 합쳐 메리아놀의 부정을 파헤치려 압박하려 하고 있다는 소문이 퍼지고 있다.

환인에게 낚여 자애신의 시련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밀약한 상태인 거다.

이러한 상황에서 특정 교단을 찾아가 편의를 부탁하면 세력 구도의 밸런스가 무너져 메리아놀 압박의 현 시국에 불균형을 가져올 수 있다.

‘뭐? 메리아놀을 압박하지 않아도 성제한테 빚을 씌워 요구 조건을 들이밀 수 있다고?’

‘나라를 하나 압박하는 것보다 그쪽이 더 간단하잖아?’

“……현재 니오네브레스가 차원 방랑자와 메리아놀의 숨겨진 비밀 결사 집단 문제로 발칵 뒤집혔다고는 하지만, 불길이 아직 강하게 타오르지 않고 있다. 시국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행동은 가급적 자제하고 싶어.”

최소한 나이를 품은 열매를 확보해 고등학생 정도의 신체 능력을 확보한 다음 아드네빌라의 일을 해결하기 전까지는 이 상황을 유지하고 싶은 게 그의 바람이다.

여자들은 그가 말하는 기준에 황당함을 금할 수 없었다.

아니, 지금도 충분히 불타고 있지 않나? 도시에 나가보면 다른 종족에게 배타적인 사비족 마저도 메리아놀이 저지른 부정과 악행을 떠들고 있을 정도인데 이게 덜 타는 중이라고……?

어느 정도로 타올라야 그가 만족하는 그림이 그려질지 여자들은 전혀 짐작되지 않는다.

설마 메리아놀을 재만 남을 정도로 태워야 만족하려나?

약간 당황한 안느가 주제를 돌린다.

=어, 음. 그보다 환연은? 안 보이는 거 같은데 어디 갔어?=

이모렐은 주방 겸 식당 겸 거실 역할을 곳의 구석 의자에 얌전히 앉아있다. 노른은 쿠에들과 시원한 석조 축사에 늘어져 낮잠자는 걸 봤는데 환연의 기척은 2층에서도 느껴지지 않는다.

안느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환인이 얼굴을 조금 찡그리고 백려강이 아하하, 난감한 것처럼 웃는 모습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릴라이스 님은 집안에만 있는 건 싫다고 놀러 나가셨어요.=

=엥? 환연이 아니고 릴라이스가? 그래도 괜찮아……?=

도령이 왜 저런 표정을 지었는지 알겠다.

애새끼 같은 성격의 릴라이스가 도시로 나갔다는 이야기에 안느가 걱정을 드러내자 백려강이 작게 쓴웃음을 지었다.

=자그마한 요정 크기로 나가셨으니까……. 환연도 사고 칠 것 같으면 전환하겠다고 했으니 큰일은 벌어지지 않을 거예요. 아마…….=

=사고 치는 것도 걱정되지만 영양가 없는 문제에 휘말리는 게 아닌가 싶어서 걱정되는데.=

“환연과 합체하며 힘이 조금 깎였다지만 그래도 최상급은 넘는 힘을 지녔다. 라펩에도 수로가 거미줄처럼 깔려있으니 그녀의 영역이라 해도 무방하겠지.”

자박자박, 자갈로 포장해놓은 주방을 가로질러 이모렐의 살집 가득한 허벅지에 올라가 앉은 환인은 그녀의 폭신한 젖가슴골에 뒤통수를 기대며 말했다.

“아무튼, 계속 이렇게 시간을 허비할 수도 없는 일이니 이실리테와 유르파가 돌아오면 그녀들의 이야기를 듣고 최종 결정을 내리도록 하지.”

그가 저렇게 말한다면 이미 선택지는 나와 있고 결정만 내리면 끝이란 이야긴데.

여자들은 그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궁금해하며 무더운 바깥과 달리 적당히 서늘한 게 기분 좋은 실내에서 땀을 식혀나갔다.

몇 시간 뒤.

작열하는 태양이 어느 정도 기세가 꺾였을 때 돌아온 이실리테와 유르파는 나름대로 약간의 성과를 가지고 왔다.

사람들의 적의와 더위에 지친 안느 팀과 달리 쌩쌩한 모습으로 자리에 앉은 유르파가 말했다.

=오늘은 자기 조언대로 사비족의 환영을 걸고 도시 외곽을 돌아다니면서 수소문해봤거든? 그랬더니 조금이지만 정보를 얻을 수 있었어.=

“지하 습식 침소의 냄새를 몸과 옷에 묻혀간 보람이 있었나 보군요.”

=응응.=

아침에 출발하기 전, 유르파와 이실리테는 환인의 조언에 따라 홀랑 벗고 지하 습식 침소에 수증기를 가득 채운 뒤 그곳에서 한참을 뒹굴었다.

온몸에 한증막의 냄새가 배도록 말이다.

물론 옷에도 사비족이 좋아하는 약초 향을 끼얹었고 거기서 더해 유르파의 비술로 체온을 낮춰 땀의 발생을 최대한으로 억눌렀으며 사비족의 환영을 뒤집어쓰기까지.

그 때문에 출발이 늦어져 오후가 한참 지나서야 돌아왔지만, 거기에 쏟은 노력은 유의미해 나름대로 결과를 낼 수 있었다.

이야기를 들은 안느가 ‘그런 방법이!’하고 감탄한다.

=그러면 그 방법을 써서 도시 안에서도 탐문할 수 있는 거 아냐?=

=언니님, 그건 불가능해요. 고급 시설에는 대부분 위상력 탐지기가 설치되어있는데 환영 같은 걸 걸고 있다 들통나기라도 하면 단박에 범죄시도 모의가 있다고 해서 체포당할 테니까요.=

=……!=

아영의 이야기야 이실리테가 ‘그랬나요?’ 하고 놀란 눈으로 유르파를 돌아본다. 그 표정에 유르파가 쿡쿡 웃었다.

=맞아. 위상력 탐지기가 설치되어있을 것 같은 곳은 피하느라 일부러 멀리 돌아가고 그랬는데, 이슬이 아가씨는 눈치 못 챘었어?=

=저는 유리 언니의 호위 역할이라고 생각해서 거기에만 집중했거든요. 동선이 복잡하다는 건 알았지만 뭔가 생각이 있으시겠구나 했어요.=

그녀를 유르파에게 붙여놓은 것도 그런 의도였기에 환인은 조금 창피해하는 이실리테의 어깨를 자상하게 다독여주었다.

=아무튼. 나이를 품은 열매를 구할 방법이 없는지 수소문해봤는데 아무래도 어려울 거 같아. 미궁에서 나오는 건 부산물이든 산출물이든 일단 라펩 부족 가문으로 전부 들어갔다가 한 차례 검열을 한 다음 시중에 풀려나온다더라구.=

=사비족의 도시는 상위 중심 부족의 소유고 시민들은 그저 얹혀살 뿐이라고 하더니, 정말이었나 봐요…….=

라펩의 생김새는 남아메리카 밀림 오지의 옛 고대 국가 도시 같은 분위기였다.

시장도 물물 교환과 화폐 거래를 동시에 하고 있었으며 생활은 수렵과 목축, 농업을 섞어서 하는 느낌으로 인구수만 많다뿐이지 라드세아나 히스론드의 마을과 별반 차이가 없는 느낌.

=응응. 특히 나이를 품은 열매는 라펩 부족이 직접 관리한다던 걸.=

=잘못 먹으면 나이를 잔뜩 먹고 훅 가버릴 수 있으니까…….=

“그런 것보다 악의적으로 도용하는 쪽이겠지. 독약처럼 조금씩 먹여 일찍 늙게 만든다거나.”

한 번 늙어버리면 그게 저주나 술법적인 요소로 벌어진 일이 아닌 한, 되돌릴 방법은 극히 제한적이다.

그리고 나이를 품은 열매는 이름대로 그 어떤 신비적 요소 없이 신체의 나이를 먹게 만드는 것.

“보통은 독약, 극약으로 여길 테고 그렇게 위험한 물건이라면 라펩 부족이 직접 관리하는 게 당연한 일이지.”

=아아. 그러고 보니 카락스에서 활동할 때 부자연스럽게 노화하거나 아직 죽을 사람이 아닌데 늙어 죽었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었어요. 그게 그 열매 때문이었겠구나.=

확실히 그렇겠네, 하고 중얼거린 유르파는 백려강이 만들어준 청량음료를 단숨에 비운 뒤 환인에게 물었다.

=자기, 이 이상 수소문은 시간 낭비일 거 같아. 그 열매를 얻으려면 라펩을 지배하고 있는 부족을 방문해 담판 짓는 수밖에 없다고 봐.=

“그렇겠지요. 아니면 도적이 되어서 보물창고를 털어버리거나.”

대화조차 하지 않으려는 자들을 상대로 이성을 앞세워봤자 피곤하기만 할 텐데 굳이 어렵고 복잡하게 일을 해결할 필요가 어디 있는가.

한 도시를 지배하는 부족의 보물고를 털겠다는 화끈한 발언에 여자들이 와, 하고 탄성을 흘린다.

소도시의 상위 부족이면 라드세아의 4급 호족, 히스론드의 하급 백작 정도 되는 신분이다. 그런 사람을 다짜고짜 찾아가 담판 짓는 건 불가능한 일.

이후 환인이 생각에 잠겨 들자 여자들도 각자 고민에 궁리를 시작했다.

그때 자리에서 일어난 이모렐이 레드릭 얼터를 등에 짊어진 모습으로 성큼성큼, 집을 나섰다.

우왁?!

꺄아아……!

으아악!

크고 작은 비명과 함께 도망가는 소리, 넘어지는 소리로 약한 소란이 전해져온다.

잠시 후 소란이 가라앉고 다시 집안으로 들어오는 이모렐의 모습에 여자들이 작게 혀를 내둘렀다.

=어휴, 질리지도 않고 계속 찾아오네.=

=구경거리가 된 기분이에요…….=

=몇 년 만에 민둥 피부가 찾아와 근처에 자리 잡으면 신기하기도 하겠죠 뭐. 아무튼, 전 보물창고를 터는 거 대 찬성임다.=

아영의 흑심이 엿보이는 주장에 안느가 다른 의도는 없냐며 그녀를 추궁하고, 유르파는 도적질에 어떤 비술이 좋을까 궁리하며 본격적인 계획을 꾸민다.

현재 일행의 능력을 생각해보면 방위 기능이 별반 없는 라펩 부족의 보물고를 터는 일쯤은 간단하다.

유틸리티에 집중된 7급 비술사, 암살자보다 은밀하게 움직일 수 있는 검희와 암살 성직자, 그런 그녀들을 뒤에서 백업해줄 수 있는 반정령.

이런 전력으로 소도시의 보물고 하나 털지 못하면 문제가 많지.

어느 정도 결론이 난 분위기에 자신은 이런데 도움이 안되는 걸 잘 아는 이실리테는 식량 가방에서 재료를 꺼내 저녁 식사 준비를 시작하고, 마찬가지로 도둑질에는 전혀 지식이 없는 백려강도 그녀를 돕기 위해 소매를 걷어 올린다.

일행을 구경거리 삼으려는 불청객이 아닌 제대로 된 방문객이 찾아온 것은 그때였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한 가지 여쭈어봐도 될까요?=

똑똑, 나무문을 노크하고 바로 옆에 난 쪽창으로 얼굴을 내민 회색 비늘의 사비족 남자가 정중한 어조로 입을 연다.

안느는 반사적으로 습격이나 공격을 대비하며 슬쩍, 환인의 앞을 가리고 물었다.

=무슨 일이야? 여기 제대로 찾아온 거 맞아?=

=예. 대정령 릴라이스 님께서 이곳으로 가보라 하셨습니다만…… 이곳에 인, 이라는 분 안 계십니까?=

검은 테 안경에 목까지 가리는 검회색 로브, 그리고 눈가에 그려진 검은색의 1색 무늬에 정중한 태도까지.

이쪽의 맨 모습을 보고도 정중함을 잃지 않는 것에 직업자는 아니지만 평범한 사비족도 아님을 알아본 환인은 안느의 뒤에서 모습을 드러내며 대답했다.

“제가 인입니다만, 릴라이스가 무언가 했습니까.”

=아아! 대정령 릴라이스 님의 친우분께 라펩 부족의 일등 서기관, 윤오가 인사드립니다. 그리고 릴라이스 님께서 무언가 하셨냐고 물으셨습니까? 물론입니다! 릴라이스 님께서 그 강대한 힘으로 라펩이 당면했던 곤궁을 일거에 해소해주셨으니까요!=

=……?=

=……??=

곤궁 해소라니, 이게 무슨 해괴한 소리야? 그 릴라이스가 뭘 했다고?

적의라곤 눈곱만큼도 없이 호의와 호감을 열정적으로 표시하는 모습에 여자들이 어리둥절하다는 얼굴로 서로 돌아본다.

백려강이 환인의 허락을 받아 문을 열어주고, 그곳으로 들어온 윤오는 해맑은 얼굴로 환인에게 말했다.

=저의 주인님께서는 받은 은혜는 잊지 않는 대인이십니다. 대정령 릴라이스 님께서 해주신 일에 감동하신 주인님께서는 그분을 라펩의 친구로 선언, 가문에 정중히 초대하였습니다!=

“그랬는데 릴라이스의 요청으로 저희를 초대하러 오셨다, 는 말씀이시군요.”

=예! 주인님께서는 대정령 릴라이스 님께서 친구라고 하신 인 님과 인 님의 동료분도 초대하고 싶어 하십니다. 릴라이스 님도 저택에서 계시니 부디 꼭! 방문을 부탁드립니다!=

‘환연이 뭔가 했나 보군.’

틀림없이 사고는 릴라이스가 저질렀고, 그걸 환연이 적당히 무마하는 수준을 넘어 대활약을 한 거겠지.

환인은 하던 일도 멈추고 자신을 바라보는 여자친구들들 한차례 돌아본 뒤 윤오에게 물었다.

“보시다시피 저희는 평범한 여행자가 아닙니다. 무위도 결코 낮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무린족을 정말 초대하시려는지 재차 확인을 부탁드리고자 합니다만…….”

=저의 주인께서는 저 하늘과 저 바다처럼 광대무비한 아량을 지니신 분, 비늘의 유무는 신경 쓰지 않으시니 부디!=

“알겠습니다.”

환인은 정의로운 도적이 되는 건 잠시 미뤄야겠다고 생각하며 작게 고개를 끄덕이곤 여자친구들에게 외출 준비를 하라고 지시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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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724편 환연의 변신 장면 직전에 짧은 대화가 추가되었읍니당...

변신 때 넣으려한 장면이 있었는데 글쟁이가 정신이 없어서 깜빡했어요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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