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7 사암 도시 스프라울드
유르파와 아영이 돌아온 시각은 저녁을 한참 넘어 자정이 다 되어서였다.
=도려엉~!=
=오빠앙!=
짜증이 가득 난 얼굴로 거실에 들어선 두 여자는 곧장 환인에게 다다다 달려가 그를 끌어안았다.
다 큰 어른 여자가 다섯 살 남짓한 남자아이에게 안겨들어 어리광 피우는 꼴사나운 장면이지만, 두 여자의 미모가 워낙 출중하다보니 다른 여자들도 작게 웃을 뿐 이상하게 보지는 않는다.
환인은 징징거리는 그녀들을 달래듯이 머리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누가 내 여자들을 괴롭혔지? 말만해라. 내가 가서 혼내주마.”
=…우와, 나 방금 심쿵했어.=
=저, 저도요…….=
플뢰족의 기다란 귀 끝이 포인트처럼 붉어진 것을 본 유르파가 백려강의 허리 안마를 받으면서 두 여자에게 질문을 던졌다.
=추기경들이 자기랑 만나게 해달라고 달달 볶았나보네?=
=어어. 도령이 예측한 것보다 더 심했어. 어떻게든 도령을 보고 싶다면서 진짜, 점심이랑 저녁을 먹을 때도 계속 말을 걸더라니까. 실수로 ‘예’라고 대답하길 바라는 것인지 뭔지.=
아영이 질린다는 얼굴로 인상을 쓰며 백은색 로브를 훌렁 벗는다. 그 거친 동작에 자홍접의 브래지어가 흔들려 빼꼼 머릴 내민 젖꼭지를 감추며 말했다.
=그렇다고 대충대충 대답할 수도 없었어요. 지난 4개월간 소식을 감춘 거에서부터 오빠가 언제부터 자애신님의 시련을 받기 시작했는지 이야기를 하니까 사소한 곳에서 물고 늘어지더라고요.=
꼬투리 안 잡히려면 정확하게 그 상황을 기억해내고 대답해야 하는데 그러는 중에 함정 질문을 던지는 것처럼 ‘성제님과 합석은 어떻습니까?’하고 태연하게 질문이 날라왔다.
한두 번도 아니고 수십 번.
=일단 이거부터 먹어.=
분노로 부들부들 떠는 두 여자의 스트레스를 감소시키기 위한 당분, 이실리테 특제 생크림 아이스크림이 두 여자에게 제공되었다.
그 효과는 대단해서 대접 사이즈의 아이스크림을 게눈 감추듯 먹어치운 둘은 그제야 분노가 가라앉은 기색으로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밥을 먹어도 먹은 거 같지 않다는 점을 빼면 도령이 주의를 줬던 대로였어. 어떻게든 도령하고 만나고 싶어 하는 눈치였는데 추기경 신분으로도 함부로 못 움직이겠다는 기색이 역력하더라고.=
“알려진 팔라툼 공허의 눈 현상때 본 것만 이야기하고 나머지는 거룩한 신의 뜻을 미천한 종이 어떻게 알겠냐고 일관하면 그들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다. 교황이라면 신의 이름을 입에 담으며 지위와 신분으로 너희에게 압박을 넣을 수 있겠지만, 추기경 정도로는 턱도 없지.”
=그래서 더욱 우릴 못살게 굴은 느낌이었지만요.=
“어쩔 수 없다. 현존하는 네 곳 교단의 교황은 아무도 신의 시련을 받지 못했다고 하니까.”
어떻게든 자신과 만나 진실 여부를 확인한 뒤 교단으로 초대하고 싶겠지.
자신의 경험을 자세히 듣고 그 정보를 바탕으로 신의 시련을 받고자 노력하기 위해서 말이다.
말하면서 피식 웃으니 여자들은 따라 웃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인상을 쓰지도 못해 곤란한 표정을 짓는다.
신을 주제로 이러쿵저러쿵 떠들기에는 너무 심장이 떨리는 것이다.
=그, 그래도 조금 이상하긴 해. 대부분 상급 추기경이었는데 그 정도면 왕족들도 함부로 못 빌린단 말이야. 그 사람들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을텐데?=
환인은 자신의 앞에 놓인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한 스푼 떠서 안느의 입에 넣어주고, 한 번 더 떠서 아영의 입에도 넣어주며 말했다.
“자애신은 교단이 존재하지 않는다. 영도가 그런 교단의 역할을 일부 수행하고 있을 뿐이지. 말하자면 자애신의 직속 심부름꾼인 셈이다. 그리고 니오네브레스의 교단은 이를테면 1차 하청 업체 직원 정도일까.”
그들과 본질에서 다른 이들이니 종교의 이름으로 알력을 행사하기도 어렵다.
힘과 실력으로 들이대자니 그것도 불가능하다. 결국 돌파구는 같은 사제 신분의 안느와 아영 뿐, 필연적으로 그녀들을 들들 볶아서 대답을 받아낼 수밖에.
환인이 떠먹여 주는 아이스크림의 단맛을 만끽하던 안느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도령, 이제 어떻게 해? 땅신 교단에서 나온 할배가 내일도 꼭 와주십사 부탁해서 진짜 곤란해.=
“그 할배라는 사람과 친분이 많은가.”
=아니. 그 할배는 어마어마한 플뢰족 원리주의자라서 예전부터 날 엄청 못마땅하게 여겨. 나보단 르아가 그 할배하고 친하지. 거의 사승관계나 다름없을걸?=
마음에 안 드는 노인네군.
안느가 저리 말할 정도라면 당시에는 괴롭힘 수준으로 못마땅해하지 않았을까. 그 시절의 안느는 절대 플뢰라고 말 못할 체격이었으니까.
자신이 못마땅해하는 기색을 내비치면 안느만 눈치를 볼 게 뻔하다. 환인은 기색을 드러내지 않고 말을 돌렸다.
“아기오시스 추기경과 연락은 했나.”
=도령 말대로 통신 수정구도 안 건드리고 있어. 지금쯤 수백 통 연락이 쌓여있을 거 같은데……. 나중에 걔 만나면 목 졸리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
그렇다면…….
환인은 그 할배라는 작자를 불러다가 면박을 주는 상상을 했지만 금방 접었다.
그리고 심각한 얼굴로 턱을 괸 채 물결무늬의 대리석 탁자를 노려보았다.
갑작스레 변한 그의 분위기에 여자들이 놀란 눈으로 눈을 끔뻑거리다 서로 눈빛을 교환한다.
‘도령이 갑자기 왜 저래? 낮에 무슨 일 있었어?’
‘유리 언니가 허리 풀리는 일이 있는 거 빼면 없는데…….’
‘방금 안느 아가씨가 한 말에 심기가 상한 거 아니야?’
‘징조도 없었는데요?’
시선을 교환하던 안느는 스스로 총대를 메고 환인의 얼굴을 힐끔힐끔, 여러 각도에서 보며 입을 열었다.
=도령 갑자기 왜 화… 났어? 내가 말한 거에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었어?=
“음? 아니다. 내가…… 요즘 나답지 않은 짓을 많이 하는 거 같아서 말이다. 너희가 보기에는 어떻지.”
그의 솔직한 의문에 아영이 생각 않고 반사적으로 말했다.
=장난기가 많아지셨죠.=
다른 여자들도 그것에 많이 동감했다. 특히 유르파는 더더욱.
낮에 있었던 먹기 좋게 손질해달라는 그 말, 그것만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나오려 한다.
유르파의 허리를 마사지하던 백려강이 다음으로 입을 열었다.
=어려지신 뒤로 표정이 풍부해지셨어요.=
그녀의 발언도 공감이 많이 가서 여자들은 각자 고개를 끄덕이고 주억거렸다.
확실히 어른일 때보다 표정이 더욱 부드러워지고 웃음을 잘 짓는다고 할까. 가끔 심장이 두근거리는 말도 하고.
이실리테도 한 가지를 꼽았다.
=스킨십을 예전보다 더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그건 나도 인지하고 있다.”
=이슬이가 말하는 건 도령이 생각하는 그 정도가 아닐 걸?=
“……?”
=도령이 어른일 때는 밤에 우리가 도령한테 안겨서 자는 쪽이었어. 도령은 정자세로 죽은 듯이 자고. 그런데 도령이 어려진 뒤에는 도령이 나나 이슬이 옆에 딱 붙어서 젖을 만지면서 자는데……. 모, 몰랐어?=
“…….”
환인의 표정이 더욱 심각해졌다. 이실리테와 안느가 하는 말의 뜻은 무의식의 영역까지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뜻이니까.
이런 변화의 이유가 뭐지. 단순히 어려진 여파라고 보기에는 충동도 그렇고…….
……충동?
=혹시 오빠가 차원 이동하면서 영향 받은 거 아님까? 벨도 차원 이동으로 각성한 데다 용인체하고 융합했고 이모렐도 천인체하고 영혼이 융합해버렸잖아요.=
=으음. 그렇다기에는 첫 번째 현대를 다녀왔을 때는 거의 변화가 없었는데? 도령도, 우리도.=
=어……? 그럼 뭐지. 진짜 어려져서 그런가?=
“종합적인 이유겠지.”
언제 심각해졌냐는 듯이 담담해진 환인의 목소리에 여자들은 그를 돌아보았다. 원인을 밝혀낸 것처럼 평화로운 얼굴이다.
“이실리테, 안느. 내가 언제부터 너희들의 가슴을 만지며 잤었지.”
=어, 니오네브레스로 넘어온 그 날 밤부터? 자꾸 젖꼭지 꼬집어대서 잠을 한숨도 못 잤었어.=
=네. 안느 말대로 그날 밤부터 시작되었어요.=
“그건 미안하군. 음, 이런 변화의 가장 큰 요소는 어려진 이 육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아영의 말대로 차원 이동의 효과도 가미되었겠지.”
=가미되었다면…….=
엎드려있던 유르파가 호기심이 가득한 얼굴로 일어나 그에게 무릎걸음으로 다가간다.
환인은 그런 그녀의 출렁이는 가슴에 한순간 시선을 빼앗겼다가 자기 주변으로 모여든 여자친구들, 이모렐마저 관심이 크다는 얼굴로 원 밖에 서 있는 걸 보며 자신의 머리를 가리켰다.
“내 영혼이 육체에 어울리게 어려지고 있는 것은 팩트다. 그 몸에 융화되어버린 너희 둘처럼 말이다.”
그의 손가락질에 백려강과 이모렐을 돌아보는 여자들. 환인의 목소리가 이어지자 곧장 그에게 시선을 고정한다.
“나는 선천적으로 머리에 문제를 안고 태어났다. 다른 평범한 사람들과 달리 감정을 가슴으로 느끼지 못하고 머리로만 이해하는 수준이었지. 폭력과 살인도 감정이 아니라 머리로 판단하고 성불행도 가슴이 아닌 머리로 손익을 생각해 움직였을 정도로 문제가 제법 있었다.”
=으음.=
=음…….=
“하지만 부모님의 교육으로 이성을 바로 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 니오네브레스를 너희들과 여행하며 영혼을 성불시키고 영혼의 기억과 일면을 받아들이며 감정을 조금씩 알아가던 차였는데…….”
1차로 자애신의 시련을 통과하며 육체가 어려졌고, 정확히 말하자면 어린아이의 몸으로 재구성되었고 그 과정에 뇌에 생겼던 문제가 해소되었다.
2차로 반로환동하며 발생한 육체와 영혼 간의 괴리. 일반인이었다면 아무 문제 없이 몸이 영혼에 익숙해졌겠지만…….
=자긴 반대로 영혼이 몸에 동화되어버린 거구나? 성불행을 하면서 감정을 깨달아가며 어른 육체와 영혼 간에 괴리가 발생하고 있었는데 육체가 확 변해버린 데다 그 머릿속의 문제도 해결되어서…….=
“예. 거기다 이 상태로 차원 이동을 한 게 결정타였던 거 같습니다.”
=과연. 오빠 진짜 성미라면 여기 정문에서 무기를 들이밀어 졌을 때 사신처럼 분노하며 날려버려도 이상하지 않았는데 참았던 것도 그 이유였겠네요!=
“아니 그건 좀. 그땐 실수 한 번에 유르파나 쿠에들이 죽을 수도 있었으니까. 도박을 하기 싫었다. 그 뒤에는 짜증나서 이 자식들이 어디까지 선을 넘나 지켜본 것도 없지 않고.”
환인이 그건 아니라고 하자 아영은 창피함에 콧구멍을 벌름거리며 얼굴을 붉혔다.
“아무튼 그런 과정이 모여 지금의 내가 된 거다.”
그녀들을 사랑스럽다고 생각하고 장난치고 싶다는 생각도 하며 기분 나빠서 화를 내고 보복을 할 생각까지 하는 것.
얼굴이 빨개져 있는 아영을 보고 피식 웃은 환인은 타박타박 걸어가 그녀의 다리 사이에 앉으며 말했다.
“이것도 반로환동이 본신에 이롭기만 한 현상이라는 가설이 있어서 내놓은 결과다.”
=그래? 대성녀님이 그렇게 말해줬었어?=
늘 그와 함께 다닌 자신들이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 없는 걸 보면 출처는 하나뿐.
안느의 물음에 환인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허리에 감기는 아영의 손을 잡았다.
“나에게 이롭기만 한 현상으로 인해 이런 변화가 생겼다면 당연히 나쁜 조짐이 아니지. 반로환동으로 정신에 큰 문제가 발생한 인간을 신역의 대리자로 세울 리도 없을 테고.”
=그건 그래.=
아영의 가늘고 예쁜 손가락에 자신의 손가락을 얽히면서 환인은 여자친구들에게 웃음 지었다.
“그러니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속이 시원할 만큼 명쾌한 결론에 여자들이 안도의 표정을 지었다.
그의 말대로라면 전혀 이상할 게 없는 정상적인 변화라는 뜻이니까. 오히려 정상적인 사람이 되어간다고 봐도 되지 않나?
“하지만 내 정신이 이 어린 몸에 너무 적응해버리는 건 좀 곤란하지. 한시라도 빨리 나이를 품은 열매를 구하러 가야겠다.”
=으흐흐. 그런 거면 쭉 어린 모습이라도 문제 없는 거 아냐? 몸이 성장하면서 정신도 따라 성장할 거란 말이고, 젖가슴을 만지는 건 어린애라면 누구나 가지는 본능인데다 지금 그 몸으로도 영혼술을 펼치는데 부하도 없어 보이니까.=
안느가 아저씨처럼 웃으며 자신의 가슴을 주물주물하는 모습에 환인도 피식 웃으며 그녀를 향해 주먹을 흔들었다.
“그 말은 너도 피스팅을 당해보고 싶다는 뜻인가. 넌 뒷구멍도 깨끗하니 앞뒤로 쑤셔보면 반응이 재미있을 거 같긴 하군.”
=……!!=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는 게 이런걸 뜻하는 걸까. 안느는 삽시간에 귀 끝까지 빨개져서는 두 손을 들어 자신을 향해 기막혀하는 친구와 언니 동생들의 시선을 가렸다.
부끄러워하는 안느의 모습에 키득거리던 여자들은 이어지는 환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이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 디전 백작의 본심도 봤으니 볼일은 끝났다. 내일은 성을 찾아가서 바로 공간 이동진을 이용, 벨티칼의 수도 헤뷜트로 간다.”
=어? 그럼 교단에 모인 추기경들은 어쩌고요?=
“맛은 보여줬으니 나머지는 디전 펠드릭스 백작에게 전언을 부탁하면 된다. 지금은 한시가 바빠 지체할 수 없으니, 정말 미안하지만 뒷이야기는 메리아놀의 일을 끝낸 다음 찬찬히 나눠보자고 말이다.”
=……우와.=
아영은 그의 말을 들은 대륙 4대 교단이 어떻게 나올지 훤히 그려져 진심으로 감탄을 흘렸다.
이래서 추기경들이 땅신 교단으로 모이게끔 안느 언니님을 보낸 거였어? 안달 나라고?
신의 시련을 통과한 젊은 청년의 천금 같은 이야기다. 이 전언을 들은 교황들이 과연 ‘알겠소.’ 하고 얌전히 앉아있을까, 아니면 안달복달 조바심을 내며 몸을 들썩일까.
=와…….=
진짜가 미래를 내다보며 그리는 밑그림을 어쩐지 살짝 엿본 기분에 아영은 다시 한번 감탄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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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아영: 언니님! 오빠의 더블 페넌트레이트가 부담스러우면 저한테 맡겨주세요!
안느: 으, 응?! 네가 왜?
아영: 갑자기 막막 자궁이 뜨거워져서 못참겠어요. 저도 수목화 준비단계가 꽤 진행돼서 대소변은 끊겼으니까요, 오빠한테 뭐라도 해드리고 싶어요!
안느: ……(웅얼웅얼)
아영: 넹?
안느: 나… 나도 그거 기대하고 있으니까! 넌 나 뒤에 해!
아영: 히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