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궁기담-706화 (706/813)

705 데바스톤 산맥

귀환 방식은 이전과 동일했다. 흉부에 열기와 심장의 통증, 이후 시야가 까맣게 변한 뒤 정신을 차리면 니오네브레스.

하지만 귀환에 앞서 약간의 차이점이 생겼는데, 이전에는 환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귀환이 이루어졌지만, 이번에는 환인의 의사가 개입되어야 귀환이 벌어졌다는 것.

이제 온전한 나무의 형상이 된 가슴의 문양이 황금빛을 내뿜기 시작하고 가슴에 은은한 열기가 돌기 시작할 무렵 환인은 귀환 현상의 징조임을 알아차리고 여자들을 불러모았었다.

하지만 30분이 지나도록 귀환 현상은 벌어지지 않았다.

흉부에 열기가 돌기 시작하고 몇 분 만에 귀환 현상이 벌어졌던 예전과 대비되는 상황.

“혹시…….”

=응?=

“아니, 약간 장기전이 되겠군.”

왜 트립이 벌어지지 않는지 의아해하는 여자친구들에게 환인은 설명을 미루고 1시간 정도 이 상태로 대기하겠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1시간 뒤, 여전히 문양 쪽에서 열기만 느껴질 뿐 전이하려는 낌새가 들지 않는 상황에 환인은 확신을 내렸다.

“귀환도 내 의지로 일으켜야 하는 거군.”

=아, 지구로 넘어올 때처럼? 그럼 자기가 원한다면 계속 지구에 머무를 수 있는 거야?=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유예 기간이 제법 주어진 거라 봐야겠지요. 길어도 사나흘…… 그 정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사나흘씩이나? 와, 그 시간이면 한국을 전부 둘러볼 수도 있겠네요.=

=음~ 그러기엔 곤란한 일이 많지 않을까? 한국은 신분 확인이 철저한 나라잖아.=

=율이 언니 말대로야. 신분이 없는 우리가 돌아다니다 불심검문에 걸렸다간 바로 구금당 걸. 게다가 도령도 어려진 걸 지구의 지식으로는 절대 설명할 수 없는 일이고.=

=주인님, 어떻게 하실 거예요?=

“……예정대로 돌아간다.”

환인도 시간이 있다면 소소하게 처리하고 싶은 일이 있다.

저축해놓은 돈으로 콘크리트의 숲을 벗어나 대자연으로 들어가는 일이다.

끡!

삐삣?

뀨~!

작아진 상태에 완전히 적응했는지 여자친구들의 품 안에서 삑삑거리며 장난치는 쿠에들.

원래는 인적이 적고 대규모 삼림이나 원시림이 존재하는 외국으로 이민을 생각했었다. 모습을 감추고 타인에게 보여주기 힘든 것을 숨기는데 그게 가장 좋다고 생각했던 거다.

그러나 니오네브레스를 여행하며 획득한 아이템에 유르파의 비술 능력과 마도구 제작 실력이 크게 성장함에 따라 고려해야 할 제반 사항이 대폭 완화되었다.

지금이라면 강원도 시골의 험난한 산속에서 충분히 지낼 여건을 확보할 수 있는 것.

여자친구들의 신분도 환인은 나름 틈틈이 검색과 조사를 통해 방법을 강구해놓았다.

한국은 치밀한 주민등록 시스템 덕분에 하늘에서 뚝 떨어진 듯한 사람이 정식으로 시민권이나 영주권을 가지기란 매우 어렵다.

브로커를 통한다면 신분증 확보가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 그녀들의 외모를 보면 분쟁이 따라붙는 것은 필연적이고 출신이 출신인 만큼 분쟁은 큰 사건으로 비화할 수 있다.

그러니 개발도상국의 투자 이민 방식으로 지구의 신분을 획득, 그녀들의 능력을 이용해 재산을 늘린 뒤 그걸 바탕으로 해 한국으로 넘어오는 방식이 그나마 건설적이며 안정적일 것이다.

그렇게 한국으로 넘어온 뒤 치밀한듯하면서도 허술한 국내법의 틈새를 찌른다면 최소 5년, 최대 10년이면 정식으로 국적을 취득할 수 있겠지.

…아무튼, 몸이 어려졌어도 토지 매입은 대리인을 보내면 된다지만, 환인의 사회적 신분은 대리인에게 모든 걸 위임해 해결할 만큼 높지 않다.

즉, 대리인을 써도 직접 확인하거나 대리인과 대면해서 결제해야 할 일이 반드시 생길 텐데 그럴 때 현재 어려진 아이 모습은 문제가 크다.

여자친구들을 대리인의 대리인으로 내세우는 방식도 있지만, 토지 매매에 전권을 위임할 적합한 인사를 알지도 못하며 찾을 수도 없다.

무엇보다 지구에서는 원래의 몸 크기로 돌아갈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

보석쥐가 있으나 유르파의 연구는 물론이고 비술사는 다른 직업자보다 위상력을 대량으로 소모하기에 신체를 원래 사이즈로 돌리기 위한 연구도 어렵다.

그러니 빨리 니오네브레스로 돌아가는 게 정답인 것.

“다들 준비됐나.”

=네.=

=어어.=

환인은 노른의 품에 안겨있는 실루까지 확인하고 마지막으로 집안을 둘러보았다.

“…….”

언제가 될지는 기약할 수 없지만, 다음에 이 풍경을 눈에 담았을 때는 일시적이 아닌, 영구적인 귀환이 될 것이다.

그 미래를 기대하며 눈을 감은 환인은 영기를 가슴의 문양으로 흘려 넣기 시작했다.

꾸우우우웅—…….

트립 현상인 새까만 어둠이 세상을 뒤덮고 이후 찾아올 섬광과 밝기를 대비하길 잠시, 환인의 귓가에 영성경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눈을 번쩍 뜬 그의 시야에 담긴 것은 운해에 잠겨있는 육지의 섬, 산봉우리들이었다.

“……?!”

숲이 아니라니, 게다가 여자친구들은 어디로 갔지?

꾸우우우우웅~~…….

또다시 들려온 영성경의 울음 소리에 고개를 들자 투명한 푸른 하늘에 검지만 불길하지 않은 오로라가 드리워진 것이 들어온다.

그리고 저 하늘 멀리, 달과 함께 푸른 하늘을 가로지르는 거대하고 하얀 나무의 실루엣.

마치 대기권 밖에 세워진 길이 수십만 킬로미터의 나무를 보는 느낌에 환인은 눈을 가늘게 떴다.

‘우주수? 혹시 여기는…….’

환인은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하늘을 바닷속인 양 헤엄치는 여러 마리의 크고 작은 영성경.

아니, 가까이서 유영하는 영성경이 크게 보이고 높은 하늘에서 헤엄치는 영성경이 작게 보일 뿐. 대다수가 컨테이너선만큼이나 거대하다.

고개를 내리자 여전히 어린아이 상태인 자신의 몸이 보인다. 영기의 순환도 매끄럽고 심핵력도 자신의 의지에 따라 스무스하게 흐른다.

‘환각은 아니다.’

쪼르릉—

그때 빨간색, 파란색, 녹색의 외뿔 토끼가 새소리를 내며 수풀 속에서 뛰어나와서는 호기심 어린 시선을 그에게 보냈다.

「새 관리자야?」

「귀엽게 생겼네.」

「쪼끄매!」

그리고는 그를 지나쳐 다시 수풀 속으로 뛰어들어 사라진다.

잠시 후 에는 퍼더덕— 힘찬 날갯짓 소리와 함께 유니콘과 페가수스를 합친듯한 생물 여러 마리가 운해 속에서 빠져 나와 허공을 아름답게 질주하고, 근처의 집채만 한 바위 위에 앉아있던 백호와 청사자는 위엄있는 시선으로 환인을 한차례 훑어보곤 그에게서 떠나간다.

「작은 인간이군. 적응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야.」

「위대한 분들께서 이유 없이 저런 인간을 고르신 것은 아니시겠지.」

그 외에 환인이 서 있는 근처의 나뭇가지 위로 하얀 바탕에 검은색 점이 박힌 아름다운 흰 뱀이 그를 향해 분홍색 갈라진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지나가고.

「냄새가 너무 미혹적이야~. 잡아먹어 버리고 싶어질 정도인걸.」

검은색 육지거북은 그의 존재에 전혀 눈길을 주지 않고 느긋하게 풀을 뜯어먹는다.

사자처럼 갈기가 풍성한 흰 늑대는 짐승이 아닌 영물의 맑은 눈동자로 그를 잠시 구경하다 모습을 감추는 등, 여러 동물이 그에게 가까이 다가왔다가 멀어지거나 아예 관심이 없는 듯 제 할 일만 하는 장소.

환인의 시선이 하늘을 희미하게 수놓는 하얀 나무의 실루엣으로 다시 향했다. 그리고 대지를 가리고 있는 운해로 내려왔다.

그는 직감적으로 여기가 지하율이 말했던 ‘오르빈치’라는 곳이며 파-레 사는 이곳을 방문해 신전기행을 남겼단 사실을 깨달았다.

하긴, 천원은 신의 땅이고 우주에 있는 것으로 파악되는 장소였다. 지상의 교단에게 시달릴 정도의 능력으로 그 장소에 도달하는 건 무리가 아닐까.

즉 , 오르빈치는 신수의 땅이며 천원으로 가는 관문 같은 장소일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지상 어딘가에 이 곳이 있다는 뜻이겠지.

저 동물들은 전부 성수들이고 신의 땅으로 가기 위해 이곳에서 수행과 수련을 하며 덕을 쌓는 것이 아닐까.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갑자기 뒤에서 들려온 소리에 뒤돌아본 환인은 눈을 살짝 크게 떴다.

“…용린족?”

=하하하.=

용린족이란 소리를 들은 존재는 맑은 웃음소리를 흘렸다.

=확실히, 지상의 지성체 대부분은 우리를 보고 그리 생각하겠지요.=

용의 두상이 확연한 웃음을 머금는다. 등허리까지 내려오는 회색의 장발은 그 웃음에 찰랑거리고 잿빛 피부의 이실리테와 비교해도 절대 아래가 아닌 젖가슴은 시선을 절로 빼앗을 만큼 유혹적으로 출렁거린다.

=하지만 아닙니다. 저의 종족은 드라데르스, 오르빈치와 천원의 수호를 책임지는 일족의 일원입니다.=

“미안합니다. 짧은 지식으로 판단하는 실례를 저질렀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앞에 선 인물은 용의 머리에 잿빛 피부의 육감적인 여성의 몸을 가진 생물이었다.

비록 용의 두상 대부분을 가리는 판금 투구를 썼다지만 젖가슴, 복부, 서혜부와 아랫배의 80% 이상을 드러낸 판금 비키니 아머 차림에 가터벨트 스타킹과 허리 망토를 둘렀다지만 사비족처럼 여성성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복장이다.

환인에 의해 진짜 용린족이 된 샤스라와 다른, 사비족이 통상적으로 용린족이라 부르는 전사의 모습 그 자체인 것이다.

환인의 사과에 안느보다 더 큰 키의 드라데르스족 여성은 풍만한 왼쪽 가슴에 살짝 손을 올리며 허리를 숙였다.

=그 심정을 이해하니 신경 쓰지 마시길.=

예의와 기품, 그리고 지성이 듬뿍 느껴지는 태도지만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기운과 존재감은 이때까지 만난 인물 중에서도 손꼽을 정도로 강하다.

비교하자면 아드네빌라와 비슷한 수준.

환인은 속으로 긴장을 좀 더 끌어올리며 물었다.

“제 이름은 환인입니다. 방금 말씀하신 바에 따르면 당신은 제가 이곳에 있는 이유를 아시는 듯한데……. 알려주실 수 있으십니까?”

=물론입니다. 다만 저는 종족 내 무력의 일각을 담당하는지라 환인 님께 조리 있는 설명을 드리기 어렵습니다. 하여 보다 설명을 잘 드릴 수 있는 분께 안내하고자 합니다. 괜찮겠습니까?=

그녀의 허리춤에 채워진 두 자루의 금색-흑색의 검에 잠깐 시선을 주었던 환인은 조그맣게 고개를 끄덕였다.

“부탁드립니다.”

=그럼,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그리 말한 드라데르스족 여성은 환인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조심스레 그를 안아 올려 팔뚝으로 엉덩이를 받쳐준다.

엄마의 품에 안긴 것처럼 안정감 넘치는 자세에 자연스럽게 그녀의 잿빛 젖가슴을 끌어안게 된 환인은 그녀의 피부 체온에 호기심을 드러냈다.

겉보기에는 사람의 피부와 다를 바 없는데 변온 동물 특유의 차가운 체온이 가득 느껴진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것은 아니고 봄날 온기가 없는 이불에 들어간 정도의 냉기.

자신의 젖가슴을 꾹꾹 눌러보는 환인의 행동에 드라데르스 여자는 빙그레 웃었다.

=환인 님은 따뜻한 분이시군요. 그럼 날아갈 테니 절 꼭 잡으시고 혀를 물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촤악—

그 말과 함께 붉은 장발 사이로 용의 피막 날개가 솟아나더니 펄럭— 펄럭— 날갯짓을 시작한다.

마치 중력을 역행하듯 가볍게 떠오른 드라데르스족은 그대로 활강하듯 운해 속에서 섬처럼 솟아나 있는 봉우리를 비껴 어디론가 날아가기 시작했다.

=저곳입니다.=

자신의 손이 닿아있는 부분이 점차 따뜻해지는 걸 느끼던 환인의 눈이 유독 높은 봉우리의 한곳으로 향한다.

그곳에는 신전과 비슷한 형태의 구조물이 운해에 반쯤 파묻혀있었는데 거기에서 자신을 마중 나온 드라데르스족과 비슷한 모습의 종족이 하나둘씩 나오고 들어가는 중이다.

노란 비늘의 용 머리와 푸른 머리카락, 잿빛 비늘의 머리와 녹색 머리카락, 은빛 비늘의 머리와 노란 머리카락.

그 신전 구조물로 날아들어 간 드라데르스족은 넓은 실내 광장과 비슷한 장소의 한복판에 우뚝 서 있는 적색 모발에 용의 머리를 한 여성의 앞에 내려섰다.

=드라우닐 님, 그분을 모셔왔습니다.=

=수고하였다. 그대는 업무에 복귀하라.=

=예.=

가슴에 손을 올리고 환인에게 살짝 고개 숙인 드라데르스족은 그대로 날아올라 다시 신전 구조물을 나가버린다.

그녀의 뒷모습을 눈으로 좇던 환인은 자신을 무심한 눈으로 내려다보는 드라데르스족, 드라우닐에게 고개를 돌렸다.

자신을 데려온 갑옷 입은 여전사와 달리 높은 노출도를 가진 의복의 드라우닐. 무기도 없고 아우라도 없지만, 방금 드라데르스족보다 더 강한 존재감이 느껴진다.

‘하지만 이상하리만치 평온하군.’

처음 아드네빌라와 마주쳤을 때는 온갖 정신적 디버프가 쏟아진 게 아닐까 싶을 만큼 평정을 유지하기 어려웠는데 지금은 마냥 평온하다.

파편인을 다 녹이고 신체까지 변화한 여파인가.

딴생각을 하며 그녀를 향해 먼저 고개를 숙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환인입니다.”

=초면이지만 번잡한 인사는 생략하도록 하지. 본인의 이름은 드라우닐, 오르빈치와 천원을 잇는 통로의 감시자이자 자농 님의 종이다.=

“자농 님이라 하심은?”

=…….=

환인의 질문에 드라우닐의 표정이 못마땅하게 변했다. 네가 어떻게 그분의 성함을 모를 수 있냐는 힐난이 담긴 표정이다.

용의 머리인데도 감정 표현이 풍부하다고 생각하며 ‘뭐 어쩌라고’의 뜻을 담은 눈빛을 보내자 드라우닐이 크흠, 헛기침하며 입을 열었다.

=영혼사는 모두 그분의 시종이자 아이. 영혼술의 유일 직업을 가진 그대가 그분의 성함을 모른다는 게 기가 막히는군.=

자애신의 이름이 자농이었나.

“신의 존함은 필멸자가 가벼이 접할 수 없는 거룩하고 존귀함 그 자체입니다. 알고자 하는 생각도 품지 못하였습니다.”

=그분의 선택을 받았으면서 그분의 성함을 알아보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는 말인가?=

비난이 아니라 정말 이해를 못 하겠다는 반문에 환인은 빙긋 웃었다.

“그분의 존함을 모른다 하여도 자애신님은 세상에 오직 한 분. 그분의 뜻을 따르는 데는 모자람이나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그렇긴 한데.’하는 생각이 역력한 드라우닐의 표정이 다시 무심해지는 데는 몇 초 걸리지 않았다.

=이제 알았으니 잊지 말도록 하고, 본론으로 들어가지. 그대가 이곳 오르빈치의 전당에 서게 된 이유를 알고 있나?=

“어느 정도 짐작만 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 짐작이 맞을 것이다. 환인, 그대는 지상의 누구보다, 역대 그 누구보다 뛰어난 감응력으로 성흔의 시련을 완벽히 통과하였다. 반로환동 한 그 육체가 증거이지.=

“…….=

=하여 그분의 종으로서 그분께 위임받은 권한으로 제안하겠다. 환인, 자농 님의 대리자이자 자천로의 관리자가 되어라.=

“대답하기에 앞서 드라우닐 님께 한가지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뭐지?=

“저는 니오네브레스 출신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막중해 보이는 직위를 맡기려 하시는 겁니까?”

=출신 따윈 의미 없다. 중요한 것은 그대가 천원에 한발 먼저 내디뎠다는 것과 그분의 관심을 받은 것, 그리고 시련을 무사히 통과하여 지금 여기에 서 있다는 것이지.=

개방적인 신이라는 건가. 그래도 신앙심이라곤 조금도 없는 자신에게 자천로慈天路라는, 무언가 말도 안 되게 중요한 시설의 관리를 맡기려는 건 이해가 가지 않는다.

환인은 한참 전부터 결정을 내렸지만, 몇 가지를 다시 곰곰이 생각해보곤 결심이 변치 않았다는 걸 재확인한 뒤 대답했다.

“저의 자질을 높이 보아주신 점에는 감사하지만, 정중히 사퇴하겠습니다.”

=……제정신인가? 그분의 제안을 거절하겠다고?=

드라우닐의 눈이 삽시간에 차가워지고, 주위를 오가던 드라데르스족도 걸음이나 날갯짓을 멈추고 환인을 미친건가? 하는 눈으로 쳐다본다.

‘남자도 용의 머리에 사람의 몸이군.’

그들을 한 번씩 둘러본 환인은 변하지 않은 담담한 시선으로 노란 눈에 푸른 불길을 피워올린 드라우닐에게 재차 확답을 건넸다.

“예. 저는 그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저 하늘의 다섯 신님 중 한 분의 결정이다! 그것을 알량한 인간인 네 판단으로 그분의 뜻을 재단하려는 건가!!=

우르르르릉!!

드라우닐의 호통에 주위가 삽시간에 어두워지며 우렛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이내 꽈과광, 벼락까지 내리쳤다.

귀청이 징징 울렸고 아드네빌라를 초월하는 막대한 존재감이 그를 향해 쏟아졌지만 환인은 안색 하나 변하지 않았다.

공기가 서늘하다 못해 차가워졌음에도 환인은 담담함을 유지하며 말했다.

“제 역량은 누구보다 제가 잘 압니다. 그분이 설령 자애신님이라 하여도 저만큼 잘 아시리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

“저는 신앙이 없습니다. 자애신님은 존경하고 존중하나 신으로서 신앙하지 않습니다. 그건 다른 네 분의 신도 마찬가지입니다. 제 목표는 오직 하나뿐이며 그 목표에 자애신님을 가까이서 섬기며 봉사한다는 목표는 없습니다.”

드라우닐은 실로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제정신이 아닌 인간이군. 신님들의 땅으로 가는 통로 앞에서 그딴 소릴 지껄이다니. 신벌이 두렵지도 않나?=

“모르겠습니다. 애초에 서른 인생을 제정신으로 살아온 적이 없었던 터라.”

정말이다. 신이란 존재가 내릴 벌이 두렵냐고 묻는다면 먼저 그 두려움이란 무엇이냐고 묻고 싶은 게 환인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의 대답이 순수 100% 진심이란 걸 눈치챈 드라우닐은 환인 앞에 양아치처럼 앉으며 신기하단 얼굴로 그의 뺨을 만지작거렸다.

그녀의 기분이 풀렸음을 증명하듯 어두워졌던 주위는 밝아졌으며 금방이라도 호우를 뿌릴듯한 습기도 씻은듯이 사라진다.

=진심으로 어처구니없군. 어떻게 그대 같은 존재가 그분의 눈에 든 거지?=

“저도 가능하다면 그분께 여쭙고 싶습니다. 제 어디가 그렇게 마음에 드셨길래 시련까지 주셨느냐고 말입니다.”

정황상 천원의 그 눈은 자애신이 틀림없어졌다. 팔라툼에서 나타났던 기이한 눈 모양 구름도 어쩌면 신격을 최대한 억누른 자애신이 아니었을까.

양아치처럼 허벅지를 벌리고 쪼그려 앉아 레오타드가 그녀의 국부를 대단히 강조하는 것에 애써 시선을 돌리며 대답하는 환인에게 드라우닐은 어이없다는 듯이 피식 웃었다.

=수천 년의 영광도 자기가 싫으면 그만이란 건가.=

“그에 대한 답은 아끼겠습니다. 그러면 저를 원래 있어야 할 곳으로 보내주시겠습니까.”

=…….=

보내주는 거야 어렵지 않지만, 드라우닐은 대답 없이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본인의 의사야 어쨌든, 눈앞의 아이는 자애신께서 눈독을 들였을 만큼 그 자질은 우월하다 못해 압도적이다.

영혼의 연륜은 이제 고작 30해 남짓. 그런데도 성장에 또 성장에 어마어마한 성장을 이뤄 자신의 존재감에도 위압 당하지 않는 영혼의 격을 완성했다.

혼격이 아신급에 이르렀으니 신체 또한 그에 맞춰 성장할 것이 예견된 상황.

누구보다 자애신의 영역으로 이어지는 길을 관리하고 그분의 대리자가 되는 것에 어울릴 인물인데…….

가늘어진 드라우닐의 토파즈색 눈동자가 세로로 가늘어지며 환인의 영혼 깊은 곳을 주시한다.

‘이것 때문인가.’

선천적으로 감정이 거세되어 태어난 흔적.

혼격이 개화하며 그런 거세의 흔적은 깨끗하게 소멸했지만, 가장 중요한 인격 형성의 기초를 그러한 바탕에서 보내다 보니 저런 성격이 된 것으로 보인다.

‘이대로 20년 정도 살아가면 자연스럽게 감정을 배울 테니까…….’

한 가지 계획을 떠올린 드라우닐은 좁아진 동공을 풀고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미안하지만, 그 거절은 본인이 수용할 수 없는 부류다.=

“……?”

=일단 네가 원래 가야 할 곳으로 보내주지. 하지만 네 거절에 대한 답은 그분께서 직접 판단하실 것이다.=

“자애신께서 직접… 말입니까?”

=그래. 그러니 사퇴 표현은 그대가, 직접, 그분께, 말씀드리도록.=

환인은 본능적으로 드라우닐이 뭔가 흉계를 꾸미고 자신을 몰아넣는 중이란 걸 간파했다.

“……알겠습니다. 보내주십시오.”

=그러지.=

드라우닐도 환인이 자신의 계획을 간파했단 사실을 알아차렸지만, ‘근데 어쩔건데? 네가 뭘 할 수 있는데?’ 라는 웃음을 지었다.

신께서 직접 눈도장을 찍은 상황이다. 혼격은 올랐다지만 아직 필멸자의 육신을 지녀 진정한 아신격에는 오르지 못한 상태.

‘기대되는군.’

이 인간이 정말 자애신님의 뜻을 뿌리치고 갈 길을 갈 수 있을지, 아니면 잉잉 울면서 자애신님의 손을 잡고 이곳으로 돌아올지 말이다.

=저 공간의 문을 넘으면 된다.=

가볍게 손을 휘저어 공간의 문을 연 드라우닐은 자신을 미심쩍은 눈으로 바라보는 환인에게 한점 악의 없는 순수한 미소를 지었다.

‘다음에 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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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아 신 앞에서 너가 뭘 할 수 있는데ㅋㅋㅋㅋ

개꿀잼직관 예약에 신남

[작품 설정]

드라우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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