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2 현실 part2
다음 날 새벽.
해가 뜨기 전에 자리에서 일어난 환인은 이실리테가 준비한 프렌치토스트와 샐러드로 간단히 허기만 채운 뒤 백려강과 환연을 불러 집을 나섰다.
=저, 저어…… 오라버니, 제가 뭘 하면 되나요?=
혼자 그를 따라나선 백려강은 막중한 책임감을 느꼈다.
그도 그럴 게 언니들 중 누구도 데리지 않고 자신만 불러, 아니 환연도 함께지만 아무튼, 자신만 불렀다는 건 그에 걸맞은 임무가 있다는 뜻이 아닌가.
게다가 운의복에 머리카락 색이랑 사슴뿔, 용 꼬리도 감추지 않은 채로?
뭘 하실지 짐작도 안 간다.
“어려운 건 아니니 걱정하지 마라. 백려강, 암흑 안개 비술을 유르파에게 배웠다고 했지. 지금 쓸 수 있나.”
=넷.=
유르파에게 선물 받은 한 뼘 길이의 소형 완드를 꺼낸 백려강이 1분에 걸친 주문을 외우자 밤 구름처럼 거무스름한 안개가 스멀거리며 피어올라 둘을 감싼다.
마냥 희뿌연 안개가 아니라 제대로 이쪽의 모습을 감추고 실루엣으로만 보여주는 수준.
여기에 달도 뜨지 않은 이른 새벽이다 보니 둘의 모습이 완벽하게 감춰진다.
“잘했다. 그럼 출발하지.”
그렇게 안개를 몸에 감은 환인이 그녀들과 함께 향한 곳은 지하율의 가족이 사는 고층 아파트.
등에 환인을 업고 환연이 알려주는 감시 카메라를 피해 도착한 백려강은 25층 높이의 아파트 숲이 주는 장엄함에 흐에, 살짝 얼빠진 소리를 낸다.
스마트폰을 켠 환인은 지하율 가족 보고서를 확인했다.
욕과 비슷한 아파트 이름, 동과 호수. 지하율의 가족 이름.
“여기군. 백려강, 바람 술법으로 올라간다.”
=네? 넷.=
해도 뜨지 않은 새벽인데도 불이 켜진 층을 피해 17층까지 바람을 타고 올라온 환인은 고층 아파트여서인지 방범 대책이 허술한 베란다 섀시를 열고 바로 집 안으로 들어섰다.
“…….”
역시 잘사는 사람들이 모인 부촌의 집이라고 할까.
좋은 향기가 나는 고급스러운 인테리어의 거실을 잠시 둘러본 환인은 백려강을 불러 해야할 일을 하나하나 짚어주었다.
환인의 등에 매달려있던 환연이 헤일로 같은 빛의 고리를 등에 띄워 날아오르며 그에게 묻는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 있어? 그냥 잘 지내는 사진 몇 장 찍어서 협상 재료로 삼으면 안 되나?」
“편하기는 그쪽이 낫겠지. 하지만 효과는 이쪽이 더 좋을 거다. 지하율도 바보가 아니니까.”
「흠.」
“시작하지.”
환인의 신호에 백려강은 즉시 뿌연 안개를 소환해 집에 가득 채운다.
환연은 그가 아스펜드에서 꺼내주는 빛 구슬 마도구를 집안 곳곳에 숨겨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안개를 다 소환한 백려강은 이번엔 수면병을 꺼내 피워 올려 지하율의 부모와 남동생을 조금 더 깊게 재웠다.
“인지력 저하는 어떻게 됐지?”
=수면 약병에 같이 섞어서 퍼트렸어요. 깨우면 살짝 몽롱한 상태일 거예요.=
“그래. 그럼 거실로 데려와라.”
파자마와 잠옷을 입은 남녀 부부와 공부만 한 모범생 같은 대학생이 백려강의 손에 들려 거실에 차례대로 누워진다.
과연 한 미모 하던 지하율의 가족답게 마흔 중반인 부모도 댄디한 중년과 정숙한 미모의 아내 느낌인 데다 남동생도 여자들에게 제법 인기 있어 보이는 미형.
「나도 나와 있어야 해?」
“그래. 현실이지만 현실이 아닌 느낌을 주기 위해서다. 네 모습과 백려강이면 차고도 넘치지. 둘 다 이걸 걸쳐라.”
「에이.」
=넷.=
운의복에 시스루 천을 살짝 몸에 휘감아 신비로운 느낌을 강조한 푸른 머리카락의 백려강.
치파오 느낌의 검은색 단순한 드레스에 유르파가 만들어준 검은 테두리의 회색 반투명 어깨 코트를 걸친 환연.
그리고 유르파가 손봐준 은색의 판타지스러운 아동용 로브 후드를 입은 환인.
둘의 차림을 확인한 환인은 백려강에게 두 번째 신호를 보냈다.
모두에게 은은한 휘광이 보이도록 조명 술법을 펼친 백려강은 정신을 일깨우는 약한 각성제를 기화시켜 지하율의 가족에게 흘려보낸다.
잠시 후 신음을 흘리며 느릿하게 몸을 일으키는 지하율의 가족들.
“으…… 여긴…?”
정신을 차릴 수가 없는지 머리를 작게 흔들거나 이마를 짚지만, 표정에서 몽롱함이 가시지 않는다.
그들에게 잠깐 시간을 준 백려강은 그들의 앞에서 대성녀의 엄숙함을 흉내 내며 에코 느낌이 들어간 목소리로 조용히 입을 열었다.
=지수한. 강미연. 지하윤.=
지하율의 부친은 백려강의 인지를 초월한 미모에 멍하니 있다가 정신을 차리려는 듯이 허벅지를 꼬집으며 더듬거린다.
“……누, 누구…십니까……?”
=지하율은 돌아오기 힘든 머나먼 곳에서 무사히 지내고 있습니다.=
=하, 하율이, 하율이가…?!=
=우리 딸, 우리 딸은 어디에 있나요…?! 선, 선녀님, 가르쳐주세요…!=
=그녀는 막중한 책임감에 짓눌려있습니다. 그러나 올곧고 강한 아이이니 필시 고난을 이겨내고 역경 속에서 우뚝 설 수 있겠지요.=
백려강은 부부의 질문에 대답해주지 않고 환인이 지시한대로 자기 할 말만 이어간다.
=여러분들의 끊이지 않는 걱정은 그녀에게 부담을 지워주는 일……. 일상의 평온을 소중히 하며 그녀가 돌아올 장소를 지켜주세요. 그리한다면 언젠가 그녀는 여러분의 곁으로 돌아갈 거예요.=
“선녀… 님…….”
흔들흔들, 반쯤 주저앉아있던 부부는 몸을 가누지 못해 흔들거리다 서로를 지탱하듯 쓰러져 다시 잠에 빠지고, 남동생도 눈이 뻑뻑한 듯 끔뻑이다 풀썩 엎어져 잠에 빠져든다.
환인은 그들이 다시 깊은 잠에 빠져든 걸 확인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한낱 꿈이라 치부하겠지만,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한날한시에 같은 내용의 꿈을 꾸었다는 걸 알게 될 테지.
혼자만 꿨다면 개꿈이라고 여겨도 다른 가족들까지 같은 꿈을 꾼다면 무언가의 계시라고 느끼는 게 사람이다.
긴장한 듯 두 손을 꼭 잡고 있던 백려강이 휴우, 작게 숨을 내쉬며 그에게 물었다.
=오라버니, 저 잘했나요?=
“그래. 더할 나위 없었다.”
용인체의 신비로움에 조명효과까지 더해졌으니 술법에 면역이 없는 사람들은 초월적인 현상으로 느낄 것이다.
그 증거로 지하율의 모친은 백려강을 선녀님이라고 불렀었다.
‘뭐 선녀처럼 아리땁긴 하지.’
환인은 그녀에게 셋을 방으로 돌려놓으라고 지시한 뒤 거실의 책장에서 미리 봐뒀던 가족사진 앨범을 펼쳤다.
꼼꼼한 성격인 듯 사진 한장 한장에 날짜와 찍은 곳까지 적혀있다.
지하율이 태어났을 때부터 그녀가 니오네브레스로 트립한 뒤 남동생이 학교를 졸업하고 입학하는 사진, 그사이 치러진 가족들의 생일 축하 사진 및 행사 사진까지.
대현자가 사라진 뒤 여행 같은 건 최대한 자제한 흔적이 보인다.
그도 그럴 게 16년 이전에는 분기별로 여행 사진이 있었는데 그 후에는 1년에 한 차례 여행을 갈까 말까 한데다, 사진 속의 모습도 약간 어두웠으니.
“사진을 찍으려 했는데 이걸 가져가서 주는 게 낫겠군.”
가족 앨범이 사라졌다는 사실은 꿈과 얽히며 신비로운 경험으로 여겨질 거다. 가족 앨범을 선물 받은 지하율에게는 마음의 위안이 될 테고.
그나저나…….
지하율이 말했던 심핵의 소원 조건이 다시 떠오른다.
‘심핵력의 소원은 일생에 한 번만 가질 수 있어. 그 자리에 있던 사람까지 전부 포함해서.’
모호한 설명이지만, 다시 말해 자신이 산란못 미궁의 심핵을 부수고 지구 귀환의 소원을 빌었고 그게 소원력에 고정된 순간 여자친구들은 더 심핵에 소원을 빌 수가 없다는 뜻이다.
여기까진 괜찮은데 만약 소원이 진행 중인 두 명 이상이 같은 심핵을 마주하면 어떻게 될까.
여자친구들이 다른 소원을 진행 중인 자들과 심핵을 마주하면?
자신이 잊혀진 옛 도시 미궁의 심핵에 접촉한 것은 어떤 식으로 판정이 뜨는 걸까.
그녀의 이야기에 따르면 지하율도 심핵의 소원 방식을 알고 있는 게 틀림없다. 그런데 그녀는 어째서 지구로 넘어오지 않은 걸까. 복수심 때문에? 아니면 그녀는 다른 소원을 빌어서? 그렇다면 자신이 지구로 넘어올 때 그녀를 대동할 수 있을까.
‘대현자라 불리는 그녀가 간단한 우회법도 생각하지 못했을 리는 없겠지.’
한 번도 심핵에 접촉한 적 없는 모험가들을 모아 파티를 꾸린 뒤 자신이 빠지고 차원 이동을 소망하라고 지휘하는 것.
그건 불가능할 가능성이 크다.
‘소원을 소망하는 데는 명확한 목표와 구체적인 요소가 필요할지도 모르지.’
예를 들어 지구를 직접 가본 사람이나 지구에서 넘어온 사람만이 귀환이라는 소원을 정할 수 있다든가.
그가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있을 때 옆에서 그를 빤히 바라보던 환연이 팔짱을 끼며 눈썹을 살짝 찡그렸다.
「환인 너 좀 변한 거 같아.」
“어떻게 변했다는 거지.”
「어린애가 된 뒤로 감정이 더 다채로워진 거 같은데?」
지하율 가족 앨범을 아스펜드에 집어넣은 환인은 그녀의 주장에 작게 수긍했다.
“나도 그렇게 느끼는 중이었다. 왠지 모르게 감정이 이해되더군. 평소라면 절대 이해하지 못했을 텐데.”
「역시…… 어쩐지 어제 이슬이한테 피스팅 할 때 평소하고 다르게 되게 신나 보이더라니.」
……신나있었다고? 내가?
「그리고 가끔 현재 모습에 어울리는 귀여운 말투도 쓰고 그랬고.」
신나있었다는 이야기에는 나름대로 납득가는 점이 있어 수긍했지만, 말투 이야기에는 환인도 충격을 받았다.
“……내가 그랬다고? 언제?”
「언제가 아니라 어제 밖을 돌아다닐 때 드문드문 튀어나왔고 어젯밤에 목욕하러 갈 때도 그랬거든? 다른 여자들도 다 눈치챘어. 왠지 더 귀엽다고.」
“…….”
고개를 돌려 가까이 다가온 백려강을 올려다보니 환연의 말이 정말이라는 것처럼 조금 난처하게 미소짓는다.
일순간 멍해진 환인이었지만 이내 정신을 차렸다.
감정이 생기고 감정을 이해하게 되면 말투 정도야 바뀔 수 있겠지. 게다가 지금은 어른 몸일 때와 달리 기운이 넘쳐흐른다. 그게 말투로도 드러난 게 아닐까.
고개를 돌린 그의 시야에 전신거울에 비친 자신의 외모가 눈에 들어온다.
백려강의 허리에 간신히 닿는 작은 키. 후드를 써서 얼굴 윤곽선과 머리카락이 가려지니 진짜 남자애인지 여자애인지 분간이 잘 가지 않을 만큼 곱상한 얼굴이다.
원래 모습이 된다면 말투도 자연스레 교정될 테고, 안된다면 의식해서 고치면 될 일.
“돌아간다.”
환인은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며 백려강의 등에 업혀 집으로 되돌아갔다.
동이 터올 무렵에 귀가한 환인은 여자들이 모두 일어나 거실에서 각자 할 일을 하는 걸 볼 수 있었다.
커튼을 치고 불을 켜놓은 거실에 들어서자 여자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인사를 한다.
그 인사를 받아주고 있으니 인터넷으로 평소 궁금하던 걸 검색하고 있었는지 동그란 검은 테 안경을 쓰고 있던 유르파가 안경을 벗으며 물었다.
=다녀왔니? 갔던 일은 잘됐어?=
“예. 가족 앨범을 챙겨왔으니 지하율에게 준다면 감정적인 부분을 자극할 수 있겠지요. 유르파에게 비술을 배운 백려강이 큰 도움이 됐습니다.”
겸사겸사해서 허튼 돈을 쓰지 않도록 암시를 주었으니 잘 되면 좋은 일이고 안돼도 뭐, 자신이 신경 쓸 일은 아니다.
=려강 아가씨가 도움 됐다니 잘됐네~.=
유르파는 다시 노트북으로 시선을 돌리고, 환인은 인사한 뒤 입을 헤 벌리고 최근 개봉했다는 멜로 영화를 정신없이 시청 중인 안느에게 잠깐 시선을 주었다.
누가 사랑에 관심이 많은 플뢰 아니라고 할까, 보는 책도, 영화도 저런거 뿐이다.
환인은 포니테일을 한 채 검은색 돌핀 팬츠와 탱크탑을 입고 스트레칭 중인 이실리테에게 다가갔다.
다리를 1자로 찢고 가슴이 짓눌린 찐빵처럼 퍼질 정도로 상체를 숙인 이실리테가 그에게 눈웃음을 짓는다.
=주인님.=
“그래. 몸은 괜찮나.”
=네? 아, 어제 일 정도로는 끄떡없으니까 염려하지 않으셔도 돼요.=
“환연에게 내가 과하게 신을 냈다는 걸 들어서……. 그래도 혹시 모르니 치유술을 받는 게 좋아 보인다. 아영, 잠시 이리 와봐라.”
=옙?=
유르파의 축소화 비술이 유지되고 있는 쿠에들과 놀아주는 아영을 불러 아랫배에 치유술을 받게 한 환인.
=언니는 근접 직업자에 고등급 희귀 직업자이기도 하니까요. 얼마든지 격렬하게 놀아도 되지만 나중에 아이를 밴 뒤에는 격렬한 놀이는 자중하는 게 좋아요.=
=그, 이번에는 주인님이 시험해볼 게 있다고 하셔서 그런거거든……?=
=알지만 성술사의 노파심에 드리는 말씀이니까요!=
=아, 알았어….=
얼굴을 조금 붉히며 스트레칭을 이어가는 이실리테.
환인은 옆에서 그걸 구경하다가 1자로 쫙 벌어진 다리와 덕분에 탱글탱글해진 엉덩이, 그리고 쫙 벌어져 도끼 자국이 도드라지는 그녀의 음부를 손가락으로 찔러보고 만져보고 싶단 충동을 느꼈다.
‘…이것도 어려진 여파인가.’
환인은 얼굴을 미묘하게 찡그리다가 기우혁과 유철승에게 붙여놓은 영혼에게서 신호가 오는 걸 느꼈다.
‘복귀해라.’
복귀 요청 신호였기에 수락의 뜻을 보낸 환인은 소파로 걸어가 앉으며 정신을 집중해 몸안을 다시 살피기 시작했다.
‘……별로 바뀐게 없는거 같은데.’
여행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무렵에는 많은 여자를 안아 영기를 너무 다양하게 받아들이면 몸 상태가 안 좋아진다는 식으로 알게 되었었다.
그때부터 일반인 여자를 안는 건 영기, 특히 한기의 축적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았기에 여자친구들만 안기 시작했고, 그녀들이 정현족의 자궁 문신 정화 능력을 이식받은 뒤에는 더더욱 그녀들 외에 다른 여자에게 눈길을 돌리지 않았다.
그래도 가끔 몇 명은 안았지만…….
아무튼, 안는 여자의 숫자를 줄이고 자궁 문신의 도움을 받은 덕에 한기를 축적하는 것에서는 문제가 더 발생하지 않았으나, 영혼을 성불하도록 도와준 뒤 흡수한 영혼의 빛구슬이 몸에 문제를 일으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
찬란한 빛에 휩싸인 왼팔로 시선을 내린다.
언제부터인가 영혼 구슬의 보유 제한과 지속시간, 유지 기간 제약이 거의 풀린 것과 다르지 않아 신경 쓰지 않고 있었는데, 어느샌가 보유 영혼 구슬 개수가 200개를 돌파했다.
거인숲 미궁 즈음에 영혼 구슬 최대 보유 개수는 151개였고 영혼 구슬 유지 기간은 약 12일, 강령 지속시간은 5시간 정도 유지되는 스펙이었다.
그랬는데 지금은 218개에 강령 유지 시간은…….
‘872분, 14시간? 영혼 구슬 유지 기간은 36일이라니.’
파편인을 모두 녹인 게 확실히 영혼술에 큰 영향을 준 모양새다.
지금 자신의 상태는 무협에서 말하는 것처럼 환골탈태 반로환동이 아닐까. 외모가 실제로 어린아이처럼 변하기도 했고.
‘이런 걸 보면 판타지나 무협 장르가 아무것도 없는 맨땅에서 생겨났다고 말하는 건 부자연스럽지.’
아무튼, 어제 이실리테를 상대로 몇 가지를 실험해본 결과 영기 흡수는 여전히 잘 이루어지고 있었다.
자신의 영기는 심장과 배꼽 아래 단전이라 부를 수 있는 부근을 중심으로 정수리의 백회혈에서 회음혈까지 온몸을 쉼 없이 순환 중인 상황.
어제와 비교해 몸 안의 기운에 뭔가 변화가 생긴 것은 없다.
촤라락—
=와, 오늘도 날씨 좋네.=
안느가 TV를 끄고 일어나 커튼을 펼치니 어느새 동튼 하늘에서 눈 부신 햇살이 비쳐 들어온다.
꾸우~
삑, 뺫!
끠~!
다다다 달려온 쿠에들이 햇빛 아래에서 뒤엉켜 구르며 장난친다. 이실리테는 스트레칭을 끝마치고 백려강과 주방에서 아침을 준비 중.
유르파는 어제 이야기했던 지구용 마도구의 개발에 들어가는지 탁자에 도면을 펼쳐놓고 수식을 적어내려가고 있다.
환인은 아침햇살보다 더 하얀 머리카락을 늘어트린 채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며 펜을 열심히 놀리는 유르파를 가만히 응시했다.
‘역시 한 번으로 유의미한 변화를 확인하긴 어렵겠지.’
다음은 유르파를 상대로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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