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궁기담-698화 (698/813)

698 현실 part2

‘인아, 일어나~. 아침이야.’

…….

‘우리 아기, 이제 보니 늦잠꾸러기였네?’

…어……머니?

‘후후후. 따뜻한 이불에서 나오기 싫지? 엄마랑 같이 조금 더 코~ 잘까?’

‘어머니는 직장에 출근해야 하고 저는 학교에 등교하여야 합니다. 그 제안은 현실적이지 못하다고 판단되므로 거절하겠습니다.’

‘아들~ 엄마한테 조금만 더 귀엽게 말해주면 안 될까?! 아들은 이제 초등학교에 입학했잖아!’

‘일주일 전 어른스럽게 행동하는 것으로 얻을 유, 무형적 이익에 대한 장점 17가지를 설명하신 분은 어머니셨습니다.’

‘그렇지만 너무 어른스럽잖아! 어휴, 인이가 엄마라고 불러주고 조금만 더 귀엽게 말하면 엄마는 무척 행복할 텐데~.’

‘…….’

‘응? 응응?’

‘싫습니다. 잠옷을 갈아입고 싶으니 나가주십시오.’

‘우리 아들 너무 쌀쌀맞아서 엄마 슬퍼~. 맞다, 엄마가 옷 갈아입는 거 도와줄, 아앗 나갈게. 나갈 테니까 밀지마.’

…….

이건 자각몽인가.

환인은 흐릿한 회색으로 보이는 22년 전의 풍경에 씁쓸하면서도 그리운 감정을 느꼈다.

이제 120cm정도인 초등학교 입학 당시의 자신과 그런 자신에게 어린아이다운 귀여움을 애원하시는 어머니.

어머니의 부탁을 들어드리는 게 뭐가 어렵다고 저 때의 자신은 매몰차게 거절했을까.

엄마라고 불러드리며 품에 안겨들면 어머니는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기뻐하고 행복해하셨을 텐데.

어른스러운 태도는 좀 더 나이를 먹고 중학생 때부터 해도 됐을 텐데…….

‘아들, 일어났냐.’

‘기상이 늦어 죄송합니다, 아버지.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그, 그래……. 우리 아들, 예의범절이 딱 부러져서 좋구나, 하하하.’

어린 시절의 자신이 문밖으로 나가자 식탁에 앉아 커피와 샌드위치로 아침을 드시던 아버지가 웃으며 아침 인사를 건네오신다.

차 사고로 돌아가시는 그날 아침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해주신 인사.

삼일장을 끝마치고 집에 돌아와 잠든 다음 날, 더는 아버지의 아침 인사를 들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자각하고서야 부모님께서 돌아가셨단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어린 자신도 식탁에 앉아 우유와 시리얼, 정성이 담긴 신선한 샐러드로 아침을 먹는다.

그리고 이어지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평화로운 대화.

환인은 점점 잠에서 깨어나는 것을 느꼈지만, 1분 1초라도 더 길게 부모님을 눈에 담으려 꿈에 매달렸다.

그럴수록 잠에서 깨어나는 시기가 더 빠르게 다가온다.

조금이라도 더 남으려 애쓰는 환인에게 부모님이 그를 향해 자상하고 인자한 미소로 말을 걸었다.

‘인아~ 엄마가 사랑하는 거 알지? 나중에 크면 인이한테도 사랑하는 사람이 생길 테니까, 열심히 살아야 해?’

‘아들, 힘내라. 사람이란 태어날 때도, 죽을 때도 혼자가 아닌 법이야. 네 삶의 절반을 채워줄 사람은 마음을 다해 찾다 보면 반드시 나타날 거다.’

언제인가 자신에게 해주셨던 말씀들.

환인은 왈칵, 목 아래에서 무언가 북받치는 느낌에 소리쳤다.

아버지 어머니! 저한테도 이제……!

“…….”

조용히 눈을 뜬 환인은 양 뺨이 축축한 걸 느끼고 얼굴로 손을 올렸다.

눈물…….

눈물이라니.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도, 삼일장을 치를 때도 눈물을 흘린 적이 없었는데 눈물이라니…….

가슴이 떨리고 울렁거려 숨이 가쁘다. 처음 겪는 신체 현상에 환인은 소매로 눈 주위를 훔치고 뺨을 닦은 뒤 주위를 둘러봤다.

부모님의 방 침대다. 그리고 자신의 좌우에 이실리테와 안느가 얇은 속옷 차림으로 바짝 붙어 자고 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바짝 붙어서는.

몸의 상반신이 그녀들의 젖가슴에 깔린듯한 상태라 이리저리 몸을 비틀어 빼내려 하니 두 쌍의 젖무덤이 출렁푸릉거린다.

“몸이 작아져서인가. 감촉이 더 선명한 거 같은데…….”

팔뚝을 찌르는 이실리테의 살짝 단단해진 젖꼭지 감촉을 느끼며 몸을 일으키자 여자 둘도 눈을 뜨고 잠기운이 가득한 시선으로 그를 쳐다본다.

=으응……? 도령 일어났…… 어?! 우, 울었어?! 내가 혹시 누르거나 때린 거야?=

=주인님?=

그가 흘린 눈물의 흔적에 깜짝 놀라 허둥거리는 이실리테와 안느.

자느라 뒤로 묶은 머리와 이리저리 뒤척이며 조금 뭉치고 뻗은 머리를 다듬지도 못하고 자신을 걱정하는 그녀들의 행동에 환인은 사랑과 헌신이 가득한 어머니의 모습이 덧씌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걸 보자 울렁이고 욱신거리는 가슴이 진정되며 한편으로 따스해져 간다.

“그런 게 아니다. 돌아가신 부모님이 꿈에 나와서…….”

말하다 말고 환인은 자기 가슴을 내려다보며 손을 올렸다.

그러고 보니 이 감정이 그리움이었나. ‘그리움이 넘쳐 눈물이 되어 흘러내린다.’ 이런 구절을 책에서 본 적이 있음을 떠올린 환인은 작게 피식 웃었다.

울렁이고 지끈거리는 가슴을 어제 일의 여파가 아닐까 생각했었는데 그리움 때문이었다니.

=주인님. 몸이 안 좋으신 건 아니죠?=

“그래. 몸은 건강해.”

=……그, 응. 확실히 건강해 보이네.=

뭔가 부끄러워하고 꼼질거리는 듯한 안느의 이야기에 그녀의 시선을 따라 아래로 내렸다.

남자의 세 번째 다리가 잠옷 대용으로 입고 있는 커다란 티셔츠의 한곳을 불룩하게 밀어 올리고 있다.

히히 웃은 안느가 장난스레 옷 밑단을 잡아 살짝 들어보더니 =커?!= 하고 꺅, 놀란 소릴 냈다.

“그야 커질 수밖에.”

이실리테는 살색 오프숄더 브라를 입어 그 흘러내릴 듯한 젖가슴의 부드러움이 고스란히 다 보인다.

안느는 머리카락 색과 대비되는 검은색 속옷만 입은 채라 온몸의 부드러운 살결이란 살결은 다 드러난 상황.

거기다 시선을 조금 아래로 내리면 골짜기의 굴곡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하반신을 다 볼 수 있다.

그리고 둘 다 자신의 여자이자 지구의 여자들을 전부 모아 미녀로 줄 세우면 가장 앞에 서야 할 정도의 미녀들.

몸이야 다섯 살 남짓한 어린애지만 속은 서른 살 아저씨다. 피가 쏠리지 않는 게 이상한 일이지.

=와, 도령은 어렸을 때부터 이 정도였구나…….=

=……꼴깍.=

이실리테는 홍조가 잔뜩 오른 얼굴로 그의 하반신을 응시하고 그녀의 등에 업히다시피 한 안느는 땀을 삐질 흘리며 그를 바라본다.

어른의 몸일 때는 그야말로 규격 외의 빅 몬스터였다. 그랬는데 어린아이가 된 지금도 이실리테의 엄지와 검지 사이 한 뼘 정도라니.

여자친구들의 모습은 어린아이의 귀여운 고추를 생각했는데 성인의 흉악한 양물이 나타나 당황한 모양새라 환인은 말로 표현 못 할 이상한 감정에 안느의 손에서 티셔츠 자락을 뺏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희 둘은 어린아이인 이 몸에도 발정하는 건가. 정말 못말릴 변태들이군.”

=앗, 엑, 아니에요! 저는…… …변태가 맞는 거 같아요…….=

=야?! 거기서 인정하면 안 되지! 그럼 어린애한테 흥분하는 인간말종이 되는 건데!=

=그야 저런 모습이 되셨어도 주인님이니까……! 그, 그러는 너도 지금 유두가 발딱 섰잖아!=

=아니 그건…….=

환인은 아웅다웅하는 그녀들을 뒤로하고 피식피식 웃으며 침대를 내려왔다.

그나저나 다섯 살이 입을만한 옷은 집에 없는데…… 이런 몸 상태로는 탐정사무소를 살피는 것도 어려울 테고.

‘어쩐다.’

몸 상태는 그야말로 완벽 그 자체다. 기운은 흘러넘치고 몸 안은 영기가 그야말로 한강처럼 도도하게 흐르는 중.

어제의 그 격렬한 영기 순환의 여파일까, 영기의 대하大河가 정수리부터 회음혈을 쉬지 않고 맴돌고 있다.

그렇다고 팔다리까지 영기가 흐르지 않느냐면 그런 것도 아니라, 말 그대로 영기가 온몸을 쉼 없이 돈다.

이 활력은 영기 덕분인가 아니면 몸이 작아졌기 때문일까.

방을 나가려던 환인은 멈칫했다가 되돌아서서 막 침대에서 내려오는 안느에게 다가갔다.

=안느 넌 결정적일 때 너무 빼. 팔라툼에서 주인님한테 엉덩이 구멍에 술 넣어달라고 아양 떨 때는 언제고.=

=그, 그 이야기는 그만…….=

“안느.”

=으응?=

“정수를 마시고 싶다.”

=어, 지금? 알았어.=

자신의 요청에 브래지어를 푸는 안느를 바라보다 자기 생각을 그녀에게 말해주었다.

“어쩌면 몸이 이렇게 어려진 데에는 네 정수의 덕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정수가……? 정수에 그런 효과가 있단 말은 못 들었는데?=

브래지어를 풀어 예쁘고 풍만한 젖을 들어낸 안느는 두 손으로 왼쪽 젖을 주무르며 정수를 활성화해나간다.

“정수는 복용하는 사람에게 무병장수를 준다고 하지 않았나. 네 정수를 2년 넘게 복용했기에 그 좋은 효과가 파편인이 다 녹으며 발생한 부정적인 여파를 최대한 막아주었다…… 그럴싸한 가설이라고 생각한다만.”

=어?! 도령 파편인 다 녹았어?! 아, 그래서 어제 그런 일이 일어났던 거구나.=

듣고 보니 정말로 그럴싸하다. 몸이 저만큼이나 어려졌다면 뭔가 몸에 안 좋은 부분이 있어도 있을텐데 그의 모습은 건강 그 자체였으니까.

환인은 침대에 앉아있는 안느를 올려다보다가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

침대 높이만 70cm에 안느의 앉은키를 생각하면 80cm 높이다. 침대도 높고 안느의 키도 크니 젖의 접근성이 너무 안 좋다.

“어려지니 이런 게 불편하군.”

침대 위로 기어 올라가려 하는데 이실리테가 뒤에서 다가와 그를 안아서 올려준다.

안느는 그런 환인을 받아서 무릎 위에 앉히고는 젖을 내밀면서 키득 웃었다.

=이러니까 도령 꼭 아기 같네.=

“너희들과 내 피를 이은 아기라면 지금 나와 비슷하게 생겼겠지. 그렇게 느껴도 이상하지 않다고 본다.”

=아…….=

=어…….=

생각해보니 그러네?

안느의 무릎 위로 올라간 환인은 잠깐 몸을 뒤척여 자리를 잡고 그녀의 살짝 딱딱해진 분홍색 유두를 유륜째로 덥석 물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청량감이 감도는 액체가 입안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환인이 불편한 자세로 있다는 걸 눈치챈 안느는 팔로 그의 등을 받쳐주었고, 한결 편하게 그녀의 젖을 빨 수 있게 된 환인은 쪽쪽 더욱 힘줘서 젖을 빨기 시작했다.

오싹오싹.

다섯 살 아이 정도로 어려진 환인이 자신의 젖을 물고 쪽쪽 정수를 빠는 모습에 안느는 왠지 모르게 가슴 속이 간질거리는 것을 느꼈다.

아기치고는 좀 많이 크긴 하지만 실크처럼 보드라운 머리카락에 작은 머리, 오밀조밀한 이목구비, 하얀 피부에 긴 속눈썹은 정말 인형처럼 귀엽다는 말이 어울리는 모습이다.

=…….=

그, 그런데 젖꼭지를 깨무는 건, 흣♡ ……그만뒀으면 좋겠! ……는 데.

간간이 젖꼭지를 살짝살짝 깨물리는 감각에 어깨를 흠칫거리면서 안느는 모성애로 성욕이 치미는 것을 애써 억눌렀다.

유르파에게 빌린 분석 외눈 안경을 끼고 환인의 상태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살펴본 아영은 손에 맺은 성력을 거두며 말했다.

=제가 아는 지식을 총동원해서 검사해봤는데 오빤 무척 건강한 상태로 보여요. 유르파 언니는요?=

=자기 노트북에 담긴 의학 서적을 토대로 봐도 더할 나위 없이 건강하고 튼튼해. 정말 안느 아가씨의 정수 덕분이려나.=

=오빠가 순환을 완벽하게 해낸 데다 안느 언니님의 정수가 힘을 발휘한 결과 기적이 일어났다고 봐도 되겠네요.=

“…….”

스툴에 앉아 유르파와 아영의 검사를 받은 환인은 팔짱을 끼고 그녀들이 해준 이야기를 곰곰이 되새김질했다.

황금빛 광채가 뿜어져 나온 그 시기는 틀림없이 마지막 파편인이 녹은 시점일 것이다. 그 빛 이후로 어린아이가 됐다는 것은…….

그의 머릿속으로 몇 가지 키워드가 지나간다.

시련, 파편인, 지하율의 경고, 변해버린 육체, 그리고 신의 정원 관리자(추측).

「흐응. 그런 거면 오히려 더 문제 아니야?」

=무슨 뜻이니?=

몸을 띄운 채 뒤에서 과정을 전부 지켜본 환연의 의견에 여자들이 그녀를 돌아본다.

「몸 상태가 안 좋은 부분이 보인다면 그걸 치료하거나 치유했을 때 환인이 원래 모습으로 돌아갈 거라는 예상을 할 수 있잖아.=

=아…… 자기 몸 상태가 워낙 건강하니까 오히려 어떻게 해야 원래 모습으로 돌아갈지 알 수 없다는 거네.=

「막말로 저주나 변이라면 그걸 해소하는 거로 제모습을 찾겠지만 지금은 그런 게 없으니까.=

=뭐 복잡하게 생각 안 해도 되지 않을까? 자기가 정말로 어려진 거면 대충…… 10년? 그 정도면 어른이 될 거고, 빨리 어른이 되어야 한다면 빠르게 나이를 먹는 약이나 술법을 찾아도 되잖니.=

수명의 문제도 아영이 있으니 해결된거나 마찬가지고 말이다.

여자친구들의 대화를 들으며 생각에 잠겨있던 환인은 몇 가지 키워드로 도출해낸 가설을 입에 담았다.

“만약 이게 천 원에서 내게 시련을 씌운 자의 의도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무슨 뜻이야?」

“지하율과 이야기를 나눠본 결과 오르빈치는 어떨지 알 수 없지만, 신의 정원은 천원임이 틀림없다. 그 장소는 신수들이 모여 사는 신의 땅이지. 지상에 머무르는 인간들이 평범하게 갈 수 없는 곳일 터. 갈 수 있는 사람을 꼽으라면 각국의 사도 정도 되는 인물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인물들의 특징이라면 순수성을 꼽을 수 있겠지.

인성에서의 순수가 아닌, 신체의 순수. 지상 세계에서 살아가며 먹고 받아들인 모든 노폐물을 몸 밖으로 배출해 순수해진 육체.

“신의 땅에 가기 위해서 그렇게 순수한 육체가 필요하다면?”

=……파편인을 녹이는 것 자체가 몸의 불순물을 걸러내기 위한 거란 말이구나.=

안느가 멍하니 대답하자 유르파가 일리 있다며 미간을 찌푸린다.

=순수는 곧 위력이라고 봐도 무방해. 파편인을 녹이며 자기의 영혼술이 강력해진 것도 어쩌면 영기의 순환 때문이 아니라, 신체가 순수해져서……. 그러면 천원에 있는 누군가가 자기를 데리러 올 수도 있다는 이야기잖니.=

“…….”

환인은 여전히 황금빛으로 뒤덮여있는 왼팔의 혼고, 영혼 구슬 창고를 쓸어내렸다.

시련을 받은 인물이 성공적으로 시련을 돌파한다면 당연히 바로 데려가려 할 것이다. 결과물이 나왔는데 내버려 둘 이유가 어디 있는가.

‘지금은 생각해봤자 할 수 있는 일은 없으니.’

탁자 위에 놓여있던 자신의 스마트폰을 가져온 환인은 온갖 근심·걱정이 가득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여자친구들에게 말했다.

“너희를 두고 나 혼자 다른 곳으로 가버리는 일은 신의 이름에 맹세코 없다. 그러니 내가 사라질 거란 걱정 같은 건 하지 말고 평소처럼 지내면 된다.”

=으응…….=

=네, 주인님….=

“이실리테, 아침 식사를 준비해다오. 아침 먹고 이실리테와 안느는 같이 어딜 가야 하니 준비하도록 하고.”

=자기, 우리는?=

“니오네브레스로 귀환이 어떤 식으로 이뤄지는지 아직 모릅니다. 이전 경험을 토대로 보자면 오늘 하루 정도는 괜찮을 테니 그때까지 하고 싶은 게 있다면 하십시오. 외출도 괜찮습니다.”

=그런 거면 저번에 왔을 때 방문했던 마트? 거기에 가봐도 될까?=

“예. 사고 싶은게 있다면 이걸로 결제하십시오.”

유르파에게 신용카드를 준 환인은 그녀가 백려강, 아영, 노른에게 좋은 곳엘 데려가 주겠다며 웃는 걸 보다가 스마트폰을 들었다.

먼저 유심칩을 바꿔 끼고 자작 VPN 앱을 실행해 7개국을 우회 접속한다. 그리고 꼭꼭 숨겨져 있는 폴더에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들어가 주소 하나에 문자를 보내기 시작했다.

‘온달 탐정사무소와 기우혁이라는 남자에 대한 조사, 그리고…… 16년도에 실종된 지하율이라는 여고생의 기초 정보 조사. 시간은 지급으로.’

띠릭.

문자를 보내고 20초 후에 답장이 돌아왔다.

[7500$, 1200$]

탐정사무소 조사에 7500달러인가. 비슷한 직종에 지급이라 그런지 요구하는 페이가 세다.

차명 계좌로 8700달러를 이체한 환인은 아침이 준비될 때까지 sns를 위주로 기우혁과 지하율, 온달 탐정사무소를 계속 검색했다.

기우혁과 탐정사무소는 나름 개인정보 보호 조치를 시행 중인지 정보를 거의 얻지 못했지만, 지하율은 검색어로 16년 이전을 제한 검색하자 금방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대현자네.」

“그래. 트립 된 뒤로 더 예뻐졌군.”

실종자 등록만 해두었고 등본 말소는 하지 않았는지 본인의 SNS가 멀쩡하게 살아있다.

학교는… 송파구에 있는 고등학교인가.

팔로우는 수십 명, 팔로워는 수백 명. 팔로워 중인 사람을 검색하다 보니 가족으로 보이는 사람도 찾을 수 있었다.

그중 아빠로 짐작되는 인물의 sns를 봤지만, 지하율의 실종일로 짐작되는 날 이후부터는 활동이 없다.

잠시 후 이실리테가 준비한 아침 식사를 끝낸 환인은 변장 마도구로 머리카락 색, 눈 색을 검은색으로 바꾼 둘과 함께 외출, 먼저 가까운 백화점의 아동복 매장으로 가서 옷부터 맞췄다.

=꺅! 너무 귀여워! 도령, 이것도 입어보자!=

=주인님 이것도 어울리실 것 같아요.=

“…….”

얼마나 입을지도 모르는 옷인데……. 마음 같아서는 쓸데없다고 거절하고 바로 볼일 보러 가고 싶지만, 지난밤에 꾼 꿈 때문인가. 즐거워하는 이실리테와 안느를 보니 마음이 약해져서 거절할 수가 없다.

“어디 재벌 집 막내 아들인가?”

“여자들은 메이드인가본데 개 부럽다…….”

“레알 태어날 때부터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네.”

이실리테와 안느가 정신 놓고 그를 예전 호칭으로 부르고 있었지만, 자신의 외형이 5살 어린애이다 보니 매장에 있던 사람들은 일상 속 판타지처럼 받아들이는 모양새.

“안느. 그만해. 이실리테도 그만.”

=잉. 이것만 입어보지…….=

“지금까지 입은 거만 해도 20벌이잖아. 다 살 거도 아닌데 민폐야.”

평소 어조와 다르게, 겉모습에 어울리는 말투로 말하니 매장 여직원이 절대 아니라며 손사래를 친다.

“입은 거만 살 거니까 계산해.”

=치. 알았어. 언니, 이거만 계산해줘.=

“네? 넷.”

베이지색과 흰색, 감색으로 이뤄진 아동용 캐주얼 정장을 입고 매장을 나온 환인은 안느에게 번쩍 들어 올려져 그녀의 품에 안겨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보통 어린애라면 제 발로 걷겠다고 난리를 쳤을 것이다.

그러나 이동 속도나 인파 속에서 발생할 문제를 생각하면 이쪽이 더 편하고 빠르기에, 그리고 2m에 가까운 키의 안느 품 안에서는 겉으로 봐도 이상하게 보이는 것이 없었기에 환인은 말없이 그녀의 품에 안겨 지하철을 타고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물론 아무 일이 없지는 않았다.

콱.

“억?!”

=아저씨, 뭔데 남의 몸을 만지려고 해? 죽고 싶어?=

중간에 치한이 안느의 몸을 더듬으려는 시도가 있었던 것.

하지만 안느가 누구인가. 되려 치한의 멱살을 한 손으로 잡고 들어 탈탈 턴 안느는 지하철이 정차해서 문이 열렸을 때 바깥으로 내던져버렸고, 안느는 승객들의 박수와 환호를 받으며 우쭐한 표정을 지었다.

“안느. 아무리 마스크를 쓰고 변장했어도 네 외형은 특징이 강해. 추적받기 쉬우니 큰 소란은 일으키지 마.”

=응. 알았어.=

그렇게 안느에게 주의를 준 환인은 열차가 출발하자마자 나사라트의 암살자 영혼을 치한에게 빙의시켰고, 다음 지하철이 들어올 때 선로에 뛰어들라고 지시를 내렸다.

인간적으로 이런저런 다툼에 살벌한 살의를 피우지 않는 환인이지만, 이런 문제는 다르다.

처음에는 극소화 영혼 화살로 성기를 날려버려 성불구자로 만들려 했다.

그러나 어린아이를 안고 있는 여자에게 성추행을 저지르는 습성을 가진 인간이다. 안느와 마찰을 빚은 직후 그런 사건이 벌어진다면 적반하장으로 안느를 찾아 고소할 가능성은 어느정도일까.

그런 인간이 살아서 사회에 기여할 가능성은 어느정도일까.

그런 인간을 살려둘 가치가 있을까.

현대에서 사람을 죽이라 명령을 내렸지만, 환인은 감흥 없이 자신을 향해 카메라를 들이밀고 찍는 여자들에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꺅! 너무 귀여워!”

“애가 너무 얌전하고 귀엽네. 아들이에요?”

=아들 아닌데? 내가 그렇게 나이 많아보여?=

“언니 한국어 진짜 잘한다. 키도 디따 크고… 혹시 배구 선수예요?”

=아니. 우리 도령 호위.=

“꺅, 도령이래!”

“언니 보디가드였구나!”

“안녕, 귀요미야? 네 이름은 뭐니?”

“…인.”

“인? 외글자 이름이네! 이름도 귀여워!”

이런저런 관심이 쏠리지만 한국에서는 미모가 곧 인성이고 능력이고 실력.

추적을 피하려고 대중교통을 쓰겠다 생각했을 때부터 이런 상황은 염두에 뒀기에 환인은 불쾌감을 내비치지 않고 어린아이를 연기했다.

그리고 그들이 지나친 역에서 30대 남자가 철로로 투신하는 사고가 벌어졌지만, 당연히 그 누구도 환인을 의심하지 않았다.

=흠. 저기가 그때 찾아온 탐정 남자의 사무실이란 거지?=

“그래. 환연, 안쪽을 들여다볼 수 있겠나.”

「평범하게 무리야. 정령들이 죽어도 가까이 오려고 안 해.」

“어쩔 수 없군.”

탐정사무소는 번듯한 거리의 최신식 7층 빌딩 2층에 자리 잡고 있었다.

겉만 봐서는 현대의 트렌드를 따라가는 신식 탐정사무소. 하지만 주인은 위상력의 흔적을 지닌 인간이다.

건너편의 인어 컨셉 간판이 달린 카페에 들어가 외부에서 잘 보이지 않는 창가에 자리 잡은 환인은 여자친구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이실리테와 안느는 여기서 무술을 제법 단련한 사람이 오가는지 지켜봐라. 저 탐정사무소의 뒷조사를 의뢰해놨으니 그게 올 때까지만 지켜보면 된다.”

=도령도령. 디저트 시켜도 돼? 저 허니 토스트란 거 먹어보고 싶은데.=

“먹고 싶은 게 있다면 다 주문해서 먹어.”

그녀들에게 오가는 사람들의 감시를 맡긴 환인은 핫밀크(커피를 마시려 했지만, 눈에 띌 것 같아서 바꿨다)를 마시며 탐정사무소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육체가 바뀐 여파가 슬슬 나오는 거 같은데.’

영기 순환 끝에 몸이 어려졌다. 당연히 능력적인 면에서 변화가 있을 거라 생각은 했는데…….

‘기감 범위가 몇 배나 늘어나다니.’

게다가 아까 영혼을 빙의시킬 때도 매우 매끄럽고 스무스했었다.

마치 영혼이 자기 뜻에 따라 움직이는 듯했다고 할까.

이전에도 강제력을 쓰면 영혼을 원하는 대로 다룰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냥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조종할 수 있는 느낌이다.

단순하게 느껴지는 것만 이정도인데 영혼술은 또 얼마나 더 강해졌을까.

환인은 그걸 실험해보고 싶어 살짝 마음이 달아오르는 걸 느꼈지만, 냉정한 이성으로 가라앉히며 기감을 맞은편의 탐정사무실이 있는 빌딩으로 천천히 펼쳐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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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뚜껑이 들썩들썩)

[작품 설정]

변태 아가씨들

꼴깍 삐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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