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궁기담-689화 (689/813)

689 데바스톤 산맥

두두두두—

수령이 족히 수백 년은 되어 보이는 온갖 나무들이 다가오는 여름을 대비해 녹음을 비축하듯 녹색으로 선명하게 반짝이는 산숲.

다섯 마리의 쿠에와 비행 빗자루를 탄 마녀 한 명, 세 쌍의 날개를 가진 천인족으로 이루어진 일행이 길도 없는 우거진 산숲을 용맹하게 달려나간다.

마차를 아스펜드에 집어넣고 무게와 부피 중심으로 짐을 소분한 결과 일행의 속도는 비약적으로 향상됐다.

유르파가 아공간 주머니, 보존 주머니를 3년 동안 계속 개량해온 덕분이었다.

그녀의 노력에 일행은 아공간과 보존 비술을 같이 새기고 무게 감소 70%, 공간은 3.5m * 3.5m에 맞춘 가방을 여러 개 보유하게 된 것이다.

이 정도면 니오네브레스에 퍼진 아공간 가방 중에서는 탑급 품질과 성능.

=무게 감소 항목은 70%가 한계라고 봐야 해. 그 이상 감소율을 올리면 내부 공간 변이가 발생할 확률이 생기면서 가방 안의 물건이 섞이거나 변질을 일으키거나 아공간 생물로 탈태하는 경우가 발생하거든.=

새 비행 빗자루를 아가씨처럼 타고 옆에서 따라오는 유르파에게 환인이 물었다.

“그래서 감소율이 70% 이상인 것은 유물 뿐인 거군요. 히스론드 왕실 고위 비술서에 나와 있는 내용이었습니까.”

=맞아. 프라버의 군용 수송 가방도 감소율 70%에 크기가 10*10*6m인 이유가 그거 때문이었어.=

“이제부터는 마법 가방의 개량은 공간 확장 쪽으로 이뤄지겠습니다.”

=그렇게 될 거야. 하지만 5*5*5m 용량부터는 고형화된 외골격 기재가 필요해서 가방이 아니라 상자 같은 걸 써야 하니까 조금 고민돼.=

환인은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마녀처럼 비행 빗자루를 타고 따라오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약간 자란 박달나무의 껍질을 벗겨 아이보리색으로 매끈하게 다듬고 부드러운 나뭇가지를 모아 이어 묶은 새 비행 빗자루.

그 빗자루를 탄 유르파의 차림도 디자인이 심플한 회백색 로브 드레스에 모자도 하얀색인 데다 긴 머리카락도 순백이라 마녀라기보단 색기가 흐르는 여 마법사처럼 고상해 보인다.

“그런데 계속 빗자루를 타고 따라와도 괜찮겠습니까. 허리며 몸에 무리가 가는 건 아닌지.”

=후후. 빗자루 대를 넙데데하게 만들어서 괜찮아~.=

그녀 말대로 빗자루 대는 나뭇가지나 막대기처럼 둥그런 게 아니라 노처럼 약간 둥글넙데하여 저번 비행 빗자루보다 앉기 편해 보이는 게 사실이다.

유르파가 감회가 깃든 눈으로 아이보리색 빗자루 대를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비행 빗자루의 안정적인 외형 개조는 숙련된 부여 비술사만 가능하거든. 내가 그만한 수준이 됐다는 게 조금 믿기지 않는달지……. 정말 자기를 따라다닌 3년 사이에 너무 많은 게 변해서 얼떨떨할 지경이야.=

고작 3년이다. 이 3년간 그녀가 경험한 것과 축적한 지식은 그 앞의 71년에 맞먹는 정도의 밀도였다.

그의 곁에서 이후로 얼마나 많은 걸 보고 듣고 경험할 수 있을까.

그의 니오네브레스 여행길이 끝나면 지구에서 두 번째 삶이 시작될 텐데 그땐 또 얼마나 많은 경험과 지식을 쌓을 수 있을까.

예기치 못한 사고로 그와 더는 함께할 수 없을 가능성 또한 염두에 두고 있지만…….

=이슬이 너 그 옷만 입어도 정말 괜찮겠어?=

=응. 미궁 밖에서는 어지간하면 이렇게 있으려고. 그리고 암플레이트하고 레그플레이트는 착용했고.=

=옷도 예쁜데 건틀릿하고 그리브도 예쁘고 옷걸이는 더 예쁘니까 장난 아니네.=

=아그그극. 허, 허리가아…….=

=아영… 그 정도로 힘들면 치유술을 쓰는 게 좋지 않아…?=

=통증 하나하나를 치유술에 의존하면, 정작 중요할 때 제 효과를 받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흑! 에구….=

=아, 치유 면역증….=

시선을 뒤로 돌린 유르파는 아가씨들이 조금씩 이야기를 나누며 따라오는 모습을 눈에 담았다.

이제는 누구 하나 없어지면 가슴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허전할 가족들.

마지막 순간까지 누구 하나 다치거나 빠지지 않고 모두가 함께 있을 수 있기를. 유르파는 시선을 앞으로 돌리며 자애신께 마음속으로 기도를 올렸다.

투두둑—

쿠에~.

퍼더더덕-!

길도 없는 험준한 산을 달리던 쿠핀은 발을 내디뎠던 암반 가장자리가 부서져 무너지는 느낌에 힘차게 날갯짓해 그곳을 빠져나갔다.

우르르, 바위와 자갈 일부가 안개가 조금씩 끼는 낭떠러지로 사라지고 길이 끊겼지만, 뒤따르던 쿠라와 젤프리, 임시로 합류한 회색 쿠에는 퍼더덕 가볍게 날갯짓해 뛰어넘는다.

쿠핀을 타고 있던 안느는 한순간 심장이 철렁했기에 식은땀을 닦으며 휴우, 한숨을 내쉬었다.

=왜 쿠에가 아니면 들어갈 생각 말라고 했는지 이해되네.=

=그러게. 안개도 조금 이상한 거 같고…….=

산맥 초입을 지나 본격적으로 산맥이 시작되자 지형이 험준하다는 말로도 부족할 정도가 되었다.

낭떠러지 같은 바위산 측면의 가장자리를 따라 이동하는 것은 예사고 좌우로 벼랑 같은 외길을 따라 움직이는 게 흔한 데다 대부분 경사가 져 있어 이동 속도도 대폭 느려졌다.

물론 쿠에를 타고 있어 두 다리로 걷는 것보다는 빠르지만, 완만한 산길에서의 그 속도에 절반도 나오지 않는 수준.

=응? 이거 안개가 아닌 거 같은데?=

=안개가 아니면 뭔데?=

=초입에 엄청 높은 산봉우리 많이 봤잖아. 구름이 흐르다 그런 거에 걸리면 산을 따라 흘러내리기도 하는데 이게 그거인 거 같아.=

=구름의 일부라는 거네.=

어쩐지 일반적인 안개보다 습기가 강한 느낌이더라니.

새 마도구 의복이 생겨 천상의 장막에서 체스트플레이트와 체인벨트 스커트를 빼고 레그 플레이트와 암플레이트 건틀릿만 착용한 이실리테는 건틀릿 표면에 맺히기 시작하는 물방울을 바라보다 고개를 들었다.

하늘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산봉우리가 높게 서 있어 다소 위압감까지 느껴지는 풍경.

그리고 풍경 속에서 느껴지는 이질적인 위화감.

이제는 환인에게도 인정받을 정도의 위상력 감응이 풍경에서 위화감이 있다고 경고를 보내온다.

=이 구름 때문은 아닌 거 같은데…… 분위기가 조금 이상해. 평범한 산 같지 않은 느낌이야. 안느 넌 어떻게 생각해?=

=데바스톤 산맥은 니오네브레스 5대 산맥 중에 하나니까 평범한 산이 아닌 건 맞지 않아?=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닌 거 알잖아.=

이실리테가 살짝 눈썹을 찡그리자 킥킥 웃은 안느가 표정을 진지하게 만들며 고개를 끄덕인다.

=아까부터 산새 소리도 안 들리고 주위가 고요해. 작은 동물들이 이렇게나 조용해지면 보통 주변에 위협 거리가 발생했을 때뿐인데…….=

=평소와 다른 일이 발생했다는 뜻이네. 우리한테 겁먹은 건 아니겠지?=

=그런 거라면 멀리서는 새소리가 들려야 해. 하지만 내 가청음 영역 내에 새소리는 고사하고 동물 소리도 안 들려.=

적대적인 생명체인가. 이실리테가 허리춤에 찬 기사검의 힐트에 손을 올리고 안느도 허리 뒤에 찬 예식용(이지만 실전용이기도 한 워해머를 쥔다.

그 순간 노른을 타고 선두에서 나아가던 환인이 천칭을 들어 올렸다.

파르히스트에서 어느 사건의 사죄 표시로 받은 1자 모양의 스틱, 지하굴 미궁을 돌파하며 밋밋하던 스틱에 세공이 생겨 여러모로 고풍스런 느낌이 된 천칭의 끝에 황금빛이 옅게 맴돌더니 황금색 빛의 파동이 터져나왔다.

파아아앗—…….

=그냥 평온의 파동이 아니야. 문양으로 강화했어.=

황금빛은 여울처럼 멀리멀리 퍼져나갔다. 퍼져나가며 안개처럼 흩어진 구름과 뒤섞이다 흐르니 그 광경이 마치 세상의 더러움을 씻어내는 황금의 성수와도 같아 보인다.

=……?!=

=……!!=

그 광경을 넋 놓고 바라보던 여자들은 깜짝 놀라 콱, 무기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황금빛 여울 곳곳에 끔찍하고 기괴하다고 해야 할 희끄무레한 것들이 파묻혀 함께 떠내려가고 있었던 것.

=저, 저거 뭐야? 이슬이 네가 느낀 위화감의 정체가 저거였어?=

=모, 모르겠는데…….=

=고스트…? 비슷한 느낌인데요. 그런데 그것보다 훨씬 흉흉한 모습이에요.=

아영의 분석에 이실리테는 저 모습을 어디선가 본 거 같다고 생각하며 미간을 좁힌 채 생각하다 깡- 손뼉을 쳤다.

=카턴 마을의 악령!=

=응? 이슬이 아가씨, 카턴의 악령이라니?=

고향 마을 이름이 갑자기 튀어나와 눈이 동그래진 유르파에게 이실리테가 간략하게 설명했다.

=알드헬름 비자룩스에게 살해당한 오울링의 고족 친척 여자 말이에요. 살해당해서 강바닥에 파묻혀있다가 주인님께 성불한 여성인데 악령이 되었을 때 모습이 저것과 비슷했어요.=

=아, 그 여자…….=

“다시 간다.”

카턴 마을이라면 환인이 이실리테와 둘이서 여행할 때의 이야기.

좀 더 자세히 물어보려던 여자들은 환인의 이야기에 서둘러 쿠에의 옆구리를 툭 건드려 출발시킨다.

어느덧 고요하던 안개 낀 산골짜기에 쪼르릉 짹짹 새소리와 찌륵거리는 풀벌레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왠지 색채도 회색 필터를 씌운듯한 우중충한 느낌에서 좀 더 화사해진 느낌.

아까의 위화감은 그런 게 안개 속에 숨어있어서 그런 거였나?

여자들은 잡담을 멈추고 좀 전보다 주변 감시와 경계에 집중하며 환인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그러던 일행 앞에 또다시 절벽에 붙은 외길이 나타났다.

폭이 2m도 되지 않아 심장이 약한 사람은 심장마비에 걸려도 이상하지 않은 관문이다.

=데바스톤 산맥의 초입인데도 이렇게 험준한 지형이라니. 비행 빗자루가 없었으면 난 따라오지도 못했겠어.=

“유르파. 깃털 낙하 비술의 갱신을 부탁합니다.”

=응.=

유르파가 일행 전원에게 깃털 낙하의 비술을 갱신하고 있을 때 앞서 정찰을 갔던 이모렐이 여섯 장의 푸른 날개를 펄럭이며 돌아와 환인에게 보고했다.

「성제님. 안으로 나아갈수록 안개가 점점 심해집니다. 이 이상 나아가면 5m 앞도 보이지 않게 됩니다.」

“이형종이나 기타 괴물의 기척은 없었나.”

「예. 그리고 안개 속으로 들어갔을 때 시선이 느껴지는 듯하였습니다. 바람으로 안개를 밀어내려 해보았지만, 너무 광범위하여 불가능하였고 시선이 느껴지는 쪽을 수색해보았으나 수상한 점은 발견하지 못하였습니다. 주의가 필요하다 생각합니다.」

‘안개 속에 숨어있던 잡령도 그랬지만, 인위적인 의도가 점점 강해지는군.’

알았다고 한 뒤 다시 수색 정찰을 보낸 환인은 팔짱을 끼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희끄무레한 안개 속에 숨어있던 희끄무레한 잡령. 여자친구들은 놀라 경계심이 치솟았지만, 환인의 눈에는 길가다 발에 채는 느낌의 잡스러운 혼이었다.

너무나 잡스러워 인간의 혼인지 동물이나 마수, 마물, 괴물의 혼인지도 알 수 없는 잡령.

심약하거나 기가 약한 사람이라면 그런 영혼에 쓰이거나 하겠지만, 일행 정도면 오히려 잡령 쪽이 강력한 위상력 장악에 퇴마 당해버릴 수도 있기에 다가오지 않는다.

환인이 평온의 파동으로 날려버린 것은 이런저런 귀찮은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주변을 청소한 것 뿐.

“…….”

조금 더 나아가자 중국의 장가계와 비슷한 분위기의 장소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천장단애같은 낭떠러지, 좁은 길, 짙어지는 안개 사이로 얼핏얼핏 보이는 기둥 같은 산.

이모렐의 말대로 안개가 더더욱 짙어진다. 유르파의 깃털 낙하 비술이 있어 추락사할 걱정은 없다지만, 한 명이 떨어지면 일행을 회수하기 위해 돌아가야한다.

이만큼 시야가 가려지면 실족할 가능성이 커지기에 환인은 환연을 불러 안개를 치울 수 있는지 물었다.

「……애들이 왜 이러지. 말을 안 들어.」

“중급 정령인가. 어떤 식으로 듣지 않지”

「나 말고 누가 더 강한 명령을 내려서 내 말을 안 듣는 느낌이야.」

“그 말은 명령을 받은 정령이 떠나지 않고 이곳에 머물고 있다는 말이군.”

자유분방하기로 둘째라면 정령들이 다른 정령들의 방문을 막으면서까지.

그의 이야기에 환연은 왠지 기분 나빠져 환령계에 있는 상급 바람 정령 친구를 불렀다.

‘이 기분 나쁜 안개 전부 날려버려 줘!’

그녀의 부탁에 후후 웃은 상급 바람 정령이 손을 살짝 들어 올린다. 그와 함께 광풍이 광범위하게 일면서 골짜기에 맺힌 안개를 하늘로 뿌리기 시작했다.

담배 연기로 가득한 공간에서 선풍기를 켰을 때처럼 안개가 요동치며 하늘로 퍼 올려진다.

광풍이 사이클론처럼 안개를 빨아들여 날려 보내니 골짜기에 가득하던 회색 안개는 그 농도가 급격히 줄기 시작했고, 하늘이 보일 정도로 걷혀가는 안개 속에서 나타난 것은 일행을 굳어버리게 하기 충분했다.

아직 밑에 깔린 안개 한복판, 마치 땅에 하반신이 박힌 것처럼 상반신만 드러낸 거대한…… 골렘.

‘이모렐이 느꼈다던 시선의 원인이 저거였나.’

까마득한 절벽 사이에서 존재하는 서 있는 거무튀튀한 스톤 골렘은 환인마저도 살짝 소름이 돋았을 정도로 거대했다.

이실리테가 뒤에서 더듬거리며 환인을 부른다.

=주, 주인님. 위험하니까 물러, 물러 서시는 게…….=

산봉우리 하나만 한 거대한 인간형 골렘이다. 저게 날뛰기 시작하면 굉장히 곤란한 일이 벌어지겠지.

하지만 그럴 걱정은 안 해도 될듯하다.

환인은 황금빛 광채를 두 눈에서 뿌리며 골렘의 상태를 살피다가 결론을 내렸다.

“날뛸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군.”

골렘에도 구동핵이 있다. 구동핵에서 에너지를 뽑아 올려 회로를 통해 신체로 에너지를 돌리면서 기동하는 식이다.

그런데 저 태산만 한 골렘한테서는 그야말로 미미한 위상력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꼭…….

“만들다 만 것 같으니 말이다.”

이야기를 듣던 안느가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혹시, 지금도 한창 만드는 중이 아닐까?=

=만드는 중은 아닌 거 같아요…. 표면 곳곳에 생긴 지 오래된 균열이나 금이 보이니까요….=

벼락활에 화살을 재고 있던 백려강이 골렘의 곳곳을 가리키며 제 생각을 말한다.

“만들다 중단한 것은 타산성이 없다고 생각해서였겠지. 저만한 크기의 골렘을 움직이려면 얼마만 한 에너지가 필요할지 짐작도 가지 않으니까.”

=왜 저렇게 크게 만들려고 했지? 저게 완성됐다면 크기만 따졌을 때 영도에 자리 잡은 거인보다 10배는 더 컸을 거 같은데.=

=나라하고 싸우려고 만들려 한 게 아닐까요?=

아영의 발언이었지만 여자들은 말도 안 된다며 고개를 저었다.

확실히 크기에서 오는 위력은 무시할 수 없겠지만, 그에 걸맞은 방어 기능이 없다면 그냥 걸어 다니는 표적지일 뿐이다.

그리고 저만한 몸뚱이를 지키기 위한 방어 기능은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잡아먹겠지.

말하는 중에도 골짜기의 안개는 계속 퍼 올려지고 있었고 거대한 골렘의 아랫부분도 드러나기 시작했다.

산 하나를 깎아 만든 것처럼 바위가 곳곳에 붙어있는 모양새. 그걸 본 유르파가 조금 기가 막히다는 듯이 말한다.

=누가 만들었을까? 역시 대현자려나.=

=확실히 저런 걸 만들 사람이 있다면 대현자뿐이겠지.=

안느의 대꾸에 유르파가 한숨을 폭 내쉰다.

누가 만들었든, 무슨 용도로 만들었든 7급 비술사인 그녀에게 저런 형태는 용납이 안 되는 부류다.

=악취미야. 효용성은 둘째치고 골렘에 저런 흉부 파츠하고 사람 얼굴이 왜 필요해? 내구도만 떨어트릴 텐데. 게다가 후드까지 꼼꼼하게 만들었네.=

진짜 노동력과 재료의 낭비 그 자체.

환인은 여자친구들의 대화를 들으며 거대한 골렘을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이 근방에 대현자나 그에 준하는 인물이 있는 건 확실하겠지. 계속 나아간다.”

잡령을 박아놓은 것, 만들다 만 골렘이 구동하고 있는 것, 정령을 묶어놓은 것.

이 일련의 정황에 환인은 미묘한 예감을 느끼며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지형이 험해도 너무 험한 데다 안개까지 자욱하게 껴서일까. 데바스톤 산맥에는 마수나 괴물이 없었다.

안개 속에 숨어지내기 좋아 날짐승이나 비행형 마수, 괴물이라면 좋아하면서 살법도 한데 환연의 정령 감시, 이모렐과 영혼들의 광범위 수색에도 마수나 괴물로 분류될만한 생물은 발견되지 않았던 것.

하지만 중간중간에 장해물이 계속 나타나 일행의 발목을 잡았다.

독기가 뭉클거리며 맺혀 앞을 가로막는다던가 길이 끊겨있다든가 감각을 교란하는 술법적인 안개가 해당 지역에 고정되어있다든가.

독기는 아영이 광범위 정화로 단번에 치웠고 벼랑으로 길이 끊긴 곳에서는 유르파가 일행에게 경량화 비술을 걸은 뒤 노른과 이모렐이 일행을 하나하나 건너편으로 옮겼다.

감각 혼란 안개는 환인이 영혼 폭발을 날려 아예 소멸시켰고 환상진으로 길을 숨긴 곳에서는 환연이 정령 시야로 길을 찾아 안내해주었다.

일련의 장해물에 이실리테가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마치 이 안으로 들어오지 말라는 것처럼 느껴지네…….=

평범한 모험가라면 몇 번 목숨이 위험했을만큼 주변과 어우러진 장해물은 목숨마저 앗아갈 수 있는 수준이었다.

감각 혼란에 걸려 추락사하던가 환상진에 속에 벼랑 아래로 뛰어내리게 된다던가 무색무미무취의 독안개 속에서 독에 중독되어 죽었던가.

‘초입의 잡령도 한두 마리가 아니라 수십 마리가 달려들었다면 일반적인 4~5급 직업자도 당해내기 어려웠을지 모르지.’

어쨌든 각자의 재치와 활약으로 험준한 산맥을 가로지른 일행은 아감간이 지도에 표시해준 곳, 유달리 표식이 짙은 곳을 7시간 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쿠에를 타고 쉬지 않고 길 안내를 받으며 이동한 덕분이었다.

그렇게 목적지에 도착한 일행은 눈 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광경에 할 말을 잃었다.

약간 완만하게 기울어진 산자락에는 녹색 잔디가 깔려있고 곳곳에는 분홍색 꽃망울을 활짝 피운 벚나무가 곳곳을 꾸미고 있다.

비탈을 따라 맑고 깨끗한 개울이 흐르고 산 주변은 운무가 용처럼 휘감은, 짙푸른 녹음으로 뒤덮인 산이 병풍처럼 감싼 장소.

“도원향을 옮겨놓은 듯한 장소군.”

=도원향?=

“별천지…… 신들의 정원과 비슷한 장소라고 생각하면 된다. 온갖 근심걱정 없이 살아갈 수 있다는 천국과도 같은 장소지.”

안느의 질문에 대답해주는 환인의 시선은 그런 도원향 같은 장소의 한가운데, 나무로 감춰진 듯한 목조 주택에 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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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너무 늦어서 죄송합니당!!

전편에 달아주신 댓글은 하나하나 정독했습니다.

독자님들의 뜻에 따라 삽화는 가급적 고퀄리티로 내용에 방해가 되지 않게 잘 뽑아서 적용하겠읍니당

감사합니닷!!

[작품 설정]

도원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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