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1 산 옆 마을 체블리프
일행의 이동 속도는 일반적이지 않은 수단, 공간 이동이나 비행을 제외하고서는 최상위 수준으로 꼽는다.
쿠에 세 마리가 마차를 끄는 데다 그 마차도 각종 술법 및 고가의 강화 소재로 만들어 거친 노면을 충분히 달릴 수 있을 만큼 튼튼하기 그지없다.
물론 몇 년째 하루 평균 6시간을 달리면 그런 튼튼함도 마모되기 마련.
덜컹- 와자작! 쿠궁, 콰과과곽—!!
=꺅!?=
=악!=
=엄마!=
덜컹- 마차 축이 파열되는 소리와 함께 한쪽 앞뒤 바퀴가 튕겨 나가고, 기울어진 마차가 끌려가며 굉음과 요동이 발생하자 여자들의 비명과 쿠에들의 울음소리가 어지럽게 튀어나온다.
아영이 놀란 쿠에들을 진정시키는 한편 마차에서 내린 일행은 완전히 파손된 마차의 구동축과 추진축을 보고 머리를 긁적이거나 안타까움의 한숨을 흘렸다.
=안 되겠다. 마차 축이 완전히 박살 났어.=
=하부 골격이 완전히 뒤틀렸네요. 아까 충격 때문인가?=
=그런 것도 있고 2주 넘게 길도 없는 곳을 달렸잖아. 축이 마모될 대로 마모됐겠지.=
=매일같이 점검했는데 진짜 징조도 없이 부서지네.=
마차를 옆으로 눕혀 하부를 살피는 안느와 아영의 대화에 백려강이 물자 운송용 아공간 상자를 가리키며 묻는다.
=안느 언니. 저기에 여분의 부품이 있잖아요. 마을이 앞이니까 심각한 부분만 교체한 뒤에 마을에 가서 수리하면 안될까요…?=
=어려워. 여기 비틀린 곳 보이지? 이 이상 달리면 밑판이 완전히 쪼개져서 나머지도 다 부서질 거야.=
=아…….=
=주인님. 어떻게 할까요?=
“마을까지 쿠에들을 타고 갈 수밖에. 부피가 크거나 무거운 짐은 아스펜드로 옮기고 나머진 쿠에들 등에 적당히 나눠서 실어라.”
환인의 지시에 여자들이 마차에 실린 짐을 나눠 쿠르티, 쿠핀, 쿠라의 등에 싣고 유르파는 마차에 걸린 비술을 해제한다.
그사이 주변을 감시하던 백려강이 동쪽을 돌아보며 환인을 불렀다.
=오라버니. 저쪽에 상단이 멈춰섰어요. 일부가 말을 타고 달려와요.=
목적지가 같은 체블리프인지 백려강의 독수리 같은 시야에 줄곧 잡히던 상단 행렬이다.
마주치거나 할 일은 없기에 신경 쓰지 않고 있었는데.
신수 형태가 된 노른의 등에 짐을 적당히 싣던 환인도 고개를 돌려 그쪽을 보자 말을 탄 예닐곱 명이 먼지가 날 정도로 달려오고 있었다. 그중 하나는 4급 직업자에 셋은 3급 직업자.
적당한 거리에서 속도를 줄이더니 멈춰선 그들 중 4급 엽사 직업자인 인묘족 여자가 목소리를 높였다.
=이쪽은 체블리프 마을을 거점으로 하는 요단 상회의 상단 행렬입니다. 멀리서 보니 마차가 부서진 것처럼 보였는데, 도와드릴 게 있을까요?=
환인은 그리모암의 강력을 발동하지 않은 상태라지만 그를 제외하고도 일행 중 절반이 7급의 고위 직업자의 아우라다.
상단 입장에서는 고위 직업자로 이뤄진 파티와 인연을 맺을 기회로 보였겠지.
“마음은 감사하지만 괜찮습니다.”
=그러십니……!?=
대답하던 한쪽 귀가 접힌 고양이 귀 여자는 눈앞에서 한순간 반파된 마차가 사라지는 모습에 눈을 크게 떴다.
뭐, 뭐지? 손도 안 대고 마차가 사라졌는데…….
뒤늦게 여자의 시선이 환인의 일행을 천천히 눈에 담는다.
여섯 명 중 두 명이 희귀 직업자에 셋이 7급. 거기다 저기 여섯 장의 날개 짐승은 뭐지? 그리폰인가? 아니 그리폰하고도 다른데……. 저 여자는 플라비우스족도 아니면서 다쌍익에 키는 무슨 질리언트처럼 크고…….
상행 책임자는 순간 이 일행에게 접근한 게 실수는 아닐까 했지만, 안느와 아영을 보곤 괜한 걱정이라고 일축하며 인사했다.
=그러십니까? 괜한 오지랖을 부려 불편하게 해드린 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 배려가 한층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 법이지요. 요단 상회라고 하셨습니까. 차후에 한 번 방문토록 하겠습니다.”
=아, 예. 저는 요단 상회의 행수, 니흘라입니다. 상회에 오셔서 절 찾으시면 제가 책임지고 모시겠습니다.=
역시 기우일 뿐이다. 무직자인 남자가 일행을 대표하는 거 같지만 뭐 다른 나라의 어디 높으신 분의 자제거나 하겠지.
저렇게 예의가 가득한 사람이 어디 무식한 살인귀겠어?
4대 국가의 왕자라 해도 셋이나 되는 7급 직업자의 호위를 받는 건 불가능하지만, 애써 그 사실을 외면하며 불길한 상상을 하지 않으려는 니흘라였지만.
“괜찮으시다면 마을까지 동행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민폐는 끼치지 않겠습니다.”
환인의 이야기에 상단으로 돌아가려다 움찔하면서 헤헤, 웃음을 흘렸다.
=그러십시오. 마을까지 저희가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요단 상회의 행수가 돌아가고 이실리테는 백려강과 쿠르티를, 유르파는 아영과 함께 쿠라의 등에 타고 안느는 혼자 타는 대신 등에 좀 더 많은 짐을 싣자 어찌어찌 이동할 준비가 끝난다.
=어떻게 짐을 다 챙길 수 있긴 하네.=
마차까지 챙기다보니 장작까지 넣을 자리가 없어 수백 킬로그램은 될법한 장작은 다 버리게 되었지만, 장작 정도는 마을에 가서 보충해도 될 일.
“요단 상회가 이쪽을 기다리고 있는듯하니 가지.”
실루를 데리고 노른의 등에 올라탄 환인이 앞장서자 여자들도 그의 뒤를 따른다.
오랜만에 쿠핀의 등에 탄 안느가 환인의 옆에 붙으며 물었다.
=도령, 상단 사람들하고 같이 가자고 한 거 혹시 대현자에 관해서 물어보려고 그러는 거야?=
“그래. 마차와 수레 15대에 여행객들 수십 명을 데리고 이동할 정도라면 제법 멀리 돌아다니는 상단이라는 뜻일 테니까.”
=음……. 그들이 그런 고급 정보를 알고 있을까? 대성녀님도 모르고 계셨잖아.=
“알고 있을 가능성은 한없이 낮겠지.”
=그런데 일부러 묻는 이유가 뭐니?=
아영을 뒤에 태운 유르파가 쿠라를 몰아서 환인의 곁에 붙으며 묻자 환인이 이쪽을 쳐다보는 상단 행렬을 응시하며 대답했다.
“대현자가 어디에 있는지 아느냐는 질문을 던지는 게 아니라, 상행 중에 이상한 소문을 듣거나 특이한 장소에 대해서 묻는 겁니다. 마을이나 도시 간 이동이 빈번하지 않은 세계에서 상인들은 누구보다 많이, 멀리 돌아다니는 이들이니까요.”
=아.=
=오.=
=확실히 그런 거라면 정보 집단 다음으로 저들이 유용하죠. 오빠 말대로 상행을 하는 상인들은 해당 지역에 대해서는 빠삭하니까요.=
=그런 거야…?=
이실리테의 뒤에 타서 그녀의 허리를 꼭 끌어안고 있던 백려강이 묻자 아영이 어깨를 으쓱했다.
=빠삭하지 못한 상인은 괴물, 마수, 도적이나 산적들하고 마주쳐서 죽으니까. 결과적으로 빠삭한 상인들만 남게 됐다고 해도 무방하겠네.=
그 이야기에 백려강은 섬뜩하다는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환인과 함께 여행하면서 백려강이 느낀 것은, 호족이나 귀족, 하다못해 고족과 준귀족이 아닌 사람들의 목숨은 자신이 생각하던 것보다 몇 배는 가볍다는 것이었다.
이번 기플라족 마을만 보아도 일행이 도착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전부 죽었을 것이다.
니라인에서도 1만 이블팩션 대군이 쳐들어왔는데 일행이 없었다면 사상자가 수십, 수백 명은 났을 것이고 거인숲 미궁도, 흑마술사가 자리 잡았던 투라드 마을도, 흐라스린드도.
=오라버니가 지구로 돌아가시려는 이유를 어쩐지 알 것 같아요…….=
=…어째서인가요?=
뒤에서 백려강이 중얼거리는 소리에 이실리테가 관심을 드러냈다.
=언니들이 이야기해주셨잖아요. 오라버니가 살던 곳은 무척 평화로운 곳이었다고요. 저라도 이런 세상에서는 별로 살고 싶지 않을 거 같아요…….=
=…….=
이때까지 그가 지구로 돌아가려는 것에 깊게 생각한 적은 없었는데 확실히……. 관점을 그렇게 보면 이야기가 맞아떨어진다.
백려강은 노른을 타고 선두에서 달려가고 있는 환인의 뒷모습을 눈부시다는 듯이 바라보다 그녀에게 물었다.
=이실 언니. 오라버니가 돌아가실 때…… 저희도 데려가 주시겠죠?=
=주인님이라면 반드시 그러실 거에요. 약속하셨으니까요.=
그래. 반드시 그러실 거다.
하지만 대답하는 그녀도, 대답을 들은 그녀도 어째서인지 가슴 한쪽에 불안이 가시질 않았다.
괜한 걱정일거야. 그리 생각하면서도 두 여자는 오랫동안 그의 뒷모습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 그러면 정산 후 찾아뵙겠습니다, 성제님!=
“예. 부탁드립니다.”
산 옆 마을 체블리프, 인구수가 800명이나 되는 대형 마을에 도착한 환인은 지하굴 미궁을 돌파하며 얻은 다수의 하급 부산물을 니흘라에게 넘겨준 뒤 마을 동장, 라드세아의 사도 같은 역할을 하는 관리자의 저택으로 향했다.
쿠에를 타고 도시의 구색이 거의 갖춰져 가는 체블리프의 대로를 걷던 안느가 입을 열었다.
=결국 주변에 특이 사항은 없다는 거네.=
=주인님의 신분이 알려지고 니흘라 씨가 직접 뛰어다닐 정도로 이야기를 모아주셨으니까. 없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
=으음~ 특이 사항이 없다는 게 오히려 특이 사항일 수도 있죠?=
=뭐야, 그 선문답 같은 말은?=
안느가 고개를 돌려 유르파의 어깨 위에 턱을 올린 아영을 본다.
=속세와 완전히 떨어져서 사는 게 아니라면 어느 정도 큰 마을이나 도시 근처에 사는 게 편하기도 하고 정체를 숨기기에도 좋은 법이에요. 게다가…….=
아영의 시선이 마을 언덕 너머 불쑥 솟은 하얀 봉우리로 향한다.
=바로 근처에 천암 산맥이 있죠? 평지나 초원에 세워져서 숨어있을 만한 곳이 없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나 산맥이랑 가깝다면 의외로 근처에 살고 있을 수 있다고 봐요. 히스론드의 사도님도 도시 안에 숨어 살고 계셨고요.=
=그러면 저 넓은 산을 일일이 수색해야 한다는 거네……?=
=…….=
여자들의 이야기가 끊어졌다.
솔직히 직접 두 눈으로 보기 전까지는 천암 산맥이라고 해서 얼마나 클까 했었다.
오면서 천주 산맥, 니오네브레스 5대 산맥 중 하나를 보긴 했지만 너무 멀어서 작게 보인 탓도 있었고 5대 산맥 중 하나라는 실감이 별로 나지 않았던 것.
하지만 체블리프에 도착하고 보니 말이 나오지 않을 지경이다.
여기서 천암 산맥 초입까지 걸어서 일주일 거리. 그런데도 저만큼이나 커 보인다니, 대체 얼마나 크고 넓다는 이야기지.
그런데 저길 일일이 수색해야 한다고?
……뭐, 어떻게든 되겠지. 생각하길 포기한 느낌으로 여자들은 번화한 체블리프를 돌아보며 마을 분위기, 건물 느낌 등을 두고 이야기를 나눈다.
=마을이라고 해서 작을 줄 알았는데 꽤 넓네. 거의 소도시급 아니니?=
=그러게요. 저 언덕 위에 큰 집이 동장의 저택일 테고…… 그런데 저 언덕 위 기둥들은 다 뭘까요?=
=저거 횃대야. 플라비우스족 횟대.=
=아.=
=멀리서 볼 때는 언덕에 비교되어서 그런가 마을이 작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크네요. 건물도 다 깔끔하고.
환인도 어디 스위스의 한적한 시골 도시 느낌의 거리를 둘러보다 시계를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대성녀의 휘광을 빌어 자신의 이름으로 메리아놀 협의회에 독촉장을 보낸 지 96시간에 더해 7분이 지나는 중이다.
이로써 좋게좋게 이야기를 끝낸다는 길은 닫혔다.
환인은 재잘거리는 여자친구들을 바라보다 통신 수정구를 꺼내 들고 위상력을 흘려 넣는다.
부우웅— 살갗을 간지럽히는듯한 진동음과 함께 수정구슬 안쪽에 굳은 표정의 샤스라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나타났다.
“샤스라 영성님.”
[성제님.]
“준비했던 입장문을 4국의 외교 부서로 전달 부탁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심사숙고하여주십시오. 이 입장문을 발표한다면 되돌릴 수 없습니다. 성제님께서는 메리아놀과 척을 지게 되며 그 과정에 성제님의 여인들이 크게 다칠 수도 있어요.]
자신을 향한 걱정을 아낌없이 드러내는 은빛의 미녀에게 환인은 달래듯이 부드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제 여자들이 다친다면 그 몇백 배가 넘는 메리아놀의 귀족이 쓸려나갈 겁니다. 그정도도 모를 사람들이 아니겠지요. 그리고 그녀들도 각오한 사항이니, 부탁드립니다.”
[……후우. 알겠습니다. 만물을 사랑하며 보듬어주시는 자비롭고 자상하신 자애신이시여. 부디 성제님께서 걸어가실 앞길을 보우하여주시길…….]
그녀의 기도문을 들으며 통신을 종료한 환인은 당장 노른을 타고 메리아놀 해를 넘어 패시지로 날아가 혼령주를 투하하고 싶다는 욕망을 억눌렀다.
전쟁. 개인이 국가를 상대로 싸움을 걸다니, 지구에서는 물론이고 니오네브레스에서도 십중팔구는 무리, 무모한 짓이라고 손가락질하겠지.
하지만 환인은 환인 나름대로 지난 수년간 니오네브레스의 지식과 상식을 수집하며 자신과 승산이 있었다.
원래 가진 게 많은 인간일수록 약점도 많고 잃을 게 많아 겁도 많은 편이다.
여자친구들만 지켜야 하는 자신과 달리 메리아놀 협의회의 인간들은 가문과 가문의 땅과 식솔에 명예에 재산도, 지위도 지켜야 한다.
환인이 앞으로 벌어질 일을 시뮬레이션하고 있을 때 천릉의 코트 안주머니가 꼼질 거리더니 환연의 한심해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결국 싸움 걸었네. 뭐, 저쪽이 먼저 싸움을 걸어온 거지만.」
“그래. 그러니 열심히 체력 단련해서 얼른 릴라이스와 계약해라.”
「해서 널 지켜달라고?」
“내 한 몸 정도는 건사할 수 있다. 네가 릴라이스와 계약한다면 일행 중 가장 강해지는 셈이니 그 힘으로 여자들을 지켜달라는 거다.”
「어휴.」
환연은 말을 꺼내지 않았지만, ‘남자란 어쩜 이렇게 성급한지 모르겠다’는 느낌의 한숨을 내쉬었다.
반년을 기다려왔으니까 앞으로 한 달 정도는 더 기다릴 수 있잖아.
그 협박성 항의 서한을 받은 이상 메리아놀은 절대 환인을 무시할 수 없을 테고, 무시당하더라도 손해가 아니다. 그걸 바탕으로 라드세아와 히스론드에 벨티칼까지 끌어들여 여론전으로 갈 수 있으니까.
그러면 무조건 이쪽이 유리한데 왜 어렵고 평판도 나빠지는 길을 고르는 걸까?
환연이 보기에 그는 지금 힘을 쓸 상황을 바라고 있었다.
‘위력 시위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 게 가장 효과적이긴 하지만……. 이엘카타가 본 전견시를 다르게 실현해버리려는 속셈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지구로 귀환하면 그만이니 평판 따윈 신경 안 쓰고 막 질러버려도 된다는 사고가 깔려있기 때문일까.
「……모르겠다~.」
“뭐가 모르겠다는 거지.”
「환인 네가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다고. 아무튼 난 점심 트레이닝을 위해서 쉬어야겠으니까 더 말 걸지 마.」
“…그래.”
어딘가 까칠하군. 생리도 하지 않을 텐데 근육통과 피로에 정신이 날카로워져 있는 건가.
환인은 어느새 가까워진 동장의 저택과 거기로 이어지는 오르막길을 올려다보았다.
그곳에는 이쌍익의 플라비우스족 남자가 긴장한 표정으로 하녀, 하인 차림의 단쌍익 플라비우스족 일곱과 서 있었다.
이쪽을 기다리는 모양새를 보면 요단 상회에서 연락을 한 거겠지.
행수인 니흘라도 성제인 자신을 소문으로 들어 알고 있었다고 했다. 그녀가 자신을 알고 있을 정도인데 소도시에 가까운 마을을 다스리는 동장이 모를 리 없다.
오르막길을 다 오른 환인이 노른의 등에서 내리자 학자풍 미중년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이쌍익 남자가 가슴에 손을 올리며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어, 어서 오십시오. 체블리프의 동장인 유르나하라고 합니다. 환인 성제 예하의 방문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그가 허리를 숙이자 뒤에 있던 사람들도 일제히 허리를 90도 각도로 숙인다.
“반갑습니다. 환인이라고 합니다. 과한 예의는 부담스러우니 부디 평범한 영혼사처럼 대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러시다면……. 일단 보는 눈이 많으니 성제님과 영혼 기사님들을 안채로 모시겠습니다.=
동장이 직접 대문 밖에 나와있으니 내리막길 너머에서 지나다니던 사람들이 무슨 일인가하고 하나둘 멈춰 이쪽을 구경하는 중.
유르나하가 손짓하자 뒤에 서 있던 플라비우스족 하인, 하녀들이 그의 여자들에게서 정중히 고삐를 넘겨받는다.
화아악—
「받아.」
=으헛!?=
노른은 자신의 고삐를 잡으려고 다가오는 하녀를 보고 신수화를 풀어 짐을 하녀들에게 던져주곤 검은색 원피스를 입고 환인의 옆구리에 찰싹 달라붙었다.
당연히 마중 나와 있던 플라비우스족들은 놀람을 넘어 기함했다.
성제가 타고 다니는 녹색 쿠에는 신수라는 소문이 있던데 정말이었나!
유르나하는 녹색의 귀여운 날개를 단 소녀를 잠깐 얼이 빠진 얼굴로 바라보다 문득 알려줘야 할 것을 알려주지 않았다는데 생각이 미쳤다.
하마터면 큰일 날뻔했군.
=저, 성제님?=
“예.”
=깜빡 말씀을 드리지 않았는데 저택에 성제님을 기다리는 귀하신 분이 계십니다.=
“…절 말입니까.”
환인의 눈빛에 의아함이 깃들었다.
누가 자신을 기다린다는 걸까. 행적이 다소 알려지긴 했지만 이렇게 대놓고 기다릴 사람은 없을 텐데.
혹시 불쾌한 부탁이나 청탁을 하려는 귀족들인가.
=그렇습니다. 성제님과 인연이 있으시다며 일주일 전부터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아, 저기 오시는군요.=
=어?!=
환인의 고개가 돌아가기 전에 안느의 경악성이 먼저 터져나왔다.
대체 누구길래 그녀가 저런 반응을…….
=아빠?!=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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