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궁기담-671화 (671/813)

671 땅속 마을 베르헨

겁먹고 우는 기플라족을 달래는 건 안느와 아영이 맡았다.

이실리테, 유르파, 백려강, 하다못해 노른과 환연이 다가가도 기플라족 세 명은 빼애액- 숨넘어가는 비명을 지르며 울었지만, 플뢰족인 안느와 아영이 다가가면 히끅거리면서 울긴 해도 비명은 지르지 않았던 것.

=아영은 그렇다고 해도 플뢰족은 온화함의 상징이니까요.=

=저도 온화한데요?!=

=하지만 암살자잖아.=

=아.=

그런 둘의 활약 덕분에 기플라족의 울음이 잦아들긴 했지만 두려움과 긴장은 여전했다.

환인이 조금만 움직여도 움찔거리거나 흠칫거리며 울음을 터트릴 것처럼 눈망울이 그렁그렁해졌던 거다.

“저대로 둬서는 대화가 안 되겠군. 이실리테, 유자차에 꿀을 타서 가져와다오.”

=네, 주인님.=

겁이 많거나 우는 아이들을 달래는 데에는 달콤한 것이 가장 좋은 법.

꿀을 탄 유자차를 맛본 기플라족은 입에 사탕이 물린 아이처럼 울음을 그치고 유자차를 홀짝홀짝 마시기 시작했다.

물론 경계심이 심해진 아이는 먹을 걸 받았다고 해서 덥석 입에 집어넣지 않는다.

자신에게 악의는 없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음식도 해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환인도 그들에게 등을 돌린 채 여자친구들과 유자차를 마셨다.

“…….”

뜨거운 유자차가 들어가자 조금 긴장이 풀리는지 기플라족 세 명의 창백하던 얼굴에 조금씩 홍조가 돌기 시작한다.

그걸 확인한 환인은 그들에게 시간을 줄 겸, 가까이 다가와 다리에 머리를 비비는 실루의 머리를 토닥였다.

“이제 불을 쓸 수 있게 되었군. 노른과 비교해 성장이 느린 게 아닌가 싶었지만 제대로 크고 있는듯해 안심했다.”

삐이~.

실루가 태어난지도 어느덧 반년이 다되어간다. 그런데도 아직 몸 크기는 한 번도 변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걱정했지만 실루가 불부터 뿜는 것을 봤을 때 노을색과 녹색 쿠에는 성장 방식에 차이가 있는 거겠지.

「내가 그랬어?」

“그래. 본격적으로 바람을 다루기 시작한 것은 네가 아성체에 들어선 뒤였으니까.”

「그랬나…….」

=그랬어. 온전하게 날아다닐 수 있게 된 것은 성체가 된 뒤였잖아.=

이실리테가 말을 거들었지만 두 손으로 머그컵을 잡고 꿀 탄 유자차를 홀짝이는 노른은 아무렴 좋다는 표정이었다. 옛날 일은 옛날 일이고 지금 일은 지금 일이니까.

그런 노른의 머리를 쓰다듬어준 환인은 중급 불의 정령을 몸에 강령한 뒤 손끝에 불의 기운을 맺어 실루의 부리 앞에 내밀었다.

그러자 태어난 지 몇 주 되지 않았을 때와 달리 불의 기운에 바로 반응해서 환인의 손가락을 부리로 ‘앙’하고 문다.

=자기, 이제 어떻게 할 거니?=

유자차를 거의 다 마신 유르파가 기플라족을 힐끔거리며 묻는다.

먹을것의 효과인지 이쪽을 향한 두려움과 경계심이 한결 누그러진 모습. 환인도 그걸 확인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실루도 찾았으니 땅을 원래대로 돌려놓고 출발하겠습니다.”

처음에는 기플라족에게 곤충형 이형종의 역류 현상에 대해 물어보고 미궁이 근처에 있다면 잠깐 들러볼까 했다.

원래 일정은 대현자를 찾아 파편인을 좀 더 빨리 해소하는 방법과 자신의 몸에 벌어졌던 이상 현상에 대해 아는 것이 있는지 물어본 다음, 대평야에 있다는 5급 미궁을 찾는 것이었다.

그러나 가는 내내 미궁에 먼저 들러볼까 고민했다.

현재 파편인도 1/3가량 해소한 상태. 영기 순환도 완전히 적응했기에 잠깐 미궁을 돌아보는 건 괜찮지 않을까 했던 것.

하지만 일정을 자기 내키는 대로 바꾸는 짓은 하고 싶지 않은 환인이었기에 참고 있었다.

그랬는데 미궁 역류의 현상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싶은 기플라족을 만났다.

이게 인연이 아니면 무엇이 인연일까.

‘인연이라 해도 저런 상태라면 곤란하지.’

기플라족이 저렇게 겁이 많고 폐쇄성이 강하다면 소통에 문제가 있을 게 뻔하다.

소통이 맞지 않아 고통받을 바에는 깔끔하게 포기하고 대현자를 만난 뒤에 예정했던 대평야의 미궁을 찾아가는 게 낫다.

환인은 다 마신 유자차 컵을 이실리테에게 돌려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어 여자친구들에게 돌아가자고 말을 꺼내려던 순간.

=저, 저기…….=

뒤에서 들려온 소녀의 목소리에 환인은 가까이 다가온 기플라족 소녀를 돌아보았다.

약간 갈색이 감도는 검은 머리. 호박색으로 빛나는 눈동자.

잔뜩 긴장한 것처럼 손가락이 하얗게 변할 정도로 머그컵을 꼭 쥔 소녀가 자신을 올려다보는 모습에 환인은 한쪽 무릎을 꿇어 소녀와 눈높이를 맞추며 말했다.

“무서워하는 중에 말을 걸어서 미안합니다. 열어놓은 땅도 완벽하게 되돌려놓고 떠날 테니 걱정하지 마시길.”

=아, 아니에요……. 저… 여행자님의 쿠에를 함부로 데려가려고 해서… 죄송했습니닷!=

허리를 푹 숙이는 검은 머리 소녀의 사과에 환인은 의외라는 표정을 옅게 드러냈다.

말투와 행동에서 소녀라기보다는 성인의 반응이 느껴졌던 것. 설마 눈앞의 소녀는 소녀가 아니라 기플라족의 성인인 걸까.

안느를 돌아보자 안느도 모르는 눈치인지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다.

하긴. 기플라족이 멸망했다고 알려진 것은 그녀가 여행을 떠나기 전의 일.

그녀도 기플라족을 직접 본 적 없겠지. 그건 유르파도 마찬가지일 테고.

“괜찮습니다. 충분히 오해가 벌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으니까요.”

=저, 그, 여행자님을 나쁜 사람으로 오해한 것도 사과드릴게요….=

그렇게 말한 기플라족은 간절한 눈빛과 표정으로 환인에게 부탁했다.

=저희, 저희 마을에 들러주시면 안 될까요? 마을이 위기에 빠져서, 강한 여행자님의 도움이 필요해요……!=

“……혹시 해서 묻겠습니다만, 기플라족이 맞으십니까.”

=네에!=

“그 위기가 곤충형 이형종의 출현 때문입니까.”

=네, 네! 몇 달 전부터 이형종이 나타나기 시작해서, 마을이 점점 고립되고 있어요……. 마을 사람들이 아르주앙 분들이랑 열심히 싸우고 있지만, 숫자가 너무 많아서…….=

“…….”

=땅을 저렇게 만들 정도로 강한 여행자님이시면, 도와주실 수 있으실 거 같아서…… 부탁드려요!=

소녀가 다시 허리를 꾸벅 숙이며 큰소리로 부탁하니 그걸 본 다른 두 기플라족 소년소녀도 긴장한 모습으로 그에게 다가가서 허리를 숙였다.

=부, 부탁드립니닷!=

=도와주세요…….=

환인의 시선이 여자친구들에게 향하자 다들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알겠습니다. 일단 마을로 가면서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앞장서십시오.”

마차를 아스펜드에 수납한 환인은 자신을 힌로라고 소개한 기플라족 소녀를 따라 땅굴을 이동했다.

처음에는 소형화를 받아 움직이려 했지만, 환연이 그냥 동굴을 확장해버리자고 해서 땅의 정령이 넓혀준 길을 따라 이동했다.

=굉장하다……. 굴을 넓히려면 다섯 명이 꼬박 붙어서 작업해야 하는데…….=

여자 대부분에게 사랑받을 정도로 귀엽게 생긴 소년이 시시각각 넓어져 가는 토굴의 넓이에 감탄하자 환연이 대수롭지 않다는 얼굴로 대답했다.

「이 정도는 상급 땅의 정령에게 별거 아냐. 너희가 먼저 작업해놓은 견본도 있고. 그보다 너 어른이야?」

=응…? 맞아. 나도, 힌로하고 유이우도 어른이야.=

「몇 살인데?」

=난 열다섯이고 힌로는 열일곱, 유이우는 열셋이야.=

기플라족의 성년은 12살로 평균 수명은 약 60년, 힌로는 사람으로 쳤을 때 27살이며 소년은 24살, 다른 기플라족 소녀인 유이우는 20살 정도라는 이야기였다.

=겉으로는 10살 정도로 밖에 안 보이는데…… 정말 어려 보이네요.=

백려강이 유르파에게 속삭이는 걸 들으며 환인은 힌로에게 몇 가지를 질문했다.

마을의 넓이, 마을 사람 숫자, 이형종이 어디에서 출현했는지, 얼마나 습격해오고 있는지, 미궁의 위치는 파악했는지.

=마을에는 200명 정도가 살고 있어요. 집은 80채 정도가 있구요. 이형종은 갑자기 나타났는데 마을 사람들이 원인을 찾아봤더니…….=

대충 기플라족은 아르주앙이라는 온화한 개미 마수와 공생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아르주앙이 만든 통로를 통해 이형종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다고.

=마을 사람들이 아르주앙과 힘을 합쳐 그 이형종과 열심히 싸우고 있지만, 숫자가 너무 많아 열세에요……. 시간이 흐르니까 다른 길에서도 이형종이 나오고 있고 이형종이 마을 농장을 공격하기 시작해서……. 다치는 마을 사람도 많아졌고 이형종한테 납치당한 사람도, 얼마 전에는 죽은 사람도 나왔어요…….=

“그랬군요. 그러면 여기도 공격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일 텐데 여러분들은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저쪽 갈림길 끝에는 밖으로 연결된 통로가 있는데 그 근처에 질 좋은 약초 군생지가 있어요. 다친 사람들을 치료하려고 약초를 캐고 돌아오는 길에 여행자님의 쿠에를 발견한 거였어요.=

환인의 어깨 위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환연이 물었다.

「그러면 통로를 이렇게 넓혀놨다간 오히려 이형종이 이용할 수 있겠네?=

=여기까지 이형종이 출현하면 그땐 마을을 버리고 탈출해야 할 때니까요…….=

「음.」

흐려진 힌로의 표정에는 근심이 가득했다. 실제 마을을 버릴 것도 염두에 두기 시작했을 만큼 상황이 좋지 않은 모양새.

그렇게 20분 정도 걸었을 때 땅굴은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고, 거기서 얼마 가지 않아 도무지 땅속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풍경이 일행의 앞에 드러났다.

여기저기 관목과 수풀이 자라고 있는 넓은 공동, 땅에도 잔디가 파릇파릇한 데다 어찌 된 영문인지 꽉 막힌 천장에서는 눈 부신 햇살이 쏟아지고 있다.

=여기가 저희 마을이에요…….=

평범한 집은 없었다. 대부분 벽도 없이 잘 깎은 바위를 담처럼 만들어 밖과 안을 구분하고, 안쪽에는 반들반들한 돌을 깔아서 생활하는 방식.

일부 집은 커다란 바위의 안쪽을 파내 만들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천장이나 벽 없이 노출된 집에서 지내고 있었다.

덕분에 환인 일행이 도착한 것을 순식간에 알아차린 기플라족은 꺅,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려다가 힌로와 유이우, 나페(소년)의 설명에 긴장을 내려놓으며 모여들었다.

=그냥 봐도 강해 보이는 여행자님들이야…….=

=우와, 쿠에다…. 깃털 폭신해 보여!=

제일 키가 큰 기플라족도 환인의 명치에 닿지 않을 정도. 거기다 외모 또한 초등학교 1~2학년 정도로 보여 환인은 살짝 곤란한 기분을 느꼈다.

아이들은 나라의 미래이니 친절하게 대해야 한다는 부모의 가르침이 반사적으로 떠올랐기 때문.

상대가 이종족에 어른이라고 하지만, 한국에서 26년을 산 환인의 눈에 기플라족은 초등학생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하나둘 정도면 애써 무시하기라도 하겠는데 지금 상황은 두 학급 정도 되는 아이들이 모여있는 것으로 보이니 부모님의 가르침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수준이다.

그때 초등학교 3학년 정도의 얼굴에 얌생이 수염이 난 기플라족이 힌로에게 다가갔다.

=힌로. 약초는 캐왔어?=

=여기 있어요.=

=다행이다. 다친 사람이 또 나와서 모아둔 약초로는 부족할 거 같았거든.=

=네? 어디서요? 누가 다쳤는데요?=

=아래쪽 귤 농장에 페뷔스 떼가 와서 아우네가 다쳤어. 아르주앙이 지켜주지 않았다면 살아서 돌아오지 못했을 거야……. 그보다 위험한 일은 없었고? 저 사람들은 누구야?=

=오는 길에 우연히 만난 강하고 착한 여행자님들이에요. 저희를 도와주신다고 하셨어요.=

=응. 플뢰족이 두 명이나 있는 거 보면 그런 거 같네. 안녕하세요?=

“……예, 반갑습니다. 우연히 힌로 양과 마주친 환인이라고 합니다. 일행의 책임자입니다.”

=저는 쿠알이라고 해요. 다친 이장님 대신 임시로 이장을 맡고 있어요. 마을을 도와주신다고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아닙니다. 이렇게 여러분들과 만난 것이 인연이라고 생각하니까요. 그리고…… 아영.”

=옙! 쿠알 씨? 전 성술사거든요. 다친 분들 치료해드릴 수 있으니까 그분들이 어디 계신지 안내해주실래요?=

=서, 성술사! 정말인가요?!=

=뭐? 성술사? 성술사가 있어?=

=어디? 누구?=

=성술사님!=

성술사라는 이야기에 여자들보다 쿠에들에게 더 관심을 보이던 기플라족이 우르르 모여든다.

=성술사 아우라가 이렇구나. 우와~.=

=예쁘다아. 근데 언니는 왜 발가벗고 있어?=

=어?!=

=얘가, 그런 거는 묻는 게 아니에요!=

=…….=

아영은 키가 90cm도 안 되는 아이의 질문에 얼굴이 빨개져서는 유르파에게 달려가 시스루 망토를 받아 몸에 걸친다.

=성술사님 이쪽이에요. 다친 사람들은 모두 한데 모여있어요.=

=옙……. 그럼 오빠, 다녀오겠습니다.=

=아영아. 나도 같이 가.=

안느도 사고의 내막을 듣기보단 다친 사람을 치료하는 쪽이 더 끌리는지 아영과 함께 간다.

“그러면 쿠알 씨, 힌로 씨. 마을이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된 자세한 이야기를 들려주시겠습니까.”

=물론이에요. 힌로? 네가 데려온 손님이니까 네 집에 모실래?=

=당연히 제가 모셔야죠. 환인 님, 저희 집으로 모실게요. 이쪽이에요.=

“예.”

힌로의 집은 마을에서도 제법 높은 장소에 마련되어있었다.

환인의 기준에 기플라족의 집은 집이라기보다 돌로 만든 정자 느낌이었지만 아무튼, 쿠알은 아르주앙 대표를 데리러 간다고 잠시 돌아간 상황.

=이거 드시면서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아저씨가 곧 오실 거에요.=

야트막한 담 너머로 마을 전경이 보이는 곳에 앉으니 힌로가 감귤이 담긴 바구니를 가져와 내밀며 자리에 앉는다.

환인은 힌로를 잠깐 바라보다 바구니에서 주먹만 한 감귤 몇 개를 꺼내며 살짝 목례했다.

“고맙습니다.”

마을 밖이 위험해진 데다 농장을 공격받았다면 식량 사정이 나쁠 수 있지만, 이런 상황에서 보여주는 성의는 상대의 자존심을 배려해서라도 받아들이는 것이 좋다.

식량이 정말 위험한 상황이라면 여기까지 오며 사냥한 짐승형 마수나 동물의 고기를 꺼내 나누어주어도 되는 일이니까.

환연에게 감귤 껍질을 까주고 있으니 쿠알이 기립 보행을 하는 개밋과의 충인족 한 명과 함께 찾아왔다.

그 모습이 예상 밖이라 백려강과 유르파가 눈을 조금 크게 뜬다.

아르주앙과 공생한다는 이야기에 일반적인 개미는 아닐 거라 생각했는데 설마 충인족이었을 줄이야.

=늦어서 미안해요. 이 친구를 찾느라 마을을 조금 돌아서.=

췻. 치이.

=이 친구도 만나서 반갑다네요.=

‘과연. 통역 기관이 없어 마수로 분류되는 건가.’

크기는 기플라족보다 머리 하나 정도 더 큰 수준. 개미는 크게 확대하면 상당히 그로데스크하고 징그럽지만, 눈앞의 아르주앙은 사람 정도로 모습을 키웠음에도 곤충 특유의 혐오스러움은 없었다.

전체적인 색은 은색에 가까운 흰색, 다리는 팔처럼 움직이는 두 개와 다리로 기능하는 네 개가 있으며 머리는 데포르메한 것처럼 동글동글하다.

전체적으로 유아용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개미를 조금 더 리얼하게 만들어 일으켜 세운 모습이라고 할까.

“아닙니다. 그러면 이야기를 시작해볼까요. 마을의 통로와 연결된 곳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이형종의 등급은 어느 정도였습니까.”

취이. 칫, 츠으으.

아르주앙 대표가 하는 말을 쿠알이 통역해준다.

=어…… 대부분은 아르주앙 병정이 1:1로 싸워 이길 정도였고 가끔 두셋이 붙어야 할 정도로 센 이형종이 나왔다고…… 하는데 여행자님은 알아듣기 어렵겠네.=

=충인족 병정개미 급이라면 2급 직업자 정도로 분류되는 게 일반적이에요. 아르주앙 대표씨는 병종이 어떻게 되시나요? 상급 병정이시라고요……. 잠시 힘겨루기를 해봐도 될까요.=

이실리테의 요청에 아르주앙 대표가 더듬이를 한차례 까닥이고는 끝에 사람 손처럼 네 갈래로 나뉜 팔을 내민다.

그 손과 손을 마주한 이실리테는 서로 미는 힘을 통해 상대방의 근력을 가늠한 뒤 환인에게 알려주었다.

=바깥의 다른 충인족 분과 비슷하다고 판단돼요.=

“그렇다면 2급 이형종이 다수에 3급 이형종이 가끔 출몰한다는 건가. 그 강한 이형종과 얼마나 마주쳤습니까.”

츠읏, 츠르르…… 츠?

=둥지에서 탈출하기 전까지 총 일곱 정도. 그보다 강해 보이는 이형종도 한 번뿐이지만 본 적 있다고 해요.=

“그럼 최소 4급에서 최대 6급 미궁이 아르주앙 분들의 둥지와 연결된 셈이군요.”

보통 역류에서 미궁의 심층에 있는 이형종까지 나오는 경우는 드물다. 6급 미궁이 역류를 일으킨다면 5급 정도 되는 이형종까지만 미궁에서 빠져 나와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식이다.

간혹 드물게 6급 이형종도 나간다고 하지만 역류를 일으킨다 해도 심핵을 지켜야 할 병사는 있어야 하니 많은 숫자는 아니다.

즉, 현재로서는 4급 미궁일 가능성이 가장 크고 5급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츠으으. 츠릇.

아르주앙 대표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미궁의 위치는 현재 파악하지 못하였다. 아니, 이형종이 넘어오는 숫자가 무시무시해 그곳으로 들어가지조차 못했다.

미궁이 역류한 것인지, 아니면 근처에 개방형 미궁이 있어 거기에서 빠져나오는 건지도 알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지금 마을 상황은 대단히 나빠요. 200명 중에서 70명이 다쳤고 이형종한테 끌려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를 사람도 있고…….=

이어지는 이야기는 대충 마을 상황이 얼마나 나쁜지에 대한 이야기였다.

200명 마을 사람을 먹여 살리기 위한 농장은 마을 주변에 10개가 있었는데 그중 9개가 이형종에게 공격당해 파괴되었고 유일하게 남은 하나에서 근근이 먹을게 나오고 있다.

하루에 한두 번 이형종의 습격이 이어지고 있으며 공격해오는 이형종은 마을에 합류한 아르주앙과 기플라족이 힘을 합쳐 물리치고 있지만 부상자가 계속 느는 중이다.

기플라족은 손재주가 매우 뛰어나고 힘과 체력, 민첩성도 성인 루크랑 여성을 훌쩍 뛰어넘을 정도의 평균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호전성이 낮아 근접전은 아예 못한다고 봐도 무방하고 기초 스펙이 높기 때문인지 전사, 투사, 술법사의 각성 비율이 타 종족에 비해 1/3 정도밖에 안돼 더욱 악재가 되었다.

이 때문에 마을에 합류한 아르주앙이 전방에서 이형종을 틀어막으면 기플라족은 석궁이나 활을 만들어 남녀 할 것 없이 후방에서 지원하는 식으로 싸우고 있다고.

=여행자님들이 오기 전에는 마을을 버릴 생각도 했어요. 하지만 히아리드 대평야는 강한 괴물과 마수가 득실거려서…… 다친 사람도 많아서 여길 빠져나간다 해도 가까운 도시까지 몇 명이나 살아서 도착할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거든요.=

그렇게 말한 쿠알은 환인 일행을 걱정하는 눈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니까, 위험을 무릅쓰고 지하로 내려가지 않아도 돼요. 천암 산맥으로 가신다고 하셨죠? 가시는 길목에 있는 도시 근처까지 호위만 해주셔도 충분해요. 물론 사례는 드릴게요.=

쿠알이 그 말과 함께 꺼낸 것은 아름답게 커팅한 각종 보석이었다.

돈으로 환산하면 30금화는 족히 할만한 물건들.

=제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저까지…… 가끔 발견하는 보석 원석을 깎아서 만든 거예요. 이거 말고는 바깥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게 없어서…….=

“…….”

보석을 잠시 바라보던 환인이 눈을 감자 그 행동을 부정적으로 해석한 쿠알은 시무룩해졌다.

바깥사람은 보석을 좋아한다고 해서 가끔 보이는 걸 보석으로 만들어놨는데…… 이걸로는 부족한 걸까.

톡톡.

어떻게 하지, 마을 사람들한테 바깥사람이 좋아할 만한 거 모아보라고 할까. 그렇게 생각하던 쿠알은 힌로가 옆에서 건드리는 느낌에 그녀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그녀의 눈빛에서 생각을 읽은 쿠알은 차마 말리지 못하고 더더욱 침울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그를 대신해 힌로가 조심스레 말을 꺼낸다.

=저… 환인 님?=

“……?”

=바깥 남자 사람은 저, 저희 기플라 여자를 좋아한다고 들었어요. 가까운 도시까지 마을 사람들을 호위해주시면 제 몸을 드릴게요.=

환인은 숨이 턱 막혔다.

초등학교 1~2학년 정도 되는 소녀에게 저런 선언을 들었더니 돌아가신 부모님 두 분이 힌로의 뒤에서 엄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환상까지 보일 지경.

“……아닙니다. 생각을 정리할 게 있어 그랬던 건데 여러분께 불안을 드린 것 같군요.”

=아! 감사합니다. 그러면 제…….=

그녀가 뭘 말하려는지 알 것 같은 환인은 살짝 두통이 오르는 걸 느끼며 힌로의 입을 막았다.

“힌로 양. 그러지 않아도 됩니다. 다른 남자는 어떨지 모르지만 제 취향은 여기 있는 제 연인들 같이 성숙한 여성이니까요.”

=앗. 아, 네…….=

못미더운 대답에 속으로 한숨을 내쉰 환인은 쿠알에게 보석 주머니를 받아들고 말했다.

“쿠알 씨와 힌로 양의 의뢰, 받아들이겠습니다. 만약 미궁의 정리가 불가능해 보인다면 그때 가서 여러분들을 가까운 도시까지 안내해드릴 테니 걱정하지 마시길.”

그의 대답에 쿠알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하고 힌로는 이걸로 된 걸까, 신경쓰인다는 표정을 짓는다.

두 사람의 상반된 반응에 환인은 다시금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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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페도 아웃!

[작품 설정]

힌로

(대충 페도 죽어 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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