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0 히아리드 대평야
구멍에 빠진 실루가 한참을 구르다 도착한 곳은 거의 직각에 가깝게 위로 꺾인 동굴이었다.
데굴데굴 구르다가 몸이 다시 쑥 떨어지는 느낌에 정신이 없던 와중에도 반사적으로 날개를 파닥거려 낙하 속도를 줄이는 실루였지만…….
삐! 삐이…….
정상적인 활공이 아니었기에 콩, 하고 엉덩방아를 조금 세게 찍고 말았다.
아직 어린 쿠에라고 해도 실루는 녹색 쿠에와 함께 희귀함의 정점에 있는 노을색 쿠에. 평범한 쿠에들보다 더 튼튼한 데다 애초에 몸집이 작아 낙하 충격도 크지 않다.
그 충격마저도 폭신한 노을색 깃털 덕분에 대다수 해소되어 금방 정신을 차린 실루는 자그마한 고개를 들어 자신이 떨어진 곳을 올려다보았다.
삣?
올라가기에는 너무 높고 가파르다. 경사가 아니라 벽이라고 해야할 수준.
사람이면 몰라도 두 다리와 두 날개뿐인 실루가 벽을 타고 오르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이다.
바람과 비행이 주특기인 녹색 쿠에였다면 날아서 되돌아갈 수 있지만, 노을색 쿠에인 실루는 할 수 없다. 애초에 날개 크기도 비상과 비교하면 절반밖에 안 되고.
어쩌지. 자그마한 머리로 고민하던 실루는 조금 불안하긴 해도 겁먹지 않고 ‘어쩔 수 없지!’ 몸을 돌려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평범한 밀짚색 쿠에였다면 겁먹어서 웅크린 채 주인인 환인이나 대장인 노른이 오길 기다렸겠지만, 실루는 다르다.
비록 부모가 밀짚색 쿠에라고 해도 환인과 함께 세 곳 미궁을 탐험했다.
미궁을 탐험하며 자신보다 아득히 강한 이형종과 괴물도 많이 보고 그런 괴물과 이형종이 주인과 대장에게 쓸려나가는 것도 자그마한 두 눈에 전부 담은 실루다.
만약 파라미터가 보인다면 용기와 용맹이 최대치를 찍은 걸 볼 수 있을 것이다.
삐으. 삣.
빛 한 점 닿지 않아 칠흑처럼 까만 동굴. 하지만 야간 시야 능력을 개화한 실루는 제집 안방 마냥 타박타박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길을 따라가다 보면 언젠가는 밖으로 나갈 수 있겠지?
어린아이 특유의 앞뒤 맥락이 맞지 않는 무대포 정신이 발휘된 덕분에 발걸음도 가볍다.
그렇게 얼마간 오르락내리락하며 높이 1.2m 정도 되는 토굴을 탐험하듯 걸어가던 실루는 귓가를 자극하는 소리에 멈춰 서서 고개를 쭉 뽑았다.
삐이?
이건 무슨 소리지?
사각사각사각사각…….
듣고 있자니 꽁지깃이 간지러워지는 기분에 파드닥 꽁지를 한차례 흔든 실루는 자세를 낮추고 조심스레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삐!
자신의 덩치 반만 한 거대한 곤충과 마주친 실루는 눈을 반짝이며 기대감에 삣, 하고 울었다.
엄마가 가끔 찾아주는 바삭하고 달콤한 즙이 많은 맛난 벌레와 똑같이 생겼던 것.
그건 한입에 들어올 정도로 작았는데 저건 엄청나게 크다. 크니까 먹을 것도 많겠지?
꽁지깃을 바짝 세우고 머리를 잔뜩 낮춘 실루가 슬금슬금 거대한 집게벌레에게 접근한다.
삐이이.
스슷? 스스스슷.
집게벌레를 닮은 곤충도 실루의 식욕을 느끼고는 꽁무니의 집게 같은 돌기를 벌려 세운 채 스스스슷 운다.
잠시간의 교착이 지나가고 먼저 움직인 쪽은 대형 집게벌레였다.
여섯 개의 다리로 파바밧 달려든 대형 집게벌레가 더듬이 같은 촉각을 채찍처럼 휘두르자 뒤로 폴짝 뛰어 공격을 피한 실루는 즉시 달려들어 부리 끝으로 대형 집게벌레의 머리를 파바박 쪼았다.
쓰스슷! 쓰읏!
머리가 쪼개지는 충격에 대형 집게벌레는 꽁무니의 집게를 전갈 꼬리처럼 뻗어 실루의 머리를 움켜쥐려 했지만.
삣!
실루는 오히려 대형 집게벌레의 머리를 발톱으로 콱 움켜쥐고 집게 한쪽을 부리로 물어 낚아채버렸다.
쓰스슷!
쁘븝!
실루와 대형 집게벌레의 힘겨루기가 이어졌다.
대형 집게벌레의 촉각과 주둥이, 다리가 미친 듯이 꿈틀거리고 집게 또한 접혔다 펴졌다 하지만, 집게 바깥쪽을 부리로 꽉 물고 집게벌레의 머리를 짓밟은 실루에게는 아무런 피해가 없다.
뚜둑!
씃!!
급기야 집게 한쪽이 끊어져 투명한 체액이 뿌려진다.
그 바람에 겨우 구속에서 풀려났지만, 머리 갑각도 금가고 집게도 끊어진 대형 집게벌레는 전의를 상실하고 허둥지둥 도망치려 했다.
삐잇!
물론 도망치게 둘 실루가 아니다.
용맹하게 달려들어 부서진 집게벌레의 두부 갑각을 마구 쪼고 그럭저럭 단단한 발톱으로 퍽퍽 걷어차기 시작하는 실루.
씃! 쓰, 쓰읏! 쓰으쓰…….
무자비한 폭력에 노출된 대형 집게벌레는 속수무책으로 얻어터지다 결국 머리가 깨지며 죽고 말았다.
삣!
이겼다!
단단한 키틴질 껍질을 쉬지 않고 쪼아댄 부리가 조금 얼얼하지만 어쨌든 완벽한 승리.
실루는 생에 첫 승리에 뿌듯해져서 주인과 대장에게 자랑하려고 뒤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뒤에는 시커먼 어둠뿐.
삐…….
잠깐 시무룩해졌지만 금방 기운을 차린 실루는 첫 사냥감을 배부르게 포식한 다음 보무도 당당하게 통로를 나아갔다.
「으음. 이거…… 실루가 한 건가?」
실루가 이동했을 거로 판단되는 토굴을 따라 대평야를 나아가던 환연은 정령의 눈으로 보이는 광경에 눈썹을 살짝 찡그렸다.
그녀의 혼잣말을 들은 안느가 우려를 드러내며 묻는다.
=무슨 흔적이길래?=
「엄청나게 큰 벌레가 죽어있어. 척 봐도 실루보다 조금 작은 정도인데…….」
환연의 이야기에 여자들의 표정이 더욱 안 좋아진다.
그 말은 몸길이만 수십 센티미터라는 뜻이다. 땅굴 속에 그만한 크기의 곤충이 있다면 괴물이나 마수화한 거라고 봐도 무방하다.
아직 새끼인 실루가 그런 곤충들과 마주쳤다면…….
백려강이 걱정하는 눈으로 환연에게 물었다.
=환연. 주변에 핏자국이나 실루의 깃털이 있나요?=
「아니. 핏자국은 없고 벌레가 쏟아낸 거로 보이는 체액의 흔적뿐이야. 그리고 벌레는 껍질만 남아있어.」
=뭐? 실루가 혼자서 땅굴을 탐험이라도 하고 있단 거니?=
유르파가 황당해하자 아영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새끼라고 해도 노을색은 노을색이네요. 평범한 밀짚색이었으면 겁먹고 오들오들 떨고 있었을 텐데 혼자 용감하게 모험을 즐기고 있고.=
=하아아. 이걸 대견하다고 칭찬해야 할지 무모하다고 혼내야 할지…….=
중요한 건 아직은 무사하다는 거다.
안느가 고운 눈썹을 찡그리곤 빠르게 움직이는 마차 위에서 땅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렇다고 해도 폭 1.3m 정도의 땅굴이야. 평범하게 생겨날 만한 물건이 아니니까 빨리 실루를 찾아야 해.=
재수 없으면 이형종이 파놓은 굴일 수도 있고 그보다 더 재수 없으면 땅속에서 살아가는 마수가 만들어놓은 굴일 수도 있다.
그 굴을 만든 생물과 실루가 마주쳤다간 높은 확률로 실루의 죽음으로 이어진다.
“토굴은 외길인가. 좀 더 속도를 올리지.”
환인의 지시에 이실리테가 쿠에들을 다그쳐 속도를 높인다.
아무리 서스펜션이 좋다지만 노면도 아니고 대초원의 풀밭을 달리니 요동이 더욱 심해지지만, 여자들의 머릿속에는 실루를 향한 걱정만 가득할 뿐이다.
그렇게 얼마간 달리고 있으려니 죽은 벌레의 흔적이 더욱 잦아지기 시작했다.
「흔적이 점점 많아져. 뭐지? 거대화한 벌레가 왜 이렇게 많아?」
=벌레가 어떻게 생겼는데? 개미야?=
수첩을 꺼낸 아영이 묻자 환연이 정령의 눈으로 본 벌레의 생김새를 묘사해준다.
그 묘사에 따라 아영이 그림을 그리자 옆에서 본 안느가 어이없어했다.
=집게벌레에 지네하고 꼽등이, 거미에 곡나방에 깔따구에 지렁이? 뭐야, 뭐가 이렇게 두서없어?=
=근처에 절지류 미궁이 역류를 일으켰나 본데요? 이 땅굴을 만든 놈들은 이것들 때문에 땅굴을 버리고 도망간거 같고요.=
여자친구들의 대화를 묵묵히 듣고만 있던 환인은 갑자기 땅속에서 불쑥 솟아오른 나사라트의 일월급 암살자 영혼, 소위의 보고에 눈빛이 깊어졌다.
「토굴에 소수 종족의 생활 흔적이 보입니다. 발자국 크기와 토굴의 높이, 지상의 강력한 괴물을 피해 지하에서 생활하는 습성을 보면 기플라족일 가능성이 큽니다.」
기플라족, 한마디로 요약하면 소인족이다.
영도의 기록실 자료에는 어린아이 같은 외모에 손재주가 무척 뛰어나지만, 선천적으로 겁이 많아 외부 사람을 기피하는 소수민족이라고 간단한 삽화와 짤막한 문구가 적혀있었다.
‘실루의 흔적은 찾지 못했나.’
「예. 다시 수색을 다녀오겠습니다.」
‘지금 같은 특이사항을 발견하면 다시 보고해라.’
「예.」
알몸의 표범 귀 암살자는 보고 후 다시 땅속으로 쑥 들어갔고 환인은 여자친구들에게 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기플라족? 그 종족은 라드세아 북서부 지방의 마지막 마을이 없어지면서 공식적으로 멸망했다고 들었는데?=
=나사라트 쪽 암살자들은 추적술에 일가견이 있는 편이니까 잘못 봤을 가능성은 낮을 거예요. 기플라족이면 이런 땅굴을 만들어도 이상하지 않기도 하고요.=
=그들이 만든 땅굴을 벌레가 차지했다면……. 아영이 네 말대로 땅속에 미궁이 생겨났을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겠네.=
=……그럼 실루를 더 빨리 찾아야겠는데요.=
=…….=
=…….=
여자들의 표정이 다시 흐려졌을 무렵 또 다른 흔적을 발견한 환연이 짧게 탄성을 터트렸다.
「어? 와 이거…….」
삐이으…….
슈르르…….
연전연승으로 목에 잔뜩 힘이 들어간 실루는 배도 부르고 자신감도 가득 차올라 토굴을 제집인 양 기운차게 활보했다.
자기보다 3배는 더 긴 지네가 몸을 휘감으려 했을 때는 솔직히 식은땀이 흘렀지만, 결국 승리한 것은 자신.
그렇게 꽁지 깃털을 으쓱거리며 나아가다 마주친 거미는 보자마자 실루의 긴장감을 잔뜩 끌어올렸다.
일단 크기부터가 자신의 2배를 훌쩍 상회할 정도다.
거기에 진회색으로 번들거리는데다 털이 숭숭 난 10개의 다리.
몸통 쪽으로 갈수록 분홍색이 짙어지다 등 부분에서 다시 진회색으로 짙어지는 껍질 색.
위로 살짝 치켜든 등딱지는 피처럼 붉은색과 밤하늘처럼 검은색이 알록달록하다.
그리고 자신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크고 작은 6개의 눈.
저 눈은 자신을 대적자가 아닌 먹이를 바라보는 눈이었다.
실루의 시선이 거대한 타란툴라의 다리로 향했다.
다리 하나하나가 자신의 다리 정도로 굵다. 저기에 맞으면 아픈 거로 끝나지 않겠지?
외나무다리에서 마주친 원수처럼 서로를 탐색하는 실루와 거대 타란툴라.
실루는 자그마한 머리로 저 거미를 어떻게 공격해야 할지 생각하다 전조도 없이 펄쩍 뛰어 덮치는 타란툴라의 행동에 화들짝 놀랐다.
좌우 다리 6개를 활짝 펴고 앞다리를 쭉 뻗으며 날듯이 덮쳐오는 타란툴라를 피해 파다닥 날갯짓하며 뒤로 급히 물러난 실루는 내심 심술이 나 아르릉거렸다.
삐으으……!
내가 먼저 공격하려고 했는데……!
하지만 경거망동은 할 수 없다.
방금 공격이 깜짝 놀랄 정도로 빨랐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크고 강하고 아름다운 대장이 적이랑 싸울 때 적을 알아야 이길 수 있다고 했던 것을 떠올려서였다.
그래. 지금까지 싸운 것들은 먹이다. 그리고 저건 적.
적은 좌우로 딱딱 끊어지듯 움직이며 왠지 신경 쓰이는 동작을 하기 시작한다.
뭔가 약 올리는 거 같은데 보고 있자니 머리가 어질어질한 기분.
위험하다 느낀 실루는 타다닷, 다시 뒤로 물러섰고 타란툴라는 그만큼 앞으로 다가와 다시금 좌우로 덩실덩실 움직이기 시작했다.
또 조금씩 눈앞이 어지러워진다. 하지만 그 덕분에 실루는 타란툴라가 행동할 때 다리만 미세하게 움직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저거다.
삣!
타란툴라가 움직이는 순간을 틈타 파다닥, 홰까지 치며 날아오르는 실루.
선공을 뺏겨 움찔했던 타란툴라는 날아오는 실루를 향해 잘됐다는 듯이 더듬이 다리를 위협적으로 내밀며 협각을 활짝 열었다.
삐?
어?
날아올라 두 발로 타란툴라의 앞다리를 쳐내고 등에 올라타 머리를 잔뜩 쪼아주려 했던 실루는 적의 턱이 좌우로 벌어지는 장면에 극심한 위기감을 느꼈다.
저곳에서 뭔가 쏠거 같은데. 뭘 쏘려는 거지? 맞으면 위험한 거?
피해야 하는데 몸이 붕 뜬 상태라 피하기 어렵다. 날갯짓으로 어떻게 방향을 틀더라도 이미 조준이 끝난 상태라 늦었다.
못 피한다.
그걸 깨달은 실루는 갑자기 가슴속에 뜨거운 열기가 훅하고 치밀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가슴속이 들끓는다. 타는 거 같이 뜨거운데 아프진 않은 이상한 느낌. 실루는 본능적으로 자그마한 부리를 열어 속에서 들끓는 무언가를 토해냈다.
삐이이잇!
화아아악~
위아래로 벌어진 붉은색 부리 안에서 새빨간 불길이 토해지는 동시에 타란툴라의 주둥이 안에서도 마취 효과가 있는 산성 용액이 쏘아졌다.
중간에 서로 만난 불길과 산성 용액.
치이익—!
산성액은 기화하며 그 기세를 급격히 잃었지만, 쏟아진 불길은 산성액을 태우고도 기세를 잃지 않고 타란툴라를 집어삼켰다.
키이이잇!!
온몸의 촉각 역할을 하던 털이 타오르고 키틴질 껍질도 1000도에 가까운 불길 속에서 시뻘겋게 익어간다.
눈알을 포함에 온몸이 익는 고통에 벌렁 뒤집힌 타란툴라는 다리를 부르르 떨었다.
목숨은 붙어있지만, 불길에 살이 익으며 몸이 오그라들어 움직이지 못하게 된 상태.
실루는 자신이 뿜어낸 불길에 자기가 놀라 얼떨떨해하다가 일단 타란툴라의 머리를 부리로 쪼았다.
삣!
콰직.
머리가 으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킥, 단말마를 지른 타란툴라.
거대 거미가 죽은 것을 툭툭, 다리로 차서 확인한 실루는 잠깐 불에 구워진 거대 타란툴라를 끔뻑끔뻑 쳐다보았다.
방금 불은 내가 뿜어낸거지? 어떻게 했더라?
좀전의 느낌을 떠올리며 삣, 쁏, 삑, 부리를 뻐끔뻐끔 벌렸다.
이렇게였나? 아니면 이렇게?
뻐끔뻐끔.
푸화아악~
재차 새빨간 불길이 부리에서 뿜어져 나와 거대 타란툴라를 또다시 집어삼킨다.
삐이!
됐다!
실루는 신나서 작은 날개를 파닥거리면서 폴짝폴짝 뛰어다녔다.
나도 대장처럼 힘이 생겼어!
엄마 말이 진짜였다. 나도 크면 힘이 생길 거라는 말.
그러면 나도 대장처럼 강해질 수 있는 걸까? 엄마는 내가 대장만큼 강해질 수 있을 거라고 했는데!
신나서 훅훅 불길을 뿜어내던 실루는 문득 다리에 힘이 빠지는 것을 느끼며 풀썩 주저앉았다.
꼬르륵-
이상하다. 아까 맛있는 거 잔뜩 먹었는데 배가 엄청 고프다. 눈앞이 빙글빙글 돌고 뱃가죽이 등가죽에 달라붙는 기분.
아…… 불도 막 뿜으면 안 되는 거구나…….
이 허기의 이유를 알게 된 실루는 코앞에서 위아래 골고루 구워져 향긋한 냄새를 풍기는 타란툴라로 시선을 돌렸다.
파삭- 파작- 쪼르륵—
불에 구워진 타란툴라는 무척 맛있었다.
=……실루가 불을 뿜었다고?=
「주변에 불탄 자국이나 구워져서 먹힌 거미 흔적을 보면 틀림없어.=
=…….=
=…….=
아니 진짜 뭐지? 땅굴 속에서 대모험을 즐기고 있는 건가?
여자들은 그냥 놔두면 알아서 모험을 끝내고 돌아오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게 실루가 마주친 타란툴라는 팜포베테우스라는 명칭의 산성 독액까지 쏘는 유명한 이형종이다.
하급이라지만 멋모르고 싸우다 독액에 맞아 죽는 일도 생기는, 초보자 사냥꾼이라는 별명의 독거미인 것.
“일단 흔적은 계속 이어지고 있으니 다행이군.”
「환인. 그냥 내가 굴 안으로 들어가서 찾아갈까? 그쪽이 더 빠를 거 같아.」
“그럴 거였으면 처음부터 보냈다. 아니, 유르파에게 소형화를 받고 들어갔겠지. 상황을 보면 적당한 시련이 되어주는 듯하니 이대로 계속 간다.”
여자들은 그의 반응에 수긍하며 조바심이나 우려, 걱정을 조금 내려놓았다.
처음 실루가 사라졌을 때만 해도 적극적으로 움직이던 환인이었다. 그랬는데 지금은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이다.
이번 일탈이 실루의 성장에도 도움이 되고 있어 일단 지켜본다는 느낌인 것.
환인이 그러한 판단을 내린 이유에는 영혼들이 가져오는 정보를 취합한 결과가 있었다.
「토굴은 지하 300m까지 닿고 있습니다.」
「지하로 내려갈수록 땅굴이 넓어지지만 동시에 강력한 이형종 개체도 보여요.」
「굴은 대체로 일방통행이지만 갈림길도 있는데, 갈림길은 기존의 토굴과 달리 허술합니다. 이형종이 억지로 확장 공사를 한 것 같습니다.」
「역류가 일어난 듯 한데요. 땅굴 곳곳에 재배농장 같은 것이 있는데 대부분 절지류 이형종에게 점령당한 상황이에요.」
지상과 가까운 곳일수록 약한 이형종이 많고 지하로 내려갈수록 강한 이형종이 출현하는 환경이다.
지금 실루가 이동 중인 통로는 잠깐 내려가다가 위로 다시 올라가는 상황. 실루를 위협할만한 수준의 이형종은 나오지 않을 테니 큰 걱정은 없다.
무엇보다 흔적이 점점 생생해지고 있으니 얼마 안 가 실루를 발견할 수 있겠지.
「아! 실루야!」
예상대로 얼마 지나지 않아 환연의 외침이 터져나왔다.
「뭐야? 누군가랑 같이 있는데? 쟤들이 기플라인가? 아! 실루를 억지로 데려가려고 해!」
=환연, 어느 방향이야?=
「저쪽으로 500m!」
마차가 더욱 속도를 내자 진동도 덩달아 격렬해진다.
여자들이 마차에서 튕겨 나가지 않도록 지붕에 달라붙는 가운데 거리는 순식간에 좁혀졌고, 「여기! 밑이야!」 환연이 위치를 확인하자마자 환인의 지시가 내려졌다.
“환연, 땅의 정령으로 기플라들이 도주할 길을 막고 땅을 들어내라.”
「응!」
땅의 상급 정령에게 부탁한 것일까. 지름 70여 미터 정도 되는 땅이 들썩거리다 여닫이문처럼 땅이 벌컥 하고 열렸다.
두께가 13m에 달하는 땅이 젖혀지며 땅속에 구불구불한 1자형 통로가 드러나고, 잔뜩 겁먹은 얼굴로 틀어막힌 반대쪽 벽에 달라붙어 벌벌 떠는 소년소녀들이 이어서 일행의 시야에 들어온다.
삐? 삐삐! 삐이~!
그리고 일행을 발견하곤 날개를 파닥거리며 삐삐 우는 실루.
=실루 이 녀석!=
안느가 먼저 마차에서 뛰어내려 삑삑거리는 실루를 안아 들고 다친 곳은 없는지 살폈다.
겉 깃털 몇 장이 끊어지고 쓸린 곳이 있지만, 직접적인 상처는 없다.
=어휴, 실루야. 함부로 집을 나가면 어떡하니. 걱정했잖아.=
=너 돌아가면 언니들한테 좀 혼나야겠다.=
삐이~?
여자들에게 둘러쌓인 실루는 자신이 왜 혼나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혼내는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 눈알만 데굴데굴 굴리며 안느의 품에 얌전히 안겨있는다.
그사이 실루가 무사한 것을 확인한 환인은 서로 부둥켜안고 오들오들 떠는 소년, 소녀들에게 다가갔다.
겉보기에는 순수하고 순박해보이는 미소년, 미소녀들.
환연은 저들이 실루를 억지로 데려가려 했다고 했지만, 기플라족이 몸에 걸친 것은 섬유로 짠 옷. 가죽이나 깃털은 전혀 장식되어있지 않은 걸 보면 나쁜 의도로 실루를 데려가려한 것 같지는 않다.
“여러분…….”
=꺄아아악?!=
=으아악!=
=엄마야~!=
나름 부드럽게 입을 열었지만, 환인의 목소리는 기겁한 소년, 소녀들의 비명에 파묻혀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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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지각 죄송...
[작품 설정]
실루
환연은 크기 비교로 출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