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궁기담-666화 (666/813)

666 협곡 도시 니라인

=흐… 흐흥…… 으헤헹…♪=

환인의 지시에 따라 출발을 위해서 마차를 전체적으로 꼼꼼히 살피던 안느는 비키니 레이스 복장으로 콧노래를 부르며 짐을 나르는 아영을 보고 황당해 했다.

=쟤 부끄럽네 뭐네 그렇게 날뛰더니 도령이 좋아한다고 싹 바뀐 거 봐.=

=후후. 그래도 귀엽지 않니? 너희들이 군침 흘리는 이 몸은 오직 자기 꺼라고 과시하면서 시스루 망토도 안 걸치고 있는 거.=

=귀엽긴 하지. 아, 그런데 망토 말이야. 입으니까 안쪽이 언뜻언뜻 드러나는 게 더 파렴치하더라.=

=엥?=

=조금 격하게 움직이면 망토 자락이 흩날리는데 그때 안쪽의 비키니 일부만 보이니까 아름다운 비키니 레이스 의복이 아니라 속옷만 입은 치녀처럼 보였거든.=

그 탓에 아름다운 미술품을 미술의 미도 모르는 초보자가 덧칠한 느낌이라고 할까.

=그런 문제점이……! 활동량을 아가씨들이 아니라 날 중점으로 생각해서 나온 문제네…=

=응. 그런데 저렇게 있으니 여자 몸의 아름다움을 있는 대로 전부 표현하는 굉장히 우아한 복장이란 말이지. 율이 언닌 어떻게 그런 디자인을 생각해냈대?=

거기다 행동에 자신감이 붙으니까 더욱 자연스러워 보여서 아름다움이 더더욱 살아나고 7급 성술사의 아우라까지 있으니 접대부처럼 여겨지지도 않는다.

만약 자신이나 이실리테가 입으면 머리카락 색이나 몸매가 어울리지 않아 아영처럼 예쁘지 않을 것이다.

이실리테 같으면 무지막지한 가슴 때문에 단정치 못하게 보여서, 자신은 멀대같이 크기만 해서 매력이 크게 줄겠지.

레이스 비키니를 제대로 소화할 수 있는 사람은 라벤더색 머리카락에 슬렌더에다 단정한 단발 숏컷인 아영이 뿐이라는 이야기.

=예술은 모방과 각색이라잖니? 후후후……. 아무튼 그렇게까지 칭찬해주니까 노력해서 만든 보람이 있는걸.=

=그전에 입고 있던 가죽 갑옷이 미적인 측면에서 워낙 괴멸적이었기도 했고.=

산란못 미궁의 중핵 두꺼비 보스에게 채취한 가죽으로 만든 투박한 갑옷을 떠올린 유르파가 쿡쿡 웃었다.

=갈색 분홍색 적색의 3색 조합은 좀 아니었긴 해. 안느 아가씨, 이쪽은 수상한 거 없어. 그쪽은?=

마차 하부 구동축까지 살펴본 뒤 마차 밑에서 빠져나오는 유르파에게 마차 지붕에서 내려온 안느도 고개를 끄덕인다.

=이쪽도 없어. 위치 추적 마도구를 신경 써야 할 정도가 됐다니, 이대로 가면 메리아놀에 도착할 즈음에 어느 정도의 명성이 쌓일지 궁금하네.=

=이번 청옥 혼령주까지 알려지면 신분 높은 사람들은 자기를 단순한 영혼사로 안 볼 거야. 저번 거인숲 미궁 앞에서 보여준 것까지는 ‘혹시?’, ‘설마?’ 하고 망상 회로 돌려서 무력시위로 받아들일 수 있겠지만, 이번에는 빼도 박도 못하니까.=

비록 조무래기인 호브와 콜브로 8천을 채운 1만 대군이었지만, 전장에서 직접 날린 공격이다. 도구나 술법의 원조를 받았다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환연이 상급 정령을 불러들여 깽판 치고 노른이 폭풍을 일으킨 것을 그의 다른 능력으로 오해하지 않을까 싶은 수준.

=그러니까 대부분은 8~9급 술법사와 같게 볼걸.=

=9급 술법사라…….=

도령이 펼친 청옥 혼령주 규모의 대범위 술법은 펼치고자 하면 어떻게든 펼칠 수는 있다.

8급 술법사가 핵이 되어 연산과 조율을 맡고 다수의 7급, 6급 술법사가 위상력 배터리가 된다면 비록 제약은 있어도 ‘펼칠 수는’ 있는 것.

=그만한 술법을 도령 혼자서 펼치니까 9급으로 봐도 무방하겠네.=

이때까지 도령을 그저 굉장한 유일 직업자라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9급이라는 급수 덕분에 현실감이 갑자기 확 와닿는다.

일면식도 없는 초일류 대기업 부사장보다 지금 다니는 20인 규모 중소기업 사장이 더 힘있게 느껴지는 것과 비슷한 맥락.

그때 양팔에 짐가방을 네 개씩 든 이실리테가 그녀들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유리 언니, 그쪽은 어때요? 이쪽은 출발 짐 정리 끝났어요.=

=앗. 여기도 끝났어. 우리도 짐 가지러 가야겠네.=

=여기 유리 언니 가방이요. 안느는 이거 맞지?=

=어 맞아. 역시 우리 파티의 엄마라니까.=

=누가 엄마야……. 조사는 끝났어? 마차는 어때?=

=깔끔해. 부여술이 덧씌워진 흔적도 없고 수상한 부착물도 안 보여.=

환인이 지시한 것은 이쪽의 동향이 새어나갈 수 있는 위치 추적, 혹은 도청 관련의 마도구 조사였다.

나사라트의 특급 암살자가 여섯이나 습격해온 마당이다. 이쪽이 습격받아 정신이 없는 와중에 다른 조직원이 몰래 신호기나 발신기를 붙일 수도 있는 일이 아닌가.

환연의 감시 범위에 마차가 계속 있었다면 모르지만, 중간에 자리를 비운 적이 있어 만약을 위해 조사를 시킨 것.

=이슬아. 대협곡을 건넌 뒤에는 마을이나 도시는 거의 없다고 하던데, 들었어?=

=응. 주인님이 말씀해주셔서 이번에는 반년 치 식재료를 장만했어. 이게 그 가방이야.=

4개의 자루에 가까운 주머니를 흔들어 보인 이실리테는 짐칸에 차곡차곡 주머니를 쌓으며 말했다.

=안식처의 식수 공급도 있고 환연의 상급 정령도 식수를 만들 수 있게 되어서 다행이야. 식수까지 해서 반년 치를 준비했다간 짐칸을 전부 물과 식량으로 채워야 했을 테니까.=

=중급 정령이 만든 물에 정화를 쓰고 성수 뿌리면 마실 수 있잖아?=

=식수를 확보할 수 없는 상황에서라면 고마운 기술이지만, 그런 상황이 아닐 때는 될 수 있으면 쓰고 싶지 않아.=

=물맛이 차이 나나 보네.=

=응.=

이실리테는 이전에 한 번, 그렇게 만든 물로 환인에게 커피를 타준 적이 있었다.

물론 커피를 주기 전에 직접 시음해본 이실리테는 두 가지의 맛이 더해졌기에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환인은 이맛살을 작게 찌푸리며 “수돗물로 탄 커피 같군…….”이라 말한 걸 아직 기억하고 있었다.

수돗물이 뭔지는 모르지만, 부정적이라는 어감은 확실했다. 주인님이 비선호 하는 것을 음식에 쓸 수는 없다.

어느샌가 하던 일도 멈추고 모인 여자들이 숙덕이기 시작했다.

=수돗물이 뭐지? 수도…… 물의 길에서 나온 물?=

=자기가 겹말 오류를 쓰진 않을 텐데.=

=주인님 나라에서 쓰는 단어일까요?=

=이건 도령한테 직접 물어봐야 알겠는데?=

=언니들. 무슨 이야기 중이십니까요?=

백려강과 함께 짐을 챙겨서 온 아영의 질문에 유르파가 이야기를 들려준다.

=수돗물? 그거 상수도를 따라 흐르는 물인데요?=

=상수도? 그 몇몇 도시에서 귀족 거리에 시범적으로 놓고 있다는 그거 말이니?=

=옙. 벨티칼의 대부족에서 시범적으로 놓고 있는 걸 그렇게 부른다고 알고 있어요.=

=아영. 좀 더 자세히 설명해줄래?=

=어…… 그러니까요.=

손짓, 발짓을 섞어가며 수도 밸브와 파이프, 압력 차이로 가정에서 물을 쓰는 방식을 설명하자 여자들이 신기해한다.

=술법이나 마도구를 안 쓰고 오직 물의 힘으로만 집집마다 물을 보낸다고? 왜 그렇게 복잡한 방법을 쓰지?=

=귀족들이면 하인들을 시키거나 땅에 우물을 파거나 정화 마도구를 쓰거나 돈 적게 들고 편한 방법은 많을 텐데…….=

=그보다 수돗물을 자기가 나쁘게 표현한 거 보면 몸에 안 좋은 게 있는 거 아닐까? 실패할 정책을 도입하는 거면 국세 낭비가 어마어마할텐데.=

=언니들 잠깐요. 그 수도라는 거 방랑자의 안식처에 식수대 그런 거 아니에요? 그런데 그게 몸에 안 좋은 거라고요?=

=도령이 수돗물을 안 좋게 평가했다던데? 그럼 안식처 안에서 나오는 물도 몸에 안 좋은 건가?=

=그래요? 왜지. 상수도가 꽤 편리해서 다들 좋아한다고 하던데.=

답이 나오지 않는 이야기는 환인이 돌아오고 나서야 끝났다.

“현대 도시 인근의 수원지 수질은 평범하게 마시면 배탈이 날 정도로 좋지 않은 편이다. 그 때문에 상·하수처리장에서 수질 정화를 목적으로 특수한 용액을 써서 소독과 정화를 하고 그 후 상수도를 통해 각 가정에 보내는데 그걸 두고 수돗물이라고 하지.”

=약품 맛이 물에서 난다는 거구나.=

유르파의 결론에 여자들은 궁금증이 해소되어 개운한 표정을 짓는다. 그걸 바라보던 환인이 이실리테를 돌아보며 작게 웃었다.

“그때도 이실리테 네가 타준 커피는 다 마신 거로 기억하고 있는데. 이때까지 그걸 신경 쓰고 있었나.”

=주인님이 커피를 마셨을 때 눈썹을 찡그렸던 적은 그때뿐이셨으니까요…….=

헬루멘과 프라버 사이에서 있었던 일일 텐데 그걸 아직 기억하고 있었다니.

“귀여운 녀석.”

부드러운 표정으로 그녀의 호박색 머리를 쓰다듬어준 환인은 이실리테와 다른 여자친구들의 눈이 동그래지는 걸 눈치채지 못하고 백려강을 불렀다.

“영도에서 온 통신은 뭐였지.”

=네? 아! 비마르 니아벨레 역사기관장님께서 저번에 부탁드렸던 미궁 정보를 간략히 정리하셔서 보내주셨어요. 여기 메모한 거예요.=

“4급 미만 미궁을 제외하니 숫자가 정말 적군. 고작 세 개인가.”

벨티칼 대산맥에서 천암 산맥 위쪽 이블팩션 영역과 메리아놀 서쪽 바다까지 넓히면 유라시아대륙 정도.

유라시아대륙 전체라고 하면 굉장히 넓어 보이지만 그건 통상적인 세계 지도의 경우다.

니오네브레스 전도가 100% 정확하다는 보장은 없지만, 대충은 맞아 떨어질 텐데 그만한 넓이에 알려진 미궁이 고작 세 개라니.

그마저도 천암 산맥 위쪽에 하나, 벨티칼 대산맥에 인접한 곳에 하나가 있어 실질적으로 가볼 수 있는 곳은 히아리드 대평야의 지하 폐허 미궁뿐.

파편인의 제약에도 익숙해졌으니 미궁을 들어가도 괜찮겠지만……. 으음.

다음 목적지를 정하던 환인은 자신에게 쏠려있는 여자친구들의 시선을 느끼고 그녀들을 둘러보았다.

눈을 마주치자마자 황급히 시선을 돌리며 머리카락 끝을 매만진다거나 뒷머리를 쓰다듬으며 딴청을 피우는 여자들.

“왜 그러지.”

=응? 아, 아냐. 그래서 이제 출발해?=

뭔가 욕망이 느껴지는 눈빛이었는데……. 얼굴을 살짝 붉히며 아니라고 얼버무리는 안느를 보면 딱히 중요해 보이진 않다.

메모를 챙긴 환인은 노른이 실루와 보석쥐 유리병을 품에 안고 쿠르티, 쿠라, 쿠핀을 데려오는 걸 보며 안느에게 물었다.

“니라인 가문 도선장 이용 허가증까지 받았으니. 마차 조사는 끝났나.”

=응. 율이 언니랑 꼼꼼하게 조사했는데 수상한 신호기는 발견하지 못했어.=

“이실리테, 식량과 짐 준비는.”

=완벽하게 끝냈어요.=

“그래. 빼먹은 짐이 없다면 출발하도록 하지.”

니라인 가문의 도선장은 거대한 마수를 길들여 다른 도선장에 비교해 안전하고 대규모의 수송이 가능한 시스템을 갖춰놓았다.

팔라툼에서 천공성까지 손님을 실어나르는 천공의 매보다는 작고 힘도 약하지만, 마차 정도는 가뿐히 들어서 나를 수 있는 록roc 버드를 사육하고 있었던 것.

다른 도선장도 록 버드를 사육하지만, 니라인 가문의 록 버드가 단연코 최고라고 할까.

=준비되셨습니까?=

아영을 보고 정신을 못 차리다가 이실리테의 호통에 정신줄을 잡은 도선장이 록 버드의 모가지에 앉아 묻는다.

“예. 출발하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처음 날아오를 때는 조금 흔들리니 그 점에 유의해주십시오. 그럼.=

난간이 있는 거대한 사각 통나무 바닥, 그리고 네 곳 꼭짓점과 굵은 밧줄로 연결된 통나무를 발톱으로 쥔 록 버드가 끼에에엑— 크게 울며 날개를 퍼덕이기 시작한다.

강한 바람이 날갯짓에 따라 몰아치다가 둥실 하고 바닥이 떠오른다. 그러나 쿠에들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쿠우~ 쿠엣~ 신기하단 듯이 주위를 둘러보며 울 뿐이다.

쿠우! 쿠웃.

쿠핀만 조금 불안한 듯 주위를 두리번거렸지만.

「안 떨어져. 떨어져도 너희는 내가 구할 테니까 걱정 마.」

쿠에~

쿠르티의 등에 앉은 노른의 이야기에 금방 안정을 되찾고 마누라인 쿠라와 함께 주변 경치를 감상한다.

오히려 마차를 나르는 록 버드가 긴장한 기색으로 자기 머리통 크기밖에 안 되는 노르스리넨의 눈치를 살폈다.

분명 한 입 거리도 안 될 만큼 작은 생물인데 어째서인지 자신보다 몇 배는 더 큰 괴물처럼 느껴졌던 것.

끄응.

독수리와 부채머리수리를 섞은 것처럼 생긴 록 버드는 노른이 자신을 공격하진 않을까 줄곧 날을 세워 신경 쓰며 어마어마하게 넓은 대협곡을 날아 건너기 시작했다.

좌우 수평을 위해 인원을 나눈 여자들은 빛도 닿지 않아 시커먼 대협곡을 내려다보며 감탄한다.

=우와. 아래쪽이 시꺼메서 바닥이 안 보이네.=

=떨어졌다간 1분 동안 추락하는 깊이라고 해요.=

=이 대협곡 어딘가에 지옥과 연결된 통로가 있는 거 아냐?=

=설마요…….=

안느와 백려강이 왼편에서 대협곡을 내려다보며 이야기를 나눌 때, 이실리테는 유르파와 함께 오른편에서 대협곡을 구경했다.

=여기가 대협곡에서 폭이 가장 좁은 곳이라는데 가장 넓은 곳은 얼마나 될지 궁금하네요.=

=…….=

=……유리 언니? 혹시 고소 공포증 있어요?=

=아니 공포증이라고 할 거까진 아닌데……. 그래도 이걸 보고 있으니까 조금, 화장실 가고 싶은 기분이랄까.=

그때 강풍이 불어닥쳐 발판이 좌우로 흔들리자 유르파는 꺅, 소리도 내지 못하고 파래진 얼굴로 이실리테의 허리에 달라붙었다.

=아영이를 이쪽으로 보내고 언니는 주인님이랑 같이 있으시지.=

=이, 이 정도일 줄 몰랐지이……. 비술로 날 수도 있는데 왜 이렇게 무섭니. 어휴…….=

그렇게 사소한 헤프닝을 겪으며 5분가량의 비행을 마치고 대협곡을 건넌 일행은 천암 산맥에 살고 있다는 대현자를 찾아 마차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른쪽으로는 천주 산맥이 보이고 왼쪽으로는 유인 산맥이 있는 대평원 초입.

지형은 평탄하고 완연한 봄날 날씨에 햇볕은 따뜻하다.

니라인 건너편 마을을 나와 4시간.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환인은 마차 지붕에 앉아 아영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사라트의 소굴도 알류겔 호수 동부의 니아자릭 평원에 있었다니. 구주의 독니와 카락스의 암살자, 나사라트의 암살단 3대 암살 조직이 전부 헤뷜트 근방에 모여있던 셈이군.”

=저도 듣고 깜짝 놀랐어요. 그놈들이랑 정말 시도 때도 없이 충돌한다 싶긴 했지만 전부 이웃사촌이었다니…….=

“카락스의 암살자 창설 배경에 놈들과 연관이 있는 건 아닌가.”

=그건 모르겠어요. 몇 번 카락스가 쫄딱 망할 뻔한 시기에 일부 자료가 소실되는 사고도 있어서.=

고개를 끄덕인 환인은 통신용 수정구를 꺼내 아영에게 넘겨주었다.

영도에서 하얀 늑대들을 이끄는 엘미느와 직통 회선 수정구를 받아든 아영은 엘미느에게 통화 신호를 보내며 나사라트의 특급 암살자 넷을 심문하면서 정리한 노트를 꺼냈다.

=그럼 엘스너펠과 영도에 있는 나사라트 지부부터 정리하는 쪽으로 할게요. 더 지시하실 거 있으심까?=

“전에 말했던대로 하면 된다.”

=옙. 구주의 독니에 나사라트의 정보를 슬쩍 흘리는 거 말씀이시죠?=

“그래.”

아영은 흐흐, 음흉하게 웃었다.

설마 나사라트의 노랭이들하고 구주의 도마뱀 새끼들을 상잔시키는 일을 하게 될 줄이야.

사람은 믿고 따를 수 있는 주군을 만나는 게 제일 좋다고 하더니, 옛 어른들 말씀은 틀린 게 없다니까.

아영은 그렇게 생각하며 수정구 안에 떠오른 엘미느의 모습을 수정구 밖으로 끄집어내 입체 활성화했다.

* * * *

=라무……. 정말 그렇게 좋았어?=

=응……. 통나무 같은 게 막 뱃속에 들어와서 헤집는데 후, 솔직히 말해서 그만한 수준의 쾌감이 있다는 걸 그날 처음 알았다.=

=와우와……. 좀 더 자세하게 말해봐. 기분이 어땠어? 그 성제님의 물건 크기는 어느 정도였는데?=

=……이 정도? 이만한 게 진짜 배꼽이 있는 여기까지 들어왔다가 나가는데 배꼽이 막 안에서 울룩불룩해지고…….=

쉬린=런티오는 자신의 팔꿈치에서부터 팔목까지 가리키는 얌=헤밀니아의 손짓에 꺅, 하고 뺨을 감싸쥐며 이쌍익을 크게 펄럭였다.

=안 아팠어? 그 정도로 크면…… 꺄아아.=

=애도 다섯이나 낳았는데 그 정도야. 그런데 그만한게 막 쿵쿵 들어오니까 숨을 못 쉴 거 같았긴 해. 린티 너라면 얼마 못 버티고 기절했겠다.=

=으응……. 있지, 라무? 성제님을 좀 더 머무르게 하실 방법은 없을까? 하루만이라도…….=

=아깝겠지만 포기해. 지금쯤이면 대협곡을 넘어갔을 테니까.=

=아쉽다……. 그때 나도 너랑 같이 갔어야 했는데…….=

=넌 니라인 가문의 본처이자 가주의 어머니로서 명예를 지켜야지. 너도 동의한 사실이잖아?=

=그건 너랑 론슨이 부추겨서 그런 거였지!=

원래 그녀가 내민 제안은 라무니아와 함께 가는 것이었다. 그랬는데 라무니아와 수석 보좌관이자 집사장인 론슨의 만류에 생각을 접었던 것.

아쉬워하는 린티의 곱상한 얼굴을 보며 라무는 상처가 난 자존심을 애써 외면했다.

이 자신의 몸을 노리개로 주겠다고 했는데도 겨우 하룻밤만 안고는 떠나다니.

그가 하룻밤 내내 자신을 사용한 걸 보면 정력이 약한 것은 결코 아니다. 그리고 하룻밤 계속 쓴 것을 보면 자신의 몸도 제법 마음에 들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하루만 하고 가버리는 건 무슨 경우인가.

이런 상상은 하기 싫지만, 가능성이 가장 큰 가설은 자신의 구멍이 그의 영혼 기사들과 비교해서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자신은 엄청 느끼다 못해 성불하는 줄 알았는데 그는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았다?

여자의 자존심이 무참하게 찢겨나가는 기분이다.

그것을 10년 동안 독수공방한 탓이라 생각하고 이번에는 제대로 몸을 푼 뒤에 작심하고 정액을 짜주는 것으로 상처 난 자존심을 세우려고 했는데…….

‘며칠 더 머물러 달라고 은근슬쩍 권유했는데도 모르는척하기나 하고. 나쁜 놈.’

이럴 줄 알았다면 이블팩션 사체 처분 수수료까지 받아낼 걸 그랬다.

인상을 찌푸리던 라무니아는 뒤에서 포근하게 안아오는 익숙한 여체의 굴곡을 느꼈다. 이어서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손길에 그녀의 표정도 한결 누그러졌다.

=가문을 위해 싫은 일을 해줘서 미안하고 고마워, 라무.=

=……성제에게 치른 대금은 금화 792닢이야. 이번 주 식단은 조금 검소해질 테니까 불만 품지 마.=

=응응. 가족을 위해서 노력하고 힘내는 라무를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니까. 네가 정한 일에 불만을 품을 리 없잖아?=

머리를 토닥거려주는 느낌에 라무니아는 속으로 작게 한숨을 내쉬다가 뒷머리를 린티의 가슴에 대며 몸에서 힘을 뺐다.

이러고 있으니 온몸의 근육이 이완되는 느낌이다.

어젯밤 있었던 격렬한 행위로 근육에 쌓인 피로도 덩달아 풀어지는 기분.

이것으로 오늘도 힘내서 살아갈 수 있겠지.

‘하지만 역시 용서가 안 돼. 다음에 찾아오면 그때는 반드시.’

오늘의 치욕을 리벤지하겠다고 다짐하는 얌=헤밀니아였다.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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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이게 거의 2시 연재로 고정되어버렸네요

빨리 자정 연재로 돌아가야하는데 흑흑 죄송합니당..

오늘의 삽화도 AI입니다

실사풍경 오진다

[작품 설정]

대협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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