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5 협곡 도시 니라인
이른 아침, 환인이 없어 일찍 잠에서 깬 안느는 직접 홍차를 내린 뒤 이실리테와 환연에게 따라주었다.
이야기의 주제는 얌=헤밀니아.
=백작에 영주 대리면서 체면도 없이 육체 거래를 제시했다고……? 어쩜 그렇게 품위가 없을 수 있지?=
어제 있었던 일을 이제야 들은 안느는 잠깐 이해가 안 된다는 얼굴을 했다.
=가문이 그렇게 부자는 아닌가 봐. 주인님께 이번 침공 저지 대가를 드리려면 영주성은 몇 달간 긴축재정을 해야 한다고 직접 말하더라.=
보통 긴축재정도 아니고 영주 가문 식구가 딱딱한 흑빵에 물로 끼니를 몇 달은 때워야 한다는 이야기에도 안느는 내키지 않는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자존심과 명예에 죽고 사는 귀족이…….=
「내가 보기에는 그 영주 대리 여자, 오해해도 단단히 오해한 거 같았어.」
쿠키 바구니 가장자리에 앉아 자기 머리보다 더 큰 에그타르트를 들고 야금야금 먹고 있던 환연의 발언에 두 여자가 그녀를 돌아본다.
=오해라니?=
「팔라툼 왕실이 환인한테 준 유혹성 대가를 환인의 평균 몸값으로 계산한 거 같더라.」
=운의복하고 홍전하고 술법서랑 이것저것?=
「그거에 영도로 보낸 대량의 식량 원조까지. 팔라툼도 체면이 있지 미궁이 한 번은 터질 뻔했고 또 한 번은 터졌어. 정확한 내막은 당연히 숨겼을 테고 변방 영주 보좌관이 손에 넣을 수 있는 정보래 봤자 한정적일 거 아냐.=
=주인님이 팔라툼에서 몇 가지 사건을 해결해주고 받은 대가가 준 유물에 고가의 물품이라고 생각한 거구나…….=
톡- 유르파가 섬세한 솜씨로 만들어준 그녀 전용 찻잔에 안느가 홍차를 한 방울 떨어트려 준다.
그걸 마셔서 목을 축인 환연은 다시 에그타르트의 가장자리 바삭한 부분을 먹으며 말했다.
「그만한 대가를 챙긴 걸 두고 거짓말이라고 치부하기도 어려운 게, 청옥 혼령주가 터지는 걸 코앞에서 봤잖아. 게다가 상대는 영도의 대성자 후보에 유일 직업자인 성제네? 신분만 보면 백작하고도 꿀릴 게 없고 능력도 출중하니까 가랑이 벌려도 부끄럽지 않다고 생각했을걸.」
처음에는 말이 되지 않는다고, 남부끄러운 줄 모르는 여자라고 생각했는데 환연의 설명을 듣고 보니 이해가 간다.
안느의 눈빛이 먼 곳을 바라보는 것처럼 흐릿해졌다.
어제 벌어졌던 거대한 빛의 폭발이 그녀의 망막에 지나가는 중이다.
=그나저나 청옥 혼령주가 그 정도니까 적흑옥 혼령주 여섯으로 엘위드리스를 지워버리는 게 가능한 거구나……. 전견시가 괜히 전견시인 게 아니었네.=
=하지만 그 예언은 빗나가지 않았어?=
홍차를 다 마시고 살짝 떫은 입안을 달콤한 딸기 스위트롤로 입가심한 이실리테의 이야기에 안느가 으음, 하며 분홍색 마카롱을 입에 물었다.
이른 아침에 먹는 설탕 덩어리는 왜 이렇게나 배덕적으로 맛있을까.
=이엘 아가씨가 엘위드리스로 간다는 거 보면 아직 예언이 완전히 마무리된 건 아닐 거 같아. 예언이라는 게 실현 조건이 모두 없어졌다고 해서 사라지는 게 아니라 특정 행동을 계기로 조금 뒤틀린 예언이 실현되기도 하니까.=
벌컥!
=언니들! 유르파 언니 좀 말려줘요!=
이야기를 나누던 여자들이 문을 벌컥 열고 뛰쳐나온 아영을 쳐다본다. 뭘 당했는지 단아하고 예쁜 얼굴이 빨갛게 물든 상태다.
=왜? 무슨 일인데?=
=아침부터 술도 안 마셨는데 취한 거 같아요! 나한테 엄한 거 입히고 내보내려고 해요!=
정신이 나가버렸다는 완곡하고도 고상한 표현에 안느가 작게 실소를 흘렸을 때였다.
열린 문으로 유르파가 나오더니 웃음을 머금은 당황한 표정으로 손사래를 친다.
=아냐아냐. 그렇게 말하면 언니가 이상한 사람 같잖니.=
=엉덩이 구멍까지 보이는 끈팬티를 입고 거리를 활보하라는 건 충분히 이상한데요!=
=어머? 자기 앞에서 속옷 차림으로 날뛴 게 누구였는지 기억 안 나? 미궁이 역류했을 때는 길바닥에서 이거랑 비슷한 차림으로 있었잖니.=
여자들은 유르파의 손길을 따라 흔들리는 T 백 스타일의 끈팬티를 보았다.
정말 음부만 간신히 가리는 손바닥만 한 천에 끈만 붙어있는 속옷.
입는다면 엉덩이를 전부 보이는 건 물론이고 항문 주름까지 다 보일 지경이다. 저런 걸 입고 싸우다간 자신도 모르게 가랑이 사이를 다 노출하게 되겠지.
안느와 이실리테가 오묘한 표정을 지으니 아영이 빨개진 얼굴로 울상을 지었다.
=제가 그때 입은 건 숏팬츠였다고요! 안느 언니가 집에서 자주 입는 거요! 그리고 오빠한테 덤볐을 때는 그래도 평범한 속옷이었는데……!=
=하지만 아영이 감각 비대증은 피부를 드러내는 면적이 넓을수록 좋다며?=
=그건! ……그렇지만 그 정도 차이는 크게 상관없어요…….=
말하다 보니 힘이 빠져 아영은 쪼그려 앉아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어떻게 저런 파렴치한 옷을……! 아니 옷도 아니고 속옷 쪼가리를……!
심란해하는 아영의 행동에 안느가 킥킥 웃었다.
=창피함이나 부끄럼 같은 건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네. 암살자 시절에는 거의 벗고 다녔다면서?=
=그땐 밤이기도 했고 보는 사람이 없으니까 그랬죠. 저 옷도 그래요. 오빠만 보면 상관없지만 불특정다수에 다 보여준다는 이야기잖아요. 이제 내 몸은 오빠 거니까 딴 놈들이 보는 건 죽어도 싫어요…….=
=그랬니? 그럼 이걸 써야겠네.=
기다렸다는 듯이 들고 있던 것을 아공간 주머니에 넣은 유르파가 능글맞게 웃으며 다른 것을 꺼낸다.
이번에 꺼낸 것도 넓게 보자면 팬티의 범주에 들만한 것이지만, 그래도 속옷이 아니라 비키니 아머 같은 의복이라는 느낌이 더 강하다.
잠깐 그걸 바라보던 아영은 한발 늦게 능글맞은 표정의 뜻을 깨닫고 울컥했다.
=……아아! 언니, 나 놀린 거죠?! 놀린 거 맞지!=
=아하하. 이제 알았니?=
=으으~!=
분해서 발을 동동 구르는 아영을 보며 피식피식 웃던 안느가 유르파에게 물었다.
=그게 아영이가 입을 새 의복이야?=
=응. 팔라툼 왕실이 준 부여 도구와 고등급 부여술법 개론서가 무척 유용해서 아영이 체질에 맞춰 완전히 새로 만들었어. 어떠니?=
그녀의 다른 손에 들린 것은 얼핏 평범한 검은색 브래지어다. 금색의 꽃이 수 놓여있고 레이스 패턴이 브래지어 윗부분에 붙어있어 입으면 제법 화려할 것 같은 디자인.
=확실히 아영이하고 잘 맞겠네. 그래도 너무…… 좀 색녀 같지 않을까?=
=괜찮아. 이거 말고 장갑도 있고 시스루 숄도 있고 어깨 장식이랑 이것저것 많아. 다 입으면 진짜 예쁠걸?=
=그래? 율이 언니가 그렇게 말할 정도면 얼마나 예쁠지 기대되네.=
잠깐 상상해본 안느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뚱한 얼굴을 한 아영을 보고 큭큭 웃었다.
=야, 표정 풀어. 7급 비술사인 언니가 작심하고 만드는 건데 그거 돈으로 환산하면 수십 닢에서 수백 닢은 되는 거야. 아니, 돈이 있어도 못입는 거거든?」
=헉.=
금화 수백 닢이라는 안느의 이야기에 뾰로통하던 아영의 눈이 번쩍 뜨인다.
그러고 보니 파티에서 쓰는 마도기, 마도구는 전부 언니가 만드는 거였지……? 자신도 엄청 갖고 싶은 오빠의 방벽 마도기도 언니의 작품이랬잖아!
=언니님! 제가 뭘 하면 될까요? 아까 그 끈이라도 입을까요?=
반응이 180도 달라진 아영의 애교에 유르파가 킄흡, 웃음을 터트렸다. 어쩜 이렇게 알기 쉬운 아가씨일까.
=으흠, 잘됐네. 마침 몸에 맞추는 세부 조정만 남았는데 직접 입혀놓고 하면 되겠다.=
=예압! 말씀만 하세요! 어떤 모습이든 다 해드릴 테니까요!=
=쟤도 참.=
언제 징징거렸냐는 듯이 유르파와 팔짱을 끼고 다시 방으로 들어가는 아영의 행동에 안느가 어이없어하며 피식피식 웃는다.
=그런데 우리가 어디까지 이야기했지?=
「이엘카타가 엘위드리스에 들어간다는 이야기.」
=아.=
음, 이야기의 맥이 끊겼더니 뭘 어디서부터 새로 이야기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럴 때면 그냥 넘어가는 게 좋다. 보아하니 이슬이도, 환연도 관심이 없어진 거 같고.
=아무튼……. 여기서 있었던 일까지 알려지면 도령을 귀찮게 하는 인간들은 더 없어지겠네.=
「그럴까? 몸으로 다가오면 대충 몇 번 자주고 입 쓱 닦을 수 있다는 것도 증명됐잖아. 마누라나 딸자식을 떠밀지 않으리란 보장이 어디 있어.」
=주인님은 그런 수작을 만만하게 보아넘길 분이 아니야. 얌 헤밀니아 영주 대리의 조건을 받아들이신 이유도 그녀가 여타 귀족이나 호족하고 달라서 점수를 높게 주셨기 때문일 테니까.=
「흐응.」
환연이 재미있다는 표정을 짓자 다시 찻잔에 홍차를 따르며 이실리테가 말을 잇는다.
=주인님이 싫어하는 건 무능력한 주제에 이기심만 가득한 인간이야.=
주인님이 좋아하시는 것은 인간적으로 됨됨이가 있고 자기 일에 사명을 가진 사람이다. 이블팩션이 쳐들어오니까 가장 먼저 기사들을 이끌고 선두에서 달려나가는 그런 여자 말이다.
귀족으로서 사명감이 투철한 데다 아름답고 강직하고 솔직한 여자가 살짝 굴욕을 드러내며 몸을 여는 상황.
주인님이라면 접시 위에 올려진 먹음직한 스테이크처럼 느껴지시겠지.
=이슬이 말대로 앞으로는 도령의 행적에 따라 우리가 상대할 인간들의 태도도 바뀌겠네. 도령이 오는 여자 마다하지 않고 다 앉으면 성 상납을 하려는 인간이 늘 테고, 아니면 줄어들 테고.=
저벅저벅저벅……
이야기를 나누던 여자들의 귀가 문 너머에서 익숙한 남자의 발걸음 소리를 캐치했다.
자연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자 문이 열리며 예상했던 남자가 들어온다.
그의 후련하고 상쾌함이 느껴지는 얼굴에 안느가 음흉하게 웃는다.
=도령 왔어? 재미 좋았나 보네~ 표정이 개운한걸.=
평생지기 불알친구들이나 할법한 대사를 플뢰족의 여신처럼 아름다운 아가씨가 음흉하게 웃으며 하니 위화감이 굉장하다.
환인은 작은 웃음으로 짓궂은 농을 받아주며 1인용 소파로 가서 앉았다.
“다들 일찍 일어났군.”
=일어난 지 얼마 안 됐어. 그보다는 어떻게, 오늘 떠날 거야?=
“그래. 그에 관해서 영주 대리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이블팩션 군대의 사체를 정리하고 예상되는 수익의 절반을 받기로 했다. 계산이 끝나려면 정오 즈음이 될 테니 그때까지만 기다려달라더군.”
=어? 성 상납으로 입 닦는 게 아니었나 보네.=
“그건 내가 도와준 데 대한 보답이었고, 이블팩션 군대를 물리친 것은 우리였으니 전리품을 전달하겠다는 거였다.”
=전부?=
“전부.”
이실리테와 안느가 와아, 작게 탄성을 질렀다.
=다른 건 몰라도 기사단의 출정에도 비용이 드니 어느 정도 셈에서 제외해도 이상하지 않을 텐데. 의외네.=
“성 상납으로 도움의 대가를 전부 치르는 건 예의가 아니라더군.”
기사단 출정 비용과 전리품 확보 및 처분에 드는 비용도 가문에서 부담하겠다는 이야기.
안느와 환연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실리테 말대로 그런 여자니까 환인도 성 상납을 받아들인 거였겠지.
=본대에서 혼령주가 터졌다고 해도 제법 많이 남았으니까 처분에 시간 좀 걸릴 텐데 정오까지면 이제 4시간 정도잖아. 정리가 다 돼?”
“대강은 되겠지.”
계산한 바에 따르면 직접 전리품을 판매한 뒤의 수익은 823금화. 선입금을 받는다면 그보다 10% 정도는 적을 테지만…….
동화 한 닢까지 악착같이 받아낼 생각은 없었다. 라무니아의 육체가 제법 쫄깃하니 맛있기도 했고 그녀가 보여주었던 모습도 내심 마음에 들었으니까.
‘그 정도는 수수료라고 생각하지.’
그저 혼령주의 테스트를 진행했을 뿐인데 740금화 상당에 아리따운 영주 대리까지 따먹었으니 수지맞은 장사라고 할 수 있지 않은가.
=앗. 오라버니, 오셨어요?=
“그래.”
짐을 넣어놓은 방에서 용인체의 백려강이 성수포를 들고나오다 환인을 보곤 꾸벅 인사한다.
그의 시선이 그녀에게 향하자 백려강이 작게 웃으며 대답했다.
=천인체의 몸을 닦아주었어요. 어제 다녀온 뒤에 흙먼지랑 잿가루가 조금 묻어서.=
“목욕을 하는 게 편했을 텐데.”
=그…… 오라버니께서 언제 오실지 몰라서…….=
손가락을 꼼질 거리는 얼굴이 빨갛다. 그가 뭘 하고 왔는지 상상하느라 혈류가 얼굴에 몰리는 모양새.
그러다 부끄럼을 못 이겼는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언니들과 함께 쓰는 방으로 뛰어 들어간다.
[꺅!?]
[흐약?! 뭐, 뭐야!]
[응? 아, 아니 너 왜 다 벗고 있어어?]
[난 유르파 언니 돕고 있었지…….]
=그러면 주인님, 아침 식사 준비할까요?=
“……부탁하지. 맵고 얼큰한 게 있으면 좋겠군.”
=콩나물국! 고춧가루 뿌린 거!=
「토마토 스튜! 고기 크게 썰어서!」
선호 메뉴를 곧바로 피드백하는 안느와 환연 둘을 두고 주인의 표정을 살핀 이실리테가 고개를 끄덕인다.
=네. 그러면 콩나물국하고 토마토 스튜 두 가지로 준비할게요.=
객실 담당 시녀를 불러 아침은 챙겨주지 않아도 된다고 전한 환인은 이실리테가 정성껏 차린 식사로 해결했다.
솔직히 어제 점심과 저녁에 먹은 식사가 둘 다 무척 느끼했던데다 밤새도록 힘을 쓴 터라 속이 텁텁했는데, 이실리테가 만든 정통 콩나물국을 마셨더니 속이 편하다.
그 이후에는 각자 할 일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환연은 안느가 지켜보는 가운데 백려강과 함께 육체 단련을 시작했고 이실리테는 어디서 입수했는지 니라인 성 요리사의 요리 레시피를 탐독 중이다.
노른은 실루를 안고 둘이서 시녀가 가져온 과자를 학살 중이며 유르파와 아영은 밥을 먹자마자 다시 방으로 들어간 상태.
환인도 거실에서 무지갯빛 보석쥐가 든 유리병을 들고 영기 순환을 이어가며 이후 일정과 몇 가지 쌓인 문제를 생각했다.
감감무소식인 메리아놀의 보상건, 천인체의 몸 안에 들어있는 강화석, 이엘카타의 엘위드리스 입성 건, 팔라툼 때의 천원으로 짐작되는 현상건.
미궁 탐사도 해야 하고 환연과 함께 상급정령의 구슬화도 알아보아야 한다. 현자를 찾아 파편인에 대한 것과 하늘에서 벌어졌던 그 현상에 대해서도 물어봐야 한다.
구주의 독니와 나사라트의 암살단 문제도 다음 단계를 생각해야 하고…….
‘문제가 산적해 있군.’
가장 시급히 처리해야 할 문제라면 나사라트와 구주의 암살자들과 메리아놀 건이다.
국가의 행정은 원래 느림보 행정이라 하지만, 암살 시도가 벌어지고 4개월이 되어간다.
아직도 아무 연락이 없다면 뭔가 꿍꿍이가 있는 것이 아닌지 알아봐야 할 때.
[이, 이게 전부예요?]
[응. 어때, 마음에 들어?]
[……이걸 그냥 주셔도 돼요? 팔면 개돼지 부자들은 1000금화도 낼 거 같은데.]
[후후. 무슨 말이니. 돈보다 가족이 중요한 게 당연하잖아.]
“…….”
영기 순환과 함께 생각을 이어가던 환인의 유르파와 아영의 목소리가 닿았다.
방안에서 뭘 하는 거길래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거지.
[자, 나가봐.]
[앗! 어어 지금요?]
[지금 안 나가면 언제 나가게?]
[마지막 조정이 남았다고 하셨잖아요. 그리고, 입고 보니까 되게 뭐랄까 부끄럽다고 해야 할지 맨살이 너무 드러나서 좀 안정이 안 된다고 해야 할지 마음의 준비가아아, 앗!]
[웬 횡설수설이야? 아까 했던 게 조정인거 잊었니? 마침 자기도 돌아와 있으니까 어서 나가봐.]
[앗, 앗앗!]
영기 순환을 멈춘 환인은 여자친구들의 방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달칵- 문이 열리며 나타난 아영의 자태에 환인의 눈빛이 깊어졌다.
입을 다문 환인의 무거운 시선에 아영이 문턱에서 꽁꽁 얼자 뒤에서 유르파가 그녀의 어깨를 밀며 나온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거라면 역시 살색의 면적이다. 그다음은 수영복 차림의 곳곳을 채우고 있는 금색 꽃무늬와 어깨를 가린 나비 패턴의 레이스 장식이고 마지막으로 머리의 빨간 헤드밴드.
팔에 건 자주색 시스루 숄은 아영의 라벤더색 머리카락에 맞추었는지 무척 화려하면서도 그 색감 때문에 우아함이 드러나고 있다.
발에는 정강이 윗부분까지 올라오는 롱 스트랩 샌들. 부츠나 신발, 구두였다면 이상했을 텐데 레이스와 나비 장식이 예쁘게 매인 스트랩 샌들이 신의 한 수라는 느낌이다.
물론 골반에 붙어있는 빨간 나비 장식과 목걸이 또한 시선을 잡아끄는 요소이며 머리에 두른 빨간색 머리띠에 금장식 서클렛까지 더해지니 헐벗은 것 같으면서도 적당히 시선을 분산시키는 동시에 매력을 한껏 끌어올리는 자태.
여자들은 가까이 다가온 아영을 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우와 진짜 이쁘잖아. 이 정도면 암살 대상도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있다가 목이 떨어질 정도인데?=
=응, 예쁘네……. 그런데 피부를 너무 드러내고 있지 않아? 나라면 부끄러워서 못 입겠어.=
「유르파가 진짜 실력을 냈구나.」
=와아…….=
여자들의 감탄에 보라색 장갑을 꼭 쥐고 있던 아영은 갑자기 몸을 배배 꼬다가 방으로 도망쳐 들어가려 했다.
그걸 재빨리 낚아챈 것이 안느.
=예쁜데 왜 도망치려고 하냐?=
=악! 부끄러워서 죽을 거 같아요!=
=아냐, 예뻐. 정말 예뻐!=
=벨도 예쁘다고 하잖아. 농담이 아니라니까?=
라벤더색 단발이 찰랑댈 정도로 버둥거리는 그녀를 뒤에서 안아 든 안느는 환인의 앞으로 가서 그의 앞에 아영을 세웠다.
=도령도 뭐라고 말해봐. 말도 없이 쳐다만 보니까 애가 더 부끄러워하잖아. 큭큭.=
안느의 너스레에도 불구하고 아영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뒤태까지 꼼꼼하게 살펴본 환인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팔라툼에서부터 아영의 장비를 구상하고 있다 하시더니 걸작을 만들었군요. 훌륭합니다.”
=흐헤헤헤.=
“아영. 예쁘고 잘 어울리니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된다. 특히 뒤태가 뇌쇄적이군.”
=네, 네헤에엥…….=
환인의 칭찬에 잔뜩 녹아내린 아영은 귀까지 빨개져서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하지만 노출이 너무 높으니 도시에서는 망토로 가려야겠는데.”
=걱정하지 마. 저 속살은 자기만 볼 수 있게 미리 준비한 게 있으니까.=
그 말과 함께 유르파의 손에서 나온 것은 속이 어렴풋이 비쳐 보이는 짙은 자주색 시스루 망토.
그 색과 밀도 때문에 안쪽은 말 그대로 희미한 윤곽만 보일 뿐인데 역설적으로 그래서 더욱 아름다워 보이는 모습이다.
시스루 망토를 몸에 두른채 꼼지락거리는 아영에게서 이실리테가 그 망토를 뺏어간다.
그리고 아영을 가운데에 세운 여자들이 모여 살펴보며 감상을 내놓았다.
=와, 이렇게 얇은데 느껴지는 마력은 내 등대의 빛이나 이슬이 천상의 장막이란 비슷한 수준이야. 대체 위상력을 얼마나 부은 거지?=
=재질도 최고급 옷감인데…… 유리 언니, 천상의 장막에 쓰인 역장 기능도 넣으셨네요?=
=응. 아무리 성투술을 쓴다 해도 맨피부에 공격을 받으면 위험하니까. 그래도 감각 비대증에는 역장 기능도 안 좋아서 켜고 끌 수 있게 해놨어.=
“그것 말고도 다른 기능이 느껴집니다만.”
=면적이 좁아 회로를 많이 집어넣지 못해서 최대한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기능만 넣었어. 신체 강화 1단계랑 위상력 회복 3단계, 의복 재생 5단계, 역장 3단계.=
=신체 강화는 1단계고 의복 재생이 5단계야? 아, 하긴 성투술이 있으니까 신체 강화 기능은 그렇게 큰 의미가 없겠다. 척 봐도 전투 중에 공격 허용하면 금방 손상될 거 같기도 하고.=
「볼수록 진짜 예쁘네. 유르파, 나도 이런 거 만들어줘.」
=똑같은 걸 하나 더 만드는 건 내 예술혼이 허락하지 않아!=
「아잇, 뭐야 그게!」
자신을 둘러싸고 이야기를 나누는 언니들 때문에 아영은 정신을 차리기 어려웠다. 감각 과민증이 저절로 발동해서 폭발해버릴 것 같다고 할까.
그런 이유 중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는 게 환인의 시선이었다.
금방이라도 잡아먹힐 것 같은 저 포식자의 눈빛이라니.
=아영아. 왕궁에 불리는 최고급 무희도 지금 너보다는 덜 예쁠 거야. 진짜 예쁘다.=
=으으. 그만, 못 버티겠어…….=
이실리테가 손에 들고 있는 로브를 빼앗다시피 들고 얼굴을 가리며 주저앉아버린 아영은 속으로 몹시도 혼란스러웠다.
‘나, 난 수치심이나 창피 같은 감정이랑은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는데.’
이게 뭐야. 수줍은 새색시도 아니고!
=우왓, 도령 시선 엄청나. 금방이라도 아영이를 잡아먹을 거 같아.=
“……후. 수목화가 아니었다면 바로 잡아먹었을 거다.”
=킥킥킥.=
=후후.=
=자기, 기대해도 좋아. 아영이 수목화를 막아줄 방도를 찾았고 거의 완성단계거든. 그때는…… 으흐흐.=
“…….”
비수처럼 날아와 귓가에 박히는 이야기들. 특히 환인의 이야기에 아영은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아래가 순식간에 축축해지는 걸 느꼈다.
오빠가 자신한테 이렇게 흥분한 적이 있었나? 없었지? 게다가 수목화를 막을 방도도 거의 완성됐다니!
‘유르파 언니님, 평생 따를게요!’
그녀의 마음속 우선순위에 안느와 이실리테를 제치고 유르파가 정상에 서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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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천장 없는 쓰알 확률 0.007% 게임에서 단차로 쓰알이 나온 기분?
저도 뽑고 놀라서 눈을 크게 떴을 정도였읍니당
그런데 ai일러가 다 좋은게 아니네요;
한 번 뽑기 시작하니까 1시간은 그냥 사라져서.. 좀 자제해야될거 같습니다;;
그래도 핵심 히로인들은 거의 다 뽑아서 다행이네요
백려강 일러도 두 장 대기 중이고 유르파도 수정된 ai 일러가 있어요
아영이보다 퀄리티가 떨어지지만 그래도 기대해주십쇼!
[작품 설정]
아영
아영이는 아영아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