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궁기담-661화 (661/813)

661 협곡 도시 니라인

고오오오오—……!

빛의 폭풍이 고급스러운 가구와 집기로 가득한 거실을 사납게 몰아쳤다.

쿵— 와장창!

드드드… 콰아앙…!

쿠궁, 터엉-

물리력을 동반한 광풍 탓에 가구가 쓰러지고 탁자가 넘어간다.

무게가 가벼운 과일 바구니나 자그만 꽃병, 액자와 촛대, 접시, 장식물 등은 사방팔방 날아다니며 벽에 부딪히다가 급기야 살짝 공황에 빠진 여자들을 때리기 시작했다.

퍽! 탱—

=꺅! 아읏, 아파…!=

=율이 언니! 이쪽으로 와! 노른이는 어딨어!?=

「나 여깄는데.」

쾅! 따닥-!

쿵- 드드드드

=으갹! 아야야, 벨! 벨!=

=나, 나 여기…… 히약!=

덜컥 덜그럭퍽. 쨍그랑!

파편인을 피해 영기와 심핵력을 유도해서 두 손에 모아 방출한 환인은 귓가에 들려오는 집기 박살 나는 소리와 여자친구들이 그런 집기에 얻어맞으며 내는 비명에 음, 속으로 생각했다.

‘원래 혼령주는 물리적인 여파가 없었는데. 영기와 혼재의 순환으로 추가된 요소인가.’

이실리테는 자신의 근처에서 눈을 감고 이쪽으로 날아오는 집기를 쳐내고 있다. 안느는 신체가 약한 유르파와 겸사겸사해서 노른을 몸으로 지키는 중이고 백려강은 아영이 성체술로 강화한 몸으로 보호한다.

그러는 중에 벌써 1분 넘게 혼령주가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이 환인을 고민하게 했다.

이전의 혼령주는 일정량의 영기와 심핵력을 뭉쳐 쏘면 알아서 유지되다가 느긋하게 사라지는 식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발동할 때 일정량이 소비된 이후 영기와 심핵력이 미약하게 계속 흘러나가며 혼령주가 계속 유지되는 느낌이다.

기세도 이전보다 더욱 강한 느낌이고, 이대로 계속 영기와 심핵력을 주입하고 있으면 혼령주도 계속 유지될듯한 감각.

‘발동형에서 설치-유지형으로 바뀌었나 보군.’

조심스럽게 마주 붙이고 있던 두 손을 떼며 영기와 심핵력을 차단한다. 그러자 훅— 자신을 중심으로 엷은 기의 막이 한차례 퍼져나가며 난폭한 기류까지 모두 밀어내면서 사라졌다.

탱- 태댕, 퍼석, 쿵- 와그르르—

날아다니던 집기가 떨어지며 나는 소리로 잠시 시끄럽던 거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조용해진다.

바깥에서 들려오던 소음도 멎고 도시는 다시 침묵에 잠겨 들었다.

다만 여전히 빛기둥은 유지되고 있어 시야가 하얗게 물든채 간신히 코앞만 보이는 지경.

=……끄, 끝났나? 도령?=

=자기……?=

조심스레 자신을 부르는 안느와 유르파의 목소리를 들으며 안주머니를 더듬으니 살아있다는 듯이 안주머니 속에서 톡톡, 손바닥으로 치는 느낌이 전해 져왔다.

“끝났다. 빛기둥은 아직 유지되고 있지만 천천히 사라지겠지. 다들 다친 곳은 없나.”

=어. 난 괜찮아. 율이 언니가 과일 바구니하고 주석 잔에 얻어맞은 거 빼면 무사해. 노른이도 멀쩡하고. 아영이랑 벨은 괜찮아?=

=저도 괜찮슴다. 날아온 액자 하나가 벨의 뿔에 걸린 거 빼면 멀쩡해요. 와, 근데 이게 혼령주구나. 효과 오지네.=

=이, 이건 평범한 혼령주가 아니야……. 전에는 안 이랬는걸.=

=그래? 오빠가 써서 또 굉장해진 거야?=

어느 정도 빛에 눈이 익숙해진 이실리테는 방을 돌아다니며 쓰러진 가구를 세우고 넘어지거나 날아간 가재도구를 정리하기 시작한다.

빛의 폭풍에 나사라트의 암살자 시체에서 뿜어져 나온 피가 사방을 칠해놓아 그야말로 피바다.

정리한다고 해서 정리가 되는 게 아니지만, 여자들은 일단 가구부터 제자리로 세워놓았다. 이대로는 앉을 자리도 없으니까.

와중에 환연이 그의 품속에서 누군가가 접근하고 있음을 알렸다.

「환인. 6급 직업자가 창을 들고 이쪽으로 뛰어오고 있어.」

“시야 공유를 할 정령이 남아있던가.”

「네가 혼령주 쓸 거 같아서 감시 남기려고 몇몇 애들은 일부러 환령계로 돌려보내 놨었지.」

“잘했다. 그래서 누구지.”

다른 암살자, 나사라트의 암살단이 왔으니 구주의 독니 차례인가 싶지만, 빛기둥을 보고 어그로가 끌릴 리는 없다. 가능성이 가장 큰 쪽은…….

「옷차림이 귀족 수준이야. 근데 플라비우스는 아냐.」

넘어진 책장을 세우고 책 대신 꽃병과 작은 액자, 동상, 작은 인테리어 상자 등을 다시 올려놓던 아영이 그 이야기를 듣고 묻는다.

=어? 창 쓰는 플라비우스가 아닌 6급 직업자 귀족이면……. 그 사람 혹시 머리카락 색이 검은색에 가까운 푸른색 아냐? 창은 자주색으로 번개처럼 삐죽삐죽하고.=

「맞아. 누군지 알아?」

=그 사람 니라인의 영주 대리일 가능성이 90%야. 오빠의 굵고 거대한 기둥으로 보고 달려오나 본데요?=

그녀의 섹드립에 킥킥거리는 아영을 잠깐 쳐다본 여자들은 다시 방 정리를 이어간다.

환인은 라벤더색 단발을 찰랑거리며 백려강을 도와 하급 물정령을 불러 핏자국 청소를 이어가는 아영을 바라봤다.

그녀가 파티에 합류한 지도 이제 4달인가. 마음은 처녀를 바칠 때 함께 바쳤겠지만, 이제야 파티에 완전히 녹아드는 느낌이다. 저 섹드립이 그 증거겠지.

=주인님. 소파에 앉으세요.=

이실리테가 성수포로 핏자국을 깨끗하게 닦은 소파를 가져와 내민다.

거기에 앉은 환인은 영주 대리로 판명되는 자가 도착하길 기다리며 방금 펼쳤던 개량형 혼령주를 되새김질했다.

방금 혼령주에 사용한 영기는 약 31%에 심핵력은 15%에 불과했다.

처음에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펼쳤을 때는 심핵력을 40%나 썼으며 영기는 바닥까지 내려갔었다. 심핵력의 총량이 늘었다곤 해도 물리력이라는 현상이 더해졌음에도 15%밖에 쓰지 않았다는 것은…….

‘이엘카타가 보았다던 전견시의 그 흑적색 혼령주를 구현할 때가 머지않았다.’

혼재를 적옥으로 만든다면 당장에라도 펼칠 수 있지 않을까.

문득 그 흑적색 혼령주를 펼치면 정말 영향권 안의 모든 게 모래로 변해버리는 위력을 발휘할지 궁금해진다.

환인은 팔짱을 끼고 소파 등받이에 좀 더 몸을 묻었다.

‘지금쯤 영향권의 영혼은 전부 성불했겠지.’

영혼과 접촉하는 것 자체도 꺼려지는 지금, 파편인이 더욱 강해질지 모를 성불행을 할 생각은 없다.

거기에 더해 귀찮은 일을 피하고 나사라트의 암살단을 고립시키기 위한 계책으로 혼령주를 펼쳤지만, 혼재도 높은 확률로 소멸했을 거라 생각하면 조금 아쉽기는 하다.

혼재를 통해 알아낼 범죄 사실? 증거 인멸로 인한 인적, 물적 피해와 도의적인 책임? 알게 무언가.

교도소 안에서 죄수들끼리 다툼이 발생해서 사망자가 발생했다. 법적인 처벌은 해야겠지만 여론은 누구도 옹호하거나 동조하지 않을 것이다.

‘흑적색 혼령주가 매력적인 힘이긴 하지만 아직 청옥의 혼령주도 펼친 적이 없다.’

당장은 필요 없으니 아쉬움은 접어둔다. 이 세계의 흐름을 본다면 얼마 안 가 또 혼재를 볼 수 있을 거 같으니까.

‘아무튼.’

「도착했어.」

환연의 그 말과 동시에 콰광!! 객실의 벽 한쪽이 굉음과 함께 박살 나며 여자의 실루엣이 빛기둥의 섬광과 함께 객실로 난입했다.

빛의 역광 탓에 아우라가 불분명하지만, 누구인지는 환연과 아영을 통해 추측이 끝났다.

하지만 불법 침입은 불법 침입. 대화의 우선권과 주도권을 위해서 환인은 즉시 이실리테에게 명령했다.

“이실리테.”

=넷.=

그저 이름을 불렀을 뿐이지만, 이실리테는 환인의 마음을 완벽히 읽고 애검 레드릭-얼터를 여자 실루엣을 향해 내리쳤다.

단 1g도 가감하지 않은 검희의 일격이 공간을 일그러트릴 정도의 위력으로 내려꽂히는 한편 다중 검기 두 자루 또한 시간차로 베어 들어가니.

=큭!?=

공격받을 것을 생각하지 못한 걸까. 피하거나 막지 못하면 네 토막이 나서 죽을 상황에 여자 실루엣은 대경해서 온몸을 비틀어 다중 검기를 피하는 동시에 자주색의 언월도 형태의 창으로 레드릭-얼터를 빗겨 흘렸다.

저것만 보아도 저 여자 실루엣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드러난다.

이실리테가 온 힘을 다한 일격은 땅을 갈라버릴 정도. 거기다 불시에 가해진 시간차 공격이다.

그걸 전부 피하고 상처 없이 흘려보냈다는 것은 유능제강, 부드러움으로 강함을 제어하는 법을 터득했다는 뜻이니 충분히 강자의 반열에 들고도 남겠지.

하지만 상대가 안 좋다.

회피할 것을 예측 못 할 이실리테가 아니었기에 남겨둔 다중 검기 한 자루가 대검을 빗겨 흘리느라 발생한 여자 실루엣이 드러낸 약간의 틈을 노리고 번개처럼 찔러 들어간다.

여자 실루엣, 니라인의 영주 대리 얌=헤밀니아는 연달아 이어지는 치명적인 공격에 악 소리도 내지 못하고 치욕적인 자세로 땅을 굴러 피했다.

강한 공격이다. 예리한 공격이기도 하다. 공격의 기선 제압과 흐름을 가져오는 법도 훌륭하다. 위험하긴 하지만 이를 악물고 비기를 어떻게 발동하기만 하면 즐거운 싸움을 할 수 있겠지.

하지만 지금 공격해오는 인간은 성제의 부하. 싸웠다간 정치적으로 매우 피곤해진다.

그 때문에 영주 대리의 체면까지 버리고 당나귀처럼 땅을 굴러 피한 얌=헤밀니아는 그 틈에 확보한 천금 같은 순간에 버럭 고함을 질렀다.

=나는 영주 대리다!!=

멈칫.

이때 저걸 외친다고? 적어도 몸에 몇 대 칼을 맞은 뒤에 싸움을 멈추기 위해 소리 질 거라 생각했는데…….

이실리테는 조금 아쉬워하며 대검을 곧추세워 경계 상태에 들어간다.

상대의 정체를 모르고 공격하는 것과, 상대가 정체를 밝혔음에도 공격을 이어가는 것은 크나큰 차이가 있으니까 말이다.

후우욱, 겨우 숨을 돌린 얌=헤밀니아가 부드득- 이빨을 갈면서 빛 때문에 제대로 보이지 않는 내부를 기감으로 살피며 으르렁거렸다.

=불상사가 벌어져 날 공격했으리라 짐작하지만, 다시 소개하지. 나는 협곡 도시 니라인을 영주 대리로서 다스리는 얌 헤밀니아 니라인이다. 이 정체불명의 현상을 파악하기 위해 직접 행차하였다.=

=…영주 대리님에게 검을 휘두른 것은 부득이한 사정이 있어 그러하였으니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너는 누구지? 정체를 밝혀라.=

이실리테는 물론 다른 여자들도 영주가 생각보다 이성적으로 나온단 사실에 살짝 놀라워했다.

먼저 공격받았으니까 펄펄 뛸 만도 한데…….

=영도의 성제이자 대성자 후보이신 환인 님을 곁에서 섬기는 이실리테입니다.=

=이실리테. 적검희 이실리테인가. 들어보았다. 그래서, 날 공격한 이유를 들어야겠는데. 정당하지 못하다면 설령 성제의 영혼 기사라 하여도 대귀족에게 검을 들이댄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영주 대리께서 도착하시기 직전 나사라트의 암살단 여섯에게 습격받았습니다. 그러던 와중 벽을 부수고 난입한 자가 있어 동료라고 판단하여 제압하기 위해 공격한 것입니다.=

=…….=

얌=헤밀니아는 입을 다물었다.

암살자에게 공격을 받았다고? 그러고 보니 방안에 비릿한 피 냄새가 가득하다. 몸에서 빠져나온지 몇 시간 지나지 않은 신선한 피 냄새는 모를 수가 없다.

다행인데 다행이 아니라고 할까. 자신의 도시에서 성제가 암살자에게 공격받았단 사실은 주도의 개새끼들에게 경비 문제로 트집잡히기에 충분한 건수다.

그보다 앞서 성제가 다치기라도 했다면……!

=다친 자는? 성제는 무사한가?=

=신경이 곤두서있지만 모두 무사합니다. 성제님도 무탈하십니다.=

=불행 중 다행이군……. 할 이야기도 많고 들을 이야기도 많아 보이지만 그보다, 이 빛은 성제가 일으킨 것인가? 그렇다면 손 좀 써주었으면 한다. 당최 보이질 않아 성가신 건 둘째치고 도시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으니 말이다.=

니라인은 협곡 도시지만 이블팩션 접경지 최전방의 요새이기도 하다.

한밤중에 이런 장관이 펼쳐졌으니 못해도 수백 킬로미터 밖에까지 보이겠지. 이블팩션의 상위 지성체면 의심부터 하겠지만 하급 지성체라면 이것에 자극받아 몰려올 수도 있다.

그녀 처지에서는 타당하고 합리적인 요구였으나, 그 점까지 고려해 혼령주를 펼친 환인에게는 해당하지 않았다.

“길잃은 영혼을 빛으로 인도하는 하늘의 등불을 성가심과 위협으로 치부하시다니. 자애신님께서 천벌을 내리실 겁니다.”

=뭣, 그건……!=

빛 속에서 들려온 중후한 남자 목소리에 반발하려던 얌=헤밀니아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이론에서 말문이 막힌 게 아니다. 영혼사가, 영혼사 중에서도 정점에 있는 자가 신을 언급했다. 또 입을 열었다간 불경죄로 영혼 기사들의 일제 공격을 받을지 모른다.

거기다 정치적인 부분을 생각해봐도 히스론드의 왕실에 대한 입김은 여러모로 밉보인 변방의 요새 주인 대리보다 저쪽이 몇 배는 높다.

얌=헤밀니아는 말 안 통하는 맹목적인 교단 신자를 상대하는 것 같은 짜증이 치밀어오르는 걸 느끼며 억지로나마 사과했다.

=미안하군. 실례를 저질렀다. 방금 한 말은 잊어줘.=

“신님의 눈길은 세상을 굽어살피십니다. 사람은 죽어 결국 하늘에 오르니, 이 현상이 불편하시겠지만 얼마 후 사라질 것이니 조금만 참아주십시오.”

그렇게 은근슬쩍 광신도 같은 태도를 보여주었던 환인은 다소 예의를 차려 자신을 소개했다.

“니라인의 영주님께 인사드리겠습니다. 영도를 나와 세계를 떠돌며 순례하는 영혼사, 환인입니다.”

=당신이 성제였군…….=

목소리만 들려오는 곳을 향해 시선을 주었던 얌=헤밀니아는 한숨을 푹 내쉬고 물었다.

=그래서, 이 빛기둥을 펼친 이유가 암살자 때문인가?=

“그런 것도 있지만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혼재 때문이지요.”

저벅저벅, 걸음 소리가 들리더니 점차 목소리가 가까워진다. 키는 180cm 중반 정도에 몸무게는 80kg인가? 체격이 제법 나가는군. 걸음 소리도 균일한 걸 보면 무술도 제법 연마했고.

걸음 소리 하나만으로 상대의 신체 스펙을 파악한 얌=헤밀니아도 빛 속에서 어렴풋한 윤곽이 보이는 남자에게 다가갔다.

좀 더 가까워지니 확실히 모습이 보인다.

얌=헤밀니아는 굳은 얼굴로 환인에게 입을 열었다.

=혼재라고? 승령천제가 불과 3주 전이였다. 니라인에서도 대대적인 천제를 지냈으며 혼재가 없다는걸…… 제기랄. 3주 만에 혼재가 발생했단 이야긴가?=

자초했다지만 봉변을 당한 데다 혼령주로 인해 예정에 없던 근무와 업무가 산더미처럼 쌓인 마당이다. 여기에 혼재까지?

짜증이 치밀어올라 상소리가 튀어나왔지만, 얌=헤밀니아도, 환인도 신경 쓰지 않았다.

끄응, 앓는 소릴 내며 하얀 이마를 감싸쥐었던 영주 대리는 한숨을 푸욱 내쉬며 여전히 이성적인 태도로 말을 이어간다.

=산넘어 산이군. 아무튼, 벽을 무너트려서 미안하다. 수리비는 이쪽이 처리할 테니 신경 쓰지 말고. 그보다 영주 대리로서 성으로 당신을 초대하고 싶은데 받아들여 주었으면 좋겠군. 암살자 건도 있고 혼재 건으로 묻고 싶은 것도 있고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까지 거절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겠지요. 받아들이겠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 빛이 점점 사그라들어간다. 이제는 5m 앞까지 살펴볼 수 있는, 밝은 안개 속에 들어와 있는 느낌.

얌=헤밀니아도 그제야 거실 상황을 볼 수 있었다.

한바탕 폭풍이라도 지나간 것처럼 엉망이 된 거실, 세 구의 시체가 널브러져 있고 세 구의 시체는 짓뭉개 진 채이며, 천장과 벽에 흩뿌려진 피는 전투가 벌어진 것을 증명하는 중.

‘압도적인 힘으로 썰어버렸군. 그나저나 성제를 암살하려 했다고? 아무리 멍청한 놈들이라지만 그런 터무니 없는 짓을 벌일 리가…… 내막이 있나 본데 론슨과 이야기를 해봐야겠어.’

빛이 사그라들고 있으니 호텔 안팎으로 웅성거리는 소리가 점차 늘어나기 시작한다.

이어 날갯짓 소리가 들리더니 남자 두 명이 무너진 벽으로 날아 들어왔다.

=영주님!=

=론슨이냐. 마침 잘 왔다. 나는 지금부터 성제와 함께 성으로 복귀할 것이니 뒷정리를 지시하고 바로 따라와라.=

=예, 알겠습니다.=

탕탕탕, 객실 문을 다급히 두드리는 소리에 가까이 있던 백려강이 다가가려 했지만 그보다 얌=헤밀니아가 더 빨리 움직여 문을 벌컥 열었다.

=성제님 괜찮으십……?! 으헉 영주님!=

=급한 일로 찾느라 벽을 부쉈다. 부서진 벽의 수리 비용과 손해배상은 론슨과 이야기해서 영주성으로 청구하도록 해.=

=예, 예!!=

기겁해서 자다 뛰쳐나온 듯 복장이 조금 흐트러진 여지배인을 물린 얌=헤밀니아는 환인과 함께 곧장 영주 성으로 향했다.

=긴급 상황 발생을 선포하고 24시간 준전시 태세를 진행하였습니다. 영내 용병단에도 전투 준비를 지시하였으며 준비 완료까지 앞으로 3시간을 예상 중입니다.=

걸어서 성으로 향하며 얌=헤밀니아는 론슨과 급한 안건부터 구두로 해결을 보기 시작했다.

=쯧. 하필 사냥철에 이런 말썽이 일어나는군. 영외로 나간 부대는?=

=시고니아가 이끄는 4번, 8번, 11번, 15번대입니다. 용병단 일곱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그 녀석이라면 안심해도 되겠지만 혹시 모르니 조기 복귀하라고 연락을 보내라. 병사들도 일부 뽑아 오늘밤 일은 성제의 혼령주가 펼쳐진 것이니 안심하라고 시민들에게 알리고 포고문도 바로 써서 도시 전체에 뿌려.=

=예.=

“…….”

성으로 돌아가며 능숙하게 일을 지시하는 모습에서 환인은 멀쩡한 사람의 향기를 느꼈다.

적당히 이해 타협할 줄 알고 시민도 적당히 생각하는 그럭저럭 적당히 이상적인 영주.

영주 대리라면 남편이 죽어서 위임받은 건가. 하지만 둘째 아들이 스무 살은 되어 보이던데.

‘그런 거였군.’

환인은 대충 돌아가는 상황을 눈치챘다.

니오네브레스 전체를 통틀어봐도 꽤 드물지 않을까 싶은 상황.

아마도 플라비우스족 출신의 본처는 따로 있을 것이고 그녀는 얌=헤밀니아보다 어리며 세상 물정 모르는 귀족가 아가씨겠지. 본처의 장자도 아직 어려 영주 직을 계승하지 못하는 상태일 것이고.

하지만 죽은 영주를 만난 건 저 영주 대리가 먼저인 게 틀림없다.

영주 대리의 신분도 백작가에 시집올 정도로 제법 될 테지만, 종족의 차이 때문에 본처는 되지 못했고 사실혼처럼 지내다 후처로 들어갔을 확률이 99%가 아닐까.

‘그런데도 얌=헤밀니아가 영주 대리를 맡게 된 것은 가진 무력이 뛰어난 데다 인품도 제법 믿을만하고 일 처리도 잘해서인가.’

보통은 가문이 찢어지기 딱 좋 상황이지만, 니오네브레스는 혈통을 매우 중요시한다.

본처와 적장자가 있는데 가문이 찢어질 일은 없을 것이다. 더욱이 영주 대리 본인의 성정 또한 그런 것에 관심 없는 눈치고.

얌=헤밀니아가 본처를 제치고 영주 대리가 된 것은 본처와도 사이가 좋으면서 가진 무력 또한 뛰어나서가 틀림없을 거다.

그러니 이런 불안정한 상황이 유지되고 있는 거겠지.

잠시 후 성이라기보단 진짜 요새 같은 곳에 도착한 환인은 다소 투박한 응접실에서 영주 대리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귀하신 몸인데 걷게 해서 미안하군.=

“귀하신 분도 두 발로 걸으셨지 않습니까. 그리고 저는 그다지 귀한 몸이 아닙니다. 평범한 영혼사일 뿐.”

=큿. 평범한 영혼사가 그런 빛기둥을 뻥뻥 터트리고 다니고 암살자에게 공격받고 그러나?=

“얌 헤밀니아님이 영주 대리를 하고 계신 것처럼, 암살자에게 공격받는 영혼사가 있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겠지요.”

=크큿. 그도 그렇지. 당신이나 나나 별종이라는 뜻이군.=

비웃음이 아니라 정말 웃긴지 큿큿거리며 웃는 영주는 성미도 제법 호탕했다.

보통은 이런 말을 들으면 귀족의 명예를 모욕했다며 화를 내는 게 순서니까.

=그런데 진짜 어쩌다 암살자에게 공격받은 거지? 내가 봐도 당신은 함부로 원한을 사고 다닐만한 사람으로는 안 보이는데.=

“얼마 전에 받아들인 영혼 기사의 신분이 카락스의 암살자 차기 송곳니였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신의 일행에 대한 정보를 모으는 건 금방 일터. 정확한 이유를 숨겨봤자 의미가 없다.

얌=헤밀니아는 그 대답에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암살자끼리 항쟁 같은 게 있었나. 론슨, 나사라트의 암살단이 한 짓을 근방 도시 영주들에게 전부 알려라. 가능하다면 주도에도 전하고.=

=분부대로.=

=당분간 검문검색 및 야간 경계 태세를 준전시 체제로 계속 유지하도록. 암살자를 들여보낸 야간 경비 책임자는 문책해서 3달 감봉 처리……는 좀 그런가. 1달 감봉으로 해. 암살자들 시체는 성제가 쾌히 넘겨주었으니 오체분시하여 저잣거리에 효시하고.=

=예.=

일 처리가 시원시원하다. 자신이 말하지 않아도 어그로를 가져가는 것이, 미안해서 뭐라도 해줘야 할 것 같은 기분까지 든다.

=그리고 혼재에 대해서 말인데.=

“그에 대한 것은 제가 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혼재는 혼령주 속에서 성불하였을 것이고 제 의무는 그것으로 끝났으니까요.”

=그러지 말고. 혼재가 누구한테 붙어있었는지만 좀 알려줘. 어떤 나쁜 놈이 혼재를 만들었는지는 알아둬야 이후에도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게 예방하지 않겠어?=

차남이라는 우페이의 말대로 가식 없이 솔직하고 직선적인 성격이군.

=성제에게 원한이나 불똥이 튀지 않도록 신경 써줄 테니까. 응?=

“…….”

환인은 고민하는 척, 잠깐 시간을 끌었다가 이야기해주었다. 그러자 얌=헤밀니아의 표정은 물론이고 그녀의 옆에서 꼿꼿하게 서있던 롭슨이라는 부관의 표정도 일그러진다.

=이런 씨발……. 롭슨! 그새끼들 당장 쳐불러와!! 관계자들 몽땅 잡아서 꿀려놓고!!=

=옛!=

솔직하고 직선적인데다 불같기까지 하군.

환인은 부관이 타준 홍차를 들어 향을 즐기면서 분노를 토해내는 얌=헤밀니아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러면 과연… 이블팩션은 언제쯤 쳐들어올까.’

자신에게 쏠릴 나사라트의 암살단의 어그로를 주변으로 돌릴 계책 첫 번째.

당연히 히스론드의 영주들에게 놈들이 영혼사, 그것도 성제를 암살하려 하는 미친것들이란 소식을 퍼트리는 것이다.

왜? 한정적이라고는 해도 놈들이 외부의 압박을 받아 활동을 줄이도록 하기 위해서. 겸사겸사 자신에게 향할 분노를 귀족들로 일부 분산시키려고.

그리고 두 번째는 그런 어그로를 좀 더 키우는 것.

그냥 나사라트의 암살자가 미친놈들이라는 소문과 소식보다는, 놈들을 방치할 경우 도시에 직접적인 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점이 더해져야 귀족들이 좀 더 위기감을 가지고 감시하거나, 나사라트와 인맥을 맺고 있는 자들이 꺼림칙함을 느껴 손절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생각해보라. 도시에서 성제가 공격을 받았다 ▶ 공격받은 성제가 혼령주를 펼친다 ▶ 그걸 본 이블팩션, 증오스러운 북부의 괴물들이 쳐들어와 피해가 난다.

이리되면 사람들은, 귀족들은 누굴 욕할까.

혼령주를 펼쳐 이블팩션을 불러들인 성제일까, 아니면 성제가 혼령주를 펼칠 수 밖에 없도록 만든 나사라트의 암살단일까.

이런 일로 나사라트의 암살단이 해체당하거나 크게 세력이 축소되는 정도는 기대도 하지 않는다. 그저…….

‘적당히 시간을 벌어 놈들의 주거지, 본거지, 세력도와 내부적인 인원 표 정도를 알아낼 정도면 되지.’

그리고 그 정보를 하얀 늑대들을 통해 구주의 독니나 다른 도시 주인들에게 퍼트려주면 끝.

만약 제법 가까운 곳이라면 자신이 직접 쳐들어가서 쓸어버려도 되지만, 아니더라도 알아서 세력이 점점 깎여나갈 것이다.

주로 동종업계 종사자들의 손에 의해서.

그렇게 환인이 이후에 있을 이벤트를 기대하며 몸을 풀고 있을 때, 그 순간은 금방 찾아왔다.

=이블팩션의 대규모 군대가 쳐들어왔습니다!!=

바로 다음날, 영주 대리와 그녀의 자식들에 전 영주의 본처와 그녀의 자식들까지, 그들과 함께 오찬을 즐기던 도중 급보가 날아들었던 것.

비록 하급 중에서도 하급인 호브와 콜브 등으로 80% 이상이 채워져 있다지만, 1만의 숫자가 협곡 도시를 침공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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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ai도 어렵네요. 본격적으로 쓰려면 포샵까지 쓸 줄 알아야하고 인터페이스도 모델도 알아야하고...

바뀐 표지는 AI로 뽑은 이실리테입니다!

일단 어제 하루종일 해서 아영도 완성했는데 살짝 기대해주세요! 1/10000 확률로 우연히 딱 생각해뒀던게 뽑혔거든요!

빠른 시일내에 공개하겠습니당!

이실리테 표지는 설정에 들어가시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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