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궁기담-660화 (660/813)

660 협곡 도시 니라인

통상시의 정령은 정령사나 정령력을 가진 사람이 아닌 한 기척을 느낄 수도, 볼 수도 없다.

정령력을 가지지 않은 사람이 정령을 볼 수 있을 때는 정령이 힘을 일정이상 쓰기 시작하거나 중급 이상 가는 정령이 스스로 모습을 드러낼 때뿐.

이 때문에 정령사는 소리 없는 암살자라고 할 만큼 플뢰족을 제외한 다른 종족에게 치명적인 선제공격을 가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물의 정령으로 상대의 기관지에 물을 기습적으로 쏟아붓는다던가 전투 중인 상대의 머리 주변 공기만 싹 치워버려 호흡을 흐트러지게 만든다던가 삽시간에 땅으로 끌고 들어가 버린다던가.

물론 대응 방법도 직업자 한정이지만 존재한다.

주로 기합을 담아 위상력을 터트리거나 해서 주변에 모여든 정령을 뿌리쳐버리는 것.

기본적으로 직업자의 몸 안은 위상력으로 채워져 있어 정령들이 몸 안쪽에 직접 정령력을 가하지 못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대응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선제권을 빼앗긴 대가는 혹독하다.

정령과 교감이 뛰어나고 정령력이 충분하면 노 딜레이 노 쿨로 공격을 퍼부을 수 있는 정령사가 상대라면 더더욱.

일월一月을 넘어 월암月暗급 암살 임무를 맡아 니라인을 찾았던 나사라트의 암살단, 단 내에서 최정예로 불리는 일월급 암살자 여섯은 땅에 발이 닿는 순간 삽시간에 땅속으로 끌려들어 가며 속으로 기함했다.

‘상급 정령사?!’

힘을 쓰는 기척을 느끼지도 못한 채 삽시간에 땅속으로 끌려들어 왔다.

양쪽 발목을 잡아당기는 감각에 실시간으로 머리 위가 흙으로 메워진다. 끌려들어 가는 속도까지 고려하면 최소 중급 정령을 셋 이상 다룰 수 있는, 상급 정령까지 계약했을 가능성이 큰 정령사.

‘암살 계획이 누설되었어? 어디서?’

이번 암살은 영원한 숙적, 씹어먹어도 시원찮을 카락스의 암캐가 대상이다.

그 암캐는 지금 대륙적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성제의 밑으로 들어갔기에 기밀은 물론이고 그 위험성을 인정받아 두령이 직접 대면하여 지령을 내렸다.

자신들도 지령을 받자마자 두령이 직접 준비한 비품을 챙겨 누구와도 마주치는 일 없이 황야를 달려왔는데 어디서 계획이 노출되었다는 거지?

=흡!=

퍼엉!!

나사라트의 암살자, 소위는 수백, 수천 번 단련한 육체로 위상력을 폭발, 폭경爆經을 터트렸고 두 다리를 옭아매는 구속이 풀림을 확인하자마자 한 자루 비도처럼 지상으로 솟구쳤다.

펑-!

작은 소음과 함께 지상으로 빠져나온 소위는 식은땀으로 목덜미를 축축하게 적셨다.

붙잡히고 2초 만에 풀려났지만, 그 잠깐 사이 어찌나 깊이 들어갔는지 빠져나오는 데 10초 넘게 걸릴 정도였다.

온몸의 기감을 끌어올리며 주위를 경계하는 한편 주위로 시선을 돌렸다.

푹- 파밧-

자신이 가장 먼저 빠져나온 듯, 뒤따라 셋의 동문이 땅속에서 솟구친다.

자신만 끌려들어 간 게 아니라 6급 넷에 5급 둘의 동문 전원이 동시에 끌려들어 갔다. 게다가 두 명은 빠져나오지 못했으니 생매장당했을 확률이 100%.

이게 뭘 뜻하는가?

이미 자신들은 포착당했고 성제의 곁에는 최소 땅의 상급 정령 셋에 바람의 상급 정령 하나를 다루는 괴물 같은 정령사가 있다는 뜻.

=…….=

=…….=

살아남은 동문과 긴장이 가득한 시선을 찰나에 나눈 소위는 즉시 몸을 돌렸다.

의뢰는 실패다. 복귀해서 성제의 주위에 최소 숙련 단계에 접어든 상급 정령사가 있다고 알리고 새로운 작전을 짜야……!

=크릅?!=

전력으로 후퇴하기 위해 다리에 힘을 준 순간 소위는 머리에 뒤집어씌워 진 물구슬에 당혹과 함께 분노를 터트렸다.

‘약삭빠른 짓거리를!’

얼굴을 뒤덮은 물구슬의 의미. 자신을, 나사라트의 암살단 일월급 암살자인 자신을 생포하겠다는 뜻이 아닌가.

이런 사태를 대비해서 착용하고 있는 게 방수방독방화 복면이거늘, 하급 암살자한테나 통할 짓거리를 6급 엽사인 자신에게 시도하다니 건방지……!?

숨을 참으며 아랫배에서 위상력을 끌어올려 한 번에 터트리려던 암살자는 순간 시야가 일그러지면서 몸이 제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걸 느꼈다.

뭐지?

사고도 둔해지다 못해 흐릿해져 가고 가슴에도 통증이 일어난다.

독인가? 현존하는 독 중 7할에 내성을 가졌고 나머지 3할은 마도기로 방비하고 있는 자신에게 중독을 일으키다니, 대체 무슨 독이길래?

산소의 개념을 잡은 환연이 피부를 통해 산소를 닥치는 대로 밀어 넣어 산소 중독을 일으키고 있다는 사실을 죽었다 깨어나도 모를 소위는 두 손으로 머리를 뒤덮은 물방울을 치워내셔했지만.

‘그어억……!’

되려 두 손이 잡혀버렸다.

두 다리를 버둥거리며 필사적으로 정신을 부여잡으려 하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현상에 두려움이 심층의식 밑바닥에서부터 떠오르기 시작한다.

그때 복면을 뚫고 얼굴의 구멍이란 구멍에 전부 물이 짓쳐 들어왔다.

=컥?! 크륽! 끄르르르륵…!!=

육지에서 익사한다는 두려움과 공포 속에서 흐려져 가는 시야 너머로 동문 셋이 물구슬에 갇혀 발버둥 치는 것이 보인다.

상급 정령을, 셋 이상 부리는 건가……? 땅과, 물의 정령을……?

틀렸다. 끝장이다.

차후 암살단의 고위 간부가 될 자신이 여기서 이렇게 허무하게 죽다니.

‘빌어…먹을…….’

쿵!

=크컥?! 끄르릅, 우에에에엑! 쿨럭, 케에엑!=

환인은 이실리테와 안느, 아영이 회수해온 암살자들이 바닥에 내동댕이쳐지는 꼴을 가만히 응시했다.

땅에 생매장당했던 둘과 물구슬에 갇혔던 셋은 그 충격에도 기절한 것처럼 미동이 없지만, 머리에만 물구슬이 씌워졌던 갈색 머리카락의 암살자는 엎어져 눈코입으로 쉴 새 없이 물을 게워낸다.

=주인님. 무력화시키겠습니다.=

환인이 고개를 끄덕이자 이실리테는 그런 암살자, 소위에게 다가가 시커먼 암살복의 옷자락을 잡았다.

그와 동시에 소위가 이실리테의 턱을 노리고 쉭— 팔꿈치를 날카롭게 휘둘러왔지만.

팍- 으적!!

손날로 가볍게 쳐낸 뒤 바위도 부수는 힘이 담긴 주먹으로 암살자의 면상을 내려찍어버렸다.

쿵! 뻑! 콰직!

이어서 무표정으로 세 번 더 내려쳐 예쁘장했던 얼굴을 박살낸 이실리테는 팔다리를 파들거리며 경련을 일으키는 소위의 두건과 암살복을 찢어 벗겼다.

눈알이 터져 수정체가 흘러내리고 코뼈와 앞니가 완전히 주저앉아 피와 뼛조각이 피부를 뚫고 나온 살벌한 광경이지만, 방안의 누구도 눈살을 찌푸리거나 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가족이나 다름없는 일행을 암살하러 온 연놈들이다.

이런 상황에 자비를 보여준다는 건 니오네브레스에서는 곧 얕잡아 보이겠다는 뜻이니까.

부우욱— 찌지직!

찢어지는 옷자락 사이로 숨겨져 있던 암기와 약병, 연기 구슬, 두루마리와 부적, 정체를 알기 어려운 마도구 등등이 쏟아졌다.

가슴에 감겨있던 붕대를 뜯어버리자 머리만 한 젖가슴이 출렁하고 튀어나오며 젖가슴골에 끼워져있던 손가락 두 마디 크기의 비도飛刀가 떨어진다.

그것들을 발로 툭툭 차서 유르파가 있는 쪽으로 보낸 이실리테는 계속해서 바지도 찢어버리다시피 벗기고 훈도시 같은 팬티도 부드득- 잡아 뜯어버린다.

팬티 속에 끼워져있던 편검이 펼쳐지며 우르릉, 천둥소리를 내는 가운데 이실리테의 희고 가느다란 눈썹이 한순간 꿈틀하더니…….

푸욱

손날을 세워 암살자의 음부에 찔러넣었다.

뿌직, 푸슉- 쩍 벌어져 그녀의 손을 팔목까지 삼킨 암살자의 음부에서 기괴한 바람 소리가 몇 차례 빠지고, 이어서 빠져나온 이실리테의 피 묻은 손에는 검지보다 더 긴 장침이 쥐어져 있었다.

곧 다시 들어가는 그녀의 손.

푸직, 쯔즈즙…… 쩌걱, 쯔업-

안에서 어떻게 움직이는지 암살자의 하얀 아랫배가 불쑥불쑥 움직이다 다시 빠져나온다.

피 묻은 손을 찢어진 암살복으로 닦은 이실리테는 이어서 암살자의 소지품 중 통파 비슷한 걸 가져와 암살자의 엉덩이 구멍에 찔러넣고 이리저리 휘저었다.

괄약근이 찢어져 피가 줄줄 흐르고 배꼽 부근이 들썩이지만, 이실리테는 여전히 무표정으로 길이 50cm의 통파를 손잡이까지 찔러넣어 내장이 끊어지고 뱃가죽이 찢어지는 게 아닐까 싶을 만큼 계속 휘젓는다.

잠시 후 통파를 뽑아서 내버려 두고 암살자의 입안과 콧속, 귀 안쪽에 두피까지 꼼꼼하게 검사하고 나서야 환인에게 살짝 고개를 숙였다.

=끝났어요, 주인님.=

“그래. 아영, 정신 차릴 정도로만 치료해라. 유르파는 위상력 억제기를 채워주십시오.”

=옙.=

=응.=

유르파가 먼저 위상력 은폐 마도구를 연구하며 얻은 경험으로 만든 위상력 억제기를 암살자의 목에 다섯 겹이나 채운다.

그리고 아영은 암살자의 팔을 뒤로 돌려 단단히 묶고 치유술로 코뼈째로 내려앉았던 암살자의 안면을 치료했다.

신성한 치유의 빛이 안면에 내려앉으며 부서지고 찢어졌던 뼈와 피부가 빠르게 수복되고 짓뭉개졌던 안구마저 원래 모습을 되찾아간다.

=정신이 들어? 일월급 암살자 씨.=

안면이 제 모습을 되찾는 동시에 눈을 뜬 소위는 아영이 눈앞에서 평범한 주머니로 위장한 나사라트의 암살자 표식을 흔드는 걸 보고 작게 상소리를 내뱉었다.

=……빌어먹을.=

=말조심 하지?=

=성제를 암살하려 했던 년이 잘도 지껄이는군.=

=아니까 뒤지기 싫으면 말조심하라고.=

벌거벗겨진 몸에 사타구니와 아랫배에서 올라오는 통증으로 모든 암기를 무장해제당했다는 걸 알아차린 소위는 포기하지 않고 눈동자를 눈앞의 목표물에 고정한 채 시야 가장자리로 주변 상황을 파악한다.

=내가 죽음을 두려워할 것 같나.=

철썩!

=눈알 돌리지 마. 다 보이니까. 그리고 부탁하면 죽여달라고 빌 정도로 고문해줄 수도 있어.=

뺨을 처맞았지만 소위는 감정을 흐트러트리지 않았다.

동문은 전원 붙잡혔고 자신은 음부 속에 숨겨놓았던 비장의 한 수까지 들통났다. 성제의 오른팔과 왼팔인 적검희에 은빛 철벽까지 살기가 등등한 데다 기록에 없던 녹색의 여자애까지 이쪽을 노려보는 상황.

저 여자아이가 상급 정령사라면 이런 상황에서는 도망칠 수도 없다.

최악이다. 자신들을 살려서 데려온걸 보면 목적은 심문과 취조겠지. 고문을 곁들인.

마음 같아서는 다 포기하고 위상력으로 뇌를 터트려 자결하고 싶지만, 뭐 때문인지 위상력의 통제가 안 된다. 그렇다고 혀를 씹어봤자 눈앞의 목표물이 치료해버릴 테고.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뿐.

소위는 최대한 밉살맞게 비웃음을 지으며 아영의 심기를 살살 긁기 시작했다.

=풋, 이빨 빠지고 길들여진 고양이 새끼가 잘도 그러겠군. 초대 카락스가 저승에서 통탄해하겠다, 병신.=

=이빨 빠진 집고양이도 쥐새끼쯤은 물어 죽일 수 있거든?=

=잇몸으로? 남자 자지나 빨기 좋겠네. 살찐 돼지 새끼들이 선호할텐데 내가 주선 좀 해줄까?=

그러나 아영은 그 수작질에는 안 넘어간다는 듯이 피식 웃으며 소위의 목덜미를 잡아 일으켜 세웠다.

=도발해봤자 소용없어. 굳이 내가 손 쓰지 않아도 너한테는 너에게 걸맞은 종말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거창하게 종말이라니 어차피 생물의 종착점은 죽음뿐이거늘, 이래서 겉멋만 든 어린애는.

머리채를 잡혀 고개를 억지로 숙이고 있던 소위는 어떻게든 주위를 살펴봤지만, 자살에 쓸만한 도구가 없다.

억지로 도주를 시도해봤자 쳐맞기만 할테고, 정말 곤란하다. 모든 장비가 해제되었으니 이 암캐가 자백제나 독물을 쓰기 시작하면 답이 없는데.

어떻게 해야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고민하던 소위는 오금에 충격이 가해지며 털썩, 무릎을 꿇었고 이어 머리채를 잡아당겨져 고개를 강제로 든 그녀는 눈을 부릅 떴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휘황찬란하고도 거룩한 황금빛 아우라. 이어 복잡하면서도 단순한 아우라의 형태와 그런 아우라에 휘감겨있는 남자.

피부가 찌릿할 정도의 위압감에 존재감이 암살단의 두령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냉혹한 시선과 어우러져 긴장감을 끌어낸다.

'이 남자가…… 성제.'

두령의 경고에 따르면 임무 수행 중 가장 주의해야 할 대상이 눈앞의 성제라 하였는데 과연, 그 두령이 경계할 정도의 압박감이다.

이정도니까 대륙적인 명성을 떨치고 있는 거겠지.

“네가 저들을 이끄는 조장이군. 이름은 무엇이지.”

=……소위입니다.=

“그래, 소위. 목표는 내가 아니라 아영이었나.”

=그렇습니다.=

“…….”

환인이 생각할 게 있어 잠시 말을 멈춘 것을, 소위는 나사라트를 적으로 돌리기 곤란해한다고 지레짐작했다.

사방이 죽음인 상황에 하늘에서 내려오는 한줄기 광명을 맞이한 기분.

소위는 조심스럽게 성제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단어를 선별하며 입을 열었다.

=이 바닥은 손을 털고 싶다고 손쉽게 털어지는 곳이 아닙니다. 나사라트의 암살단의 목표는 은원관계를 청산하지 않고 양지로 올라가 버린 카락스의 어금니를 동종업계 종사자로서 단죄하는 것뿐입니다. 성제님과 마찰을 빚고 분란을 일으키려는 의도는 없습니다.=

“…….”

=전 카락스의 암살자 차기 두령인 아영만 내치신다면 나사라트의 암살단은 성제님과 긴밀한 우호 관계를 맺어 바라시는 어둠에 물든 길을 대신…….=

“조용히.”

나불나불 떠드는 암살자의 입을 다물게 한 환인은 생각을 정리한 뒤 예의상 질문을 던졌다.

“나사라트의 암살단 본거지, 두령의 이름과 용모, 단의 규모 및 주요 활동 장소를 말해라.”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대답한 환인은 섬전처럼 광명창을 휘둘렀다.

한 장의 빛으로 이뤄진 장막이 소위의 목을 긋고 지나가니 의문에 찬 표정의 머리가 쿵,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져 뒹군다.

목이 잘린 몸뚱이는 참수당한 시체처럼 앞으로 고꾸라졌고 머리는 눈알을 좌우로 움직이다가 이윽고 동공이 열리며 빛이 사라졌다.

=와, 절단면이 깔끔하게 익었네.=

소위를 죽였다는 사실 보다 참수당한 시체의 절단면이 말 그대로 깔끔하게 지져져 피 한방울 맺히지 않는 것에 아영이 작게 감탄한다.

이런 기능이라면 암살을 해도 뒷정리가 간편해져서 무척이나 유용하겠다고 말이다.

그 뒤로 남은 암살자 다섯도 기절한 채로 머리와 심장에 광명창이 꽂혀 조용한 죽음을 맞이했다.

광명창을 회수한 환인은 소위의 머리를 들어 목 절단면에 손가락을 넣어보는 아영에게 말했다.

“아영. 이것들이 나사라트의 일월급 암살자라고 했나.”

=옙. 나사라트의 암살단은 일월부터 육월까지 여섯 단계로 나누는데 육월이 말단 단원임다. 일월급이면 카락스의 특급 송곳니 급이에요.=

시체에서 하나둘 몸을 일으키는 여섯 영혼, 환인은 그녀의 설명을 들으며 그중 넷의 푸른 영혼에게 강제력을 펼쳐 성불을 막는 한편 영기를 흘려 넣어 여자친구들도 볼 수 있게 실체화시킨다.

「아. 아아아. 아아아아아아…….」

「흐아아아아…….」

「흐으으윽… 이, 이게 뭐햐아아아…….」

사태를 파악하지 못해 혼란에 빠져 귀곡성만 지르는 셋. 와중에 빠르게 상황을 파악해서는 바람 빠지는 듯한 비명을 낮게 지르는 소위.

“정신 차려라.”

그들의 정신을 강제로 일깨운 환인은 계약부터 시도했다.

어차피 자신의 일행을 암살하러 온 자들과 맺는 계약. 상호 존중은 필요 없다고 느꼈기에 남아있는 들개 전사단 셋을 꺼내 나사라트의 암살자들에게 붙인다.

효과는 즉각적이었다.

「흐아아악…! 싫어…! 오지마…!」

「으어어! 타락하기 싫어어어…!」

「아아아. 아아아아아!」

타락은 전염되기라도 하는지 영혼들은 들개 전사단이 다가오는 모습에 발작하듯이 울부짖으며 무엇이든 할 테니 저것들만 치워달라고 애걸복걸했다.

‘간단하군.’

이로써 아르겐테아 여섯, 특급 송곳니 다섯에 더해 일월급 나사라트 넷을 해서 총 열다섯 개의 청옥을 확보하게 되었다.

이대로 방비만 잘한다면 암살자들을 상대로 청옥을 손쉽게 늘릴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암살자들을 적으로 돌리면 매우 성가셔지지.’

술법과 정령이 있어 독에 대한 대비와 암습에 대한 경계는 충분하다지만 사람이 1년 365일 모든걸 경계하며 살 수는 없다.

환인은 뒤처리를 생각하면서 나사라트의 암살자 영혼을 아영에게 붙여주었다.

“내일까지 나사라트와 관련된 정보를 전부 빼내서 엘미느와 대성녀님에게 전달해라. 모든 질문에 솔직히 대답하라고 해놓았으니 정보를 캐내는 건 쉬울 거다.”

=옙! 유르파 언니, 통신수정구용 위상석 몇 개만 주시면 안 될까요? 하얀 늑대들하고 통신을 좀 길게 해야 할 거 같아서요.=

=여기. 다섯 개면 되겠니?=

=쓰고 남으면 돌려드리겠슴다. 야, 다들 따라와.=

「흐으으…….」

「으으…….」

아영이 나사라트의 암살자 영혼들을 끌고 옆방으로 사라지고 때맞춰 환인이 내보냈던 아르겐테아 정찰병과 특급 송곳니, 들개 전사단이 차례대로 복귀한다.

「명령하신 조사를 마치고 복귀하였습니다! 제가 조사한 용병단에서는…….」

「성제님께서 지목하신 용병단의 사무실에서 비밀장부와 회계를 살펴본 결과…….」

「며칠전 중급 거리에서 몰락한 상단이 하나 있는데…….」

“…….”

환인은 영혼들이 물어오는 정보에 입가를 살짝 끌어올리며 웃었다.

어찌 이리도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지.

수집한 정보의 진위 여부를 낮춰 잡더라도 피해자는 없고 조금 덜 악랄한 가해자와 악랄한 가해자만 있는 기막힌 정황이다.

환인은 여자친구들이 혼재와 얽히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때마침 적당한 소재도 있었기에, 이실리테에게 적당히 싸움이 벌어졌던 것처럼 암살단의 시체를 가지고 주변을 꾸미라고 지시했다.

=이렇게 하면 되니?=

=왼발을 뒤로 반걸음 정도만 빼주세요. 오른손을 조금 더 내밀어주시고요. 네.=

촤악! 푸수우우웃—!

기사검으로 암살자의 머리를 제비가 비행하는 듯한 검격으로 베어버리자 목이 툭 떨어지며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벽과 천장을 물들인다.

유르파가 염력으로 몸통을 콱, 압박한 덕분이다.

=어휴. 이슬이 아가씨, 그냥 대충 베어놓고 피를 주변에 뿌리면 안 되는 거야? 염력으로 시체를 움직여서 동작까지 구현할 필요는…….=

=눈썰미가 좋고 검술이 뛰어난 사람이라면 현장에 남은 흔적만 보고도 어떻게 싸움이 벌어졌는지 알 수 있어요. 완벽하게 현장을 꾸밀 필요는 없지만 대충 눈가림할 정도는 있어야 의심받지 않을 거예요.=

=아하. 사람을 썰고 부순 흔적은 나보다 아가씨들이 더 잘 알 테니까……. 응. 이해했어.=

그렇게 두 구의 시체를 더 이용해 벽에 피를 뿌리고 안느도 나머지 세 구의 시체를 해머로 뭉개놓자 환인이 나섰다.

“수고했다. 그러면 시작하지.”

환인은 뭘 할지 궁금해하는 여자친구들에게 빙긋이 옅게 웃어주고 두 손을 합장하듯 마주 붙였다.

* * * *

작은 등불 몇 개가 타오르며 간신히 주변의 어둠을 물리치는 중후한 집무실.

각종 이블팩션의 머리가 박제되어 벽을 장식하고 있으며 온갖 거수巨獸의 뼈나 발톱 등으로 만들어진 장식물이 집무실 곳곳을 채우고 있어 심약한 자라면 살짝 지려버릴 정도의 흉흉함이 집무실에 감돌고 있었다.

=……—이것으로 보고는 끝입니다.=

=그래.=

그런 집무실의 주인, 죽은 남편을 대신하여 영주 대리로서 작위를 물려받고 그 무용으로 니라인을 통치하는 얌=헤밀니아는 깃펜을 잉크 통에 꽂아놓고 서류에서 눈을 떼며 입을 열었다.

=우페이가 성제를 만나고 왔다지.=

=점심 전 직접 만나 뵙고 내일 정오 점심 식사 약속을 잡으셨습니다.=

=사기꾼은 아니던가. 요즘 아우라를 모조하여 만들어내는 마도구가 극성을 부린다던데.=

=둘째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그들이 가짜라면 헤쉬토스 님께서 돌아가신 것도 가짜일 것이라셨습니다.=

=흥. 둘째에게 내일 아침 식사 후에 연무장으로 내려오라고 전해라.=

아비의 죽음을 그런 식으로 입에 담다니, 혼쭐을 내줘야 다시는 그러지 않겠지.

대답 없이 허리를 숙이는 보좌관에서 등을 돌린 얌은 어둠 속에 스며든듯한 군청색의 길게 땋아 내린 머리카락을 찰랑이며 창가에 섰다.

여기서는 붉은 바위 호텔의 붉은색 지붕밖에 보이지 않지만, 얌=헤밀니아는 호텔 전체가 보이는 양 눈을 가늘게 뜨며 말한다.

=그들이 정녕 성제라면 어떻게 이용할 수는 없을까.=

=알려진 바에 따르면 성제의 성격은 무척이나 종잡을 수 없다고 합니다. 거인숲 미궁 앞에서 암살 시도를 당하였음에도 태연히 여행을 이어가며 팔라툼에서 3달간 머물러 왕족과 고위 귀족들 간에 인맥을 다졌다 하였으니까요.=

=영혼사라기보단 정치꾼이라는 뜻인가?=

=한 가지 확실한 보고는 왕실과 귀족원이 그에게 설설 기는 듯하였다는 것입니다.=

=하. 후방의 안전한 곳에서 풍족한 먹거리들에 둘러싸여 유유자적한 삶을 보내는 것들이 진정한 위난을 알기는 할까. 평화에 찌드니 사람을 볼 줄도 모르고 설설 기기나 하지. 한심한 것들.=

=영주님의 의견에는 동감이오나, 성제의 이전 행적을 본다면 정치 감각도 뛰어날 것으로 파악되니 섣부른 행동은 반감만을 살 것이라 판단됩니다. 그리된다면 주도에서는 좋은 핑계를 주었다며 니라인을 압박하려 들겠습니다.=

=…….=

분기별로 니라인에서 소비되는 물자가 과하다며 어떻게든 지원을 줄이려 애쓰는 놈들이다.

니라인이 무너진다면 히스론드의 중부도 무너지는 것이나 다름없는데 그런 중요성조차 파악하지 못한 자들이 사람을 보는 눈이나 있을까 싶지만, 오랫동안 자신을 보필해왔던 보좌관의 판단은 믿을 만한 것.

‘썩을.’

요즘 이블팩션이 점점 더 미친 것처럼 날뛰고 있다. 솔직히 지금 인구로 막는 것도 힘에 부쳐 지원을 더 요청해야 하는 마당인데…….

얌=헤밀니아가 태평한 히스론드의 왕족과 고위 귀족을 속으로 육포처럼 씹고 있을 때였다.

두쿠우우우우웅——………!!!

대지를 진동시키는듯한 울림과 함께 찬란한 섬광의 빛기둥, 니라인의 절반을 삼키는 규모의 백색 빛기둥이 치솟아 올라 하늘을 찔렀다.

=뭐……?!=

=헉!=

피부를 찌릿찌릿 찌르는 난폭한 기류에 목 뒤에서 묶어 땋아 내린 군청색 머리카락이 사납게 펄럭이고 있지만, 그것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단정하게 아름다운 얌의 얼굴은 경악으로 가득 차 있었다.

불어닥치는 기파를 손으로 막으며 역천을 하듯이 격렬하게 치솟는 빛기둥을 멍하니 바라보던 얌이 뒤늦게 버럭 소리쳤다.

=저것은 무엇이냐!=

=호, 혼령주로 판단됩니다!! 영도의 영성이 최소 셋은 모여야 쓸 수 있는 대범위 정화술인데 저게 갑자기 왜……!=

=저걸 성제가 펼쳤나!? 어째서?!=

혼령주가 세워지고 족히 20초가 지났다. 그럼에도 기둥은 기세를 잃지 않은 채 난폭한 바람을, 기가 약한 생물이라면 기절해버릴 정도의 기파를 마구 뿌려내는 중이다.

저게 왜 갑자기 세워졌을까.

당황 속에서 그 이유에 생각이 미친 얌=헤밀니아는 굳어진 얼굴로 자신의 애병, 벽력의 전뇌창을 쥐고 집무실 창문에서 뛰어내렸다.

쿠구구구구구……….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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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system: 주인공은 썩은 미소를 지었다!

system: 니라인의 영주가 기겁합니다.

system: ????가 호기심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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