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1 이중 미궁의 중핵
찌이이잉—
자욱한 흙먼지를 뚫고 날아온 순백의 레이저 다발이 단단한 위상력으로 코팅된 데다 그 위에 빛에 대한 저항 성술까지 걸린 성벽의 방패를 지진다.
하지만 과열의 흔적조차 없이 말 그대로 성벽城壁처럼 굳건하게 막아내는 안느의 방패.
그녀가 전방에서 공격을 막는 사이 환인은 레이저가 날아온 방향을 계산, 좀 전의 전투에서 회수했던 전투 천사의 영혼을 영혼 화살로 가공해 쏘아 날렸다.
팍! 퍼걱- 퍼석.
회백색의 영혼 화살이 먼지를 뚫고 사라지자마자 수박 같은 게 연달아 박살 나는 소리, 이어서 털썩 풀썩 고깃덩어리가 쓰러지는 소리가 통로를 메아리친다.
「적 전원 침묵.」
아르겐테아 정찰병 영혼의 보고에 환인은 뒤로 살짝 손짓했고, 유르파가 지팡이로 바람을 일으켜 흙먼지를 날려버렸다.
머리가 완전히 박살 나 목뼈가 대롱거리는 천사. 아래턱만 남아 혓바닥이 뿌리까지 드러나 축 늘어진 천사 등, 머리를 잃은 시체가 쓰러진 고어한 장면이 드러난다.
그러나 일행은 아랑곳하지 않고 천사들이 쥐고 있는 무기와 방어구를 강탈하고 가슴을 갈라 위상석도 챙기기 시작했다.
5계층으로 돌아나가는 길.
미궁이 예비 중핵을 강탈당한 것과 침입자가 들어온 것을 인지했는지 뒤늦게 사방에서 전투 천사가 몰려왔다.
한 번에 4마리부터 많게는 7마리까지 습격해오는 전투 천사들.
환인은 아르겐테아 정찰병 영혼들을 전부 불러내 전방과 후방에 각각 50m씩 거리를 두고 쫓아오게 하였고, 그런 영혼들이 보내오는 천사의 출현을 여자친구들에게 알려 선제 타격으로 이형종을 수월히 제거해나가고 있었다.
다만 지금처럼 정찰병이 숫자로 인해 파악하지 못한 코너에서 나타나 근접 전투가 벌어지기도 했는데, 그런 상황도 크게 위험하지 않았다.
안느가 빼어난 청각으로 수십 미터 앞까지 접근한 이형종을 파악하기도 했고 환인도 죽인 천사들의 영혼으로 장전해놓은 영혼 화살을 적이 나타날 때마다 쏴서 즉시 머리를 날려버렸던 것.
하늘색 탱크탑을 입어 젖가슴골을 훤히 드러낸 백려강이 전투 천사의 가슴을 단검으로 가르면서 말한다.
=확실히 위상석이 다른 미궁에 비교해서 잘 나오네요. 다른 미궁에 비하면 2~3배는 되는 거 같아요.=
삼쌍익에 특이한 형태의 헤일로를 단 여자 천사가 이쌍익의 여자 천사 가슴을 태연하게 가르며 말하는 모습이 다소 이질적이다.
하지만 유르파와 아영은 신경 쓰지 않고 머리가 날아간 여자 천사의 몸에서 천, 가죽 갑옷을 벗겨나간다.
=그러게. 미궁에 들어온 뒤에 순수 위상석으로만 대충 200금화는 벌어들였어.=
=그 외에도 예상하지 못한 수확이 크죠. 비상이도 성장했고 려강이도 새 몸을 얻었고요.=
안느와 이실리테가 주변을 경계하고 유르파와 아영, 백려강이 빠르게 전리품을 회수하는 사이 환인은 아영이 그린 지도를 받아 자신이 그린 것과 비교하고 있었다.
5계층부터 시작된 맵핑이 80% 가까이 완성되어 밝혀지지 않은 지역이 거의 없다.
6계층 영역으로 넘어오기 전에 몇 군데 지나친 갈림길이 있긴 하지만, 그것도 몇 개 되지 않는다.
환인이 이렇게 지도를 들여다보고 있는 이유는 처음 입장했던 외부 통로 같은 것이 단 하나도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자기~. 전리품 회수 다 했어.=
“예. 출발한다.”
다시 이동을 개시하며 환인은 지도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럴 가능성은 작지만, 자신이 미처 못 보고 지나쳤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 아영이 그린 지도와 비교하고 있는데 그녀의 지도도 자신이 그린 것과 비율과 축적의 차이만 있을 뿐, 구조는 완전히 같았다.
‘각 배양실마다 외부와 연결된 통로가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들어왔던 통로를 제외하면 10개가 넘는 배양실을 부수고 갈림길도 최대한 확인하며 진입했는데 외부 통로는 단 하나도 발견하지 못했다.
이쯤 되면 특별한 방식으로 숨겨놓은 통로가 있다고 봐야겠지. 예를 들어 자신이 목격했던 상처 입은 전투 천사처럼, 특정한 장소에서 특정한 행위를 해야만 열리는 통로라던가 말이다.
하지만 이해가 안 가는 점이 있다.
“…….”
환인은 고개를 들어 천장의 경락이 흐르는 선을 눈에 담는다.
이중 미궁으로 들어온 뒤 환인은 영혼의 눈을 계속 열어놓고 있었다. 만약 감춰져 있거나 숨겨진 통로가 있다면 미궁의 경락이 그 부분에서 끊어지거나 비껴가는 등 의심스러운 점이 눈에 띄었을 거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런 것은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그 말은…….
자신의 뒤를 따라오는 유르파에게 물었다.
“유르파, 환각이나 착시와 관련된 술법을 쓸 수 있습니까.”
=응. 남에게 다른 모습으로 보이는 환영 비술 하나 외우고 있어.=
“안느, 잠시 대기. 유르파, 지금 써보십시오.”
일행을 멈춰 세운 환인은 유르파에게 부탁했고, 잠시 후 그녀의 모습은 여성미가 느껴지는 예쁘장한 미청년으로 변했다.
젖가슴과 엉덩이의 굴곡만 사라진, 얼굴과 머리 모양은 유르파 그대로인 모습.
=적용됐어. 그런데 갑자기 환영은 왜?=
“이상해서 그렇습니다. 지상의 4계층, 5계층, 6계층은 곳곳에서 전투 천사가 출몰한다고 하는데 지금까지 외부로 나가는 통로는 하나도 발견하지 못했지 않습니까.”
=저도 이상하다고 생각했슴다. 섬 하나에 배양실 하나인 식이니까 못해도 근방에 통로가 다섯 정도는 있을 줄 알았거든요.=
=우리가 찾지 못했을 가능성은 없어?=
=없슴다.=
전방에 시선을 고정한 채 귀를 쫑긋 세운 안느의 질문에 아영이 가장 먼저 고개를 저었다.
그녀도 환인이 그린 지도를 보고 자신이 못 보고 놓친 가능성은 없다고 확신한 거다.
유르파는 환영을 유지하면서 눈빛이 가라앉고 있는 환인에게 물었다.
=어떠니……?=
“유르파의 모습 위로 안개 같은 위상력이 덧씌워진 게 보이는군요. 환영으로 통로가 가려진 것은 아닌듯합니다.”
=그럼 물리적으로 숨겨져 있다는 뜻이겠네. 미궁은 그걸 감추는데 능숙한 거구.=
=어. 우리는 여기에 갇혔단 거죠?=
“…….”
물리적으로든 위상적으로든 탈출할 방법은 많다. 개중에는 약간의 위험 부담을 안고 있는 것도 있고, 좀 귀찮지만 시간을 들여 안전하게 빠져나가는 방법도 환인에게 있었다.
그건 편법이고 미궁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종류다.
목숨에 지장이 생길 정도로 위험한 상황이 아니면 그다지 동원하고 싶지 않다. 미궁에 장애가 생긴다면 테이아무스 섭정에게 꼬투리를 잡힐 빌미를 주는 셈이니까.
자신이 입힌 은혜가 크다 보니 히스론드 왕실은 어지간히 큰 사건이 아닌 이상 없던 일로 하고 넘어가 줄 테지만, 사소한 빌미도 주고 싶지 않다는 게 그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때 환인의 눈에 쿠에 신수가 된 것처럼 우아한 자태로 서 있는 비상이 들어왔다.
자기가 생각하는 동안 두 번, 아무것도 없는 벽 쪽을 한순간 힐끔거렸었지…….
“비상.”
「나 불렀어?」
“그래. 방금 뭘 본거지.”
「안 봤는데?」
“그런가. 그러면 뭔가를 느꼈나.”
=……?=
=…??=
「응.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 여기 축축해서 냄새 안 좋아. 바람이 불어오는 쪽에서 상쾌한 냄새가 나.」
=……!=
=앗, 그거…….=
여자들의 자그마한 탄성을 들으며 환인이 비상에게 부탁했다.
“그 바람이 불어오는 곳으로 우릴 안내해줄 수 있겠나.”
「응! 나 따라와!」
유르파와 백려강과 같이 중열에 서 있던 비상이 달그락 타박 달그락 타박 신기한 발소리를 경쾌하게 내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앗, 야. 내 앞으로 나서지 마. 언제 적이 나와서 광선을 쏠지 모르는데. 맞으면 아야 한다?=
「안느 약해!」
=……뭐?=
「그런 작은 빛줄기, 맞아도 안 아파! 아야 하는 안느가 약한 거야.」
=……너 맞아보고 그런 말 하는 거야?=
「안 맞아도 아는데!」
큐흐흥~ 비상의 웃음소리에 안느의 표정이 요상하게 일그러진다.
감이 예리한 동물이나 짐승 같은 경우에는 맞아도 괜찮은지 안 괜찮은지 순식간에 알아차리는 부류가 있다고 들었다. 혹시 비상도 그런 건가?
그렇다 해도 저 예쁜 녹색 깃털이 광선에 그을리거나 일그러지는 것은 싫었기에 안느는 비상과 보폭을 맞춰 걸었다. 혹시 전방에서 레이저가 날아오면 자신이 막을 생각으로.
하지만 그게 자신의 오판임을 알아차리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얍!!」
쿠콰아아악—!!
촤자자작카드득드드듴쿠콰콰콱—!
나란히 걷고 있던 비상이 갑자기 깜찍한 기합과 함께 날개를 활짝 펼치자 녹색 돌개바람 같은 폭풍이 먼지를 자욱이 일으키며 날아갔고, 잠시 후 먼지의 벽 너머로 사람을 믹서기에 넣고 갈아버린 듯한 소리가 날아온 것이다.
한순간이지만 간접적인 영향에도 불구하고 몸이 살짝 밀렸을 정도의 풍압에 얼굴을 굳힌 안느.
방패를 세우고 조금 더 나아간 그녀는 통로 일부가 새빨간 피로 물든데다 살점이 어지럽게 널린 것을 보게 되었다.
그게 비상이 날렸던 녹색 돌개바람이 한 짓이며 살점의 주인은 전투 천사라는 걸 짐작하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뒤에서 따라오던 유르파가 그걸 목격하곤 조금 멍한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5급 전투 천사를 이 꼴로 만들었다는 건 7급 상위 술법의 위력이라는 건데…….=
「친구야. 나 잘했어?」
“그래. 잘했다.”
환인도 속으로 살짝 놀랐다.
노 캐스팅 딜레이로 쏜 공격이 저만한 위력이라니, 집중한다면 그 위력은 크게 증가할 것이다. 그 수준은 모르긴 몰라도 이실리테와 안느가 작심하고 날린 공격과 같은 급이겠지.
자신의 왼팔과 오른팔인 이실리테와 안느.
그녀들보다 무력은 떨어지지만, 안느를 아득히 능가하는 성술의 소유자인 아영.
환인은 거기에 자신까지 해서 기본 4명의 미궁 탐사 파티를 구성하려 했었다.
그러다 팔라툼에서 백려강이 활에 적성이 있음을 알게 되어 나름 후방 지원역할로 꽂고 비상은 짐운반용으로 데리고 다닐 생각이었는데…….
‘생각을 바꿔야겠군.’
백려강도 육체를 바꿔 타며 그 포텐셜이 이실리테나 안느 버금가는 수준으로 상승했음을 환인은 은연중에 느끼고 있었다. 그랬는데 비상도 7급 직업자 정도의 능력을 갖추다니.
7급 탱커(안느), 7급 수준의 근중거리 딜탱(이실리테), 추정 8급의 누커(자신), 7급 힐러(아영)에 7급 수준의 원거리 딜러 둘(백려강, 비상). 추정 6~7급의 정령사(환연)에 외부 지원역할의 7급 부여 비술사(유르파)까지.
자신이 상정했던 것 이상의 완벽한 파티 구성이 되었다.
이 정도라면 니오네브레스 미궁의 정점이라 불리는 8대 비경과 마경도 도전할 수 있지 않을까.
=어, 도령 웃었다.=
=기분이 좋으신 거 같아.=
=비상이 세져서 좋으신 거 아님까?=
=좋은 쪽으로 자기 예측을 뛰어넘어서 좋아하는 거 같은데?=
「저거, 너희를 따먹을 때 가끔 보여주는 음흉한 웃음이야.」
환연의 적나라한 표현에 여자들의 얼굴이 살짝 붉어진다.
벌써 며칠째 제대로 된 잠자리를 가지지 못한 탓에 살짝 욕구불만이 쌓여있었는데 환연의 이야기가 그런 욕구를 찔렀기 때문.
환인은 여자친구들의 은근한 시선을 느끼며 작게 헛기침하며 말했다.
“크흠. 비상, 계속 안내해다오.”
「이쪽이야!」
거의 사람 키만한 길고 아름다운 녹색 깃털을 중심으로 작은 깃털로 꾸민 깃털 뭉치 같은 꼬리가 기분 좋은 듯이 좌우로 살랑살랑 흔들린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나아가는 비상에게 안느가 궁금하다는 얼굴로 말을 걸었다.
=비상이 너 진짜 세졌네. 바람이 그 정도로 강해졌으면 몸도 단단해진 거 아냐?=
「응. 힘도 세졌어. 등에 올린 거 하나도 안 무거워. 특히 뒷발 힘이 강해진 거 같아-.」
=그래? 어느 정도로?=
「봐봐-.」
한쪽 벽을 등지고 선 비상이 쉭- 뒷발 차기를 날리자 쿠궁! 소리가 한발 늦게 터지며 벽이 말 그대로 운석에 맞은 것처럼 박살 나버린다.
별로 힘도 안 준 듯한 느낌이었는데 벽이 완전히 박살 나버리다니?
여자들이 크게 놀라고 있을 때 환인은 눈썹을 살짝 찡그렸다.
“……?”
벽이 저렇게 박살나며 잔해가 안으로 쓰러졌다는 것은 건너편에 공간이 있다는 뜻이 아닌가.
뿌연 먼지 너머로 적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기에 대강 3m 두께의 벽을 넘어간 환인은 피식, 어이없는 웃음을 흘렸다.
=엇, 어. 통로?=
=아가씨들 잠깐만! 아영아. 저기 통로가 원래 있었어?=
=지도 확인해볼게요!=
“지도에 나와 있지 않은 길이니 확인할 필요 없다. 다들 넘어와라.”
환인은 자기가 실수한 걸까싶어 엉거주춤 구멍을 통해 넘어온 비상의 머리를 쓰다듬어 잘했다고 칭찬해주었다.
말 그대로 소 뒷걸음질 치다가 쥐 잡은 격이지만 숨겨진 길을 찾아낸 것은 사실이니까.
“하지만 밖에 나가면 우리 외에 다른 사람에게는 다가가지 않는 게 좋겠군. 그 힘이면 일반인은 툭 치기만 해도 죽을 테니 말이다.”
「응.」
“그러면 계속 움직이지.”
길은 예상 밖으로 금방 끝났다.
벽을 넘은 뒤 바람이 불어오는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던 일행은 50m도 채 걷지 않아 벽과 마주쳤다.
=오빠. 이 너머에 6번 배양실이 있을 거예요.=
“그래…….”
환인은 벽을 조심스레 살폈다.
산속의 이중 미궁에는 막다른 길 같은 게 없었다. 갈림길이나 교차로, 아니면 배양실만 나오는 구조였던 것.
그랬는데 벽이 나타났다는 것은 이 너머에 무언가가 있다는 뜻.
그려온 지도에 따르면 이 너머에 있는 것은 미궁에 들어온 뒤 여섯 번째로 박살 낸 배양실이다.
하지만…….
“영혼의 눈에 이상한 점은 보이지 않는다. 경락도 이상하지 않게 벽을 따라 흐르고 있고.”
=개폐 장치도 못 찾겠어요. 아무리 찾아봐도 수상한 게 안보여요!=
한숨을 내쉰 환인은 살짝 물러났다가 그리모암의 강력을 끌어올리는 동시에 회전의 묘리를 살려 벽에 발차기를 내질렀다.
쿠쿵!!
발차기가 닿은 지점을 중심으로 지름 70cm 정도의 구멍이 나고 주변으로 금이 쫘자작 간다.
=나머진 내가 할게.=
안느가 나서서 성벽의 방패를 세워 쾅! 들이받자 금이 갔던 부분에 더해 나머지 벽이 터져나가듯 배양실로 쏟아졌다.
벽의 두께는 똑같이 3m
=음. 기관 같은 게 아예 안 보이는 걸 보면 이형종들은 특별한 신호로 미궁과 소통해서 문을 여닫나 본데요?=
=그거 안 이상해? 우리가 들어온 통로는 안 막혀있었잖아.=
=안느 언니. 생각해보세요. 우리보다 앞서 누가 들어갔어요?=
=……다친 전투 천사.=
=옙. 다친 천사가 통로를 닫는 걸 깜빡했다고 보면 말이 맞지 않을까요?=
=그러네…….=
환인은 어느새 원상복구 되었지만, 천사도 없고 캡슐도 텅빈 배양실을 돌아보다 여자친구들에게 말했다.
“다시 들어가지.”
그리고 반대쪽으로 나아갔던 일행은 처음 들어왔던 외부 통로처럼 강한 바람이 구름을 밀어내고 있는 경계선에 닿았다.
비상이 느꼈던 자그마한 바람은 구름을 밀어내느라 발생한 와류로, 바깥의 공기가 그 흐름을 타고 살짝 안으로 흘러들어왔던 것.
여자들은 망설임 없이 들어왔을 때처럼 유르파의 소형화 비술을 받아 작아졌다.
이어서 환인은 환연이 조종할 바람 정령을 영혼 구슬에서 해방하려 했으나, 비상의 외침에 그만두었다.
「나 보호막 할 수 있어!」
「진짜? 엉성하게 하거나 잘못하면 우리 다 죽어.」
「안 엉성해! 봐!」
비상의 자신만만한 외침에 걸맞게 바람이 완벽하게 구체형으로 만들어져 외부와 내부를 가른다.
「생긴 건 제법이네. 효과는… 꺄아!」
바람의 벽을 건드렸던 환연이 선풍기 바람에 날아가는 모기처럼 바람의 벽을 타고 빙글빙글 돌기 시작한다.
그런 환연을 받아낸 환인은 소매를 걷어 경계선에 팔을 밀어 넣어보았다.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밀어내듯 바람이 벽을 이루고 있는 게 느껴진다.
“정체불명의 녹색 보석, 강화석이라고 할까. 녹색 강화석의 구조가 새삼 궁금해지는군.”
=그러게. 그게 뭐길래 비상을 이렇게 성장시킨 거지?=
환인은 어렴풋이 짐작이 갔지만, 그게 가능한 것인지는 판단이 서지 않았다.
심핵력과 위상력을 섞어 결정처럼 만드는 기술 같은 것, 그는 가지고 있지 않으니까.
=실루가 나중에 크면 불 속성의 강화석을 구해야 할까?=
=오, 그럼 실루도 비상이처럼 강해지겠네.=
어깨 위에 올라와 있는 이실리테와 안느의 이야기에 환인은 고개를 저었다.
실루, 확실히 평범한 쿠에와는 다르다. 일반적인 밀짚 색 쿠에 유생보다 크고 힘도 세고 종종 자신의 말도 잘 알아들으며 똘똘하긴 하지만, 그건 노을색 쿠에라는 종 안에서 똑똑함이라고 할까.
비상은 실루보다 작을 때에도 이거 하고 싶다, 저거 하고 싶다, 이건 싫다, 저건 좋다. 그 뜻을 확실하게 표현했다.
그게 얼마나 선명했는지 눈치가 비상한 환인에게는 마치 말을 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
그랬던 비상은 2차, 3차, 4차 성장을 거치며 지능도 높아지고 표현도 더욱 세련되게 변했다.
아성체가 되어 등에 탈 수 되었을 때에는 사람이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이 의사소통이 가능해졌다.
“하지만 실루는 아니다. 아마 잘 성장해도 비상처럼 똑똑해지지는 않겠지. 쿠르티나 쿠핀, 쿠라보다는 똑똑하겠지만.”
삐? 삣. 삐삣.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가 내려졌지만, 실루는 긴 이야기를 알아듣지 못하고 삐삐거리며 고개만 갸우뚱한다. 아까 부리 안에 들어왔던 강화석을 빼앗긴 것도 잊은 눈치다.
비상이었다면 꽤애액 포효를 지르면서 자신의 손을 부리로 물어뜯으려 했겠지.
그런 실루와 반대로 비상은 자신을 한껏 칭찬하는 이야기라는 걸 눈치채고 턱을 치켜든 채 우쭐해 하는 중이다.
여자들이 그런 비상을 보며 귀여워하고 있을 때 환인은 비상의 등에 훌쩍 올라탔다.
‘……탑승감이 조금 나빠졌군.’
변화하기 전에는 서스펜션이 완벽한 고급 승용차를 탄 감각이었는데 지금은…… 조금 직설적으로 말해 수천만 원짜리 괴물 모터바이크를 탄 느낌이라고 할까.
편안함은 약간 줄었지만 대신 살아있는 생물을 타고 있다는 익사이팅한 감각이 더해졌다.
뭔가 상남자의 탈것 같은 느낌.
‘비상도 암컷이니…….’
중의적으로 표현해도 남자의 탈것이 맞긴 하겠지. 짐승 형상은 절대 무리지만 비상의 사람 형상이라면 가능하니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비상의 목을 쓸어내리고 있는데 품 안에서 환연의 뾰족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어휴. 진짜 가능성의 짐승이라니까. 못 먹는 게 없어.」
=응? 무슨 말이야?=
「순진한 백려강은 아직 몰라도 돼.」
환인은 품 안의 비난을 못 들은 척하며 비상에게 명령을 내렸다.
“비상, 가자.”
큐르릉!
동굴을 빠져나오자마자 구름이 비상의 바람막에 밀려나며 정말 조금도 흘러들어오지 않는다.
‘이 정도라면 바깥의 산소까지 차단되지 않을까.’
환인은 그 점을 비상에게 지적해주었고, 본능적으로 산소와 호흡의 중요성을 알고 있던 비상은 큐웃! 짧은 울음소리로 대답한 뒤 날개를 활짝 펼쳐 상승하기 시작했다.
빠져나온 곳은 입장했던 곳과 달리 평범한 산비탈이다.
비상은 뒤에서 습격받는 일을 막으려는 것처럼 산비탈을 등지고 대각선으로 상승한다.
‘날개가 다리에 닿는군.’
날개의 위치가 앞발과 뒷발의 정확히 중앙에 있다 보니 평범하게 앉자 비상이 날갯짓을 할 때마다 날개 관절 부위가 허벅지와 종아리에 살짝살짝 닿는다.
이러면 비상도 날갯짓이 신경 쓰일 테지.
숨을 아주 가늘고 얕게 쉬면서 환인은 바꿀 안장의 구조를 머릿속으로 그려나간다.
동시에 광명창에 손을 올리고 흑옥 영혼 화살을 장전, 긴장을 다잡았다.
지도에 따르면 지금 빠져나온 곳은 정체불명의 거대 괴물과 마주친 장소 사이로 산등성이가 이어져 있다.
굴곡이 있긴 하지만 산등성이가 쭉 이어지는 지형인 만큼 평범하게 생각해서는 괴물이 이쪽으로 넘어오지 못하는 게 당연하지만, 미궁 안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다.
여자들도 긴장한 눈초리로 주위를 살피고 비상도 신경 쓰며 위로 상승한 지 얼마 후.
푸확—
우유색의 짙은 구름을 뚫고 올라오자마자 희미한 녹색의 바람막이 사라지고 여자들과 비상이 크게 숨을 내쉬었다.
「후와!」
=긴장하면서 숨 참기 은근히 어렵네.=
=숨 참기 훈련도 해야겠어.=
“…….”
그러나 환인은 묵처럼 짙은 눈동자를 구름바다에 고정한 채 눈을 어둡게 빛내기만 했다.
이실리테는 환인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 것 같아 입을 열어 물었다.
=주인님. 그 괴물을 사냥하실 생각이세요?=
“몇 가지 조건이 갖춰진 덕에 하고자 하면 가능하다고 본다.”
하지만…… 그렇게 끌리지는 않았다.
머릿속에 그 괴물을 잡고 싶다는 생각이 절반, 잡아봤자 쓸모가 있을까 하는 냉철한 생각이 절반으로 각각 나뉜 거다.
야미오코와 싸우기 전이였다면 흥미와 자극을 쫓아 그 괴물을 사냥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겠지.
그러나 야미오코와 싸운 지 얼마 되지 않다 보니 아직 쾌락과 자극을 바라는 욕구가 그리 쌓이지 않았다.
‘입장한 지 10일이 되어가고 있는 것도 있고.’
환인은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여자친구들과 비상의 시선에 작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번에는 돌아가지.”
그래. 지금은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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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으으으음?
어째 저보다 독자님들이 비상이 변화를 더 좋아하시는 거 같은데... ㅋㅋㅋㅋ
내일 연재는 좀 많이 늦어질것 같습니다.
할머니 생신이라 제사 준비하고 진행하면 시간이 많이 들거 같아서요...
비축을 쌓아놓으면 이럴때 하나씩 빼쓰는데 라이브 연재한지 몇달 째인지;;
미리 사과 드리겠읍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