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8 이중 미궁의 중핵
몸이 위아래로 크게 흔들릴 정도의 진동과 함께 통로 붕괴로 발생한 흙먼지가 일행을 덮친다.
쿠궁, 쿠구구구그그그그…….
통로 저편은 절찬 무너지는 중인지 바위와 바위가 부딪치는 육중한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오는 중.
쿠쾅…… 콰과과광…….
‘거대 괴물이 밖에서 절벽을 들이받고 있는 건가.’
어쨌든 완벽하게 막힌 채 먼지를 풀풀 피우는 통로의 모습에 환인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째 자신은 거대 괴수와 인연이 많은 것 같다. 나름 위기를 주는 괴물들이 전부 대형이지 않은가.
최근의 야미오코를 시작해 거인숲 거인, 릴라이스, 아드네빌라에 이어 린덴 촌락에서 싸운 대형 화성인 같은 문어 괴물도 있고 영성경, 영성 하늘고래 때문에 홍수에 휘말릴 뻔한 적도 있다.
쿠르르르……….
소음과 진동이 잦아들다 멈추자 그의 옷가지에 반쯤 매달린 채 숨죽이고 있던 여자친구들이 안도의 한숨을 흘려보내거나 몸을 부르르 떤다.
=휴우우우. 사, 살았네요…….=
=으~. 애 떨어지는 줄 알았네.=
=어으 소름 끼쳐. 방금 그 괴물은 뭐였슴까? 크기랑 공격력만 보면 중핵 느낌인데요.=
=중핵이겠지? 그 흉포함이랑 절벽을 들이받아서 부술 정도였으니까. 그보다 이슬이는 몸 괜찮아?=
=뭐가?=
=아까 검섬 날렸잖아. 난 위상력이 정체되는 느낌이라 힘을 못 쓰겠던데, 위상력 회로 안 꼬였어?=
=저도, 저도 내장이 배배 꼬이는 느낌이어서 힘을 못썼슴다…….=
=난 괜찮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쓴 거야. 실제로도 아무렇지 않고.=
=와아. 검희 직업은 위상력 친화가 굉장한가 봐요, 언니.=
여자친구들이 떨리는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기 시작하더니 이야기를 주고받을 때마다 목소리에 활력이 돌기 시작한다.
어느새 보통의 활기찬 어조로 돌아온 그녀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비상의 등에서 내렸고, 여자들도 제각기 실력으로 그의 몸 위에서 폴짝폴짝 뛰어내린다.
=콜록. 먼지가 심하네요.=
백려강이 바람을 다스려 먼지를 한데 모으니 황사가 낀 것처럼 뿌연 시야가 맑아지고, 유르파는 로브를 탁탁 털며 여자친구들을 한 자리에 불러모았다.
=소형화 비술을 풀어줄 테니까 모여줘~.=
그녀의 지팡이가 보랏빛을 내뿜더니 무럭무럭 자라나 원래 모습을 되찾는 여자들.
기지개를 켜거나 가벼운 체조로 몸을 푸는 여자들에게서 시선을 돌린 환인은 배양실을 차분히 훑는다.
‘누군가 찾아온 흔적은 없군.’
미궁이 모든 영역을 지켜보는 건 아닌가.
미궁의 의지는 일종의 고성능 AI, 미궁마다 차이나는 인공지능 같은 게 아닐까 생각했지만 그보다 좀 더 엉성한 느낌일지도 모르겠다.
그사이 유르파는 이제 8살 남짓한 전투 천사가 들어있는 캡슐 앞에서 복잡한 한숨을 내쉬었다.
그 소리를 들은 백려강이 유르파에게 다가가 묻는다.
=언니?=
=응?=
=갑자기 심경이 복잡한 것 같으신 한숨을 내쉬셔서…….=
=아~. 이걸 보니까 얼마나 말이 안 되는지 새삼 깨달아버려서.=
환인의 노트북에서 닥치는 대로 지식을 탐독한 유르파는 생명공학기술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지식을 쌓게 되었다.
그리고 위상력이 간섭하거나 개입하지 않은 니오네브레스의 사물 구조, 성질, 법칙 등은 지구의 과학과 굉장히 흡사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 그녀의 눈에 이 캡슐은 과학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물질 그 자체다.
위상력은 존재하지 않는 법칙을 만들어내 일으키는 게 아니다.
예를 들어 불이란 어떤 물질이 산소와 화합하는 반응 중에 열이 발생하여 온도가 상승하고 그 결과 강한 열과 빛을 동반한 산화 반응 현상으로 설명할 수 있다.
간단히 말해 가연성 물질에 불을 붙여 태운다는 행위인데 여기서 위상력은 그 가연성 물질을 ‘대신’해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불을 일으키게 해준다.
그런데 이 캡슐은 뭘까. 위상력이 검출되지도 않는데 생물을 어떻게 성장시키는 거지? 영양소의 공급은 어떤 식으로 하는 거고?
자기는 영혼이 없는 인형이라 했다. 신체 성장의 주도는 어디서 이루어지는 거지? 미궁은 생명과학을 전부 이해하고 이걸 만드는 건가?
전문가 수준은 아니지만 아이는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자라는지 과학적인 측면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 유르파였기에 발생한 혼란인 셈.
배양실을 돌아다니며 캡슐을 파괴하던 환인은 그 의문을 듣고 나름의 견해를 이야기했다.
“미궁의 경락은 캡슐로 이어져 있습니다. 저 경락을 통해 성장에 필요한 영양분을 전달받는 거겠지요. 그건 당연히 알에서 태어난 유아기에서 시작될 테고 말입니다.”
=…태아에서부터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영양 보충이 목적이라면 많은 부분이 설명되겠네. 그러면 영혼은? 미궁은 영혼도 다룰 수 있는 걸까? 영혼을 창조해내는 것은 신의 영역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말은 미궁도 신성에 한 발 걸쳐져 있다는 뜻?=
“그걸 알아내는 것은 이 세상 사람 누구도 불가능하지 않겠습니까.”
그에 관한 연구조차 허용하지 않을 막강한 집단이 이 세계에 최소 넷이다. 아니, 영도까지 하면 다섯인가.
뒤에서 차분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안느가 입을 열었다.
=도령 말이 맞아.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그걸 알아내는 것은 불가능할 거야. 함부로 접근했다간 전 세계의 신관과 성직자들이 피에 물든 철퇴를 들고 달려와 머릴 깨버릴 정도로 금기 중의 금기니까.=
=응…… 앗? 안느 아가씨, 그냥 미궁이 어떻게 이런걸 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을 뿐이니까? 연구해서 모두를 위험에 빠트릴 생각 같은 건 없어.=
=오해 안 하니까 걱정하지 마. 도령이랑 같이 있다 보면 그…… 굉장히 민감한 주제의 세계급 기밀 정보가 뜬금없이 훅하고 다가올 때가 많잖아? 그럴 때 얼마나 머릿속이 복잡해지는지는 나도 잘 알고 있으니까.=
안느의 이해심에 유르파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환인은 마지막 남은 캡슐도 광명창으로 파괴한 뒤 여자친구들에게 말했다.
“그러면 이제 탐사를 시작하지. 앞서 몇 가지 주의해야 할 사항을 말해주마. 먼저…….”
이 산속은 거인숲 미궁처럼 정령을 활용한 탐색이 불가능하다.
배양실의 관리에 평천사들이 돌아다니는 것으로 판단되지만, 전투 천사가 이쪽으로 도주한 것을 보면 전투 천사 또한 있을지 모른다.
출입구로 바람이 빠져나가는 것을 고려했을 때 천사들도 구름의 상태 이상 효과를 받는다는 거겠지. 그렇다고 내부에 구름이 고여있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걸 주의하고, 청옥의 영혼으로 선행 정찰을 보낼 거지만 환연의 감시만큼 치밀하지 못하니 사주 경계를 늦추지 말도록. 대열은 안느를 선두로 나, 유르파와 백려강, 비상과 아영, 이실리테 순이다.”
통로는 폭 5m 정도에 천장이 아치형인 구조.
저쪽은 날개 때문에 1열로 밖에 다가오지 못할테니 성벽의 방패를 지닌 안느를 앞세우고 자신이 뒤에서 원호한다면 전투는 어렵지 않을 거다.
대열을 서자 후방에 있던 아영이 증표를 들어 올리며 말한다.
=그러면 몇 가지 성술을 걸겠슴다.=
땅신 교단 성술의 특징인 황토색의 빛무리가 징표에 맺혀 반짝일 때마다 일행의 몸에 옅은 빛무리가 휩싸이다 사라진다.
세 번 빛이 반짝인 뒤 징표를 내리자 뒤에 서 있던 이실리테가 물었다.
=무슨 성술이야?=
=빛에 대한 저항력이랑 물리 피해 감소, 지속적인 원기 회복 세 종류임다. 통로 폭이 좁으니까 피하지 못하고 몸으로 막아야 할 수도 있잖아요? 그때를 대비한 거예요.=
=그러네.=
바깥에서는 이런 성술을 쓰지 않았다.
이실리테와 안느는 적이 불쌍할 만큼 반격과 흘리기, 회피로 공격을 거의 허용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에게 이런 보호 성술을 걸어줘봤자 성력의 낭비일 뿐이다.
다치면 회복에 성력을 쏟아붓는 게 절약 면에서 이득인 것.
하지만 통로는 회피가 불가능할 만큼 좁다. 안느도 성술로 빛에 대한 저항을 방패에 부여해서 치켜든 상태일 정도.
유르파도 아영과 같은 판단을 내렸기에 짧지 않은 주문을 외워 불에 대한 저항력을 일행에게 부여한다.
=늘 맨몸으로 싸우다가 이렇게 보호 술법을 받으니까 기분이 묘하네. 아무튼 출발할게!=
“그래.”
그렇게 만반의 준비를 마친 일행은 긴장을 추슬러 올리며 통로에 진입했다.
=…음. 함정도 뭐도 없고 이형종의 저항도 좀 맥없고…… 뭔가 힘 빠지는 느낌이네요.=
직각 형태의 통로를 나아가며 지도를 만들던 아영이 콧잔등을 살짝 긁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위험도 없고 위기도 없고 여유가 흘러넘쳤기 때문이었다.
산속 미궁으로 들어온 지도 어느덧 6시간. 일행은 총 5개의 배양실을 발견했고 배양실을 지키는 한편 알을 낳아 개체 수를 불리던 평천사와 캡슐을 모두 파괴했다.
그 과정에서 전투 천사와 몇 차례 만나긴 했는데 천사들은 바깥과는 달리 뭔가 나사가 하나 빠진 것처럼 어리버리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바깥처럼 체계적인 전투 대형이나 공격 대응 같은 것은 없이 서로 먼저 공격하려다 엉켜서 넘어지거나 적과 마주치고도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처럼 멀거니 서 있거나.
공격에도 살기가 깃들어있지 않아 안느가 살짝 당황을 드러냈을 정도였다.
게다가 함정도 없다.
=내부로 적이 침입하는 상황을 상정하지 않은 것처럼 대응이 허술하기 짝이 없지 않아요?=
아영이 조금 허탈해하니 유르파가 아무렴 좋지 않으냐며 말했다.
=위상석도 많이 나오고 전투 천사들이 들고 있는 건 전부 하급 마도기잖니. 난 안전하고 수입이 다른 미궁보다 월등해서 좋은데?=
=그래도 6급 미궁의 5계층이면 되게 위험한 장소잖아요……. 여긴 3계층만도 못한 느낌이에요. 처음에는 뭔가 미궁의 흉계가 있나 생각했을 정도라고요.=
그녀들의 대화를 들으며 환인은 자신의 수첩에 그린 산속 미궁 지도와 바깥 지도를 비교해보았다.
섬의 위치와 배양실의 위치가 거의 일치한다. 그렇다면 지금 나아가는 방향으로 계속 걷다 보면 6계층 지역으로 진입하겠지.
6계층 지역은 뭔가 다를지도 모르지만, 왠지 분위기만 보면 그럴 것 같지 않다.
뚜벅뚜벅, 통로를 걸으며 여자친구들의 대화가 이어진다.
=아영이 네 말대로 천사들의 반응이 신병보다 더 한심하긴 해. 바깥에서는 이쪽의 대응에 맞대응하면서 적극적으로 전투를 걸어왔는데 말이야. 그 차이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안느가 전방을 주시하며 한 말에 백려강이 으음, 하고 턱에 손을 올리며 자기 생각을 말했다.
=바깥을 감싸고 있는 구름이랑 관계가 있을까요? 구름을 통과하면 각성 반응이 일어난다든가 하는 식으로 말이에요.=
=……그런가?=
=신빙성이 있네.=
이야기가 오가고 있음에도 아영은 이 상황이 마음에 안 드는지 라벤더색 머리카락이 크게 찰랑거릴 정도로 머릴 벅벅 긁었다.
=진짜 이해 안 되는 건 적이 침입했는데도 경계경보가 돌지 않은 것 같은 이 분위기에요. 아니, 적습이 벌어졌으면 말단 천사부터 전투 천사까지 전부 무기를 꼬나쥐고 달려와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러던 중 통로가 꺾이며 다시 배양실이 나타났다.
약 40여 개의 배양 캡슐과 그런 캡슐을 관리하는 남녀 일곱의 평천사.
이때까지 방문했던 배양실과 약간도 다르지 않은 배양실이다.
평천사들은 다른 배양실의 천사들처럼 무표정으로 일행에게 달려들었고, 이실리테와 안느에게 말 그대로 박살 나버렸다.
머리가 박살 나며 신경 계통에 자극이 들어갔는지 발작하듯 사지를 파닥거리는 여자 천사를 응시하던 환인은 천장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이곳 미궁도 어쩌면 변화 중인 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응? 변화?=
=미궁의 특성화 말씀이세요?=
평천사의 가슴을 갈라 위상석을 회수하고 배양 캡슐을 부수던 여자들이 그의 말에 호기심을 드러낸다.
“그래. 구름바다에는 날생선과 정체불명의 괴물이 헤엄치고 있다. 1계층부터 3계층 영역까지는 새가 출몰했었다. 하지만 4계층부터는 천사가 나오기 시작했지.”
4계층 즈음에 미궁이 방향성을 바꾸었다는 뜻으로도 볼 수 있지 않은가.
보통 미궁은 전 계층을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가 있기 마련이다.
잊혀진 옛 도시 미궁이라면 폐허가 된 도시에 자리 잡은 괴물이라는 주제, 산란못 미궁은 양서류의 늪지 미궁이었고 감옥 미궁은 감옥 형태의 언데드 미궁, 빛이 닿지 않는 미궁은 절지류들이 출현하는 동굴 형태 미궁이었다.
=날개라는 공통점이 있긴 하지만 날짐승하고 천사는 같은 생물로 보기 어렵지…….=
=바다 같지 않은 바다도 있고요.=
=주인님. 거인숲 미궁의 실루엣 메어처럼 천사들도 미궁의 뜻에 따라 후천적으로 생성된 이형종이라는 말씀이세요?=
이실리테의 질문에 환인은 대답을 보류한 채 여자 천사들의 가슴을 물어뜯는 비상을 바라보았다.
여기까지 오며 나름 내놓은 결론이지만, 한가지 이해 가지 않는 점이 존재한다.
이곳, 산속 미궁으로 들어올 때 자신들을 공격한 그 괴물은 뭐였을까.
6계층이 된 미궁이 만들어낸 중핵이라고 한다면 말이 되지만, 천사를 만들어내기 시작한 미궁이 굳이 구름바다 속에서만 돌아다니는 중핵을 만들 이유가 있나?
=…….=
=…….=
=…….=
여자들은 환인이 내놓은 의문에 대답하지 못했다.
날개라는 공통점이 있기에 밀려오는 구름의 바다 미궁에 대해서 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했는데, 그의 의문을 듣고 보니 작은 가시가 목에 걸린 것처럼 찜찜하다.
안느가 팔짱을 끼며 눈썹을 살짝 찡그렸다.
=중핵이 아니라고 하기에는 말도 안 되게 크고 강했지……?=
=응. 주인님의 영혼 화살에도 버텼잖아.=
=그런데 생선 괴물이 중핵이라고 한다면, 천사들이 만들어지고 있는 지금이랑은 안 어울리잖니.=
=…….=
=…….=
=언니들. 혹시 아까 구름바다 속에서 마주친 괴물 있잖아요. 그게 미궁의 제어에서 벗어났고 그래서 미궁이 4계층부터 천사를 만들어낸 게 아닐까요?=
여자들은 색다른 발상을 내놓은 백려강에게 시선을 주었다. 가설이 꽤 그럴싸했다.
평범한 미궁 탐험가였다면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비웃었을 테지만, 거인숲 미궁이라는 특이 사례를 경험했던 그녀들이었기에 반박할 수가 없었던 것.
=에이, 려강이도 참. 미궁 안의 이형종은 미궁에 복속된 인조 생명이야. 그런데 미궁한테 벗어난다고? 그 말은 려강이 네가 오빠 말고 다른…….=
물론 거인숲 미궁을 경험하지 못한 아영은 제외다.
말하던 아영은 미묘해지는 언니들의 표정에 암살자의 직감이 경종을 울려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는 환인을 곁눈질하다가 믿기 어렵다는 표정으로 이실리테에게 물었다.
=이실리테 언니. 진짬까……?=
=응. 진짜야.=
그녀에게 거인숲에서 벌어진 사건을 대략적으로 들은 아영이 입을 헤 벌린다.
=도령은 어떻게 생각해?=
“나도 그 가능성을 생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다만 백려강의 의견을 채용한다면 현재 천사들의 대응이 미온적인 점에 대한 답이 나오지 않아.”
=음…….=
=흠.=
“그렇다고 아주 아니라고는 못 하지.”
=네? 어떤 점이 말임니까?=
“우리가 구해주었던 기사 중 한 명이 한 말 기억나나.”
=……?=
=??=
「어휴 바보들. 강화 개체가 등장하기 시작한 게 5년 전이라고 했잖아.」
불쑥 끼어든 환연의 지적에 여자들이 눈을 동그랗게 뜬다.
“6급 미궁이 된 지금, 미궁이 새로운 중핵을 만드느라 집중 중인 상태라면 설명이 되긴 한다. 밖의 그 괴물을 죽이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는 중이라면 말이다.”
=…….=
=…….=
5년이라는 시간 동안 강화 개체를 만들어내 경험을 쌓은 걸 백려강의 의견에 보태면 말이 된다.
여자들은 서로를 돌아보았다가 환인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걸 중점으로 확인해보면 되겠네.=
=자기 말대로라면 지하에 심핵이 있을 가능성도 크잖니. 만약 심핵의 방을 발견해서 테이아무스 섭정님께 알려주면 보상을 크게 받을 수 있을지도 몰라.=
=그 섭정씨 원래 줘야 할 것도 안 주고 질질 시간 끌었지 않슴까. 보상을 더 주려 할까요?=
=주기 싫어서 시간을 끈 게 아니라 자기한테 승령천제의 제사장을 부탁하고 싶어서 그런 거였지 않아? 아니었다면 1만 금화랑 10개의 유물을 제안했겠니?=
유르파의 지적에 아영의 얼굴에 흐헤헤 웃음이 흐른다.
=1만 금화…… 유물 10개……. 내가 오빠였으면 냉큼 받아들였을 텐데.=
=그게 현재를 보는 너랑 미래를 보는 도령의 차이지.=
=인정하는 부분인 거에요.=
환인은 부리에 잔뜩 피를 묻히고 다가온 비상을 손수건으로 닦아주며 말했다.
“지금 나아가는 방향으로 가다 보면 조만간 6계층에 진입할 거다. 지금 시간이 오후 8시쯤 됐겠지만, 상황이 이러하니 휴식은 미루고 좀 더 움직이도록 하지.”
=옙!=
=네, 주인님.=
=응.=
환인 덕분에 지하의 배양실 위치가 지상의 섬과 일치한다는 걸 알게 된 일행은 집중을 유지한 채 속도를 더 올려 빠르게 나아갔다.
6계층으로 진입하자 마주치는 날개 두 쌍의 전투 천사가 더 늘었지만, 반응은 5계층 쪽과 다를 게 없어 일행의 탐사 속도를 늦추지는 못했다.
=후우, 후우.=
“백려강. 상태는 어떻지.”
12번째 배양실을 부수고 나오다 마주친 일곱의 전투 천사를 몰살한 뒤 환인이 숨을 몰아쉬는 백려강에게 물었다.
=읏. 머리가 조금 죄는 느낌이에요, 오라버니.=
안색이 조금 창백해진 그녀의 대답에 평온의 파동을 최소한의 영역으로 펼쳐 그녀의 정신 침해 현상을 해소해주는 환인.
그녀의 머리만 간신히 감쌀 정도였기에 평온의 파동 효과가 온전히 날 거라곤 보기 어렵다.
“평온의 파동 에너지도 미궁이 흡수한다. 그리되면 현 상황에 변동이 생길 수 있으니 조금만 더 견뎌라.”
=넷.=
환인은 잊혀진 옛 도시 미궁 6층의 심핵을 떠올리면서 안느에게 출발할 것을 신호했고, 일행은 반쯤 경보하는 속도로 통로를 돌아다녀 나갔다.
현재 갱신된 환인의 목적은 세 가지.
이곳 미궁의 심핵 방 위치, 현재 미궁의 중핵과 미궁이 심혈을 기울여 만들고 있을 전투 천사의 확인, 비상이 아직도 찾고 있는 정체불명의 요소.
이중 심핵방의 위치는 알면 좋고 몰라도 그만이다. 어차피 이곳 미궁은 팔라툼의 최중요 자산. 부수거나 연구할 수 없다.
비상이 찾고 있는 여자 천사의 요소 또한 나중에 다시 찾아보면 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중핵을 죽이고 얻을 수 있는 전리품과…….
‘내 생각대로라면 여행에 크나큰 도움이 되겠지.’
……환인은 눈을 차갑게 빛내며 일행의 속도에 맞춰 지도를 작성하는 한편 지상의 섬 지도도 살핀다.
“저쪽에 유달리 커다란 섬이 있군. 이번에는 저쪽으로 가지.”
=응!=
세 번째 돌아온 교차로에서 마지막으로 가보지 않았던 마지막 통로로 진입하는 환인.
영혼의 눈이 개방된 그의 시선이 천장과 바닥을 낱낱이 훑는다.
통로에 마악 진입했을 때는 다른 곳과 차이가 없었는데, 통로를 나아갈수록 미궁의 핏줄이라 할 수 있는 경락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잊혀진 옛 도시 미궁 6계층에서 보았던 것을 기억한 환인이 입을 열었다.
“안느, 속도를 줄여라. 아무래도 앞쪽에 미궁의 심핵방이 있는 듯하다.”
=어? 진짜?=
“그래. 심핵방 근처에 중핵이 있을 가능성이 크니 다들 집중하도록.”
좀 전보다 절반의 속도로 줄이며 천벌의 망치와 성벽의 방패를 꽉 움켜쥐는 안느.
환인의 경고에 다른 여자들도 각자 긴장하며 나아가길 잠시. 다른 배양실보다 족히 3배는 더 큰 배양실이 일행의 앞에 나타난 순간 환인이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
‘잭팟이군.’
그의 눈에는 좌우 벽을 빼곡히 채우는 100여 개의 캡슐보다, 방의 정 중앙에 놓인 원형 아쿠아리움 수족관 같은 캡슐과 그 속에 둥둥 떠 있는 3쌍 날개의 전투 천사를 응시하고 있었다.
2.5m에 달하는 신장. 한장 한장이 몸만큼이나 커다란 세 쌍의 푸른 날개. 온 세상의 매력이란 매력을 몽땅 주입해 넣은 것처럼 완벽하면서도 풍만한 몸뚱이.
=우와, 저게 미궁이 만들고 있는 차세대 중핵이야……?=
아영의 혼잣말에 거대한 배양실을 돌아다니고 있던 30명의 평천사가 일행을 목격하곤 침입자를 배제하기 위해 무표정으로 달려든다.
이번에는 정령을 강령한 환인이 나서서 삽시간에 모든 평천사를 베어 죽인 다음 여자친구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안느는 입구를 지키고 이실리테와 아영은 캡슐을 모두 부숴라. 유르파는 백려강과 함께 절 따라오십시오.”
뀨으? 뀻!
“비상, 저건 안된다. 다른 천사를 찾아보고 없다면 다음 기회를 노리도록 하자.”
뀨잉…….
배양실 중앙의 커다란 천사한테서 뭔가를 강하게 느꼈던 비상은 환인의 제지에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저거 안에 내가 찾던 게 반드시 있을 거 같은데…….
환인의 행동에서 무언가를 느낀 유르파가 놀란 얼굴로 그에게 질문했다.
=자기, 설마 지금 내가 생각하는 그거 맞아?=
“맞을 겁니다.”
=세상에세상에. 그게 정말 가능할까?=
백려강은 유르파가 갑자기 흥분하며 자신을 쳐다보는 것에 눈을 끔뻑였다. 언니가 왜 저렇게 흥분하시는 거지?
“해보면 알겠지요. 그보다 크기를 제외하면 딱히 다른 캡슐과 차이점은 없군요. 유르파가 보기에는 어떻습니까.”
=응. 위상력도 따로 검출되는 것도 없고 주변에 마도학적 구조물이 있는 것도 아냐. 캡슐 안 액체가 푸른색인 건 차세대 중핵을 키우기 위한 특별한 영양분을 공급하고 있어서겠지?=
“그렇겠지요.”
환인의 시선이 푸른색 액체로 가득 찬 캡슐 속을 둥둥 떠 있는 생물에게 다시 향했다.
영혼도 보이지 않지만, 생명 반응은 충실하며 몸 안의 위상력도 어마어마한 수준이다. 이중 직업에 이어 희귀 직업으로 두 번이나 재각성한 안느와 비교해도 2배나 많은 수준.
환인의 광명창이 빛을 머금고 중앙 캡슐을 가르자 쨍강, 파열음과 함께 푸른 액체가 쏟아지며 안에 둥둥 떠 있던 몸뚱이도 함께 흘러나온다.
몸이 젖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 몸뚱이를 안아 든 환인은 아직도 상황을 잘 이해 못 한 백려강에게 말했다.
“백려강. 이게 너의 새 몸으로 적합할듯한데, 어떻게 생각하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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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 안돼 이 도둑놈들아 ㅠㅠ
아드네빌라(이)가 당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