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궁기담-636화 (636/813)

637 밀려오는 구름의 바다 미궁

* * * *

환인이 구름 속으로 사라지고 잠시 후, 유르파는 어제부터 조금 신경 쓰이는 것에 정신이 쏠렸다.

정신을 집중해서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기에 낚싯줄을 구름바다에 드리운다.

그 행동에 연못의 잉어를 구경하는 고양이처럼 구름바다 가까이에 옹기종기 모여있던 여자들도 낚싯대를 꺼내 낚싯바늘에 토막 낸 날새 고기 조각을 끼우기 시작한다.

유르파는 그런 귀여운 아기고양이 같은 아가씨들을 푸근한 눈빛으로 바라보다 구름바다로 무거운 시선을 돌리며 생각했다.

‘확실해. 자기한테 일어난 그 조그마한 변화는…… 영도에 다녀온 이후였어.’

몽실거리듯 흔들리는 구름처럼 하얀 머리카락을 어깨 뒤로 쓸어넘긴다.

유르파가 신경 쓴 것은 환인 자신과 타인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처음 그를 만났을 때였다면 아까 기사들? 그냥 무시했을 것이다.

숨겨진 통로라는 호기심 덩어리에 관심이 가고 있는 상황에 기사들의 생존 따위 귀찮기 짝이 없을테니까.

하지만 그는 일부러 그들에 대해 언급을 하며 구해주었다.

기사를 구해줘봤자 약간(30금화)의 금전적 보상 외에는 딱히 얻을 게 없다. 이미 팔라툼의 왕을 구해 상층부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는데 기사 몇 명을 구해줘봤자 보태지는 것은 미미할 테니 말이다.

무시하는 것으로 발생할 손해도 없다. 그런 식으로 땅속에 숨어있는데 누가 어떻게 알아차릴까.

그녀 자신은 물론 다른 아가씨들도 환인이 말하기 전까지 눈치채지 못하지 않았나.

‘역시 마음에 약간의 변화가 생긴 게 틀림없어. 역시 그 아가씨 때문이겠지?’

유르파는 그 변화가 누구로 인해 벌어진 건지 쉽게 짐작이 갔다.

얼음처럼 차가운 심장을 가진 냉혹한 남자. 하지만 자신의 것에는 누구보다 진심인 남자. 그런 남자를 약간이지만 변화시킨 이유.

‘남자는 자신의 아이를 밴 여자가 생기면 변해.’

만삭의 이엘카타 아가씨를 본 뒤에 심정적인 변화가 일어났다면 어제와 오늘 그가 보여준 모습이 말이 된다.

유르파는 그게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그 변화가 그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 쉽게 판단이 서지 않았다.

‘자기가 인제 와서 마음이 물러지고 손속에 정이 많아지더라도…… 문제는 안 돼.’

그는 성제니까. 자비와 덕이 깊어질수록 명망이 높아지며 뭍사람들에게 존경받을 분이니까.

그런 그이의 상냥함을 노린 잡쓰레기들이 모여들어도 자신과 아영이, 이슬이 아가씨랑 환연이 알아서 적당히 커트하면 된다.

대중에게 보여줄 온화하고 자상한 모습은 안느 아가씨랑 려강이 아가씨를 앞에 세우면 되고.

‘으음~.’

중요한 건 그로 인해 얼음장처럼 차갑고 견고하던 그의 사고가 성글어지는 것 같다는 거였다.

거인숲에서부터 연구한 소형화 비술이 제법 성과를 거둬 온전한 소형화 비술이라 이름 붙일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어제 광풍을 이유로 행동을 미뤘던 그때, 소형화 비술을 펼쳤다면 일행은 아주 약간의 위협만으로 운협을 건널 수 있었을 것이다.

자신들이 소형화를 펼쳐 그의 옷 속에 숨고 그는 비상을 탄 뒤 조심해서 이 섬으로 넘어왔다면 24시간을 아꼈을 것이고 논시아라는 성술사도 살릴 수 있었을지 모르니까.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그걸 정말 그이가 생각하지 못해서 안 한 걸까?’

그와 아가씨들이 전혀 도움 되지 않는 일에는 약간의 위험도 겪지 않았으면 했기에 그때 나서지 않았던 건데…….

=……니, 율이 언니!=

덥석!

=꺅!? 뭐, 뭐니?=

유르파는 자신의 젖무덤을 덥썩 움켜쥐는 손길과 커다란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거기에는 안느가 개구쟁이 아가씨 같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날생선이 미끼를 물었잖아. 무슨 생각에 열중하고 있길래 그것도 눈치 못 채는 거야?=

그녀의 이야기에 유르파도 뒤늦게 낚싯대가 출렁이고 있는 걸 깨닫고 낚싯줄을 감기 시작했다.

=으응. 자기 생각.=

=흫. 언니도 도령이 걱정됐나 보네?=

자신의 가슴을 주물럭거리며 히히 웃는 안느와 그에 동조하는 다른 동생들의 아기고양이 같은 모습에 유르파는 빙그레 웃었다.

그래, 복잡하게 생각해서 뭐하나.

그가 종종 하는 말이 있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대비하는 것은 좋다. 하지만 과한 걱정은 문제만 불러일으킬 뿐이다는 말.

‘만약 자기가 정말 심정적으로 여려지면 그때 가서 도와줘도 돼.’

혼자보단 둘이, 둘보단 셋이 좋다. 모두가 모여 머리를 맞대면 좋은 결과가 나오겠지.

지금은 자신이 해야 할 일에 집중하자.

=맞다. 려강이 아가씨? 정신 침해 보호 목걸이는 얼마나 소모됐니?=

=이 정도예요.=

=음~ 하루에 한 번씩 자기가 평온의 파동을 써주는 덕분에 감소 폭이 그리 크지 않네. 아가씨의 침해 내성도 조금씩 늘어나는 거 같고.=

유르파는 낚아 올린 날생선을 이실리테에게 넘겨주고 다시 낚싯대를 드리우며 동생들과 잡담을 이어나갔다.

* * * *

서걱…….

뱃속에서 전구가 깨진 모양처럼 울퉁불퉁한 여자 천사의 배를 단검으로 가른 환인은 피와 흰자, 노른자로 범벅이 된 자궁 속에서 알껍질을 끄집어냈다.

“…….”

가장 큰 조각이 자신의 손바닥만 한 알껍질. 두께는 달걀의 1.5배에 가깝고 크기는 신생아가 들어가고도 남을 정도의 크기다.

피가 묻어 엉망진창인 껍질을 여자 천사의 옷에 닦은 뒤 캡슐 속에 둥둥 떠 있는 알과 비교해보니 확실하다.

캡슐안의 알은 전부 천사의 새끼다.

옷깃에서 머리만 내밀고 환인이 하는 행동을 지켜본단 환연이 어이없어하는 투로 입을 열었다.

「미궁이 이형종을 교배해서 괴물을 찍어내고 있는 거야?」

“아무것도 없는 장소에서 생명체와 무기, 방어구를 만들어내는 것보다 이형종끼리 교배시켜 만들어진 알을 미궁의 에너지로 키우는 게 심핵력의 절약 면에서 뛰어난 거겠지.”

「…….」

보골보골 기포가 올라오는 캡슐 속의 녹색 액체는 미궁이 보내는 심핵력을 영양제로 치환시키는 촉매일 터.

주위를 둘러본 환인은 식수대 같은 곳으로 다가갔다. 수도꼭지나 밸브 같은 것은 없지만, 미궁의 경락 몇 줄기가 자그마한 경혈 같은 곳으로 모이고 있다.

잠깐 영혼의 눈으로 분석하던 환인은 천사의 손을 잘라와서 거기에 대 보았다.

콸콸콸—

아니나 다를까 경혈 같은 곳에서 녹색 투명한 액체가 주르륵 쏟아진다.

「이형종은 이걸 먹고 살았나 보네…….」

“효율적인 방식이군.”

미궁 간의 개체 차이도 있는 건가.

뀨, 꾸으~

비상의 울음소리에 그쪽을 돌아본 환인은 캡슐 속에서 거의 다 자란 여자 전투 천사를 발견했다.

“그게 신경 쓰이나.”

뀻!

그렇다는 이야기에 비상을 물린 환인은 광명창을 휘둘러 캡슐을 베어냈다.

조금 딱딱하면서도 물렁물렁한 느낌과 함께 캡슐의 투명한 부분이 찢어지며 안쪽의 녹색 액체와 여자 전투 천사가 촤아악 소리를 내며 쏟아졌다.

‘재질이 키틴질 같은 건가.’

하긴, 개폐 장치가 없으니 안에서 나오려면 찢는 수밖에 없겠지.

철퍽하고 액체로 가득한 바닥에 널브러진 여자 전투 천사는 미동도 없었다.

초점은 잡히지 않고 흐릿하며 숨도 쉬지 않는 모습. 영혼의 눈으로 살펴보아도 영혼의 색은 보이지 않는다. 먹어도 무방하다는 백색의 색계통뿐이다.

「뭐야…. 죽었어?」

“아니. 빈 껍질이다.”

퍽, 여자 천사의 복부를 걷어차자 쿨럭— 입과 코에서 녹색 액체가 튀어나오더니 젖가슴이 출렁일 정도로 흉부가 떨리지만, 그건 충격이 전달된 반사 작용에 불과했다.

여자 천사는 여전히 흐릿한 눈으로 바닥에 널브러져 있다.

「혼이 없어? 그럼 미궁이 마지막으로 혼을 집어넣는 거로 완성하는 거야?」

“그렇겠지.”

「흐응.」

환인은 비상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고, 그의 허락에 비상은 여자 천사의 생가슴을 부리로 물어뜯기 시작했다.

산채로 가슴이 뜯겨나가고 있지만, 여자 천사는 여전히 초점이 잡히지 않은 몸으로 인형처럼 쓰러져있을 뿐.

그러다 잠시 후 가슴이 활짝 열려 심장과 폐 같은 내장을 훤히 드러낸 채로 조용히 숨이 끊어졌다.

잠시 기다려봤지만 역시 시체에서 영혼이 일어나지 않는다.

크흥…….

“이번에도 원하는 게 없었나.”

그의 질문에 비상이 도리질 치다가 콧김을 푸욱 내뿜는다. 표정에는 슬슬 자신의 감각에 의문을 품는 기색이 드러나고 있었다.

「야. 넌 대체 뭘 찾는 거야?」

뀨으으.

「너도 새대가리야? 모르는데 뭘 찾는다는 건데.」

뀻!

「앗, 야! 화내지 마! 꺄아~!」

날개 끄트머리 깃털로 옷의 먼지를 터는 것처럼 환연이 숨어있는 곳을 때리는 비상과 숨어서 비명을 지르며 꺅꺅거리는 환연.

환인은 안쪽으로 통하는 통로를 한번 쳐다본 뒤 눈꼬리를 치켜뜬 채 콧김을 푹푹 내뿜는 비상을 쓰다듬어주며 등에 올라탔다.

“일단 나가서 여자친구들을 데려오지. 이곳을 계속 탐사하면서 비상 네가 찾는 게 무엇인지도 알아보도록 하고.”

바깥은 더 살펴볼 것이 없다.

6계층까지 얼마 남지 않았는데 기사단이 제작한 미궁 책자에 따르면 6계층은 출현하는 천사의 숫자 차이와 싸울 장소가 협소해진다는 차이만 있을 뿐이었다.

그렇다면 책자에 기록조차 되어있지 않은 이곳을 탐사하는 게 여러모로 낫겠지.

비상을 타고 들어왔던 역순으로 돌아나가던 환인은 구름 속의 절벽을 절반가량 올라갔을 때, 목덜미를 훑는 시선에 미간을 찌푸렸다.

이쪽을 관찰하듯 구석구석 살피는 시선.

아주 짧은 순간 스쳐 지나간 감각이었지만 환인은 자신의 감각을 의심하지 않았다.

시선이 느껴진 곳을 돌아보아도 눈에 들어오는 것은 중급 바람 정령들이 재미있어하며 구름을 밀어내는 광경뿐.

“환연, 구름 속은 여전히 볼 수 없나.”

「응. 왜?」

“방금 시선이 느껴졌다.”

「……야미오코 같은 게 구름 속에 살고 있나? 날생선이 살고 있으니까 다른 게 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긴 한데.」

멈칫했다가 그렇게 중얼거리던 환연은 꺼림칙한 기분에 비상에게 좀 더 빨리 올라가라고 재촉했다.

다른 사람이 저런 소릴 했다면 헛소리라고 여겼을 텐데 환인이 저러니 그냥 넘길 수 없었던 거다.

꾸으!

비상이 좀 더 속력을 내 부상하기 시작하고 몇 분 뒤, 구름바다를 빠져나올 때까지 날생선 몇 마리가 바람벽을 뚫고 내려왔을 뿐 정체불명의 습격은 벌어지지 않았다.

환인은 비상의 등에서 일렁이는 구름바다를 뚫어지게 응시했다.

어떻게 된 걸까. 구름에는 방음 기능이 있어 이쪽이 만들어내는 소음은 전달되지 않을 텐데.

구름을 매질삼는 감각 기관이 극한으로 발달한 괴물인가.

가능한 경우의 수를 내보지만 딱히 이거다 싶은 가설은 떠오르지 않는다.

‘무언가 적대적 생명체가 있는 것은 확실하겠지.’

공격해온다면 싸워서 물리칠 뿐이다. 아니면 피해가던가.

=도령 어서 와. 여긴 아무 일 없었는데 거긴 어땠어?=

가까이 다가온 안느와 여자친구들을 돌아본 환인은 비상의 등에서 내린 뒤 흑옥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안느, 린덴 촌락의 개미굴 배양실 기억나나.”

=좀처럼 잊기 힘든 경험이니까 까먹을 수가 없지. 지하에 그거랑 비슷한 공간이 있었어?=

“그래. 천사들이 교미해서 알을 낳고 그 알을 성장 캡슐에 넣어 미궁이 에너지를 공급해서 키우는 방식이더군. 생각 이상으로 똑똑하게 효율을 추구하는 느낌이었다.”

환인의 이야기에 유르파가 굉장히 흥미가 돋는다는 얼굴로 물었다.

=천사가 알을 낳아? 베이스는 플라비우스족인가 본데 그건 이형종이 아니라 하나의 종족이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니?=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 식으로 성장하는 이형종에게는 영혼이 없더군요. 영혼의 눈으로 확인했습니다.”

=미궁은 천사의 성장에 필요한 에너지랑 마지막에 가짜 영혼만 주입해서 이형종으로 만드는 건가…….=

환인은 생각에 잠겨 드는 유르파를 두고 낚시 채비를 정리하는 여자친구들에게 말했다.

“안쪽으로 통하는 길이 있었으니 지상 탐사는 여기서 중단한다. 지금부터 산 내부를 탐사하도록 하지. 뒷정리가 끝나면 바로 내려간다.”

=도령. 내려가는 건 어떻게 해? 이슬이나 율이 언니는 빗자루를 타고 내려간다고 해도 우리는 딱히 방법이 없는데…… 절벽을 탈까?=

“아니. 유르파의 소형화 비술을 쓰고 간다.”

=아. 그게 있었구나.=

여자들이 고개를 끄덕일 때 유르파는 살짝 눈을 크게 뜨고 환인을 바라보았다.

소형화 비술을 기억하고 있었네? 그럼 어제랑 오늘 자기가 보여준 모습은 그냥 약간의 인간미를 되찾아서 보여준 방식이었나?

판단력이 흐려지거나 사고력이 떨어지는 일 같은 건 아니었나보네. 다행이다~.

유르파의 시선을 느낀 환인은 유르파에게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혹시 소형화 비술이 불가능한 건…….”

=응? 아냐아냐. 왠지 도령한테서 인간미가 조금 느껴진 거 같아서 쳐다본 거야.=

=인간미? 갑자기 웬 인간미임까?=

=그런 게 있어~. 자세한 건 여기 미궁을 나간 뒤에 이야기해줄게. =

=옙.=

=인간미…? 도령이 조금 차가운 남자긴 해도 인간미가 없진 않았는데…?=

환인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여자친구들과 낚시 도구를 가방에 담는 유르파를 바라보다 시선을 돌렸다.

아무래도 이엘카타를 만난 뒤 겪었던 심경의 변화 일부가 겉으로 드러났고 유르파가 그걸 눈치챈듯한 느낌.

‘상관없지.’

그녀가 알아차린다 해서 관계성에 변화가 일어날 일은 없다.

환인은 신경 쓰지 않고 혹시 모를 전투를 대비해 장비를 점검하기 시작했다.

방벽 마도기에 위상력을 충전하고 광명창을 체크, 영혼 구슬 숫자와 청옥 11개와 흑옥 8개도 상태를 살핀다.

=주인님. 준비 끝났어요.=

“그래. 유르파, 비술을 부탁합니다.”

=자~ 소형화의 주의사항에 대해서 알려줄테니 모여보렴. 일단 크기는 1/10 정도로 줄어들 거야. 지금 환연이랑 비슷한 크기 정도?=

「그럼 주술사도 2.5m 정도로 줄일 수 있겠네? 이제 거인화를 연구할 차례 맞지?」

갑자기 튀어나와 묻는 환연에게 유르파가 조금 안타까워하는 시선을 그녀에게 보내며 대답했다.

=사람을 줄이는 거랑 거인을 줄이는 건 같지 않아. 부피 축소비율은 같지만, 질량은 몇백 배 가까이 차이나잖니. 주술사 아가씨한테 지금 소형화를 걸면 3m 정도로 줄기야 하겠지만 지속 시간 문제가 남았어.=

「…….」

유르파의 이야기에 입을 꾹 닫고는 조금 어두우면서도 불안정한 감정 상태를 드러내는 눈으로 환인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환연.

‘기다리는 것도 슬슬 한계인가.’

환연의 눈빛이 뭘 뜻하는지 잘 알고 있는 환인은 그녀의 머리를 검지로 살짝 쓰다듬어주었다.

“그 이야기도 나중에 하지. 지금은 미궁에만 신경 써라.”

「응…….」

=그럼 계속 말할게. 소형화를 받으면 가장 먼저 신체 근력 균형 감각에 문제가 생길 텐데 그건 비술이 도울 테니까 금방 익숙해질 거야. 하지만 전투 쪽 체감은 직접 몸을 움직여서 감각에 익숙해져야 해.=

주의사항을 짧게 설명한 유르파는 이실리테, 안느, 백려강, 아영 순으로 차례대로 소형화의 비술을 걸어주었다.

비술 적용은 순조롭게 이루어졌고, 옅은 푸른색 안개에 휩싸여 환연 정도로 작아진 여자들은 신기해하며 자신의 몸 상태를 살피기 시작했다.

=와, 느낌 엄청 이상해.=

=엥? 안느 언니 목소리가 좀 귀여워졌어요. 앗, 내 목소리도!=

=검기 같은 것은 나오는데 크기가 똑같이 줄어들었네요. 위상력 소모량도 줄었고…… 위상력이 몸 안으로 들어오는 감각도 좀 달라졌어요.=

=크기가 줄었지만 기술의 특징은 별로 차이 안 날 거야. 참, 몸이 작아지면서 신체 내구성도 감소했을 테니까 그것도 주의해.=

팡!

=꺄아! 윽, 평소대로 힘을 냈다간 몸이 터질 수도 있겠네.=

다리에 힘을 줘 땅에서 뛰어올랐던 안느가 땅에 착지하고는 절뚝거리다가 자기 다리에 치유술을 건다.

삐? 삐잇.

그리고 작아진 여자친구들을 보며 신기해하는 실루.

환인은 실루를 들어서 비상의 등에 올려놓고 작아진 여자친구들이 열심히 몸을 움직이는 걸 구경하다가 그녀들이 자신을 바라보기 시작하는 모습에 물었다.

“점검은 끝났나.”

=네.=

=응!=

“그럼 가지. 올라와라.”

환인이 손을 뻗기도 전에 이실리테와 안느는 알아서 그의 몸을 타고 올라가 어깨에 선다.

그리고 유르파와 백려강, 아영은 환인이 내민 손을 타고 안주머니 속으로 들어가면서 재밌다는 듯이 재잘거렸다.

=와. 이게 환연이 느끼는 오라버니인가요? 안주머니가 무척 포근하네요.=

=어디어디?=

=나도! 나도 들어가 볼래!=

「윽. 좁아! 왜 다 들어오려고 하는 거야!? 여긴 1인용이라고!」

=난 도령 어깨가 좋은데. 이게 도령의 눈높이에서 보는 시야구나~.=

=나도….=

=킥킥. 이슬이 얼굴 빨개졌다.=

=조, 조용히 해…!=

귓가의 부산스러움과 은근슬쩍 몸을 터치하는 느낌이 5배로 늘어난 기분이지만, 환인은 무언가 만족스러웠다.

시끄럽고 성가시다기보단 오히려 여자친구들과 더욱 긴밀해진 기분이라 만족스럽다고 할까.

환인은 자신의 좌우 어깨에 올라온 이실리테와 안느, 그리고 안주머니와 조끼 안쪽에 각각 퍼져있는 여자친구들을 살폈다.

“이실리테와 안느는 떨어지지 않도록 옷을 잘 잡고 있어라. 백려강과 유르파는 환연과 함께 있나. 아영 너는…….”

=전 여기에 있겠슴다!=

아무래도 안주머니에 넷이 있기는 비좁았는지 조끼 안쪽, 그리모암의 목걸이를 그네처럼 밟고 선 아영이 손을 반짝 들며 소리친다.

플뢰족의 기다란 귀가 조금 빨개진 것 같은데…….

아무튼, 작아진 여자친구들을 태우고 실루와 함께 비상의 등에 오른 환인은 자신이 소형화를 받고 환연과 섹스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그녀들의 반응에서 소형화를 대리 체험한 기분을 느꼈는데 그 감각이 제법 괜찮게 다가온 것.

오히려 환연이 거인화로 커지는 게 문제가 아닐까.

자신이 사정한 정액을 뱃속에 담고 있다가 원래 크기로 돌아갔을 때, 정액만 원래 크기를 유지하고 있다면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고.

잠깐 딴생각하는 사이 환연이 여자들에게 꽥, 하고 소리를 질렀다.

「야! 지금 놀러 가는거 아니니까 다들 긴장해! 구름 속에서 괴물이 튀어나올 수도 있다고!」

=괴물…? 날생선 말고 다른 괴물도 있어?=

「환인이 올라올 때 정체불명의 시선을 느꼈다고 했으니까 틀림없이 있겠지!」

환연의 경고에 여자들은 자연스럽게 긴장을 끌어올린다.

덕분에 자신이 주의를 줄 필요가 없어진 환인은 자신의 다리 사이에 자리 잡은 실루를 쓰다듬어준 뒤 비상의 옆구리에 박차를 살짝 가했다.

비상이 구름바다쪽으로 향하자 환연이 바람의 정령을 불러다 막을 펼친다. 그리고 바람의 막이 완성되자마자 비상은 알아서 구름바다에 다시 뛰어들었다.

콰아아아-

강한 바람으로 구름이 밀려나고 비상은 위치를 기억한 듯 거침이 아래로 향한다.

주변이 삽시간에 회백색으로 뒤덮이자 안느와 이실리테가 조용히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확실히 구름바다는 바다처럼 넓으니까 날생선 같은 것만 있다고 보는 것도 이상하긴 해.=

=초입에는 새들도 많았잖아. 천사만 있는 것도 아니니까.=

=근데 구름 안으로 들어오니까 진짜 바람 소리 밖에 안 들리네. 뭔가 구름이 가득해서 공포스럽……?!=

안느가 말하다 말고 어깨를 딱딱하게 굳히며 뒤를 돌아본 순간, 환인도 등줄기로 작은 소름이 돋는 걸 느끼며 청옥을 영혼 화살로 변화시켜 뒤를 향해 날렸다.

화살이 바람 정령들의 틈새를 통과하는 동시에 바람 정령으로 인해 밀려나던 구름이 오히려 사납게 용트림하며 바람 막 주변을 두드리려 든다.

마치 거대한 무언가의 움직임에 구름이 잔뜩 밀려온 것 같은 반응.

소리라도 있었으면 덜 불안했을 텐데 구름의 방음 효과 때문에 소리는 없고 무언가 거대한 생물의 존재만 간접적으로 전해져오는 상황이다.

얼굴이 핼쑥해진 안느가 꽥 소릴 질렀다.

=비상아 빨리 내려가!=

뀨, 뀻!

「바람 정령 보조를 맞춰줄 테니까 그냥 내려가아!」

꾸엣!!

환연의 외침과 함께 쑤우욱— 거의 추락하다시피 내려가는 비상의 신형.

동시에 대기가 크게 흔들리는 느낌이 바로 위쪽에서 전해 져왔다.

몸길이 수십 미터의 괴물이 절벽에 들이받으면 이런 대기의 진동이 전해지지 않을까.

환인은 자연스럽게 한 가지 사실을 떠올리며 버럭 고함질렀다.

“비상, 왼쪽이다!”

쿠으?!

환인이 비상의 고삐를 낚아채다시피 왼쪽으로 틀었고 본능에 새겨진 대로 비상도 몸을 왼쪽으로 비튼 순간 집채만 한 바위가 바로 옆을 희끄무레하게 스치고 지나갔다.

여자들의 안색이 하얘질 겨를도 없이 마구잡이로 쏟아지기 시작하는 바위 파편들.

…뀨이잇!

“비상, 위는 신경 쓰지 마라! 구멍부터 찾아!”

중급 정령을 강령하고 그리모암의 강력 효과를 있는 대로 끌어낸 환인은 머리 위에서 떨어지는 커다란 바위를 해머 형태로 만든 광명창으로 후려쳐 날린다.

바람 정령이 만든 보호막의 넓이는 지름이 대략 10m였기에 무기를 휘둘러도 문제없으며, 단순한 물리력은 정령들에게 아무런 피해도 줄 수 없기에 환인의 행동에는 거리낌이 없다.

그렇게 아래로 재차 쑤우욱 내려가는 중에 안느의 비명 같은 외침이 그의 귓가에서 터졌다.

=도령 앞! 앞이야 앞!!=

환인도 보았다. 지름 10m나 되는 바람 막을 통째로 집어삼킬 수 있을 것 같은 거대한 아가리의 생선 그림자.

심해어를 꼭 닮은 것 같은 연노랑의 끔찍한 비주얼에 유르파가 꺄악, 혐오가 가득한 비명을 질렀고 동시에 환인의 청옥 영혼 화살과 이실리테의 꼬마 검섬, 유르파의 별 모양 구체가 아가리를 쩍 벌린 괴물의 면상에 퍼부어졌다.

———————!!!

공격에 적중당한 괴물은 구름 너머로 다시 사라졌지만, 소리 없는 진동의 포효가 일행을 덮친다.

「으긋……!」

그 여파에 보호막을 담당하던 바람 정령 몇몇이 환령계로 도망가버려 그곳으로 허연 드라이아이스 같은 연기가 빠르게 하강 중인 환인을 쫓기 시작했다.

정령을 다스리는게 환인이였다면 정령에게 정확한 지시를 내려 자리가 빈 곳을 바로 메웠겠지만, 환연도 반 정령이었기에 방금 포효에 영향을 받고 말아 그럴 정신이 없는 상태.

시시각각 쫓아오는 구름바다의 구름, 그리고 구름 너머의 정체불명의 괴물.

이때까지는 정령들이 흑옥을 싫어해 포지션에 방해가 되지 않게끔 청옥만 쏘았다.

하지만 그것도 안전할 때의 이야기다.

짙은 구름으로 가려진 시야 너머, 살기 어린 괴물이 바짝 쫓아오는 걸 느끼며 환인이 들개 전사단의 흑옥을 전부 꺼내 영혼 화살로 장전했을 때였다.

「비상! 저기!」

뀩!!

산 안으로 통하는 구멍을 발견한 환연의 외침과 그곳을 향해 쏜살같이 쇄도하는 비상.

비상이 구멍 안으로 뛰어드들자마자 통로 안쪽으로 다다닷 달렸고 그 뒤를 따르듯이 콰아아앙—!!! 산이 무너지는 게 아닐까 싶은 굉음과 진동이 일행을 덮쳤다.

=으악! 천장이 무너져!=

아니, 정말로 돌벽으로 이루어진 천장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비상은 눈을 날카롭게 뜨고는 머리를 바짝 낮춰 쏟아지는 흙먼지와 자갈을 맞으며 질주했고 환인도 머리를 숙여 바람 저항을 최대한으로 줄이는 한편 위로 떨어지는 돌멩이와 작은 바위를 광명창으로 쳐낸다.

뀨우우웃!

이미 한 번 와봤던 길. 비상은 거침없이 조금 구불구불한 동굴을 시속 70km 가까이 달렸고, 얼마 안 가 공동에 도착하며 공간이 확 넓어진 순간…….

쿠광, 콰과광-!

굉음과 함께 천장이 완전히 무너져내려 들어왔던 통로가 막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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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뀨우우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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