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궁기담-634화 (634/813)

635 밀려오는 구름의 바다 미궁

일행의 구름바다 미궁 탐사는 그 후로 굴곡없이 평온하게 흘러갔다.

섬과 섬 사이로 길이 나타나면 이동하고, 길이 끊기면 머무르며 낚시를 하고 이형종을 사냥하는 다소 평범한 일과.

주변 풍광이 빼어나게 아름다웠기에 미궁 안이지만 나름대로 소풍을 나온 기분이 들기도 한다.

물론 마냥 마음 놓고 풍광과 낚시를 즐기는 것은 아니다.

여긴 명색이 미궁이며 심층 초입이라 등장하는 이형종도 절대 무시하지 못할 강함을 지니고 있으니까.

미궁 책자에서 4계층에 출몰하는 천사는 평천사平天使라고 기록되어있었다.

평범한 튜닉, 토가 같은 하얀 옷만 걸친 맨손 맨발의 남성형/여성형 천사들.

외형은 금색 눈동자에 금색 머리카락, 얼굴도 아름답고 몸매도 니오네브레스의 일반인은 가볍게 뛰어넘었기에 천사라는 호칭이 무척이나 잘 어울린다.

무난한 원형 헤일로에 한 쌍의 날개만 지녔으며, 공격 방식은 거리를 두고 손에서 광선光線이나 광탄光彈을 쏘는 식이다.

등급은 4급 정도지만 술법 타입이라 신체 방어력은 낮고 외형은 20대 초반이지만 사고는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인지 어수룩하거나 느릿한 면이 있다.

보통 3~5마리가 몰려서 출몰하는데 퍼져서 쏘는 광탄은 총알보다 느리고 화살보다는 빨라 나름 위협적이다.

말을 못 하는 것인지 안 하는 것인지 회화는 불가능.

5계층의 천사들은 전천사戰天使라고 지칭하고 있었다.

헤일로는 가시 면류관이나 톱니 형태, 토성의 고리 같거나 퍼즐 형태처럼 다양 복잡한 형태였고 날개는 전부 두 쌍.

무기와 방어구도 장착했는데 지팡이에서부터 검, 창, 활 같은 다양한 무기를 쓰며 갑옷은 천이나 가죽으로 된 하얀 방어구를 착용했고 전투 방식도 본격적인 집단전 양상을 띄기 시작했다.

보통 지팡이나 활을 든 천사 2~4마리, 검이나 창을 든 천사 2~4마리가 1조로 출몰하는 식이다.

미궁 입장 7일차.

환인 일행은 5계층의 섬에서 전투 천사들과 싸우며 전리품을 획득하고 날생선을 계속 낚으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도령, 얘들아. 저기 또 한 무리가 날아오고 있어.=

청력이 월등히 뛰어난 안느의 경고에 여자들이 낚싯대를 놓고 전투 준비에 들어간다.

날아오는 천사는 검+방패와 창+방패, 활과 지팡이 각 1마리씩이다.

환인은 비상과 실루를 데리고 뒤로 물러나 여자친구들의 전투를 구경하기 시작했다.

퓨퓻—

천사들이 사정거리에 들어오자 백려강이 후방의 지팡이를 든 천옷의 전투 천사를 향해 미리 장전해둔 화살을 연달아 쏜다.

검방 천사와 창방 천사에게 보호 주문을 외우던 지팡이 천사는 날카롭게 날아드는 화살을 피하느라 주문을 취소당했지만, 검방과 창방 천사가 앞을 막아주니 다시금 주문을 외우기 시작한다.

=성술 계통 지팡이 천사네요.=

백려강의 말대로 잠시 후 완성된 주문이 검방 천사와 창방 천사에게 내려지자 은은한 하얀 빛의 보호막이 둘러지고, 그걸 본 안느가 작게 투덜거렸다.

=저것들은 꼭 보란 듯이 앞에서 방어 술법을 쓴다니까.=

=에이, 언니도 참. 우리도 그러잖아요.=

건틀릿을 낀 손으로 징표를 들고 있던 아영의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지팡이 천사가 건 보호막보다 좀 더 밝고 환한 보호막이 일행 개개인에게 걸렸다.

일정한 질량의 공격에 저항하는 보호막이다.

검방과 창방의 두 천사가 빛의 보호막에 위상력까지 몸에 두르고 돌진해오는 한편 활 천사도 백려강과 유르파를 향해 화살을 날렸다.

삽시간에 6발의 화살이 날아오지만, 아영의 뒤에 서 있던 유르파가 지팡이를 한차례 휘두르니 별 모양의 구체 5개가 빙글빙글 돌며 날아드는 화살을 전부 쳐낸다.

쿠궁! 쾅—

그즈음 안느는 성벽의 방패를 내세워 검방과 창방 천사하고 격돌, 위상력이 담겨 강화된 방패로 맹렬하게 공격해오는 두 전투 천사의 공격을 받아내거나 흘리며 두 마리를 붙들었다.

=잡았어!=

안느의 외침에 그녀의 뒤에 기회를 보고 있던 이실리테가 지팡이, 활 천사를 향해 번개같이 튀어나가고 백려강도 그 타이밍에 맞춰 활 천사와 지팡이 천사를 견제할 목적의 화살을 날린다.

이실리테의 접근에 상승하려던 두 천사는 백려강이 쏜 화살의 궤적에서 피하느라 좌우로 회피 이동을 펼치고, 그 틈에 빛의 검 한 자루를 밟고 높이 날아오른 이실리테가 남은 두 자루의 다중 검기를 날려 석둑— 베어버렸다.

한 마리는 정수리부터 사타구니까지 반쪽으로, 다른 한 마리는 허리 위아래로.

약하게 빛나는 붉은 피가 허공에 뿌려질 때 안느도 방패 강타를 펼쳐 검방, 창방 천사 두 마리의 경직을 일으키고는…….

=합!!=

성체술과 루모 빙의로 순간 가속, 검방 천사가 치켜든 방패 위로 천벌의 망치를 내려찍었다.

콰앙!!

7급 희귀 직업자의 근력 보정에 소형 거인족인 질리언트가 아닐까 싶은 근력, 여기에 성체술과 루모의 빙의를 추가해 두 손으로 휘두른 천벌의 망치는 폭주 덤프트럭을 능가하는 물리력의 집합체.

단 한방에 방패째로 상반신이 뭉개진 검방 천사가 피를 토하며 나가떨어진다.

……!

안느가 동족을 공격하는 틈에 뒤에서 찌르려던 창방 천사는 순간 흠칫했다.

가까이 붙고 나서야 안느의 뒷모습이 빛으로 만들어진 환영인 것을 깨달은 것이다.

순간의 방심은 곧 죽음. 하얀 제복으로 뒤덮인 안느의 뒷모습이 프리즘 광선처럼 빛으로 흩어지는 장면에 창방 천사가 두꺼운 철제 타워 실드를 세웠지만, 의미 없는 행동이었다.

=눈치채는 게 느려.=

콰광!!

마찬가지로 폭탄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튕겨 나가는 창방 천사.

상반신의 뼈가 전부 박살 났는지 연체동물처럼 흐느적거리다 눈코입귀, 칠공에서 피를 흘리며 고개를 떨군다.

=이번에는 숫자도 작았고 좀 쉬웠네요!=

라벤더색 단발을 찰랑이며 발랄하게 말하는 아영의 이야기에 안느도 천벌의 망치를 잠깐 살펴본 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지팡이 세 마리하고 활 두 마리 창방 한 마리가 나왔을 때는 진짜 최악이었는데.=

지팡이도 빛술사 타입 둘에 성술사 타입 하나였고 창방은 가까이 다가오질 않아 매우 짜증 났었다.

전부 하늘에서 원거리 공격만 퍼부으니 안느는 공격 수단이 마땅치 않았고 이실리테가 나서려 하면 거리를 띄운다. 백려강이 벼락활을 쏘면 보호막을 받은 창방 천사가 막아버리니 이쪽만 일방적으로 얻어맞는 모양새가 된 거다.

밀집대형으로 모여있으니 환인이 영혼 폭발 구슬을 한 번 터트리면 그대로 정리되었을 테지만, 환인은 그녀들의 전투 경험을 위해 4계층 섬부터는 나서지 않겠다고 선언한 상태.

어찌어찌 잡긴 잡았지만, 솔직히 마구잡이나 다름없었다.

도망치는 척 살짝 유인해놓고는 유르파가 소모용 마도기를 마구 던져 혼란을 일으키고 아영도 감각 혼란과 충격강타의 성술을 마구 펼치고 백려강도 주변 어그로를 신경 쓰지 않고 벼락활의 벼락 화살을 마구 쏴 천사들의 방어에 부하를 걸어놓고 이실리테와 안느가 동시에 날다시피 뛰어올라 해치운 것.

여자들은 별로 깔끔하지 않은 전투에 환인의 지적이 날아들 거라 생각하고 시무룩해졌었지만, 환인은 딱히 책망하지 않았다.

“그게 바로 상성의 문제다. 내가 직업 구성을 맞춰 파티를 짜려 한 이유기도 하지.”

능력이 다양하면 다양할수록 좋다. 다양할수록 온갖 상황에서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으니까.

=그런 거라면 강력한 한방을 구사할 수 있는 술법사도 필요하지 않아? 아까 같은 경우에는 강력한 술법사가 뒤에서 크고 무거운 일격을 가해 대열을 흐트러트리고 그사이에 하나씩 해치우는 게 정석이니까.=

“그 역할은 내가 할 수 있지 않나.”

=아.=

=앗.=

아무튼, 4마리를 해치워놓고 장비 상태를 점검한 뒤 부산물과 전리품을 회수하려던 여자들은 또 여자 천사 시체의 젖무덤을 부리로 잡아 뜯는 비상을 발견하곤 소릴 질렀다.

=아~! 안느 언니! 비상이가 또 여자 천사 젖탱이 뜯어먹고 있어요!=

=뭐? 야! 비상이 너 왜 자꾸 이것들 시체에 입을 대는 거야!?=

꾸, 뀨…! 꾸으!

안느의 두 손에 부리가 잡힌 비상이 끙끙거리며 항변했지만, 안느는 부릴 잡은 손에 더욱 힘을 주면서 다그쳤다.

=너 밖에서도 사람 사체에 부리를 대면 큰일 난단 말이야! 이제까지는 안 그랬으면서 왜 갑자기 이래?=

뀻!

고개를 팩! 흔들어 안느의 손아귀에서 탈출한 비상이 환인의 뒤에 숨으며 꾸으! 큐엣! 불만 가득한 소릴 질렀다.

천사 고기는 안 먹었다고 외치는 비상과 그런 비상의 외침을 알아듣지 못해 ‘이번에야말로 버릇을 고쳐놓겠다’며 비상을 혼내려 드는 안느.

=아…! 오라버니, 실루도 천사 시체에 호기심을 보여요…!=

백려강의 자그마한 외침에 그쪽을 돌아본 환인은 실루도 비상을 흉내 내는 것처럼 여자 천사의 터진 살점을 부리 끝으로 콕콕 건드려보는 장면을 목격했다.

이실리테가 실루를 안아 들고는 그러면 못쓴다고 검지로 실루의 머리를 톡톡 때려 훈육한다.

=실루. 이런거 먹으면 지지야. 먹어도 돼, 안돼?=

삐, 삣. 삐힝….

=저거 봐! 비상이 네가 그러니까 실루까지 따라 하잖아!=

뀨, 뀨으으~!

그게 왜 내 탓인데~!

환인은 비상을 쫓는 안느의 허리에 팔을 감아 품에 안았다.

안느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움직임을 멈추고 환인은 그사이 비상에게 묻는다.

“비상. 네가 이유 없이 천사의 시체, 그것도 여성형 천사만 헤집는 건 아니라고 본다. 이유가 있나.”

뀨읏……? 뀨, 꾸우!

“…….”

이유는 모르겠지만 여자 천사의 시체에서 뭐가 자꾸 끌린다는 대답에 환인은 자기 턱을 어루만졌다.

“천사의 고기를 먹고 싶다는 건가.”

꾸으? 뀨! 뀻!

“흥미없다고. 그러면 이건 어떻지.”

여자 천사를 죽이고 배에서 끄집어낸 백색 4급 위상석을 보여주니 순간 혹하는 표정을 짓지만, 위상석은 먹지 말라는 환인의 지시에 충실히 따르는 모습으로 머리를 뒤로 뺀다.

“흠…….”

환인은 좀 더 알아볼 필요성을 느끼고 여전히 안느를 옆에 낀 채 비상을 데리고 여자 천사 시체로 다가갔다.

“뭐가 신경 쓰이는지 한번 해봐라.”

=도령.=

“비상이 인육이나 사람 피에 관심을 보이는 건 아니다. 똑똑한 녀석이 본능에 이끌리고 있다면 천사 시체에 뭔가가 있다고 판단하는 게 정상이겠지.”

=음…….=

환인의 허락에 비상은 힐끔힐끔 안느의 눈치를 보다가 꿈틀거리는 지렁이를 보는 닭처럼 여자 천사의 시체를 이리저리 살핀다.

이어서 부욱- 찌이익- 지팡이 천사의 천 갑옷을 부리로 찢고 출렁- 하며 흘러내리는 풍만한 젖가슴도 물어뜯기 시작했다.

약한 빛을 내뿜는 붉은 피가 철철 흐르고 삽시간에 도축장의 고기처럼 상반신이 물어뜯기는 여자 천사의 시체.

=……살점은 그냥 뱉네?=

=피도 안 먹는 거 같은데요?=

유르파와 아영의 말대로 비상은 여자 천사의 가슴살을 뜯어서 버리고 있었다. 그러다 피가 혀에 닿았는지 표정을 찡그리며 펫펫 침을 뱉기도 한다.

우득, 뚜둑. 뜨드득.

두꺼운 지방층이 뜯어져 나가고 이어서 하얀 갈비뼈마저 부숴서 뜯어내는 비상.

이윽고 시뻘건 주요 내장 기관이 드러나니 그걸 다시 기웃거리다가 이내 실망한 것처럼 뒷발질로 여자 천사의 시체를 퍽 걷어찼다.

원하는 것이 나오지 않은 모양새.

“유르파. 천사의 신체 기관 중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는지 알고 있습니까.”

=글쎄……? 천사는 꽤 베일에 싸여있는 종족이라…… 천사가 등장하는 미궁도 매우 드물어서 알려진 바가 없어. 그리고 지금까지 배를 갈라본 천사도 특별히 이상한 건 안보였지.=

물론 죽인 천사의 배를 전부 가른 것은 아니다. 위상석 탐지 도구로 위상석 반응이 있는 시체의 배만 갈랐을 뿐.

유르파의 대답에 환인은 팔짱을 끼고 다른 여자 천사의 가슴을 헤집는 비상을 가만히 응시했다.

“일반론으로 생각하면 비상이 자신의 성장 요소를 본능적으로 느끼고 하는 행동이라고 봐야겠지요.”

=그러니? 비상이 전에도 저런 비슷한 행동을 한 적이 있었나 봐?=

“비슷한 행동은 아니지만, 연관이 있는 반응을 보여준 적이 있습니다. 진화에 필요한 고기에서 열량을 보충해야 하는데 쿠에에 대해서 잘 모르던 제가 식사 제한을 하니 무척 화를 냈던 것이니까요.”

=아. 그때…….=

이실리테의 아는 척에 여자들이 의문 어린 시선을 보냈다.

=주인님을 만난 지 며칠 되지 않았을 때 이야기야. 비상이 지금 실루만 했을 때였거든.=

=아하….=

쿠으…….

다른 여자 천사의 시체에서도 원하는 것을 찾지 못했는지 비상이 시무룩한 표정을 짓는다.

그런 비상의 행동에 안느는 자신의 허리를 감고 있는 환인의 손을 어루만지며 며칠 전 그가 한 말을 기억해냈다.

며칠 전 그는 이 미궁에서 10일가량만 탐사하다가 복귀할 예정이라 말했었지. 이제 7일째, 앞으로 3일밖에 남지 않았다.

=도령 말대로 비상이 여자 천사한테 뭔가 끌리는 게 있는 건 맞나보네. 그게 뭔지 찾을 때까지 미궁에서 머물러야 하지 않을까?=

“일단 사흘 뒤에 상황을 봐서 결정하도록 하지.”

승령천제도 정말 코앞으로 다가왔다.

간혹 훈련을 위해 오가던 기사 중 일부가 용기 내서 인사하러 다가오는데, 그들이 전해주는 소식에 따르면 미궁 밖은 이미 축제 분위기라고.

솔직히 말해 환인은 테이아무스 섭정이 사람을 보내올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럴 만큼 정신머리가 없는 건 아닌지 이때까지 그 어떤 접촉도 없다.

이대로라면 승령천제가 끝날 때까지 미궁 안에서 지내도 나쁘지 않겠지만…….

‘승령천제가 어떤 식인지 확인해두고 싶기도 한데.’

영도의 기록실에서 각지 승령천제에 대한 글은 봐두었지만, 글로 보는 것과 직접 보는 것의 경험 밀도는 비교할 수 없다.

이실리테가 성수포로 비상의 부리를 닦아주는 걸 잠시 바라보던 환인은 아영과 백려강이 천사들의 날개 깃털을 전부 뽑고 천사들이 착용하고 있던 장비를 챙기는 걸 보다가 여자친구들에게 말했다.

“잠시 후면 길이 열릴 거다. 이제 이동하지.”

밀려오는 구름의 바다 미궁은 약간 S자로 구불거리긴 하지만, 입구를 기준으로 북동쪽을 향해 쭉 뻗어있는 형태다.

땅의 크기는 입구 쪽에서 북동쪽으로 나아갈수록 좁아지고 작아지는 한편 섬의 숫자도 늘어나는데, 심도 5계층에 도달하니 다도해처럼 여러 섬이 늘어지고 있었다.

어떤 영화의 배경으로 사용된 중국의 산맥마냥 구름 속에서 봉우리가 불쑥불쑥 튀어나와 있는 모양새.

이쯤 되니 팔라툼의 기사들도 종종 눈에 띄기 시작했다.

고개를 돌려 하늘을 바라보면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처럼 넓은 지역에 섬이 퍼져있고, 그런 몇몇 섬의 하늘에서 기사들이 천사들과 싸우는 장면이 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낚시하는 여자친구들의 곁에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전투의 소음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환인은 유르파와 아영의 대화를 듣게 되었다.

=섬이 800개 넘는다길래 막 수백 킬로미터에 걸쳐서 늘어져 있나 했는데 그런 건 아닌가 봐.=

=그 정도면 진짜 오가는 데만 1달씩 걸리겠는데요?=

=응. 플라비우스족은 하루면 오가는 거 같은데…… 이렇게 보면 날아다니는 게 부럽긴 해.=

=유리 언니는 비행 빗자루 있잖아요.=

=비행 빗자루 타는 것도 어지간히 고역이다, 너?=

=그래요?=

=어린 마녀들은 빗자루를 허벅지 사이에 끼우고 나이 든 마녀들은 빗자루를 비스듬하게 타는지 그 이유 알아?=

=아…… 킥킥킥.=

일반적으로 비행 빗자루의 대는 굵고 단단한 나뭇가지를 쓰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겉을 다듬긴 하지만 매끈하지 않고 조금 울퉁불퉁한데 그게 대음순 사이에 끼이면 여러모로 곤란한 상황이 벌어지겠지.

=그런데 말이에요 언니. 팔라툼은 여기 미궁을 좀 건성건성 관리하는 거 같지 않아요?=

=왜 그렇게 생각하니?=

=아직 심핵도, 중핵도 찾지 못했잖아요. 이대로 가면 미궁이 끝없이 성장할 텐데, 지금은 6급이니까 괜찮은 거지 7급이 되면 진짜 큰일 날 거라고요. 역류라던가.=

=팔라툼 왕실도 생각이 있지 않을까? 미궁의 심핵을 추적할 마도구를 개발 중이라거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백려강은 환인을 돌아보며 물었다.

=오라버니.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어요.=

“뭐지.”

=오라버니의 눈은 미궁의 혈관도 보실 수 있으시잖아요. 그럼 심핵과 중핵의 위치도 추적하실 수 있지 않으세요?=

“가능한 이야기지만, 여긴 천장과 벽이 없어서 경락이 보이지 않는다. 자연환경 미궁의 특성인지 땅은 흙으로 덮여있고 풀과 나무로 가려져 있어 잘 눈에 띄지 않고.”

추적하고자 하면 할 수 있겠지만, 성가신 게 사실이다. 쫓기 위해서는 지표를 헤집어야 한다는 이야기니까.

그리고 가끔 경락이 드러난 곳이 보이긴 했는데 일부는 구름바다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기사들이 몇백 년간 이곳을 훈련장으로 삼아왔을 텐데 찾아내지 못했다고 하니 구름바다 어딘가에 심핵과 중핵이 있겠지. 여느 미궁의 특성을 생각해본다면 그건 6계층 안쪽 가장 깊은 장소가 될 테고.

“그 정도는 팔라툼 정부도 인식하고 있을 거다. 개인인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일을 정부가 모른다는 건 말이 안 되겠지.”

국가의 힘이 있다면 이 구름바다 미궁의 구름도 어떻게 손을 볼 수 있을 게 틀림없다.

대량의 바람 관련 마도구를 가져와 구름을 갈라버린다거나, 구름 관련 속성을 각성한 술법 계통 직업자를 찾아 데려온다거나, 풍술사를 있는 대로 긁어모아 구름을 날려 보낸다거나.

=그러니까 못하는 게 아니고 안 하는 거라는 말이네.=

“발등에 불이 떨어진다면 누구보다 빨리 움직이겠지. 팔라툼은 엄연히 히스론드의 주도다. 국력을 집중한다면 7급 미궁 정도는 간단히…….”

말하던 도중 환인은 다치고 상처 입은 전투 천사 한 마리가 비틀거리며 어떤 섬 인근의 구름바다로 내려가는 것을 목격했다.

나뭇가지 사이에 가려져 있어 그도 그쪽을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면 눈치채지 못했을 상황.

환인은 재빨리 방벽 마도구로 패널 발판을 형성, 나무를 타고 올라가 나무 이파리에 몸을 숨긴 채 눈에 힘을 주었다.

그러자 영기가 눈으로 흘러 들어가며 시야가 망원경만큼이나 확대된다.

‘음.’

때마침 바람을 형상화한듯한 연녹색 헤일로의 천사가 섬 가장자리에 내려서 힘겹게 손을 흔들자 구름이 밀려나며 길이 만들어지는 게 보였다.

마력이나 위상력은 쓰지 않았다. 뭔가 특이한 상호 작용법이라도 있는 건가.

구름이 밀려나자 어느 정도 비탈이 이어지다 절벽처럼 뚝 떨어지는 형태의 가장자리가 드러난다.

피를 뚝뚝 흘릴 정도로 다친 천사는 그 절벽을 타고 아래로 내려갔고, 얼마 안 가 밀려났던 구름이 다시 몰려와 천사가 내려간 곳을 가려버렸다.

「……방금 저거 숨겨진 길이야?」

같은 것을 목격한 환연이 환인을 올려다보며 물었고 환인은 숨겨진 요소에 대한 호기심으로 눈을 강하게 번뜩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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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대충 큰거 온다 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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