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궁기담-633화 (633/813)

634 밀려오는 구름의 바다 미궁

스멀거리며 잠식당하듯 산자락이 천천히 구름에 뒤덮여가는 장면은 미지의 두려움으로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이었다.

삽시간에 구름으로 뒤덮여 산등성이가 섬으로 변해버린 상황에 유르파가 침을 꼴깍 삼키며 말한다.

=지도가 왜 섬으로 되어있었는지 이제야 알겠어…….=

=구름이 때때로 저렇게 땅을 삼켜서 그런가 봐요. 플라비우스 분들은 날아다니니 구름에 침식되지 않는 장소만 알고 있으면 되니까요…….=

백려강이 소름을 훑어내리듯 팔을 쓰다듬으며 말하니 안느도 후,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저기서 점심 먹고 있었으면 꼼짝없이 당했겠네.=

=뭐에 당해?=

=저 구름 말이야.=

=……주인님이 경계하셨으니 평범한 구름이 아니긴 하겠네.=

잘 모르겠다는 얼굴의 이실리테에게 안느는 =당연히…….= 말을 하다 말았다.

조금 생각해보니 긴가민가하다. 자신도 이 미궁의 환경 때문에 구름이 조금 꺼림칙한 정도니까.

자연이 구현된 미궁에는 평범한 구름, 강, 호수, 산과 자연지물이 얼마든지 있다. 그 연장선으로 생각하면 단지 구름의 위치가 조금 높아진 걸로밖에 안 보이기도 하고 말이다.

헷갈려하는 여자친구들의 모습에 환인은 마침 머리 위를 날아가는 직박구리 이형종을 향해 패널 단검을 투척했다.

옅은 빛으로 이루어진 한 자루의 비도가 날갯죽지를 베고 지나가자 그대로 추락하는 직박구리 이형종.

눈치 좋게 환연이 바람으로 추락하는 이형종을 끌어당긴다.

날갯죽지에 피를 철철 흘리며 끼이이이익-! 괴성과 함께 퍼덕거리는 독수리 크기의 이형종.

가느다란 다리가 아니라 맹금류의 그것처럼 굵고 단단한 다리를 사방으로 휘두르며 발악하지만, 환인의 광명창이 그런 두 다리와 날개를 단숨에 베어버렸다.

“저 구름이 어떤 해를 끼칠지 먼저 알아봐야겠군.”

여자친구들과 달리 환인은 몇 가지 요소로 인해 저 구름이 해로운 것이라는 가설을 세웠다.

유르파의 말에 따르면 구름은 위상력을 머금고 있다.

밑이 보이지 않을 만큼 짙고 두터운 데다 밀물과 썰물처럼 구름이 땅을 뒤덮다가 물러가길 반복한다.

미궁 책자의 지도에는 구름을 피하란 것처럼 지형을 섬으로 그리고 있다.

구름 위로 광풍이 몰아치는 것도 수상하다.

이제야 그걸 눈치챈 게 이상할 정도로 의구심이 드는 수준이 아닌가.

잘린 단면에서 피를 조금씩 흘리며 생선처럼 펄떡거리는 직박구리 이형종의 모가지를 틀어쥔 환인은 구름이 고요하게 흐르는 가장자리까지 내려간다.

환인은 뒤따라오는 여자친구들 중 이실리테에게 말했다.

“밧줄 하나를 넘겨다오. 대충 10여 미터 정도로.”

=여기요, 주인님.=

그녀에게 밧줄을 건네받은 환인은 자신의 손을 물려고 부리질 하는 이형종을 밧줄로 단단히 묶은 뒤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구름 속으로 던져넣었다.

끼이익! 끼이이이익—! 끼이……!

직박구리 이형종이 괴성과 함께 포물선을 그리다가 구름 속으로 사라졌고 그 순간 소리가 뚝 하고 끊긴다.

=뭐야. 구름에 방음 효과까지 있어?=

=위험 요소가 맞나봐.=

=첫인상은 그냥 아름다운 미궁이었는데…….=

=아름다운 꽃일수록 가시가 있다잖니.=

뒤에서 소곤거리는 그녀들의 대화대로, 적당히 팽팽하게 잡고 있던 밧줄을 통해 퍼덕거리던 직박구리 이형종의 움직임이 천천히 멎어가는 게 느껴진다.

“…….”

2분 정도 지나 직박구리 이형종의 움직임이 완전히 멈춘 걸 확인한 환인은 밧줄을 잡아당겨 끌어올렸다가 희미하게 당혹을 드러냈고 여자들은 깜짝 놀랐다.

끌려 올라온 직박구리 이형종은 몸 곳곳이 뜯어먹힌 채 그곳에서 내장을 질질 흘린 모습으로 죽어있었던 것.

=구름 안에 괴물이 살고 있나……?=

=음, 뜯어먹은 흔적이 작네요. 주둥이 크기가 작은 고양이 정도인데 치열이 다소 고른 형태에요.=

아영의 분석에 여자들이 관심을 드러냈다.

=어떤 괴물인지도 알아?=

=어…… 제가 아는 것 중에 가장 비슷한 건 벨티칼 열대우림의 강에 사는 치군어인데요.=

치군어齒群魚. 영도의 기록실에서 본 괴물 도감에 나와 있는 괴물이다.

육식성 어류로 간단히 말해 아마존강의 피라냐 같은 민물 생선인데 여긴 열대우림 기후도 아니고 물도 없다.

환인은 직박구리 이형종의 사체를 살피는 아영에게 물었다.

“시체에서 독이나 질병 반응을 알아낼 수 있나.”

=옙. 물리적인 독이나 질병은 혈액 반응만 봐도 알 수 있슴다. 마법 독은 그보다 조금 더 복잡한데 숙주가 죽는 순간 증발해서 검출하기 어렵거든요. 대신 독에 손상된 생체 조직을 보면 독의 유무는 알 수 있어요.=

“그러면 부탁하지.”

=옙.=

아영이 장갑을 끼고 이형종의 시체에 다가가니 유르파도 옆에 붙는다. 술법이나 비술적인 계통의 독 손상 반응이 궁금한 모양새.

환인은 그런 둘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궁금한 게 있어 보이는 백려강에게 말했다.

“묻고 싶은 게 있다는 표정이군.”

=네에. 구름의 성분을 파악하시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서요. 구름에 가까이 다가가지 않으면 괜찮을 것 같아서…….=

“미궁이니만큼 불안 요소가 발생하면 해소해두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전투 중 실수로 구름에 빠지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는데 그 차이가 생사를 결정지을 수도 있고.”

=아…….=

=도령 말이 맞아. 미궁에서 의심 가거나 이상한 부분은 확실히 하고 가는 게 뒤통수 안 맞는 대표적인 방법이니까. 미궁 중에는 이런 미궁도 있거든?=

시작되는 안느의 이야기.

조금 까만 땅과 거무스름한 미궁의 벽, 파릇파릇한 수풀과 꽃들이 많다. 그냥 봐서는 평범한 숲의 미궁이지만, 숨을 쉬다 보니 조금 콧속이 마르고 건조한 느낌이 난다.

=자료, 정보 없이 그 미궁에 들어간 사람들은 모두 죽었어. 왜 죽었을까?=

안느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그녀의 이야기를 귀담아듣던 이실리테와 백려강이 살짝 당황한다.

=죽어? 갑자기 왜……?=

=이형종한테 죽은 것은 아니죠…?=

=응.=

갑자기 왜 죽었지? 이실리테와 백려강이 머릴 맞대고 답을 궁리하고 있을 때 환인이 입을 열었다.

“화재로 사망한 건가.”

=역시 도령은 맞추네. 정답이야.=

=……불에 타죽었다고?=

=누가 일부러 불을 지른 거예요?=

두 여자가 황당해하자 안느는 환인에게 물었다. 그 이유도 알겠냐고.

“콧속이 메마르는 느낌이 들었다고 했지. 벽도, 바닥도 거뭇거뭇하다고 했고. 거기다 동굴을 채운 숲…… 발화꽃이나 발화초가 섞여 있었나.”

=와, 진짜 듣기만 하고 알아차리네……. 맞아. 천장과 벽, 바닥이 거뭇거뭇했던 것은 몇 번이나 불이 나서 검게 그을린 거야. 콧속 점막이 마른 이유는 불타기 쉬울 정도로 나무, 풀, 꽃이 말라 있었던 거고.=

미궁에 들어간 사람들의 전투 소음에 자극을 받은 발화꽃이 불을 토해냈고, 사람들이 눈치챘을 땐 주변이 불바다여서 질식사했거나 불에 타죽어버린 거지.=

두 여자가 입을 헤 벌린 모습에 안느가 말했다.

=뭔가 수상쩍은 상황이 있다면 일단 주변을 살펴보는 게 정답이야. 방금 말한 천연 함정을 미궁이 만들어내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그렇다고 전혀 없는 건 아니거든.=

=오라버니가 안 계셨으면 우리는 저 구름에 휩싸였다가 큰 곤란을 겪었겠네요…….=

=뭐 도령이 없었으면 우리가 이런 곳에 들어올 일도 없었을 테니까 의미 없는 가정이지.=

백려강이 이해했다는 얼굴로 환인을 힐끔거리며 주변 풍경을 다시 눈여겨볼 때 유르파와 아영의 조사 결과가 나왔다.

직박구리 이형종을 거의 다진 고기로 만들어놓은 아영이 얇은 장갑을 벗으며 말했다.

=물질 독도 마법 독도 없슴다. 근데 신경계를 좀 둔화시키는 게 있는 거 같아요.=

“그게 신경독이 아닌가.”

=독이라고 하기에는 뭐라고 해야 하지? 엄청 약해서 독의 축에도 안 드는…… 신경 안정제 같은 느낌? 아마 토톨새는 죽을 때 고통도 못 느꼈을걸요.=

위상력을 머금고 방음 기능을 가졌으며 통증 마취에 가까운 신경 안정제 효과의 구름. 그리고 그 구름 속에 사는 육식 괴물.

잠시 생각하던 환인은 이실리테에게 고기 한 덩어리를 받은 뒤 장창 끝에 밧줄을 달고 그 끝에 고깃덩이를 묶어 휙 구름 속에 던져넣었다.

낚싯대라고 하기에도 조잡한 물건.

환인은 낚싯대에 감각을 집중하다가 무언가가 살덩어리를 툭 건드리는 순간 번개같이 고깃덩이를 낚아 올렸다.

그러자 이빨이 고깃덩어리에 물린 채 급격한 힘에 의해 관성으로 끌려 올라온 손바닥만 한 하얀 생선 한 마리.

=앗.=

=헐?=

하지만 관성이 줄어들었을 때 생선은 주둥이를 벌려 고기를 놓고는 다시 구름 속으로 빠져들려 한다.

그걸 낚아챈 것은 환인이 낚시를 시작하는 모습에 미리 준비해두었던 염동술을 펼친 유르파였다.

=이건…… 새니, 생선이니?=

=새랑 생선이 합쳐졌으니까 새앵선?=

아영의 뻘한 소리에 그녀를 흘겨본 여자들은 그 희한한 생물을 살폈다.

고래상어처럼 넓적한 주둥이와 몸체지만, 좌우 지느러미 대신 잠자리 날개 같은 것이 붙어있고 꼬리지느러미도 세로가 아니라 가로로 나 있다.

무엇보다 비늘 사이사이에 융모 같은 털이 있어 생선인지 새인지 잘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

우스갯소리로 아영이 말한 새앵선이란 단어가 정말 어울린다고 할까.

아영이 나뭇가지를 가져와 그 새앵선의 주둥이에 들이밀었더니 콰샥, 산뜻한 소리와 함께 나뭇가지 끝이 잘려나갔다. 그리고 퉷, 나뭇조각을 뱉어내는 새앵선.

환인은 구름 밖으로 나왔다고 죽을 기색도 없는 생물을 영혼의 눈으로 보았다.

색계통이 은색이라는 것은 복용했을 때 치유 효과 계통이란 말인데…….

“유르파. 이 생선에 회복 효과가 있는듯하니 한 번 연구해보시겠습니까.”

=자기의 영혼 시야에 보이는 그 색계통이란 거구나. 알았어. 연구에는 한 마리로 부족하니까 좀 더 낚아보자. 어차피 구름의 수위…… 운위? 그게 낮아져야 다음 섬으로 나갈 수 있을 테니까.=

유르파는 재빨리 장대를 모으고 낚싯바늘로 낚싯대를 제작해 여자들에게 나누어주었다.

미궁 책자에는 대강 출몰하는 이형종에 대해서 언급되어있다. 하지만 이 기이한 생선에 대한 언급이 없는 걸 보면 기사단도 눈치채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아니면 존재는 알아도 효용성에 대해서는 모른다던가.

그도 그럴 것이 이 미궁에 출입하는 자들은 플라비우스의 귀족이나 준 귀족인 기사들 뿐.

이런 정체불명의 생선 같은 것을 입에 대려 할까.

선의에서 정보를 제공할 생각이 없던 환인은 백려강의 훈련에 더해 생선의 효과를 확인, 만약 효능이 뛰어나다면 되는대로 확보해둘 생각으로 유르파에게 낚싯대를 받아들었다.

밀려오는 구름의 바다 미궁은 24시간을 기점으로 구름이 밀려오고 빠져나가며 길을 만들었다.

알게 된 계기는 간단했다. 정오에 불어났던 구름은 다음날 정오에 다시 빠져나갔으니까.

덕분에 이동 시간의 제약을 받게 된 환인은 미궁의 체류 기간을 당초 4일에서 10일로 늘렸다.

하루 동안 날생선의 효과를 살펴본 바에 따르면 맛도 맛이지만, 피부 재생 효과가 제법 크다는 사실을 유르파가 알아낸 덕에 섬에 갇혀있는 동안에는 여자친구들이 낚시에 몰두했기 때문이었다.

피부 재생? 그런 거 치유술이나 회복을 받으면 되는 거 아닌가?

……했지만 화장품 제작의 대가인 유르파의 열변에 따르면 피부 재생은 곧 주름살과 노화를 방지하는 것과 같다고.

환인 자신은 상처의 재생이라는 시각으로 봤지만, 여자들은 화장품이라는 시각으로 본 탓에 나타난 차이점이었다.

=언니들! 새를 잡아서 뿌려 놓으면 날생선이 더 잘 잡혀요! 여기요!=

=잘했어!=

그 결과 아영, 백려강, 안느는 날생선을 낚고 유르파와 이실리테는 날생선을 생으로 먹는 것, 요리해서 먹는 것, 가공해서 액기스로 마시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피부 재생 효과를 강하게 받는지 연구했다.

그리고 나온 결론.

=효과는 다 비슷비슷하니까 요리해서 먹자.=

맛이 그 어떤 생선보다 훌륭했기에 나온 결과였다. 물론 생선을 먹지 못하는 안느를 위해 화장품으로도 만든다.

그리고 미궁 입장 5일째인 현재.

구름이 밀려와 길이 막혀버리자 여자친구들은 낚싯대를 들고 구름 가장자리로 가고 환인은 나아갈 방향의 하늘을 바라보며 휴식 아닌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이제 절반 정도 왔나.’

생각보다 하루 강제 휴식이 길다.

섬에 갇히게 되었을 때는 문제가 없다. 낚시하든 쉬든 어차피 섬에 갇혀있어야 하니까.

문제는 길이 열려 이동해야 할 때다.

현재 위치는 3계층 부근인지 출현하는 이형종의 크기나 숫자가 많아졌다.

벼락활을 든 백려강은 5일간 활의 숙련도를 유감없이 쌓아나가 현재 3급 이형종이라 해도 1:1이면 가뿐히 해치울 정도의 연사와 적중률을 자랑하게 되었다.

하지만 숫자도 많고 크기도 커져 환인의 패널 단검 투척으로는 더 잡기 힘들 정도가 되었다.

적을 줄이는 속도가 감소했다는 이야기.

거기에 벼락활의 우렛소리에 작게는 오토바이, 크게는 자동차 사이즈의 비행 이형종이 몰려들기도 해 그때는 잠시 이동을 멈추고 전투를 벌였다.

일행의 수준에 2~4급 비행형 이형종 따위 들짐승이나 다를 바 없지만, 제공권을 가진 새 이형종은 일행의 무서움을 잘 알고는 닥치는 대로 달려들지 않는다.

물론 달려들지 않아도 백려강이 벼락활을 쏴 격추하지만 그렇다고 등 뒤를 보인 채 달리기만 하는 것도 위험한 일.

그렇게 시간을 찔끔찔끔 잡아먹히고 밤에는 또 야영을 해야 하다 보니 생각보다 나아가는 속도가 느려진 것.

오늘 아침에는 비상의 바람술까지 동원해 몰려든 새 이형종을 토벌했지만, 결국 4계층의 섬을 코앞에 둔 채 길이 막혀버렸다.

비상의 등을 타고 한 명씩 넘어가도 되지만…….

‘그렇게 해야할만큼 급한 일은 아니니.’

꾸욱.

바위에 앉아있는 환인에게 다가온 비상이 또 기다려? 하고 지루해한다.

때마침 플라비우스족 기사단 6명이 편대를 이뤄 날아가니 부럽다는 듯이 그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비상.

환인은 그 모습을 바라보다 물었다.

“조금 놀다 올 테냐.”

꾸우?

“안될 것은 없지. 환연과 함께 놀다가 와라.”

「야아. 비상이 너 왜 날 끌어들이고 그래……. 난 그냥 자고 싶은데.」

뀻! 뀨으!

「……네가 뭐라는지 모르지만, 표정을 보니까 날 놀린다는 건 알겠다. 아~ 알았으니까 옷 그만 잡아당겨! 옷 늘어나!」

“…….”

먹고 자기만 하는 잠돼지 요정이라……. 틀린 말은 아니지.

비상의 재촉에 환연은 한숨을 폭폭 내쉬며 비상의 머리 위로 올라가고, 환인은 등짐과 실루를 내려주며 말했다.

“4계층에서는 원거리 공격을 주로 하는 천사가 나온다고 하니 위험할 것 같으면 이쪽으로 도망 와라. 환연은 위험하면 릴라이스를 부르고.”

「알아써어….」

쿠흥!

기운이 다 빠진듯한 환연을 머리 위에 올린 비상은 힘차게 날아올라 4계층 인근 섬으로 향한다.

환인은 실루를 무릎 위에 앉혀놓고 점차 작아지는 비상을 바라보았다.

실루도 비상에게서 눈길을 떼지 못하는 걸 보면 날아가는 게 부러운듯하다.

“…….”

실루의 작고 보드라운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환인은 실루와 비상의 개체 차이를 생각했다.

실루가 태어난 지도 2달이 넘어간다. 태어날 때부터 컸던 녀석이기에 육체파로 자라나지 않을까 했는데 아직도 1차 성장조차 하지 않고 있다.

‘핏줄 차이일지도 모르겠군.’

비상은 어미도 녹색 쿠에였다. 거기다 6급 개방형 미궁 출신이기도 하고. 그에 비하면 실루는 모체가 밀짚색 쿠에이니 개체값에서 차이가 날 수도 있겠지.

비슷한 녹색, 노을색의 희귀 쿠에지만 녹색 쿠에 중에서도 최상급인 비상, 노을색 쿠에 중 최하급인 실루라고 하면 격차의 차이도 이해가 가니까.

그의 손길에 잠이 솔솔 오는지 고개를 돌려 몸을 말고 잠잘 준비를 하는 실루. 환인은 등을 다독여주며 고개를 들었다가 영혼의 눈에 집중했다.

시야가 확 당겨지며 비상이 희미한 원형 헤일로와 하얀 천사 날개를 단 여성형 천사 셋과 싸우는 게 보인다.

겉보기에는 1:3이지만 환연도 있으니 걱정할 것은 없겠지.

천사들은 두 손에서 빛을 쏘아내며 공격하는데 그 속도까진 광속이 아니었기에 비상은 어렵지 않게 회피한다.

예상대로 얼마 안 가 비상의 날쌘 비행과 발톱 공격에 날개가 찢어진 천사가 하나 추락하고, 갑자기 불어닥친 돌풍에 천사 둘의 자세가 흐트러진 순간 선명한 에메랄드빛 칼날이 또 다른 천사의 목을 자른다.

푸확— 하는 환청이 들릴 정도로 절단면에서 호쾌하게 뿜어져 나오는 피의 분수.

남은 한 마리의 천사는 돌풍에서 겨우 자세를 바로잡았지만 비상을 시야에서 놓쳤고, 그 대가로 목숨을 잃었다.

뒤에서 날아든 비상이 바위처럼 억센 두 다리로 천사의 몸통과 팔을 움켜쥐고는 부리로 목을 콰득, 뜯어버린 것이다.

그리고는 머리가 사라진 천사의 시체를 집어던지려다가 수박처럼 출렁이는 젖가슴에 시선을 준다.

이어서 부리로 천사의 젖가슴을 물어뜯는 장면에 환인은 조금 우려를 드러냈다.

비상은 똑똑하니 미궁 안에 등장하는 저것들도 이형종이라고 인식했을 것이고, 몇 번이나 이형종을 잡아먹었으니 이형종은 곧 먹이라는 인식도 있을 것이다.

문제라면 사람을 향한 공격성.

‘오면 한 번 주의를 줘야겠군.’

사냥감을 잡아먹는 매처럼 천사의 살덩어리를 뜯어먹었던 비상은 이윽고 퉤퉤 침을 뱉듯이 부리질을 하더니 천사의 시체를 휙, 구름바다로 던져버리곤 다시금 유유히 비행을 시작한다.

그때 백려강이 다가와서는 살짝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오라버니……? 저기서 날고 있는 새, 비상이 아닌가요?=

“맞다. 심심하다고 해서 환연을 태워 놀러 보냈지.”

=저…… 방금 천사를 뜯어먹는 걸 봤는데 괜찮나요?=

“비상에게 이형종은 곧 먹이이기도 하니 이상한 것은 아니지. 하지만 인간형에게는 부리를 대지 말라고 돌아오면 주의를 줄 생각이다.”

우리는 보더라도 괜찮지만, 다른 사람들은 다를 테니까.

그 이야기에 안심한 백려강은 환인의 발치에 나란히 앉아 개인용 아공간 주머니에서 화살촉과 화살대, 깃털을 꺼내 화살을 제조한다.

가장 중요한 화살대는 기성품으로 준비했는지 제법 많았기에 환인도 그 플레칭을 잠시 구경하다가 소일거리삼아 화살을 만들어보기 시작했다.

다음날 정오.

구름이 밀려가며 길이 열리고, 다음 섬으로 빠르게 넘어간 환인 일행은 4계층 구역에 진입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선을 그어놓은 것처럼 날짐승 형태의 이형종 출현이 사라지고 대신 동그란 형광등 같은 헤일로를 머리 위에 띄운 날개 한 쌍의 천사들이 문답 무용으로 공격해오기 시작한 것이다.

=말이 안 통하는 거 보면 저것도 반전 개체란 거겠지?=

몇 번 천사에게 말을 걸어봤던 안느는 상대가 대답 없이 무표정으로 빛의 화살이나 빛의 구체를 날리기만 하는 모습에…….

콰앙!!

성체술을 발휘, 훌쩍 날아올라 천벌의 망치로 천사를 으깨버렸다.

메뚜기처럼 뛰어올라 망치를 휘두를 때마다 천사들이 말 그대로 핏물로 변해 부산물이 되어 후두둑 떨어진다.

이실리테도 다중 검기를 날려 천사를 가볍게 토막 치고 백려강도 일반 화살을 날려 천사의 심장이나 머리를 맞춘다.

파박, 퍽! 파바밧!

한 발에 꿰뚫리는 게 아니라 급소에 여러 발이 박히고 나서야 흐느적거리다 추락하는 천사들.

그걸 본 아영이 팔짱을 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음. 려강이를 보니까 인지 부조화가 치료되는 느낌이야. 역시 언니들이 괴물인 거지~.=

=나도 화살에 위상력을 담으면 언니들만큼이나 강한 위력을 낼 수 있을까?=

=그런 게 가능한 궁사는 7급은 되어야지. 거기 그 뭐냐, 오빠한테 개잡질하려다 뒤져나간 놈들 우두머리 있잖아.=

=프슈드 오울 엘위드리스?=

=응응, 그 인간. 그 인간이 신비궁사라고 8급 희귀 직업자거든. 그 인간 정도 되면 언니들하고도 박빙으로 싸울 수 있을 거야.=

=그 정도나 돼……? 궁수가 그 정도면 궁수 직업 계통의 정점일 거 같은데.=

=어 정점 맞아. 그 인간 실력도 뛰어나지만 애병인 신비궁이 유물이거든. 벼락활도 유물이긴 한데 신비궁이랑 비교하면 벼락활이 최상급 마도기고 신비궁은 하급 유물이라고 할까? 아무튼 혼자 8급 해양 괴수를 잡아낼 정도니까.=

백려강은 아영의 지식에 생각했다. 자신이 그만한 실력을 갖출 수 있을까?

‘무리겠지…….’

일반 직업자와 희귀 직업자의 격차도 큰데 자신은 용인체를 쓰고 있다지만 이 몸뚱이 자체는 무직자이지 않나.

백려강은 몰려왔던 7마리의 천사가 모두 죽은 걸 확인하고는 자신이 죽인 천사에게서 화살을 회수하고 날개 깃털을 잡아뽑으며 생각했다.

‘그래도.’

완전히 평범한 무직자보다 자신은 상태가 낫다. 무직자라지만 집중하면 위상력도 쓸 수 있고 바람도 읽고 다룰 수 있으니까.

만약 이실리테 언니의 필살기나 안느 언니의 성체술 같은 비기를 자신도 만들어낸다면…….

그녀의 곱고 순진한 눈에 다부진 결심이 깃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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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늦어서 죄송합니당!

갈비뼈에 금간데는 약도 없다는데.. 은근히 쿡쿡 찌르는게 신경 거슬려서 글쓰는데 집중이 잘 안되네요;;

이게 다 글쟁이가 나태해져서 그런거라고 생각합니당... 여간 기합이 아니었다면 멀쩡했을텐데!

내일은 더 늦지 않게 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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