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궁기담-632화 (632/813)

633 밀려오는 구름의 바다 미궁

아름다운 음률의 소리가 끝난 뒤 여자들은 그 소리의 원인을 추측했다.

=역시 이거 천사들의 노랫소리 아님까? 기사들이 여긴 다른 말로 천사의 섬이라고 한다면서요.=

=그 천사형 이형종은 4계층 안쪽에서 출몰한다고 적혀있더라. 안으로 한참 들어가야 하는데 거기서 여기까지 노래가 들릴까……?=

=섬이 원형이 아니라 일직선 형태라고 하니까 안쪽의 노랫소리가 전해진 건 아니라고 봐.=

=맞아. 저 구름 위쪽은 강풍이 계속 불고 있다고 하고.=

=그럼 구름 아래에 숨어있다거나……?=

아영과 안느, 이실리테가 이야기를 주고받고 백려강은 유르파와 함께 짙은 구름이 고요하게 맺힌 구름의 바다를 살핀다.

=음…… 제 눈에는 아무것도 안 보여요. 구름 안쪽도 안보이구요. 유리 언니의 원견술에는 뭔가 보이세요?=

=아니…… 새 같은 게 몇 마리 날아다니는 거뿐이야. 구름 속도 위상력이 가득한지 투시술로도 뿌옇게 보이고…….=

답이 나오지 않는지 유르파가 환인의 가슴팍을 살살 문지르다가 환연이 들어가 있는 부근을 찾고는 손가락으로 콕콕 찌른다.

=연아~. 네 정령술에 뭐 감지되는 건 없어?=

「……없어. 유르파 말대로 구름 안쪽은 정령들도 안 들어가려고 해서 못 봐.」

=구름 속에도 위험한 괴물이 살아서 그래?=

「아니. 변질된 위상력의 구름이라서 정령들이 들어가기 싫어해.=

환인의 안주머니에서 고개를 빼꼼 내민 환연의 눈에는 바람 정령들이 신나서 날아다니는 것만 보였다.

특히 구름 위쪽에 그러한 경향이 큰데 땅에서 멀어질수록 중급 정령뿐만 아니라 상급 정령도 간간이 보일 정도.

「음……. 상급 바람 정령이 놀고 있는 곳은 여기서 못해도 10km 밖인가? 이 미궁은 대체 얼마나 넓은 거야.」

=책에는 867번째 봉우리까지 있대.=

「아무튼. 환인, 비상이더러 구름 위로 가지 말라고 해. 바람 정령이 만들어내는 바람뿐만 아니라 이상한 바람까지 몰아치고 있어서 자칫 잘못하면 구름바다로 빠져버릴 거야.」

그녀의 경고를 들으며 환인은 밀려오는 구름의 바다 미궁을 서술해놓은 책자를 다시 살폈다.

여자친구들이 방금 그 노랫소리를 신경 쓰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미궁의 적극적인 정신침해 공격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자에는 ‘미궁 내에서는 천사의 노래라고 지칭하는 음률이 때때로 울려 퍼진다.’라고만 짧게 기술되어있었다.

원인이라던가 그로 인한 문제점, 발생한 사고, 사건에 관해서는 한 줄도 언급이 없다.

=아. 또 들려.=

=……? 앗, 저도 들림다.=

안느와 아영의 말이 나오고 몇 초 후, 정말 노랫소리가 사방에서 밀려오는 것처럼 들리기 시작한다.

환인은 때에 맞춰 눈을 감고 위상류 및 몸 상태의 변화를 자세히 살폈다.

만약 이게 미궁이 펼치는 일종의 공격이라면 위상력 같은 에너지에 반응하는 위상류에 영향이 올 테니까.

그 모습에 이실리테와 안느도 뒤따라 내면을 관조하고, 아영과 유르파는 각자 징표와 지팡이를 꺼내 마력 방호 비술, 정신 보호 성술을 펼친다.

……♩ ……♪ ………♪

그녀들의 침묵 속에서 흐르던 소리가 멈추고 잠시 후, 이실리테가 조금 곤혹스러워하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딱히 느껴지는 게 없는데.=

=나도 그래. 율이 언니랑 아영이는 어때?=

=마력 방호에 어떤 외부 자극도 없었어. 위상력이 아닌 건가……? 아영이 넌?=

=정신 보호를 쓰고 있었는데 저도 마찬가지였어요.=

누구도 성과를 얻지 못했다는 걸 확인한 여자들은 자연스럽게 아직 눈을 감고 있는 환인을 보았다.

“……나 역시 이상한 점이 느껴지지 않는다. 영혼의 눈에도 유별난 공격의 흔적은 보이지 않으니 단순한 노랫소리라는 거겠지.”

일부 짐을 지고 있는 비상과 비상의 등에 얌전히 올라가 있는 실루도 노랫소리에 적대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미 몇 번이나 정독을 마친 미궁 책자를 받아든 안느가 빠르게 넘기며 말했다.

=책자에는 언급이 없지만, 팔라툼의 기사들이 벌써 수백 년간 실전 훈련장으로 삼고 있는 곳이잖아. 우리가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이상한 점을 알아내지 못했다는 건 그냥 신경증을 노린 미궁 현상이라고 봐.=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노랫소리가 신경증을 유발하기 위한 공격이라니 조금 모순적이지만요.=

“자, 더 늦어지기 전에 출발하지.”

현재로서는 노래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안느 말대로 노이로제를 유발하기 위한 장치라고 보는 게 맞을 터.

대응은 그때 가서, 정신에 작용하는 것일 테니 그때 가서 평온의 파동을 펼치기로 한 환인은 성큼성큼 걸음을 내디뎌나갔다.

바깥과 시간이 연동되어있는지 저 멀리 지평선 쪽에 불그스름한 노을이 조금씩 올라오고 있다.

몇 시간 안에 밤이 찾아올 테니 그사이 입구에서 최대한 멀어지는게 좋겠지.

약 2시간 후.

메마른 낙엽을 밟으며 비교적 야트막하고 가파른 산길을 오르던 일행은 수 차례 겁 없는 이형종의 습격을 받았다.

책자에 나와 있던 대로 전부 비행 타입, 그렇다고 외형이 일그러지고 흉측하게 생긴 이형종이 아니라 위상력을 약간 몸에 받아들여 변화한 맹금류다.

대머리독수리, 솔개, 말똥가리, 줄무늬 새매, 물수리, 카라카라.

맹금류뿐만 아니라 크기를 크게 키운 까치, 까마귀, 뇌조, 뿔새도 있었고 학이나 황새 같은 새도 있었다.

고작해야 1~2급에 불과한 이형종이지만, 평범한 여행자가 마주치면 제공권을 제압당한 상태에서 불리한 전투를 벌여야 하기에 바짝 긴장해야 하는 괴물들.

그런 새들은 백려강의 좋은 표적지가 되었다.

쐐애액— …파박!

첫 번째 화살을 피한 거대 까마귀 이형종이 뒤이어 날아온 두 발의 화살을 맞고 회색 깃털을 흩뿌리며 구름바다로 풍덩 빠져버린다.

=려강, 한 발 빗나갔어. 아무 생각 없이 쏜 거 아니지?=

=응. 시력이 너무 좋아서 화살을 쏘려 할 때마다 반응하길래, 첫 번째 한 발로 유도한 거야.=

=괜찮은 판단인데 화살은 궁사의 목숨이야. 목숨을 막 낭비하면 어떡해? 방금처럼 눈이 좋아서 화살을 잘 피하는 놈들은 어떻게 해야 맞출 수 있을지 고민해봐.=

=……새의 날갯짓과 비행 궤도를 짚어서 흐름을 끊는 방향으로 쏘면 될 것 같아.=

=알고 있었어? 알고 있는데 왜 안 써?=

=검을 배울 때 오라버니께서 보여주신 거였는데……. 그게 활에도 적용될 줄 몰랐네.=

=아.=

밀려오는 구름의 바다 미궁에 입장한 목적은 백려강의 사격 연습과 훈련이다.

미궁을 기사단이 훈련용으로 이용한다는 정보에 원래는 세 명 정도로 추려 4계층이나 5계층 정도까지만 살펴볼 계획이었는데 테이아무스 섭정 때문에 계획을 바꾼 것.

그 목적대로 백려강의 활 솜씨가 빠르게 늘고 있었다. 연사와 곡사는 물론 강풍 속에서 바람을 이용한 커브 샷까지 쓰기 시작한다.

쒸이익- 퍽!

키잇!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의 폭풍 속에서 S자로 날아간 화살이 지구의 말똥가리보다 세 배는 더 큰 이형종의 목을 꿰뚫었다.

목에 큼지막한 화살이 박힌 채 기슭 가장자리로 추락하는 이형종.

그걸 지켜본 아영이 엄지를 척 세워 보이며 말했다.

=훌륭해. 너 생전에는 바람술사랬지? 그래서 바람의 흐름이 직감적으로 느껴지나 보네.=

=응.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어쩐지 알 것 같아.=

=크~ 천부적인 궁수의 자질이구만.=

아영의 호들갑에 번개 모양의 활을 품에 안은 백려강의 얼굴에 부끄럼이 피어난다.

=오빠! 잡은 거 가져올게요!=

“그래.”

=려강아, 가자.=

=응.=

날듯이 달려가는 그녀들을 뒤에서 쳐다보며 기다란 귀를 쫑긋 세워 적의 출현을 경계하고 있던 안느가 입을 열었다.

=다른 모험자나 탐험가가 없다는 게 오히려 속이 편하네.=

“확실히. 접근하는 것들은 전부 적이나 다름없으니.”

환인의 공감에 이실리테도 고개를 끄덕였다. 웨이포드의 빛이 닿지 않는 미궁에서 도적으로 돌변했던 노동자들이 떠올랐던 것.

하지만 앙상한 나무 아래에 쪼그려 앉아 꽃을 조심스레 캐던 유르파는 잘 공감 가지 않는지 그녀를 잠깐 돌아보며 물었다.

=그러니?=

=율이 언니는 미궁 잘 안 들어가 봤다고 했지? 미궁에서 제일 위험한 건 이형종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말, 들어본 적 없어?=

접근 중인 저놈들은 평범한 탐험가인가, 아니면 이쪽의 빈틈을 노린 도적떼인가.

사고를 자극하는 요소가 많을수록 정신적인 피로가 늘어나는 것은 당연한 일.

뿌리가 상하지 않게 조심해서 캐낸 유르파는 조심스럽게 흙을 털어낸 뒤 허리를 콩콩 두드리며 일어나 물었다.

=들어본 적은 있지만, 사람이든 이형종이든 똑같이 경계하면 그만이 아닐까~ 해서 물어본 거였어.=

=그렇긴 한데 진짜 다쳐서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일 수 있잖아?=

=후후. 안느 아가씨 착하네~.=

그녀의 칭찬에 안느는 얼굴이 조금 뜨거워지는 걸 느끼며 일부러 화제를 전환했다.

=그런데 율이 언니 아까부터 뭔가 캐던데 뭐야?=

=응? 아~ 군데군데 고산지에서만 자생하는 약초랑 꽃 같은 게 보여서. 주문하거나 하면 이런 꽃 한 송이에 2 은화는 내야 하거든.=

그녀의 손에 들린 꽃송이를 바라보던 안느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손바닥만 한 꽃 한 송이가 그렇게 비싸? 오면서 언니가 8송이 정도 캤으니까 그것만으로도 16은화네!

16은화는 도시 출신의 일반인이 반년 가까이 일해야 벌 수 있는 큰 금액.

그렇다 해도 일행의 능력은 마음만 먹으면 한 달에 수백 금화도 벌어들일 수 있을 정도다.

잊혀진 옛 도시 미궁에서 얼마 안 되는 사냥으로 30금화 넘게 벌어들였을 정도니까.

놀랍긴 하지만 그보다는 다른 점에 관심을 둔다.

=그 말은 여기가 고산지라는 말인데 공기가 별로 희박하지 않네. 구름이 발아래에서 흐르고 있을 정도면 이만저만 높은 게 아닐 텐데.=

=난 살짝 숨이 찰 정도인걸? 안느 아가씨들은 신체 능력이 뛰어나서 그런 거 아니겠니.=

=어, 정령 기사가 되면서 체력이 더 좋아졌나 보다.=

그렇게 이야기를 주고받거나 출현하는 새 이형종을 상대로 사격 연습을 하며 다소 빠른 걸음으로 나아가던 일행은 입구에서부터 보이던 가장 높은 봉우리에 오른 순간 감탄사를 크게 흘렸다.

=와아!=

=오오?=

산등성이가 뱀이 기어가는 것처럼 저 앞 구름으로 이루어진 지평선까지 쭈욱 이어져 있다.

좌우로는 일렁이는 구름의 바다가 시야 끝까지 아득하게 펼쳐져 있었고 하늘에 지기 시작하는 노을이 구름바다를 붉게 물들이는 가운데 천사의 노랫소리가 또다시 들려오니 아름답고 몽환적이라는 생각 밖에 들지 않는다.

운해雲海라는 말이 이토록 어울리는 장소가 세상에 또 있을까.

소녀의 감수성을 있는 대로 자극하는 풍경에 폭 빠져있던 백려강이 무언가를 발견하곤 환인과 여자들을 불렀다.

=오라버니, 언니들. 저 앞 하늘 좀 보세요.=

=…음? 뭔가가 날아다니면서 싸우고 있는…… 건가? 너무 멀어서 잘 안 보이는걸.=

=원견술을 써볼 게 잠시만……. 플라비우스족이랑 천사야. 플라비우스족은 천공 기사단 갑주를 걸치고 있고 상대는 머리 위에 헤일로가 있고 커다란 날개 한 쌍이 붙어있는데…… 새끼손톱보다 작게 보여서 그 이상은 모르겠어.=

최장 100km까지 시야 확대가 가능한 원견술인데 새끼손톱의 1/3 정도 크기로밖에 안 보인단 말은 최대 시야 거리라는 말.

“100km 앞이 4계층 언저리겠군요.”

=제법 멀잖아. 평범하게 오가는데만 며칠씩 걸리겠어.=

안느의 이야기에 환인도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책자에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글은 미궁 초입에 해당하지 않는지 산등성이가 계속 이어져 있다.

오르락내리락하며 산등성이를 따라만 가더라도 100km면 최소 하루, 길면 사흘은 시간을 보내야 할 만큼 먼 거리다.

환인은 잉크를 뿌린 것처럼 점점 검게 변해가는 하늘을 바라보다 품 안의 환연을 불렀다.

“환연, 주변에 야영할만한 장소가 있나.”

「어 있어. 저쪽 아래로 내려가면 분지처럼 쏙 들어간 자리가 있는데 거기서는 밖에서 잘 안 보일 거야.」

환연이 알려주는 곳을 따라가니 정말 8명 정도는 야영할 수 있을 만큼 푹 가라앉은 장소가 있었다.

“몇십 분 뒤면 해가 질듯하니 오늘은 여기서 야영한다. 내일은 4계층 지대에 도달하는 걸 목표로 하지.”

=네, 주인님.=

=응.=

=옙!=

주변을 나무가 가려주고 있다지만 불을 피우면 멀리서도 보일 듯한 지형.

환인은 환연에게 말해 이글루처럼 흙으로 벽을 만들라고 지시한 뒤 안느, 아영과 함께 주변을 돌아다니며 장작을 줍기 시작했다.

굵고 큰 나뭇가지에서 불쏘시개용 작은 나뭇가지까지.

보이는 대로 줍던 아영이 묻는다.

=언니. 요리는 마도구로 하고 보온 침낭 마도구도 있는데 굳이 장작을 주워서 불을 피울 필요가 있어요?=

=이슬이가 그러는데 장작으로 지은 밥이랑 요리하고 풍로 마도구로 지은 거랑은 맛이 전혀 다르다더라. 그리고 모닥불을 보면 왠지 안심되지 않아?=

=앗, 저는 암살자 출신이라 어두운 게 좋아서. 아무튼 이실리테 언니가 저녁은 새 구이 해주신다는데 기대되네요!=

=아…… 새구이 먹어본 지도 오래됐네. 이슬이가 만들어준 새콤달콤 새구이 진짜 맛있었는데…….=

안느가 아련한 표정으로 중얼거리자 눈을 깜빡거린 아영이 은근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으음. 이런 질문은 조금 그런 거 같은데…….=

=뭔데?=

=언니, 수목화 하면 육고기는 물론이고 생선도 못 먹잖아요. 어떻게 참으시는 거예요? 역시 오빠에 대한 사랑으로?=

=어? 응, 그렇……지?=

=와! 역시 안느 언니는 존경스럽네요! 겨우 1년 만에 수목화를 이루신 것도 그렇고 욕구의 억제도 그렇고. 역시 왕가의 혈통은 남다른 것 같아요!=

아영의 순수한 감탄에 안느는 어색하게 아하하 웃다가 슬쩍 고개를 돌렸다.

저렇게 순진하게 감탄하는 애한테 어떻게 진실을 말해줄 수 있을까. 환인의 정액이 너무 맛있어서 고기에 대한 욕망을 없애줄 정도라는 걸 말이다.

“…….”

문득 환인이 묘한 웃음을 짓고 있단 걸 눈치챈 안느는 아영 몰래 그에게 다가가 옆구리를 쿡 찔렀다.

=왜 그러는데?=

“난 아무 말도 안 했다만.”

=……웃는 타이밍이 이상하잖아.=

그녀의 귀여운 투정에 피식 웃음을 흘린 환인은 장작을 열심히 줍는 아영에게 시선을 주었다.

“아영도 수목화 문제가 해결되면 알게 될 텐데…… 지금 미리 알려주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했을 뿐이다. 나중에 변태 언니 취급 받기 전에 말이다.”

=윽.=

하긴. 지금은 접근 금지령 때문에 모르지만, 아영도 도령한테 안기기 시작하면…….

안느는 작게 한숨을 내쉬면서 아영에게 진실을 말해줄 기회를 재기 시작했다.

미궁이라기보단 바깥에서 야영하는 느낌으로 첫날밤을 보낸 일행은 야영지를 정리한 뒤 좀 더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체력이 받쳐주지 않는 유르파는 비행 빗자루를 타고 따르고 그 외 일행은 달리듯이 나아가는 시간.

이틀째가 되자 천사의 노랫소리도 그다지 신경 쓰이지 않게 되었고, 나타나는 비행형 이형종은 환인과 백려강이 도맡아 처리했다.

=우으…….=

문제라면 유르파가 제작해준 방벽 마도기로 투척한 단검에 추락하는 이형종의 숫자가 백려강이 쏜 화살에 맞아 추락하는 이형종이 더 많았다는 것.

=와……. 율이 언니, 도령이 스스로 방벽에 위상력을 충전해 쓰는 거 맞지?=

=응. 진짜 무시무시하네…….=

방벽은 충전식으로 위상력을 소모해 패널을 형성한 뒤 공격에 사용한다.

그렇기에 충전된 에너지를 다 소모하면 위상력을 다루지 못하는 환인은 재충전을 할 수 없었기에 여자친구들에게 넘겨주어서 충전을 부탁했었다.

그게 조금 성가시고 귀찮았던 환인은 방벽의 사용 횟수를 점차 줄여나갔다.

있으면야 편하지만 없어도 그다지 아쉬울 게 없었기 때문이다.

방벽의 조종 거리는 중거리라 할 수 있는 약 10m인데 그 정도는 실력으로 얼마든지 메꿀 수 있으니까.

그나마 유용한 점은 투척이지만, 위상력을 에너지로 형성한 패널은 회수하지 못하면 충전량의 소모가 극심해진다.

그랬는데 그리모암의 유물을 전부 모은 뒤 위상력을 능숙하게 다룰 수 있게 된 뒤부터는 이야기가 달라졌다.

스스로 방벽을 충전할 수 있게 된 덕분에, 그리고 영혼 구슬의 위력이 너무 강해져서 함부로 쓸 수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정신력이 강하거나 등급이 높은 괴물일 경우 어느 정도 저항할 수 있다지만, 영혼 화살에 공격받으면 영혼에 직접적인 피해가 간다.

정신력이 약하거나 의지력이 모자란 인간이라면 깩, 하고 즉사해버려도 이상할 게 없다는 이야기.

더욱이 패널을 겹치면 상당한 힘에도 버틴다는 걸 알게 되었기에 점점 방벽 패널의 사용 횟수가 늘었고 그 결과.

푸북, 퍽!

꾸엑, 키이익……!

환인이 한 번 손을 휘두를 때마다 2발에서 4발의 손바닥만 한 패널 단검이 예리한 궤적으로 날아가고, 그때마다 이형종이 2~3마리씩 추락한다.

10m까지는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다는 점에 착안, 패널 단검이 활로는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포물선과 직선 운동으로 날아가니 이형종은 피하거나 막지도 못하고 격추당하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나무가 시야를 방해하면 패널을 발판삼아 훌쩍 뛰어올라 패널 단검을 부챗살처럼 확 뿌리니 몰려왔던 이형종이 후두둑 떨어진다.

덩달아 백려강의 자신감도 후두둑 떨어지고.

환인의 압도적인 투척 실력에 기가 죽었던 것도 잠시, 백려강은 눈에서 불꽃을 피우며 악착같이 환인을 따라 화살을 쏘아대기 시작했다.

허락을 받고 일반 화살뿐만 아니라 벼락활의 벼락까지 동원했다.

격추 포인트를 따내기 위해 쏠 때면 울려 퍼지는 우렛소리까지 어그로삼아 이형종의 이목을 끌어당겼던 것.

=흐아앙…….=

그렇게 시간이 흘러 점심을 먹을 때가 되었고, 용인체의 우월한 스태미너를 전부 끌어다 써버린 백려강은 땀투성이로 신음을 흘리며 비틀거리다 낙엽 위를 뒹굴었다.

환인처럼 뛰고 점프하고 나무와 나무 사이를 넘어 다니고 그러면서 활을 쏘고.

그걸 5시간이나 계속한 탓에 기진맥진한 상태로 드러누워 버린 백려강의 눈앞에는 하얀 별이 반짝이며 떠다니고 있었다.

보기 좋게 부푼 가슴이 크게 부풀었다 가라앉길 반복하는 가운데 아영이 가까이 다가가 그녀의 가슴을 콕콕 찌르며 묻는다.

=려강아~ 살아있어?=

=주, 주글거 가타항…….=

과도한 체력 소모에 심장은 불규칙적으로 뛰고 폐 또한 제멋대로 산소를 갈구하느라 히익, 히이- 바람 빠지는 소리가 그녀의 입과 코에서 흘러나온다.

급격하고도 과도한 체력 소모로 심장마비에 걸려도 이상하지 않을 상태.

용인체의 우월하고 뛰어난 회복력은 그러한 상태를 금방 진정시켰다. 마라톤 풀코스를 달린 정도로 호흡과 심장 박동이 안정된 것이다.

그 상태를 꿰뚫어 본 아영은 손에 모았던 원기 회복의 성술을 풀어버리며 땀투성이인 그녀의 발간 볼살을 콕 찔렀다.

=53대 85. 벼락활의 우렛소리에 이끌려 몰린 이형종까지 합산한 수치야. 물론 네가 53마리. 오빠가 85마리고.=

=…….=

조금 파리하게 질렸던 입술이 앙다물어지더니 분하다는 기색이 그녀의 눈에 맺히기 시작했다.

=빗나간 화살만 맞췄어도 66대 72는 됐을 거야……. 수행이 더 필요해. 어떤 상황에서도 목표물을 맞힐 수 있는 수행이…….=

그 불타는 의욕에 아영이 히죽 웃으며 그녀의 오뚝한 콧날을 꾹 눌렀다.

=그 수행에 체력 단련도 더하자. 오빤 멀쩡한데 넌 지금 혼절하기 직전이잖아.=

=……응.=

=걱정하지 마. 넌 활을 다루기 시작한 지 이제 보름 정도밖에 안 됐어. 앞으로 더 성장할 수 있을 거야. 수백 명한테 무술을 가르친 내가 보장할게!=

=응. 고마워.=

백려강과 아영이 좀 더 빡센 수행을 다짐하고 있을 때, 환인은 조금 꺼림칙한 기분에 밀려오는 구름의 바다 미궁 지도를 다시 살피고 있었다.

그저 길고 구불구불한 선과 수많은 점으로 이루어진 간단한 지도지만, 어째서 이렇게 꺼림칙한 걸까.

“대강 이 정도인가.”

달린 속도와 시간을 계산해 이동한 거리를 도출해낸 환인은 입구에서 1/7정도 되는 지점을 표시한다.

그의 어깨 위에 올라가 같은 지도를 보던 환연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 지도 생각보다 정확하네. 주변 지형이 제법 잘 들어맞아.」

“하늘을 날아다니며 보고 그렸을 테니 부정확할 리는 없겠지…….”

말 하다 말고 멈춘 환인은 군데군데 섬으로 이루어진 지도를 보며 턱을 쓰다듬었다.

여기까지 달려왔을 때 산등성이는 전부 이어져 있었는데 지도는 왜 띄엄띄엄 섬처럼 그려져 있는 걸까. 어째서 867개의 봉우리(섬)이라고 한 걸까.

“…….”

그 이유를 금방 눈치챈 환인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짝짝, 손뼉을 쳐서 식사를 준비중이던 여자친구들의 주의를 끌어모은 환인이 말했다.

“미안하군. 다시 이동한다.”

=어? 왜?=

“여긴 위험해. 좀 더 높은 고지대로 가서 쉬도록 하지. 바로 움직여라.”

=……?=

=……??=

점심 식사를 준비 중이던 여자들은 그가 갑자기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이해 못 했지만, 의미 없는 지시를 내리진 않을 거라 믿었기에 그가 이끄는 대로 저 앞의 봉우리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밥을 먹을거라 생각했는데 그게 미뤄진 비상만 조금 투덜거렸을 뿐.

그렇게 정상에 거의 다 와 가던 중, 비행 빗자루를 타고 따르던 유르파가 문득 뒤를 돌아보곤 깜짝 놀란 목소리로 소리쳤다.

=자기! 뒤에! 구름이 뒤덮기 시작했어!=

그녀의 말대로 구름바다가 넘실거리며 지대가 낮은 산등성이를 빠르게 집어삼키고 있었다.

일행이 잠시 멈춰있던 그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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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부모님 일을 도와드리다가 짐수레 손잡이에 가슴을 찍혀서 갈비뼈에 살짝 금간 글쟁이입니다... 따흐흑

평범하게는 아프거나 하지 않은데 의자에서 자세를 고칠때 오른쪽 팔걸이에 힘을 주면 찌르듯이 아프네용

흉부 방탄 소재가 좀 더 두터웠다면 괜찮았을텐데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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