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궁기담-627화 (627/813)

628 영도 에쉬누르

[환인 님, 보고 싶었어요!]

출산일이 멀지 않았는지 크게 부푼 배를 감싸 안고 다가온 이엘카타는 배가 눌리지 않게끔 조심해서 환인에게 안겨들었다.

환인도 그녀의 배를 압박하지 않도록 안아주며 묘한 감정을 느꼈다.

배가 남산처럼 부푼 임산부. 그 뱃속에 자신의 아이가 들어있다는 사실을 직면했더니 기분이 이상하다고 할까.

막 부성애가 치솟는다거나 이엘카타를 매우 아껴주어야겠다는 생각 같은 것은 아니다. 사진으로만 보던 사자, 기린 등을 직접 봤을 때의 감상 정도.

그리고 그녀의 어깨 쪽에서 말풍선처럼 떠 있는 위상력으로 이루어진 글자에 시선을 주었다.

마치 만화처럼 둥글둥글한 말풍선 속에 적혀있는 푸른색 글자들. 종이에 글을 적어 소통하다가 새로운 소통 방식을 만들어낸 건가.

환인은 이엘카타의 얼굴로 시선을 돌려 그녀의 턱을 살짝 들어보았다.

눈은 별빛을 담은 것처럼 반짝이고 투명할 만치 아름다운 금빛 눈동자에는 미래에 대한 불안도, 두려움도 없다.

행복을 가득 느끼고 있는 여성의 얼굴이다.

그런 이엘카타의 뺨을 환인은 다정하게 어루만져주면서 작은 웃음과 함께 말했다.

“갸름하고 청초한 금발의 아리따운 플뢰 아가씨는 어디 가고 동글동글 귀여운 플뢰 아가씨만 남았군요.”

[부끄러워요…….]

얼굴이 부은 게 창피한지 고개를 살짝 돌려 외면하는 이엘카타의 뺨에 환인은 입술을 살짝 맞춰주었다.

그러자 이엘카타의 얼굴에 행복이 더욱 크게 묻어나기 시작했다.

“이엘, 오랜만입니다. 이야기는 들었습니다만 배가…… 생각 이상으로 많이 불렀군요.”

[저도 이만큼이나 배가 부를 줄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녀에게 팔짱을 내어주고 집으로 향하며 물었다.

“그리될 때까지 힘들지 않았습니까. 진작 연락을 주었다면 시간 내서라도 찾아왔을 텐데요.”

[환인 님께 말씀하지 말아 주십사 대성녀님께 부탁드린 것은 저입니다. 환인 님은 큰일을 하실 분이십니다. 저 같은 계집에게 신경 쓰게 하고 싶지 않았어요.]

“이엘.”

[그리고 저는 혼자가 아닙니다. 그녀들이 있으니까요.]

그녀의 말풍선과 이엘카타의 부드러운 시선을 보고 한쪽 길에 나란히 서 있는 여자들에게 시선을 주었다.

몸종 같은 역할을 하는 세 명의 여자. 그중 한 명은 환인이 아주 잘 기억하고 있는 여자였다.

회백색 머리카락으로 염색한 플뢰족 여자.

파르히스트에서 이엘카타의 편지를 전달하며 그녀에게 관심을 주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던 엘위드리스 가문 출신의 기사다.

“로나 아우로라.”

=성제님을 뵙습니다.=

“당신이 이엘의 곁에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약간 냉담한 목소리에 허리를 깊이 숙였던 그녀의 어깨가 살짝 떨린다.

환인과 로나 사이에 흐르는 불온한 기류를 읽은 이엘카타가 황급히 말풍선을 띄웠다.

[환인 님. 그녀는 지금까지 가문의 위협에서 절 지켜준 소꿉친구입니다.]

[혹시 그녀가 불쾌하게 한 적이 있었다면 저도 사과드리겠습니다. 용서해주세요.]

“……이엘,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그저 조금 의외였을 뿐이니까요.”

그런 말로 이엘카타를 안심시킨 환인은 위압감에 짓눌려 허릴 숙인 채 조금씩 떨고 있는 로나에게 말했다.

“약속은 잘 지킨 것 같더군요. 그 점은 칭찬하겠습니다.”

=가, 감사합…니다…….=

엘위드리스가 암살자를 보내기 전까지 엘위드리스 가문은 자신에게 그 어떤 협잡질을 벌이지 않았다.

그 말은 로나가 자신의 경고를 받아들여 자신에 대한 것은 끝까지 숨겼다는 뜻.

“그때 제가 한 경고는 아직 잊지 않았으리라 생각합니다. 그 경고는 아직도 유효하다는 점을 부디 끝까지 잊지 마시길.”

=예, 예…….=

로나=아우로라는 바닥이 없는 지옥의 늪 구덩이에 반쯤 담가졌다 나온 기분에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요도가 불타는 듯이 뜨겁다. 방심했다간 실금해버릴 것만 같은 느낌.

그녀도 엘위드리스가, 메리아놀에 대전쟁이 벌어져도 가문만큼은 멀쩡할 거라 생각했던 철옹성 엘위드리스가 흡사 모래성처럼 맥없이 무너진 것에 얼마나 놀랐던가.

로나에게서 시작된 공포가 전염된 것처럼 작게 떠는 다른 두 여자 하인에게 평온의 파동을 펼쳐준 환인은 이엘카타와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저, 환인 님…….]

“저와 아우로라 양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신경 쓰이는 겁니까.”

[아니라고 한다면 거짓말이겠지요.]

못내 염려하는 그녀의 눈빛에 환인은 다시금 웃음 지으며 그녀의 뺨을 어루만져주었다.

“별것 아닙니다. 아우로라 양이 당신의 편지를 제게 전달하며 당신과 얽히면 위험하니 이 이상 연관되지 말아 달라고 부탁을 하더군요. 엘위드리스 가문의 기사로서 받은 명령이 있지만, 당신이 더 소중해 당신에게 닥칠 위기를 막고 싶어서였다고 생각합니다.”

이엘카타의 신변에 문제가 된다면 자신을 처리해서라도 말이다.

파르히스트에 있었던 일을 기억해내는지 이엘카타의 표정이 살짝 흐려지며 쓴웃음이 깃든다.

[말씀대로입니다. 그때는 살해 협박에 가까운 연락이 본가에서 연이어 날아오고 있었습니다.]

[당장 도시로 복귀하라는 원로원의 독촉이었지요.]

“…….”

[로나는 저와 가문 사이에 끼어 이쪽의 소식을 두루뭉술하게 얼버무려 본가에 전달하며 시간을 벌어주고 있었습니다.]

[로나의 재치가 여러 번 빛을 발하지 아니하였다면 저는 엘위드리스에서 달려온 집행대에 붙잡혀 본가에 끌려가고 말았을 거예요.]

[저에게는 생명의 은인이자 둘도 없는 자매예요.]

[그녀는 한사코 아니라고 하지만요.]

“그랬습니까.”

환인은 파르히스트 당시 그녀가 보여주었던 반응과 지금 이엘카타가 들려주는 이야기에서 로나=아우로라가 품은 어둠을 엿보았다.

소꿉친구를 향한 우정이라 보기에 로나=아우로라의 태도는 속죄의 헌신 같은 의미가 깊어 보였던 것.

“…….”

예전에 재회했을 때 이엘카타는 자신을 잡종이라 했었다.

가주와 평민 여자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

핏줄과 가문의 보신에 광적인 원로원.

죽은 이엘카타의 모친.

도시에서 내쳐져 타향 만리에서 무덤지기의 일을 하며 살아가던 이엘카타.

그리고 가문의 뜻을 거스르면서까지 이엘카타에게 헌신한 엘위드리스의 기사 로나=아우로라.

“이엘. 로나의 나이가 어떻게 됩니까.”

[저보다 서른 살이 더 많아요. 그건 왜 물으시나요?]

조각이 모두 모였다.

자연스럽게 이야기 한편이 그려진다.

가주의 눈에 띈 청순하고 가련한 평민 소녀. 가식도 모르고 천진난만한 그 모습에 이끌리는 고귀한 가문의 주인.

두 사람 사이에 사랑이 싹트고 그 결실이 태어난다. 그리고 그런 두 사람의 사랑과 결실을 못마땅하게 보는 무리들.

사고로 위장되어 살해당한 평민 소녀. 피가 방울방울 떨어지는 검을 보며 부러진 기사도에 괴로워하는 여기사.

환인은 그저 추측만으로 끝내고는 대충 얼버무렸다.

“그녀가 당신을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 얼마나 오래 곁에서 지켜보았는지 궁금했습니다.”

[로나는 제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곁에 있어 주었습니다.]

[웨이포드로 유배당했을 때 잠시 헤어졌었지만 금방 찾아와서 절 지켜주었지요.]

“그랬군요.”

환인은 팔짱을 풀고 그녀의 허리에 팔을 감았다가 손에 닿는 부푼 배에 살짝 놀란 감정을 느꼈다.

상상으로는 물을 담은 풍선 같거나 살이 쪄서 배가 나온 그런 감촉이었는데, 실제는 돌덩어리보단 못하지만 그래도 굉장히 단단한 느낌이다. 그러면서도 뜨끈한 열이 느껴져 살아있는 생물이라는 감각이 강하다.

저택 안으로 들어온 환인은 본론을 꺼낼 생각도 못 하고 소파에 앉아 그녀를 허벅지 위에 올린 뒤 그녀의 배를 조심스레 어루만졌다.

이게 바로 생명의 신비인가.

어찌 이렇게나 신비로울 수 있을까.

살짝 들어보면 무게만 족히 10여 킬로그램이 넘는 느낌이다.

이 안에 아기가 들어있다니.

출산은 또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환인은 그녀의 배에 가만히 손을 올리고 원기를 매우 희미하게 방출하며 예민해진 기감으로 그녀의 몸 안을 살폈다.

“…….”

그리고 매우 놀랐다.

사람이 어떻게 이런 상태로 살아갈 수 있는 거지.

태아와 양수로 크게 불어난 자궁이 내장을 엉망진창으로 밀어내 자리를 잡고 있다.

폐도, 위도, 간도, 십이지장도 전부 밀려나고 짓눌려 압박받는 상태. 이엘카타가 숨을 크게 쉴 때마다 심장까지 조금씩 눌리는 수준이다.

그리고 환인은 배 안쪽에서 무언가가 손바닥을 차는 느낌에 흠칫 놀랐다.

[아가가.]

[아빠를 느꼈나 봐요.]

[발길질을 하네요.]

말풍선의 간격에서 아빠라는 단어를 꺼내는데 용기를 낸 것을 읽은 환인은 다시 그녀의 배에 손을 올리고 조심스럽게 쓸어내리며 말했다.

“왠지 사내아이일 것 같군요.”

[사내아이인가요? 어떻게 알아보셨는지…….]

“별것 아닙니다. 그저 제 엄마를 지키려는 것처럼 느껴져서.”

환인의 농담에 눈을 동그랗게 떴던 이엘카타는 눈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잠시 생각하다가 조심스럽게 말풍선에 글을 적어넣는다.

[그렇다면.]

[내키신다면.]

[아가에게 이름을 지어주시면 안 될까요?]

환인은 드물게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아빠 노릇도 못 해줄 텐데 이름을 지어주어도 괜찮은 걸까.

시하에게는 연우와 여운이라는 이름을 남겼지만, 지금 이 심정을 가지고 그때로 되돌아가면 태연하게 이름을 정해주지 못할 기분이다.

하지만…….

환인은 혹시 자신의 부탁에 기분이 상했을까, 안절부절 조마조마 해하는 이엘카타의 모습에 그 자리에서 이름을 생각해내고 그녀의 귀에 속삭였다.

“……선. 선이 좋겠습니다.”

=‘선’인가요? 발음이 조금 신기한 느낌이네요.=

플뢰족의 언어는 영어나 불어처럼 혀를 꼬는 r 발음에 마찰음이 많다. 그런 그녀에게 폐쇄음으로 딱 하고 끊어지는 이름은 신기하게 느껴지겠지.

“선에는 여러 가지 뜻이 있습니다.”

선宣, 선禪, 선善, 선禪, 선仙, 선璇. son도 되고 sun도 된다. 좋은 뜻이 많은 이름이 선인 것이다.

거기다 남자에게도, 여자에게도 이상하지 않은 이름.

그렇다면 이 아이의 이름은 환선이 되는 걸까.

이엘카타는 환인의 설명에 감격과 행복에 겨운 기분으로 자신의 배에 올려진 그의 손을 살포시 덮었다.

눈물이 살짝 날 것 같은 기분이다. 환영받지 못하고 아이를 지우라는 말을 들을 각오까지 했었는데, 설마 이렇게 좋은 이름을 지어주시다니…….

혈액 순환이 나빠 이엘카타의 얼음장처럼 차가운 손을 자신의 손으로 꽉 잡은 환인은 자신의 심정이 매우 혼란스럽다는 것을 인지했다.

그녀에게 엘위드리스 가문의 이야기를 꺼내야 한다. 하지만 꺼내고 싶지 않다. 그냥 그녀가 살고 싶은 대로 두고 싶은 심정.

이엘카타가 본 전견시대로 엘위드리스를 혼령주로 날려버려도 괜찮지 않을까.

말랑말랑하고 무딘 생각을 이어가던 환인은 즉시 강철같은 의지로 그런 감정을 싹 긁어모아 가슴 깊은 곳에 묻어버리고 입을 열었다.

“이엘. 오늘 당신을 찾은 것은 당신의 임신 소식을 들어서기도 하지만, 당신의 의견을 묻기 위해 서기도 합니다.”

[환인 님, 저는 엘위드리스 가문으로 가겠습니다.]

“…….”

자신이 할 말을 예상했다는 것처럼 돌아온 대답에 환인은 다시 입을 다물었다.

그 모습에 이엘카타는 환인의 따뜻한 손을 두 손으로 잡으며 말풍선에 위상력으로 글을 차분히 적어나갔다.

[전견시를 어느 정도 제어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저의 미래와 선의 미래는 읽을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미래가, 운명이 환인 님의 앞길을 막지 못하도록 막았다는 뜻이겠지요.]

[시일이 지날수록 환인 님과 관계된 이들의 미래 또한 운명의 베일이 드리워질 것입니다.]

[그러기 전에 제가 해야 할 일은, 해야만 하는 일은 엘위드리스 가문을 제힘으로 장악하여 저와 환인 님의 아이에게 물려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가씨……!=

방해되지 않게끔 한쪽 벽에 시립 해있던 로나가 경악한다.

[미안해요, 로나. 당신의 마음은 알지만, 저 또한 뜻을 정하였으니 말리지 말아주었으면 좋겠어요.]

=…….=

[하지만 당신은 엘위드리스로 돌아가면 위험할 수 있으니, 트라프로넨 영성님께 부탁드려 당신이 영도에 있을 자리를 마련해놓을 거예요.]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가씨와 아기씨가 계신 곳이 제가 있을 곳입니다. 아가씨야말로 그런 말씀은 하지 말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고마워요. 사실 로나도 함께 가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

환인은 이엘카타와 로나를 보며 마음 한구석이 불편해져가는 것을 느꼈다.

[전견시를 익힌 저는 엘위드리스에서 누구보다 가주직에 걸맞는 자격을 갖추었다고 자부합니다. 여기에 환인 님의 아이까지 있으니 설령 원로가 살아있다하더라도 제게 자격 없다 매도 하지는 못하겠지요.]

“이엘.”

[그러니 환인 님, 엘위드리스 가문의 일은 부디 저에게 맡겨주세요.]

환인은 이엘카타가 보여주는 단호하면서도 강인한 모습에 말을 더 붙이지 못했다.

임신한 이엘카타와 함께 밤을 보내기 위해 잠깐 집에 다녀오겠다는 말로 저택에 돌아온 환인.

실상은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아야빗 영성과의 약속 때문이었다.

=흐음. 그렇게 된 건가~.=

탄력 넘치는 태닝 운동녀 느낌의 아야빗 영성과 30분에 걸친 뜨거운 결합을 치른 환인은 젊을 적의 탄력을 되찾은 그녀의 수박만 한 젖가슴을 주무르며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의 심적 혼란을 감지한 그녀의 끈질긴 질문에 환인은 여러 가지로 문제없음을 검토한 뒤 이엘카타의 각오를 들려주었는데, 그녀의 미친 과학자 기질을 생각했더니 조금 실수한 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던 것.

그렇다 해도 어차피 아야빗에게 부탁하기 위해서는 경위 정도는 들려주어야 했다.

환인은 자신의 손장난에 체리알만 한 갈색 젖꼭지가 다시 단단해져 가는 걸 느끼며 뒤에서부터 아야빗 영성의 체내로 침투해 들어갔다.

39도 정도 되지 않을까 싶은 뜨거운 속살이 기다렸다는 듯이 매끄럽게 휘감겨온다.

=읏윽…. 후우, 이엘카타 양이 영도에 처음 도착했을 때는 겁많은 새끼 고양이처럼 잔뜩 털을 곤두세우고 있었는데 어느새 강인한 어미 고양이가 되었군요. 전부 성제님의 덕분인가요?=

“제가 한 것은 없습니다. 전부 그녀가 강해졌기 때문이지요.”

스르륵- 쮸르릇-

손바닥을 찌르는 젖꼭지를 강하게 잡아당기며 천천히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하니 그 정도 자극은 견딜 만했던 아야빗이 허벅지와 항문에 힘을 꽉 주며 대답했다.

=가앙…해지는 것도 이유가 있어야 강해지흣…… 강해지는 거예요. 성제님이 아니었다면 언제고 새끼 고양이처럼 오들오들 떨고만 있었겠죠. 오흑! 하으!=

“그래서 말인데, 부탁 하나만 해도 되겠습니까.”

=으으응, 이런 상태에서 부탁인가요? 성제님도 참 나쁜 남자네요. 이렇게 꿰뚫린 상태에서는 거절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요……♡=

키가 2m에 가깝지만, 플뢰가 아니었기에 상대적으로 넓은 동굴을 가진 아야빗은 자궁을 좀 더 힘있게 밀어주길 바라는 마음에 엉덩이를 그의 골반에 바짝 붙였다.

그러자 그녀의 욕망대로 길고 굵은 고기 몽둥이가 더욱 깊이 들어오며 자신의 자궁을 꾸우욱 밀어 올리는 게 느껴졌다.

=하아~♡=

여자로서의 만족스러운 한숨을 내쉰 아야빗이 물었다.

=어떤 부탁이죠? 다소 권한을 남용해서라도 성제님의 부탁을 들어드릴게요.=

“마도구를 네 개 정도 만들어주시면 됩니다. 이엘이 쓸 것과 태어날 아이가 쓸 것.”

=두 쌍을 만들어 달라는 거군요. 어떤 걸 생각하고 계시죠?=

환인은 대답하느라 잠깐 멈췄던 피스톤 운동을 다시 시작하며 생각해두었던 것을 입에 담았다.

그다지 힘이 없는 사람에게 어떤 마도구가 가장 도움이 될까, 마도구에 대해 알게 된 이후부터 쭉 생각해왔던 구성.

두 가지 마도구가 연계하면 시너지를 일으켜 질병 대부분과 독에 면역을 주고 건강까지 확보할 수 있는 개념이다.

피스톤질의 타이밍에 맞춰 아랫입으로 꼭꼭 조여주던 아야빗은 그 개요를 듣자마자 움직임을 멈추고 휙, 몸을 돌려 환인의 위에 올라탄다.

그 움직임에 크게 출렁이는 침대. 그리고 재미있어 죽겠다는 아야빗 영성의 뜨거운 눈빛.

=세상에. 그런 재미있는 마도구라니, 만들 보람이 느껴지겠네요! 아아, 성제님 당신은 정말…… 최고의 남자야…!=

들썩들썩, 아랫입으로 그의 강직한 고기 방망이를 꽉 문 아야빗은 연구에 대한 흥미와 열망, 그리고 자신의 몸에 벌어지는 화학 작용에 대한 쾌감을 느끼며 철퍽철퍽 요란한 소리가 날 정도로 요분질 치기 시작했다.

수박만큼 커다란 젖이 위아래로 격렬하게 흔들리고 활짝 벌려진 허벅지는 그녀의 국부를 고스란히 드러내며 남자를 게걸스레 삼키는 아랫입의 음탕하기 짝이 없는 모습을 내비친다.

얼른 정액을 쭈우욱 빨아들인 다음 연구실로 달려가 마도구를 만들어낼 생각밖에 없는 모습.

환인도 그녀의 허리를 잡고 쿵쿵쿵, 박자를 맞춰 자궁을 올려쳤다.

이엘카타와 먹기로 한 저녁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아야빗을 얼른 보내버릴 생각으로 말이다.

그러한 행동의 성과는 만족스러울 만한 것이어서, 아야빗은 황홀경 속에서 절정을 경험하곤 자궁에 환인의 정액을 가득 담은 채 연구실로 달려갔다.

“…….”

그 후 깔끔하게 몸을 정돈하고 이엘카타를 다시 찾아간 환인은 그녀가 바라는 느낌으로 하룻밤을 보냈다.

같이 목욕탕에 들어가 목욕하고, 하녀들이 차려준 정갈하고 맛있는 저녁 식사를 함께 하고, 넓은 침대에서 한 이불을 쓰며 사랑하는 남자의 품에 안겨 잠드는 하룻밤.

야한 것은 일절 없는 플라토닉한 하룻밤이었지만 심성이 담백하고 순한 이엘카타는 그것만으로 크게 만족해버렸다.

영혼이었다면 그대로 승천해버렸을 정도로.

다음날, 남편을 배웅하는 임신한 새댁처럼 저택 입구까지 따라 나와 손을 흔드는 이엘카타의 모습에 환인은 마음이 복잡해졌다.

시하와 백치령도 지금쯤이면 출산을 마쳤을 텐데…….

‘그녀들을 찾아가는 짓은 하지 말아야겠군.’

이엘카타를 만난 뒤 겪은 동요가 자신의 상상 이상이다.

만약 그녀들이 낳은 아기를 보게 되면 자신이 니오네브레스에서 이뤄야 할 목표가 흐지부지될 가능성도 있다.

그럴 수는 없다. 자신이 묻힐 자리는 부모님의 묘 옆이라고 부모님의 장례를 치르며 결정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구로 반드시 돌아가야한다.

자신의 아이를 낳은 여자들을 지구로 데려간다는 방법이 있지만, 그게 몇 명까지 가능한지도 모르고 무엇보다 그 여자들은 나 자신보다 자기 신분과 환경을 선택한 여자다.

따라오라고 해서 따라올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그게 아니더라도 머리 위에는 진수가 살아가고 땅 밑에는 마수가 살아가며 언제 무슨 불합리한 사고가 터져 다 죽을지 모르는 이런 세상은 공짜로 살게 해줘도 사절이다.

《이엘이 먼저 엘위드리스로 가겠다고 이야기를 꺼내다니…….》

“그러니 대성녀님께서 이엘과 메리아놀 사이에 서서 잘 중재해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필령궁을 찾아 대성녀에게 어젯밤 있었던 일을 전해준 환인은 다시금 부탁을 입에 담았고, 대성녀는 찻잔을 든 채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심려치 말고 소녀에게 맡기시오. 성제가 부탁한 것은 반드시 들어줄 터이니. 그럼 이제 돌아가시는 건가?》

“예. 아드지로 내려가 하얀 늑대들을 본 뒤 팔라툼으로 복귀할 겁니다.”

《거인들은 만나지 않을 생각이시오? 그냥 가버리면 주술사가 무척이나 슬퍼할 텐데.》

“제가 떠난 뒤에 이 편지만 전해주십시오.”

하룻밤 사이 다시 날씬한 몸이 된 대성려는 손바닥만 한 서신을 받아들곤 환인의 얼굴을 바라보다 약간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

《인기 있는 남자란 참 고생이겠소. 신경 써야 할게 하나 둘이 아니니……. 배웅은 하지 않을 테니 조심해서 돌아가시길 바라오.》

“대성녀님도 건강하시길.”

영도의 최고 권력자이자 최고 인격자에게 부탁해놓았으니 이엘카타가 메리아놀로 돌아가더라도 당장 큰 일은 벌어지지 않겠지.

중앙 협의회도 자신의 아이를 데리고 들어간 이엘카타를 건드리는 짓은 하지 않을 거다.

그녀를 해친다면 자신을 적으로 삼게 되는데, 거의 완성된 유일 직업자를 적으로 돌리는 것은 어느 한 국가와 척을 지는 것과 다르지 않으니까.

척을 진다해도 괜찮다.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이 펼쳐질 뿐이니.

문제라면 그런 일이 벌어질 경우 이엘카타와 아이가 죽게 된다는 것.

“…….”

대성녀와 작별한 환인은 복잡한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한 채 필령궁을 나와 아르핀과 이아라를 찾아갔다.

언제 또 돌아올지 모르니 그때까지 저택을 잘 부탁한다고 격려한 뒤 아드지의 유흥 거리로 내려간다.

쿠우~?

“……아무것도 아니다. 조금 생각이 많아졌을 뿐이니까.”

ㅂ흥. 복잡하게 생각하지마. 지금 너한테 뭐가 중요한지만 생각해.ㄱ

“그러지.”

대답은 쉽게 했지만 그게 가능할까. 환인은 자신의 마음 속에 벌어지는 이상 현상에 좀처럼 적응하지 못한 채 하얀 늑대들이 주둔하고 있다는 술집을 찾아간다.

시선을 잡아끌지 않도록 그리모암의 강력 효과를 종료하고 인식 저해 후드망토에 외형 변화 마도구를 써 갈색 머리의 하프 플뢰로 변장한 상태.

밀짚색으로 깃털 색을 바꾼 비상을 타고 누구의 시선도 받지 않으며 양조장이 바로 옆에 붙어있는 주점을 찾은 환인은 예상 밖으로 본격적인 주점의 모습에 작게 감탄했다.

양조장에서 흘러나오는 술의 향기도 제대로였고 술집도 입식과 좌식으로 제대로 나뉘어 있다.

바의 뒤쪽에는 술병과 술잔으로 가득한 고풍스러운 찬장이 길게 늘어서 있고 벽도 휑해 보이지 않게끔 각종 인테리어로 꾸며져 있다.

주정뱅이들이 아무렇게나 마시는 술집이 아니라 술맛을 아는 손님을 받는 전문 주점 분위기.

주점 내부에는 일곱 명이 있었는데 두 명의 바텐더는 바 안쪽에서 술잔을 씻거나 바를 닦거나 하고 있고 다섯 명의 종업원은 홀에서 의자를 테이블 위에 올린 채 열심히 주점 내부를 청소 중이다.

“…….”

바텐더도, 종업원도 아영이 가르쳐준 카락스의 암살자 단원과 상급 단원의 인상착의와 같다.

전 카락스의 암살자는 210명밖에 안 되는 조직이다 보니 차기 어금니인 아영도 잡일을 하며 정보를 수집하고 다녔다.

저들도 암살업 외에 다른 직업과 근무 경험이 있을 것이고 그중에 주점 경력이 있는 단원을 배치한 거겠지.

환인은 건성이 아니라 제대로 영업 중인 주점을 잠시 둘러보았고, 그 모습에 카운터에서 유리잔을 닦고 있던 중년의 인우족 여성이 암살자라고는 전혀 안 보이는 푸근한 미소로 입을 열었다.

=손님, 개점은 오후 4시부터입니다. 지금은 장사 준비 중이니 죄송하지만, 나중에 다시 방문해주시겠어요?=

「반경 500m에 이쪽을 주목하고 있는 사람은 없어.」

때마침 안주머니에서 주변 상황을 알려주는 환연의 이야기에 환인은 변장을 풀고 위압감을 확 내뿜었다.

=……?!=

=……!=

“주점 운영을 잘하고 있군요.”

두 명의 바텐더 중 현장 책임자인 인우족 여자 암살자, 구르카는 눈앞의 남자가 누구인지 깨닫고 황급히 환인에게 다가가 허리를 숙였다.

=미, 미처 알아뵙지 못해 죄송합니다.=

자신들의 새로운 주인이 된 남자의 인상착의는 이미 전 단원들이 암기한 상태.

구르카는 이마와 목덜미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듣기로 큰 이빨과 차기 어금니를 포함해 이빨 전원이 덤벼들었다가 박살 났다고 했다.

신분에서부터 능력까지 자신들과 비교할 수 없는 강자. 거기다 성격도 포악하겠지. 일부러 이빨들을 팔라툼까지 불러들여서 전부 박살 내버렸을 정도니까.

“괜찮습니다. 알아보지 못하라고 정체를 숨기고 왔는데 알아보는 것이 이상한 일이니까요. 지배인을 보고 싶습니다만, 어디에 있습니까.”

자신의 실수에 자칫 목이 달아나지 않을까 긴장한 구르카는 예상 밖의 이야기에 약간의 당황과 안심을 드러내며 환인을 카운터 구석의 안쪽 방으로 조심히 안내했다.

=이, 이쪽입니다.=

구석 안쪽 방은 평범한 상담실이었다.

책상 하나에 의자 넷, 삭막해 보이지 말라고 구석에는 꽃병도 장식되어있고 그림도 걸려있으며 한쪽 벽에는 창문까지 붙어있어 밝은 햇살이 들어와 상담실을 밝게 비춘다.

여자의 감성이 묻어나는 내부 배치다.

=저쪽 문을 열고 들어가시면 지배인님이 계십니다. 그럼…….=

자신은 거기까지 들어갈 자격이 없다는 듯이 벽 한쪽에 난 문을 가리킨 구르카는 정중히 허리를 숙인 뒤 돌아나갔다.

“…….”

환인의 시선이 상담실 내부를 가만히 훑는다.

함정도 없고 습격자를 대비한 흔적도 안 보인다. 정보 집단의 아지트인데 이래도 괜찮은 건가.

정신을 집중하자 벽 너머로 익숙한 기척이 느껴진다.

팔라툼을 찾아왔던 이빨 중 임시 큰 이빨이라 자길 소개했고 현재는 하얀 늑대들을 이끄는 늑대 우두머리인 엘미느라는 조인족이다.

문에 다가가 똑똑 가볍게 노크하며 안으로 들어서자 예상대로 허리 부근에서 기다란 검은 날개를 평범하게 늘어트린 채 서있던 엘미느가 한쪽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숙인다.

=하얀 늑대들의 우두머리, 엘미느가 성제님을 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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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매우 기품있는 한 독자님의 요청에 글쟁이는 안타까움의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습니다.

림잡이라니... 3p, 4p도 짐승같다고 꺼리는 우리 씹선비 주인공은 그런거 안하는데 ㅠㅠ

전전작이었으면 후까시 쌉가능이지! 하면서 히로인들 가로로 다 엎드리게 해놓고 레로레로레로했을텐데 말입니다..

글쟁이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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