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궁기담-626화 (626/813)

627 이엘카타 오운 엘위드리스

3시간에 걸친 질펀한 교접이 끝났을 때 대성녀는 임신 4개월처럼 배가 부푼 상태였다.

전부 내장을 채운 환인의 정액 때문이었다.

영기가 가득 담긴 정액 때문에 그녀는 속이 좀 더부룩했지만, 영기가 가득 담긴 정액은 그녀에게 천고의 영약이나 다를 바 없다.

대성녀는 임신한 새댁처럼 자신의 배를 쓰다듬으며 환인의 뜻을 존중해주었다.

《소녀는 성제의 의견을 반대할 생각이 없소. 이엘, 그 아이가 엘위드리스 가문으로 떠나겠다면 보내줄 따름. 다만 그 아이는 영도를 떠나더라도 영혼사, 그 아이를 호위할 기사를 엄히 선별하여 붙여줄 터이니 성제는 뜻하는 바를 이루도록 하시오.》

“대성녀님의 호의에 감사하며 그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오는 길에 이러한 일이 있었는데…….”

비상을 타고 날아오던 도중 야미오코와 만나 싸웠다는 걸 알려주자 닌실은 물론이고 3p를 즐기며 엉망진창이 되었던 겉모습을 다시 치장해 청순가련한 모습으로 돌아간 샤스라도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야미오코라면 추정 8급의 진수가 아닙니까. 그걸 비상과 환연 셋이서 만으로…….=

모를 수도 있어 알려줄 생각을 하고 있던 환인으로서는 진수나 성수가 제법 잘 알려진 게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로 그녀들 또한 야미오코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대성녀가 으음, 신비로운 얼굴을 작게 찌푸렸다.

《그쯤이면 성제를 위협할만한 무력은 국가 단위의 군대와 몇 안 되는 신수, 초월자들 뿐이겠군.》

“아무튼 비늘 가죽은 팔라툼에서 운송해올 겁니다. 도착하면 가공해서 거인족 전사들의 방어구로 제작해 분배해주십시오. 남는 것은 장비가 필요한 영혼 기사들에게 나누어주어도 되겠군요.”

그 이야기에 샤스라는 다시 한번 놀란 소리를 내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매우 뛰어난 마도기로 만들 만큼 귀중한 소재이니 돈으로 환전하면 큰 이득이 남을 것입니다. 그걸 무료로 배포하신다니…….=

“괜찮습니다. 방어구를 지급받은 이들이 강해질수록 영도도 안전해질 테니까요.”

《성제의 말대로 재산은 쉬이 불릴 수 있으나 민심과 충의는 사기 어렵지. 성제가 보낸 방어구라 하면 그들의 충성심은 더욱 높아질 터, 몇 푼의 돈으로 충심을 살 수 있다 하면 아깝지 않은 일이다.》

대성녀의 지도자적인 사상에 샤스라는 아, 작은 탄성과 함께 고개를 주억였다.

뜨겁고도 긴 접견을 마치고 대성녀실을 나온 환인은 샤스라도 하얀 법복 차림으로 뒤따라 나는 것을 보았다.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한 태도에 잠시 그녀를 기다려주었더니 다소곳이 모은 손으로 함께 걸을 것을 부탁받은 환인.

그녀와 보폭을 맞춰 필령궁의 아늑한 복도를 느긋하게 걷고 있으니 샤스라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성제님. 메리아놀에 관하여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먼저 지금부터 드리는 말씀은 전부 추측임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혹, 기분 나쁘시다면 언제라도 제 이야기를 끊어주십시오.=

“…….”

=성제님의 안위를 기원하기 위하여 외교통상기관의 힘으로 국제 정세의 흐름을 조사하여보았습니다. 그러다 알게 된 것이 있사온데, 혹 성제님께서는…… 여타 차원 방랑자들과 달리 메리아놀의 술법 집단에게 강제로 소환되신 것이 아니십니까?=

샤스라는 대답 없이, 분위기의 변화 없이 계속 듣고 있는 환인에게 말을 이었다.

=그 집단의 주문 실패로 성제님께서는 위험한 6급 삼림형 미궁에 떨어졌으며 죽을 고비를 넘겨가며 탈출하신 것이며, 메리아놀로 향하는 이유도 그 원흉을 찾기 위해서라고 추측했습니다. 흉수를 찾아 복수하기 위해서…….=

“가야 시라넬의 행동이 성녀님에게 단서를 주었나 보군요.”

그의 조금 차가운 대꾸에 샤스라는 황급히 말을 덧붙였다.

=시라넬 영애의 언행은 흠잡을 데 없었습니다. 그저, 제가 성제님의 행적을 잘 알고 있었기에 유추해낼 수 있었던 것뿐이니까요.=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습니다. 저에 대한 제반 지식을 가진 자가 가야 시라넬과 대화하면 그런 사실을 짚어낼 수 있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샤스라는 입을 다물었다.

생각해볼 것도 없이 당연한 이야기다. 외교기관만큼의 정보 수집 기관이 다른 나라에 없다고는 보기 어려우니까.

자신 정도 되는 정보 처리 권한을 가진 고위 인사라면 충분히 짚어낼 수 있는 부분.

환인의 목적이 메리아놀의 무력 한 축이라는 사실이 알려진다면 국제 정세는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로 빨려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의 지적에 잠깐 굳어있던 샤스라의 귀로 환인의 이야기가 흘러 들어간다.

“정찰 부대를 이끌고 있다기에 신뢰를 주었는데 아무래도 부적합한 인재 등용이었나 봅니다. 연락해서 정보 수집은 중단하라 해야겠습니다.”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성제님 말씀대로 하는 것이 그녀에게도 다행이겠어요.=

환인이 마왕으로 변하지 않게끔 대성녀와 함께 다방면으로 힘을 쓰고 있던 샤스라는 환인이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지 내심 느끼고 있었다.

바로 옆에서 그를 향해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는 대성녀가 없었다면 그를 향한 두려움을 품어버렸을지도 모르는 일.

차가워진 손가락 끝으로 자신의 뺨을 감쌌던 샤스라는 그와 함께 다시 걸음을 옮기며 본론을 꺼내 들었다.

=성제님께 드리고자 하는 이야기는, 메리아놀의 사절에게 여타 암살 시도에 관한 보상 대신 반 무제한적인 1회 소원권을 요청하라는 것입니다.=

“…….”

그녀가 무얼 말하는지 그 의도는 짚어냈다. 하지만 환인은 그리 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싶었다.

야미오코와 싸우면서 환인도 체감했다. 자신이 제대로 힘을 낸다면 규정 이상이라고.

팔라툼을 떠나면 차례대로 미궁을 찾아 돌파하며 심핵력을 쌓을 예정이다.

심핵력이 쌓일수록 힘은 더욱 강해질 것이고, 청옥을 모으면 공격 횟수도 증가할 테지. 영기는 아랫배에 문인을 새긴 여자친구들과 교접으로 지금도 꾸준히 늘고 있다.

미궁 안에서는 그러한 광범위 공격이 불가능할 경우도 있을 테니까 여자친구들이 필요하지만, 바깥에서 비상과 함께라면 군대가 몰려와도 두렵지 않다.

그 순간 환인은 자신의 사고가 힘에 의존한 해결 방법을 추구하고 있단 사실을 깨달았다.

이게 힘에 취해 힘을 휘두른다는 건가.

대성녀와 소성녀를 안으며 발생한 현자 타임에 환인은 정신머리를 고쳐먹었다.

‘국가를 적으로 돌리는 건 멍청한 짓이지. 내가 모르는 공격 수단과 저주가 없을 리도 없고.’

마력과 위상력이 존재하는 세상, 개인이 단체를 뭉개버릴 정도로 힘의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세계.

이런 세계임에도 국가 기반이 유지되고 있다는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다.

환인은 조금 굳은 안색을 풀고 부드러운 어조로 샤스라에게 말했다.

“조언 고맙습니다. 돌아가서 여자친구들과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저의 마음을 알아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예하.=

샤스라는 필령궁 입구에서 떠나가는 환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조금 서글퍼졌다.

여자친구들……. 자신과 대성녀님은 그 ‘여자친구’의 범주에는 들어가지 못한 것일까.

지금도 아랫배를 채우고 있는 정액이 느껴진다. 그에게 수없이 강타당한 자궁의 욱신거림도.

좀 전까지 그의 품에 안겨 느꼈던 열락을 떠올렸던 샤스라는 마음을 잠식하려는 우울과 서글픔을 떨쳐내고 그의 뒷모습을 향해 공손히 허리를 숙였다.

「환인. 샤스라가 허릴 숙이고 있어.」

품 안에서 환연이 속삭이는 말에 환인도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래.”

「괜찮아? 저렇게 딱 끊어내는 거. 그냥 적당히 꿀 바른 말로 ‘너도 내 여자다’하고 속삭여주면 너한테 간도 쓸개도 다 빼다 바칠 텐데.」

“여자를 그렇게 얕보지 마라. 곁에 있어 주지 못하는 남자 따위는 애증의 대상일 뿐이지. 더욱이 그녀는 대성녀를 사모하고 있다. 입에 발린 말은 적의를 키울 수도 있어.”

자신과 닌실, 샤스라의 관계는 한여름 밤의 꿈처럼 나누는 게 위기관리 측면에서 현명한 행동이다.

먹고 버리는 것이 아닌, 서로 주고받으며 가볍게 즐기는 관계 말이다.

「그런 의미라면 시하하고 백치령하고 이엘카타도 그래? 네 아이를 뱄잖아.」

“아이를 가졌다 해서 내가 책임져야 할 이유가 있나. 그건 그녀들의 선택이었다.”

마법… 아니, 술법이 존재하는 세상이다. 후유증 없이 애를 떼버릴 방법은 얼마든지 있겠지. 시하=사이지=위르트와 백치령은 그런 술법을 손쉽게 넣을 수 있는 높은 신분이고.

물론 임신시킨 남자로서 어느 정도 선을 두고 해야 할 일은 할 것이다.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보낸 것이 프라버와 헬루멘에 보낸 농업, 어업의 힌트였으니까.

「……여자친구들은 달라?」

“그녀들은 특별하지. 돈과 명예를 얼마든지 쥘 수 있음에도 오직 나만 보며 따라오는 아가씨들이니까. 물론 너도 마찬가지다.”

「흥…… 말은 뒤지게 잘해, 이 색남.」

환연이 안주머니 속에서 톡, 가슴을 때리는 느낌에 환인은 웃음을 머금었다.

그녀가 부끄러워하는 것을 느낀 것이다.

그렇게 서서히 노을이 지고 있는 거리를 걸어 찾아간 이엘카타의 작은 저택.

작다고 해도 방이 8개나 되는 이층집이다.

영도의 예지가라는 신분 덕분에 필령궁과 가까운 저택을 배정받은 이엘카타, 담 너머로 여러 종류의 수목과 꽃이 예쁘게 자라있는 정원이 시야에 들어온다.

플뢰족인 그녀의 심성이 정원에서부터 드러나는 느낌.

그녀의 분위기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서정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정원을 구경하며 입구를 향해 걸어가고 있으니 저택의 문이 뽈칵- 열리며 만삭의 임산부복을 입은 이엘카타가 뛰어나왔다.

그 뒤를 따라 당황해하는 여자 세 명이 뒤따라 나왔지만, 이엘카타는 아랑곳하지 않고 환인을 향해 환한 미소를 지은 채 어미 펭귄처럼 뒤뚱거리며 다가온다.

임신 부종 때문인지 얼굴이 조금 통통해진 게 귀여워진 이엘카타의 그 미소에 환인도 살짝 웃음 지으며 훌쩍, 담을 뛰어넘어 그녀를 향해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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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새해의 시작을 야설로 시작하는 글쟁이가 있다? 뿌슝빠슝☆

미궁기담을 시작하고 두 번째 맞이하는 새해입니다!

미궁기담을 아껴주시고 응원해주신 수많은 독자님들께 감사 인사 드리며!

독자님들 모두 올 한해 복 많이 받으시고 가는 곳마다 좋은 일 있으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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