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궁기담-622화 (622/813)

623 영도 에쉬누르

623 영도 에쉬누르

환인도 만족하고 자신들에게도 도움이 될 거래 안을 테이아무스 섭정이 짜내고 있을 때 이실리테와 유르파, 아영 셋이 도착했다.

소식을 듣자마자 쿠르티와 쿠핀과 쿠라를 타고 전력으로 달려온 모양새로 쿠에들이 혀를 내밀고 헐떡인다.

=주인님!!=

=자기!=

여자들은 테이아무스 섭정에게 서둘러 예를 올린 뒤 환인을 살폈다.

통신할 때 다친 곳은 없다고 들었지만,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 안심할 수 있었기 때문. 그 때문에 아영을 끌고 온 게 아니던가.

“왔군. 안느와 백려강은?”

=안느와 려강은 팔라툼 왕실에 조력을 청하러 천왕궁으로 향했어요. 그런데 섭정님이 여기 계시네요…….=

=오빠, 잠깐만요.=

아영이 증표를 들고 인지하지 못한 신체 내부 상처와 상태 이상을 대비해 고위 치료, 고위 질병 해제, 고위 독 해제, 고위 마력 저항 상승, 고위 저주 해제의 성법을 걸어준다.

급이 높은 괴물일수록 싸운 뒤의 처리와 대응도 중요한 법이다.

고대 유적지 미궁의 다두사多頭蛇와 싸운 어느 직업자가 한밤중에 잠복해있던 독이 발동, 쥐도 새도 모르게 사망한 사례는 유명하니까.

환연과 비상도 무사한 걸 확인한 유르파가 그제야 웃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휴우, 겨우 안심했어.=

“통신으로 괜찮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걱정이라는 게 어디 마음대로 되니? 더군다나 하늘에서 수백 킬로미터짜리 괴물이 떨어지는 걸 직관까지 했는걸.=

그러더니 야미오코를 돌아보며 작게 혀를 내두른다.

=그런데 와, 가까이서 보니까 더 굉장하네…….=

=주인님, 저 괴물은 몇 급인가요?=

“대공의 말씀으로는 8급 진수라더군.”

=그럼 일반 이형종으로 치면 9급에서 10급인 거네요?=

=그렇지 않겠니? 성수나 진수는 마수나 괴수보다 한 단계 윗줄로 치니까. 그런데 자기, 진수가 왜 가죽만 남았어? 뼈랑 살이랑 피랑 내장은?=

=그러고 보니 크기도 더 작아졌슴다. 도시에서 봤던 건 진짜 무지막지하게 길었는데요.=

떨어지는 진수를 발견하곤 도시에서 난리가 났었을 정도라며 고개를 갸웃하는 아영.

“구름 속에서 사는데 최적화된 몸체인지 땅에 떨어지고 몇 초 후부터 기체로 변해 사라지며 크기도 줄어들더군요. 목을 잘랐더니 피 대신 푸른 연기 같은 게 흘러나오던데 아마 비슷한 연유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피 대신 연기? 마력혈?! 아아!=

극심한 안타까움을 드러내며 머리카락을 와락 움켜쥐는 유르파의 행동에 그게 보통 값어치가 아니었음을 환인도 깨달았다.

그건 계산을 끝낸 테이아무스 섭정도 마찬가지였다.

=그 피가 유용한 가공 소재였나 봅니다.=

=아…… 그렇사옵니다. 혈액으로 액체 대신 기체를 사용하는 존재는 생명이라는 테두리를 초월한 존재를 의미합니다. 천사의 광혈, 악마의 시혈, 그 외 초월 개체들의 매혈 같은 것 말이옵니다.=

혈액에는 힘이 담겨있으며 그 혈액과 힘은 심장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혈액은 힘을 온몸으로 전달했다가 도로 심장으로 모으는데…….

=액체 상태보다는 기체 상태가 몇 배나 순환에 빠르며 힘의 전달 및 손실도 액체보다 매우 뛰어나옵니다. 마력혈을 쓰고 있다면 기타 장기와 근육도 그에 걸맞게 변화하기에 보통 생명체를 능가하는 신체 능력을 보여주는 법, 그런 마력혈을 특수처리하여 사용하면 마도구나 마도기의 성능과 질을 크게 끌어올리기에 매우 희귀하고 중요한 재료로 취급되옵니다.=

=그런 것이 증발해버리다니, 안타까운 일입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사옵니다. 마력혈을 다루는 데에는 전문 부여술사와 전용 도구가 필요하니까요.=

유르파의 설명이 이어질 동안 괴물보단 환인을 선망과 존경이 담긴 시선으로 바라보던 이실리테가 그의 옆에 살짝 붙으며 물었다.

=주인님. 위상석이 있는지 확인하셨어요?=

“아니. 너무 커서 직접 찾으려니 엄두가 나지 않더군. 네가 찾아봐 주겠나.”

=네. 아영, 가자.=

=옙! 근데 오빠 너무 무방비하신 거 아니심까? 진수의 위상석이 저 안에 있을지도 모르는데 딴 놈들이 가까이하게 두시고…….=

=주인님이 그런 생각도 안 하셨을까? 주인님의 것에 허락 없이 손대는 인간은 대체로 다 죽…….=

빠르게 멀어지며 나누는 둘의 대화에 테이아무스는 식은땀이 등골을 따라 흐르는 걸 느꼈다.

대체로 다 죽…… 뭐? 다 죽인다고? 아니면 다 죽게 된다는 이야기?

2주도 전에 그의 진면모를 일부나마 보았던 그녀다. 그때 느꼈던 두려움은 지금 와서 조금 희석되었지만, 아직도 심장 한쪽에 도사리는 중이었는데 두 영혼 기사의 대화에서 그날의 두려움이 플래시백 된다.

‘천공기사단을 데려와서 다행이야.’

일반 병사들이었다면 어마어마한 욕심에 눈이 돌아가 일을 저지를 수도 있지만, 전부 귀족인 기사들이라면 그럴 걱정이 없으니까.

후유, 속으로 작게 숨을 내쉰 테이아무스 섭정은 두 손을 모아 가슴 밑에 대고 살짝 허리를 숙였다.

=예하, 이곳에서는 이야기를 나누기 적합지 아니하다 생각됩니다. 하여 시간을 내주시어 천공성을 방문해주시길 부탁드려도 될까요? 그때, 예하께서 만족하실만한 답변을 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야미오코의 날개 한 쌍과 가죽의 1/20을 드리지요.”

=그렇게나 후하게…….=

“남은 부위는 영도로 수송해주시길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저는 일개 영혼사다 보니 믿을만한 인맥이 없는지라.”

테이아무스는 그게 수송비까지 포함된 가격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비늘 가죽의 수송 관련 뒷일은 유르파에게 맡기고 환인은 다시 비상의 등에 올라 영도로 향했다.

멍청하다면 욕심을 부리겠지만, 그녀는 멍청하지도 않고 자신의 내면을 일부나마 보고 두려움을 품었던 테이아무스 섭정이다.

어리석은 선택은 하지 않을테고 사고를 저지를만한 인선을 고르지도 않겠지.

만약 저지른다면 그것도 좋은 일이다. 그때 가서 뒤집어버린 뒤 손해배상청구와 위자료를 받아내면 되는 일이니까.

구름도 끼지 않은 맑고 청명한 하늘을 가로지르며 지상을 내려다본다.

지상 가득 펼쳐진 끝없는 초원. 그리고 간간이 시야에 들어오는 숲의 경치. 최고급 경비행기를 타고 관광하는 기분이다.

잠시 지상의 풍경을 감상하던 환인은 비상에게 비행을 전부 위임하고 야미오코와 싸울 때의 경험을 복기했다.

‘역시 현재 가장 급선무인 것은 청옥의 숫자 확보군.’

회옥과 청옥은 일단 위력에서부터 크게 차이 난다.

회옥, 6급 이형종의 회색 구슬을 100으로 기준 잡으면 청옥은 약 150, 흑옥은 약 190 정도로 위력에 차이가 벌어지는 느낌.

6급 미만이면 점점 위력이 내려가 3~4급일 경우 70도 채 안 되는 듯하고 정령 구슬의 경우는 80 정도.

위력 차이도 문제지만 사용 후 대기 시간도 큰 문제다.

흑옥인 들개 전사단의 영혼 구슬은 소비하고 7분 뒤에 돌아왔다. 청옥인 아르겐테아 정찰병 영혼 구슬은 소비 후 복귀에 3분이 걸렸다.

이전에 가벼운 공격에 사용했을 때는 더 빨리 복귀했으니, 소비한 에너지의 양에 따라 복귀 시간이 정해지는 거겠지.

야미오코와 전투는 조우하고 6여분 밖에 걸리지 않았으니 적어도 청옥을 100개 정도는 확보해둬야 한 번 전투에 쓸 수 있다는 이야기.

그러나 청옥의 원재료가 되는 청색 영혼은 일반인들 사이에서 구경하기 무척 어렵다. 직업자는 되어야 10명 중 다섯 정도가 될까.

한 번에 청옥을 대량으로 구할 방법은…….

……전쟁.

“…….”

환인의 눈빛이 한순간 서늘하게 빛났다가 원래의 무덤덤한 빛으로 돌아갔다.

그건 어렵지. 시도에 필요한 정보도 방대하고 설령 전쟁을 일으켜 청옥을 대량으로 구했다 하더라도 그게 자신의 짓임이 발각되는 순간, 니오네브레스의 문명 속에서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해진다.

‘미궁을 돌파한 뒤 지구로 귀환해버리면 그만이긴 하지만…….’

문득 아쉬워졌다.

엘위드리스 가문의 내전이 딱 맞는 기회였는데, 진작 알았다면 비상을 타고 날아가서 영혼을 전부 거두어들였을 텐데 말이다.

상대적 입장도 있으니 청옥 계약도 손쉬웠을 테고……?

‘아니, 억울함과 한을 품은 채 죽은 기사들도 틀림없이 있을 거다. 그런 기사들은 비교적 오래 머물겠지.’

하지만 그걸 생각 못 할 사람들이 아닐 테고, 메리아놀을 오가는 영혼사를 불러들여 성불행을 부탁할 수도 있으니…….

환인의 머릿속에 적당한 계획이 구상되고 있을 무렵, 품 안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고 지상을 구경하던 환연이 말했다.

「위상석이 안 나와서 좀 아쉽네.」

“…어쩔 수 없지. 인연이 아니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그것도 그래. 위상석이 생겨날 정도면 강하기도 엄청 강하다고 하니까, 그 하늘뱀이 지금보다 훨씬 더 강했으면 못 이겼을 수도 있겠지?」

“고생은 했겠지만, 죽이지 못하고 놓치는 경우는 있어도 이기지 못한다는 결과는 연상되지 않는데. ”

「와 자신감 좀 봐. 보기 좋아.」

미궁에 귀속된 괴물인 이형종이 아니라 밖에서 살아가는 괴물들, 마수나 괴수, 성수 같은 존재들은 고등급으로 올라갈수록 그에 해당하는 위상석을 몸 안에 품게 된다고 테이아무스 섭정이 이야기해주었다.

외부에서 자연의 기운을 몸에 쌓으며 성장해나가기에 그 기운이 모여 자연스럽게 위상석으로 구성되기 때문이라고.

‘예상하기로 예하께서 사냥하신 야미오코의 경우, 8급에 올라선 지 얼마 되지 않아서가 아닐까…….’

‘…위상석을 등급 성장의 에너지로 소비했다는 말씀입니까.’

‘정확하십니다. 그다지 호전적이지 않다고 알려진 야미오코가 예하를 덮친 이유도 그 이유가 적지 않았으리라 봅니다.’

7급에서 8급으로 올라갈 때 요구하는 막대한 양의 에너지는, 7급으로 살아가며 쌓아 형성해낸 7급 위상석을 써서 충당한다.

그리고 야미오코가 자신을 덮친 이유는 영역 의식도 있지만, 8급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부족한 에너지를 확보하기 위해서였을 거라……고.

환인이 듣기에 합당한 이유여서 위상석에 대한 미련은 금방 미련을 떨쳐냈지만, 요정이면서 속물근성을 버릴 수 없었는지 환연은 계속해서 아쉬움을 드러냈다.

「하지만 자꾸 생각난단 말이야. 섭정이란 여자가 말했잖아. 8급 위상석은 값을 따질 수 없다고. 그거 하나면 유물을 몇 개나 살 수 있을 텐데 당연히 아깝지.」

“아까워한다고 해서 이미 일어난 일이 바뀌지 않는다. 아쉬워해봤자 속만 끓을 뿐이지.”

「어휴. 너 친구 없지? 사람이면 공감력을 좀 쌓으란 말이야! 이럴 땐 나도 아깝다고 맞장구쳐줄 수 있어야 원만한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 거라고!」

“…….”

이제 1살이 좀 넘은 요정에게서 원만한 사회생활이라는 말이 나올 줄이야.

환인은 피식 웃으면서 계속 찡찡거리는 환연에게 제안했다.

“알았다. 알았으니 적당히 해라. 도시로 돌아가면 네가 먹고 싶어 하는 디저트를 전부 사줄 테니까.”

「진짜지? 약속한 거다?」

꾸우!

“그래. 비상 너도 먹고 싶은 거 마음껏 먹게 해주마.”

뀻~!

둘 다 야미오코를 잡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으니 먹는 것 정도는 하나도 아깝지 않다.

얻은 부산물도 막대한 가치지만, 그보다 속이 후련해진 게 더 좋았던 환인이었으니까.

그즈음 영봉 알노르와 영도 에쉬누르가 지평선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기에 환인은 비상에게 점차 고도를 낮추라고 지시했다.

이대로 영도엘 들어가도 되지만, 자신의 신분이 신분인 만큼 정식 경로로 입장하는 것이 이미지에 도움이 될 테니까.

그러나 딱히 성벽이라는 게 없이 사람들이 모여 만들어진 도시 특성상 검문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존재하는 것은 무수한 순례자들의 시선.

도시 가장자리에서 자연스럽게 시작되는 대로 끝에 내려서자 환인의 귀에 사람들의 수군거림이 닿기 시작했다.

=우와, 저 사람 아우라 좀 봐. 뭐지?=

=……성제님 아냐?=

=무슨 말이야. 성제님은 아우라가 없으시…잖…… 잠깐, 설마…….=

=녹색 쿠에를 타시고 검은 머리에…… 맞으신 데?=

환인이 속으로 이름 붙인 거대한 팬클럽의 도시라는 명칭답게 대로가 시작되는 부근에는 노상 카페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고, 그곳에는 열성 순례자들이 매일같이 자리 잡고서는 도시를 출입하는 영혼사들을 지켜본다.

연예인들이 오가는 방송국 앞에 자리잡은 열성팬들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들은 전부 수백 킬로미터, 수천 킬로미터를 이동해 영도에 도착한 사람들.

금전적이든 육체적이든 능력은 충분하며, 그 거리를 무사히 도착했을 정도로 눈썰미가 보통이 아니다. 거기에 영혼사들에 대한 개개인의 지식 또한 훌륭하다.

이른바 생체 CCTV인 거다.

=성제님 맞지?=

=성제님이야!=

=성제님 맞아!!=

우와아아아아악—!!!

성제님 만세—!!!

와아아아아아아……!!!

꾸?!

타박타박 대로를 걸어가던 비상이 화들짝 놀랄 정도로 어마어마한 함성과 환호성이 쏟아졌다.

그들의 기억 속에는 수십 명의 거인이 영혼 기사들을 이끌고 위풍도 당당하게 아드지에 들어서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다.

거기다 며칠 전에는 팔라툼에서 보낸 막대한 양의 식량이 무려 ‘1차분’이라는 이름으로 도착하지 않았던가.

더군다나 거리에 흐르는 소문에 따르면, 니오네브레스 3대 암살 집단 중 하나이자 ‘의로운 도적’으로 통칭하는 카락스의 암살자가 무슨 무슨 늑대들이라는 이름으로 개명한 뒤 영도의 그림자 정보 집단이 되었다고도 한다.

이 모든 게 성제 한 명이 이뤄낸 업적이다. ‘순례자들의 쉼터’ 아드지에 머무는 사람들에게 성제는 이미 살아있는 우상이자 신화 그 자체였던 것.

「우와아……. 광신도 같아.」

품 안에서 환연이 질렸다는 듯이 중얼거린다. 환인도 그 감상에 일부 공감했다.

진짜 광신도라면 떼지어 몰려들어 길을 막고 환호했겠지. 막 손을 대려고도 하고.

하지만 저들은 절대 대로 안으로는 들어오지 않고 잘 포장된 인도 가장자리에 모여 열광하고만 있었다.

……와아아아아악……!!!

약간의 쇼맨십을 겸해 그들에게 살짝 손을 흔들어주고 평온의 파동을 펼쳐준 환인은 귀가 찌잉— 할 정도로 터져 나온 함성에 살짝 기함했다.

「환인! 쟤들 자극하지 마! 우리 덮치면 어쩌려고 그래!」

그러면 날아서 가버리면 그만이지만, 윗옷을 벗고 젖가슴을 출렁이며 옷을 흔드는 루크랑족 여자를 보니 이 이상 자극하는 건 곤란하다는 생각이 든다.

“집에 들러서 아르핀과 이아라를 보고 갈까 했는데 이래서는 불가능하겠군.”

인파들이 8차선 도로만큼이나 넓은 인도를 가득 채우며 따라오고 있다. 와중에도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고 대로변의 건물 2층, 3층에서도 창문을 열고 소릴 지르는 사람투성이.

골목으로 들어갔다간 축복회라는 게 벌어져 하루종일 잡혀있어야 할 각이다.

=서, 성제님!=

=성제 예하!=

소란을 들어서일까. 지역순회기관의 영혼 기사들이 말이나 쿠에를 타고 헐레벌떡 달려와 그의 주변을 에워싸듯 호위하기 시작했다.

개중에는 눈에 익은 사람도 있었다. 거인숲 미궁까지 찾아왔던 기사들 중에 한 명.

=지역순행기관 제67순찰부대의 부대장, 리노혼이라고 합니다. 지금부터 성제님을 수행하겠습니다!=

“거인숲 미궁 앞에서 뵜던 분이시군요. 부탁합니다.”

환인의 아는 체에 가슴이 순간 두근거린 코뿔소 머리 루크랑족 남자는 어깨를 쫙 펴고 크흠! 헛기침을 크게 냈다.

=저, 그런데 직속 영혼 기사님들과 함께 오시지 않으셨습니까? 어찌 홀몸으로 오셨는지…….=

“그녀들은 팔라툼에서 맡은 일을 수행 중입니다만. 문제가 됩니까.”

=아닙니다! 어찌 문제가 되시겠습니까. 제 걱정은 성제님 같은 분께서 홀로 다니시는 것이라서…….=

만약 호위 기사가 없다면, 부족하게 느껴지겠지만 지역순회기관에서 긴급히 호위할 영혼 기사를 알선해 주기 위해서였다는 이야기였다.

조금이라도 일찍 이야기해야 최상위 영혼 기사 후보들을 더 빠르게 모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괜찮습니다. 저도, 비상도 나름 한 실력을 하니까요.”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축제 퍼레이드가 아닌가 싶을 만큼 소란스러움 속에서 오름길을 오른 환인은 신분 확인을 거친 뒤 기동 승강기에 탑승, 순식간에 영도에 도착했다.

기동 승강기 앞까지 수행했던 기사들은 이미 복귀한 상태.

작년에 찾아왔을 때처럼 고요하고 엄숙한 분위기의 영도를 돌아보며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하던 환인은 저쪽에서 두 소년 소녀가 허겁지겁 달려오는 것을 발견했다.

하얗게 보이는 느낌의 은색 여우머리 소년, 그리고 은색 여우 귀를 쫑긋 세우고 은색 머리카락을 양 갈래로 곱게 땋은 미소녀.

아르핀과 이아라, 영도에 마련해둔 자신의 저택 관리자 소년 소녀다.

=성…자님! 하악, 하악!=

=헤엑, 헤윽. 헤으으…….=

잘 먹고 열심히 살아서일까. 헤어질 때는 6~7살 남짓해 보였는데 지금은 10살로 보일 만큼 부쩍 커졌다.

아르핀의 경우에는 여자친구들 중 가장 키가 작은 유르파와 머리 하나 밖에 차이 나지 않을 정도였고, 이아라는 유아에서 미소녀라는 말이 어울릴 만큼 정말 예쁘게 자라있었다.

“많이들 컸군. 잘 지낸 것 같아 보여 다행이다.”

할딱이던 두 남매는 환인의 머리 쓰다듬에 은색 여우귀와 은색 여우 꼬리를 파닥거리고 붕붕 흔들며 기뻐했다.

=성자님을 도와드리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했어요!=

=저도예요……!=

“잘했다. 일단 집으로 갈까.”

=넵! 앞장서겠습니다!=

=네…!=

헤어질 때 보여주던 약간 소심한 성격도 그사이 고쳤는지 아르핀은 건강하게 활달한 느낌이고 이아라도 조금 수줍어하지만 제 할 말을 또박또박하는 모습.

그렇게 도착한 영도의 자택, 전에 머물렀을 때 소유하기로 했던 중세 성당 풍 저택은 정말로 깔끔했다.

잔디는 보기 좋게 가지런히, 싱그러운 모습으로 자라있었고 담장 주변을 따라 심어진 나무들도 계속 손질받은 것처럼 가지런하다.

집 주변은 물론 집안에도 먼지 한 톨 없이 청결해 바닥을 굴러도 옷에 먼지 하나 묻지 않을 정도.

오면서 남매에게 듣자 하니 낮에는 영도의 저택에 머무르며 집을 관리하는 동시에 공부도 하고, 저녁에는 아드지로 내려가 아드지의 저택을 고용 하녀 한 명과 함께 관리한다고.

영도의 저택은 전면적으로 남매가 노력해서 가꿨다는 이야기였다. 하루도 빠짐없이.

환인은 칭찬을 바라는 것처럼 몽실몽실한 여우 꼬리를 열심히 흔드는 남매의 머리를 다시 쓰다듬어준 뒤 튜티를 불러달라 부탁했다.

그녀라면 필령궁에 연락을 넣을 수 있겠지.

아르핀이 절제된 동작으로 쏜살같이 저택을 나가고, 환인이 소파에 앉으니 이아라는 준비했던 것처럼 은쟁반과 은제 찻잔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차를 내왔다.

=성자님. 호르팃 녹차입니다….=

“…잘 내렸군. 이실리테가 내린 것과 비슷할 정도야.”

=이, 이실리테 언니가 가르쳐준 거예요. 성자님이 오시면…… 내려드리려고 열심히 연습했어요…!=

“그런가. 잘했다.”

=……!=

얼굴을 발갛게 물들일 정도로 기뻐하는 이아라.

환인은 남매를 고용하길 잘 했다고 생각하며 느긋하게 녹차를 즐겨나갔다.

차 시중을 받으며 녹차를 두 잔째 비웠을 때, 갈색 꽁지머리 인마족 미녀가 살짝 상기된 얼굴로 저택에 들어섰다.

하반신이 말인 반半 인마족 아니라 귀만 말인 인마족 처녀. 첫 방문 때 내무기관에서 배정해주었던 하우스키퍼다.

=내정사무기관의 튜티 로아세람이 영도의 성자이신 환인 예하를 배알하나이다.=

“오랜만입니다, 튜티 양. 그보다 그런 극공경의 예는 부담스러우니 이전처럼 평범하게 대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환인 성제님께서 바라신다면.=

머리 위의 말귀를 뒤로 바짝 눕히며 극공경의 예의를 올렸던 튜티는 작게 미소 지으며 공손히 허리를 한 차례 숙였다.

“갑작스럽게 찾아와 오라 가라 해서 미안합니다. 영도에 도착해 대성녀님을 알현해야겠는데 절차를 모르다 보니…… 생각나는 건 튜티 양뿐이더군요.”

=영도는 성제님의 앞마당이며 필령궁은 성제님의 집이십니다. 자신의 집에 허락받고 들어가는 분은 없으시니, 바라신다면 마음 가시는 대로 방문하시면 됩니다.=

“그렇습니까. 제가 너무 예식을 차렸나 봅니다.”

환인의 대답에 튜티는 부드럽게 웃으며 물었다.

=바로 대성녀님을 뵈시겠습니까? 아직 해가 저물지 않았으니 대성녀님께서도 필령궁에 계실 것입니다.=

“예. 잠시 후 찾아뵈러 가겠습니다.”

=그러면 한 걸음 먼저 가 연락을 넣어놓도록 하겠습니다.=

“부탁합니다.”

먼저 저택을 나가는 튜티를 잠시 바라보던 환인은 이엘카타에게도 미리 연락을 넣어놔야할까 짧게 고민했다.

대성녀의 말투를 보면 무언가 할 말이 많았던 거 같은데…… 오래 붙잡혀있는다면 밤이 늦을 수도 있다.

‘오늘 안에 볼일을 전부 보고 가는 건 무리겠지.’

온 김에 하얀 늑대들도 보고 가야겠군. 그렇게 생각하면서 마저 차를 비운 환인은 이아라에게 옷차림을 정돈해달라고 부탁한 뒤 천릉의 코트를 작게 휘날리며 저택을 나섰다.

……나섰다가 뒤따라오려는 비상을 정원으로 다시 밀어 넣는다.

“잠시 나갔다올테니 넌 여기서 쉬고 있어라.”

꾸으? 뀨웃.

왜? 나도 갈거야.

“대성녀님을 만나러 가는 거다. 놀러 가는 게 아니야.”

뀨으…… 뀨!

“알았다. 이아라, 요리는 어느 정도로 할 수 있지.”

=열심히 배워서… 한 사람 몫은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면 비상에게 간단히 먹을 걸 만들어다오. 고기를 가득 굽고 신선한 채소를 샐러드로 만들어 5인분 정도 해주면 될 거다.”

=네…!=

“평범한 쿠에가 아니라 내 가족 같은 녀석이니 사람에게 하는 것처럼 대해다오. 부탁하마.”

=네, 네엣…! 맡겨주세요……!=

뭐든지 시키는 건 열심히 하겠다는 의욕을 내비치는 이아라를 다시 쓰다듬어준 환인은 느긋하게 걸어서 저택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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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닌실: 성제가 도착했다. 샤스라, 즉시 달려오도록!

샤스라: (울상)

지무 님! 레알쿠 님! 정기 후원 감사합니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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