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2 하늘 도시 팔라툼
지금 위치에서는 적란운이 보이고 고적운과 고층운, 적운과 층적운이 뒤섞인 구름의 위다. 못해도 지상에서 3km 지점.
여기서라면 위력을 가감하지 않아도 된다.
환인은 억눌러놓았던 파괴 충동을 해방하며 황금빛과 함께 진동하는 영혼 폭발 구슬 하나를 꽉 쥐었다.
키샤아아아악—!!
하지만 너무 가깝다. 초거대 하늘뱀 괴물은 시속 700km에 가까운 속력으로 뒤쫓아오는 중.
문양으로 강화한 영혼 폭발 구슬을 이대로 던졌다간 폭발에 자신과 비상도 휩쓸리겠지.
‘그렇다면!’
영혼 폭발 구슬을 손에 쥔 채 6계층 왕족 거주구에서 모아두었던 콕 더 로퍼 이형종의 영혼 구슬을 화살 형태로 6발까지 장전, 심핵력과 영기를 일부 밀어 넣는다.
추정 6급 이형종의 영혼으로 당시 영혼 구슬로 거두어들이려 할 때 미미하지만 저항까지 하던 것들이다.
위력은 확인하지 못했지만, 중급 정령으로 펼쳤던 것보단 뛰어난 위력을 보여주겠지.
「간다!」
그 순간 환연의 신호와 동시에 전방에서 빛의 섬광과 바람의 폭풍, 물의 소용돌이가 성城을 집어삼킬 정도의 사이즈로 형성되었다.
환연의 경고가 아니었다면 초거대 하늘뱀의 공격인가 싶었을 위치 선정이다.
뀨삣!
조심하라는 비상의 경고에 환인은 다급히 고삐를 콱 움켜쥐고 상체를 다시 숙였다. 그와 함께 세 가지 속성 구체 사이를 곡예비행으로 빠져나가는 비상.
그런 비상과 달리 초거대 하늘뱀은 우악스럽게 세 가지 속성 구체를 들이받으며 쫓아왔다.
쿠궁— 두두둥—…!
몸 주변에 위상력을 감고 있기 때문일까. 초거대 하늘뱀의 돌진에 거대한 폭음과 폭발을 일으키며 터져나가는 속성 구체들.
폭발의 충격파가 환인과 비상의 등을 두드리며 떠민다.
「가랏!」
그런 상황을 예견했던 것처럼 환연의 앙칼진 고함에 터져나가던 속성 구체들의 파편이 자석에 달라붙는 사철마냥 뾰족한 투사체로 변해 초거대 하늘뱀의 몸뚱이를 타격하기 시작했다.
쿠쿠궁……! 두둥, 쿠우웅! 쿵—……!
무수한 폭발이 벌어지며 주변의 구름을 밀어내고 쫓아오는 하늘뱀을 뒤흔든다.
키야아아악—!
포효라기보단 강하게 내뿜는 숨소리에 가까운 소리가 폭발한 순간 하늘뱀 주변으로 기파가 뿌려졌다.
하늘뱀의 몸뚱이에 붙어있던 속성력도 그 기파에 휩쓸려 우수수 떨어져 나가지만, 환연의 조작인지 속성력 또한 악착같이 다시 달라붙는다.
콰과광…! 두쿵, 퍼버벙……!
몸뚱이를 따라 기다랗게 벌어지는 폭발. 그에 따라 하늘뱀의 기다란 몸뚱이가 조금씩 흔들리고 추격 속도 또한 살짝 느려지며 거리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말도 안 돼! 상급 정령 애들이 온 힘을 다한 공격인데!」
환인의 목덜미 쪽으로 고개를 내민 환연이 수많은 폭발 속에서도 멀쩡한 하늘뱀을 보며 어이없다는 듯이 빽 소릴 질렀다.
그녀의 말대로 6급 이상의 술법 속성이 수십 발 쏟아진 위력이었지만, 겉보기에 하늘뱀이 입은 타격은 전혀라고 할 만큼 없어 보였던 것이다.
하지만 성과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상급 정령 셋이 일으킨 폭발은 하늘뱀의 날갯짓과 움직임을 방해했고, 덕분에 거리가 제법 멀어졌다.
강화된 6급 영혼 화살을 쏠 타이밍을 원했던 환인이었는데 환연의 공격은 그걸 완벽하게 충족해준 것이다.
“환연, 잘했다! 비상! 돌아라!”
꾸우!
그의 마음을 읽은 것처럼 비상은 직선 최고속도 비행에서 원만한 호선 비행으로 항법을 고쳤고, 환인은 한결 조준하기 쉬워진 상황에서 팔 주변으로 모여든 여섯 발의 영혼 화살을 괴물에게 조준했다.
마악 속성력을 전부 떨쳐내고 속도를 다시 내려는 하늘뱀과 시선이 마주친다.
쭈우웅—!
직후 여섯 줄기의 황금빛 광선이 발사되어 수 킬로미터의 거리를 관통해 하늘뱀을 직격했다.
화려한 폭발도, 난무하는 피와 살점도 없었다. 여섯 발의 레이저는 하늘뱀의 몸을 뒤덮은 정체불명의 에너지 막을 지지다 해당 부분의 막을 지워버리고는 그대로 소실되었다.
광선을 맞추기 전에는 있는 줄도 몰랐던 보호막의 존재.
「뭐, 그 공격도 안 통해?!」
환인도 그 결과에 살짝 가슴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무려 6급 이형종의 영혼 구슬이다. 영혼술의 강제력에 미약하지만 한순간 저항할 정도의 혼력을 가진 괴물.
거기다 심핵력과 영기까지 밀어 넣었다. 현재 쓸 수 있는 단일 면적 최고 위력의 공격인데 고작 보호막을 벗겨내는 데 그치다니?
크샤아아아—!!
그런데 하늘뱀의 상태가 이상하다. 생채기도, 상처도 없었지만, 하늘뱀이 몸을 복잡하게 배배 꼬면서 격통을 느끼는듯한 소리를 내지른 것이다.
“……!”
주의가 온통 상처에 집중되며 발생한 천금 같은 딜 타이밍.
환인은 손에 쥐고 있던 문양 강화 영혼 구슬을 날려 정신력으로 영혼 폭발 구슬을 조종하는 한편, 콕 더 로퍼와 쉐도우 미스트레서의 영혼을 꺼내 영혼 폭발 구슬로 장전하려 한 순간이었다.
끼야아악-!
츠이이이익……!
“큭?!”
영혼 폭발 구슬의 조종에 정신력 대부분을 할애하고 있던 환인은 갑작스러운 영혼의 몸부림에 그만 이형종의 제어에 실패했고, 그 틈을 타 풀려난 이형종의 혼은 그대로 옅은 빛의 안개가 되어 사라졌다.
쿠우우우웅————!
피해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환인의 정신력이 단절되자 황금빛 영혼 폭발 구슬도 엉뚱한 데서 지체없이 폭발해버린 것.
자기 몸뚱이 일부쯤은 단숨에 삼켜버릴 사이즈의 블랙홀 같은 폭발이 근처에서 일어나자 하늘뱀은 대경실색, 황급히 회피 운동을 개시했고 덕분에 환인은 최적의 딜 타이밍을 완벽하게 놓쳐버렸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기에 환인으로서도 아주 잠깐 얼을 타다가 들개 전사단의 검은 영혼 구슬 여덟 개를 전부 꺼내 영혼 화살로 재장전했다.
‘멍청한 짓을 저질렀군.’
영혼 구슬로 만들 때 미약하지만 저항했다는 것은 영혼 구슬을 다룰 때도 그에 걸맞은 정신력을 요구한다는 이야기.
그러나 영혼 폭발 구슬을 조종하면서 습관대로 영혼 구슬을 다루려 했고, 제어력이 약해지자 이형종의 영혼은 그 즉시 반발해 탈출했다.
멍청한 실수라는 말로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이런 이유로 영성들이 계약한 영혼 구슬만 쓰는 건가.’
방금 찰나의 틈에 가늠해보니 6급 이형종의 영혼과 들개 전사단의 검은 영혼 구슬을 다루는데 드는 정신력의 수준 자체가 달랐다.
쓰기 간편하고 정신력도 덜 요구한다면 이형종보다 계약한 영혼을 쓰는 게 당연한 말이겠지.
삼림형 미궁에서 겪었던 기억이 뒤늦게 그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육족 사슴뿔 이형종의 영혼. 그리고 류히의 누이 영혼.
자신의 생각짧음을 탓한 환인은 들개 전사단의 검은 영혼 구슬로 장전한 영혼 화살 외에 얼마 남지 않은 6급 이형종의 영혼도 꺼내 영혼 폭발 구슬로 장전한다.
미약한 반발이 있었지만, 한 번 겪은 이상 두 번 다시 당하지 않는다.
그러는 사이 환인과 하늘뱀은 서로를 견제하며 대치를 이어가고 있었고 사이에는 기묘한 기류가 흘렀다.
한 번 공격을 받은 뒤 환인을 대하는 하늘뱀의 태도가 완전히 변했기 때문이다.
좀 전까지는 하루살이 같은 영역 침입자에서 지금은 자신의 영역을 찬탈하려는 도전자로 여기는 분위기.
환인도 환인대로 하늘뱀을 경계하고 있었다.
흡사 요르문간드처럼 거대한 하늘뱀이 보여준 공격은 쫓아와 물어버리려는 행동뿐이었다.
저만한 괴수가 고작 몸통 박치기나 물어뜯기, 깨물기밖에 못할 리가 없다. 경계하는 게 당연한 일.
“…….”
영혼의 눈에 이쪽을 경계하는 하늘뱀의 상태가 일목요연하게 들어온다.
영혼의 빛이라 생각했던 푸른색은 실상 영혼이 아니라 몸을 뒤덮은 보호막 같은 것이었다.
영혼 화살의 광선에 적중당한 지점을 중심으로 반경 수십 미터는 푸른색이 걷혀나가 회색의 빛이 어른거리는 중.
그러나 실제 육안에는 아무런 상처가 보이지 않는다.
‘저런 생명체가 지구과학을 따를 리 없겠지.’
애초에 저만한 거구가 하늘을 난다는 게 비상식적이다. 아드네빌라는 용龍이라는 신화적인 생명체라는 핑곗거리라도 있지, 저건 그냥 날개 달린 흰 뱀이지 않은가.
그런 것도 일반적인 유기 생명체가 아닌 위상력으로 이루어진 초생물이라면 저런 상태가 설명된다.
몸에 감고 있는 것은 보호막이 아니라 생명력(위상력)이라던가, 구름 속에서 살며 지상으로 내려오지 않는 것이나.
‘레이저에 직격당한 곳이 회복되지 않는 것도 그 연장선이겠지.’
소실된 체력은 몰라도 생명력 그 자체가 사라지면 그 자리를 채우는 데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터.
“……!”
그때 하늘뱀의 몸 주변에 세 가지 색의 빛, 푸른색과 녹색과 하얀색이 어지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단순히 움직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에서 위상력을 은밀하게 모으기까지 한다. 특히 날개로 녹색이 몰려가고 주둥이에는 푸른색과 하얀색이 뭉쳐져 가는 중.
명백한 공격의 전조에 환인의 눈빛이 예리한 날붙이처럼 번뜩였다.
“환연, 내가 신호하면 저 하늘뱀의 날개에 깃든 바람을 엉망으로 흔들어라. 비상은 저놈의 주둥이에서 뿜어져 나올 공격을 대비하고.”
「어? 응!」
쿠크!
환인도 장전해둔 들개 전사단의 흑옥으로 만든 영혼 화살 8발에 더해 영혼 폭발 8발을 준비한다.
그리고 잠시 이어진 침묵의 대치.
끝에 먼저 움직인 것은 하늘뱀이었다.
슈아아악—!
대비하지 않았다면 가슴이 섬뜩해질 정도의 속도로 비사飛蛇처럼 쏘아져 오는 하늘뱀. 쫙 벌어진 아가리 안쪽에서 시퍼런 빛이 넘실거린다.
산맥처럼 거대한 몸뚱이가 짓쳐들어오는 장면에 환인이 버럭 고함 질렀다.
“비상! 품안으로 뛰어들어라!”
큐앗!
태극을 그리듯이 하늘뱀과 교차하는 비상.
그런 비상을 따라 하늘뱀의 고개가 확 꺾이며 뒤를 쫓아온다. 그러면서 발생하기 시작하는 흡인력에 비상의 속도가 느려졌지만, 속도가 둔해진 것은 하늘뱀도 마찬가지였다.
환연이 힘을 쓰고 있은 덕에 하늘뱀의 속력도 제법 깎여나간 거다.
하늘뱀의 거대한 날개 쪽을 힐끔 본 환인의 시야에 바람의 상급 정령인지 어여쁜 녹색 긴 머리의 처자 셋이 하늘뱀의 날개 주변에서 힘을 쓰는 것이 들어온다.
그리고 환인의 머릿속에 그려지는 하나의 장면.
환인은 심핵력을 주입하지 않은 영혼 폭발 구슬을 뒤로 와르륵 쏟아내며 고삐를 직접 움직여 비상의 비행을 주도하기 시작했다.
쿠구궁, 콰광- 콰과과광—!!
키이이잇—! 키샤아아아아—!!!
63빌딩 정도는 가뿐히 삼켜버릴 것만 같은 주둥이로 빨려 들어간 영혼 폭발 구슬이 폭발을 연이어 일으키지만, 하늘뱀에게 큰 충격은 없었다.
조금 정신을 없게 만들고 시야를 가릴 뿐.
그 정도로도 충분했기에 환인은 비상의 옆구리에 박차를 가했고, 콰아앙—! 일순간 비상이 급가속하며 공기의 벽을 뚫는 충격이 밀려왔다.
그리모암의 강력으로 강화된 신체가 아니었다면 목이 꺾였을 정도의 중력부하다.
삽시간에 가까워지는 하늘뱀의 날개. 그리고 환인의 접근에 꺅, 비명을 지르며 하던 일도 멈추고 도망가는 상급 바람의 정령들.
환인은 눈썹을 살짝 찌푸리며 들개 전사단으로 만든 영혼 화살을 하나하나가 여의도만 한 비늘 날개에다 쏘았다.
쭈우우웅—!
하늘뱀의 몸통과 날개 사이 이음매를 노리고 날아가는 여섯 줄기의 흑색 광선. 그 여섯 줄기가 훑고 지나간 날개는 힘줄이 끊어진 것처럼 축 늘어지며 하얀 비늘도 회색빛으로 변해버린다.
그렇게 변해버린 날개가 좌측의 6장 중 4장.
직후 환인은 등 뒤에서 위상력과 마력의 폭풍을 느끼곤 비상의 고삐를 강하게 잡아당기며 박차를 가했고, 비상은 직각에 이를 정도로 방향을 꺾어 하늘로 치솟아 올랐다.
——————!!!
음파 공격 같은 포효와 함께 푸른색 광선의 파도가 방금까지 있던 곳을 덮친다.
여파만으로 몸이 뒤흔들릴 정도의 공격.
환연이 재차 펼친 기막에 음파 공격이 막히는 걸 느끼며 심핵력을 넣은 영혼 방패로 뒤를 막는 한편, 환인은 아르겐테아 정찰대 영혼을 전부 꺼내 영혼 화살로 장전했다.
「부르셔……흐우엑!?」
「부름을 받…끼야앙!」
‘강한 기술일수록 영혼의 복귀가 늦어져. 이건 큰 약점이다.’
아까 쏘아낸 들개 전사단의 검은 영혼들이 아직 복귀하지 않고 있다.
거기다 날개 여섯을 전부 잘라낼 생각으로 총량의 10%에 달하는 심핵력을 넣었지만, 고작 날개 넷만 무력화시킨 상태.
환인은 하늘뱀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같은 꼬리가 짓쳐 드는 것을 읽고 황급히 회피 운동을 지시했다.
서서히 발악 패턴으로 넘어가는 느낌.
환인에게 회피를 위임받은 비상은 전방위 시야각으로 하늘뱀의 발악을 피하는 동시에 환인이 노릴 게 틀림없는 우측 날개로 공격의 각을 잡아준다.
그런 비상의 어시스트에 환인은 주먹을 불끈 쥐며 천천히 상하 운동을 하는 하늘뱀의 오른쪽 날개를 향해 영혼 화살을 쏘았다.
쯔아아앙—!
이번에는 황금빛 광선이 우측 날개를 훑고 지나가지만, 위력은 들개 전사단보다 오히려 떨어져 날게 여섯 장 중 3장만 무력화시켰다.
‘위력은 역시 흑옥 쪽이 뛰어난가……!’
캬시시시시—!!
비행 능력을 상실시켜 추락시키려 했는데 이래서야 곤란하다.
날개 12장 중 7장이 무력화되어 비행 능력이 대폭 깎였지만, 여전히 추락하진 않고 자전거가 밟고 지나간 뱀처럼 요동치는 중. 이대로면 자신의 영혼 구슬 보유가 먼저 바닥날 상황이다.
“…….”
환인은 요동치면서도 절대 떨어지지 않고 오히려 더 바짝 붙으려 드는 하늘뱀을 보면서 눈빛을 가라앉혔다.
저 뱀도 강화 영혼 폭발을 경계하고 있는 게 틀림없다.
비행 능력이 떨어져 비상이 본격적으로 거리를 벌리면 절대 쫓아오지 못하겠지만…….
‘거리를 벌려 영혼 폭발을 날리려 한다면 먼저 브레스를 쏘겠지.’
주둥이에 맺혀있는 물색과 백색의 빛덩어리를 보면 100%다.
방금 방사형으로 파도처럼 휩쓸고 지나간 브레스를 생각하면 거리가 멀어질수록 브레스를 피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리고 강화 영혼 폭발의 범위는 절대 어중간하지 않다. 제대로 거리를 두지 않는다면 이쪽도 폭발에 휘말린다.
발사에 사용한 들개 전사단과 아르겐테아 정찰병의 영혼들은 아직도 복귀하지 않는 중.
남은 6급 영혼은 단 셋, 중급 정령 구슬이 몇십 개 남아있다지만 그걸로 유효한 피해를 주긴 어렵다.
그렇다면…….
환인은 하늘뱀의 움직임을 읽고 어지간한 섬만큼이나 큰 대가리가 가까이 오는 순간, 비상의 고삐를 놓았다.
“비상, 나중 일을 부탁한다!”
뀨!?
고삐를 놓고 다리에 힘을 풀자마자 빨려 올라가듯이 하늘로 튕겨 날아가는 환인의 신형.
당황한 듯 0.5초 정도 멈칫했다가 다시 회피 기동을 시작하는 비상에게 눈길을 준 환인은 방벽 패널의 방벽을 전부 불러냈다.
형태는 발바닥 2배 크기의 사각형 판.
콰차창!!
6장을 겹쳐 일시적으로 내구성을 올린 패널을 밟은 환인은 즉시 박차고 총알처럼 튀어 나갔다.
희미한 패널이 산산조각났지만 몸은 생각했던 방향으로 쏜살같이 날아간다.
목표는 하늘뱀의 머리.
「무모해!」
품 안에서 꽥! 소릴 지르면서도 환연이 바람으로 이동을 보조해주고, 그 바람의 보조에 더해 재차 패널 발판을 만들어 하늘뱀의 머릴 향해 날아가는 환인.
그게 몇 차례 반복되니 방벽 마도기의 위상력 잔량이 순식간에 내려간다.
하늘뱀도 그걸 가만히 지켜볼만큼 멍청하지 않았다.
갑자기 두 마리로 늘어난 도전자를 보곤 순간 당황했지만, 날쌔게 움직이는 녹색 새보다 튀어나온 검은색 인간이 위험하다고 확신한 하늘뱀.
캬아아아—!!
그래서 검은색 인간을 물어 삼키려 했지만, 갑작스레 한쪽 눈알이 터져나가는 고통에 괴성을 지르며 온몸을 재차 비틀었다.
환인이 남은 6급 영혼의 구슬을 긁어모아 발사한 중첩 영혼 폭발이 하늘뱀의 왼쪽 눈알을 말 그대로 짓이겨놓은 것이다.
그사이 환인은 방벽 패널의 위상력을 거의 다 소모해가면서 발판을 만들어 하늘뱀의 위에 착지하는 데 성공한다.
다만 그 장소는 하늘뱀의 몸부림 탓에 머리에서 다소 떨어진 위치였다.
「달렷!」
환연의 외침에 환인은 광명창을 꺼내 하늘뱀의 등을 달리기 시작했다.
등 뒤에서 수많은 폭음이 들려오는 것을 보면 환연도 시간을 벌 생각으로 정령들을 불러 공격을 쏟아붓는 중일 테지.
환인은 절묘한 균형 감각으로 몸부림치는 하늘뱀의 등에서 떨어져 나가지 않고 차분히 나아간다.
그리모암의 강력으로 신체 능력이 6급 직업자 수준으로 강해진 데다 근력과 체력이 막대한 버그베어의 영혼 강령이 아니었다면 진작에 하늘뱀의 등에서 튕겨 나갔겠지.
하지만 늘어난 신체 능력은 파도처럼 요동치는 하늘뱀의 등 위에서도 단단히 붙어있게 해주었다.
급격한 요동이 발생할 때마다 광명창으로 흠집 낸 비늘을 잡아 버티거나 비늘 사이 틈에 손을 박아넣고 버티는 식으로 말이다.
그렇게 한 발 한 발 내디딜 때마다 발밑에서 전해져오는 거대한 위상력 생명체의 고동이 환인의 심장을 달구었다.
이렇게나 거대한 괴물과 바짝 붙어 싸우다니, 흥분의 고조가 여자친구들과 교접할 때보다 더욱 높아져 심장에 거대한 활력을 불어넣는다.
키샤아아악—!!!
그즈음 한쪽 눈을 잃은 데서 발생한 격노로 이성이 반쯤 마비된 하늘뱀도 자신의 등을 따라 달려오는 환인을 발견했다.
자신의 목숨을 빼앗으려 드는 강적!
아가리를 쩍 벌린 하늘뱀은 몸이 다치는 것도 감수하고 환인을 물어뜯으려 했지만…….
뀨우우웃—!!
환인에게 정신을 판 덕분에 놓친 비상의 맹공을 멀쩡한 눈에 허용하고 말았다.
발톱에 맺힌 5급 바람의 칼날, 그리고 순간 가속도로 마하에 이르는 속도.
두 가지가 합쳐진 비상의 공격은 하늘뱀의 두꺼운 투명한 비늘을 찢고 망막에도 큰 피해를 남겼다.
이어서 이탈하며 선물이라는 듯이 남겨놓고 간 바람의 구체가 폭발, 수십 개의 바람으로 만들어진 칼날이 하늘뱀의 망막을 난자한다.
———!!!
두 눈을 잃고 대가리를 흔들며 음파를 쏟아내는 하늘뱀.
환인은 비상이 만들어준 천금 같은 기회에 두 다리를 비늘에 박아넣고 발검 자세로 광명창에 심핵력과 영기를 40% 가까이 밀어 넣었다.
새하얀 빛의 창이 심핵력과 영기를 머금으며 황금빛으로 크게 타오르기 시작한다.
그 힘의 집중이, 정신력의 집중이 극한의 점에 다다라 환인과 광명창이 하나가 되었을 때.
크샤랴랴라라락——!! 키레레레렉—!!!
두 눈에서 투명한 무언가를 흩뿌리며 고개를 치켜들고 발광하는 거대한 하늘뱀의 목을 황금빛의 선이 가르고 지나갔다.
이실리테의 검섬劍閃을 모방한 창섬槍閃.
쭈우욱, 기운이 단숨에 빠져나가며 생겨나는 탈력감과 함께 하늘뱀 또한 포효와 움직임을 멈춘다. 그리고 빛이 바래듯 눈처럼 하얀 비늘이 목 부분부터 빠르게 회색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삽시간에 머리끝부터 꼬리 끝까지 회색으로 변한 초거대 뱀은 부유력을 잃고 천천히 추락을 개시하는데, 목 부분에 생겨난 금이 점점 선명해지다가 쩌억— 소리를 내며 머리가 몸통에서 분리되어 자유 낙하한다.
「해냈다! 괴물을 물리쳤어!」
목덜미에 달라붙어 꺅꺅 환호하는 환연을 다독여준 환인은 초거대 하늘뱀의 몸에서 피가 아니라 푸른 연기 같은 것이 흘러나오는 것을 목격했다.
「어? 이 뱀은 몸 안에 피가 아니라 위상력이 흐르고 있었나?」
“위상력이라기보다 위상력을 전달해주는 매질이 아닐까.”
「그런가? 구름 속에 사는 괴물은 달라도 뭐가 다르네.」
“아무튼…….”
쿠구구구구…….
추락 중인 하늘뱀의 거체 위에서 주위를 돌아본 환인은 눈썹을 작게 찡그렸다.
온 세상을 가득 뒤덮고 있던 흰 구름이 빠르게 흩어지며 아래가 훤히 드러나고 있었다.
꽤 멀리 날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팔라툼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장소다. 팔라툼과 천주산이 훤히 보이는 것은 물론이고 저 아래 대초원의 가도를 오가는 상단과 모험가, 여행자들이 잔뜩 보인다.
개미들이 뿔뿔이 흩어지는 것처럼 도망치는 사람들을 보던 환인은 잠깐 생각하다가 중얼거렸다.
“주도 상공에 이런 괴물이 살고 있었는데도 눈치채지 못한 건가.”
「혹시 이 뱀이 팔라툼의 신수라던가?」
“……끔찍한 소리 마라. 천왕궁과 천공성의 벽화에 하늘뱀 같은 것은 없었다. 그저 구름 밑으로 내려오지 않는 괴물이어서였겠지.”
「히히.」
꾸으~!
시시각각 지상이 가까워지던 그때, 쏜살같이 날아오는 비상을 발견한 환인은 두 다리에 힘을 줘 하늘뱀 시체를 박차고 뛰어올랐다.
그와 동시에 재주 좋게 환인을 등에 태우고 이탈하는 비상.
환인은 비상의 등에서 기분 좋은 탈력감을 만끽하며 아스펜드에서 통신 수정구를 꺼냈다.
길이만…… 대강 200km 정도 되는 괴물이다.
저 시체를 갈무리하는 데만 해도 엄청난 시간이 걸리겠지. 일개 파티로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니 여자친구들에게 연락해 테이아무스 섭정이나 아드우리 공작을 불러 도움을 청할 생각이었다.
꽈과광—!! 화산이 폭발했어도 이보다 작았을 굉음이 터져 나오는 것을 들으며 환인은 수정구 안에서 유르파의 얼굴이 떠오르는 것을 보고 입을 열었다.
하늘뱀이 추락하고 몇 분 지나지 않아 날아온 일단의 플라비우스족 무리에는 테이아무스 섭정까지 있었다.
하늘에서 갑자기 수백 킬로미터짜리 괴물이 떨어져 내리는데 거대 신수의 습격인 줄 알았다던가.
=이……것을, 예하께서 홀로 잡으셨다는 건가요…….=
환인은 비늘가죽만 남은 하늘뱀 사체를 보며 말을 잇지 못하는 테이아무스 섭정에게 고개를 저었다.
“저 혼자서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비상과 환연이 도와준 덕분이지요.”
실제로 환연의 친구가 된 상급 정령들이 힘을 모두 써버려 환령계로 돌아갔을 정도였고 비상도 비행에 제법 위상력을 사용했다. 자신은 영혼 구슬을 거의 다 소비해버렸고.
이중 하나라도 모자랐다면 싸움은 커녕 도망만 쳤어야겠지.
테이아무스 섭정은 하늘뱀 껍질에 다른 무리가 접근하지 못하게 막아서는 제1 천공기사단과 제2 천공기사단 일부를 보다가 이마를 짚었다.
=이 괴물은…… 제 지식이 맞는다면 구름 속에서만 살아가는 진수에요. 벨티칼 대산맥에서 최초로 발견한 발견자의 이름을 따서 야미오코라고 하죠. 분류는 8급이라고 하는데 여태까지 단 한 번도 잡히지 않은…… 아니, 잡지 못한 괴물이라 확실치 않아요. 그것을 예하께서…….=
환인은 무언가 곤혹스러워하는 테이아무스의 반응에 환연이 농담조로 했던 말을 떠올렸다.
“혹시 벨티칼의 신수라던가 그런 겁니까.”
=아, 그런 게 아니에요. 제가 오해하게 해드렸네요. 성제 예하의 참모습에 놀라서 살짝 두통이 왔다고 해야 할지……. 잊혀진 옛 고성 미궁의 폭주를 막아주셨는데 갑자기 8급 진수를 사냥해내셨다는 게 놀라워서 그만.=
“그랬습니까. 어쨌든 팔라툼의 위협이 될지도 모르는 괴물을 이 기회에 잡아서 다행입니다.”
=네. 비록 야미오코가 구름 아래로 내려오지 않는 습성이 있다지만 저런 진수가 머리 위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은 큰 위협이지요.=
으흠, 기품 잇게 헛기침한 테이아무스는 거죽만 남은 야미오코에서 시선을 돌려 환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진수여서인지 가죽만 남기고 증발한 것이 안타깝지만, 그럼에도 이만한 가죽이라면 어마어마한 가치를 지니고 있겠습니다. 예하, 혹시 가죽을 어떻게 하실 생각인지 여쭈어도 될까요?=
“성도로 가져갈 생각입니다.”
8급 진수 야미오코로 알려진 하늘뱀은 놀랍게도 죽어 지상에 추락한 뒤 가죽을 제외한 내장과 뼈, 기타 등등이 모조리 증발해버렸다.
거기다 크기도 쪼그라들어 남은 것은 불과 30여 킬로미터 남짓한 비늘가죽 뿐. 하늘에서 살던 생물이 지상으로 내려와 쪼그라든 건가 싶다.
그렇게 남은 가죽이라고 해도 광명창으로 자를 때 믿을 수 없는 강도를 느낀 비늘가죽이다. 저만한 크기라면 가죽 갑옷으로 만들어 모든 거인들에게 입혀주고도 남겠지. 그렇게 만들어진 가죽 갑옷은 거인들의 큰 무기가 될테고.
환인은 은연중에 압박을 주는 미소로 조용히 말을 이었다.
“하지만…… 뒤늦게나마 이렇게 달려와주신 분들이시니 일부를 드리지 못할 것도 없겠지요.”
조건만 맞다면 말입니다.
테이아무스는 부드럽게 미소 짓는 환인을 보며 머릿속으로 주판을 맹렬히 튕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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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스트레스도 풀고 득템하고 삥도 뜯고 일석 삼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