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5 왕족 거주구
가혹한 정사를 1시간에 걸쳐 치른 유르트랑은, 근접 전투 직업자 특유의 터프함으로 어찌어찌 제 발로 걸어 침실을 나올 수 있었다.
=목욕 준비해놨으니까 가서 씻으면 돼.=
=고, 고맙습니다.=
가랑이 사이로 통나무가 들락거린 듯한 실감은 그녀에게 골반이 벌어져 있는 듯한 고통을 주었지만, 그게 그렇게 괴롭진 않았다.
뭔가, 2달 동안 미궁 밖에 나가지 못한 탓에 쌓인 정신적 피로가 싸악 풀린 느낌이랄까.
뜨거운 물이 담긴 욕조에 어깨까지 몸을 담그자 몸 곳곳이 아프던 게 풀려간다.
골반이 욱신거리는 데서 발생한 야릇한 감각이 자궁을 스멀스멀 잠식하는 게 느껴질 정도.
=~~.=
얼굴에 황급히 뜨거운 물을 끼얹는 유르트랑의 귓가로 작은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물 온도는 괜찮아?」
=응?! 아, 예. 괜찮습니다…….=
화들짝 놀랐던 유르트랑은 멍한 얼굴로 날아서 욕실을 나가는 요정을 쳐다봤다.
종을 알기 어려운 푸른 머리카락 여자에 플뢰가 둘, 루크랑이 하나, 거기다 요정까지…….
다종다양한 종족뿐만 아니라 희귀 직업자가 셋이나 있을 정도니 이래서 성제의 파티가 유명해진 건가?
그러고 보니 전부 여자군. 혹시 성제는 다른 유약한 영혼사들과 다르게 무척이나 짐승 같은 그걸로…….
=…….=
불과 몇십 분 전의 기억이 떠오르자 얼굴이 대책 없이 뜨거워진다. 유르트랑은 머릿속으로 그 기억을 떨쳐내기 위해 다시 물을 끼얹기 시작했다.
=부단장 씨. 회복 걸어드림까?=
=아, 아뇨. 괜찮습니다.=
욕실에서 위상력으로 열기를 일으켜 날개를 깔끔하게 말리고 나온 유르트랑은 7급 성술사의 제안에 자신도 모를 심정으로 부드럽게 거절했다.
7급이나 되는 성술사의 회복을 받으면 여기에 오기 전의 몸 상태로 되돌아가겠지.
정상적이라면 받는 게 당연한데, 내가 이상해진 걸까? 이 경험을 없었던 걸로 만드는 것은 왠지 싫다.
=역시 그렇죠. 여자라면 오빠한테 안긴 경험을 없던 걸로 되돌리지 못함다. 어떤 여자가 그 황홀한 경험을 없던 일로 되돌릴 수 있겠슴까?=
=…….=
유르트랑은 다시 뜨거워지는 귀를 매만지며 얼굴을 붉혔고, 아영의 머리에는 안느의 주먹이 내려꽂혔다.
꽁!
=아무한테나 성희롱하지 마.=
=이건 성희롱이 아니고 사실을 적시한…… 켁!=
쾅!
아영의 머리를 좀 더 강하게 쥐어박아 말을 끊은 안느는 첫날밤을 치른 숫처녀처럼 부끄러워하고 있는 유르트랑에게 사과했다.
=미안해, 부단장님. 얘가 좀 발정기 암컷 늑대 같은 데가 있어서.=
=괜찮습니다, 미리아스툼 전하. 저도 왠지 알 것 같은 기분이니까요.=
=그렇다면 다행이고. 그리고 난 가문을 나와서 왕족도 뭣도 아니야. 그냥 안느라고 불러줘.=
=아, 예.=
=그래서? 용무는 끝났을 텐데 안 돌아가는 거 보면 할 말이 있나?=
=…….=
아영을 뒤에서 끌어안고 평범하게 묻는 안느의 모습에 유르트랑은 조금 고민에 휩싸였다.
어떻게, 이걸 말해줘도 되는 걸까.
실력으로 보면 큰일을 당하지는 않을 테지만, 일을 당하는 것부터가 큰 문제다. 게다가 말을 꺼내면 물릴 수도 없어진다.
성제가 시주르 대평원에서 겪은 일에 어떻게 대응하였는지 알려진 것은 없지만, 메리아놀의 엘위드리스 대가문에 벌어진 내전 소식을 보면 자신의 지위로도 알아내기 어려운 복잡한 정치사가 얽혀있는 게 틀림없을 거다.
그렇다면 지금 자신이 해야 할 일은…….
‘떡정에 휘둘릴 게 아니라 내부를 정리해서 성제님에게 닥칠 문제를 미연에 막는 것.’
유르트랑은 모처럼 원활하게 돌아가기 시작하는 두뇌로 전반적인 계획을 짜면서 아무것도 아니라며 작게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그럼, 내일 순회 시작 전에 종자를 보내 연락드리겠습니다. 필요하신 것이 있으면 종자를 통해 말씀해주십시오. 그때까지 편히 쉬시길.=
=어. 부단장님도 욕봤어.=
살짝 묵례하고 막사를 걸어 나온 유르트랑은 팔뚝만 한 말뚝이 여전히 가랑이 사이에 깊이 박혀있는 듯한 감각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7급 전사라서 버틴 거지, 평범한 육체였다면 지금처럼 걸어 다니지도 못하는 상태가 아니었을까.
지휘부 막사로 돌아온 유르트랑은 아직도 머릴 박고 있는 뤼니에게 괘씸하다는 시선을 주다가 말했다.
=일어나.=
=휴, 생각보다 일찍 돌아오셨네요. 좋게 말로 끝……나진 않았군요.=
부단장의 걸음걸이가 미묘~하게 어기적거리는 걸 간파한 뤼니는 속으로 성제의 절륜함에 감탄했다.
부단장은 7급의 끝자락에 다다른 전사다. 저 신체는 강철만큼이나 질기고 튼튼한데 그런 몸에 후유증을 남기다니.
=치유 술사를 부를까요?=
=내가 성제님과 잤다는 걸 사방팔방 알릴 셈이야? 그리고 다시 대가리 박아. 뭐? 성 상납이 정답 아니냐고? 타 종족 남자들은 플라비우스족 여자 몸을 탐내니까?=
성제에게 말했다가 느낀 창피함이 떠오르니 열받아서 머리 뚜껑이 열릴 지경이다.
물론 엄청난 첫 경험, 그것도 자신의 신분보다도 뛰어난…… 여러모로 우수한 남자와 첫 경험을 치렀으니 그 자체는 불만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전혀 그럴 생각이 없던 성제에게 몸을 바칠 테니까 봐주시라고 말한 수치심은 누구 하날 조져야지만 풀릴 거 같다.
그리고 조지기에 적당한 명분도, 이유도 있는 년이 바로 앞에 ㅅ자로 대가리를 박고 있다.
뤼니는 양탄자에 머릴 박은채로 부단장에게서 느껴지는 살기에 날개를 살짝 떨며 물었다.
=아, 아니었습니까……?=
=고명한 영혼사가 그따위 육욕을 느낄 리 없잖아! 성 상납하러 왔다니까 깜짝 놀라시더라!=
=세상에. 부단장님의 그 가슴이랑 개미허리를 보고도 그런 말을 했다고요? 성제님 혹시 고자…… 켁!=
이번에는 힘의 가감 없이 뤼니의 골반을 뻥 차버린 유르트랑은 씩씩거리며 훈련용 철검을 두 자루 가져와 발라당 넘어진 뤼니에게 하날 던졌다.
=잡아. 임시 지도 대련이다, 뤼니 야란 상급 기사.=
=예? 아니 자, 잠깐만요! 부단장님, 이거 가혹행위입니다!=
=그래서 지도 대련이라고 했잖아! 검 들어!=
으르릉거리며 쏜살같이 날아간 유르트랑은 기겁해서 위상력을 끌어올리는 뤼니를 두드려 패기 시작했다.
퍼벅, 쨍!
=악! 케흑!=
쿵! 째쟁, 퍽! 콰광-
=끄헉…! 아, 아랫배와 가슴만 노리시는 거 같은데 기분 탓이겠죠?!=
=기분 탓이겠냐! 난 지금 가랑이 사이에 통나무가 박혀있는 기분이라고!=
=으아악! 그런 거치고는 검술이 전보다 더 예리하신데요!=
채쟁, 뻑! 쨍쩅, 캉- 퍼벅, 뻑!
……후욱후욱, 10분 동안 몰아쳐서 뤼니를 쥐잡듯이 두드려 팬 유르트랑은 어깨로 숨을 몰아쉬면서 대大자로 뻗은 뤼니를 앞에 두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미묘한 감각에 여우 눈썹처럼 가느다란 미간도 살짝 좁혀든다. 뭐지, 뭔가 평소와 검격이 좀 다른 느낌인데.
실낱같은 뭔가가 검 끝에서부터 가슴까지 이어지는 기분. 유르트랑은 기이한 고양감에 홀린 듯이 가문 비전 검술을 제1초부터 제16초까지 펼치기 시작했다.
1초부터 16초, 16초부터 1초까지 검술이 끊임없이 반복된다.
백조가 춤추는 것에서 영감을 얻어 가문의 시조가 창안했다는 백우 검법을 5번이나 펼친 유르트랑은 온몸에서 땀을 비 오듯이 흘리며 검을 내렸다.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 도드라져 옷 위로도 보일 만큼 딱딱해진 유두. 연마하듯이 수백 번 두드려졌던 자궁은 불이 붙은 것처럼 뜨겁다.
자궁에서 시작된 열기가 심장까지 올라가 온몸에 퍼지는 듯한 느낌.
몸에서 김을 모락모락 뿌리며 그 감각을 음미하던 유르트랑은 갑자기 눈앞이, 머릿속이 환해지는 것을 느끼며 몸이 한층 가벼워지는 걸 느꼈다.
=하아아아아……….=
=깨달음을 축하드립니다, 부단장님.=
눈에 보일 만큼 뜨거운 숨결을 기일게 내뿜었던 유르트랑은 대련을 빙자한 구타가 있었다곤 믿기 어려울 만큼 깨끗해진 제복 차림의 뤼니에게 물었다.
=내가 얼마나 멍하니 있었지?=
=7시간 정도 됐습니다. 그런데 아쉽네요. 깨달음이 조금만 더 깊었다면 8급에 오를 수도 있었을 텐데.=
유르트랑은 자신의 몸 상태를 살피다 뤼니에게 철검을 던져주고 땀으로 질척질척한 옷을 벗기 시작했다.
=그렇게 쉽게 8급에 오를 수 있었다면 세상에는 8급 직업자가 발에 채일만큼 널려있었겠지.=
=부단장님 아우라는 7급의 최대 상한에 도달한 느낌입니다. 깨달음 한 번만 더 얻으신다면 8급이 되실지 몰라요.=
=제2 기사단이 해체되기 전에 그랬으면 좋겠네. 뒤에서 땀 좀 닦아줘.=
뤼니는 미리 들고 있던 수건에 물을 적신 뒤 부단장의 야한 냄새가 풀풀 나는 알몸을 닦아주며 물었다.
=성제님께 들은 게 있으십니까?=
=있겠어? 그냥 맑아진 머리로 생각해보니 지금 우리 위치가 매우 위태롭다는 걸 알았을 뿐이야. 엘위드리스 가문에 벌어진 내전 소식 들었지?=
=……그게 성제님에서 비롯된 일이었군요.=
=우리 부대 내에도 성자님한테 반감을 품은 놈들…… 제법 있을 거야.=
=없을 수가 없죠. 부단장님부터가 성제님한테 부정적이었잖습니까.=
=알아. 후회하는 중이기도 하고. …걔들 불러 모을 수 있겠어?=
=지금 당장이 급하니까 모으는 건 성제님이 가신 뒤가 좋겠습니다. 일단 응급처치로 민치 녀석들을 통해서 소문 퍼트리고 있습니다. 성제님은 우리가 들은 거 하고 다르게 멀쩡하시고, 사바인 단장님을 끌어내린 건 강성패도 파벌 새끼들이라고요. =
날개 사이로 흘러내린 땀을 다 닦아준 뤼니는 그녀의 뒤에 무릎을 꿇고 허리와 엉덩이도 닦기 시작했다.
와, 엉덩이도 맞았어? 손자국이 엄청 선명하네.
=잘했어. 그래도 녀석들을 좀 다독일 필요가 있으니까 명단 확보해서 나중에 정신교육 핑계로 한데 좀 모아. 정오 순회에도 괜찮은 녀석들로 불러놓고.=
=예. 어, 부단장님. 허벅지에 이거 뭐예요? 끈적이는 게 땀이 아닌데…… 윽! 정액!=
=응? 앗.=
=아 좀! 처녀한테 뭘 만지게 하시는 겁니까?!=
=씨, 씻고 나왔었어! 씻었는데!=
=대충 씻으니까 그렇죠! 진짜, 얼마나 신나게 즐겼으면 엉덩이에 성제님 손자국까지 빨갛게 남기고!=
=안 즐겼거든?!=
뤼니와 꺅꺅거리던 유르트랑은 천막 바깥이 갑자기 환하게 밝아지는 걸 보곤 수건으로 서둘러 백탁액이 흐르는 사타구니를 닦아내고 옷을 챙겨입기 시작했다.
잠시 후에 파사의 빛 발동 아침 조례를 해야 한다. 종자가 찾아올 테니 빨리…….
주륵-
‘윽, 또…….’
안에서 정액이 흘러나오는 무척 이상한 느낌에 유르트랑은 여섯 날개를 바짝 좁혔다가 하는 수 없이 팬티 밑부분에 손수건을 깐 뒤 끌어올렸다.
일단 이렇게 막아놓고, 미궁 순회를 끝낸 뒤에 돌아와서 제대로 씻어야지.
환인에게 한 번 질내사정을 당하면 다음 날 하루종일 정액이 울컥거리며 흘러나온다는 걸 알지 못했기에 내린 판단.
이것 때문에 순회 도중 허벅지를 타고 정액이 흘러내리는 걸 부하 기사들에게 목격당해 치녀 부단장이라고 불리게 되지만…… 현재의 그녀로서는 알 수 없는 미래였다.
부우우웅—
묵직한 저음의 뿔피리 소리에 여자친구들과 천막 밖으로 나간 환인은 잊혀진 옛 도시 미궁 6계층 군영의 아침 일과 시작 과정을 볼 수 있었다.
군영 중앙에 설치된 거대 제단, 그 앞 단상에 선 유르트랑이 인원 점검을 진행한다.
=제2 천공기사단 파견 총원 418명, 사고 0명, 열외 109명, 열외 내용 5계층 순찰 20, 4계층 순찰 20, 6계층 계단 근무 6명…….=
기사단 총원, 각 교단 사제 총원, 팔라툼 술사 연합 총원, 고용 용병 및 모험가 총원.
인원 체크가 끝난 뒤 4대 교단에서 파견된 상급 신관들이 제단의 거대 크리스탈에 성력을 불어넣어 파사의 빛을 발동한다.
눈을 부시게 만드는 하얀 빛이 5초가량 뿜어져 나와 어지간한 정식 축구장보다 넓은 방을 밝히다 사라진다.
그것을 우묵해진 시선으로 바라보던 환인은 작게 턱을 쓸어내렸다.
‘평온의 파동과 전혀 다르군. 정화의 성법을 증폭시킨 거에 가까워.’
정화의 성법은 평온의 파동보다 정신 침해 해소 효과가 덜한 것으로 보였다.
이래서 주기적으로 2계층으로 내려보내거나 인원 교체를 진행하며 정신 침해를 푸는 거겠지.
=이상, 할 말 있는 인원이 있다면 손을 들고 발언하도록. 없다면 아침 조례는 이걸로 끝마치……?=
말하던 유르트랑은 성제가 손을 들고 있는 걸 보곤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난 왜 놀라는 거지?’
이래서 잘못을 저지르곤 편히 못 잔다고 하는 걸까. 유르트랑은 괜히 찔리는 걸 느끼며 물었다.
=성제님, 하실 말씀이 있으십니까?=
=성제님? 성제님이 왜 여기 있어?=
=너 못 들었냐? 어젯밤에 뤼니 1분대장이 모셔왔다더라.=
=갑자기 귀빈 막사가 사용 중으로 표시되더니 성제님이 거기 계셨나 보네.=
=……쳇.=
=쯧.=
평범한 속닥거림 사이로 들려오는 혀 차는 소리에 유르트랑은 살기를 확 일으켜 그쪽으로 날렸다.
머리가 맑아진 지금 저놈들이 하는 꼴을 보니 자신이 어제 얼마나 겁대가리 없는 짓을 저질렀는지 뼈저리게 느껴진다.
부단장의 서슬 퍼런 기세에 황급히 입을 다물고 고개를 돌리는 중급 기사들.
환인도 그 소리를 들었지만 조금도 신경쓰지 않고 유르트랑이 서 있는 단상으로 걸어가며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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