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궁기담-612화 (612/813)

611 잊혀진 옛 도시 미궁

옛 고성으로 들어온 일행의 이동은 거침없었다.

예민하게 주의하는 것은 이형종의 출현과 함정의 유무.

대열은 선두에 환인과 아영. 그 뒤에는 안느가 서고 사이에 비상과 백려강, 이어서 제2 천공기사단 기사 4명, 마지막으로 이실리테가 뒤따르는 1자 대형이다.

두 번째 방문이지만 역시나 이번에도 술법 함정이 적었다.

“이번 방에는 설치된 술법 함정이 있나.”

=……아뇨. 안보임다.=

미로에 가까운 구조를 지나며 옛 고성 동쪽 구역으로 향하는 길에 아영과 유심히 방과 복도를 전부 살폈지만, 술법 함정을 단 하나도 발견하지 못한 것.

중간에 리민이 술법 함정을 건드렸던 벽화 쪽을 재확인했지만, 한 번 발동해서인지 술법 함정은 없었다.

그 외에 마주치는 이형종은 전부 그리모암의 강력 효과에 본격적으로 적응하기 위한 환인과 아영 + 백려강의 합격으로 정리되었다.

촤좍— 뻐벙!

끄롸가각……!

이형종의 뱃가죽에 광명창으로 간단한 상처를 낸 뒤 그 자리에 영혼 폭발 구슬을 삽입, 터트리면 우르거든 비라크든 몸통의 1/3 가량이 사라진 채 내장을 전부 쏟아내며 버르적거리다 죽는다.

깔끔한 환인의 전투 방식에 비해 아영과 백려강의 합작은 무식하게 이뤄졌다.

=아영!=

꽈르르릉!!

=어! 흐압-!=

콰직! 쯔컥—

백려강의 벼락 화살(번개 화살보다 강화된 발사체)에 머리통이 정통으로 적중, 우르거가 일시적인 그로기 상태에 빠지면 아영이 암살자의 걸음으로 우르거의 뒤로 돌아간다.

그리고 발뒤꿈치 내려찍기로 경추를 부수고 모가지를 360도 돌려버린 뒤 골통을 뽑아버리는 식.

쿠, 쿠어억!!

=이게!=

우직, 콰득- 뚜두둑!

저항이 심하면 관절을 박살 내 머리를 척추뼈째로 뽑아버리는 짓도 서슴지 않고 저지른다.

자기 상반신만 한 우르거의 머리통을 뽑아온 아영에게 환인이 말했다.

“인간형 상대로는 실력 발휘가 수월하지만, 괴물 형태는 아쉬운 점이 많군.”

=헤헤. 아무래도 암살자다 보니까…….=

우르거는 차기 카락스의 송곳니였던 아영답게 백려강의 가벼운 조력으로 간단히 해치우지만, 비라크는 보기에도 위태로울 전투법을 선보였다.

아래쪽은 전갈 몸통이고 위쪽은 말미잘인 키 3m가량의 괴물인 비라크. 그걸 상대로는 말미잘 쪽의 촉수 채찍 공격과 전갈 쪽의 집게 공격, 독액 발사 공격을 위태롭게 피해가며 관절, 갑각의 틈새를 박살 내다시피 했던 것.

환인이 절제미가 돋보이는 동작으로 촉수 공격을 회피, 몸통을 적당히 자른 뒤 영혼 폭발로 폭사시킨 것에 비하면 아영은 비라크를 표현 그대로 완전히 박살 내버리는 거다.

=그, 그래도 최대 장점을 안 쓰고 잡은 거니까요! 제 실력의 30%밖에 내지 못한 거예요!=

감각 과민증을 전혀 발휘하지 못하는 차림 탓에 그렇다고 변명하는 아영이지만, 그 정도는 환인도 눈치채고 있었다.

“넌 무기부터 장비까지 전부 새로 맞춰야겠군. 백려강의 장비도 궁사용으로 주문해야겠고.”

=저, 저도요? 저는 환인 오라버니께서 쓰셨던 이거면 충분해요!=

“전혀 충분하지 않다. 그건 아무런 술법도 부여되지 않은 평범한 의복이다. 나 정도 되는 무술 실력자라면 큰 의미가 없겠지만, 네 상태에서는 그걸로 버티는 것은 무리겠지. 더욱이 앞으로 갈 미궁의 위험도를 생각해보면 더욱더.”

=웃. 네에…….=

콰광!

쿠워어어억—!

크르아아아아—!!

그때 지나왔던 복도의 벽이 크게 터지며 세 마리의 우르거가 재차 방에 난입해왔다.

우르거의 퉁방울 같은 눈알이 벌겋게 물들어 희번덕거린다. 벼락활 유리텔의 폭음에 어그로가 단단히 끌린 모양새.

천공기사단의 기사들이 뒤에서 출현한 이형종 무리에 화들짝 놀라 무기를 빼 들 무렵, 안느는 이미 반쯤 날아서 가장 우측에 선 우르거의 정수리를 워 해머로 내려찍고 있었다.

쿠지직!

청색 운무로 감싸인 해머 헤드가 단 한 차례 내려찍었을 뿐이지만, 힘의 3요소가 완벽하게 갖춰진 일격은 5급 이형종의 강철만큼 단단한 두개골을 두부처럼 뭉개버린다.

“남은 것은 내가 정리하지.”

벼락활을 드는 백려강과 다중 검기를 띄운 이실리테를 말린 환인은 흑황색 반코트를 휘날리며 날듯이 우르거를 향해 질주했다.

쿠와아아악!!

그워—!!

키 차이가 40cm는 나는 두 마리는 동족을 죽인 안느보다 위압감을 뿌리는 환인에게 더 어그로가 끌렸다.

덩치가 더욱 커 4m에 달하는 우르거가 검은 화살처럼 달려오는 환인에게 거대한 몽둥이를 휘두른다.

그것을 환인은 피하지 않고 다리에 힘을 집중, 초승달을 그리는듯한 깨끗한 하이킥으로 몽둥이를 되받아쳤다.

콰쾅!

도무지 정강이뼈와 통나무 몽둥이가 맞부딪쳤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폭음이 터져 나왔지만, 환인에게 가해진 부담은 정강이가 살짝 따끔한 정도.

‘그리모암의 강력으로 향상된 신체, 중급 정령 강령, 여기에 천릉의 방어력이 더해지니 이런 무식한 짓도 가능하군.’

콰우우우—!!

몽둥이째로 팔이 젖혀져 상체를 훤히 드러낸 우르거가 폭급한 포효를 지르며 젖혀진 팔 근육이 두 배로 두꺼워질 만큼 힘을 준다.

이대로 내려쳐 환인을 피떡으로 만들어버리려는 모양새.

하지만 쿵! 진각으로 가속도를 끌어올린 환인의 신형이 일순간 사라지는 게 먼저였다.

환인의 눈에 훤히 보이는 빈틈과 턱. 거기로 들어가는 높이 4m의 점프 니킥.

콰직, 아래턱이 완전히 박살난 우르거는 뇌진탕이 일어난 것처럼 풀리고 흔들린 눈으로 그어억, 피와 침을 폭포처럼 흘린다.

“흡!”

이어 몸을 360도 공중 회전한 환인은 발뒤꿈치로 우르거의 광대뼈를 정확히 돌려찼고.

뻐걱!

끔찍한 소리와 함께 우르거의 얼굴 거죽이 안면 두개골과 함께 뜯겨나가 옅은 분홍색을 띠는 뇌가 그대로 노출되었다.

…—! ……!

안면이 뜯겨나간 우르거는 벼락을 맞은 것처럼 퍼덕거리다 뇌를 쏟아버리며 쿵— 쓰러졌고, 환인은 그쪽에 시선조차 주지 않은 채 심핵력과 영기를 일부 주입한 광명창을 뒤이어 휘둘러 허공을 베어냈다.

촤악!

그 결과는 환인에게 몽둥이를 휘두르려던 우르거의 반갈죽으로 이어졌다.

짚단처럼 갈라져 철퍽, 내장과 피를 쏟아내며 절명하는 우르거.

=…….=

=…….=

=…….=

천공기사단의 기사들은 반쯤 뽑은 검을 마저 뽑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집어넣지도 못한 어정쩡한 자세로 굳었다.

눈 앞에 펼쳐진 현상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옛 고성 우르거는 야생 우르거보다 더욱 난폭하고 체구 또한 단단하다.

하늘이 탁 트인 바깥도 아니고 이런 좁은 곳에서는 그들로서도 1:1로 옛 고성 우르거를 해치우기 어렵다.

그런데 저 인간은 뭐란 말인가. 성제라고 했잖아. 성제는 영혼사 아니었어?

굳어있던 기사들의 귀에 성제가 정령 기사, 검희와 대화를 나누는 것이 흘러 들어간다.

=별로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이네. 뭐가 맘에 안 들어?=

“생각보다 효율적이지 못하군.”

=제 눈에는 군더더기 없이 무척 매끄럽고 깔끔한 2연격이었어요.=

“생각한 대로 몸이 움직여지니 깔끔하기야 하지만, 영혼술을 다루는 것보다 동작의 낭비와 시간 소모가 크다. 가까이 붙으니 전황의 확인도 원활하지 못하고.”

=그것도 그렇겠네. 도령이 뒤에서 지팡이 한 번 휘두르면 펑펑 터져 죽을 테니까.=

……뭐? 5급의 옛 고성 우르거를 지팡이 한번 휘둘러 터트린다고?

그러고 보니 빛의 창이 휘두르고 지나간 자리에 꼭 폭발이 일어났었지. 혹시 그게…….

=주인님이 뒤에서 지시를 내려주시는 쪽이 저도 더 마음 놓이긴 해요.=

=응. 강력까지 완성했으니까 우리보다 더 잘 싸우겠지만 말이야.=

“그건 앞으로 천천히…….”

뀨으~

=악! 안돼!=

입을 열던 환인은 아영의 비명에 말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부리 끝에 노란 위상석을 문 비상이 먼저 눈에 들어오고 그런 비상에게 두 손을 허우적거리며 당황하는 아영도 보인다.

=그거 지지야, 지지! 아악! 먹으면 안 돼!=

삐?

……뀻!

=위상석은 먹는 거 아니라니까! 그거 먹으면 오빠가 이놈 한다!? 아아! 야, 비상아 제발!=

뀨히히

=……아영이 쟤는 뭐 하는 거래?=

놀림당하는 줄도 모르고 비상에게 애원하는 아영을 잠시 구경하던 환인은 피식 웃으며 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내 전투 포지션에 대한 것은 앞으로 천천히 조율하기로 하지.”

=엉.=

=네, 주인님.=

파티 구성 요소를 배분할 때 자신은 후방 지원 쪽으로 생각했었다. 그리고 파티가 완성된 현재, 이실리테를 제외하면 다들 이중 직업을 습득한 상황이다.

안느는 정령과 성술을 다루는 기사. 백려강은 바람 술법과 검술을 익힌 궁사. 아영은 성술과 암살 체술을 펼치는 암살 성직자.

자신이 생각해둔 직업적성을 200% 만족하는 그녀들의 특성. 여기에 백려강이 궁술에 두각을 드러내며 궁사로서 실력을 빠르게 쌓아나가는 중이다.

자신의 역할인 후방 원호와 보조 지원 중 후방 원호를 백려강이 가져간 상황. 다들 하나 이상의 포지션을 잡다 보니 그는 어떤 포지션을 잡아도 문제가 없는 상태가 된 것.

환인은 키키 웃는 비상에게서 위상석을 받은 뒤 아영에게 넘겨주며 말했다.

“저녁이 오기 전까지 6계층 왕족 거주구로 넘어갈 생각이니 부산물 채집은 적당히 해도 된다.”

=옙.=

“그럼 출발하지.”

좀 전보다 더욱 주눅이 든 천공기사들을 재촉해 환인은 고성의 깊은 곳으로 향했다.

첫 술법 함정은 옛 고성 동쪽 구역에 근처에 도달하고 나서야 발견할 수 있었다.

지도에 14번으로 표기된 방, 알현 대기실처럼 웅장하게 치장된 장소의 동쪽 벽에는 화려한 폴딩 도어가 붙어있었는데 시퍼런 위상력이 그 문에서 소용돌이치고 있는 걸 본 것이다.

=오빠. 저 문에서 술법 함정 특유의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어요.=

아영도 그 문을 가리키며 미간을 좁혔을 때, 네 명의 플라비우스족 기사 중 안느처럼 은색 머리카락이 특징인 단발의 여기사가 꿀꺽 침을 삼키며 입을 열었다.

=성제님. 저 문은 4계층에 유일하게 드러난 함정 문으로, 건드리면 시끄러운 경보음이 울리며 주변에 무작위로 이형종 12마리가 생성되는 함정문입니다. 안쪽 5계층의 6급 이형종 들도 소환되기에 무척 위험한 함정입니다.=

“…….”

지도에서 동쪽 구역과 연결되지 않는 문이기에 어떤 의미인가 했더니 그런 거였나.

여기사에게 고개를 끄덕여준 환인은 오픈핑거 글러브를 벗고 문을 향해 손을 뻗은 채인 아영에게 물었다.

“술법 함정이 어떻게 느껴지지.”

=……뭔가 배배 꼬인 느낌임다. 아니, 소용돌이인가?=

그녀의 감각 과민증이 함정의 파악에 도움을 주고 있나보군.

“실제로 위상력이 소용돌이처럼 휘몰아치고 있으니 정확한 표현이다. 해체할 수 있겠나.”

기사들이 술렁이는 소리는 안 들리는 것처럼 아영은 주먹을 불끈 쥐며 대답했다.

=해제해보겠슴다.=

“실패해도 뒤에 우리가 있다. 부담 갖지 말고 도전해봐라.”

=옙!=

장갑을 둘 다 벗은 아영이 손을 풀며 함정문으로 다가가고, 환인은 여자친구들에게 손짓해 전투 준비를 지시했다.

기사들도 각오를 다지며 검을 뽑고 술법과 주문으로 자기 자신, 혹은 무기에 강화술을 건다.

환인은 아영의 뒤를 지켜주는 것처럼 서서 그녀의 함정 해체를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았다.

술법 함정을 익히기 위해서는 가장 선행되는 조건이 있는데, 바로 직업자일 것이다.

술법을 해제하기 위해서는 위상력을 다룰 수 있어야 한다. 각성하지 못한 일반인은 위상력을 깨우치기도 어렵거니와 손끝보다 더 섬세하게 위상력을 다루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

같은 이유로 전사나 투사 같은 근접 직업자도 제외된다.

위상력 제어보다는 신체 강화에 중점을 두는 위상력이기에 다소 난폭하다는 게 그 이유다.

두 번째로는 높은 등급의 직업 급수를 요구한다.

위상력의 제어는 등급이 높을수록 원활해진다. 그리고 최소 3급은 되어야 생각대로 위상력을 다룰 수 있다.

이 때문에 높은 급수를 요구하는 것.

술법사나 엽사 직업자가 술법 함정에 적합한 직업으로 분류되는데 그중에서 손끝의 감각은 물론 위상력도 세밀하게 조작할 수 있는 엽사 계통이 추천되지만…….

=…….=

술법사도 못할 건 없다.

아영은 손끝에 감각을 집중해 술법 함정의 소용돌이 형태와 흐름을 신경 써서 감지한다.

‘와류가 하나, 둘, 셋, 넷…… 4급 함정이야. 저 날개 달린 기사들이 긴장하는 이유가 있는걸?’

술법 함정은 보통 다섯 단계로 나뉜다.

최저 1단계부터 최대 5단계로 2급 함정부터는 해제에 실패하면 목숨을 잃을 위험성이 발생한다. 4급 정도 되면 함정사는 확실하게 죽는다고 봐야 한다.

5급 함정은 실패하면 함정사는 물론 동료까지 쓸려나갈 수 있다.

=후우…….=

위상력 소용돌이의 와류 흐름을 절반가량 읽어낸 아영은 긴장감이 가득한 숨을 길게 내쉬었다.

미궁에 들어와 처음 함정 해제를 시도할 때가 생각나는 긴장감.

술법 함정 해체 방식은 이 와류를 얼마나 매끈하게 만드느냐에 달려있다.

완벽하게 해제하면 아무런 일도 안 생기지만, 실수하면 할수록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는 식이다.

이 함정으로 말하자면 살짝 실수하면 1마리의 이형종을 소환하고, 대실수를 저지르면 12마리의 소환에 이어 위상력 소용돌이의 폭발로 함정사도 크게 다치는 식.

=…….=

퐁퐁퐁—

아영은 집중 끝에 파악한 타이밍으로 세 곳 와류를 만들어내는 위상력의 비틀림을 뽑아냈고, 소용돌이는 약간의 흔들림과 함께 다소 부드러운 소용돌이로 변했다.

그리고 그 흔들림마저 안정화되었을 때, 마지막 네 번째 비틀림을 뽑는다.

훅—

와류를 만들어내던 비틀림이 모두 뽑힌 술법 함정은 현실의 소용돌이가 사라지는 것처럼 그 회전이 옅어지다가 어느 순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후아. 해제 했슴다. 이 함정의 해제는 비교적 쉬운 편이었네요.=

“그런가.”

=해제 난이도가 높은건 해제에만 5시간씩 걸리고 그런다고 배웠슴다.=

“그렇군. 수고했다.”

꽤 긴장했는지 이마의 땀을 훔치는 아영을 쓰다듬어준 환인은 좀 전까지 위상력의 소용돌이가 맴돌던 경혈을 응시했다.

이런 식이어서 함정의 종류를 알아내기 어렵고, 함정의 종류를 몰라도 해제는 가능하다는 거였군.

‘유체동역학이나 수력학을 익히면 술법 함정에 이해도가 높아질까.’

유체라기보단 기체 쪽일 가능성도 있으니 기체역학도 도움이 될지 모른다.

노트북에 챙겨온 자료 중에는 당연히 이런 역학도 존재하니, 환인은 아영을 시켜 공부하게 할 계획을 세우면서 옛 고성 동쪽 구역으로 넘어갔다.

옛 고성 북쪽 구역이 왕성의 초입, 방문객을 맞이해 왕성의 화려함을 보여주는 곳이었다면 동쪽 구역은 왕성의 관리에 필요한 일상 실용 구역을 컨셉으로 하고 있었다.

물론 북쪽 구역과 마찬가지로 낡고 헤진데다 풍화되어 먼지가 가득한 곳인데, 이곳은 화려함이 제거되어 벽돌이 그대로 노출되어있거나 부엌, 세탁실, 식당, 기숙사실등이 계속해서 반복되는 구역이다.

환인 일행은 방을 지나면 방이 나오는 기이한 공간을 지나며 6계층 왕족 거주구로 올라가는 계단을 향해 계속해서 이동했다.

=북쪽 구역에도 6계층 계단이 있지만, 그곳은 폐쇄되어 현시점에서 6계층으로 올라갈 방법은 동쪽 구역에 있는 계단 하나뿐입니다.=

“미궁은 항상성이 있어 개조가 불가능한 게 아니었습니까.”

=통상적으로는 성제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하지만 미궁 내에 마을을 형성한 흐라스린드의 미궁처럼, 미궁이 성장할 때 혹은 오랫동안 한 장소를 같은 형태로 유지시키거나 부수면 미궁 또한 그에 대한 변화를 일으킵니다. 그러한 요소를 노려 미궁을 변화시킨 곳이 바로 잊혀진 옛 도시 미궁입니다.=

원래대로라면 알려주어서는 안 될 기밀 정보다. 하지만 위에서 내려온 지침과 환인의 아우라, 그리고 전투 능력에 위압 당한 은색 단발 여기사는 환인이 묻지 않은 것까지 시시콜콜 알려주고 있었다.

=6계층으로 올라가 보시면 성제님께서도 이해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그렇습니까. 기대되는군요.”

동쪽 구역에 출몰하는 이형종은 유럽권의 이야기에서 등장하는 악령, 버그베어라 부르는 거인형 수인 괴물이었다.

나름 철판 건틀릿과 스파이크 숄더등을 걸치고 피 묻은(누구의 피일까) 가시 철퇴 등을 장비한 이형종이었지만, 일행의 화력에는 크게 힘을 쓰지 못했다.

까다로운 점이라면 우악스러운 활이나 석궁을 장비한 큰 콜브, 큰 호브들도 함께 출현한다는 것일까.

꽈과과광—!! 꽈르르릉—!

동쪽 구역의 방은 하나같이 거대해 폭이 50m*50m를 넘기 일쑤였는데 그런 방에서 이형종과 마주치면 일행은 20분, 30분씩 시간을 보내야 했다.

벼락활의 우렛소리에 문이 달리지 않은 구조 특성상 소릴 들은 이형종이 사방에서 몰려왔던 것.

=이게 몰이사냥이구만!=

한 번에 대여섯 마리씩, 많을 때는 10마리도 몰려왔지만 위기 상황은 단 한 번도 벌어지지 않았다.

기사들도, 환인도 나설 일 없이 네 명 여자가 오랫동안 합을 맞춘 것처럼 이형종을 썰어나갔기 때문이다.

원거리 무기를 쥔 큰 콜브, 큰 호브는 백려강의 벼락활에 튀겨져 죽었다.

3m 키에 걸맞은 양손 도끼, 양손 철퇴, 톱날 창, 양손 검을 든 버그베어는 이실리테와 안느에게 도륙당했으며 아영은 암살자처럼 소리 없이 움직여 빈틈을 드러내는 버그베어, 큰 호브와 큰 콜브를 죽여나간다.

특히 아영의 활약이 환인의 기대 이상이었다.

성투술로 끌어올린 신체 능력에 환인이 장만해준 중핵 야피 갑옷의 강화 효과로 이형종의 목뼈, 척추, 심장 등 급소만 부수고 이탈하는 다소 단순한 전법.

‘게임 같은 데서는 암습에 두 배, 많으면 열 배의 피해를 주곤 한다더니.’

중간부터 그녀에게 중급 정령 강령을 걸어주었더니 정말 어둠 속의 암살자와 다를 바가 없어졌다.

자신을 인지하지 못한 이형종의 뒤로 접근해 단 일격에 목뼈를 부숴버리고 다시 어둠 속으로 숨어버리니 아무리 이형종이 몰려와도 혼란에 빠지기 일쑤였던 거다.

=우와, 이게 정령 강령…….=

더욱이 자신의 일격에 5급 이형종의 목뼈가 그대로 부러져 죽으니 이건 공격을 한 아영이 오히려 놀라 자빠질 지경이다.

꾸궁!

=…….=

=…….=

=말도 안 돼…….=

딱 한 번, 17마리에 달하는 버그베어 무리가 몰려왔을 때는 환인이 최대한 범위를 좁힌 6중첩 영혼 폭발 feat.심핵력으로 일거에 쓸어버렸다.

남들에게는 시야를 가로막는 더러운 미궁이지만, 환인에게는 일거에 쓸어버릴 수 있게끔 적을 예쁘게 모아주는 예쁜 미궁일 따름.

중간에 환인 일행의 소음에 피해(전투 도중 다른 이형종의 난입 등) 보거나 이끌린 다른 모험가 파티, 탐험가 파티 등이 화난 표정으로 나타났지만, 환인의 정중한 사과와 곧장 6계층으로 올라간다는 설명에 수긍하고 다시 멀어져갔다.

수긍하지 못하면 어쩔 것인가.

아무리 봐도 희귀 직업자를 넘어서는 한 명을 포함, 평균 6.5급에 이르는 5인 파티에 천공기사단의 기사 넷까지 끼어있다.

예의 없는 짓거리를 했다간 머리통이 쪼개질 뿐이다. 속으로 느그 엄마 날아간다고 욕할지언정 겉으로는 수긍하며 지나갈 수밖에.

그렇게 알게 모르게 ‘꼬우십니까? 꼬우면…… 아시죠?’를 시전하며 동쪽 구역의 북쪽에 위치한 6계층의 계단에 도달한 환인은 계단 아래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은발 여기사에게 6계층의 지형 정보를 제공 받았다.

6계층의 지도는 양도 불가에 게재 불가였기에 슬쩍 보여주는 식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환인에게는 충분했다.

크고 작은 방 10개와 그런 방을 전부 합한 것과 비슷한 크기의 압도적인 방 하나.

심핵이 있을 장소가 명백한 지도를 머릿속에 담은 환인은 그들과 함께 6계층의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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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압도적인 폭력은 탁월한 성능의 예의 주입기라고도 하죵

[작품 설정]

옛 고성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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