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0 천공성 파르세타
그날 저녁에는 팔라툼 비술사의 탑에서 소포가 도착했다.
팔라툼에 도착한 다음 날, 유르파가 비술사 조합을 찾아가 주문했던 아영의 방어구가 완성되어서 도착한 것.
=아영아~. 자기 좀 불러줄래? 정원에서 비상이랑 있을 거야.=
=넵!=
콩콩콩, 백려강과 함께 유르파가 부탁한 위상석 분쇄 작업 중이던 아영은 곧장 뒤뜰 정원으로 뛰어나갔고.
“…….”
뀨으으~
팔짱을 낀 채 비상과 눈싸움 중인 환인을 발견하곤 그 뒷모습에 멈칫, 우물쭈물했다.
피부에 닿는 분위기만 봐서는 심각하기 짝이 없다. 함부로 말을 걸었다간 경을 칠 느낌이라고 할까.
‘어쩌지? 말 걸어도 괜찮나?’
“무슨 일이지.”
약간 날카로운 목소리. 뒤돌아보지도 않고 묻는 소리에 아영은 반사적으로 차렷 자세를 하며 대답했다.
=유, 유르파 언니가 오빠를 찾아서요!=
“그래.”
짧게 대답해준 환인은 반항적인 시선을 던지는 비상과 다시 눈싸움을 시작했다.
자신의 시선에 자못 불퉁한 표정으로 꾸르륵- 뀨우으- 울면서 꽁지를 살랑살랑 흔드는 모양새. 무언가 마음에 강하게 들지 않는 것이 있을 때 보여주는 모습이다.
“대체 왜 그러는 거냐.”
뀨엣! 뀨우! 뀨으우으!
“실루는 아직 새끼다. 지켜줘야 할 대상이지.”
뀨삣! 쀼비빗!
자신이 실루 정도일 적에는 일도 시키고 그러지 않았냐는 투정에 환인은 고개를 작게 가로저었다.
“그때는 너 외에는 아무도 믿지 못하던 시기였다. 거기다 나는 하지 못하는 비행을 넌 할 수 있었지. 네 도움이 절실히 필요했기에 어쩔 수 없었다.”
쀼……? 쁘에, 큐으….
“너와 자주 놀아주지 못하고 따돌리는 분위기를 만든 것은 반성하지. 하지만…… 너는 쿠에다. 그녀들은 사람이고. 그 차이를 인정하지 못하면 너와 나의 의견은 쭉 이렇게 평행선을 그릴 수 밖에 없다.”
…….
뚱한 표정으로 풀썩, 잔디밭에 주저앉은 비상은 환인을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바라보다 쀳! 고개를 홱 돌렸다.
나 삐졌다는 명백한 표현.
환인은 그런 비상에게 다가가 바람처럼 부드러운 촉감의 머리 깃털을 천천히 쓰다듬기 시작했다.
아까는 ‘내 몸에 손대면 마구 쪼아버릴 거야!’하며 도망 다녔었는데. 지금은 쓰다듬는 걸 허락한 것을 보면 조금 화가 풀렸다는 뜻이겠지.
환인은 그렇게 잠시동안 쓰다듬어주다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하다.”
쀼으.
됐다고 하지만 대답에는 다 풀지 못한 투정이 진하게 남아있었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할까.
이제까지는 상대적으로 매너를 중요시하지 않는 곳이 많았기에 큰 문제는 없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예식과 예의범절을 강하게 요구하는 곳이 계속 나올 테고, 그런 곳에는 비상을 데리고 들어가지 못한다.
자신을 친구이자 가족으로 여겨서 언제나 같이 있으려 하는 비상에게 그런 상황은 매우 스트레스받는 것일 터.
계속 이런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비상의 컨디션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아니, 100% 문제가 생기겠지. 오늘 천공의 매에게 까칠하게 굴며 시비를 계속 걸었던 것처럼 말이다.
환인은 은근슬쩍 계속 쓰다듬으란 것처럼 머리를 들이미는 비상을 쓰다듬어주다가 입을 열었다.
완전한 해결책은 안 되지만 이거면 비상의 스트레스를 줄여주는 정도는 되겠지.
“오늘은 삼림형 미궁에서처럼 같이 잘까. 이실리테하고는 방에서 자라고 하고, 별을 보면서 둘이서만 말이다.”
……쿠으?
진짜?
“그래.”
큐우!
그제야 투정이 완전히 풀린 것처럼 꽁지깃을 바짝 세우는 비상의 모습에 환인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웃음을 작게 흘렸다.
집 안으로 들어온 아영은 문이 닫히기 직전, 기분이 좋아진 것처럼 정원을 산책하는 비상을 보다가 환인에게 말했다.
=비상이는 진짜 똑똑하네요. 머리도 좋고요.=
“어지간한 사람들보다 더 머리가 좋은 편이지. 용기와 결단력도 있고.”
=음… 오빤 비상이가 새끼일 때부터 같이 지내셨다고 했죠?=
“그래. 일수로 치자면 3년이 넘었나.”
=자기가 쿠에라는 인식이 콱 박혀 있으면 괜찮을 텐데, 사람하고 쿠에하고 반반씩 섞인 상태라서 저러는 거네요. 오빠한테 영향을 많이 받은 거 같고요.=
“중간에 쿠르티가 합류해 비상을 교육하지 않았다면 상황은 더 심각해졌겠지.”
유르파의 고향인 카턴 마을에서 비상이 떼를 쓰다 이실리테와 싸웠던 것처럼 말이다.
라벤더색 머리카락이 부스스해질 정도로 머릴 긁적였던 아영은 머리카락을 툭툭 쳐서 정돈하며 아쉽다는듯이 말했다.
=비상이가 아예 쿠에답지 않게 확 성장했다면, 성수가 아니라 신수 비슷한 느낌으로다가 자랐으면 오히려 왕성 같은 곳에 데려가는 것도 무례가 안됐을 텐데.=
“…….”
비상의 일로 생각이 깊어지는 가운데 거실로 들어간 환인은 거실 한복판에 갑옷 거치대가 세워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분홍색과 붉은색이 마치 기름띠처럼 아름답게 물든 가죽 갑옷. 제법 여성의 신체 특징을 드러내는 디자인이다.
가동성과 방어력에도 신경 쓴 듯 명품의 느낌이 물씬 나는 가운데 그 소재를 알아차리고 유르파에게 물었다.
“산란못 미궁의 중핵 가죽이군요.”
=응. 희귀한 가죽이잖니. 그것도 중핵의 가죽. 팔기는 아깝고 그렇다고 쓸 곳도 없어서 보관만 하고 있었는데 마침 아영이랑 잘 맞을 거 같아서 주문했어. 대금은 대신 가죽 갑옷 1벌 분량을 줬고.=
“잘했습니다.”
그날 획득한 중핵의 가죽은 가죽 갑옷으로 총 5벌 분량.
남은 걸 쓸 일이 있을까 싶지만, 놔두다보면 언젠가는 쓰이겠지. 이 가죽갑옷의 수선에 쓴다던가.
환인은 다시금 가죽 갑옷을 세세하게 살폈다.
니오네브레스의 디자인을 선도하는 히스론드 주도에서 만들어서 그런지 환인의 눈에도 제법 훌륭하다.
튜닉 계통의 가죽 갑옷 상의는 가슴과 명치 같은 급소를 여러 겹 덧대 방어력을 보강하면서도 여성 특유의 곡선미를 해치지 않는 디자인이다.
레더 레깅스, 하의는 지구의 레깅스를 연상시킬 정도로 매끈하고 늘씬한 민무늬지만, 무릎 위까지 올라오는 롱 레더 부츠를 신으면 붉은색과 분홍색의 무늬에 맞춰 물과 불을 연상시키는 세공으로 변모한다.
레더 글러브는 오픈 핑거 타입으로 부츠와 한 쌍 되는 느낌에 머리는 헬멧 대신 후드 식으로 덮고 벗을 수 있게 되어있다.
전체적으로 실용성보단 예술 쪽에 치우친 무구 느낌이다.
=오~ 잘 어울려. 전혀 암살자라는 느낌이 없는걸.=
=색이 너무 밝고 화려해서 안 익숙한 느낌임다.=
가죽 방어구를 전부 착용한 아영은 자못 어색함을 감추지 못하고 가죽 갑옷을 만지작거리지만, 거치대에 걸려있을 때와는 다르게 그녀가 착용하니 붉은색 바탕에 분홍색이 불길처럼 타오르는 형태라 무척 잘 어울린다.
=활동성은 어때?=
백려강이 묻자 아영이 가볍게 풋워크를 하며 주먹질과 발차기를 몇 번 펼쳐본다.
팡- 파방! 팡파팡! 쉭-!
=편해. 조임도 적당해서 근육을 잘 잡아주고 움직이는데도 불편함 없고.=
주먹을 내지를 때마다 공기가 터져나가고 플뢰족의 날씬한 허벅지가 대기를 가르니 마치 검으로 허공을 벤 듯한 소리가 발생한다.
=아영아. 마도기의 발동어는 룸탄이야. 한 번 해봐.=
=넵. [룸탄].=
부우웅—
=와. 아름다워요.=
예술에 나름 일가견이 있는 백려강이 그리 평가했을 만큼 서너 가지 빛이 갑옷 전체를 한 바퀴 휘감고 사라지는 발동 현상은 무척이나 아름다워 보였다.
반대로 습격에는 전혀 도움 되지 않을 듯하지만 말이다.
환인은 티 나게 기뻐하며 백려강과 유르파에게 꾸벅꾸벅 허리 숙여 감사하고 자신에게도 감사를 전하는 아영에게 말했다.
“그럼 이실리테가 일어날 때까지 성능 테스트 겸 대련해보도록 하지. 무기 챙겨서 뒤뜰로 나와라.”
=넵!=
다음날.
비상과 한 약속을 지키느라 정원에서 밤하늘을 지붕 삼아 모포를 두르고 비상의 몸에 기대서 밤을 지새운 환인은 서서히 동이 터오는 동쪽 하늘로 시선을 주었다.
어둠에 물들었음에도 하얗게 보이는 왜곡벽 위로 새빨간 태양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낸다.
뀻.
“그래. 잘 잤나.”
태양이 완전히 떠올라 물에 탄 잉크색 같은 주변이 환해졌을 때, 환인은 다시 밀려오는 구름의 바다 미궁 자료집을 살폈다.
어제저녁에 무장부 부차관이라는 플라비우스족이 주고 간 팔라툼의 세 곳 미궁 중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된 미궁 자료다.
나머지 두 곳은 평범하게 출입 가능한 미궁인데다 정보도 자료도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는반면, 천주산 기슭에 입구가 있는 밀려오는 구름의 바다 미궁은 모든 게 일급 기밀로 취급된다.
내부 지형, 내부 환경, 내부 출몰 이형종. 전부 다.
‘외부에 유출하셔서는 안 됩니다. 명심하여주십시오.’
부차관이 두 번 세 번 강조하고 돌아간 자료이기에 호기심 삼아 읽기 시작한 거였는데 결국 다 읽고 말았다.
이 미궁도 거인숲 미궁처럼 격리 변화형 미궁이다.
넓이는 추정 불가.
깊이도 추정 불가.
지형은 구름 위에 솟은 길고 뾰족한 봉우리가 징검다리처럼 형성되어있음.
출몰하는 적은 각종 비행 타입.
여태까지 중핵은 발견된 적이 없으며 길이는 867번째 봉우리가 끝.
심핵의 위치 또한 알려지지 않음.
신성한 천주산에 붙은 미궁이며 플라비우스족 기사들의 비행 훈련을 겸할 수 있는 귀중한 장소여서 미궁의 성장과 위상력의 발생, 감소, 이형종의 토벌로 회수한 에너지까지.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천왕궁에서 직접 관리하는 미궁이다.
‘제법 재미있는 미궁이지만…….’
딱히 가볼까 하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위상석의 출토 확률이 다른 미궁에 비해 3배가량 높고 반전 개체까지 무기를 쥐고 등장하기에 녹슬고 풍화된 마도구에서 제법 새 물건인 마도기까지 얻을 수 있는 장소다.
하지만 금전적인 면에서는 그리 아쉽지 않은 터라 별로 끌리지 않는다.
차라리 지하 폐허 계층 미궁인 잊혀진 옛 도시의 미궁이 더 관심 간다.
각종 함정이 즐비한데다 5급 미궁이라 함정 해체 훈련도 될 테고 말이다.
달칵.
삐! 삣.
문이 열리는 소리에 뒤를 돌아본 환인은 열심히 날갯짓하며 달려오는 실루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오는 여자친구들을 볼 수 있었다.
환인도 모포를 걷으며 자리에서 일어나고 비상도 몸을 일으켜서는 날개를 활짝 펼쳐 기지개를 켠다.
삐이~
“…….”
자신의 다리에 비비적거리는 실루를 내려다본 환인은 토파즈보다 한층 짙은 보석 같은 눈동자에 음, 턱을 쓸어내렸다.
비상이 처음 진화한 게 언제쯤이었지. 속성력을 지금부터 조금씩 급여해도 괜찮을까.
크라빈에서 만났던 숲 수호자는 쿠에에게 지나친 속성력의 투여는 독이 될 수 있다고 했었다.
그 독이 되는 양이 어느 정도인지 감이 잡히지 않아 고민된다.
“…….”
시험 삼아 중급 불 정령을 몸에 강령한 뒤 영기로 불을 일으켜 실루의 앞에 내밀었다.
만약 실루가 유전자에 새겨진 본능을 발휘해 불에 어떤 반응을 보인다면, 하루에 아주 약간씩 급여를 해볼 생각이었다.
삐? 삐이.
하지만 아직 유전자가 채 발휘되지 않았는지 아니면 정체성도 드러나지 않은 건지, 불을 외면하고는 놀자는 듯이 바짓단을 물고 끙끙 잡아당기기만 한다.
‘1단계 진화할 때까지 기다려봐야겠군.’
잠깐 실루를 쓰다듬어준 환인은 각자 몸을 푸는 여자친구들에게 다가갔다.
“그럼 다녀오지.”
=다녀오세요, 주인님.=
=잘 다녀와~. 조사는 확실히 해놓을게!=
점심을 먹고 여자친구들에게 잊혀진 옛 도시 미궁에 대한 자료를 모아보라고 지시한 환인은 비상을 타고 천왕궁을 향해 날아올랐다.
절반 정도를 날아올랐을 때 영혼의 눈을 전개하니 꼭대기에 희미한 반구형의 결계가 시선에 들어온다.
하지만 환인의 시선은 천주산 그 자체에 향했다.
미궁이 있으며 천왕궁의 무게를 무리 없이 지탱하고 있는 히스론드의 영산.
그 천주산의 꼭대기를 향해 빠르게 날아가고 있자니 절벽이라 할 만큼 가파른 천주산 중턱에서 단쌍익의 플라비우스족 기사와 병사들이 우르르 날아올랐다.
그쪽을 중점적으로 살피자 절벽 같은 곳에 활강대와 비슷한 출입장소가 교묘하게 가려진 것이 보인다.
저 벽 안쪽…… 아니, 산 내부가 일종의 요새인 건가.
=거기 접근하는 자는 멈춰라! 감히 지엄하고 고귀한 천주산 정상에 함부로 접근을…… 히익?!=
=뭐야, 누군데 그러…… 흐억! 성제님!=
“…….”
왜 자신을 괴물처럼 보고 기겁하는 걸까. 자신의 명성이 알려진 거라면 그저 놀라기만 하는 게 정상일 텐데.
=시, 실례했습니다! 신원이 보고되지 않은 자가 허가되지 않은 속도로 빠르게 상승하는 것에 긴급 출동이 내려져서……! 아, 아무튼 실례했습니다!!=
“아닙니다. 그보다 당신들의 소속은 어떻게 됩니까.”
=……?!=
보복을 위해 소속을 물어본 거라 여겼는지, 말끔하게 생겨 여자로 오인당할만한 남자가 울먹이는 얼굴로 =제, 제2 천공기사단 소속입니다……!= 쥐어 짜내듯 대답한다.
2기사단이라면 그날 찾아왔던 레아우카라는 남자의 기사단인가.
환인은 괜찮다는 뜻으로 작게 손을 흔들어주며 말했다.
“이런 일로 벌을 내리라 청하거나 하지 않으니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저, 정말이십니까?=
=야…….=
남자의 반문에 그 옆에서 긴장한 표정으로 날개를 퍼덕이던 다른 기사가 눈치를 준다.
=앗, 실례했습니다! 그, 그러면 가시던 잘 가시죠!=
=얌마……!=
=헉! 죄, 죄송…….=
“…….”
코미디라도 찍는 건가.
자신을 보고 기겁한 이유를 확인하려던 환인은 열심히 사과하며 물러나는 기사들을 잡지 못하고 그냥 보내주었다.
그리고 도착한 천주산 봉우리에는 이미 세 명의 플라비우스족이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중 한 명은 액정관, 왕과 왕족의 심부름꾼이라 할 수 있는 미리도르무다.
=성제 예하를 뵙습니다.=
“너무 자주 뵙게 되어 불편함을 끼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아닙니다. 성제 예하를 모시는 것은 저희 액정관 일동에게 크나큰 영광이니 개의치 말아 주십시오.=
‘이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아 하는데. 아까 기사들은 왜 그랬을까.’
그들을 따라 어제 입장했던 천공성의 입구로 들어서니 미리도르무가 양해를 구하고 비상을 물과 바람으로 발톱까지 깨끗하게 씻기고 말린다.
난데없는 강제 목욕에 비상은 조금 불퉁한 기색으로 흥흥거렸지만.
“비상.”
환인이 조용히 이름을 부르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태도를 싹 바꾸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얌전히 환인의 뒤를 따른다.
그리고 입장했던 그대로 원판을 타고 북극성실 앞까지 도달한 환인은 미리도르무와 기사들이 보는 앞에서 비상에게 다시 한번 확답을 받았다.
“집에서도 말했지만, 안에서 조금이라도 소란을 부렸다간 두 번 다시 이런 자리에 널 대동하지 않을 거다. 심각한 사태를 불러일으킨다면 너와 헤어질 수도 있다는 걸 기억해둬라. 알겠나.”
뀨으.
환인의 강조에 비상은 알았다며 고개를 숙이는 한편 속으로 히히 웃었다.
어제 투정을 부렸던 것은 자신을 따돌린 거에 조금 삐져서 그런 것도 있지만, 미운 아이 떡 하나 더 준다고 혹시 투정 부리면 이런 곳에 데려가 주지 않을까 해서 그랬던 건데.
진짜 될 줄이야.
구그그그그—
나지막한 진동과 함께 거대한 문이 열린다.
비상은 환인의 뒤에서 혹시 왕이라는 인간이 자신의 깃털을 뽑아도 세 번은 참겠다고 생각하며 얌전히 서 있었지만.
=와아! 진짜 비상이다!=
=와아아…!=
……뀻.
애라는 말은 못 들었는데?
“비상.”
뀨으.
비상은 콩알만 한 인간의 아이 둘이 자신을 향해 초롱초롱, 눈을 과하게 빛내는 상황에 살짝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여행하면서 본 작은 인간들은 자신을 보면 되게 흥분해서 달려들던데…… 이 인간들은 안 그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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