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8 천공성 파르세타
환인의 눈은 놀이방 같은 구역을 잠깐 향하다 흐릿하고 멍청한 눈동자의 플라비우스족 여자를 차갑게 응시했다.
어린아이들이 이런 상태인데도 나서지 않고 손가락질을 하는 건가.
살기가 일부 담긴 시선에 얇은 토가를 걸친 여자가 살짝 몸을 떨더니 허리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
“…에, 아에. 어아으에…….”
‘벙어리인가.’
선천적으로 발성에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몸에 통역 기관이 있는 한 뜻만 낸다면 의사가 전해지는 것이 아니던가.
무언가 이상해서 영혼의 눈을 약하게 펼쳐 여자를 보니 눈에 흐르는 마력도 탁하고 귀에는 아예 검게 막혀 그쪽으로 생기가 통하질 않는다.
‘귀머거리에, 난시까지.’
환인의 눈빛이 깊어졌을 때 백려강이 환인의 곁에서 작게 속삭였다.
=환인 오라버니. 저분 봉행자에요.=
=진골 왕족의 밀접 하인이나 하녀는 귀머거리에 벙어리에 까막눈을 쓴다더니…….=
=어어, 율이 언니. 플뢰족은 안 그래. 이거 인권 유린 수준이라고.=
=안느, 인권 유린이라는 건 무슨 뜻이야?=
=끄응……. 선천적으로 소리를 못 듣고 말을 못 하는 아이가 흔하겠어? 그러니까 일부러…….=
다소 세상사에 박식한 안느가 설명하자 아영을 제외한 다른 여자들은 충격을 받았다.
아영도 조금 찝찝하다는 표정으로 매끄럽게 빗은 라벤더색 단발을 긁적이려다 손을 내리며 말했다.
=봉행은 라드세아하고 벨티칼에서는 아직도 흥하는 직업임다. 그래서 어려운 집안은 그걸 노리고 일부러 갓 태어난 아기를 그렇게 만들고는 해요. 약을 먹여서 벙어리로 만들려다 실수해서 죽게 만드는 경우도 흔하고요.=
환인은 뭉실거리는 불쾌감을 가라앉히고 두 아이를 놀이방으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 봉행자가 어째서 놀이방을 가리켰는지, 놀이방의 구역에 들어섰을 때 이유를 눈치챘다.
=웅……?
=으응….=
구역에 들어서자마자 조금 높아진 체온으로 할딱이던 아이들의 상태가 금방 정상이 되고 의식을 되찾는다.
몸 상태와 컨디션 이상을 정상으로 조절해주고 치유해주는 최상급 치유 술법진이다.
놀이방으로 꾸며놓은 곳에는 유르파와 아영이 합작해도 만들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조밀하고 섬세한 최상급 치유 술법진을 새겨놓았던 것.
다만 정신을 차렸어도 힘이 없는지 눈을 깜빡이다가 아예 눈을 감아버린다.
환인이 딱 봐도 두 아이의 침구로 보이는 곳에 눕혀주었지만, 어딘가 아프고 힘든 것처럼 환인의 엄지나 검지를 잡은 채 놓아주지 않고 칭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렇다고해서 가만히 있을 환인은 아니었기에 아이들의 손아귀 힘이 빠진 순간 손을 빼내었고, 두 아이는 하는 수 없이 서로를 끌어안고 색색 힘겨운 숨을 내쉬었다.
“저 여자가 저곳에 우두커니 서 있었던 것은 이런 상황에 대비해서인가 보군.”
=…그래도 아직 어린 분들인데 봉행자만 곁에 두고…… 이게 말이 돼? 방치나 다름없잖아.=
정이 많은 안느가 눈썹에 힘을 주며 말하자 유르파도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녀가 느끼기에도 왕을 이렇게 덩그러니 두는 게 이해가 안 갔던 것.
=이상하네. 수석 상안 분은 천왕 폐하를 무척이나 공경하는 모습이었지 않니?=
=네. 그 모습에 거짓은 없었어요. 북극성 문 앞의 기사들도 자신의 임무에 자부심을 느끼는 모습이었고요.=
=이실 언니는 오빨 존경하시고 사모하시니까요. 그런 언니가 사람을 잘못 볼 리는 없겠죠. 혹시 이런 거 아닙니까?=
아영이 좀 전의 대화와 이 상황을 유추해 나름대로 의견을 내본다.
=천왕 폐하는 통찰력이 어마어마하다고 했었잖습니까. 삼쌍익 분들은 폐하 앞에서 속내를 다 들키니까 일부러 피한다던가?=
아무래도 다섯이나 되니 약하지만 집단 지성을 형성한 모양새다. 환인은 자신이 낸 결론과 조금 비슷한 의견에 입을 열었다.
“그 반대겠지.”
=반대요? 천왕 폐하가 일부러 가신들을 물렸다는 말씀이심까?=
“아영 네 의견은 교단에서 선출한 성녀를 들러리로 취급한다는 말과 같다.”
=……앗.=
라드세아의 여왕은 짐승신의 화신체라 불린다. 짐승신이 강신하면 그 육체를 쓴다 해서 붙여진 명칭이다.
벨티칼의 군주도 물신의 강신체라고 하고 메리아놀에도 협의회 위에 땅신님을 추종하는 존재가 있다고 영도의 기록실에서 보았다.
“신과 직접 연결되는 이들을 아랫사람들이 소홀히 하겠나.”
=그, 그치만 그러면 더욱 이분들을 섬길 사람을 붙이는 게 맞잖아.=
안느가 그래도 이해가 안 간다는 이야기에 환인은 손수건으로 두 소년 소녀의 이마에서 땀을 닦아주며 대답했다.
“이 어린 왕들의 알려진 통찰력은 아마도 눈에서 비롯되는 거겠지.”
환인은 자신을 바라보며 눈을 빛내던 두 아이의 눈동자를 생각했다.
그냥 평범한 홍채가 아니라, 실제 태양처럼 이글거리며 일렁이고 그 색을 눈에 고스란히 담은 눈동자.
아드네빌라라는 생물에서 먼저 경험한 덕에 알 수 있었다. 그녀처럼 대상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힘이 이 어린 왕들의 두 눈에 담겨있고, 그 힘으로 자신을 보았다는 걸 말이다.
“하늘신은 달리 태양의 신이라고 하지.”
=그, 그럼…….=
안느의 확신을 바라는 질문에 환인은 그 답을 들려주었다.
“이 아이들은 내 힘을 눈에 담고는 시신경이 과열되어 쓰러진 거라고 본다. 눈의 신경은 뇌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있다. 아직 어린아이들의 미성숙한 뇌는 그 부담을 이겨내기 어려웠던 것일 거다.”
그의 결론이 맞다는 듯, 북극성실의 문이 열리며 삼쌍익과 이쌍익의 다채로운 아우라의 플라비우스족이 서둘러 들어온다.
아니, 서둘러 들어왔지만 대부분은 입구에 지켜서고 그중 한 명만 날듯이 다가왔다.
인간의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는 증거인 8급의 선명한 성술사 아우라가 소용돌이치는 세 쌍 날개의 여자다.
=환인 성제,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샛노란 머리카락을 뭉게구름처럼 휘날리며 다가온 30대 초반의 여자는 환인에게 가볍게 목례하며 지나쳐서는 두 왕에게 다가가 상태를 살폈다.
=닐비나 폐하, 소신 테이아이옵니다. 옥체에 손을 올리는 것을 허하여주시옵소서.=
이어서 이 상황이 익숙한 듯 8급에 이르는 고위 성술을 펼치고 바닥의 술법진을 손봐서 재발동시킨다.
안느의 황색 성술의 빛하고도, 아영의 백색 성술의 빛과도 다른 샛노란 태양색을 담은 빛이 물씬 퍼져 나와 두 어린 왕을 감싼다.
그러자 반응이 즉각 돌아왔다.
=우웅…….=
=…….=
=닐비나 폐하, 정신이 드시옵니까?=
=……엄마?=
비나=루에나, 두 왕 중에서 여자아이가 테이아를 발견하곤 칭얼거리면서 그녀의 품에 안겨든다.
크레아=닐비도 갓 잠에서 깬 아이 같은 얼굴로 부러운 듯 바라보니 테이아는 팔을 뻗어 남자아이도 풍만한 가슴으로 안아주었다.
=두 분 폐하, 몸은 어떠시옵니까?=
=나 괜찮아.=
=저도 괜찮소!=
=다행이옵니다.=
그렇게 테이아라는 이름의 여자가 닐비나를 보듬고 있을 때 아영이 환인의 곁에 슬쩍 붙으며 그의 귀에 자그맣게 속삭였다.
=히스론드의 대공으로 테이아무스 프리엔리 호룸 델이라는 이름의 여자임다. 뒤에 몰려온 사람들도 최소 후작 이상의 직위고요.=
“이쪽을 지켜보고 있었나 보군.”
=따로 도청 마도기는 안 보이는 걸 보면 이 방 전체에 그러한 술법이 걸려있는 거 같슴다.=
북극성이라는 이름의 이 거대한 실내는 말 그대로 온갖 술법이 빼곡히 차 있었다.
영혼의 눈으로 마력의 흐름을 볼 수 있는 환인이라 해도 그 종류를 다 알아볼 수 없을 정도.
오히려 영혼의 눈을 켜면 마력의 흐름이 시야를 일부 가릴 지경이다.
=환인 성제, 잠시 실례하겠소.=
뒤에서 말을 거는 소리에 돌아선 환인은 한 번 본 적 있는 삼쌍익의 7급 빛 속성 술법사 남자를 볼 수 있었다.
거인숲 미궁에서 사절로 왔던 플라비우스족의 대표다.
“두 번째 뵙는군요.”
=본인을 기억해주니 고맙군. 천왕 폐하의 앞에서 나눌만한 이야기는 아니니 이쪽으로 와주시겠소?=
남자의 부탁에 환인은 여자친구들과 북극성 실 입구에서 대기 중인 플라비우스족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일단 짧게 자기소개하지. 본인은 아드우리 홀디스 크아로티잔, 대도시 크아로티잔의 공작이며 팔라툼의 무장 장관을 겸하고 있소.=
“영도의 영혼사인 환인입니다.”
=음. 이미 알아차리신 것 같으니 솔직히 말씀드리겠소. 환인 성제, 그대의 추리가 맞소.=
“역시 그렇습니까.”
시일이 흘러 성인이 되면 힘을 다루는 게 익숙해지겠지만, 현재는 다른 사람들과 마주하지 않도록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는 수뿐이겠지.
=두 분 폐하의 눈은 현재 미성숙하시오. 그로 인해 섭정을 두고 두 분 폐하께서 훤칠히 자라실 수 있도록 모두가 노력하고 있으나 그게 불가능할 때도 있소. 바로 지금처럼 말이오.=
“때때로 아이가 부리는 생떼는 부모도 이길 수 없는 법이지요.”
=음.=
입구에 도착한 환인은 그곳에 모여있던 세 명과 담담히 인사를 나누었다.
셋 다 이쌍익으로 테이아와 아드우리보다 낮은 신분. 이야기는 아드우리가 계속해서 주도해나간다.
=닐비나 폐하께서는 오늘 그대와 만남을 학수고대하고 계셨소. 그러기 위해 신의 눈에 피로와 부담이 쌓이지 않도록 사흘간 관리하였으나…… 아무래도 그대가 유일 직업자라는 이야기는 사실이었군. 그대를 보자마자 두 분께서 과중 피로로 쓰러지셨으니.=
“제 기사들의 영향도 있지 않겠습니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다고 미리 말씀하셨으면 대비하였을 텐데 말입니다.”
=음. 폐하께서는 그리 말하면 초대를 거부할 거라고 하셨소만…… 틀리시오?=
“……정답입니다.”
그것까지 읽었나. 환인은 테이아의 품에 안겨있는 두 왕에게 시선을 잠깐 돌렸다가 물었다.
“기왕 이야기가 나온 김에 묻겠습니다. 두 분 어린 폐하께서는 어찌하여 제게 이만한 호의를 보내주시는 겁니까.”
=몰라서 묻는 것이오, 아니면 확인차 묻는 것이오?=
“믿기지 않아 확인차 묻는 겁니다.”
담담한 환인의 태도에 뒷짐을 지고 서있던 아드우리는 후우, 곤란한 듯 길게 자란 옆머리를 살짝 꼬면서 대답했다.
=어느 시대에든 유일 직업자는 뭍 이들의 선망이었지. 직업자이든, 무직자이든. 거기다 파르히스트, 헬루멘, 프라버, 마지막으로 영도에서까지. 모두 말을 맞춘 것처럼 그대의 업적을 널리 퍼트리고 있으니 현재 그대의 위명은 역대 유명한 영웅들도 못 미칠 지경이오.=
=용과 대면한 자. 타락하여 어둠의 신성을 띄게 된 바르둘과 일대 결전을 벌여 승리한 자. 대현자와 지혜마저 겨루는 자. 뭍 서민들의 구원자. 영도의 대성자이자 멸재의 대적자. 신수와 함께하는 자. 검희를 거둔 자.=
“…혹시 그 대현자는…….”
=라드세아의 대학장이자 현 여왕의 혈육인 호천명을 가리키는…… 설마 몰랐소?=
“…….”
환인이 대답을 않으니 아드우리는 허허, 작게 웃으면서 농을 던졌다.
=소문의 당사자는 체감을 잘 못 한다고 하나 설마 폐하의 옥체마저 꿰뚫어 본 성제가 그러할 줄 몰랐소.=
“저를 이용하려 드는 여러 집단과 기 싸움을 벌이다 보니 그리된 듯합니다.”
=…크흠.=
되로 주고 말로 받은 아드우리는 계면쩍은 듯 헛기침을 한차례 하고서는 정중히 물었다.
=하여 닐비나 폐하께서는 그대를 꼭 한번 만나보고 싶다며 근 반년을 조르셨었소. 이때까지는 어찌 성제 같은 이를 함부로 부르겠냐는 핑계로 거절해왔으나…….=
“제가 시주르 대평원에 들어 서버렸군요.”
=맞소. 그전에 이미 끓는 물에 기름을 불어버리는 일이 있었지. 그날 폭풍과 함께 하늘에서 내려온 백청룡의 모습은 이곳 천주산에서도 보일 정도였다오.=
이쯤 되니 환인은 아드우리가 무얼 말하려는지 알 것 같았다.
환인의 예상대로 아드우리가 본론을 꺼내기 위한 빌드업을 쌓기 시작한다.
=성제. 우리는 그대의 품성을 믿고 히스론드의 기둥인 두 분 폐하와 독대를 주선하여 자리를 비켜주었소.=
실상은 두 어린 왕의 눈에 부담을 지우지 않기 위해서겠지.
“무엇을 말씀하실지는 알겠습니다만, 제게는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야 이를 말이겠소. 대성자 후보이면서 경험 부족을 이유로 영혼의 성불행을 멈추지 않는 그대인데. 하지만 본 주도의 미궁 탐사 기간 중 단 며칠만이라도 할애해주실 수는 없으시겠소이까. 그리해주기만 한다면 천왕궁은 열과 성을 다해 성제 일행의 편의를 적극 돕겠소.=
“…….”
=그대가 그리모암의 마지막 유물을…….=
……까지 말한 아드우리는 순간 심장을 스치고 지나가는 서늘함에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환인이 아무런 감정이 깃들지 않은 눈동자로 자신을 조용히 응시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아차렸다.
그의 머릿속에 아차, 하는 탄식이 스치고 지나가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다행히 말을 다 꺼내지 않은 상태. 무마할 기회는 남아있다.
=……유물을 찾고 있다 들었소. 본인이 알기로 하늘 교류회의 회장 개인 소유품이라 하는데, 그 회장이 본인의 후배이기도 하지. 방금 제안을 고려만이라도 해준다면 내 인맥을 써서라도 그대의 말을 긍정적으로 들어보라 언질을 보내주겠소. 그대도 소문을 들어 알겠지만 그는 성질이 매우 괴팍하여 마음에 들지 않으면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하지 않을 인물. 본인은 그의 생명의 은인이며 그도 본인을 공경한다오. 본인이 부탁한다면 그도 거절치 못할 것이오.=
“공작께서 당황하신듯하군요.”
말이 퍽 길어졌음을 꼬집는 발언에 아드우리는 씩- 웃음을 지었다.
알려진 성제의 성격은 말 그대로 물과 섞이지 않는 기름 그 자체다. 그리고 알려진 것과 다를바 없다는 사실은 거인숲 미궁 앞에서 네 국가의 사절을 두고 성질을 부리는 것에서 충분히 확인한 사항.
만약 유물을 빌미로 하는 투의 말을 꺼냈다면 관계는 파탄에 이르렀겠지.
‘팔라툼의 대 공작인 내가 이리도 눈치를 보아야 한다니.’
다소 면이 빠지는 모습이 아닐 수 없지만, 닐비나 폐하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서라면야 어쩔 수 없는 일.
환인은 아드우리를 잠시 바라보다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러나 긴 시간은 내어드릴 수 없습니다.”
=고맙소. 두 분 폐하께서 그대의 아우라에 적응할 시간은 사흘이면 충분하리라 보오.=
“그 정도면 괜찮습니다.”
=음.=
대화는 그걸로 끝이었기에 환인도, 아드우리도 테이아에게 어리광을 부리는 왕들에게 시선을 옮겼다.
솔직히 말해서 거래이긴 하지만 환인도 나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지난 사흘간 하늘 교류회와 그 구성원에 대해 소문을 모으고 다녔는데 들려오는 이야기가 하나같이 눈살 찌푸려지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일단 교류회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회장이라 부르는 자의 사조직이나 다름없는 상태다.
회장이란 자를 중심으로 그에게 아부와 아양을 떠는 자들이 모이다 보니 교류회라는 그럴싸한 이름이 붙은 것.
게다가 아드우리 공작의 말대로 교류회의 회장은 성질이 괴팍한데다 오만불손하기 그지없다는 평가였다.
일단 신분이 귀족이 아니면 말조차 섞지 않는다. 욕심은 또 얼마나 강한지 손에 들어온 보물은 놓질 않는다.
지난 10년간 그가 보물을 꺼내 상대방에게 넘겨준 것은 고작 한 번뿐일 정도.
하지만 이 정도는 그럴 만하다고 평가할 수 있는 수준이다.
그의 악명이 높아지는데 일조한 것은, 교환을 이유로 찾아가면 무슨 수단을 써서 상대가 교환 조건으로 내밀었던 보물을 강탈하다시피 가져가 버리는 것에서 비롯되었다.
자기 보물은 내놓지 않는 주제에 상대가 가져온 보물은 권력을 써서 흔한 돈과 흔한 보석과 흔한 위상석으로 바꿔버리는 거다.
욕이 안나올래야 안 나올 수 없는 행위.
당사자의 신분도 지구와는 좀 다르지만 오등작을 쓰는 히스론드에서 백작에 이를 정도였으며, 무력도 삼쌍익의 직전이라 할 정도로 이쌍익의 6급 직업자.
환인도 그에게서 어떻게 그리모암의 모자를 받아낼지 고심하던 차였다.
“그러면 오늘은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음? 천공성에 귀빈을 위한 시설을 내어드릴 테니 그곳에서 머무르시는 게 어떠시오? 날개가 없으니 오가기 제법 불편하실 터인데.=
“날개는 없지만 대신 날개가 되어줄 가족이 있습니다.”
=아…… 비상이라는 녹색 쿠에를 거두셨다지.=
고개를 주억이는 아드우리에게 환인은 몇 가지 요청을 추가한다.
“두 분 폐하께서 제게 적응하는 시간에는 저 혼자 오도록 하겠습니다. 그때 비상도 출입할 수 있게 허락해주실 수 있으십니까.”
=음…… 폐하께 위해가 될 수 있는 조건은 곤란하오만. 성체 녹색 쿠에는 동급의 성수와도 비견된다 하지 않소. 오는 길에 천공의 매도 위압했다 들었고…….=
“비상의 지능은 15살에 버금가는 수준입니다. 제 말을 어기고 난동을 부릴 확률은 없습니다. 그리고 두 분 폐하께서 절 그렇게나 관심 있어 하신다면, 비상도 좋아하실 거로 생각합니다.”
=맞는 말이나…… 만약 불상사가 생겼을 때 성제가 책임진다고 하면 무장 장관으로서 허가를 내어드리겠소.=
사고가 날 경우 그걸 핑계로 자신을 몇 달간 손님으로 머물게 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제안이다. 그에 환인도 담담하게 되받아쳤다.
“억지와 불합리가 없는 사고일 경우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좋소. 그러면 사흘 후 다시 수석 상안을 보내어 그대의 영혼 기사들도 재초청하지. 잠시만 기다려주시오.=
방금 나눈 대화의 요점을 전달하기 위해서인 듯 아드우리는 날개를 바짝 접고 닐비와 비나에게 다가갔다.
잠시 후 =싫어어어~!= 떼를 쓰는 아이의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지만 몇 분에 걸쳐 울음소리가 잦아든다.
울음소리가 완전히 멎었을 때 쓴웃음과 함께 돌아온 아드우리가 말했다.
=그럼 사흘간 잘 부탁드리겠소. 내일 이 시간에 찾아와주면 되오. 밀려오는 구름의 바다 미궁 출입 권한 및 그에 관한 자료는 오후 중으로 전달해드리지.=
“부탁합니다.”
아드우리와 일별한 환인은 북극성실을 나서기 전, 등에 닿는 시선을 느끼고 그쪽을 돌아보았다.
거기에는 테이아의 어깨 너머로 한쪽 눈만 내민 닐비와 비나가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로 이쪽을 쳐다보는 중이었다.
기껏 친해진 삼촌이 돌아가는 모습에 울음이 터진 어린 조카들의 모습 그 자체다.
“…….”
별로 이야기도 나누지 않았는데.
환인은 작게 웃으며 살짝 고개를 숙여 보인 뒤 망설임 없이 문을 나섰다.
살짝 긴장하며 갔던 것이 무색할 정도로 아무 일 없이 돌아온 여자들은 애써 입은 드레스의 제 목적조차 달성하지 못한 것을 무척이나 아쉬워했다.
=으~ 이거 이대로 찢어서 버리는건 진짜 아까운데.=
한참 고민하던 안느가 조심스럽게 등 뒤의 코르셋 끈을 풀기 시작한다.
=조심스럽게 벗으면 안 찢어지…….=
찌직—
=응, 안되네. 율이 언니이이.=
=포기하렴. 이거 한 군데 재봉이 찢어지면 연달아 다른 곳까지 전부 찢어지게 설계되어있어. 찢어졌던 드레스를 다시 재봉한다고 똑같은 게 되는 건 아니잖니.=
더욱이 왕실 재봉사들은 재단의 전문가. 그녀들의 실력에 비하면 자신의 재봉질은 수습생도 안된다.
=진짜 아깝다…….=
=포기하세요, 언니. 미리도르무 씨도 그걸 아니까 드레스는 처분하면 된다고 말씀하시고 돌아가셨잖아요.=
=에휴.=
백려강의 설득에 결국 결단을 내린 안느는 드레스를 찢으려다 환인의 손에 팔이 잡혀 저지되었다.
옆을 보니 마찬가지로 이실리테도 그에게 손이 잡힌 상태.
=응? 도령, 왜?=
=주인님?=
“…….”
아름답게 차려입은 귀족가 처녀를 납치해 드레스를 찢어버리며 엉망진창으로 범하는 상황극을 지금 아니면 언제 해볼까.
환인이 말 없이 자신들의 팔을 잡고 끌고 가는 상황에 안느와 이실리테가 당황해서 묻는다.
=왜, 왜 갑자기 침실로 가는 건데? 도령?=
=주인님…?=
환인은 그 납치범의 역할에 충실히 몰입하며 말없이 그녀들을 침실로 끌고 갔다. 백려강과 유르파, 아영에겐 다음을 기다리라는 손짓만 남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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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19씬은 스킵!
589+ 큿, 죽여라!
환인의 여자들은 천왕궁 방문을 위해 히스론드, 나아가 니오네브레스에서도 손꼽히는 의류 재단사의 수제 드레스 외에 헤어스타일도, 메이크업도 일류의 그것을 받았다.
한마디로 풀메이크업 상태.
사랑하는 주인님에게 예쁘다는 칭찬을 받아 100일 중 90일을 포니테일로 지내는 이실리테는 한차례 목덜미 위쪽에서 땋아 예쁘게 흘러내린 스타일에 약간 섹시한 느낌의 메이크업을.
고정된 스타일 없이 자유로움을 만끽하는 안느는 규중처녀, 혹은 몸가짐이 바른 귀족가 안주인처럼 아름다우면서도 단정하게 틀어 올린 헤어스타일에 청초함을 강조하는 메이크업이었다.
그녀들을 고작 하루, 그것도 1시간도 채 안 본 미리도르무는 그녀들의 평소 성격을 꿰뚫어 보고 180도 반대되는 느낌의 코디와 메이크업을 해준 것이다.
덕분에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어? 다른 사람 아니야?’ 생각할 만큼 평소와 80%는 다른 미모를 뽐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둘은 환인에게 팔이 잡혀 침실로 끌려와 퍽 당황하고 있었다.
평소 환인은 몸을 섞자는 뉘앙스부터 전한 뒤에 행동에 옮긴다. 스킨십이든 터치든 말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짜고짜 말도 없이 끌려왔다. 당황할 수 밖에 없다.
물론 싫다거나 두렵다는 뜻은 아니다. 이실리테에게 있어 환인이란 세상에 오직 하나뿐인 태양이며 안느에게는 평생 곁에서 함께 하겠다고 맹세한 남자니까.
그저 평소와 다른 행동에, 상황 내성이 없는 그의 행동에 가슴이 설렘으로 두근거리고 있을 뿐이다.
환인은 그런 두 명을 바라보며 결정을 내렸다.
‘이실리테의 성격이라면 연기나 연극은 전혀 못 하겠지. 내가 원하는 반응은 안느가 보여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아스펜드에서 아무 밧줄이나 꺼낸 환인은 이실리테를 침대 기둥에 등지고 서게 한 다음 두 손을 뒤로 돌려 기둥에 묶었다.
=……주인님?=
“나의 사랑스러운 이실리테.”
오싹-
처음 들어보는 환인의 버터 바른 목소리에 이실리테는 표정을 간수하지 못하고 허벅지를 조였다.
귀와 목선을 따라 어깨까지 약한 소름이 치고 지나간다.
옛날 도적 두목 시절, 그녀가 그토록 싫어하고 혐오하던 난봉꾼처럼 느끼한 목소리지만 어째서인지 지금은 가슴이 큥큥 뛰는 느낌.
그런 그녀의 귀에 날벼락이 떨어졌다.
“내가 풀어도 좋다고 하기 전까지 이 밧줄이 끊어지거나 침대 기둥이 부러진다면, 한 달간 내 수발을 드는 것은 금지하겠다. 너 대신 아영이나 백려강에게 시키도록 하지.”
=네……?!=
충격적인 내용에 이실리테는 깜짝 놀라 반사적으로 깍지를 꼈다.
주인님을 섬기고 수발을 드는 건 누구에게도 양보하지 못하는 자신만의 일이다. 그런데 그걸 두 사람에게 넘긴다니……!
이실리테는 두 손을 꽉 쥔 채 고개를 돌려 자신의 손목을 묶은 손가락 굵기만 한 밧줄과 평범한 나무 공예 기둥을 보았다.
일단 이렇게 깍지를 끼고 있다면 밧줄이 끊어질 일은 없겠지. 하지만 너무 평범한 밧줄이라 조금만 힘을 줘도 끊어질 것 같다.
침대 기둥 또한 약간만 힘을 주어서 밀거나 당겨도 뚝- 하고 부러져나갈 것 같은 내구성으로 보인다.
반쯤 울상이 된 이실리테가 환인을 애절하게 불렀다.
=주인니임. 이거 너무 약해요. 조금만 힘을 줘도 부서질 거예요…….=
하지만 환인은 대답 없이 수건을 꺼내 그녀의 눈을 가릴 뿐이다.
그리고 자신의 작품을 가만히 위아래로 감상했다.
“…….”
눈이 가려진 채 침대 기둥에 묶인 아름다운 귀족 처녀……. 좋긴 한데 뭔가 조금 부족하게 느껴진다.
그래, 속으로 손가락을 튕긴 환인은 이실리테의 드레스 치맛단을 허리까지 끌어올려 묶었다.
=으응, 주인님? 조, 조금 부끄러워요…….=
‘좋군.’
훤히 드러나는 역삼각형의 작고 예쁜 흰색 레이스 팬티가 보지의 윤곽을 수줍게 드러낸다.
살결보다 하얀 스타킹과 앙증맞은 발가락을 수줍게 감추는 검은색 유광 하이힐은 또 다른 감상 포인트.
아름다운 처녀가 이렇게 있으니 옅은 배덕감에 살짝 흥분이 고조되는 환인이었다.
잠시 그 모습을 감상한 환인은 돌아서서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끔뻑이는 안느에게 다가갔다. 다음은 그녀 차례다.
“참으로 아름다운 아가씨군.”
=……응?=
이실리테의 치태어린 모습과 환인의 행동에서 한 발 늦게 그 의도를 눈치챈 안느는 속으로 푸흡, 웃었다.
이런 상황극이라면 얼마든지 어울려줄 수 있다. 그도 그럴게 재미있지 않은가. 로맨틱하고 다정하지만 조금은 딱딱한 남자가 이런 상황극이라니.
안느는 두 팔로 가슴을 가리며 그의 장단에 맞춰주었다.
=큿! 죽여라, 이 악당! 날 납치해 범하여도 이몸은 절대 네놈의 흉악한 자지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둔 강직한 기품을 그대로 드러내는 표정과 눈동자. 정조와 절개를 지키기 위한 그 몸짓.
말 그대로 신분이 높은 귀족 가문의 여식이 괴한에게 납치당했을 때 보여줄 법한 모습이다.
“…….”
그 반응에 환인은 멈칫했다가 떨떠름해진 얼굴로 고개를 기울였다. 안느도 잠깐 정지한 상태로 따라 고개를 갸웃한다.
=왜? 도령이 원한 게 이런 거 아냐?=
“맞는데…… 막상 보니 뭔가 거부감이 드는군.”
부모님의 교육 때문일까. 가상의 상황이라고 해도 ‘아무 죄 없는’ 여자를 강간한다는 이 상황이 뭔가 꺼림칙한 환인이다.
그 이유를 금방 깨달은 안느가 고개를 끄덕인다.
=아. 도령 부모님의 말씀 때문이겠네. 음~ 그럼 이렇게 하자.=
이쪽은 가감 없는 100% 진심이라 연기 같은 것을 할 필요도 없다. 오히려 이쪽이 더 마음에 든다.
안느는 두 팔로 드레스를 보호하려는 것처럼 감싸고는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도령, 이 드레스를 찢는 건 안 돼. 정말정말 마음에 든 거란 말이야, 힝.=
역시.
그제야 거부감이 사라진 환인은 후후 웃으며 그녀의 뒤로 돌아가 변태처럼 젖가슴이며 사타구니를 드레스 위로 어루만지면서 그녀의 기다란 귀에 숨결이 닿을 정도로 속삭였다.
“너의 정절과 수절을 바친 나보다 이런 옷 쪼가리가 더 중요하다는 건가.”
오싹오싹.
=하응, 도령이 당연히 더 중요하지이……. 하지만 이 옷은 세상에서 한 벌 뿐인데에…….=
“나도 세상에서 한 명 뿐이다만.”
=히윽.=
안느는 클리토리스가 정확히 짓눌리는 짜릿한 감각에 안짱다리를 하며 허리를 숙였다.
어쩜, 나보다 내 몸의 위치를 더 잘 아는 거 같아. 드레스와 팬티로 두 겹이나 가려져 있는데 직접 본 것처럼 누르네.
그런데, 드레스 옷감 자체도 얇은데다 감촉이 좋아서인지 평소와는 피부에 닿는 감각이 달라 반응을 억누를 수가 없다. 몸이 절로 수그려지고 팔이, 다리가 오그라든다.
=아읏, 흐윽. 으으응…!=
“……좀 방해되는군.”
안느의 그러한 반응에 환인은 조금 못마땅해했다.
오랜만에 새로운 감각으로 그녀의 몸을 만끽하려는데 드레스 위로 젖꼭지며 가슴을 주무르거나 아랫배를 문지르면 안느가 자꾸 몸을 앞으로 숙이면서 팔로 가려대는 통에 감질났던 것.
=그치만 평소랑 감각이 너무 달라서어…… 자꾸 찌릿찌릿한걸. 못 견디겠어.=
“그러냐.”
환인은 아스펜드에서 끈을 꺼내 그녀의 손목을 묶고 그녀도 이실리테가 묶여있는 곳으로 끌고 갔다.
=도령? 뭐 하려고……?=
“이렇게 할 생각이다.”
=앗!=
안느의 등을 툭 밀어 이실리테와 포개지게 한 환인은 그녀의 손을 들어 이실리테의 머리 위쪽 기둥에 묶어버렸다.
이실리테와 키가 20cm가량 차이 나는 안느가 그렇게 허리를 살짝 숙이게 되니 그녀와 젖꼭지를 맞추고 얼굴이 닿게 된다.
=…안느? 주인님?=
하얀 수건으로 눈이 가려진 이실리테가 표정으로 물음표와 궁금증을 띄우는 것이 당황해하는 안느와 대조되어 유혹적이다.
‘이쪽이 더 마음에 드는군.’
드레스 앞부분이 허리까지 끌어올려져 하얀 다리와 팬티를 드러낸 이실리테. 그리고 팔이 위로 묶인채 그런 이실리테에게 기대고 있는 안느.
지구에서라면 100명 중 100명 모두가 미녀로 손꼽길 망설이지 않을 아가씨들이 한데 붙어있는 모습이 한층 더 흥분이 올라온다.
찰칵.
=앗! 사진 찍었어!=
“안느, 기둥이 부서지거나 밧줄이 끊어지면 넌 일주일 독수공방이다.”
=……뭐?! 말도 안 돼! 그런 게 어딨어!=
“여기 있다.”
=아~! 너무해!=
찌이익—
=꺅?! 으앙, 도령이 내 드레스 치마 찢었어어!=
삐걱-
=아, 안느! 버둥거리지 마! 침대 기둥 부러져!=
=야, 그게 말은 쉽… 읏응!? 자, 잠깐! 이슬이 네 허벅지가…… 아흑!=
찢어진 드레스 틈으로 뽀얀 엉덩이와 새카만 란제리 망사팬티를 드러낸 안느가 사타구니에 이실리테의 허벅지를 끼운체 꼼지락거리고, 이실리테는 자신과 안느의 체중이 기둥으로 전해지지 않도록 허리에 힘을 주어 버틴다.
혹여 기둥이 부러질까, 밧줄이 끊어질까 초조해하면서도 환인의 노골적인 의도에 팬티를 조금씩 적시는 모습은 그의 가학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좀 전부터 올라오는 흥분에 가학심까지.
환인은 자신을 유혹하는 것처럼 뒤로 내민 안느의 엉덩이를 찰싹 때렸다.
=아응! 왜 때리는 거야~.=
따스하면서도 보드라운 살결이 출렁하고 파문을 일으키고, 그와 함께 왜 때리냐며 항의하는 것처럼 괘씸한 엉덩이가 살랑살랑 흔들린다.
그 도발적인 행동에 찹쌀떡 같은 볼기짝을 두 손으로 와락 움켜쥐고 찢어질 듯 좌우로 벌리자 안느의 입에서 달콤한 교성이 흘러나왔다.
=하아앙, 으응…. 너, 너무 그렇게 벌리면 부끄러운데.=
여자의 신음에는 남자를 흥분시키는 주파수가 섞여 있다던가.
환인은 그게 진짜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그녀의 촘촘한 망사팬티를 잡고 거칠게 당겼다.
아앗, 안느의 작은 교성과 함께 부우욱- 얇은 천이 뜯겨나가며 드러나는 통통한 보짓살과 투명한 애액에 코팅되어 먹음직스럽게 반들거리는 클리토리스.
=속옷까지 찢었어힝…….=
울먹이는 척하며 뒤를 돌아본 안느는 자신의 보지를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그의 시선에 오싹한 쾌감을 느꼈다.
세상에, 대체 뭐가 도령을 저렇게 흥분하게 만든 거지?
안느는 알 것 같으면서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살랑, 엉덩이를 한차례 흔들었고 환인은 그 도발에 패배해 그녀의 엉덩이골에 얼굴을 묻었다.
그러자 물씬 풍겨오는 싱그럽고 화사한 초목의 향기.
=햑!? 읏, 도령 그거 엄청 부끄러워…….=
설령 안느가 대소변같은 생리 활동을 근 1년째 중단한 수목화 상태라고 해도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행위다.
하지만 흥분이 거의 정수리까지 오른 환인은 그대로 그녀의 보지 구멍에 입을 맞추고 쭈우웁 강하게 안에 든 것을 빨아들였다.
잠시 울렁이던 보지 속살이 왈칵- 정수를 뿜어내며 감로수를 그에게 바친다.
안느 또한 사랑하는 남편에게 정수를 강제로 갈취 당하는 느낌에 허억, 숨 막히는 탄성을 토해냈다.
거짓말 안 하고 자궁까지 딸려 나갈 것 같은 격렬한 흡입 때문이었다.
=아그읏! 도, 도령 너무 격렬햇…! 자궁이… 으응……!=
그를 위해 마련된 자궁의 정수가 보지를 매개로 그의 입 안에 흘러 들어가는 것에 안느는 새끼 사슴처럼 다리를 후들거리며 흑, 후읏, 하흑, 가녀린 신음만 흘렸다.
척추를 따라 번갯불이 파바바박 꽂히며 머리까지 올라오는 감각에 눈앞이 하얘지고 머릿속이 텅 빈다.
이실리테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고 브흑, 흐엑, 히으윽, 벌벌 떨기만 하던 안느는 불식간에 강철 막대기가 보지 입구에서 자궁까지 꿰뚫는 것을 느끼고 고개를 번쩍 치켜들며 악! 비명을 질렀다.
신호도 없이 자궁 앞까지 쑥 들어오는 달궈진 자지 방망이는 말 그대로 흉기다.
철벅철벅철벅!
=흑, 큿! 아흑! 조하앙♡ 더엇, 깊게엣! 흐아앙!=
하지만 그 흉기는 안느의 심장에 채워진 자물쇠와 딱 맞는 열쇠. 외설적인 열쇠가 한 번 보지 안을 왕복할 때마다 쾌감이 배수로 쌓여나간다.
불시에 자궁을 찔린 통증은 이미 해일 같은 쾌감에 휩쓸려 사라진 지 오래. 그의 자지가 자신의 보지 속살을 쥬르릇 긁고 들어올 때마다 안느는 이실리테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애달픈 교성을 질렀다.
“후욱, 허억!”
=흐하앙! 하흐으응! 도령 나, 나 가! 가아아앗…!=
찌직- 찌지직—
짐승 같은 그의 손길에 세상 하나뿐인 드레스가 넝마가 되어가고, 훤히 드러나게 된 젖가슴이 환인의 두 손에 젖소처럼 쥐어짜이니 안느는 더해지는 쾌감에 절정의 교성만 내지를 뿐이다.
정신없이 안느의 보지가 헐어버릴정도로 박아대던 환인은 눈이 가려진 이실리테 혼자 멀뚱히 서 있는 것을 보고 반사적으로 지시를 내렸다.
“허억, 이실리테. 혀를 내밀어라.”
=앗, 넵. 베에에~.=
이실리테 혼자 덩그러니 둔 것에 대한 미안함의 발현이었지만, 그의 생각과 현 상황은 달랐다.
시력이 봉쇄되었다지만 검희로 재각성 하며 발달하고 연마된 그녀의 기감은 환인과 안느의 교접을 온몸으로 느끼는 중이었다.
안느의 열락에 잠겨 든 교성은 자신의 신음 같았고, 안느를 뒤에서 박으며 내는 환인의 거친 숨소리는 자신의 보지에 박으면서 내는 숨소리처럼 느껴졌다.
그때문에 그녀의 육체는 착각을 불러일으켜 홍수가 난 것처럼 보지즙을 마구 흘리는 상태였던 것.
그러던 중에 내려진 환인의 명령에 분홍색 선명한 설육이 앵두 같은 입술에서 빠져나와 내밀어졌고, 환인은 그 혓바닥을 씹어 먹을 듯이 물면서 그녀의 입술을 탐했다.
츕, 쯔읍- 으득, 쭈우웁—
=읍, 응! 읏!=
=흐항! 하아앙♡! 햐으응♡!=
혀를 깨물려도 오히려 좋아하며 콧소리를 내는 이실리테와 자지에 격렬하게 박히며 교성을 쉴 틈 없이 내지르는 안느.
두 여자의 교차하는 신음과 자지에서 올라오는 극심한 쾌감에 환인은 사정감이 급속도로 차오르는 걸 느꼈고, 참을 필요가 없는 절륜한 정력의 환인은 안느의 자궁을 자지로 퍼억- 강하게 때린 뒤 꾸우욱— 밀어 올리며 그대로 사정을 시작했다.
“안느, 보지 꽉 조여라!”
=으응! 냬, 내 자궁에 정액을 가득 채워줘엇……! 흐아아앙?!=
“크으으으…!”
=아, 하아아. 으흐윽…….=
자신의 뱃속에서 나는 소리인지 아니면 안느의 뱃속에서 나는 소리인지. 뷰르륵, 부르릇— 정액이 콸콸 쏟아지는 소리를 들으며 환인은 골반을 그녀의 엉덩이에 밀착시키고 한참을 부르르 떨었다.
눈앞에 별이 떴다 가라앉을 정도의 쾌감에 잠깐 어지럼증이 느껴졌을 정도.
이제는 보지 근육까지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게 된 건가 싶을 만큼 자지를 끊어 버릴 듯이 조이면서 동시에 쥐어짜는 안느의 보지. 그 속에 마지막 한 방울까지 깔끔하게 사정한 환인은 후우우우우— 짐승의 울음소리 같은 숨을 길게 내쉬었다.
쮸르르— 뽕-
=하흣!=
결합을 해제하자 보지 구멍이 뻥 뚫린 채 몇 초 정도 움찔거리다 정액이 흘러나오기 직전, 완벽하게 닫힌다.
방금 10여 초에 이르는 사정을 마쳤지만, 보지가 꾸물거리면서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는 장면을 보았더니 갈증이 해소되긴커녕 오히려 욕구가 더 쌓여버렸다.
“…….”
폭군의 눈빛을 번뜩인 환인은 그사이 3번이나 절정에 올라 온몸이 땀투성이로 할딱이는 안느의 너머, 아직도 눈을 가린 채 혀를 내밀고 기다리는 이실리테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생각할 겨를이 어디 있나.
환인은 반쯤 내렸던 천릉의 바지를 휙 벗어 던지고 나머지 옷도 빠르게 탈의를 마친 뒤 안느와 이실리테 사이에 끼어들었다.
이러니 마치 여자 샌드위치의 고명이 된 기분이다.
특히 이실리테는 그의 취향을 120% 만족시켜주는 음란하기 짝이 없는 몸뚱이를 가지고 있어 지금 이 상태만으로도 욕망이 폭풍 구름처럼 계속 늘어난다.
“이실리테, 다리를 들어라.”
=네엣.=
눈이 가려지고 팔을 뒤로해 기둥에 묶인 상태임에도 자신의 명령에 순종적으로 오른쪽 다리를 세워서 드는 이실리테.
부우욱!
환인은 그런 이실리테의 손바닥보다 작은 팬티, 철철 흘러나온 보지즙에 흠뻑 젖은 속옷을 단숨에 찢어발긴 뒤 그녀의 양다리 오금을 잡아 들었다.
=아아앙…….=
기둥에 묶인 채로 보지가 훤히 보이게 다리를 쩍 벌리게 된 이실리테는 앞이 보이지 않았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기대감과 흥분에 들뜬 콧소리를 냈고.
푸욱!
=……하아아악!=
아랫배가 불룩— 튀어나올 정도로 단숨에 삽입된 자지에 열락보단 고통의 신음을 크게 내질렀다.
아무리 푹 젖었다지만 성인 여성의 팔뚝만 한 자지가 단숨에 뿌리까지 박히는 것은 부담스럽다. 처녀처럼 쫀쫀한 보지를 가진 이실리테라면 더욱더.
그러나…….
퍽! 푸직, 퍼억!
=끄윿, 허윽! 끄앙…!=
환인은 아랑곳하지 않고 이실리테의 튼튼한 육체를 믿고 인정사정없이 자지를 박았다.
박을 때마다 구불구불한 보지가 쫙 펴지며 자지를 휘감는다. 뽑을 때마다 보지 주름이 다시 잡히며 나가려는 귀두를 싸아악 훑는다.
온몸이 그녀의 보지속으로 빨려들어가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의 쾌감.
환인의 시선은 여전히 눈이 가려진채 입가에 살짝 침을 흘리며 헐떡이는 안느를 눈에 담았다.
그녀의 드레스 차림은 이미 엉망진창으로 구겨진 상태. 거기에 개구리처럼 다릴 쩍 벌린데다 아랫배에 흉기가 들어간 것처럼 불룩불룩 튀어나오는 그 모습은 창녀로 추락한 귀족 영애의 모습 그 자체다.
환인의 가학심과 흥분을 있는 대로 끌어올리는 자태였기에 그는 이실리테의 비음 섞인 비명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허리를 격하게 쳐올렸다.
푹! 푸욱! 퍽! 푸걱!
=끇! 끕! 흐긋, 하앙! 꺄흐응♡♡!=
아랫배가 불쑥불쑥 튀어나올 정도로, 뱃가죽과 자지 사이에 끼인 자궁이 연이어 짜부라질 정도로 격렬한 삽입이 이어진다.
그러나 이실리테는 단 여섯 번의 삽입에 고통을 쾌감으로 전환해서 하트 섞인 비음을 토해냈다.
=쥬힌, 님! 졔 자구웅, 부셔져헛! 헤읔! 헤으으읏♡♡!=
“크으으윽!”
환인은 자꾸만 자신의 성욕을 폭발시키는 이실리테의 몹쓸 입술을 자신의 입으로 막아버리고 그녀의 자궁을 뭉개버릴듯이 피치를 올리기 시작했다.
박힐 때마다 덜렁거리는 다리와 반대로 보지가 오히려 더더욱 좁아지며 결합부에서 보지즙이 퓻- 퓨붓- 쏘아져 나오고 입가에 흐르는 타액은 턱에서 방울방울 맺혀 그녀의 가슴골로 떨어진다.
이실리테는 쾌락에 절은 암컷의 괴성을 마음껏 지르고 싶었지만, 암컷으로서 울부짖을 그 입은 사랑하는 님에게 꽉 막힌 상태.
그 구속감에 이실리테는 박힐 때마다 찍- 찍- 조수를 뿌리면서 삽입 한 번에 절정 카운트도 1회씩 찍기 시작했다.
위험하다.
‘하앙…대. 이럼…… 온몸이 보지가 되어버려…….’
온몸이 건드리기만해도 가버리는 조루 보지가 되어버린다.
하지만 주인님은 늑대처럼 으르렁거리며 자신의 자궁을 짓이겨버릴듯이 뱃속으로 파고드시는 중.
그렇다면 자신이 내릴 선택은 하나 뿐이다.
이실리테는 벌려진 다리를 오므려 그의 목에 살짝 감고 자신의 보지를 무자비하게 헤집는 자지를 꽉 조이며 쾌락 속에서 속삭였다.
=주인님, 이실리테의 보지가 망가질 정도로 박아주세요……!=
“……!”
이실리테가 섹스밖에 모르는 바보가 되기 10분 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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