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궁기담-590화 (590/813)

587 하늘 도시 팔라툼

=이실리테 영혼 기사님, 팔꿈치를 어깨보다 높이 올려주세요. 네, 감사합니다. 이대로 봉제하겠습니다.=

=……그러면 벗을 때는 어떻게 하죠?=

=이 드레스는 일회용이니 그대로 처분하시면 됩니다.=

이제 카락스의 이빨이 아니게 된 이들이 떠나고 사흘 후.

액정관의 미리도르무는 막대한 가치의 원단과 드레스 소재, 장신구, 그리고 일곱 명의 왕실 재봉사 및 스무 명의 업무 보조인을 대동해 아침 일찍 찾아왔다.

=드레스 도면은 완성되었습니다. 이대로 재단과 가봉을 거쳐 재봉할 예정입니다. 평가를 해주십시오.=

미리도르무가 펼쳐놓는 도면을 확인한 환인은 드레스 외형을 여자친구들의 모습에 덧씌워 예상해본 뒤 고개를 끄덕였고, 환인의 허락에 재봉사들은 그 즉시 자리에서 원단을 잘라 드레스로 맞춰나갔다.

환인의 여자들은 속옷 차림으로 마네킹처럼 서서 왕실 재봉사들이 자신의 몸에 패턴을 잘라 이어붙여 나가는 것을 지켜만 보아야 했으나…….

척, 사각사각. 스으윽— 찰칵.

대화는 거의 없이 눈빛과 손짓만으로 드레스를 완성해나가는 그녀들의 모습에 감탄사만 흘렸다.

낭비는 일절 없는, 일견 아름다운 동작과 동선들.

극과 극은 이어진다고 하던가. 여자들은 재봉사들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깨닫고 군말 없이 그들의 부탁에 팔을 들거나 다리를 벌리거나 몸을 숙이는 등 포징에 적극적으로 협조해주었다.

솔직히 지루하지는 않았다.

각자에게 붙은 재봉사들이 원단과 자신을 오가면 오갈수록 드레스가 점차 아름다운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었던데다, 여자들은 부채꼴 모양으로 서 있었기에 자신 말고도 언니 동생 친구의 드레스 모습을 구경할 수 있었기 때문.

드레스가 가봉 단계를 지나 온전한 모습을 되찾았을 때 환인의 곁에서 조용히 서 있던 미리도르무가 묻는다.

=마음에 드시는지요.=

“훌륭합니다.”

2차원 평면도로 본 것과 3차원 입체로 보는 것은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눈앞에 완성되어가는 여자친구들의 드레스는 명백히 좋은 쪽의 차이였다.

봄-유르파, 여름-백려강, 가을-이실리테, 겨울-안느, 그리고 돌아오는 봄-아영.

그녀들의 머리카락 색인 백색, 푸른색, 호박색, 은색, 라벤더색에 맞춰 계절감을 표현한 색감에 레이스와 실크, 망사로 화사함을 드러내는 드레스들.

드레스라고 해서 중세의 품이 넓고 주름과 레이스를 과다하게 붙인 쪽이 아니라 명백히 21세기 풍의 몸매를 은연중에 드러내는 타입이다.

그렇게 완성된 그녀들의 드레스는 제각기 라인이 달랐다.

몸매가 날씬하고 가녀린 편인 안느와 아영은 몸매를 아름답게 드러내는 머메이드라인.

육감적이고 늘씬한 이실리테는 가슴과 골반을 강조해 아름다움을 부각하는 시스라인.

이실리테보다 조금 더 육감적인 유르파는 육감적인 면을 살짝 감추어 아름다움을 강조하는 프린세스라인.

누굴 잡고 묻든, 황금비율이라 칭하길 망설이지 않을 백려강은 엠파이어라인으로 청순함을 집중한다.

그렇게 아침 일찍 도착해 재단에서 가봉 - 재봉까지 끝났을 때는 3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왕실 재봉사들에게서 주의사항을 들은 여자들은 미리도르무가 탈것을 준비하는 사이, 백려강을 제외하고 자신의 차림에 조금 어색함을 드러내며 웃었다.

=그냥 봐선 엄청 불편해 보이는 데 생각보다 편하네. 입고 뛰어다녀도 멀쩡할 거 같아.=

=저도 이런 방식의 드레스는 처음 입어봐요. 그런데 과연 히스론드의 유행을 주도하는 팔라툼 왕실 재단사들이네요. 불편함이 전혀 없어요.=

백려강이 무용의 일부 동작을 보이며 하늘하늘 움직이는 모습에 눈을 반짝 빛낸 아영이 찰싹 붙어 그녀와 손을 잡고 우아한 춤을 추기 시작한다.

궁중 무도회 같은 춤사위에 백려강이 눈을 동그랗게 뜨자 유르파가 후후 웃으며 물었다.

=라드세아 드레스는 안 그러니?=

=아, 라드세아의 드레스는 착용자의 움직임을 극단적으로 제약해서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쪽이라……. 노골적으로 말하면 입는 사람을 위한 드레스가 아니라 보는 사람을 위한 드레스예요.=

=아. 어떤 느낌인지 알 거 같네. 엄청 살을 조이고 조금만 몸을 숙이거나 크게 움직이려하면 실밥이 다 뜯어지는 드레스.=

안느도 이실리테와 자신의 차림을 번갈아 보면서 안타까움을 드러낸다.

=이렇게 예쁜 걸 한 번만 입을 수밖에 없다는 게 아쉬운걸. 그치?=

=응.=

이런 옷은 별로 즐기지 않는 이실리테도 그리 대답할 정도.

그녀들의 아쉬움에 환인이 스마트폰을 꺼내며 말했다.

“오히려 한 번밖에 입을 수 없기에 더 아름다울 수 있는 법이지.”

=오, 그 관점은 무척 시적이야. 그런데…… 지금 뭐 해?=

“그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려고. 다들 이리로.”

환인은 스탠드에 스마트폰을 세워 촬영 모드로 해놓은 뒤 기다란 소파를 가져와 여자친구들을 앉혔지만.

=아냐아냐. 이렇게 하는 게 더 좋을 거 같아!=

안느는 고개를 도리질 치고는 3인용 화려한 의자를 가져온 뒤 환인을 가운데에, 그리고 좌우에 백려강과 아영을 앉히고 자신은 환인의 바로 뒤, 그리고 자신의 좌우에 유르파와 이실리테가 서도록 한다.

“이건 가족사진 같은데.”

=가족 맞잖아.=

“…그렇군.”

타이머 기능으로 사진을 남긴 환인은 다시 자리를 바꿔 세 장 정도 더 남기고 나서야 만족하며 스마트폰을 거두었다.

여자들은 환인에게서 폰을 받아와 작은 화면 속에 자신들이 들어가 있는 것을 보며 무척 신기해했다.

이실리테, 안느, 유르파는 경험이 있기에 그 신기함이 덜했지만, 그런 경험이 없는 백려강과 아영, 특히 아영은 스마트폰 안으로 들어갈 것처럼 경악한 모습이다.

=이, 이런 게 있으면 첩보랑 잠입 조사가 얼마나 쉬워질지……!=

=야. 그런데 쓸 생각은 꿈에도 하지 마. 도령도 알리지 않고 조용히 가지고 다니는 건데.=

=헤헤. 저도 금방 그 생각을 했어요. 만약 카락스 같은 곳이 이런 걸 쓴다는 게 알려지면 메리아놀 처형부대가 똑똑~ 노크할걸요?=

웃으며 화면 패널을 자신도 모르게 넘긴 아영은 이어서 드러난 살색의 향연에 =헉!= 눈을 크게 떴다.

=우와, 야해!=

=어?=

아까 했던 동작을 반복하자 화면이 자꾸만 바뀌며 수많은 사진이 지나간다.

알몸으로 누워 자는 이실리테와 안느, 유르파.

벌거벗고 쏟아지는 빗속에서 몸을 씻는 안느.

여름인 듯 브래지어와 팬티의 속옷 차림으로 마차 그늘에 앉아 시원한 음료수를 마시는 이실리테.

강인지 호수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 곳에서 속옷만 입고 물장난을 치며 노는 이실리테와 안느, 비상. 그리고 하얀 원피스 차림으로 근처에서 구경하는 유르파.

새빨갛게 지는 노을을 바라보는 여자들의 뒷모습과 비상에 쿠에들이 한가로이 흩어져있는 사진 등.

=와, 이건 언제적 사진이에요?=

=어? 아, 이거 프라버로 올라가는 길에 찍은 거네. 땅에 고인 많은 물들, 하늘 고래가 지나가면서 뿌린 비야. 여긴 수해로 홍수가 난 흔적이고.=

=이건 저도 있을 때네요. 프라버 북쪽 연안 절벽을 이동할 때 찍은 거요.=

=응? 이거 봐. 아지에라 상급 영혼사님이야. 아, 엘스너펠에 가는 길의 온천에서 찍은 사진이구나.=

=앗! 부끄러운 곳까지 다 찍혔어! 여긴 다른 영혼 기사님들 알몸도…… 엥? 이 사진만 계속 나오네. 도령 대체 몇 장을 찍은 거야?=

10명이 넘는 알몸 여자들의 사진 수십 장에 환인은 여자친구들의 시선이 조금 뾰족해지는 걸 느꼈지만, 오히려 하나도 이상할 게 없다는 듯이 당당하게 말했다.

“일상을 주제로 추억을 위해 남긴 사진일 뿐이다. 음란한 목적으로 찍은 거라면 너희들과 관계 중에 영상과 사진을 노골적으로 찍었겠지.”

=하긴…….=

음흉한 속셈이 아닌 것은 몇몇 사진에서도 드러난다.

안느가 특정 사진을 크게 하며 말했다.

=나 이 사진 좋아. 샛노란 노을이 엄청나게 크게 찍힌 거. 주변이 빨갛게 불타는 황혼에 그림자가 져서 다들 까맣게 보이는 게 하늘이랑 섞여든 거 같아서…….=

=난 이게 더 좋은데? 안느 아가씨 나신이 빗방울에 가려져 보일 듯 말 듯한 게 안타까움을 불러일으키잖아.=

=와앗, 무슨 사진을 보는 거야!=

그렇게 스마트폰으로 놀던 여자들은 밖에서의 인기척에 폰을 환인에게 돌려주었고, 때를 맞춰 문이 열리며 미리도르무가 들어왔다.

=환인 성제 예하. 바깥에 탈것이 준비되었습니다.=

“알겠습니다. 바로 출발하지요.”

오른쪽 허리에는 무한의 손가방 아스펜드를, 왼쪽 허리에는 광창에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광명창光明槍의 코어를 걸고 천릉의 반코트를 걸친 환인은 여자친구들과 함께 정원 쪽에 붙은 문을 열었다.

그리고 잠시 그 풍경을 눈에 담았다.

축구장 절반만 한 정원에 살포시 내려앉아 있는, 플라비우스족의 날개처럼 새하얀 배 모양의 탈것. 그리고 그 배와 한 쌍이 되는 2층 주택만 한 크기의 하얀 새.

히스론드의 국조, 천공의 매와 팔라툼의 특급 귀빈만을 태운다는 천공의 배다.

거기에…….

뀨으! 뀨우으으~

…….

비상은 그 맹금과 기 싸움 중이었다. 아니, 떨떠름해 하는 기색이 천공의 매에게서 느껴지는 것을 보면 비상에게 기세에서 조금 밀리는 중.

=앗, 아아.=

그 장면을 이제야 본 듯 미리도르무가 퍽 당황해서 알 수 없는 신음을 흘린다.

귀중한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왕과 왕족들만 탄다는 천공의 배와 천공의 매를 지엄하신 왕의 명령에 데려온 건데, 도착할 때만 해도 녹색 쿠에는 없었는데 갑자기 어디서 나타났단 말인가!

희귀함만 따진다면 천공의 매보다 녹색 쿠에가 더하다. 저러다 둘이 싸움이라도 나면 그 책임은 온전히 자신의 것.

“비상, 이리 와라.”

다행히 사달이 벌어지기 전에 제지하는 환인 덕에 미리도르무는 십년감수했다며 소리 없이 한숨을 흘렸다.

큐으.

환인의 부름에 비상은 천공의 매를 노려보다가 타박타박 그에게 다가갔다.

그런 비상의 눈에는 ‘너 저게 끄는 마차를 탈 거야? 아니지?’ 불만 어린 기색이 가득하다.

쿠르티와 쿠핀, 쿠라가 이끄는 마차를 타는 건 쿠에들을 가족으로 여겨서 허락하지만, 저런 덩치만 큰 비만 새를 타고 가는 건 용서 못 한다는 비상의 눈초리에 환인은 피식 웃으며 부리를 다독여주었다.

“아무래도 저는 비상을 타고 가야 할 것 같군요. 비상의 질투가 상상 이상인지라.”

=…네, 알겠습니다.=

미리도르무는 당황했지만 별수 없다고 여겼다.

성격이 온화하고 다툼을 싫어한다는 이야기도 가장 흔한 밀짚색 쿠에한테나 통하는 이야기다.

쿠에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라면 색이 희귀한 쿠에일수록 자존심과 질투가 상상을 초월한다는 사실을 잘 안다.

검은색 쿠에가 자신의 파트너를 태운 다른 쿠에를 보고 그 쿠에를 부리로 쪼아 죽이려 들었다는 사례는 유명한 이야기니까.

삐. 삐이.

=도령. 실루는 어떻게 해?=

“아무도 없는 집에 실루를 두고 갈 수는 없지. 안느. 네가 실루를 데리고 다녀라.”

=응.=

환인의 여자들이 계단을 올라 배에 승선하자 천공의 매는 환인을 등에 태운 비상을 힐끔 보곤 배의 중심에 난 아치 기둥을 두 다리로 단단히 잡고 펄럭— 펄럭— 강하게 날갯짓하기 시작했다.

한 짝에 15m가 넘을 거대한 날개가 광풍을 일으킬 때마다 천공의 배가 한 번에 수 미터씩 빠르게 상승한다.

비상과 마찬가지로 바람을 다루는 모양새.

왕실의 중요한 손님을 초대할 때만 보낸다는 천공의 배는 정작 가장 중요한 인물을 태우지 못한 채 히스론드의 가장 높은 봉우리를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것의 어디에서 마음에 들지 않았을까. 비상이 아르릉거리면서 천공의 매를 향해 틱틱거린다.

꾸으으~. 뀻. 뀨르르~

“진정해라. 왜 자꾸 싸움을 걸려 하는 거냐.”

뀻. 뀨! 꾸에엣~!

돌아온 대답에 환인은 조금 기막힌 감정을 느끼며 비상의 머리를 다독여주었다.

괜히 마음에 안 든다는데 뭐라고 할까.

같은 날개 달린 새인데다 같은 바람의 힘을 쓰며 위상력의 양도 비슷하니 본능적인 경쟁심이 솟았기 때문이겠지.

5분가량을 날아 도착한 히스론드 천주산天柱山의 봉우리에서 환인은 시선에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분명 아래쪽에서 본 산꼭대기에는 만년설이 두텁게 쌓여있었고 실제 눈에 보이는 것도 온통 새하얀 눈이지만, 그렇게 춥다고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영혼의 눈을 펼친 환인은 그제야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체온 보존과 안정화의 결계인가.’

공기 중을 타고 흐르는 인위적인 에너지가 산봉우리 전체를 감싸고 있었다.

이 결계 안에 들어온 사람은 결계의 영향을 받아 체온이 일정 이하로 내려가지 않지만, 기온에는 일절 영향을 주지 않는 것.

쿠우웅—…….

삐이이이이잇——

한발 늦게 천공의 배를 내려놓은 천공의 매는 별꼴 다 본다는 듯한 울음소리를 남기며 저쪽에 보이는 성을 향해 날아가 버렸다.

그 울음소리에 반응한 비상이 딱딱 부리질을 하면서 꽥! 괴성을 질렀지만, 환인에게 고삐를 잡혀 뒤쫓아가진 못했다.

내버려 뒀다면 틀림없이 뒤쫓아가서 푸닥거리를 했겠지.

“얌전히 있어라.”

꾸으!

환인은 자신의 등을 머리로 툭툭 치고 밀어대는 비상의 앙탈에 가까운 짜증을 모두 받아주며 주변을 빙 둘러보았다.

‘생각 이상으로 넓군.’

높이도 높이지만 지구의 테이블 마운틴처럼 평평한 봉우리가 마을 하나를 충분히 담을 만큼 드넓게 펼쳐져 있다.

그리고 천왕궁이라 불리는 파르세타가 그런 산봉우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 풍경.

3m 정도 되는 성벽 밖으로 곳곳에 침엽수가 올곧게 자라 하얀 눈옷을 입고 있는 것이나, 눈새나 눈토끼 같은 작은 동물이 깡충거리며 돌아다니는 평화로운 광경도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환인의 시선은 성에 고정되어있었다.

눈에 보이는 첨탑만 30여 개에 대성당을 우습게 여길 정도로 온갖 조각과 장식이 깎이고 새겨진 성과 그보다 작지만 자못 호화롭게 지은 여러 궁에 탑들이 모여 이룬 천왕궁.

그 전체 무게는 이런 산봉우리가 감당할 수준이 아닐 텐데.

‘술법의 힘인가.’

히스론드는 술법 쪽에 국력이 치중된 국가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니 이런 비이성적인 장소를 고집하고 있는 거겠지.

=뭐지? 눈밭인데 하나도 안 춥네.=

=와아……! 언니들, 풍경 좀 보세요. 대단해요……!=

=주인님.=

환인은 천공의 배에서 내려 이쪽으로 다가오는 여자친구들에게 걸음을 옮겼다.

뽀득뽀득 눈 밟는 소리. 드레스를 살짝 나부끼는 여자들.

한 명 조금 부족한 사람이 있긴 하지만, 눈밭에서 아름답게 차려입은 그녀들의 자태는 그야말로 지상에 내려온 여신이다.

=저게 천왕궁인가? 으리으리하긴 으리으리하네.=

=이런 곳에 성을 짓는 건 낭비의 극치 같은데…….=

=낭비와 사치야말로 왕의 규범이라고 생각하는 얼뜨기들이 많아서 그런 거겠지.=

안느와 이실리테의 대화에 백려강이 쩔쩔매는 얼굴로 그녀들의 팔을 붙잡는다.

=언니, 그런 말씀 하시면 큰일 나요……!=

=우리도 알고 있어. 남들이 안 들을 때만 하는 말이니까.=

=으으~.=

=걱정 마. 나도 플뢰란 말이야. 주변에 남들이 있는지 없는지는 다 알아.=

그에 맞춰 미리도르무와 그녀의 일행도 도착해 내려섰고(이때 백려강의 얼굴이 살짝 창백해졌었다), 드드드드— 성문이 크게 열리는 소리와 함께 회색 쿠에 네 마리가 이끄는 화려한 마차도 이쪽을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차와 쿠에들이 나타나자마자 환인을 지그시 바라보는 비상.

저거 탈 거야? 아니지? 그런 의미의 눈빛에 환인은 후우, 작게 한숨을 내쉬며 특단의 조처를 내렸다.

“비상. 넌 집에 돌아가 있어라.”

뀨?!

“여기에 온 이유는 놀기 위해서가 아니다. 어디까지나 업무의 연장이지. 그리고 저 성에 들어가면 너와 같이 있는 것은 불가능하다. 너 혼자 다른 곳에 있어야 하는데, 괜찮나.”

꾸으~! 뀻, 뀨엣!

“실루는 작으니 괜찮다. 아니면 네가 등에 태워서 같이 집에 돌아가 있을 테냐.”

…….

불만 가득한 비상의 녹색 눈동자를 환인도 피하지 않고 똑바로 바라본다. 그러자 입술을 삐죽이듯이 푸르르— 투레질을 한 비상은 몸을 휙 돌려 도시가 있는 저 하늘로 쌩하니 날아가 버렸다.

명백하게 ‘나 기분 나빠졌어!’를 풀풀 풍기는 뒷모습에 이실리테가 걱정스럽다는 듯이 환인에게 물었다.

=주인님, 괜찮을까요? 비상이 좀 삐진 거 같은데요.=

“놀러 온 거라면 녀석의 비위를 어느 정도 맞춰줬겠지만, 여기에는 일하러 온 거다. 비상도 그걸 알고 있으니 날아간 거겠지.”

이때까지 너무 오냐오냐해준 걸까. 가끔 억지나 고집을 부려도 이정도는 아니었는데.

‘이런 경우가 없었기에 그럴지도 모르겠군.’

교육을 해야할 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 환인은 미리도르무와 함께 이름 모를 새를 표면에 화려하고 웅장하게 새긴 마차를 타고 천왕궁을 향했다.

화려하기 짝이 없는 마차 안에서 거대한 새를 양각한 성문은 어떤 의미가 있고, 1년 중 단 2개월만 녹아 꽃을 피운다는 눈의 정원은 또 어떤 의미가 있으며, 중앙의 가장 거대한 성 파르세타에는 어떠한 의미가 어쩌구 파르세타를 중심으로 동서남북 네 방향에 있는 궁은 또 어떤 의미가 저쩌구.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는 미리도르무의 설명을 한 귀로 듣고 치우며 5분 동안 마차를 타고 이동한 곳은 천왕궁의 가장 중앙에 있는 천공성 파르세타였다.

정확한 묘사는 아니지만, 이글루처럼 한쪽으로 길게 난 통로로 들어간 일행은 마차에서 내린 순간 주변 기온이 봄날처럼 훈훈함을 느꼈다.

마치 터널처럼 기다란 구조물을 만들어놓은 이유가 여기에 있는듯하다.

=성제 예하. 이쪽입니다.=

단단한 화강암으로 포장된 길을 따라 걷다가 하얀 대리석 계단을 걸어 올라간다.

다른 의미가 있을 법한 22계단을 오르자 환인과 그의 여자들 앞에 나타난 것은 흡사 7성급 호텔 입구처럼 화려한 문.

미리도르무가 열어주는 문을 따라 들어가니 세계 제일의 부자가 살법한 웅장한 저택 같은 내부 풍경이 드러난다.

살짝 적색으로 느껴질 법도 한 황색 기조의 내부 풍경 속에서 미리도르무가 정중하게 허리를 숙였다.

=북극성으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성제 예하, 영혼 기사님들. 이쪽으로.=

그에 환인의 여자들은 푹신푹신한 양탄자가 가득 깔려 뾰족한 굽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복도를 걸으며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지금 눈에 보이는 복도를 꾸민 돈만 따져도 족히 수백 닢의 금화가 들었을 것이다.

그야말로 사치의 끝.

성 밖도 덜 추웠지만 성안을 이렇게 훈훈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위상력을 소모하고 있을 것인가. 성 밖의 체감 온도가 그저 쌀쌀한 수준으로 맞추기 위해 또 소비하는 위상력은 어느정도일 것인가.

20m 정도 양탄자 길을 걸은 환인은 미리도르무가 멈춘 것을 보고 따라 멈추어 섰다.

멈춘 바닥에는 근엄하고 웅장한 거대한 새가 지름 10m 정도 되는 원판에 새겨져 있다. 미리도르무는 그 문양 원판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곳 동그란 바닥 위에 올라와 주십시오. 여기서부터는 바닥이 움직여 여러분을 북극성까지 안내해드릴 것입니다.=

무빙워크라도 있는 건가 싶었지만, 말 그대로 새가 새겨진 원판에서 위상력으로 이루어진 복잡한 문양의 술법적인 원판이 떠올라 일행을 자동으로 운반하기 시작한다.

지구에서도 최상위권 재벌이나 왕족들은 도어 투 도어를 기본으로 하는데 여기도 그런 개념을 적용한 모양새.

환인은 성인이 달리는 정도의 속도로 이동하는 원판 위에서 미리도르무에게 물었다.

“방금 북극성이라고 하셨지요. 그건 무엇입니까.”

=북극성이란 북쪽 하늘에 자리 잡은, 언제나 변치 않는 밝음의 별로써 천공성 파르세타의 중심이자 천왕 폐하께서 기거하시는 내실을 가리키는 이름입니다.=

“그건 마음에 드는군요.”

예식이며 뭐며 자기네들만의 자존심을 치켜세우기 위한 룰을 이쪽에도 강요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왕이 기거하는 곳으로 곧장 안내한다니.

미리도르무는 환인의 대답에서 느껴지는 불쾌함에 특별 가시방석에 앉은 듯한 초조함을 느꼈다.

영혼사들은 사치와 향락을 즐기지 않는다고 한다. 그건 이분, 성제 예하도 마찬가지이실 테니까 이 화려한 파르세타에 심기가 상하신 게 아닐까.

그렇다고 천왕 폐하의 앞에서 무례한 행동은 하지 말라고 경고하는 것도 불가능하기에 미리도르무는 위장이 꼬이는 고통에 속으로 신음을 흘렸다.

=이곳입니다.=

직선과 직각, 반원을 그리며 5분 정도 이동한 원반이 멈추고 일행을 바닥에 내려놓은 곳은 4급의 직업자, 날개 두 쌍의 플라비우스족 기사들이 지키고 선 웅장한 문 앞이었다.

=천왕 폐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기사들은 환인에게 약식 경례를 올리고는 문에서 좌우로 물러나며 길을 터 주었고, 그와 함께 강철문에 버금가는 육중한 문이 드드드— 자그마한 진동과 함께 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보이기 시작한 내부 풍경은…… 둘째치고.

=왔다! 아니, 오셨다!=

=와, 와아!=

그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정말 황제나 입을 법한 화려하고 웅장한 복식의 남녀 아이 두 명이었다.

“……?”

기다리던 영웅을 맞이하는 듯한 모양새로 눈을 반짝이는 아이들.

이제 8살 정도 되었을까. 금을 실로 뽑아서 한 올 한 올 심은 게 아닐까 싶은 찬란한 금발, 그리고 불길한 적색이 아니라 하늘의 태양처럼 샛노란 불길 같은 눈동자.

입고 있는 곤룡포…… 아니, 곤조포袞鳥袍는 사이즈 덕택에 위엄보단 귀여운 느낌이지만, 두 아이의 외모며 등에 난 네 쌍의 날개는 아이들의 정체를 대놓고 드러내고 있었다.

두 아이 중 활달하고 개구쟁이 느낌이 강한 미소년이 활짝 웃으며 손을 들었다.

=만나서 반가워요! 저가 크레아 닐비고 얘가 비나 루에나에요! 우리가 닐비나 천왕이에요!=

=아, 안녕하세요……!=

‘닐비나 천왕 폐하라더니. 한 명을 부르는 게 아니었나.’

어쨌든, 아이에게는 온화하게 대해야 한다는 부모님의 가르침에 더해 두 아이에게서 느껴지는 일방적인 호의를 느낀 환인은 다소 불편한 감정을 접고 자연스럽게 두 아이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으며 인사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닐비나 천왕 폐하. 제가 영도의 대성자 후보, 환인입니다.”

=와아앙……!=

=하으으…….=

그리고 과도한 흥분 탓에 졸도하려는 두 어린 왕을 환인은 어쩔 수 없이 잡아 품에 안았다.

내버려 두었다간 뒤로 넘어질 것 같아서였다.

그러자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웅얼거리며 팔을 뻗어 환인의 목을 감싸 안는 아이들.

환인은 조금 난감함을 느끼며 여자친구들을 돌아보았고, 여자친구들도 당황한 얼굴이지만 방법이 없는지 곤란한 표정을 짓는다.

=폐하의 옥체를 신분이 낮은 우리가 함부로 손댈 수 없잖아? 도령이 힘 좀 써.=

“…….”

두 소년·소녀를 양팔로 받치며 품에 안고 일어서자 벽에 마네킹처럼 서 있던 날개 한 쌍의 플라비우스족 여자가 다가와 말없이 방 한가운데를 가리킨다.

그곳은 화려함의 극치라 할 수 있는 200평 남짓한 방의 한가운데 자리한, 어린이들의 놀이방처럼 꾸며놓은 장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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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늦어서 죄송합니당!!

축구 보면서 쓰다가 이상한 부분 쳐내고 갈아엎고 조금 보태느라 늦었어용...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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