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9 하늘 도시 팔라툼
플라비우스족의 신분과 실력은 다른 여느 종족들과 달리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바로 날개의 숫자.
날개 한 쌍은 플라비우스족 전체 인구의 90%를 차지하며 각종 노동 계급을 담당한다. 여기에는 1급~2급의 직업자도 포함되는데 이들은 노동 계급 중에서도 상위 계층이다.
두 쌍은 남은 인구의 90%를 차지하며 9할이 2~5급의 직업자, 나머지는 매우 뛰어난 법술사(각성하지 못한 술법학자)나 혹은 극소수의 변종(깨달음으로 날개의 추가를 이뤄낸 사람)이 차지한다.
이들 두 쌍부터는 중산층을 의미하며 플라비우스족 사회 권력의 피라미드 중간층을 이룬다.
세 쌍부터는 6급 이상의 직업자들, 또는 선천적인 재능으로 그 힘을 개화시켜 수준 높은 능력을 지닌 자들로 구성되어있으며 1~2쌍의 날개 인구를 제외한 남은 숫자의 99%를 차지한다.
날개 세 쌍은 플라비우스족 사회 상류층, 플라비우스족 그 자체라 할 수 있고 권력의 피라미드 최상층을 전담한다.
그리고 날개 네 쌍.
이들은 한 시대에 고작 두세 명만 존재할 뿐이며 권력의 피라미드 정점이자 플라비우스족의 왕, 혹은 여왕이 된다.
날개 네 쌍, 사쌍익은 두 가지 방식으로 탄생한다.
9급 이상의 직업자가 되거나 어느 한 가지 영역에서 반인반신의 위치에 도달하는 쪽.
그리고 태어날 때부터 네 쌍의 날개를 가지고 태어나는 쪽.
전자는 플라비우스족 역사를 통틀어도 셋을 넘지 않았다. 사쌍익 대부분이 플라비우스족 부부 사이에서 태어나는 것이다.
플라비우스족이 타 종족과 혼인을 하지 않는 이유가 이 때문이지만 아무튼.
탄생의 범주는 신분이나 날개 숫자에 차별을 두지 않는다.
노동 계급 부부 사이에서 날개 네 쌍의 아이가 태어날 수도 있고 세 쌍 날개 사이에서도 태어날 수 있는 것이 사쌍익.
부모가 무직자 노동 계급의 단쌍익이라 해도 차별당하거나 제거당하지 않고 곧장 천 왕궁에서 아이를 소중히 데려가 키워진다.
그리고 성인이 되면 왕이나 여왕의 신분을 천왕궁 꼭대기 배알의 방에서 받게 되는데.
보통의 권력 사회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은, 네 쌍의 날개는 하늘신의 사자로써 하늘신의 뜻을 받는 일종의 무녀巫女나 격覡(남자 무녀, 박수)이기 때문이다.
전설로는 다섯 쌍의 날개도 있다 하지만 실제 목격된 사례는 없다.
환인은 영도의 기록실에서 본 플라비우스족의 신분 피라미드를 떠올리며 가까이 다가온 날개 세 쌍의 남자를 가만히 응시했다.
그런 시선에 남자, 레아우카=사바인은 날개를 바짝 접고 오른손을 가슴에 올린 뒤 살짝 허리를 숙였다.
=천왕궁 소속 제2 천공기사단 단장, 레아우카 사바인입니다. 영도의 차기 대성자 후보이신 성제 예하를 뵙습니다.=
종족의 자부심이자 자존심인 날개를 완전히 접는다는 것은 플라비우스식 극공경의 인사.
이빨들을 두들겨 패면서 스트레스를 좀 푼데다 아영과 대련하며 약간이지만 나름대로 만족까지 했던 환인은 담담하게 그 인사를 받았다.
“영도에서 성제의 지위를 받은 환인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상대가 까칠하게 나오거나 음험하게 술수를 부릴 것도 염두에 두었던 레아우카는 지극히 상식적인 답에 속으로 의외라고 생각하며 2차로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를 받았다.
=제가 이 자리에 선 것은, 연락도 없이 불시에 찾아뵌 이유를 설명해 드리고자함 이외에 다른 뜻이 없음을 먼저 알려드립니다.=
“그렇습니까.”
=예. 제2 관문에서 연락이 오길, 암살자로 의심되는 자들이 성제 예하의 뒤를 따르고 있다는 보고였습니다. 추측건대 성제 예하를 암습하려했던 카락스의 암살자일 것이라 판단, 천왕궁의 무장 장관께서 저희 제2 천공기사단을 급히 파견하였으나…….=
레아우카의 시선이 환인의 뒤에 무릎 꿇은 이빨들에게 향한다. 그걸 알아차린 환인은 안색 하나 바뀌지 않고 담담히 말했다.
“이들은 카락스의 암살자가 아닙니다. 그저 제게 교육과 시험을 받은 사람들일 뿐이지요.”
=……정말 실례했습니다. 저희 쪽 인식 연락 체계에 약간 말썽이 있었나 봅니다.=
그의 대답에 환인의 눈빛이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찰나 간에 빛을 발했다.
제법 눈치가 빠르고 머리가 잘 돌아가는 사람이군. 호천명과 다른 타입이지만 비슷하게 똑똑한 사람인 듯하다.
다들 이 정도로만 눈치를 발휘해도 말썽이 덜할 텐데, 환인은 그렇게 생각하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말썽은 더 없을 겁니다. 이 일로 문제가 발생한다면 제가 책임질 것을 약속드리겠습니다.”
=예. 그렇게 장관께 보고를 올리겠습니다.=
그리고는 실례했습니다, 짧게 인사한 레아우카는 대동한 상급 기사 둘과 함께 하늘로 우아하게 날아올랐다.
천사의 그것 같은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가던 상급 기사 아리드는 대여 주택과 거리가 멀어졌을 때, 주택 안으로 들어가는 성제와 일단의 인간들을 곁눈질하다가 단장에게 말했다.
=사바인 단장. 방금 성제의 이야기는…… 그런 겁니까?=
=그래.=
=위험한데…… 카락스의 암살자가 영도의 휘하로 들어가는 걸 두고 볼 사람은 많지 않을 겁니다.=
아리드의 이야기에 시종 일 웃는 얼굴의 시아이나가 드물게 웃지 않는 얼굴로 질문했다.
=이 사실을 천왕궁에 보고하실 생각이십니까?=
긴 시간 곁을 지켜온 상급 기사의 질문에 레아우카의 표정도 살짝 어두워졌다.
=내가 말한다고 그들이 듣겠나?=
=큭. 단장님도 삼쌍익이 되셨는데……!=
분개하는 아리드의 반응에 레아우카는 쓴웃음을 지으며 저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은 봉우리 위의 천왕궁을 응시했다.
성제는 상상 이상으로 위험한 사람이다.
질리언트를 어린아이로 만들어버릴 거인을 거두고 이번에는 니오네브레스 3대 암살 조직인 카락스를 거두어들였다.
여기서 그가 신경 쓰는 위험 요소는, 카락스가 단순한 암살 집단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의뢰받으면 무작정 살인하는 다른 두 곳과 달리 카락스는 암살 집단이 아니라 첩보 단체라고 할 만큼 잠입과 암행 실력이 뛰어나다는 사실.
만약 카락스가 양지로 나와 영도의 비호와 지원을 받게 된다면, 영도는 거인이라는 방패에 카락스라는 송곳니까지 쥐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고작 한 사람이 며칠 만에 이뤄낸 업적이다.
게다가 순하고 선한 영혼사들이 그 두 가지 힘을 함부로 휘두르지야 않겠지만, 가진 자들 입장에서는 적지 않은 위협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그건 또 어떤 문제의 소용돌이를 일으킬 것인가.
유일 직업자의 출현. 거인의 등장과 카락스의 합류.
‘용과도 친밀하고 초월급 정령과도 인연이 있고…….’
레아우카는 엘위드리스가 시주르 대평원에서 그를 암살하려 할만하다고 생각했다.
미래를 예지하는 자들이니 성제를 직접 암살하려 할만한 미래를 본 거겠지. 그와 연관되어 자신들이 망한다거나 하는 미래 같은 것.
그를 직접 죽이면 영식이 벌어질 테니 도시에서는 노리지 못하고, 벨티칼이든 히스론드든 본격적인 두 국가의 권역에 들어가면 복잡다난한 지형 탓에 그를 추적하는 것도 힘들어질 테니 드넓은 시주르 대평원에서 노린 거겠지.
결과적으로 그 선택은 최악의 상황을 낳았다.
‘엘위드리스의 예지도 정확하지 않군. 아니…… 이것도 예지에 포함되어 있나?’
헷갈린다. 이것이 예지의 모순일테지만 어쨌든.
=시아이나, 아리드. 제2 천공기사단은 성제와 불변의 거리를 둔다. 피치 못하게 접촉해야 한다면 최대한 대화를 피하라고 단 내에 전달하도록.=
=예, 단장님.=
=네.=
황금 부스러기를 얻기 위해 황금 거인의 곁에서 함께 걷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 각오가 필요하다.
설령 황금 거인이 우호적이라 해도 실수로 밟히는 일이 있을 수 있고, 소인에게 있어 그것은 죽음과 직결되는 일이니까.
문제는 성제가 정말 황금의 거인인가 하는 것이다.
‘후, 절망의 거인이겠지. 건드리면 세상을 불태울 재앙의 거인…….’
상층부도 그 사실을 빨리 알아차려야 할 텐데. 레아우카는 조국의 미래를 우려하며 하늘신께 기도를 올렸다.
대여한 주택의 거실은 넓었다. 거의 30평은 될법한 넓이다.
2층으로 돌아 올라가는 계단과 좌우에 난 복도를 확인한 환인은 이실리테를 불러 물었다.
“이곳 욕실은 어느 정도 크기지.”
=저들 7명은 동시에 들어갈 수 있는 넓이예요. 지하에 있어요.=
그 대답에 여기저기 쳐맞고 피를 흘리고 땅을 뒹굴며 엉망진창이 된 11명의 남녀를 돌아본다.
“그러면 안느는 이빨들을 치료해주고, 치료받은 자는 내려가서 씻고 오도록. 유르파, 위상력 보조제 하나만 주십시오.”
=응. 여기.=
아영을 소파에 눕힌 환인은 예상했다는 듯이 유르파가 건네주는 엄지 크기만한 약병을 받아들었다.
진한 파란색 액체가 짙은 약초 냄새를 풍기며 찰랑인다.
그것의 뚜껑을 딴 환인은 조심스레 아영에게 먹인 뒤 원기의 파동을 한차례 펼쳤다.
그를 중심으로 안개와도 같은 파동이 홀을 한차례 휘감고 사라진 직후, 소모된 체력이 빠르게 회복되는 걸 느낀 이빨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서로를 돌아보았다.
=이건…….=
=으음.=
원기의 회복, 기력 회복은 회복 중 가장 흔하면서 간단한 능력이다. 성술사라면 상처의 회복보다 기력의 회복을 먼저 쓸 수 있게 되는 정도.
하지만 그건 성술사의 이야기. 영혼사가 기력 회복의 술을 쓰다니?
들어보지도 못한 현상에 새삼 성제의 불가사의함을 상기한 그들은 안느의 치료를 받으며 조금 우울한 시선을 나누었다.
자신들의 안목은 우물 안 개구리였고 진짜는 아영이었다고.
짝짝.
=자, 적당히 움직일 수 있게 됐지? 이제 내려가서 씻어. 몸만 씻는 정도면 당신들 전부 들어가도 될 정도니까. 씻었으면 옷도 깨끗한 거로 갈아입고 오고.=
=네…….=
이빨들이 걸어 다닐 수 있을 정도로만 치료해준 안느는 그들을 모두 욕실로 내려보낸 뒤 소파에 눕혀진 아영에게 다가갔다.
=도령. 아영인 어때?=
“예후가 별로 좋지 않다.”
=으응. 위상력 회복제를 먹이고 원기를 불어넣어 주면 깨어나서 치유를 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야. 마신 위상력 보조제를 전부 자가 회복에 돌리는 모양새네. 그런데 어중간하게 회복되고 있어서 오히려 더 위험한 상황이야.=
=언니가 치료해줘야 할 거 같아요.=
유르파와 백려강의 이야기대로였다.
심각할 정도로 부어오른데다 시커멓게 변하고 있던 허벅지나 팔뚝, 광배근 등의 붓기가 조금 가라앉고 색도 적당히 시푸르딩딩하게 변했지만, 오히려 그래서 상태가 더욱 안 좋아지고 있다.
마치 신경이 모조리 끊어지고 있는 것처럼 허벅지 곳곳이 울룩불룩해지는 데다 경련까지 일어나고 피부가 돌덩어리처럼 딱딱해진 것.
너무나도 최악이라 상세가 악화하지 않고 고착되어있다가 약간의 치료가 벌어지니 본격적으로 근섬유 파열이거나 근융해증이 벌어지는 현상이었던 거다.
“음.”
마악 그녀를 치료하려던 안느는 환인의 침음 소리에 땅신의 징표를 손에 쥔 채 환인을 돌아보았다.
=왜? 치료하면 안 돼?=
“……할 수밖에 없겠지. 위상력 보조제는 여러 번 먹을 수 없고, 이대로 내버려 두면 아영이 언제 깨어날지 모르니.”
=그런데 왜…….=
해선 안 되는 것처럼 침음을 흘려서 신경 쓰이게 만들어?
미간을 살짝 모은채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안느는 일단 아영을 먼저 치료할 생각으로 뼈가 부러진 것처럼 부어오른 부분에 손을 올린 채 약한 치유를 연달아 펼치기 시작했다.
심각한 중상은 단번에 치유해버리는 게 좋지만, 이런 식에는 차근차근 조금씩 치료하는 게 근섬유의 성장과 강화에도 도움이 되는 것.
다만 그건 평범한 사람의 이야기다.
안느가 7번째 치유를 펼쳤을 때 갑자기 아영의 몸이 크게 펄떡이더니 쿵, 소파에서 떨어져 온몸을 벌벌 떨기 시작했다.
=…끅! 으긋. 허윽……!=
=어, 어어? 얘 왜 이래? 야, 아영아, 정신 차…….=
거기다 숨이 넘어갈 것 같은 신음까지. 누가 봐도 비정상적인 현상에 안느가 놀라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려 흔들었을 때였다.
=아아아악!!=
아영의 입에서 터져나온 소름끼치는 비명이 터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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