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궁기담-579화 (579/813)

573 팔라툼으로 가는 길

573 팔라툼으로 가는 길

귀속 비술 계약은 그야말로 번개같이 이루어졌다.

환인의 피 한 방울을 아영의 혓바닥에 바르고 유르파가 보석 박힌 스틱으로 혀를 살짝 건드리는 걸로 끝.

분홍색의 혓바닥 가장 안쪽, 목젖 부근에 새겨진 작은 술법진은 그녀의 목 전체와 목뼈에까지 위상력으로 이루어진 가느다란 실타래를 뻗어 일체화했다.

만약 그녀가 환인을 향해 나쁜 마음을 먹는다면 그 즉시 폭발, 머리와 몸이 분리되어 사망하게 될 것이다.

아영의 목덜미에 위상력을 살짝 흘려 넣어 반응을 살핀 유르파가 고개를 끄덕인다.

=응, 제대로 연결됐어.=

“그럼 비술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한 번 테스트해보지. 준비 됐나.”

=네— 에욱^@#$&*!!=

고통을 주겠다고 마음먹자마자 아영이 머리를 감싸더니 알아들을 수 없는 괴성을 지르며 고꾸라져서는 잉어처럼 펄떡인다.

=우에엑—.=

그러더니 엎드려 점심으로 먹었던 것을 게워내기 시작했다.

새하얗게 불태운 것처럼 주저앉아 고개를 푹 숙이는 아영. 안색까지 핼쑥해진 게 겨우 2초만 고통을 주었다고 보기 어려운 효과다.

그녀의 뒷머리를 응시하던 환인은 유르파에게 물었다.

“혹시 귀속 비술을 성술로 해제할 가능성은 없습니까.”

아영도 7급 성술사다. 성력을 신체 강화와 재생으로 돌려 동급 근접 직업자보단 못하지만, 그에 준하는 괴력을 발휘하는 숙련된 직업자.

그만한 실력이라면 시간을 들여 비술을 푸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비술도 잘 안보이는 목 쪽에 새겨져있고.

환인의 질문에 유르파는 잠깐 고민하다가 한 가지 비유를 들었다.

=자기네 나라에는 A라는 스마트폰하고 G라는 스마트폰이 있지? A에서 작동하는 앱을 G에서 실행하면 어떻게 될까?=

“그렇군요.”

=응. 맞지 않는 앱을 억지로 실행하려다간 OS가 망가지겠지? 마찬가지로 비술과 성술은 위상력의 술법이라는 포괄적인 범주에 함께 들어가지만 세부가 달라. 소프트웨어가 다른 거야.=

성술사가 쓰는 힘은 능력의 특수성과 희소성 때문에 성술이라고 부르지, 원래는 위상력으로 사용하는 술법으로 성술사도 계통을 따지면 술법사 계열이다.

그렇기에 동급의 비술사가 걸어놓은 주문을 성술사인 그녀가 강제로 파훼할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동작 환경 자체가 다르다면 시도조차 못 한다는 이야기겠지.

또 유르파는 때때로 헛똑똑이 같은 면모를 보이긴 하지만 작업에 관해서는 철두철미하다.

그녀라면 비술에 또 다른 장치를 해놔서 아영이 혹여 수작을 부리려 했다간 신호가 오게 조처해놓았을 것이다.

=…….=

예상대로 알 듯 말 듯 한 신호를 보내며 웃는 유르파의 행동에서 환인은 자신의 추측이 맞았다는 걸 알아차렸다.

하지만 그런 조처마저도 쓸데없는 짓으로 해버리는 발언이 아영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헤, 헤헤. 염려 마세요. 저, 땅신 님의 존재에 맹세코 환인 님…… 성제님? ……환인 오빠를 배신하지 않을 테니까요.=

마치 선서하듯 오른손을 들더니 땅신의 이름으로 환인을 배신하지 않겠다고 맹세한 것이다.

=아, 그렇지만 너무나 부당하고 불합리한 처사는 좀 봐주세요……. 으에, 죽겠다.=

맹세하자마자 다시 쪼그려 앉아 으어, 좀비 같은 신음을 흘리는데 입에서 투명한 타액이 땅으로 길게 늘어진다.

=반응 후유증이 예상한 것보다 심하네……. 괜찮니?=

정말 힘들어 보이는 모습에 유르파가 살짝 걱정을 드러냈다. 혹시 내가 술식 조합에 실수한 게 있나? 그건 아닌데.

=70도쯤 되는 술을 오크통째로 마시고 산 정상에서 산 아래까지 굴러 내려온 거 같슴다…….=

이마에 식은땀까지 흐르는 걸 보면 엄살은 아닌듯하다.

환인은 손을 뻗어 그녀의 머리에 손을 올려 약간의 원기를 흘려 넣어 주었고, 그것으로 극적인 변화는 없었지만 아영은 한결 편해진 안색이 되었다.

유르파에게 아영을 넘긴 환인은 다음으로 안느와 이야기 중인 가야에게 다가갔다.

이제 길을 떠날 때다. 이 이상 가야와 그녀의 조원을 데리고 다닐 이유는 없다.

자신을 발견하고 차렷 자세로 서는 가야와 그녀의 조원들에게 환인이 말을 걸었다.

“너희는 언제 떠날 생각이지.”

“그렇지 않아도 말씀드리려 했습니다. 장비도 돌려주셨고 사절들도 다 돌아갔으니 성제님만 괜찮으시다면 저희도 돌아가려 합니다.”

“알아서 잘할 테지만, 혹시 무어라 한다면 미궁을 공략하는 동안 내가 잡고 있었다고 하도록.”

=예.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안느, 잘 있어라.=

=어. 조심해서 가.=

안느와 짧은 작별 인사를 하고 조원들과 함께 떠나가는 가야.

그녀가 메리아놀에 도착하려면 최소 한 달은 걸릴 것이다. 그 후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모으는데도 시간도 걸릴 테니 한동안은 잊고 지내야겠지.

휘이잉—

맑고 시원한 바람이 한차례 몸을 휘감고 가는 것을 느낀 환인은 흐트러진 앞머리를 쓸어넘기며 말했다.

“그럼 우리도 출발할까.”

환인이 심핵을 부수어 붕괴한 거인숲 미궁의 입구는 평범한 땅이 되었다.

깊이만 수백 미터인 거대한 지하 공동이었는데 붕괴한 이후에 지반 침하 현상도 없이 그저 흙으로 되돌아간 상태였던 것.

그 말은 이처럼 완전 격리 변화형 미궁 안에서는 출입구를 제외하면 통상적인 방법으로 탈출할 수 없다는 뜻이다.

히스론드의 주도 팔라툼으로 향하는 가도街道에 올라 이동하던 환인은 마차 안에서 유르파와 그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래전부터 해왔던 이야기, 미궁 비상 탈출 수단의 확보 건이다.

“이번에 단거리 공간이동 술법진을 설치하고 운용해보니 어떠셨습니까.”

=공간이동에 대한 안전성 검증은 완벽한 느낌으로다가 끝냈어. 위상력만 충분하면 크라빈 마을 이후로 우리가 움직였던 장소는 언제라도 갈 수 있을 정도야.=

“여기서 크라빈까지라니 훌륭하군요. 이동에 드는 비용은 어느 정도입니까.”

환인의 질문에 유르파는 잠깐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다가 어색하게 웃는다.

=비용을 생각하지 않고 1회에 최장 거리를 이동한다고 하면…… 7급 위상석이 7개 정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물론 한 번에 다 쓴다는 게 아니야! 규모의 경제가 적용돼서 7개가 있으면 그만한 이동을 14번 정도 할 수 있어!=

“발동에 일정 규모 이상의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이야기입니까.”

=응. 현실적으로 이동할 수 있는 거리는 500km 정도야. 여기서 흐라스린드까지의 절반 거리. 5급 위상석 5개를 세팅하면 발동할 수 있어. 한 번 세팅하면 10번 정도 쓸 수 있고.=

이곳 시주르 대평원에서 크라빈까지는 직선으로 약 7,000km 정도 된다. 말이 7,000km지 서해에서 유럽까지 거리다.

일반적인 공간이동, 오브젝트식 전이轉移는 해당 지점에 좌표를 새겨놓고 그곳으로 지정한 오브젝트만 이동시키는 방법이다.

이건 이동 거리가 최대 500km 정도로 제법 준수하지만, 위험성이 꽤 높다.

실패하면 그대로 분자가 되어 흩어져버리는데 무게가 무겁고 크기가 거대할수록 실패할 가능성이 늘어난다.

이점이라면 설치에 5급 비술사가 필요하지만 이후 발동은 3급 비술사로도 가능하며 유지, 설치 비용이 그리 비싸지 않다는 점이다.

그러나 포탈식 전이와 비교하면 여러모로 부족한 게 사실이라 점점 사장되는 추세다.

전이보다 상위의 술법은 포탈을 두 곳에 전개, 두 포탈 사이를 차원학적으로 연결해 통과하는 포탈식 전이술인데 오브젝트 대상 전이 방식보다 훨씬 먼 장거리를 보다 더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다.

이동중 포탈만 갑작스레 닫히지 않으면 절대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그런 포탈식 전이에 안전을 확보한 1회 최대 이동 거리는 2,000km 정도.

이 때문에 VIP들의 이동에는 장거리든 단거리든 포탈 공간이동 방식만 사용하는 게 현시대의 전이술 주류 메타다.

요약하자면 오브젝트 전이술은 객체, 포탈 전이술은 구체 간 연결이 중점이다.

그러나 유르파의 공간이동술은 공간이 중점이다. 두 장소의 좌표를 가지고 그사이 공간을 접어 이어버리는 방식이다.

이동 거리는 포탈식에 비할 바 없이 길며 안전성 또한 오브젝트식과 포탈식을 합친 셈이라 말도 안 되게 높다.

여기에 더해 그녀의 공간이동술은 아직 개선의 여지가 남아있으니, 이 공간이동술이 발표되면 아마도 그녀는 공간이동술의 창시자로 마탑 하나를 세울 정도의 명예와 돈을 거머쥘 수 있겠지.

하지만 유르파는 그러고자 하는 마음은 참새 눈물만큼도 없어 보였다.

=후후. 전부 자기 덕분에 가능한 거였는데? 이런 거로 명예나 돈벌이를 할 생각은 없어.=

“아깝지 않습니까. 명예를 단번에 드높일 기회인데.”

=명예는 이미 성제님의 영혼 기사로 넘칠 만큼 얻고 있답니다~.=

보기 좋은 미소를 한껏 띠었던 유르파는 흠흠, 조금 부끄러운 듯이 헛기침을 하며 말을 이었다.

=아무튼~ 5급 위상석 평균이 개당 37금화니까 1회 공간 도약 최대 거리 500km에 18금화 가량이 드는 셈이야. 위험한 상황에 탈출용으로 쓴다고 생각하면 18금화 정도는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지?=

“예. 목숨값에 비하면 매우 저렴한 가격이지요. 500km라면 탈출 거리로도 양호할 테고요.”

=아직 마도구화는 하지 못했지만, 조금만 더 연구하면 되니까 자기가 미궁에 들어가기 전까지 완성해놓을게.=

“부탁합니다.”

이 연구는 환인을 만나기 전부터 거의 완성 단계였지만, 완성까지 한 걸음 남겨둔 상태에서 오랫동안 제자리걸음이었다.

가장 중요한 좌표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의 지식으로는 알 수 없는 현상으로 인해 공간에 고정한 좌표가 계속 어그러졌던 것.

그 문제는 환인을 만나고 그의 포로가 되어 일행에 합류했을 때 해결되었다.

“유르파. 대지는 평면이 아니며 고정되어있지도 않습니다.”

=으응?=

“혹시 천동설과 지동설이라는 학설을 들어보셨습니까.”

=……으으응?=

하늘은 가만히 있고 땅만 움직인다는 지동설. 땅은 가만히 있고 하늘이 움직인다는 천동설.

유르파는 전자인 지동설을 상식으로 여겨 환인을 만나기 전까지 의문을 가지지 않았었기에 그의 이야기에 눈이 번쩍 뜨이는 충격을 받았다.

그 후 자신 나름대로 지동설과 천동설에 관해 연구해보았지만 막막하기가 망망대해 수준이었기에 진척이 느렸었는데.

“이게 천문학 폴더입니다. 지구에서 존재하는 서적과 학설, 논문을 닥치는 대로 모아놓았으니 연구에 도움이 될 겁니다.”

=우와.=

그와 함께 지구에 방문한 그녀는 그야말로 방대한 지식의 바다에 풍덩 빠져버리고 말았다.

수천만, 수십억 인류가 수백, 수천 년에 걸쳐 쌓아온 지성의 바벨탑.

거기에는 유르파가 의문시하던 것의 답 대부분이 있었으며, 그것들은 수십 년간 거대한 벽으로 존재하던 7급이라는 벽을 무너트리는 계기가 되어주었다.

7급(진)이 된 유르파는 흡정족으로 태어나 괄시받고 손가락질받을 때마다 멀리 훌쩍 떠나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그런 생각이 나이를 먹어 감에 따라 구체화하며 만들어진 목표가 바로 공간이동술.

즉 유르파는 자신의 꿈이자 인생의 목표를 결국 달성해내고 만 것이다.

보통 인생의 목표를 달성하게 되면 번아웃 증후군에 시달리거나 의욕이 바닥까지 내려가기 마련이지만, 그건 그녀와는 관계없는 이야기였다.

그녀의 삶의 목표는 이미 다른 것으로 바뀌었는지 2년이 다 되어가고 있었으니까.

유르파는 자신의 또 다른 삶의 이유이자 목표를 사랑이 가득 담긴 눈으로 바라보며 그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격리 변화형 미궁 안에서의 작동도 잘 되는 것을 확인했으니 앞으로는 한층 더 안전한 미궁 탐사를 진행할 수 있겠군요.”

=하지만 조금 아쉬워. 나도 같이 미궁에 내려가면 해당 지점 좌표를 읽어서 미궁과 바깥을 간단히 오갈 수 있을 텐데.=

현재 공간에서 좌표를 뽑아낼 수 있는 사람은 유르파뿐이다.

백려강도 열심히 배우고 있지만, 이건 지식과 지혜의 확장과 관련된 문제라 깨달음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이해하기 난해하다.

“앞으로 가야 할 미궁의 위험성을 생각해본다면 유르파를 데리고 가는 것은 허락할 수 없습니다. 당신을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없으니까요.”

부드러우면서도 단호한 그의 뜻에 유르파는 살짝 얼굴을 붉히며 웅얼거렸다.

=그렇게 말하면 려강이 아가씨도 안 되잖니. 용인체의 잠재력이 아무리 뛰어나고 바람술을 쓴다고 해도 무직자일 뿐이니까…….=

아드네빌라의 모방체를 얻어 그 몸에 빙의한 백려강은 하루도 빠짐없이 이실리테와 안느의 훈련을 쫓아가고 유르파에게 붙어 그녀의 술법, 비술 지식을 공부하는 중이다.

잠자는 시간은 하루 4시간. 그중 1시간은 환인과 정사에 사용하니 실제 수면 시간은 3시간뿐.

그런데도 그녀의 성장 그래프는 눈에 띄게 완만해지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환인과 이실리테, 안느를 따라 미궁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이야기.

환인은 그 이야기에 상관 없다는 식으로 대답했다.

“직업을 각성하지 못한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법사로 진로를 바꿔도 나쁘지 않을 테지요.”

=하긴, 려강이 아가씨 손재주가 놀라운 수준이긴 해. 아가씨가 마도구 제작을 도와주고 난 연구랑 개발을 맡으면 생산율은 나 혼자 할 때보다 서너 배는 더 높아질 거야.=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그녀의 일은 지금 정할게 아닌 듯 하니까요.”

=응. 자긴 심핵력 훈련을 시작할 거지?=

“예. 구석에 조용히 있을테니 유르파도 할 일이 있다면 하십시오.”

=그럴게.=

=…….=

유르파가 깜빡하고 발동해놓지 않은 마차 방청 기능.

그 덕분에 마차 지붕에서 이루어지는 안느와 아영의 성술 토론을 참관하던 백려강의 귀에도 그 대화가 전부 들어갔다.

‘난…… 자질이 없는 걸까?’

유르파의 이야기에 마음이 상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전부 사실이고 그녀가 나쁜 마음으로 그런 말을 한 게 아니라는걸 잘 아니까.

지금 자신의 삶은 짐승신님과 환인 님이 내려주신 두 번째 삶이다.

살아있는 몸으로 숨 쉬고 사랑하는 분의 품에 안겨 사랑을 받는 것만으로도 행복이 넘치는데 그 이상을 어찌 바랄까.

=…….=

언니들하고 같이 미궁에 내려가 환인 님의 곁에서 직접 돕지 못하는 건 아쉽지만, 돕는 것은 곁에서 같이 싸우는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백려강은 들었던 것을 잊기로 하고 안느와 아영의 대화에 다시 집중했다.

마음속에 약간의 미련이 남았다는 걸 눈치채지 못하고.

그 후 며칠동안 평온하고 평탄한 시간이 이어졌다.

아영이 돌보던 암살자 여자도 환인의 영기 치료로 영혼 폭발에 의해 너덜너덜해졌던 영혼이 수복되며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고, 위상류와 역쇄류에 심핵력을 결합하는 훈련도 제법 성과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사이 대성녀와 한 번 더 통화가 있었는데.

[그대의 미궁 돌파 소식이 더 퍼지지 않도록 소녀가 직접 조치해놓았소.]

환인이 벌써 두 번째 미궁을 돌파했다는 사실을 대성녀가 직접 나서서 소문이 퍼지지 않게 막았단 소식을 들었다.

“그동안은 딱히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마는 네 나라가 성가시게 굴던 것을 겪었더니 고맙다는 말 밖에 드릴 게 없군요.”

[다행이군. 소녀는 그대가 공명심으로 쓸데없는 짓을 했다고 나무랄까 긴장했었소.]

“농담입니까.”

[당연히 농담이지. 성제가 어떤 인물인지 그대의 여자들만큼이나 소녀도 잘 안다고 자부할 수 있거늘.]

후후 웃는 미소 뒤로 당신 탓에 했던 마음고생 때문이라는 말을 숨기는 대성녀다.

[별 볼 일 없는 하급 귀족, 호족, 족장들은 모르겠지만, 신분과 지위가 높은 자들은 그마저도 이미 손에 넣었을 테니 앞으로도 적지 않은 성가심이 발생할 거요. 부디 성질난다고 다 때려 부수는 일만큼은 참아주길 바라오만, 못 참겠다 싶으면 그냥 밀어버리시오. 뒷일은 소녀가 다 책임지겠소.]

“대성녀님이 그렇게 험한 말을 써도 되는 겁니까.”

환인이 살짝 웃으며 묻자 대성녀도 똑같이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다고 마왕이 태어나게 둘 수는 없잖소?]

“알겠습니다. 마음 감사히 받도록 하지요.”

대성녀가 무한한 믿음을 보내며 자신의 편이 되어주는 것이 조금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이해가 안 되는 환인이었다.

정말 자신이 마왕으로 변하지 않길 바라서인가? 아니면…….

이런 의문을 요즘 들어 상담역 비슷하게 된 안느에게 했던 환인은 그녀의 핀잔을 받았다.

=도령도 진짜. 대성녀님도 여자야, 여자.=

“음.”

=혹여나 그분 앞에서 그런 소리 하는 일 없도록 해.=

“그러지.”

그 외에도 릴라이스 오피셜로 엄청난 미녀인 환연을 제물 삼아 상급 정령을 불러 미팅을 진행해보려고도 했었고, 릴라이스에게 하는 가스라이팅이 어느 정도로 진행되었는지도 환연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중 상급 정령 미팅은 의욕이 허무하게도 성사되지 않았다. 영혼의 눈으로도 상급 정령은 볼 수가 없었기 때문인데 그 이유가…….

「안 보이는 이유는 상급 정령들이 너랑 대화하길 거부해서야.」

“내게 정령 친화력이 없기 때문인가 보군.”

「응. 가까이 다가가기도 싫을 정도로 못생겼대.」

“…….”

상급 정령들이 한 말을 전달해주는 거일 텐데 어째서 그녀에게 감정이 느껴지는 걸까.

환인이 눈을 가늘게 뜨자 찔끔한 환연이 부연 설명을 덧붙인다.

「네가 못 보는 건 보통 상급 정령들은 이면 세계에 있어서 그래. 거긴 직접 넘어가든가 아니면 상급 정령이 거기서 나와야 너도 볼 수 있는데 아까 말했던 것처럼 상급 정령들은 어지간해서는 여기 차원으로 안 넘어오거든.」

“방법은 없나.”

「환령계에 네 소문이 파다해서 힘들걸? 길가는 어린 애들 납치해서 막 험하게 다루다가 쓸모없어지면 버린다고.」

“……환연.”

「내가 한 말 아니야. 정령들 사이에서 퍼져있는 소문이란 말이야. 아무튼 그래서 제 뜻대로 환령계를 오가기 어려운 중급 이하 애들은 너한테 쉽게 잡히는데 상급 정령들은 험한 꼴 당하고 싶지 않아서 네 앞에 안 나서는 거란 말이지.」

환인이 팔짱을 끼고 환연을 뚫어지게 쳐다보지만, 환연은 흥흥 콧노래를 부르며 그 시선을 외면한다.

아무리 봐도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이때다!’하고 푸는 느낌인데……. 본인이 저렇게 주장하니 환인으로서는 확인할 방도가 없다.

그리고 미친 정령 릴라이스.

「릴도 네가 조금 부담스러워진 거 같아. 거인숲 미궁 앞에서 커다란 거 쾅 터트렸잖아. 그게 릴한테도 좀 위협적이었나봐.」

“그건 제법 도움이 되는 이야기군.”

「초월 정령인 릴이 꺼릴 정도면 다른 신수한테도 어느 정도 피해를 강요할 수 있다는 이야기니까?」

“그래. 앞으로 계속 미궁을 돌파해가며 심핵력을 모은다면 언젠가는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아도 될 테니.”

「그거 인간만 대상이지?」

“신이나 신과 다름없는 자들과 싸울 생각은 없다.”

「으휴. 릴은 왜 너랑 마찰을 일으켜서. 애가 성격은 나쁘지 않은데 초월 정령이라서 좀 자기가 정절급인 줄 아는 게 흠이야.」

이야기가 옆으로 새는 느낌이지만 이것도 환연과 합을 맞추는 과정이다.

릴라이스가 환연을 매개로 아드네빌라처럼 엿듣고 있을 가능성이 크기에 하는 행동인 것.

즉 환연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네가 생각 이상으로 더 강하니까 릴라이스가 너한테 시비 건 거 때문에 몸 사리고 있어. 그걸로 적당히 가스라이팅 중.’

“아쉽군. 상급 정령으로 하는 강령은 어느 정도인지 궁금한데 말이다.”

「포기하지 말고 기다려봐. 상급 정령 애들은 다들 성격이 다 달라서 혹시 알아? 그중에 하나 정도 있을지.」

“부탁하마. 오기만 한다면 영기든 정령석 가루든 되는 만큼 맛보여준다고 해라.”

「그럴게.」

그 후 며칠을 더 이동해 슬슬 지평선에서 산꼭대기 비슷한 것이 조금씩 올라오기 시작할 무렵.

=환인 오빠. 이레아가 정신 차렸어요. 그리고 카락스 본거지랑 통신이 가능해진 것 같은데…… 어떻게 할까요?=

길가에 마차를 대고 휴식 중일 때 아영이 한쪽 젖가슴이 허전해진 여자를 데리고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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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게관위 피셜 비사회인 포르노 사이트 가입자 글쟁이입니다.

내 세금 내놔 개새끼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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