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2 시주르 대평원
삐~ 삣. 삐이이!
=뭐야. 너도 마차 끌고 싶어?=
삐잇, 삣.
쿠르티와 쿠핀, 쿠라를 마차에 매고 있던 안느는 자신의 발치 주변을 돌며 삑삑거리는 실루를 안아 들었다.
이렇게나 어린데 벌써부터 쿠에의 본능이 발휘되고 있는 걸까.
환인은 실루를 쓰다듬으며 귀여워하는 안느에게 마저 물었다.
“2년 전의 네가 당해내지 못할 정도라면 그럭저럭 쓸만하다는 이야기군.”
=대련을 빙자한 구타 중에도 슬쩍슬쩍 내 기술을 훔쳐 배우더라. 도령이 본격적으로 가르치면 아마 기술만큼은 순식간에 우릴 따라잡을 거야.=
그의 질문에 안느의 시선이 열심히 가방을 나르는 라벤더색 단발 머리카락의 아가씨에게 향한다.
겉만 봐서는 암살자 따위가 아니라 밝고 건강한 플뢰 아가씨다.
“…….”
=냄새를 맡아보면 아직 남자를 모르는 몸이야. 플뢰 여자가 처녀성을 지키고 있단 건 플뢰족의 성향이 강하게 남아있단 뜻이거든? 성격도 꽤 밝지만 그렇다고 마냥 가볍지도 않아 보이니까, 귀속 비술 계약으로 구속하면 확실히 도움 될 거 같아. 문제는…….=
“그녀들의 반발이겠지.”
환인의 시선이 이실리테에게 향한다. 그녀는 음식을 만들다 때때로 짐가방을 들고 오가는 아영을 조용히 응시하고 있었다.
=어. 특히 이슬이가 더 그래. 힘 조절에 자신 없다고 나한테 맡기겠다더라. 잘못하면 죽일지도 모르겠다면서.=
확실히 그녀와 아영은 처지가 비슷하다.
이실리테 입장에서 아영은 자신의 흑역사가 실체화해 자기 앞에 나타난 기분이 아닐까.
“넌 괜찮나.”
=나? 나야 뭐. 과정은 기분 나쁘지만, 결과는 도령이 무사하단 거잖아? 아까 패면서 감정은 털었어.=
“후.”
환인이 짧게 웃자 그 웃음의 의미를 간파한 안느가 웃는 듯 찡그린 얼굴을 한다.
=하지 마.=
“근육 도깨비 말인가.”
=하지 말라니까 진짜!=
작게 투덜거린 안느는 이윽고 자기도 키득 웃으며 말했다.
=매우 싫어하는 별명을 불러서 홧김에 머리통을 내려치긴 했지만, 그녀와 대련하며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었더니 이제 남은 감정은 없어.=
계속 그를 죽이려 든다면 안느는 환인에게 미움을 살 각오를 하고 저 목을 꺾었겠지만, 적어도 그녀는 그런 게 아니다.
“이실리테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다.”
=그래? 왜?=
“그녀가 날 실망시킨 적은 없었으니까.”
이실리테가 자신을 실망시키는 일이 생기더라도 걱정하지 않는다.
그건 틀림없이 자신을 위해 움직이려다 발생한 실수, 잘못일 테니까.
점심이 완성되어 모두 모여 점심 식사를 시작한다.
오늘의 점심은 고기를 푸짐하게 얹은 일본식 고기 덮밥. 환인이 해준 이야기에 영감을 얻어 매콤짭짤한 소스가 일품인 요리다.
물론 안느는 고기 대신 싱싱한 버섯이 잔뜩 올라간 버섯 덮밥.
이실리테는 환인, 안느, 유르파, 환연, 백려강 순으로 음식을 나누어준 뒤 멀찌감치 서서 어정거리는 아영을 불렀다.
=거기서 뭐 해. 와서 앉아.=
=어, 저도 주시는 건가요?=
=주인님은 먹는 것 가지고 차별 안 해.=
=감사함다!!=
환인은 자신을 핑계 삼는 이실리테의 속내를 읽고는 그녀만 알 수 있을 정도로 작게 웃었고, 그걸 눈치챈 이실리테의 귀는 그만이 알 수 있을 정도로 미세하게 붉어졌다.
=설거지는 제가 하겠습니다!=
아영은 모두가 식사를 마친 그릇을 회수한 뒤 물과 땅의 최하급 정령을 불러 식기와 요리하면서 생긴 설거짓거리를 모두 정리했다.
그 뒤에는 환인과 이실리테에게 허락을 받고 남은 음식을 아직 백치처럼 멍하니 있는 송곳니에게 가져가 먹였다.
나중에 죽을지도 모르지만, 일단 살아있으니 뭐라도 먹여야 하지 않겠나.
이후에는 쿠에들에게도 직접 여물과 식수를 챙겨주었고, 혼자서 돌아다니는 비상에게도 물을 주려 했지만.
큐으으으~
가까이 오면 물고 할퀴겠다고 으르릉거리는 비상의 기세가 대단해서 어쩔 수 없이 물러나고 말았다.
=가까이 가면 걷어차일걸?=
=진짜로요. 녹색 쿠에라서 그런지 되게 똑똑하네요!=
=지능은 우리하고 다를 바 없어. 우리 말만 못한다 뿐이지 이야기도 다 알아들어.=
=오~.=
=네가 도령을 암살하려 했다는 거도 다 알고 있단 뜻이야. 그러니까 널 저렇게 싫어하는 거지.=
=그, 그렇슴까.=
정말 희귀해서 자신도 이야기로만 들었던 녹색 쿠에다. 신기해서 물을 주며 깃털을 조금 쓰다듬어볼까 했는데…….
아영의 시선이 어떤지 읽은 안느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저래 보여도 우리 일행에서 제법 서열이 높아. 비상이한테 잘 보여야 앞으로 생활이 편할걸?=
킥킥 웃으면서 가버리는 안느의 뒷모습에 아영은 머릴 긁적이다가 비상을 돌아보았다.
자신을 향해 머릴 낮추고 날카로운 발톱으로 팍! 팍-! 땅을 차는, 명백한 쿠에의 적대 표시.
녹색 쿠에면 진수와 성수 사이에 반쯤 발을 걸친 동물이다.
‘자다가 머리 쪼여서 안 죽게 한동안 몸 좀 사려야겠네.’
……근데 앞으로 잘 보여야 생활이 편할 거라고? 그럼 역시 죽이지 않고 대신 노예로 끌고 다닐 생각일까?
뭐 죽는 것보단 낫다. 게다가, 이 일행의 여자들은 다들 여자답지 않은 부분이 크다.
보통 여자들이 한 남자를 두고 모이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알력과 기 싸움의 서열 결정전이 어마어마하기 마련.
특히 저만큼이나 능력이 뛰어난 여자라면 프라이드도 장난이 아니게 높다.
저런 여자들이 모여서 기 싸움하는 곳에 들어간다면 그것만으로도 재앙이다. 기 싸움이란 여자의 본능과도 같은 것. 막는다고 막아지는 게 아니니까.
헌데 아영이 보기에 저 여자들은 다들 언니 동생하며 무척이나 화기애애했다.
그게 뜻하는 것은 하나뿐.
‘남자의 장악력과 능력이 여자 넷을 완벽하게 품고도 남는다는 거지. 공평하게 여자들을 안아줄 수 있는 절륜한 정력도 있을 거고.’
겸사겸사 여자들 성격도 음습하지 않고 대인배의 면모가 뛰어나단 것도 있겠지.
잠깐 딴 생각을 하던 아영은 자신을 향해 투기를 풀풀 날리는 비상을 보곤 헤헤 웃으며 천천히 손바닥을 내밀었다.
=야야~ 미안해. 네 주인님을 이제 공격 안 할 테니까 우리 친하게…… 히에엑!=
뀨아앙!
누가 주인님이야!
=악?! 흐엑!? 왜 갑자기 화내고 그래?!=
비상의 공격에 깜짝 놀라 허둥거리던 아영은 이윽고 질겁하면서 비상의 공격을 피하려고 신체 능력을 최대한 끌어올렸다.
쏴아악— 쓰아아악—!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발차기는 자칫 스쳤다간 저 날카로운 발톱에 살점이 뭉텅이로 뜯겨나갈 것이다.
콰우우— 우우웅—!
날갯죽지를 휘두르는 모습은 우스꽝스럽지만, 거기서 터져 나오는 파공성은 어지간한 중상급 괴물의 주먹질에 가깝다.
거기다 바위도 부숴버릴 듯한 부리 쪼기의 연타.
피싯-
=……!=
발톱 끝에 살짝 스친 뺨에서 피가 주룩 흐른다.
성기사가 말한 녹색 쿠에의 서열이 낮지 않다는 뜻을 물리적으로 깨닫게 된 아영은 급기야 납작 엎드려 두손을 싹싹 빌었다.
=잘못했습니닷!! 용서해주세요 비상님!!=
실력을 전부 다 꺼낸다면 이길수야 있겠지만, 여기서 녹색 쿠에하고 싸울 수도 없는 노릇이 아닌가.
……아니 이길 수 있나? 모르겠네. 아무튼 자존심을 모두 내려놓고 용서를 빌자 놀랍게도 공격이 멈춘다.
무서운 파공성이 멈춘 것을 느낀 아영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어 도끼눈을 뜬 비상을 올려다본다.
=……용서해주는 거야?=
뀨으으—
앞으로 지켜볼거니까 조심해—
비상의 말은 이해하지 못했지만, 아영은 그게 위협이라는 것만큼은 확실하게 인식했다.
그야 그게 아니고서는 저렇게 머리를 쫄듯이 쉭쉭 거리는 게 위협이 아니라면, 칼들고 싸우는 건 무도회장의 춤일 테니까.
근데 진짜 지능 높네……. 엎드려서 사과한다고 봐주다니.
아영이 그리 생각하며 휴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을 때였다.
퍼벅, 퍽—
=꺅- 으풉!=
갑자기 얼굴에 끼얹어지는 흙더미에 아영이 두 손을 허우적거린다. 이어서 모래에 가까운 흙가루가 그녀의 방어가 무색하게 얼굴이며 머리로 쏟아졌다.
입안으로, 옷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까끌까끌하고 버석버석한 흙.
=너무해…….=
삽시간에 흙투성이가 된 아영이 울상을 짓자 비상이 큐으, 짧게 울고는 꽁지깃을 살랑거리며 가버린다.
저 울음소리가 놀리는 것처럼 들린 건 기분 탓일까?
물의 정령을 불러낸 아영은 어차피 속옷도 없겠다, 옷을 입은 채로 머리부터 물을 끼얹어 흙투성이가 된 머리며 몸을 씻었다.
=안 그래도 마차를 점검하며 옷 여기저기에 흙이 묻었는데 그냥 빨래하는 셈 치지 뭐.=
그렇게 홀딱 젖은 아영은 젖어서 뭉친 라벤더색 단발 머리카락을 탈탈 털고 셔츠도 벗어서 대충 물을 쥐어짜며 의아해했다.
비상은 대체 자신의 무엇에 그리 화가 났을까.
=말을 걸어서……? 아냐, 그런 기색은 아니었어.=
고민해봤지만 답은 안 나온다.
아영이 물기를 짠 셔츠로 대충 몸을 닦고 다시 옷을 걸쳤을 때, 마차 너머 반대쪽에서 환인의 부름을 들을 수 있었다.
“다들 모여라.”
그가 있는 곳으로 달려가자 먼저 모여있던 여자들이 홀딱 젖은 아영을 보며 눈을 끔뻑인다.
쿠에들한테 물을 먹이러 간다는 애가 흠뻑 젖어서 돌아온 모습에 유르파가 희한하다며 묻는다.
=왜 그렇게 푹 젖었니?=
=아하하. 옷하고 좀 더러워졌길래 씻는다고 그랬어요.=
=씻어도 벗고 씻지, 옷을 입고 씻어?=
=이게 간단하잖아요.=
=그래도 다 젖어서 가슴이랑 배꼽이랑 비치잖아. 자 이 수건으로 몸 닦고 이걸로 갈아입어.=
=오. 감사합니당.=
환인은 자신을 향해 등을 돌리고 상반신 알몸으로 몸을 닦는 아영을 잠시 기다려주었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우리가 미궁을 탐사하는데 현시점에 가장 필요한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전문 회복 역할의 성술사. 다른 하나는 미궁의 함정을 해체할 함정 전문가.”
현시점까지는 크게 다치는 사람은 없었고 자잘한 상처는 안느가 성술로 치료해주거나 회복약을 마셔 치료했다.
“지금까지는 괜찮았다 해도 앞으로도 괜찮을 거라는 보장은 없다. 미궁을 계속 탐사하려면 제대로 된 회복술사는 반드시 필요하지. 그랬는데 성술사가 우리 앞에 굴러들어왔군.”
몸도 튼튼하고 싸움도 제법 잘하고 암살자 출신인데다 머리도 괜찮은 성술사.
그의 평가에 여자들이 멀뚱멀뚱 서있는 아영을 돌아본다.
=…….=
=…….=
아영은 그게 자신을 두고 말한다는 걸 깨달았지만,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몰라 목에 수건을 건 채 눈만 끔뻑였다.
안느와 유르파는 대강 짐작하고 있었기에 입을 다물고 있었지만, 눈치가 살짝 둔한 백려강이 손을 들고 묻는다.
=환인 님 말씀대로 암살자 출신인데 믿을 수 있을까요? 아무리 플뢰족이라지만…….=
“물론 그냥 데리고 다닐 생각은 없다. 그에 마땅한 제약은 걸어놓아야지.”
=자기가 말하는 건 완전 귀속 계약 비술이야. 모를 수도 있으니까 설명해줄게.=
설명을 이어받은 유르파가 종속 비술과 귀속 비술의 차이점을 설명해준다.
요약하면 귀속 비술은 종속 비술과 다르게 오직 시술자와 지배 대상 양측 동의가 있어야만 해제할 수 있다.
지배 대상은 생각만으로도 피시술자에게 목숨을 잃을 수 있을 정도의 고통을 줄 수 있다.
지배 대상이 사망하면 피시술자도 사망한다.
=무엇보다 종속 비술 계약이랑 다른 점은 국가의 관리를 안 받아. 종속 비술 계약은 5급 비술로 도시의 행정관에서만 진행할 수 있고 국가에서도 상호 간에 동의를 확인하는데 귀속 비술은 아무런 제약도 없어.=
=네? 어째서 그렇죠? 오히려 귀속 비술이 더 관리받아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 질문에 유르파는 쓰게 웃었고, 백려강은 이유를 깨달았다.
=아.=
=그래. 높으신 분의 사정이야.=
귀속 비술은 7급 비술이다. 그리고 7급 이상 비술사는 전 세계를 통틀어봐도 그 숫자가 채 100명이 안되며 그중 대부분은 각국 주도에 거주하고 있다.
펼칠 수 있는 사람이 극소수인 비술. 상대를 말 그대로 영혼까지 손에 쥐는 것과 다름없는 효과.
높은 분들이 애용할만한 비술이 아닌가. 그런 걸 국가의 관리에 넣어버리면 오히려 그들이 쓰기 귀찮겠지.
귀속 비술의 효과를 들은 여자들이 아영을 돌아보았다.
비술을 받길 거부해 난동을 피울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사람의 시선이지만 정작 아영은 태연했다.
=아, 저는 괜찮아요. 귀속 비술을 받겠습니다!=
=…….=
=…….=
너무 태연하게 찬성하는 거 아닌가? 여자들의 눈빛이 의심을 담으니 아영은 헤헤 웃으면서 내심을 솔직히 드러냈다.
=카락스는 우리 이득과 뜻에 따라 어쩌면 죄가 없었을 수도 있는 사람까지 죽여왔슴다. 그렇게 살인을 해온 놈들이 정작 자기 목숨이 아깝다고 발버둥에 몸부림치는 건 추하잖아요.=
=주인님이 생각이 바뀌어서 널 벌레 밟아 죽이듯이 죽일 수도 있어.=
이실리테의 위협에도 아영은 웃음을 잃지 않았다.
=그렇게 되면 제 업보죠 뭐. 그리고 성제님은 되게 무서운 분 같지만, 동시에 합리적인 분 같아서요. 성제님이 시키는 일을 열심히 하면 이유 없이 괴롭히거나 죽일 분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것도 있습니다.=
자신이 죽어야만 지켜질 수 있는 것들이 있다면 아영도 어쩔 수 없이 죽음을 택했을 거다.
하지만 이런저런 사정을 따져보니 살 수 있겠다, 살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최선을 다해 살아남아야 하지 않겠나.
=거짓말이 아니야.=
진실의 주시자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안느가 고갤 끄덕이니 유르파도, 백려강도 작게 한숨을 내쉬며 그 사실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이실리테가 납득하지 못하겠단 표정을 지으니 아영은 이야기를 덧붙였다.
=솔직히 만약 따라가야 하는 일행이 무능력한 주제에 고등급 미궁을 노리는 한심한 파티였다면 암담해서 눈앞이 깜깜했을 거예요. 하지만 성제님은 다르시잖아요? 여기서 턱 죽음을 택해버리면 오히려 그동안 죽은 사람들을 모욕하는 느낌이랄까…… 아무튼 그런 거예요.=
=……난 자기 의견에 찬성이야. 단순한 7급 성술사도 구하기 힘든데 저런 인재면 오히려 그냥 죽이는 게 아깝지. 아니, 자비지.=
아영의 이야기를 다 들은 유르파는 짧은 고심 끝에 찬성표를 내놓았다.
그러자 다른 여자들도 같이 찬성에 손을 든다.
=저도 좋은 생각 같아요.=
=응, 나도 찬성.=
=…….=
대답이 느린 이실리테에게 모두의 시선이 돌아가자 이실리테도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소 궤변이라고 느꼈지만 어쨌든 저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자신만의 주관이 있다는 이야기니까.
예전의 자신처럼 멍청하기만 해서 주인님의 앞길을 막을 인물은 아니겠지.
환인은 모두의 찬성표를 받은 뒤 속도 편하게 웃으며 서 있는 아영에게 말했다.
“너도 대강 눈치챘겠지만, 네가 진심으로 일행을 위해 헌신하겠다고 한다면 카락스의 암살자들에게 거친 짓은 하지 않겠다. 직접 암살을 시도한 저 여자도 살려서 돌려보내 주지.”
혹시나 하며 한 가닥 실낱같은 희망을 품었던 아영은 그 이야기에 표정이 환해지며 허리를 깊게 숙였다.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어렸을 적 부모를 따라 순례행 도중 부모님이 강도들에게 살해당한 뒤 자신도 잔인하게 살해당할 뻔 했을 때, 카락스의 손에 거두어진 뒤로 줄곧 카락스의 모두를 가족처럼 여겼던 아영이었다.
그러한 마음가짐과 가족을 위해 노력한 그녀의 뜻을 높이 사 차기 어금니까지 올라갔던 그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카락스 모두의 생명.
가족들만 살려준다면 성제가 자신의 육체를 원하거나 학대를 해도 웃으며 참을 수 있는 아영이다.
그런 그녀에게 가장 두려웠던 것은 성제의 변심이었다.
갑자기 마음이 바뀌어서 가족들을 추적해 모두 죽이는 건 아닐까. 그것만 걱정하던 아영에게 환인의 제안은 말 그대로 유일한 살길 같은 것.
아영은 환인의 관대함에 마음속으로 감사하는 동시에 이런 말도 안 되는 의뢰를 던진 엘위드리스 가문의 원로에게 원한을 키우며 꾸벅꾸벅, 계속 허리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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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려강의 비중이 쪼끔 낮죠? 아직 완전체가 아니라서 그렇습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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